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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 한국 문학/2. 소설

치숙 - 채만식 (글누림)

by handaikhan 2023. 5. 6.

글누림 한국문한전집 5

 

목차
간행사

태평천하
레디메이드 인생
치숙
논 이야기
낙조

작가 연보
작품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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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 - 치숙 (1938년)

 

우리 아저씨 말이지요? 아따 저 거시키, 한참 당년에 무엇이냐 그놈의 것, 사회주의라더냐 막덕이라더냐, 그걸 하다 징역 살고 나와서 폐병으로 시방 앓고 누웠는 우리 오촌 고모부 그 양반....

뭐, 말두 마시오. 대체 사람이 어쩌면 글세....내 원!

신세 간데없지요.

자, 십 년 적공, 대학교까지 공부한 것 풀어 먹지도 못했지요. 좋은 청춘 어영부영 다 보냈지요. 신분에는 전과자라는 붉은 도장 찍혔지요. 몸에는 몸쓸 병까지 들었지요.

이 신세를 해가지굴랑은 굴속 같은 오두막집 단칸 셋방 구석에서 사시장철 밤이나 낮이나 눈 따악 감고 드러누웠군요.

재산이 어디 집 터전인들 있을 턱이 있나요. 서발막대 내저어야 짚검불 하나 걸리는 것 없는 철빈인데.

우리 아주머니가, 그래도 그 아주머니가, 어질고 얌전해서 그 알량한 남편 양반 받드느라 삯바느질이야 남의 집 품빨래야 화장품 장사야, 그 칙살스런 벌이를 해다가 겨우겨우 목구멍에 풀칠을 하지요.

어디루 대나 그 양반은 죽는 게 두루 좋은 일인데 죽지도 아니해요.

우리 아주머니가 불쌍해요. 아, 진작 한 나이라도 젊어서 팔자를 고치는 게 아니라, 무슨 놈의 우난 후분을 바라고 있다가 끝끝내 고생을 하는지.

근 이십 년 소박을 당했지요.

이십년을 설운 청춘 한숨으로 보내고서 다 늦게야 송장 여대치게 생긴 그 양반을 그래도 남편이라고 모셔다가는 병 수발 들랴, 먹고 살랴, 애자진하고 다니는 걸 보면 참마 가엾어요.

그게 무슨 죄다짐이람? 팔자 팔자 하지만 왜 팔자를 고치지를 못하고서 그래요. 우리 죄선 구식 부인네들은 다 문명을 못 하고 깨지를 못해서 그러지.

그 양반이 한시바삐 죽기나 했으면 우리 아주머니는 차라리 신세 편하리다. (p.293-294)

 

"네가 말하는 세상 물정하구 내가 말하려는 세상 물정하구 내용이 다르기도 하지만, 세상 물정이란 건 그야말로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네?"

"사람이란 건 제아무리 날구 뛰어도 이 세상에 형적 없이 그러나 세차게 주욱 흘러가는 힘, 그게 말하자면 세상 물정이겠는데, 결국 그것의 지배하에서 그것을 따라가지 별수가 없는 거다."

"네?"

"쉽게 말하면 계획이나 기회를 아무리 억지로 만들어 놓아도 결과가 뜻대루는 안 된단 말이다."

"젠장, 아저씨두....요전 <킹구>라는 잡지에두 보니까, 나뽀레옹이라는 서양 영웅이 그랬답디다. 기회는 제가 만든다구. 그리고 불가능이란 말은 바보의 사전에서나 찾을 글자라구요. 아 자꾸자꾸 계획하구 기회를 만들구 해서 분투 노력해 나가면 이 세상 일 안 되는 일이 어디 있나요? 한번 실패하거든 갑절 용기를 내가지구 다시 일어서지요. 철전팔기 모르시요?"

"나폴레옹도 세상 물정에 순응할 때는 성공했어도, 그것에 거슬리다가 실패를 했더란다. 너는 칠전팔기해서 성공한 몇 사람만 보았지, 여덟 번 일어섰다가 아홉 번째 가서 영영 쓰러지구는 다시 일지 못한 숱한 사람이 있는 건 모르는구나?"

"그래두 인제 두구 보시우. 나는 천하 없어두 성공하구 말 테니...아저씨는 그래서 더구나 못써요? 일 해보기두 전에 안 될 줄로 낙심 먼저 하구...."

"하늘은 꼭 올라가 보구래야만 높은 줄 아니?"

원 마지막 가서는 할 소리가 없으니깐 동에도 닿지 않는 비유를 가져다 둘러대는 걸 보아요. .그게 어디 당한 말인고? 안 올라가 보면 머 하늘 높은 줄 모를 천하 멍텅구리도 있을까? 그만 해두려다가 심심하길래 또 말을 시켰지요. (p.311-312)

 

사람 속 차릴 여망 없어요. 그저 어디로 대나 손톱만큼도 쓸모는 없고 남한테 시폐만 끼치고, 세상에 해독만 끼칠 사람이니, 뭐 하루바삐 죽어야 해요. 죽어야 하고, 또 죽어서 마땅해요. 그런데 글쎄 죽지를 않고 꼼지락꼼지락 도로 살아나니 성화라구는, 내.......(p.315)

 

<절난 사람들>, 민중서관,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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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蔡萬植, 1902년 7월 21일 ~ 1950년 6월 11일)

일제강점기 소설가. 극작가·친일반민족행위자.

1902년 전라북도 옥구에서 출생했다. 유년기에는 서당에서 한문을 수학했고, 임피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18년 상경하여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 1922년 졸업했다. 그해 일본에 건너가 와세다대학 부속 제일와세다고등학원에 입학했으나, 1923년 중퇴했다.
그 뒤 조선일보사 · 동아일보사 · 개벽사 등의 기자로 전전했다. 1936년 이후는 직장을 가지지 않고 창작 생활만을 했다. 1945년 임피로 낙향했다가 다음해 이리로 옮겨 1950년 그곳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1924년 단편 「새길로」를 『조선문단』에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한 뒤 290여 편에 이르는 장편 · 단편소설과 희곡 · 평론 · 수필을 썼다. 특히 1930년대에 많은 작품을 발표했으며,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것들도 이 시기에 발표되었다.
장편으로는 「인형의 집을 나와서」(1933) · 「탁류 濁流」(1937) · 「천하태평춘 天下太平春」(1938. 1948년 동지사(同志社)에서 단행본으로 출판될 때 ‘태평천하(太平天下)’로 개제) · 「금(金)의 정열」(1939) · 「아름다운 새벽」(1942) · 「어머니」(1943) · 「여인전기」(1944) 등이 있으며, 단편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레디메이드 인생」(1934) · 「치숙 痴叔」(1938) · 「패배자의 무덤」(1939) · 「맹순사」(1946) · 「미스터 방(方)」(1946) 등을 들 수 있다. 희곡으로는 「제향날」(1937) · 「당랑(螳螂)의 전설」(1940) 등이 대표적이다.

그의 작품 세계는 당시의 현실 반영과 비판에 집중되었다. 식민지 상황 아래에서 농민의 궁핍, 지식인의 고뇌, 도시 하층민의 몰락, 광복 후의 혼란상 등을 실감나게 그리면서 그 근저에 놓여 있는 역사적 · 사회적 상황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작품 기법에 있어 매우 다양한 시도를 했는데, 특히 풍자적 수법에서 큰 수확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1942년 조선문인협회가 주관한 순국영령방문행사에 참석하고, 그 결과로 『춘추』 등에 발표한 산문과 1943∼1944년에 『 매일신보』 등에 발표한 산문과 소설을 통해 징병, 지원병을 선전, 선동했다.
또한 1943∼1944년에 국민총력조선연맹이 주관하는 예술부문 관계자 연성회 , 보도특별정신대, 생산지 증산 위문 파견 등 친일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채만식의 이상과 같은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1 · 13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17: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602∼639)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


1960년대 말까지는 그에 대한 연구가 드물었으나 1970년대에 들어와 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연구 업적도 급격히 많아졌다. 1970년대에는 중편소설 「소년은 자란다」 · 「과도기」, 희곡 「가죽버선」 등을 비롯한 많은 유작들이 발굴, 공개되기도 했다.
그 자신이 쓴 「자작안내 自作案內」(靑色紙 5호, 1939)는 그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그의 작품은 『채만식전집』(創作과 批評社, 1989)에 모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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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메이드 인생 - 채만식 (문학과지성사)

레디메이드 인생 - 채만식 (애플북스)

레디메이드 인생 - 채만식 (열림원)

채만식 선집 (현대문학)

태평천하 -채만식 (민음사)

탁류 - 채만식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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