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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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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보랏빛 - 히구치 아치요 (유윤한 옮김, 궁리) 에디션 F 08 하구치 이치요 작품선 목차 섣달그믐・7 키 재기・31 흐린 강・101 열사흘밤・149 가는 구름・175 해질녘 보랏빛・195 달과 꽃과 먼지의 일기・201 옮긴이의 말・247 수록 작품의 원제명・256 히구치 이치요가 걸어온 길・257 .................................................... 노을 지는 가게 앞에 우체부가 던지고 간 우아한 필체의 편지 한 통. 아내는 고타쓰 방에 켜둔 램프 아래서 편지를 읽고는 둘둘 말아 오비 사이로 집어넣었다. 행동이 머뭇머뭇하고 걱정이 보통은 아닌 듯 절로 얼굴에 드러나니, 사람 좋은 남편이 "왜 그래?" 하고 물었다. "아니, 별일은 아닌 것 같지만 나카마치에 사는 언니가 무슨 걱정거리가 있나 봐요. '내가 가면.. 2023. 2. 10.
큰 바위 얼굴 - 너새니얼 호손 (이종인 옮김, 가지않은길) 호손 단편선 목차 목사의 검은 베일 7 결혼식장의 장례 종소리 37 큰 바위 얼굴 57 젊은 굿맨 브라운 95 반점 125 작품해설 163 연보 178 너새니얼 호손 - 큰 바위 얼굴 (1850년) 해가 넘어 가는 어느 오후, 한 어머니와 어린 아들이 통나무 집 앞에 앉아서 큰 바위 얼굴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모자가 눈을 들어 바라보면 몇 마일 떨어진 저 멀리에서 햇빛을 온 얼굴에 받고 있는 큰 바위 얼굴이 아주 뚜렷하게 보였다. 그런데 큰 바위 얼굴이란 무엇인가? 모자가 사는 곳은 높은 산들로 둘러싸인 아주 넓은 계곡 지대였으며, 수천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통나무 집에서 살았는데, 그들의 집 주위는 가파르고 험준한 산등성이가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또 울창한 숲으로 뒤덮여.. 2023. 2. 9.
요람기 - 오영수 (다림) 한빛문고 오영수 - 요람기 (1967년) 기차도 전기도 없었다. 라디오도 영화도 몰랐다. 그래도 소년은 고장 아이들과 함께 마냥 즐겁기만 했다. 봄이면 뻐꾸기 울음과 함께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고, 가을이면 단풍과 감이 풍성하게 익는, 물 맑고 바람 시원한 산골 마을이었다. 먼 산골짜기에 얼룩얼룩 눈이 녹기 시작하고 흙바람이 불어 오면, 양지 쪽에 몰려 앉아 해바라기를 하던 고장의 아이들은 들로 뛰쳐나가 불놀이를 시작했다. 잔디가 고운 개울둑이나 논밭 두렁에 불을 놓는 것을 아이들은 '들불놀이'라고 했다. 겨우내 움츠리고 무료에 지친 아이들에게, 아직도 바람끝이 매운 이른 봄, 이 들불놀이만큼 신명나는 장난도 없었다. 바람이 없는 날, 불꽃은 잘 보이지 않으면서도 마치 흡수지가 물을 빨듯 꺼멓게 번져 가는.. 2023. 2. 9.
오를라 - 모파상 (최정수 옮김, 생각의나무) 기담문학 고딕총서 8 모파상 - 오를라 (제1판) (1887년) 매우 저명하고 탁월한 정신과 의사인 마랑드 박사가 자연 과학을 연구하는 동료 셋과 학자 넷에게 자신이 운영하는 정신병원에 와서, 한 시간 정도 환자 하나를 좀 봐달라고 부탁했다. 친구들이 모두 모이자 박사는 말했다. "내가 지금껏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가장 기묘하고 염려스러운 환자를 여러분에게 보여드리겠습니다. 나는 그 환자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가 직접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박사가 초인종을 울리자 하인은 남자 한 명을 들여다보냈다. 환자는 무척 야위어 시체처럼 보일 정도였다. 온갖 공상에 시달리는 몇몇 광인들이 바싹 마른 것처럼, 병적인 생각은 열병이나 폐병보다 인간의 살을 더 많이 먹어치우는 법이다. (p.21.. 2023. 2. 8.
캣츠 - 엘리엇 (김승희 옮김, 문학세계사) 엘리엇 - 캣츠 고양이 이름 짓는 건 어려운 문제, 재미삼아 할 수 있는 쉬운 일이 아니지요. 처음 당신은 우릴 완전히 미쳤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고양에겐 반드시 ㅅ 가지 이름이 필요하답니다 우선 가족들이 평상시 부르는 이름 피터, 오거스터스, 알론조, 제임스 같은 것, 빅터, 조나단, 조지, 빌 베일리 같은 것 모두 그럴듯한 평상시 이름 더 환상적인 이름도 있지요, 당신이 더 달콤하게 들린다 생각하실 만한 신사분을 위한 것도 있고, 숙녀분을 위한 것도 있어요 플라토, 아드미터스, 엘렉트라, 데미터 같은 것 -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그럴듯한 평상시 이름 거듭 말씀드리지만, 고양이게겐 특별한 이름이 필요하답니다, 독특한 이름, 좀더 위엄있는 이름,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리 꼬리를 꼿꼿이 세울 수 있을까.. 2023. 2. 8.
무지개 - 워즈워스 (유종호 옮김, 민음사) 세계시인선 21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 설레느니, 나 어린 시절에 그러했고 다 자란 오늘에도 매한가지, 쉰 에순에도 그렇지 못하다면 차라리 죽음이 나으리라,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노니 나의 하루하루가 자연의 믿음에 매어지고자 My heart leaps up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 A rainbow in the sky: So was it when my life began So is it now I am a man ; So be it when I shall grow old, Or let me die !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 And I could wish my days to be Bound each to each by n.. 2023. 2. 8.
한시, 사랑 이야기 - 오석환 (한가람서원) 오석환 - 한시, 사랑 이야기 許楚姬 - 寄夫江舍讀書 비낀 처마에 제비는 들고 나며 쌍쌍이 날고 떨어지는 꽃 어지럽게 비단옷을 때리네. 동방에서 눈을 다하며 봄을 아파하는 뜻은 강남에 풀빛이 푸르건만 임이 돌아오지 않아서라네. 燕掠斜簷兩兩飛 (연략사첨양량비) 落花撩亂撲羅衣 (낙화요란박나의) 洞房極目傷春意 (동방극목상춘의) 草綠江南人未歸 (초록강남인미) 강남 별장에서 공부하는 남편에게 보낸 시이다. 공부를 하러 간다고 남편은 강남에 있는 별장에서 일 년을 보냈다. 다음 해 봄이 오자, 그녀는 멀리 강남을 향하여 눈을 다하고 그리운 임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임은 돌아올 줄 모르고 무정한 제비만 처마를 들고 나며 쌍쌍이 날고 있다. 깊은 규방에 틀어박혀 그녀는 임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데, 뜰.. 2023. 2. 7.
우리 곁의 한시 - 기태완 (다른) 기태완 - 우리 곁의 한시 그늘 속에서 그림자를 쉬게 하는 곳 - 전라남도 담양군 식영정 담양 식영정은 아주 작은 정자입니다. 앞면은 기둥이 세 개인 두 칸이고, 측면도 두 칸인 팔작지붕의 조촐한 건물인데 온돌방 하나와 마루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 조그만 정자가 에 창평의 대표적인 누정으로 소개되어 있는 것은 켤코 건물 때문이 아닐 것입니다. 당시 학문과 시문으로 유명했던 인사들은 이곳을 드나들며 교유했습니다. 에 실린 에 공자에게 은자인 어부가 충고하기를, "그늘 속에 들어가서 그림자를 쉬게한다 (處陰息影처음식영)"라고 했습니다. 식영정이라는 이름은 바로 여기서 가져온 것입니다. 세속 생활을 그만두고 물러나 한가롭게 지낸다는 뜻이지요. 식영정 주인은 석천 임억령입니다. 일찍 벼슬에 나가 승정원 승지와.. 2023. 2. 7.
사랑손님과 어머니 - 주요섭 (창비) 창비 20세기 한국문학 주요섭 - 사랑손님과 어머니 (1935년) 나는 금년 여섯 살 난 처녀애입니다. 내 이름은 박옥희이구요. 우리집 식구라구는 세상에서 제일 이쁜 우리 어머니와 단 두 식구뿐이랍니다. 아차 큰일 났군. 외삼촌을 빼놓을 뻔했으니. 지금 중학교에 다니는 외삼촌은 어디를 그렇게 싸돌아다니는지 집에는 끼니때나 외에는 별로 붙어 있지를 않으니까 어떤 때는 한 주일씩 가도 외삼춘 코빼기도 못 보는 때가 많으니까요. 깜빡 잊어버리기도 예사지요, 무얼. 우리 어머니는, 그야말로 세상에서 둘도 없이 곱게 생긴 우리 어머니는, 금년 나이 스물네 살인데 과부랍니다. 과부가 무엇인지 나는 잘 몰라도 하여튼 동리 사람들이 날더러 '과부 딸'이라고들 부르니까 우리 어머니가 과부인 줄을 알지요. 남들은 다 아버.. 2023. 2. 6.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이문열 (아침나라) 이문열 중단편집 4 이문열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1987년) 벌써 삼십 년ㄴ이 다 돼 가지만, 그해 봄에서 가을까지의 외롭고 힘들었던 싸움을 돌이켜 보면 언제나 그때처럼 막막하고 암담해진다. 어쩌면 그런 싸움이야말로 우리 살이(생)가 흔히 빠지게 되는 어떤 상태이고, 그래서 실은 아직도 내가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받게 되는 느낌인지도 모르겠다. 자유당 정권이 아직은 그 마지막 기승을 부리고 있던 그 해 삼 월 중순, 나는 그때껏 자랑스레 다니던 서울의 명문 초등학교를 떠나 한 작은 읍의 별로 볼 것 없는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공무원이었다가 바람을 맞아 거기까지 날려간 아버지를 따라 가족 모두가 이사를 가게된 까닭이었는데, 그때 나는 열두 살에 갓 올라간 5학년이었다. (p.11.. 2023. 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