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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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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푸른 밤 - 최인호 (창비) 창비 20세기 한국 소설 30 목차 최인호 타인의 방 깊고 푸른 밤 오탁번 굴뚝과 천장 한수산 타인의 얼굴 박범신 토끼와 잠수함 흰 소가 끄는 수레 ............................................ 최인호 - 깊고 푸른 밤 (1982년) 그는 약속대로 오전 여덟 시에 눈을 떴다. 눈을 뜨고 뻣뻣한 팔을 굽혀 손목시계를 보았다. 정각 아침 여덟 시였다. 누가 깨워준 것도 아닐 텐데 그처럼 곤한 잠 속에서도 시간의 흐름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있는 동물적인 본능이 그를 정확한 시간에 자명종 소리를 내어 깨워준 셈이었다. 낯선 방이었다. 그는 자기가 지금 어디서 잠들어 있는가를 아직 잠이 완전히 달아나지 않은 혼미한 의식 속에서 헤아려보았다. 그는 눈이 몹시 나쁜 사람이 안경도 없이.. 2023. 5. 12.
타인의 방 - 최인호 (창비) 창비 20세기 한국 소설 30 목차 최인호 타인의 방 깊고 푸른 밤 오탁번 굴뚝과 천장 한수산 타인의 얼굴 박범신 토끼와 잠수함 흰 소가 끄는 수레 ............................................ 최인호 - 타인의 방 (1971년) 그는 방금 거리에서 돌아왔다. 너무 피로해서 쓰러져버릴 것 같았다. 그는 아파트 계단을 천천히 올라서 자기 방까지 왔다. 그는 운수좋게도 방까지 오는 동안 아무도 만나지 못했고 아파트 복도에도 사람은 없었다. 어디선가 시금치 끓이는 냄새가 나고 있었다. 그는 방문을 더듬어 문 앞에 프레스라고 씌어진 신문 투입구 안쪽의 초인종을 가볍게 두어 번 눌렀다. 그리고 이미 갈라진 혓바닥에 아린 감각만을 주어오던 담배꽁초를 잘 닦아 반들거리는 복도에 던져.. 2023. 5. 12.
새벽 출정 - 방현석 (한국헤르만헤세) 큰 한국문학 413 (86) 방현석 새벽 출정 최시한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 움딸 .................................................. 방현석 - 새벽 출정 (1991년) 오늘 아침 윤희가 떠났다. 새벽어둠이 걷히지 않은 농성장을 떠나는 그녀의 양손에는 짐 가방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졸업식 하고 나서 바로 돌아올게요." 몇 번째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윤희의 얼굴은 어두웠다. "그전에라도 싸움 끝나면 곧장 달려와야 해. 우린 꼭 승리할거야." 미정은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 후반 규찰을 맡은 남자 조합원 하나가 수위실에서 나왔다. 가방을 들고선 윤희와 양쪽의 미정, 민영을 번갈아 쳐다보고는 철문을 열었다. "나가는 거야?" 윤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떨구었다. 잘 가,.. 2023. 5. 11.
움딸 - 최시한 (한국헤르만헤세) 큰 한국문학 413 (86) 방현석 새벽 출정 최시한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 움딸 .................................................. 최시한 - 움딸 그는 대합실의 활짝 열린 문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물밀 듯이 오가는 인도 너머로 차들이 또 줄지어 오갔다. 낯선 경상도 사투리가 먹먹한 그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새벽참에 떠났는데도 어느덧 열두 시가 가까웠다. 무언가 좀 먹어 두어야 했다. 대합실 구석의 간이식당 앞에서 젊은이 서넛이 선 채로 국수를 먹고 있었다. 무럭무럭 솟는 김 속에 얼굴을 박고 국수를 입에 퍼 넣다시피 하였다. 저런 나이에는 어디서 무얼 먹어도 탈이 없었다. 튼튼한 위장, 많은 시간, 그리고 타오르는 야심, 경솔한 야심. 그에게는 음식.. 2023. 5. 11.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 - 최시한 (한국헤르만헤세) 큰 한국문학 413 (86) 방현석 새벽 출정 최시한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 움딸 .................................................. 최시한 -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 (1996년) 7월 1일 남들은 즐겁게 사는데 나만 그러지 못한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럴 만한 뾰족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으니, 어디 심하게 아프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나는 그렇다 치고, 똑같은 노릇을 날마다 되풀이하면서 다들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모르겠다. 좌우간 즐거운 사람들 때문에 시끄럽다. 거리와 차 속을 가득 채운 유행가, 아무 데서나 터지는 방정맞은 웃음소리, 기름진 음식들을 우적우적 씹는 소리, 삼삼칠 박수 소리, 와아 하는 함성, 함성, 우우우, 너는 왜 즐거운 표정을 안 짓는 거지? -.. 2023. 5. 10.
표본실의 청개구리 - 염상섭 (삼성출판사) 삼성 주니어 문학 목차 김동인 배따라기 감자 광홧 염상섭 표본실의 청개구리 전화 이광수 소년의 비애 무명 ................................................ 염상섭 - 표본실의 청개구리 (1921년) 무거운 기분의 침체와 한없이 늘어진 생의 권태는 나가지 않는 나의 발길을 남포까지 끌어왔다. 귀성한 후 칠팔 개삭간의 불규칙한 생활은 나의 전신을 해면같이 짓두들겨 놓았을 뿐아니라 나의 혼백까지 두식하였다. 나의 몸은 어디를 두드리든지 알코올과 니코틴의 독취를 내뿜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피로하였다. 거두나 6-7월 성하를 지내고 겹옷 입을 때가 되어서는 절기가 급변하여 갈수록 몸을 추스르기가 겨워서 동네 산보에도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친구와 이야기 하려면 두세 마디째부.. 2023. 5. 10.
중용 (한길사) 대산 중용 강의 제1장 天命之謂性이요 率性之謂道요 修道之謂敎니라.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 하늘이 명하신 것을 성(性)이라 이르고, 성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 이르고, 도를 닦음을 교(敎)라 이른다. 道也者는 不可須臾離也니 可離면 非道也라. 도야자 불가수유리야 가리 비도야 是故로 君子는 戒愼乎其所不賭하며 恐懼乎其所不聞이니라. 시고 군자 계신호기소불도 공구호기소불문 도라는 것은 가히 잠깐이라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니, 가히 떠나면 도가 아니니라. 이런 까닭으로 군자는 그 보이지 않는 바에 경계하고 삼가며, 그 듣지 않는 바에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느니라. 莫見乎隱하고 莫顯乎微니 故로 君子는 愼其獨也니라. 막현호은 막현호미 고 군자 신기독야 숨은 것보다 나타나는 것이 없으며 미미한 것보다 드러나는 것이 .. 2023. 5. 10.
숲속의 방 - 강석경 (한국헤르만헤세) 큰 한국문학 413 (83) 강석경 - 숲 속의 방 (1985년) 어제도 동생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틀 연이어 무단 외박을 한 셈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럴 경우엔 친구를 시켜 전화를 걸고, 어머니는 친구 집 전화번호를 묻는 것으로 허락을 표시했는데 그 아이는 휴학을 공표한 뒤로는 제멋대로 외박할 뿐 아니라 아버지에게 발길질을 당해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등 계속 우리를 놀라게 했다. 소양의 입에서 휴학했노라는 말이 처음 나왔을 때 정말이지 우리는 충격을 받았다. 한 달 전 일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소양이가 이 학기 등록금을 내러 간 날이었다. 그날 아침부터 등허리가 후끈거릴 정도로 무더웠는데 소양은 밤 열한 시 가까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아래층에선 모두 잠들었는지 초인종이 세 번 울려도 기척.. 2023. 5. 7.
논 이야기 - 채만식 (글누림) 글누림 한국문한전집 5 목차 태평천하 레디메이드 인생 치숙 논 이야기 낙조 작가 연보 작품 해설 ................................................. 채만식 - 논 이야기 (1946년) 일인들이 토지와 그 밖에 온갖 재산을 죄다 그대로 내어놓고, 보따리 하나에 몸만 쫓기어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한생원은 어깨가 우쭐하였다. "거 보슈 송생원, 인전 들, 내 생각 나시지?" 한생원은 허연 탑삭부리에 묻힌 쪼글쪼글한 얼굴이 위아래 다섯 대밖에 안 남은 누-런 이빨과 함께 흐물흐물 웃는다. "그러면 그렇지, 글쎄 놈들이 제아무리 영악하기로소니 논에다 네 귀탱이 말뚝 박구섬 인도깨비처럼, 어여차 어여차, 땅을 떠가지구 갈 재주야 있을 이치가 있나요?" 한생원은 참으로 일본.. 2023. 5. 7.
치숙 - 채만식 (글누림) 글누림 한국문한전집 5 목차 간행사 태평천하 레디메이드 인생 치숙 논 이야기 낙조 작가 연보 작품 해설 ................................................. 채만식 - 치숙 (1938년) 우리 아저씨 말이지요? 아따 저 거시키, 한참 당년에 무엇이냐 그놈의 것, 사회주의라더냐 막덕이라더냐, 그걸 하다 징역 살고 나와서 폐병으로 시방 앓고 누웠는 우리 오촌 고모부 그 양반.... 뭐, 말두 마시오. 대체 사람이 어쩌면 글세....내 원! 신세 간데없지요. 자, 십 년 적공, 대학교까지 공부한 것 풀어 먹지도 못했지요. 좋은 청춘 어영부영 다 보냈지요. 신분에는 전과자라는 붉은 도장 찍혔지요. 몸에는 몸쓸 병까지 들었지요. 이 신세를 해가지굴랑은 굴속 같은 오두막집 단칸 .. 2023. 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