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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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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여인의 편지 - 슈테판 츠바이크 (송용구 옮김, 고려대출판부) 슈테판 츠바이크 - 모르는 여인의 편지 (1922년) 어둠 속에 숨어서 은밀하게 누군가를 지켜보는 소녀의 사랑을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랑도 따르지 못할 거예요. 저의 사랑은 아주 절망적이고 헌신적이며 열정을 다 바치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나이 많은 여인들의 욕정에 불타오르는 충동적이며 이해타산적인 사랑과는 완전히 다른 사랑이랍니다. 고독을 아는 소녀들만이 진정한 사랑의 열정을 소유할 수 있는 법입니다. 고독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은 의미없는 대화와 분별없는 사교에 자신들의 감정을 탕진해 버리고 맙니다. 그들은 사랑에 대해 남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나 책에서 읽은 사랑 이야기만을 가지고 그 이야기가 모든 이의 운명에 꼭 맞는 것이라고 믿어 버립니다. 그들은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듯이 사랑을 갖고 놉니.. 2023. 2. 4.
죄수 마차를 탄 기사 - 크레티엥 드 트루아 (유희수 옮김, 문학과지성사) 크레티엥 드 트루아 - 죄수 마차를 탄 기사 (12세기) 당신이 내 마차에 탄다면, 내일까지는 왕비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수 있을거요. 기사는 마차에 올라타기를 주저합니다. 치욕이 꺼림칙해 즉각 마차에 올라타지 않고 이렇게 잠깐 지체한 것이 그에게는 두고두고 큰 불행이 됩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너무 잔인한 일이겠지만 그는 이로 인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겁니다. 그러나 사랑과 화해할 수 없는 이성은 그에게 이 마차에 타지 말라고, 비난받고 모욕당할 짓은 하지 말라고 가르치며 훈계합니다. 심장이 아니라 입술에만 머물러 있던 이성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에게 이렇게 권고한 것입니다. 반면에 심장에 있던 사랑은 즉각 죄수 마차를 타야 한다고 그에게 명령조로 재촉합니다. 사랑이 그걸 원합니다. 기사는 죄수 마차에.. 2023. 2. 4.
호징냐, 나의 쪽배 – 바스콘셀로스 (이광윤 옮김, 동녘) 바스콘셀로스 - 호징냐, 나의 쪽배 (1962년) 늘 그렇듯이, 제 오로꼬는 삶이라는 것이 아주 놀랍도록 아름다운 여정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남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쪽배를 젓는 노가 찰팍팔팍, 정말 부드러운 소리를 내기에, 흐르는 강물은 마치 아름다운 선율처럼 바뀌었으며 쪽배는 나는 듯 부드럽게 미끄러져 나아갔다. 열기 없는 나른한 태양은 구름 속에 가려진 채 차츰 떨어지면서 오후의 시작을 재촉하였다. 강가의 하얀 모래톱에 있는 두루미는 마치 끝이 없을 것 같은 침묵과 속삭이기라도 하는 양 긴 다리를 움직이며 이쪽저쪽으로 거닐다가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걷는 모습은 아주 보기 싫고 비틀거렸지만, 나는 모습을 보면 이 세상의 무엇도 그처럼 우아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p8-9) 잠시 잊고 있던 쪽배를.. 2023. 2. 4.
사랑에 관하여 – 안톤 체호프 (안지영 옮김, 펭귄클래식) 안톤 체호프 단편집 (펭귄 클래식 70) 안톤 체호프 -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1899년) 사실상 쓰디쓴 경험이라 할 수 많은 경험을 통해 이미 오래전에 그가 깨달은 사실은, 여자들과의 만남이 처음에는 인생을 다채롭게 해주는 유쾌하고 사랑스럽고 가벼운 모험일 뿐이지만, 이른바 신사들, 특히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모스크바 남자들에게는 반드시 아주 복잡한 문제들 일으키고, 결국 그들을 곤경에 몰아넣는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흥미로운 여인과 새로이 만날 때마다 이런 경험은 기억속에서 사라지고, 다시 살고 싶어지며, 모든 것이 너무도 단순하고 우습게 여겨지곤 했다. (p206) 구로프는 그녀를 바라보며 ‘살다보면 얼마나 많은 만남이 있는지!’라고 생각했다. 그의 기억 속에는 태평하고 선량하며.. 2023. 2. 4.
보바리 부인 – 플로베르 (이봉지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펭귄클래식 세계문학 귀스타브 플로베르 - 보바리 부인 (1856년) ​ 때때로 엠마는 밖으로 삐져나온 그의 빨간 내복을 조끼 속으로 넣어주기도 하고, 넥타이를 바로잡아 주기도 하고, 그가 끼려던 빛바랜 장갑을 치워버리기도 했다. 샤를은 이 모든 것이 자기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그것은 순전히 그녀 자신을 위한 것으로, 이기심과 짜증의 발로일 뿐이었다. 그녀는 또한 자기가 읽은 것, 즉 소설이나 새로 나온 희곡의 한 구절, 혹은 신문 기사에 나온 상류사회의 일화 같은 것을 이야기해 주기도 했다. 어쨌건 간에 샤를은 언제나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었고, 항상 맞장구를 쳐주는 상대이기 때문이었다. 하긴 강아지에게도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는 판국에! 그러니 벽난로의 장작이나 시계추한테 이.. 2023. 2. 4.
판사와 형리 – 뒤렌마트 (차경아 옮김, 문예출판사) 뒤렌마트 - 판사와 형리 (1952년) 바로 이런 겁니다!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은, 그다음 것을 알도록 도와주지요. (p32) 자네 앞에는 일 년이 남았네. 그리고 40년 동안이나 자네는 길 쓰고 내 뒤를 추적했지. 그 당시 토파네 시 교외의 곰팡내 나는 주막에서 터키제 담배 연기에 휩싸인 채 우리가 무엇에 대해 토론했는지 기억이 나는가, 베르라하? 자네의 명제인즉 인간의 불완전함, 즉 우리가 타인의 행동 방식을 자신있게 예견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아가 만사에 개입하여 작용하는 우연을 고려할 수 없다는 사실이 어쩔수 없이 대부분의 범죄가 폭로되고 마는 근거라는 거였지. 인간은 장기 말처럼 조작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자네는 주장했네. 그와는 달리 나는 반대를 위해.. 2023. 2. 4.
첫사랑 – 뚜르게녜프 (최진희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펭귄클래식 코리아 세계문학 마카롱판본 뚜르게녜프 - 첫사랑 (1860년) 그때 내 나이 열여섯이었다. 그 시절에 내 머릿속에는 여인의 형상이나 사랑의 환영이 구체적인 형태로 떠오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 내가 느끼는 모든 것 안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달콤하고 새로운 여성적인 어떤 것에 대한 예감이, 반쯤은 희미하게 부끄러운 듯 감추어져 있었다…… 그 예감, 그 기대감이 나의 몸 구석구석에 스며들었다. 나는 그 예감으로 호흡했고, 그것은 내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스며 혈관을 따로 흘러들었다…그 예감은 곧 이루어질 운명이었다. (p34) 내 앞으로 몇 발자국 떨어진 풀밭 위 파란 산딸기나무관목사이로, 분홍빛 줄무늬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는 흰색 스카프를 두른 키.. 2023. 2. 4.
어린왕자 - 생텍쥐페리 (심영아 옮김, 펭귄클래식) 펭귄 클래식 155 생텍쥐페리 - 어린왕자 (1943년) 어른들은 언제나 혼자서 이해하는 법이 없다. (P9) 신비가 압도적일 때는 감히 거역하지 못하는 법이다. (P12)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고 이야기하면 어른들은 항상 이렇게 묻는다. 몇 살이니? 형제가 몇이야? 몸무게는? 아빠는 얼마나 벌지? 그들은 이런걸 알아야만 그 친구를 안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은 원래 이런 식이다. 그들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을 아주 너그럽게 대해야만 한다. (p20-22) 내가 여기서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그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친구를 잊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누구에게나 친구가 있는 것은 아니다. (P22) 수천 년 동안 꽃들은 가시를 만들어냈어. 수천 년 동안 양들.. 2023. 2. 4.
인간의 조건 – 앙드레 말로 (박종학 옮김, 홍신문화사) 앙드레 말로 - 인간의 조건 (1933년) 부상자의 반은 죽었겠지. 고통이란 그것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을때에만 의미가 있는 법이야. 그런데 대개 고통은 죽음으로 끝나거든. 그렇군요. 하지만 그것은 아마 남자들의 생각이겠죠. 나로서는, 말하자면 한 여자로서는 고통이란 죽음보다는 삶을 생각하게 하거든요. 아마 여자는 애를 낳기 때문인지…. 부상자가 늘면 늘수록, 봉기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사람이란 이성과의 결합을 원하나 봐요. 그런 모양이야 이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좀 나쁘겠지만, 당신한테 해둘 이야기가 있어요. 나 오늘 오후에 랑글랑과 자고 말았어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육감적인 표정은 저 젖은 듯한 눈과 도톰한 입술이 얼굴의 다른 표정과 뚜렷이 대조되어 여자다움을 돋보이게 하기 때문.. 2023. 2. 4.
페스트 – 카뮈 (이혜윤 옮김, 동서월드북) 알베르 카뮈 - 페스트 (1947년) 사람이란 일단 습관을 붙이고 나면 그날그날을 힘들이지 않고 지낼 수 있는 법이다. (p.121) 그 광경은 마치 우리의 집들이 자리잡고 서 있는 대지가 그 속에 있던 고름을 짜내고 지금까지 안으로 곪고 있던 종기나 피고름을 표면으로 내뿜고 있는 것만 같았다. (p.129) 극장 매표소 앞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차례가 오면 표를 사지 말 것. (p.138) 누구나 다 당하는 일인데요. 바로 그겁니다. 우리는 이제 누구나와 마찬가지 꼴이 되었다. 이겁니다. (p.140) 전쟁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말한다. 오래 가지는 않겠지, 너무나 어리석은 짓이야. 전쟁이라는 것이 너무나 어리석은 짓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 오래 가지 않는 다는 법도 없.. 2023. 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