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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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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죽음의 가면 - 포 (전대호 옮김, 부북스) 부 클래식 2 - 포 단편 선집 에드거 앨런 포 - 붉은 죽음의 가면 (1842년) "붉은 죽음"이 오래 전부터 온 나라를 휩쓸었다. 이제껏 그렇게 치명적이거나 그렇게 무시무시한 전염병은 없었다. 피는 놈의 상징, 놈의 도장이었다. 피의 붉은색과 공포. 극심한 통증과 갑작스런 현기증이 일어났고, 이어서 온몸의 구멍으로 피가 쏟아지면서 죽음에 이르렀다. 희생자의 몸과 특히 얼굴에 생긴 진홍색 얼룩은 놈의 저주였고, 희생자를 동료 인간들의 도움과 연민으로부터 격리시켰다. 발작이 일어나 진행되고 죽음으로 종결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반시간에 불과했다. 그러나 프로스페로 공작은 행복하고 용감하고 현명했다. 영토의 인구가 반으로 줄었을 때 그는 궁정의 기사와 귀부인 중에서 건강하고 태평한 친구들을 다수 소집하여 그.. 2023. 12. 15.
벚꽃이 만발한 숲에서 - 사카구치 안고 (안영신 옮김, 작가와비평) 일본 문학 컬렉션 3 - 비밀이 묻힌 곳 목차 에도가와 란포 D언덕의 살인 사건 심리 테스트 다니자키 준이치로 아내 죽이는 법 비밀 다자이 오사무 범인 사카구치 안고 벚꽃이 만발한 숲에서 나쓰메 소세키 불길한 소리 ............................................................................ 사카구치 안고 - 벚꽃이 만발한 숲에서 (1947년) 벚꽃이 피면 사람들은 술병을 들고 다니며 경단을 먹기도 하고 꽃나무 아래를 걷기도 합니다. 경치가 좋네, 봄기운이 완연하네, 감탄하면서 한껏 기분이 들뜨게 되는데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닙니다. 벚꽃 아래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술에 취해 토하고 싸우고 하는 건 에도 시대에 와서야 생겨난 풍습입니다. 아주 먼 .. 2023. 12. 14.
파노라마섬 기담 - 에도가와 란포 (김단비 옮김, 문학과지성사) 대산 세계문학 총서 151 에도가와 란포 - 파노라마섬 기담 (1926년) 같은 M현에 사는 사람도 대부분은 모를 겁니다. 태평양 쪽으로 I만이 펼쳐진 S군 남단에 다른 섬들과는 뚝 떨어진 작은 섬 하나가 있다는 사실을요. 직경 8킬로미터가 채 되지 않는 그 섬은 꼭 초록색 만두를 엎어놓은 듯한 형상입니다. 지금은 무인도나 마찬가지라 근처 어부들이 이따금 올라와볼 때 말고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게다가 곶의 돌출부로 몰아치는 거친 바다에 고립되어 있어서 물결이 웬만큼 잔잔하지 않으면 조그만 고기잡이배로는 접근하기조차 위험 천만합니다. 물론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갈 만한 곳도 아이지만요. 주민들은 흔히 '먼바다섬'이라고 부릅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이 섬 전체는 M현에서 제일가는 부자인 T시의.. 2023. 12. 9.
슌킨 이야기 - 다니자키 준이치로 (김영식 옮김, 문예출판사) 문예 에디터스 컬렉션 다니자키 준이치로 - 슌킨 이야기 목차 문신 호칸 소년 비밀 길 위에서 갈대 베는 남자 슌킨 이야기 ........................................ 다니자키 준이치로 - 문신 (1910년) 그 시절에는 아직 사람들에게 '어리석음'이라는 고귀한 덕이 있어서 세상이 지금처럼 각박하지 않았다. 영주님이나 도련님의 훤한 얼굴이 흐려지지 않도록, 또 대갓집 하녀나 게이샤에게 웃음거리가 끊이지 않도록 웃음을 파는 차보즈나 호칸 등의 직업이 버젓이 존재했을 정도로 세상은 태평하고 한가로웠다. 당시 많은 연극이나 소설에서도 아름다운 자는 모두 강자이며 추한 자는 약자였다. 너도나도 아름다워지려고 애쓴 나머지 타고난 몸에 물감을 넣기에 이르렀다. 강렬하고 현란한 선과 색이 .. 2023. 12. 7.
80일간의 세계 일주 - 쥘 베른 (유영 옮김, 인디북) 쥘 베른 - 80일간의 세계 일주 (1873년) 1872년, 벌링턴 가든스의 새빌로 가 7번지에는 필리어스 포그 경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 집에선 한때 셰리던이 살았는데, 그는 1814년에 죽었다. 필리어스 포그는 일부러 세간의 관심을 끄는 일 따위는 절대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런던의 리폼클럽에서 가장 독특하고 주목받는 회원이었다. 필리어스 포그, 이 수수께끼 같은 인물은 영국이 자랑하는 가장 위대한 연설가 셰리던의 뒤를 이어 이 집에 살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가 매우 정중하며 영국 상류 사회에서도 가장 멋진 신사라는 것 이외에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p.7) .......................................................... 2023. 11. 25.
십자가 위의 악마 - 응구기 와 티옹오 (정소영 옮김, 창비) 창비 세계문학 51 응구기 와 티옹오 - 십자가 위의 악마 (1980년) 일모로그, 우리의 일모로그에 사는 어떤 이들이 말하기를, 이 이야기는 너무나 창피스럽고도 치욕스럽기 때문에 깜깜한 어둠속 깊숙이 숨겨서 영원히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또다른 사람들은 주장하기를, 너무나 슬프고 마음 아픈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다시 눈물 흘리는 일이 없도록 그냥 가슴속 깊이 꾹꾹 눌러놓아야 한다고 했다. 내가 그들에게 물었다. 앞마당에 깊은 구멍이 있는데 그걸 풀이나 낙엽 등속으로 대충 덮어놓고는 이제 우리 눈에 구멍이 보이지 않으니 아이들이 마음껏 여기서 뛰어놀아도 된다고 얘기할 수 있단 말인가요? 자신의 앞길에 있는 구덩이를 알아차리고 그걸 피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법이다. 여행을 하면서 자신의 앞을.. 2023. 11. 17.
사라진 - 오노레 드 발자크 (선영아 옮김, 민음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0 발자크 - 사라진 (1830년) 나는 가장 떠들썩한 연회 한복판에서 모든 사람을, 심지어 경박한 사람마저 사로잡는 깊은 몽상 중 하나에 잠겨 있었다. 엘리제 부르봉궁의 괘종시계가 막 자정을 알렸다. 창틀에 걸터앉아 물결무늬 커튼의 일렁이는 주름 사이에 몸을 숨긴 채 나는 내가 저녁나절을 보내는 저택의 정원을 느긋이 감상할 수 있었다. 눈에 다 덮이지 않은 나무들이 어스름한 달빛 아래 흐린 하늘이 만들어 낸 회색빛을 배경으로 희끄무레한 윤곽을 드러냈다. 이런 환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보자니 나무들은 엉성하게 수의를 걸친 유령들, 저 유명한 죽은 자들의 춤의 거대한 이미지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었다. 그러다가 반대편으로 몸을 돌리면 산 자들의 춤! 은색 금색의 벽과 눈부신 샹들리에.. 2023. 11. 15.
유령의 선물 - 찰스 디킨스 (정은미 옮김, 시공사) 시공사 세계문학의 숲 028 찰스 디킨스 - 유령의 선물 모두가 그렇게 말했다. 모두가 하는 말이 반드시 사실이라고 주장할 마음은 조금도 없다. 모두가 옳을 수도 있지만, 또 그만큼 자주 틀린다. 일반적인 경험에 비추어보건대, 모두가 틀렸던 경우가 너무도 많고, 또 대개의 경우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깨닫는 데는 실로 지나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모두가'라는 말은 사실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모두가 하는 말이 때론 옳기도 하다. 하지만 옛 노래 속에서 질 스크로긴스의 유령이 말했듯이, "늘 그러라는 법은 없다." 저 무시무시한 말, '유령'이 나를 다시 불러낸다. (p.165) ................................................................. 2023. 11. 15.
크리스마스 캐럴 : 유령이야기 - 찰스 디킨스 (정은미 옮김, 시공사) 찰스 디킨스 - 크리스마스 캐럴 (1843년) 말리는 죽었다. 이 말부터 해두자. 이 사실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의 매장신고서에는 목사와 법원서기, 장의사, 그리고 상주가 서명을 했다. 스크루지도 서명을 했다. 이 스크루지라는 이름은, 거래소에서도 그가 서명을 했다. 이 스크루지라는 이름은, 거래소에서도 그가 서명하기로 한 것은 무엇이든 확실한 것으로 통했다. 말인 즉, 말리 영감은 문에 박힌 대못처럼 완전히 죽어버렸다. 잠깐 ! 그 문에 박힌 대못에 죽음과 관련된 무언가가 있다고 내 나름 알고 있어서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나 개인적으로는, 철물점에서 파는 물건 중 죽음과 가장 가까운 것이 있다면 그건 관에 박는 못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직유에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고, .. 2023. 11. 13.
댈러웨이 부인 - 버지니아 울프 (이태동 옮김, 시공사) 시공사 세계문학의 숲 023 버지니아 울프 - 댈러웨이 부인 (1925년) 댈러웨이 부인은 자기가 직접 가서 꽃을 사 오겠다고 했다. 루시는 루시대로 준비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들도 돌쩌귀에서 떼내야 했고, 럼플메이어 목공소에서 사람도 오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얼마나 상쾌한 아침인가. 마치 어린이들이 해변에서 맞는 아침처럼 맑고 신선하다고, 클라리사 댈러웨이는 생각했다. 어쩜 이렇게 화창하지! 바깥으로 뛰어들고 싶어! 부어턴에서 살던 시절에도 지금처럼 삐꺽 대는 돌쩌귀 소리가 나는 프랑스식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바깥공기 속으로 뛰어들면, 항상 그렇게 상쾌한 기분을 느꼈었다. 얼마나 상쾌하고 고요했나. 지금보다 더 조용했던 그때의 아침 공기는 철썩이는 파도처럼, 파도가 입 맞추는 물결처럼 .. 2023. 1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