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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 한국 문학/2. 소설

타인의 방 - 최인호 (창비)

by handaikhan 2023. 5. 12.

창비 20세기 한국 소설 30

 

목차

최인호
타인의 방
깊고 푸른 밤

오탁번
굴뚝과 천장

한수산
타인의 얼굴

박범신
토끼와 잠수함
흰 소가 끄는 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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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 - 타인의 방 (1971년)

 

그는 방금 거리에서 돌아왔다. 너무 피로해서 쓰러져버릴 것 같았다. 그는 아파트 계단을 천천히 올라서 자기 방까지 왔다. 그는 운수좋게도 방까지 오는 동안 아무도 만나지 못했고 아파트 복도에도 사람은 없었다. 어디선가 시금치 끓이는 냄새가 나고 있었다. 그는 방문을 더듬어 문 앞에 프레스라고 씌어진 신문 투입구 안쪽의 초인종을 가볍게 두어 번 눌렀다. 그리고 이미 갈라진 혓바닥에 아린 감각만을 주어오던 담배꽁초를 잘 닦아 반들거리는 복도에 던져버렸다. 그는 아주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아내가 문을 열어주기를. 문을 열고 다소 호들갑을 떨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기를 맞아주기를. 그러나 귀를 기울이고 마지막 남은 담배에 불을 당기었는데도 안쪽에서는 소식이 없었다. 그는 다시 그 작은 철제 아가리 속에 손을 넣어 탄력감 있는 초인종을 신경질적으로 누르기 시작했다. 손끝에 가벼운 경련이 일었다. 그리고 그는 또 기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는 초인종이 고장 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그러나 그가 초인종을 누를 때마다 아득한 저쪽에서 희미한 소리가 반향되어 오는 것을 꿈결처럼 듣고 있었기 때문에, 필시 그의 아내가 지금쯤 혼자서 술이나 먹고, 그러고는 발거벗은 채 곯아떨어졌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p.13-14)

 

"사실은 말입니다."

그는 방귀를 뀌다 들킨 사람처럼 무안해하면서 주머니를 뒤져 열쇠 꾸러미를 꺼냈따. 그리고 그는 익숙하게 짤랑이는 대여섯 개의 열쇠 중에서 아파트 열쇠를 손의 감촉만으로 잡아 들었다.

"전 이 집의 주인입니다."

"뭐라구요?"

여인이 의심스럽게 그를 노려보면서 높은 음을 발했다.

"당신이 그 집 주인이라구요?"

"그런데요."

나는 대답하였다. 그러자 여인은 고개를 갸웃뚱거렸다.

"아니 뭐 의심나는 것이라도 있습니까?"

"여보시오."

아무래도 사내가 확인을 해야 마음 놓겠다는 듯 다가왔다. 사내는 키가 굉장히 큰 거인이었으므로 그는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우리는 이 아파트에 거의 삼 년 동안 살아왔지만 당신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소."

"아니 뭐라구요?"

그는 튀어 오를 듯한 분노 속에서 신음소리를 발했다.

"당신이 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해서 그래 이 집 주인을 당신 멋대로 도둑놈이나 강도로 취급한다는 말입니까? 나두 이 집에서 삼 년을 살아왔소. 그런데두 당신 얼굴은 오른 처음 보오. 그렇다면 당신도 마땅히 의심받아야 할 사람이 아니겠소?

그는 화가 나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p.16)

 

그의 목소리는 목욕탕 안에서 웅장하였다. 온 방이 쩡쩡거리고, 소리가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으므로 종소리처럼 욕실을 맴돌았다. 그는 휘파람도 후이휘 불기 시작했다.

역시 집이란 즐겁고 아늑한 곳이군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무심코 중얼거렸지만 그는 순간 그 소리를 타인의 소리처럼 느꼈으며 그래서 놀란 나머지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꼈다. 그러나 개의치 않기로 하였다. (p.21)

 

그는 웃으면서 스푼을 젓는다. 그때였다. 그는 무슨 소리를 들었다. 공기를 휘젓고 가볍게 이동하는 발소리였다. 그는 귀를 기울였다. 그는 욕실 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것을 눈치 챘다. 그는 난폭하게 일어나서 욕실 쪽으로 걸었다. 그는 분명히 잠근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제기랄. 그는 투덜거리면서 물을 잠근다. 그리고 다시 소파로 되돌아온다. 그러자 이번엔 부엌 쪽에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는 될 수 있는 한 불평을 하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부엌 쪽으로 간다. 부엌 석유풍로가 불붙고 있다. 그는 재떨이에 생담배가 불이 붙여진 채 타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는 반사적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그는 엄청난 고독감을 느낀다.

"누구요?"

그는 조심스럽게 소리를 지른다. 그의 목소리는 진폭이 짧게 차단된다. 그는 갇혀 있음을 의식한다. 벽 사이의 눈을 의식한다. 그는 사납게 소파에 누워, 시선에 닿는 가구들을 노려보기 시작한다. 모든 가구들이 비 온 후 한결 밝아오는 나뭇잎처럼 밝은 색조를 띠고 빛나기 시작한다. 그는 스푼을 집요하게 젓는다. 설탕물은 이미 당분을 포함하고 뜨겁게 달아 있으나 설탕은 포화상태를 넘어 아직 풀리지 않고 있다. 그래도 그는 계속 스푼을 젓는다. 갑자기 그는 그의 손에 쥐어진 손잡이가 긴 스푼이 여느 스푼이 아님을 느낀다. 그러자 스푼이 그의 의식의 녹을 벗기고, 눈에 보이는 상태 밖에서 수면을 향해 비상하는, 비늘 번뜩이는 물고기처럼 튀어 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는 힘을 다해 스푼을 쥔다. 그러자 스푼은 산 생선을 만질 때 느껴지는 뿌듯한 생명감과 안간힘의 요동으로 충만된다. 그리고 손아귀에 쥐어진 스푼은 손가락 사이를 민첩하게 빠져나간다. 그는 잠시 놀란 나머지 입을 벌린 채 스푼이 허공을 날면서 중력 없이 둥둥 떠서 흐르는 것을 보았다. 그는 온 방 안의 물건을 자세히 보리라고 다짐하고는 눈을 부릅뜬다. 그러자 그의 의식이 닿는 물건들마다 일제히 흔들거리면서 흥을 돋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는 비틀거리면서 일어나 거실에 스위치를 넣으려고 걷는다. 그는 스위치를 넣는다. 형광등의 꼬마전구가 번쩍번쩍거리며 몇 번씩 반추한다. 그러다가 불쑥 방 안이 밝아온다.

그는 스푼이 담수어처럼 얌전하게 손아귀 속에 쥐여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는 조심스럽게 온 방 안의 물건들을, 조금 전까지 흔들리고 튀어 오르고 덜컹이던 물건들을 하나하나 훑어보기 시작한다.

물건들은 놀랍게도 뻔뻔스러운 낯짝으로 제자리에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비애를 느낀다. 무사무사의 안이 속에서 그러나 비웃으며 물건들은 정좌해 있다. 그는 투덜거리면서 스위치를 내린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단 설탕물을 마시기 시작한다. 방 안 어두운 구석구석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둠과 어둠이 결탁하고 역적모의를 논의한다. 친구여, 우리 같이 얘기합시다. 방 모퉁이 직각의 앵글 속에서 한 놈이 용감하게 말을 걸어온다. ㅂㄱ면을 기는 다족류 벌레의 발소리가 들려온다. 옷장의 거울과 화장대의 거울이 투명한 교미를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는 어둠 속에서 눈을 부릅뜬다. 벽이 출렁거린다. 그는 천천히 몸을 움직인다. 방 벽면 전기다리미 꽂는 소켓의 두 구멍 사이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친구여, 귀를 좀 대봐요. 내 비밀을 들려줄게. 그는 그의 오른쪽 귀를 소켓에 밀착한다. 그의 귀가 전기 금속 부품처럼 소켓의 좁은 구멍에 접촉된다. 그러자 그의 온몸이 고급 전기난로처럼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그의 몸에 스파크가 일고, 그는 온 몸에 충만한 빛을 느낀다.

잘 들어요. 소켓이 속삭인다. 마치 트랜지스터 이어폰을 꽂은 것처럼 그의 목소리는 귓가에만 사근거린다. 오늘 밤 중대한 쿠데타가 있을 거예요. 겁나지 않으세요?

그는 소켓에서 귀를 뗀다. 그리고 맹렬한 기세로 다시 스위치를 올린다. 불이 들어오면 이 모든 술렁임이 도료처럼 벽면에 밀착하고 모든 것은 치사하게도 시치미를 떼고 있다. 그는 불을 켠 채 화장대로 다가간다. 그는 투덜거리면서 키가 크고 낮은 모든 화장품을 열어 검사한다. 그리고 찬장을 열어 그 안에 가지런히 빈 그릇들, 천양통, 촛대, 옷장을 열어 말리는 바다 생선처럼 걸린 옷들, 그리고 그들의 주머니도 검사한다. 그러다가 이미 건조하여 건드리기만 해도 부서질 듯한 낙엽 몇 장을 발견한다. 그것은 그에게 지난 가을을 생각나게 했고 그는 잠시 우울해졌다. 그는 사진틀 속의 퇴식한 사진도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책장에 꽂힌 뚜껑 씌운 책들도 관찰하였다. 그는 부엌으로 가서 석유풍로의 심지도 관찰하고, 낡은 구두 속도 들여다보았다. 다락문을 열어 갖가지 물건도 하나하나 세밀히 보았고 욕실에서 그는 욕조 밑바닥까지 관찰하였다. 덮개가 있는 것은 그 내용물을 검사하였으며 침대도 들어서 털어도 보았다. 심지어 변기도 들여다보았고, 창틈 사이도 들여다보았다. 물건들은 잘 참고 세금 잘 무는 국민처럼 얌전하게 그의 요구에 응해주었다. 그러나 그가 들여다보는 물건은 본래 에사의 물건은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어제의 물건이 아니었다.

그는 한층 더 깊은 피로를 느끼면서 거실로 돌아와 술병의 술을 잔에 가득히 부어 단숨에 들이마셨다. 그러자 그는 아주 쓸쓸하고 허무 맹랑한 고독감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한 잔을 그득히 부어 연거푸 단숨에 들이마셨다. 술맛은 짜고도 싱겁고, 달고도 썼다. (p.25-28)

 

그가 스위치를 내리자, 벽에 도료처럼 붙었던 어둠이 차곡차곡 잠겨서 덤벼들고 그들은 이윽고 조심스럽게 수군거리더니 마침내 배짱 좋게 깔깔거리고 있었다. 말린 휴지조각이 배포처럼 늘여져 허공을 난다. 닫힌 서랍 속에서 내의가 펄펄 뛰고 있다. 책상을 받친 네 개의 다리가 흔들거리기 시작한다. 찬장 속에서 그릇들이 어깨를 이고 달그럭거리며 쟁그렁거리면서 모반을 시작한다.

그것은 그래도 처음엔 조심스럽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대상이 무방비인 것을 알자, 일제히 한꺼번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날뛰기 시작했다. 크레용들이 허공을 난다. 옷장 속의 옷들이 펄럭이면서 춤을 춘다. 혁대가 물뱀처럼 꿈틀거린다. 용감한 녀석들은 감히 다가와 그의 얼굴을 슬쩍슬쩍 건드려보기도 하였다. 조심해, 조심해. 성냥갑 속에서 성냥개비가 중얼거린다. 꽃병에 꽂힌 마른 꽃송이가 다리를 번쩍번쩍 들어 올리면서 춤을 춘다. 내의가 들여다보인다. 벽이 서서히 다가와서 눈을 두어 번 꿈쩍거리다가는 천천히 물러서곤 하였다. 트랜지스터가 안테나를 세우고 도립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재떨이가 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소켓 부분에선 노래가 흘러나온다. 낙숫물이 신기해서 신을 받쳐 들던 어릴 때의 기억처럼 그는 자그마한 우산을 펴고 화환처럼 황홀한 그의 우주 속으로 뛰어든 셈이었다. 그는 공범자가 되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그때였다. 그는 서서히 다리 부분이 경직되어 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우연히 느낀 것이었다. 처음에 그는 이 방에서 도망가리라 생각했었기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소리를 내지 않고 살금살금 움직이리라고 마음먹고 천천히 몸을 움직이려 했을때였다. 그러자 그는 다리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손을 내려 다리를 만져보았는데 다리는 이미 굳어 석고처럼 딱딱하고 감촉이 없었으므로 별수 없이 손에 힘을 주어 기어서라도 스위치 있는 쪽으로 가리라고 결심했다. 그는 손을 뻗쳐 무거워진 다리, 그리고 더욱더 굳어져오는 다리를 끌고 스위치 있는 곳까지 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그는 채 못 미쳐 이미 온몸이 굳어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그는 숫제 체념해버렸다. 참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조용히 다리를 모으고 직립하였다. 그는 마치 부활하는 것처럼 보였다. (p.29-30)

 

 

다음다음 날 오후쯤 한 여인이 이 방에 들어왔다. 그녀는 방 안에 누군가가 침입한 흔적을 발견했다. 매우 놀라서 경찰을 부를까고도 생각했지만, 놀란 가슴을 누르며 온 방 안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는데 틀림없이 그녀가 없는 새에 누군가가 들어온 것은 사실이긴 했지만 자세히 구석구석 살펴본 후에 잃어버린 것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자. 안심해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곧 잃어버린 것이 없는 대신 새로운 물건 하나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물건은 그녀가 매우 좋아했던 것이었으므로 며칠 동안은 먼지도 털고 좀 뭣하긴 하지만 키스도 하긴 했다. 하지만 나중엔 별 소용이 닿지 않는 물건임을 알아차렸고 싫증이 났으므로 그 물건을 다락 잡동사니 속에 처넣어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그 방을 떠나기로 작정을 했다. 그래서 그녀는 메모지를 찢어 달필로 다음과 같이 써서 화장대 위에 놓았다.

 

여보. 오늘 아침 전보가 왔는데 친정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거예요. 잠깐 다녀오겠어요. 당신은 피로하실 테니 제가 출장 갔다고 할 테니까 오시지 않으셔두 돼요. 밥은 부엌에 차려놨어요.

당신의 아내가. (p.30-31)

 

<문학과지성> 3호 (1971년 봄)

<최인호 중단편 소설전집> 1권 (문학동네 2002)

 

<작품 해설>

1. <타인의 방>을 '도시 소설'로 분류할 수 있다면, 그건 이 작품이 급격한 산업화가 불러온 도시 속 인간소외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산업화가 불러온 병폐가 노골화된 공간이 '도시'이며, 또 내면을 가진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가치가 절하되고 물화되는 공간이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이 전개되는 공간이 '아파트'인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도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공간이 바로 '아파트'이며, '아파트'는 같은 복도에서 3년 동안 살면서도 서로 얼굴을 대면할 수 없을 만큼 비인간적인 현실을 말해줄 수 있는 적절한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이웃이지만 서로를 위협하는 존재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며, 그래서 그들은 그들만의 작은 공간에 유폐되고 고립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컨대, '아파트'는 도시 속의 현대인이 사물화 되어가는 현상을 보여줄 수 있는 적절한 공간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농촌'을 배경으로 했다고 곧 '농촌 소설' 혹은 '농민 소설'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재나 배경이 '도시'라는 이유만으로 '도시 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2. <타인의 방>의 주인공인 '그'는 아파트의 방 안에서 극심한 고독감과 고립감에 사로잡히고, 급기야 자신을 '가구 같은 정물'로 느끼게 됩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방 안의 사물들에게 생명력과 활력을 느끼죠. 극심한 고립감이 활력 넘치는 사물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은 감정을 불러온다고 할 수 있는데, 그 결정적 계기는 아내가 남긴 거짓 편지입니다. 모든 것이 허위일 뿐인 세계에서 아내와도 감정이나 내면을 나누지 못했음 확인하면서 '그'는 인간의 세계에서 사물의 세계로 이주해 가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사물의 세계로 자발적으로 투신하는데, 이 과정에서 '그'는 사물과 다름없는 인간에게 '사물' 자체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사물의 세계가 오히려 활력이 넘치는 곳이라고 여긴다는 점에서 '그'는 사물 자체가 됨으로써 오히려 인간일 때 상실한 활기와 생명력을 얻는 것입니다. 스스로 '부활하는 것처럼' 여긴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이 행위는 인간과 사물의 가치가 전도된 상황에 대한 비판의 의미를 띠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이라는 말 자체의 의미에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굳이 의미 맥락을 따져본다면, 이 '부활'은 '재탄생' 혹은 '새로운 발견'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아무리 존재감이 없는 '그'는 오히려 유기체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사물이 되면서 '재탄생'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아내가 발견한 물건은 당연하게도 남편입니다. 아내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를 잃어버린 시점부터 이미 '그'는 하나의 사물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새삼스럽게 '그'가 자신의 존재감을 사물로 인식했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는 셈입니다. 이때 '그'가 실제로 '정물'이 되었는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작가는 인간이 온기를 가진 존재로 다루어지지 않는 현실을 문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3. <타인의 방>은 도시의 ㅎ녀대인이 독자적 의미와 개성을 상실하고 익명적 존재가 되거나 스스로에게도 낯선 존재가 되어가는 현실을 감각적으로 포착한 작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에서 인물들은 오히려 뚜렷한 성격을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특징화되어 있습니다. 다만 존재의 의미가 무화되는 사물화 현상에 대해 남편과 아내가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남편이 '사물'과 다름없는 존재가 된 자신을 받아들이는 반면, 아내는 사물의 세계인 '방'을 떠나는 방식으로 사물화 현상에 대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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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崔仁浩, 1945년 10월 17일~2013년 9월 25일)

대한민국의 소설가.

1945년 10월 서울에서 변호사였던 아버지 최태원과 어머니 손복녀의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가족을 따라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1953년 서울로 돌아와 이후로는 계속 서울에서 살았다. 1958년 덕수국민학교(현 덕수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중학교와 서울고등학교를 거쳐 1972년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60년대 말 이후 1970년대에는 청년적인 감수성으로 현대사회의 모순을 우의적으로 드러내는 독특한 주제의 소설로 주목받았으나, 다수의 대중소설을 통해 ‘호스티스 작가’, ‘퇴폐주의 작가’라는 비판을 듣기도 하였다. 1974년에는 세계 14개국 여행을 다녀왔으며, 1975년 이후에는 시나리오를 쓰거나 감독을 하는 등 영화 관련 활동도 병행하였다. 1980년대 이후 2000년대에는 여러 장편역사소설을 통해 대중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이 시기 발표된 많은 소설이 영화 또는 TV드라마로 각색되었다. 1993년과 1994년에는 역사장편소설의 취재를 위해 일본과 중국 여행을 다녀왔다. 1975년 이후 월간잡지 『샘터』에 34년 6개월 동안 인기리에 연재한 연작 수필 「가족」은 최인호의 종교(가톨릭) 및 가족사와 연관된 사항을 잘 알려주는 작품이다. 2000년대에도 대중 작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던 중이었던 그는 2008년 침샘암이 발병한 이후 수년의 투병 끝에 2013년 9월에 운명하였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1963년 단편 「벽구멍으로」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였으며, 대학 재학 중이던 1967년에 단편 「견습환자」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문단에 데뷔하였다. 1970년대에는 「모범동화」(1970), 「타인의 방」(1971), 「전람회의 그림」(1971), 「무서운 복수」(1972), 「기묘한 직업」(1975) 등의 단편소설로 산업화 과정에서 현대인들이 겪는 정신 병리 현상을 기발한 착상과 우의적 서사 전개를 통해 드러냄으로써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별들의 고향』(1972), 『바보들의 행진』(1973), 『천국의 계단』(1978), 『불새』(1979), 『겨울나그네』(1984) 등의 장편소설로 대중적인 인기는 얻었으나 퇴폐주의 또는 상업주의 작가라는 비판을 들으면서 평단의 주목에서 멀어져갔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영화에도 관심을 가져 「걷지 말고 뛰어라」를 감독하였으며, 군부독재와 급격한 산업화에 시달리는 청년세대의 아픔을 희극적으로 다루는 「바보들의 행진」, 「병태와 영자」,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등의 시나리오를 써서 영화적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 1980년대 이후에는 종교나 역사를 다루는 장편소설에 주력하여 『잃어버린 왕국』(1984), 『왕도의 비밀(제왕의 문)』(1991), 『상도』(1997), 『해신』(2001), 『유림』(2005) 등의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많은 작품들이 TV 드라마로 각색되었다. 투병 중이던 2011년에는 장편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로 그동안의 대중적인 경향을 넘어 현대사회를 성찰하는 새로운 소설 창작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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