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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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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악마 - 레이몽 라디게 (양진성 옮김, 문파랑) 레이몽 라디게 - 육체의 악마 (1923년) 나는 많은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전쟁이 발발하기 몇 달 전에 내가 열두 살이었다는 사실이 내 잘못이란 말인가? 이렇게 특별한 상황에서 내가 겪은 혼란은 그 나이에 겪을 만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겉보기에야 어떻든 아무리 강력한 경험을 한다고 해도 갑자기 나이를 먹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른이라도 혼란스러웠을 경험을 하면서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나만 그런 경우를 당한 것은 아니었다. 내 친구들이 갖고 있는 당시의 추억도 어른들의 추억과는 상당히 다를 것이다. 나를 비난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린 소년들에게 전쟁이 무슨 의미일지 상상해 보기 바란다. 전쟁은 우리에게 4년간의 기나긴 방.. 2024. 2. 23.
우스운 자의 꿈 - 도스토예프스키 (고일 옮김, 작가정신) 도스토옙스키 - 우스운 자의 꿈 ( 1877년) 나는 우스운 인간이다. 사람들은 이제 나를 미친 사람이라고 부른다. 만일 사람들이 보기에 내가 예나 다름없이 여전히 우스운 인간이 아니라면 이건 일종의 승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화를 내지 않는다. 사람들 모두 사랑스럽다. 날 비웃어도 왠지 더 사랑스럽다. 사람들을 바라볼 때 그렇게 슬프지만 않다면 나 또한 나 자신을 비웃고 바라볼 때 그렇게 슬프지만 않다면 나 또한 나 자신을 비웃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사람들과 함께 웃을 수 있으련만. 서글픈 건 나는 진리를 알고 있는데 사람들은 모른다는 것이다. 아, 혼자만 진리를 알고 있다는 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걸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아무렴, 이해하지 못하고 .. 2024. 2. 23.
백야 - 도스토옙스키 (고일 옮김, 작가정신) 도스토옙스키 - 백야 ( 1848년) 이 글을 읽는 이여, 그날 밤은 정말 아름다운 밤이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보다 젊었을 때나 경험할 수 있었던 그런 밤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맑은 밤하늘엔 별이 총총히 빛나고.....그런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하늘 아래 못되고 변덕스러운 인간들이 살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이 글을 읽는 이여, 이런 의문은 사실 참으로 순진한 질문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그런 의문이 너무도 자주 든다는 것입니다. 못되고 변덕스러운 인간들에 대해 얘기하면서 나는 오늘 하루 종일 내가 보인 품위 있는 행동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꼭두새벽부터 나는 알 수 없는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러잖아도 외톨이인 나를 모든 사람들이 버리.. 2024. 2. 18.
청춘 - 사무엘 울만 (정성호 옮김, 젊은나무) 사무엘 울만 - 청춘 (1920년)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 가짐을 말한다. 장미의 용모, 붉은 입술, 나긋나긋한 손발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정열을 가리킨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의 청신함을 말한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선호하는 마음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20세 청년보다 70세 인간에게 청춘이 있다. 나이를 더해가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다. 세월은 피부에 주름살을 늘려 가지만 열정을 잃으면 마음이 시든다. 고뇌, 공포, 실망에 의해서 기력은 땅을 기고 정신은 먼지가 된다. 70세든 16세든 인간의 가슴에는 경이에 이끌리는 마음, 어린애와 같은 미지에 대한 탐구심, 인생에 대한 .. 2024. 2. 17.
신랑의 정체 - 아서 코난 도일 (박진배 옮김, 동해) 아서 코난 도일 - 신랑의 정체 (셜록 홈즈의 모험, 1892년) "이보게, 왓슨." 셜록 홈즈가 말을 걸어왔다. 우리는 베이커가의 하숙집에서 벽난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인생은 인간이 지어낼 수 있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 무한히 기묘하다네. 낡은 일상이 상상의 세계를 능가하지. 만약 우리가 손을 잡고 저 창밖으로 날아가서 이 도시의 하늘을 돌며 슬그머니 지붕을 걷어내고 안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을 엿볼 수 있다면, 예컨대 기막힌 우연의 일치, 저마다의 꿍꿍이와 음모, 동상이몽,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놀라운 사건의 연쇄가 여러 세대에 걸쳐 진행되면서 기상천외한 결말에 이르는 것을 엿볼 수 있다면, 결말이 뻔하고 판에 박힌 소설 따위는 더없이 진부하고 재미없을 거야." "아니, 내 생각은 달.. 2024. 2. 12.
사랑에 빠진 악마 - 자크 카조트 (최애영 옮김, 열림원) 자크 카조트 - 사랑에 빠진 악마 (1772년) 내가 스물다섯 살이었을 때의 일이다. 그 당시 나는 나폴리 왕립 근위대에 대위로 근무하고 있었다. 우리는 동료들끼리 많이 어울렸는데, 젊은이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주로 여자와 도박으로 시간을 보냈다. 물론 돈주머니가 충분히 두둑한 때에 한해서였다. 돈이 다 떨어졌을 때면 우리는 병영에 남아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서로 잘난 체하며 떠들어대곤 하였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군밤 몇 개와 아주 작은 키프로스산 포도주 한 병을 놓고 온갖 종류의 추론들로 에너지를 소진시키던 무렵, 우리의 대화는 우연히 히브리 신비철학과 그 비법을 행하는 강신술사들에 관한 토론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p.9)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카발라, 히브리 종교철학 - 아돌프 프랑크 (.. 2024. 2. 12.
마지막 수업 - 알퐁스 도데 (김명숙 옮김, 좋은생각) 알퐁스 도데 - 마지막 수업 (1871년) 그날 아침, 나는 학교에 몹시 늦었다. 그래서 야단맞을 일이 걱정되었다. 아멜 선생님이 분사 문법에 대해 질문을 한다고 했기 때문에 더욱 걱정이 되었다. 나는 분사 문법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순간 수업을 빼먹고 들판이나 쏘다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p.8) 여러분, 이것이 내가 여러분과 수업을 하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알자스와 로렌 지방의 모든 학교에서는 이제부터 독일어만을 가르치라는 명령이 베를린으로부터 왔습니다.... 새 선생님이 내일 오실 것입니다. 오늘은 여러분들의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입니다. 모두들, 열심히 듣기 바랍니다. (p.11) 알자스-로렌 지역은 921년부터 신성 로마 제국에 속했으나, 1600년대 초반부터 독일 내에 3.. 2024. 2. 11.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 - 고트프리트 뷔르거 (한미희 옮김, 비룡소) 고트프리트 뷔르거 -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 (1785년) 얘들아! 보다시피 난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어. 세상에서 제일 친한 친구 셋이 날 찾아왔거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으려고 말이야. 바로 내 여행 이야기지. 이렇게 모일 때면 늘 그렇듯이, 우리들은 바짝 긴장한 채로 파이프 담배를 뻑뻑 피워 대면서 배가 불룩한 술병을 계속 기울이고 있어...(p.7) 나는 이런 이야기를 정말 조금도 뻐기지 않고 하고 있어.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프라이팬이 없어서 넘치는 사냥감을 지글지글 볶지는 못했단다. 하지만 인생이란 게 그렇잖아. 항상 뭔가 모자라는 법이지. 이를테면 내 이야기가 백 퍼센트 사실뿐이라서 재미가 조금 없는 것처럼 말이야. 그러자 내 친구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것 있지. 깐깐한 안토니우스가 말.. 2024. 2. 9.
리츠칼튼 호텔만큼 커다란 다이아몬드 - 스콧 피츠제럴드 (박찬원 옮김, 펭귄클래식) 스콧 피츠제럴드 - 리츠칼튼 호텔만큼 커다란 다이아몬드 (1922년) 존 T. 언저는 하데스에서 잘 알려진 가문 출신이다. 하데스는 미시시피 강 유역의 작은 도시로, 이 가문은 그곳에서 여러 세대를 살아왔다. 존의 아버지는 여러 열띤 대회들을 거쳐 아마추어 골프 챔피언이 되었다. 어머니 언저 여사는 '몸이 뜨거우면 행동도 뜨겁다.'라는 그 지역의 속담처럼 정치 연설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젊은 존 T. 언저는 이제 막 열여섯 살이 되었고, 긴 바지를 입기 시작하기 전에 이미 뉴욕에서 유행하는 모든 최신의 춤을 다 추어보았다. 그리고 이제 얼마간 집을 떠나 있을 것이다. 뉴잉글랜드 지방의 교육은 다른 모든 지방에는 독이어서, 각 지방의 가장 촉망받는 젊은이들을 해마다 빼앗아 가고 있었는데, 그것이 존의 .. 2024. 2. 9.
위대한 유산 - 찰스 디킨스 (김태희 옮김, 혜원출판사) 찰스 디킨스 - 위대한 유산 (1861년) 아버지의 성은 피립이고, 내 세례명은 필립이었다. 하지만 어린 나는 '핍' 이상 더 길거나 분명하게 발음할 수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핍이라고 불렀고,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불렀다. 아버지의 성이 피립이라는 사실은 아버지의 묘비와 누나의 말에 근거를 둔 것이다. 누나는 대장장이와 결혼하여 조 가저리 부인이 되어 있었다. 내겐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 심지어 부모님의 사진조차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처음으로 한 상상은 엉뚱하게도 부모님의 묘비를 보며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비석의 글자 모양을 보고 나는 아버지가 네모난 얼굴에 체구는 건장하며, 살결은 검은 편이고, 검은 고수머리였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조지아나 부인 역시 여기 잠들다.. 2024. 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