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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1. 서양 - 고전 소설

댈러웨이 부인 - 버지니아 울프 (이태동 옮김, 시공사)

by handaikhan 2023. 11. 6.

 

시공사 세계문학의 숲 023

 

버지니아 울프 - 댈러웨이 부인 (1925년)

 

 

댈러웨이 부인은 자기가 직접 가서 꽃을 사 오겠다고 했다.

루시는 루시대로 준비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들도 돌쩌귀에서 떼내야 했고, 럼플메이어 목공소에서 사람도 오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얼마나 상쾌한 아침인가. 마치 어린이들이 해변에서 맞는 아침처럼 맑고 신선하다고, 클라리사 댈러웨이는 생각했다.

어쩜 이렇게 화창하지! 바깥으로 뛰어들고 싶어! 부어턴에서 살던 시절에도 지금처럼 삐꺽 대는 돌쩌귀 소리가 나는 프랑스식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바깥공기 속으로 뛰어들면, 항상 그렇게 상쾌한 기분을 느꼈었다. 얼마나 상쾌하고 고요했나. 지금보다 더 조용했던 그때의 아침 공기는 철썩이는 파도처럼, 파도가 입 맞추는 물결처럼 서늘하고 차가웠지만 (열여덟 처녀였던 그녀에게는) 엄숙하게 느껴졌었다. 그 열린 창가에 서 있으면 무언가 대단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꽃들이며, 나무를 휘감고 조용히 피어오르는 연기,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가 뛰어내리는 까마귀를 보고 서 있는데, 피터 월시가 이렇게 말했었지. "채소밭에서 명상 중인가요?" 아니, "나는 꽃양배추보다 사람을 더 좋아해요"라고 했던가? 어느 날 그녀가 테라스로 나가 아침식사를 하고 있을 때, 그는 틀림없이 그렇게 말했었다. 피터 울시. 그는 머지않아 인도에서 돌아온다고 했다. 그의 편지가 너무나 재미없어서, 그가 돌아온다고 한 게 6월 인지 7월 인지도 잊어버렸다. 기억나는 건 옛날에 했던 그 말뿐이었다. 그의 눈, 주머니칼, 미소, 화난 모습, 그 밖의 많은 것들은 완전히 잊어버렸는데, 이상하기도 하지. 양배추 운운하던 그 말은 생각이 나다니. (p.7-8)

 

그녀는 빅토리아 거리를 가로질러 건너며 인간이 너무도 어리석은 바보처럼 느껴졌다. 무엇 때문에 인생을 그렇게 사랑하고, 어떻게 그런 관점으로 인생을 보고, 여전히 꿈을 꾸는 걸까. 인생을 쌓아 올렸다가 허물어뜨리면서도 매 순간 왜 또다시 지으려는 걸까. 이유는 오직 하늘만이 알 것이다 .더할 나위 없이 누추한 여인들, (자신들의 몰락을 마시며) 문 앞 계단에 주저앉아 있는 가장 비참하고 절망적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인생을 사랑한다. 그건 의회의 법령으로도 다스릴 수 없을 거라고 클라리사는 확신했다. 사람들의 저 눈빛 속에, 활기찬 몸놀림 속에, 터벅터벅 걷는 무거운 발걸음 속에, 고함과 아우성치는 소리 속에, 마차들, 자동차들, 버스들, 화물차들, 발을 끌고 몸을 흔들며 지나가는 샌드위치맨들, 취주 악대들, 손풍금 소리, 승리에 넘친 환호, 머리 위를 지나는 비행기가 내는 기이하고도 높은 소음 속에 그녀가 사랑하는 것이 있었다. 인생이, 런던이, 6월의 이 순간이 있었다. (p.9-10)

 

사실 몸매를 잘 가꾸어왔고, 손과 발도 고왔다. 돈을 많이 쓰지 않고도 옷을 잘 입었다. 그러나 요즘 종종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 육체가, 그것이 갖춘 모든 기능에도 불구하고 무가치해 보였다. 전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이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상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가려져 있는, 알려지지 않은 존재. 한 번 더 결혼할 것도 아니고 더 이상 아이를 가질 것도 아닌, 다만 다른 사람들과 이렇게 본드 거리를 다라 놀랍고도 다소 엄숙한 행진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댈러웨이 부인이다. 더 이상 클라리사도 아니었다. 리처드 댈러웨이의 부인이었다. (p.18-19)

 

사랑은 사람을 고독하게 만든다. (p.37)

 

그는 그녀 없이도 행복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없이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 어떤 것도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수가 없었다! 그래, 그는 너무나도 이기적이야. 남자들이 다 그렇지. (p.37)

 

장밋빛 살결, 그거 다 소용없어. 그녀는 냉소했다. 먹고, 마시고, 짝짓다 보면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어. 인생은 장미빛만은 아니야. 물론 그래도 나 캐리 뎀스터는 켄티시 타운에 사는 그 어떤 여자하고도 운명을 바꿀 생각은 없지. 하지만, 그녀는 연민을 갈구하고 이었다. 히아신스 화단 곁에 서 있는 메이지 존슨이, 장밋빛을 잃어버린 자신의 심정을 알아주기를 바랐다. (p.43)

 

'만약 죽어야 한다면 지금이 가장 행복한 때'라고 생각했었다. (p.53)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오셀로 - 셰익스피어 (최종철 옮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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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눈을 뜨기만 하면 됐지만, 눈 위에 무거운 무언가가 얹힌 듯했다. 두려움이었다. 그는 눈에 힘을 주고 치켜떠 앞을 쳐다봤다. 리젠트 공원이 펼쳐져 있었다. 길게 내리비친느 햇빛이 발아래 아롱거렸다. 나무들은 파도치듯 흔들렸다. 환영합니다, 세상이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받아들이고 또 창조하기도 합니다, 세상이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 말을 (과학적으로) 증명이라도 하듯 집들에서, 난간에서, 울타리 너머 목을 길게 빼고 있는 영양들에서, 그의 눈이 닿는 어디에서나 아름다움이 쏟아져 나왔다.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나뭇잎 하나가 갑자기 불어닥친 바람에 떨고 있는 모습이었다. 높은 하늘에선 제비들이 급강하하다가 다시 사선으로 날아오르더니 안쪽으로 바깥쪽으로 마구 빙글빙글 돌았다. 하지만 마치 고무줄이 그들을 잡고 있는 듯 완벽한 통제 속에 있었다. 파리들도 날아올랐다가 다시 내려왔다. 태양은 놀리듯 이 나뭇잎 저 나뭇잎을 얼룩덜룩하게 비추다가, 그 나뭇잎들을 기분 좋게 부드러운 금빛으로 물들였다. 이따금 종소리 (자동차 경적 소리인지도 모른다) 풀줄기 위에서 성스럽게 울렸다. 그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의 평온함, 있는 그대로의 평범함을 나타낼 뿐이었지만, 그것이야말로 진리였다. 어디에나 있는 아름다움, 그것이 진리였다. (p.101-102)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세속에서의 명상 - 크리슈나무르티 (장순용 옮김, 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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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덜린 버지니아 울프(Adeline Virginia Woolf, 1882년 1월 25일 ~ 1941년 3월 28일)

20세기 잉글랜드의 모더니즘 작가.
본명은 애들린 버지니아 스티븐으로 188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모더니즘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평생 정신 질환을 앓으면서도 다양한 소설 기법을 실험하여 현대문학에 이바지하는 한편 평화주의자, 페미니즘 비평가로 이름을 알렸다.

빅토리아 시대 소위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 환경에서 자랐고, 주로 아버지에게 교육을 받았다. 비평가이자 사상가였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의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오빠 토비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한 후 리턴 스트레이치, 레너드 울프, 클라이브 벨, 덩컨 그랜트, 존 메이너드 케인스 등과 교류하며 ‘블룸즈버리 그룹’을 결성하기도 했다. 이 그룹은 당시 다른 지식인들과 달리 여성들의 적극적인 예술 활동 참여, 동성애자들의 권리, 전쟁 반대 등 빅토리아시대의 관행과 가치관을 공공연히 거부하며 자유롭고 진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어머니의 사망 후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아버지의 사망 이후 울프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평생에 걸쳐 수차례 정신 질환을 앓았다. 1905년부터 문예 비평을 썼고, 1907년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리먼트]에 서평을 싣기 시작하면서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파도』 등 20세기 수작으로 꼽히는 소설들과 『일반 독자』 같은 뛰어난 문예 평론, 서평 등을 발표하여 영국 모더니즘의 대표 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소설가로서 울프는 내면 의식의 흐름을 정교하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 내면서 현대 사회의 불확실한 삶과 인간관계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1970년대 이후 「자기만의 방」과 「3기니」가 페미니즘 비평의 고전으로 재평가되면서 울프의 저작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졌고, 「자기만의 방」이 피력한 여성의 물적, 정신적 독립의 필요성과 고유한 경험의 가치는 우리 시대의 인식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버지니아 울프는 픽션과 논픽션을 아우르며 다작을 남긴 야심 있는 작가였다. 그녀의 픽션들은 플롯보다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더욱 초점을 맞춘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해 쓰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소설 『출항』, 『밤과 낮』, 『제이콥의 방』, 『댈러웨이 부인』, 『파도』,『현대소설론』 등과 페미니즘 비평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에세이 『자기만의 방』과 속편 『3기니』 등이 있다. 1927년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쓰인 『등대로』를 발표하며 소설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고 『올랜도』, 『물결』, 『세월』 등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평화주의자로서 전쟁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쳐 왔던 울프는 1941년 독일의 영국 침공이 예상되는 가운데 정신 질환의 재발을 우려하여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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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부인 - 버지니아 울프  (나영균 옮김, 문예출판사)

댈러웨이 부인 - 버지니아 울프 (최애리 옮김, 열린책들 세계문학)

댈러웨이 부인 - 버지니아 울프  (박지은 옮김, 동서월드북)

댈러웨이 부인 - 버지니아 울프  (신현규 옮김, 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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