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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1. 서양 - 고전 소설97

80일간의 세계 일주 - 쥘 베른 (유영 옮김, 인디북) 쥘 베른 - 80일간의 세계 일주 (1873년) 1872년, 벌링턴 가든스의 새빌로 가 7번지에는 필리어스 포그 경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 집에선 한때 셰리던이 살았는데, 그는 1814년에 죽었다. 필리어스 포그는 일부러 세간의 관심을 끄는 일 따위는 절대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런던의 리폼클럽에서 가장 독특하고 주목받는 회원이었다. 필리어스 포그, 이 수수께끼 같은 인물은 영국이 자랑하는 가장 위대한 연설가 셰리던의 뒤를 이어 이 집에 살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가 매우 정중하며 영국 상류 사회에서도 가장 멋진 신사라는 것 이외에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p.7) .......................................................... 2023. 11. 25.
사라진 - 오노레 드 발자크 (선영아 옮김, 민음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0 발자크 - 사라진 (1830년) 나는 가장 떠들썩한 연회 한복판에서 모든 사람을, 심지어 경박한 사람마저 사로잡는 깊은 몽상 중 하나에 잠겨 있었다. 엘리제 부르봉궁의 괘종시계가 막 자정을 알렸다. 창틀에 걸터앉아 물결무늬 커튼의 일렁이는 주름 사이에 몸을 숨긴 채 나는 내가 저녁나절을 보내는 저택의 정원을 느긋이 감상할 수 있었다. 눈에 다 덮이지 않은 나무들이 어스름한 달빛 아래 흐린 하늘이 만들어 낸 회색빛을 배경으로 희끄무레한 윤곽을 드러냈다. 이런 환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보자니 나무들은 엉성하게 수의를 걸친 유령들, 저 유명한 죽은 자들의 춤의 거대한 이미지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었다. 그러다가 반대편으로 몸을 돌리면 산 자들의 춤! 은색 금색의 벽과 눈부신 샹들리에.. 2023. 11. 15.
유령의 선물 - 찰스 디킨스 (정은미 옮김, 시공사) 시공사 세계문학의 숲 028 찰스 디킨스 - 유령의 선물 모두가 그렇게 말했다. 모두가 하는 말이 반드시 사실이라고 주장할 마음은 조금도 없다. 모두가 옳을 수도 있지만, 또 그만큼 자주 틀린다. 일반적인 경험에 비추어보건대, 모두가 틀렸던 경우가 너무도 많고, 또 대개의 경우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깨닫는 데는 실로 지나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모두가'라는 말은 사실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모두가 하는 말이 때론 옳기도 하다. 하지만 옛 노래 속에서 질 스크로긴스의 유령이 말했듯이, "늘 그러라는 법은 없다." 저 무시무시한 말, '유령'이 나를 다시 불러낸다. (p.165) ................................................................. 2023. 11. 15.
크리스마스 캐럴 : 유령이야기 - 찰스 디킨스 (정은미 옮김, 시공사) 찰스 디킨스 - 크리스마스 캐럴 (1843년) 말리는 죽었다. 이 말부터 해두자. 이 사실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의 매장신고서에는 목사와 법원서기, 장의사, 그리고 상주가 서명을 했다. 스크루지도 서명을 했다. 이 스크루지라는 이름은, 거래소에서도 그가 서명을 했다. 이 스크루지라는 이름은, 거래소에서도 그가 서명하기로 한 것은 무엇이든 확실한 것으로 통했다. 말인 즉, 말리 영감은 문에 박힌 대못처럼 완전히 죽어버렸다. 잠깐 ! 그 문에 박힌 대못에 죽음과 관련된 무언가가 있다고 내 나름 알고 있어서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나 개인적으로는, 철물점에서 파는 물건 중 죽음과 가장 가까운 것이 있다면 그건 관에 박는 못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직유에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고, .. 2023. 11. 13.
댈러웨이 부인 - 버지니아 울프 (이태동 옮김, 시공사) 시공사 세계문학의 숲 023 버지니아 울프 - 댈러웨이 부인 (1925년) 댈러웨이 부인은 자기가 직접 가서 꽃을 사 오겠다고 했다. 루시는 루시대로 준비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들도 돌쩌귀에서 떼내야 했고, 럼플메이어 목공소에서 사람도 오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얼마나 상쾌한 아침인가. 마치 어린이들이 해변에서 맞는 아침처럼 맑고 신선하다고, 클라리사 댈러웨이는 생각했다. 어쩜 이렇게 화창하지! 바깥으로 뛰어들고 싶어! 부어턴에서 살던 시절에도 지금처럼 삐꺽 대는 돌쩌귀 소리가 나는 프랑스식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바깥공기 속으로 뛰어들면, 항상 그렇게 상쾌한 기분을 느꼈었다. 얼마나 상쾌하고 고요했나. 지금보다 더 조용했던 그때의 아침 공기는 철썩이는 파도처럼, 파도가 입 맞추는 물결처럼 .. 2023. 11. 6.
인생의 베일 - 서머싯 몸 (황소연 옮김, 민음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서머싯 몸 - 인생의 베일 (1925년) 그녀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왜 그러지?" 그가 물었다. 덧창이 닫힌 어두운 방 안이었지만 그는 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공포로 사색이 되는 것을 보았다. "방금 누가 문을 열려고 했어요." "하녀나 하인 중 하나였겠지." "하인들은 이 시간에 얼씬도 안 해요. 내가 점심 후에 꼭 낮잠을 자는 걸 아니까." "그럼 누구지?" "월터...." 그녀가 속삭였다.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p.15) .......................................................................................................................................... 2023. 10. 23.
사랑할 때와 죽을 때 - 레마르크 (민음사) 민음사 세계문학 246 레마르크 - 사랑할 때와 죽을 때 (1954년) 러시아에서의 죽음은 아프리카에서의 죽음과는 다른 냄새를 풍겼다. 영국군의 격렬한 포화로 시체들이 묻히지도 않은 채 전장에 나뒹구는 것은 아프리카에서도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태양이 신속하게 작용했다. 그러다 밤이 되면 바람과 함께 달콤하면서도 숨 막히는 답답한 냄새가 전해져 왔다. 죽은 자들의 몸속으로 가스가 가득히 차오르면 낯선 별빛 아래서 마치 유령처럼 시체들이 몸을 일으켰다. 아무 희망도 없이, 모두들 제각각 혼자서, 말없이 다시 한 번 전투에 참가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그러나 다음 날 아침이 되면 그것들은 다시 쭈그러들기 시작하여 그대로 땅에 착 달라붙을 것 같았다. 너무도 지쳐 땅속으로 기어들려는 것 같았다. 나중에 옮기려고.. 2023. 9. 24.
닥터 지바고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이동현 옮김, 동서문화사)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 닥터 지바고 (1957년) 을 부르며 장례 행렬이 이어졌다. 잠시 노랫소리가 멎으면 장례에 참가한 사람들 발자국소리, 말발굽소리, 그리고 때때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가 노래를 이어받은 것처럼 느껴져왔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길을 비켜주며 화환의 수를 헤아리고는 성호를 그었다. 호기심 많은 몇 사람이 행렬에 끼어들며 물었다. "어느 분의 장례입니까?" "지바고입니다." 장송속을 부르던 사람이 대답했다. "그렇군요. 그분이 돌아가셨군요." 아닙니다. 그분이 아니라 마님이십니다." "어쨌거나 그분의 명복을 빕니다. 참 성대한 장레식이군요." 두 번 다시 되돌릴 수 없는 마지막 순간이 찾아왔다. "이 세상과, 그 안에 가득한 것이 모두 야훼의 것, 이 땅과, 그 위에 사는 것이 모두 야훼의 .. 2023. 8. 11.
수레바퀴 아래서 - 헤르만 헤세 (강명순 옮김, 열린책들) 헤르만 헤세 - 수레바퀴 아래서 (1906년) 중개업자이자 대리점주인 요제프 기벤라트 씨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두드러지는 장점이나 특징이 없는 인물이었다.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처럼 어깨가 넓고 다부진 체격이었으며, 진심으로 돈을 숭배하고 장사 수완도 꽤 좋은 편이었다. 그는 아담한 정원이 딸린 집과 작은 가족 묘지를 갖고 있었으며, 종교적으로는 약간 깨인 편이었으나 신앙심이 깊지는 않았다. 신과 고위 공직자들한테는 적당히 존경을 표했고, 시민 사회의 예의범절은 맹목적일 만큼 엄격하게 따랐다. 술은 즐기는 편이었지만 취한 적은 없었다. 간혹 비난의 소지가 있는 거래를 하곤 했지만 절대 법이 허용하는 한계를 넘어서지 않았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뱅이라고 무시하고, 부유한 사람들은 거만하고 잘난.. 2023. 8. 4.
테스 - 토마스 하디 (김문숙 옮김, 열린책들) 토마스 하디 - 테스 (1891년) 제1권 5월 하순의 어느 날 저녁, 한 중년 남자가 샤스턴에서 블레이크모어 또는 블랙무어라고도 부르는 인근 계곡의 말롯 마을의 집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남자를 지탱하고 있는 두 다리는 비틀거렸고 걸음걸이는 일직선에서 조금씩 왼쪽으로 기울어지곤 했다. 남자는 어떤 의견에 동의라도 하듯 이따금 고개를 크게 주억거리곤 했지만, 사실 무슨 특별한 생각이 있는 것 같진 않았다. 팔에는 텅 빈 달걀 광주리가 축 늘어진 채 걸려 있고 모자에는 보풀이 엉켜 있으며 벗을 때 엄지손가락이 닿는 챙의 헝겊 부분도 너덜너덜했다. 남자는 곧 회색빛 당나귀에 걸터앉아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다가오는 나이 지긋한 목사와 마주쳤다. (p.11-12) 실제로 행렬의 대부분을 차.. 2023. 7.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