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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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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거이 시선 (김경동 편저, 문이재) 백거이 시선 (중국시인총서-당대편) 白居易 - 村夜 (백거이 - 촌야) 달밤 서리맞은 풀 파르스름하고 가을 벌레들 울음소리 애절한데 시골 마을 어디에도 오가는 사람 하나도 없다 홀로 문 앞에 나가 들판을 바라보니 밝은 달 아래 메밀꽃이 눈처럼 하얗다 霜草蒼蒼蟲切切 (상초창창충절절) 村南村北行人絶 (촌남촌북행인절) 獨出門前望野田 (독출문전망야전) 月明蕎麥花如雪 (월명교맥화여설) [작품해설] 원화 9년 (814년) 43세, 하규 811년 4월, 모친이 서거하자 백거이는 관직에서 잠시 물러나 고향인 하규(협서성 위남시)에서 3년간 복상하였다. 이 시는 바로 814년 하규에서 시골 마을의 가을 야경을 노래한 서경시이다. 이미 인적이 끊어져 사방은 고요한데, 오직 가을 벌레들의 애절한 울음소리만이 들려오는 깊은 .. 2023. 2. 2.
마음속의 대나무 - 소동파 (김병애 옮김, 태학사) 마음속의 대나무 - 소동파 (택한산문선 202) 소동파 - 마음속의 대나무 달밤 뱃놀이 - 적벽부(赤壁賦) 임술년(1082년) 가을 7월 16일에 나는 손님과 더불어 배를 타고 적벽아래에서 노닐었다. 맑은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물결은 일지 않았따. 잔 들어 손님에게 권하고 의 명월 시를 읊으며 요조장을 읊고 있으려니, 조금 있다가 달이 동산 위에 떠올라 두성과 우성 사이를 배회하는데 휜 이슬이 강물을 가로지르고 물빛은 하늘에 접해 있다. 한 조각 작은 배가 가는 대로 맡겨 아득히 너른 바다를 흘러가노라니, 하도 넓어 허공에 의지한 듯 바람을 탄 듯 멈출 곳을 모르며, 두둥실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 돋아 신선 세계에 오르는 듯하니, 매우 즐거워 술 마시고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계수나무 노.. 2023. 2. 2.
아Q정전 - 루쉰 (정석원 옮김, 문예출판사) 루신 - 아Q정전 (1921년) 내가 아Q에게 정전을 써주기로 마음 먹은 것은 사실 한두 해 전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막상 정전을 쓰려고 하니 옛날을 회상하게 되는데, 그러고 보니 나는 '입언'을 할 만한 인물이 못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예로부터 불후의 붓은 불후의 사람을 전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문장에 의해 전해지고 문장은 또 사람에 의해 전해졌던 게 아니었을까? 결국 나는 무엇이 무엇에 의해 전해지는지조차 점점 불명학해졌지만 마침내는 아Q를 전하는 것으로 귀착되었다. 마치 마음이 무슨 귀신에라도 홀린 것처럼 말이다. (p.18) 아Q는 성명과 본적만 불확실했던 것이 아니다. 자신의 행적마저도 그러했다. 웨이쫭 사람들은 그에게 농사일을 시키거나 아니면 웃음거리로만 삼았을 뿐 .. 2023. 2. 2.
라쇼몽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양윤옥 옮김, 좋은생각)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단편집 목차 제1부 라쇼몽 / 코 / 덤불 속 / 지옥변 / 투도 제2부 점귀부 / 갓파 제3부 난쟁이 어릿광대의 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라쇼몽 (1915년) 어느 날 해 저물 녘의 일이다. 한 백성이 라쇼몽 아래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p.29) 성안이 그런 판이었으니 라쇼몽의 수리 같은 건 애초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는지라 되는 대로 내팽개쳐 둘 뿐 아무도 돌아보는 이가 없었다. 그러자 그 황폐한 꼴을 얼씨구 좋아라 하면서 너구리가 와서 살고, 도적들이 와서 살았다. 그러다가 끝장에는 거둬줄이 없는 시체를 떠메고 와 이 문의 누각 위에 내버리는 풍습마저 생겼다. 그러니 사람들은 해만 떨어졌다 하면 모두 무서워서 라쇼몽 근처에는 아예 발걸음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 2023. 2. 2.
도련님 - 나쓰메 소세키 (송태욱 옮김, 현암사)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2 나쓰메 소세키 - 도련님 (1906년)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나는 손해만 봐왔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학교 2층에서 뛰어내리다 허리를 삐는 바람에 일주일쯤 일어나지 못한 적도 있다.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새로 지은 교사 2층에서 머리를 내밀고 있었더니 같은 반의 한 친구가 농담으로 놀려댔기 때문이다. "아무리 으스댄다고 해도 거기서 뛰어내리지는 못할걸. 이 겁쟁이야!" 학교 사환에게 업혀 집으로 돌아오자 아버지가 부릅뜬 눈으로 호통을 쳤다. "겨우 2층에서 뛰어내리다 허리를 삐는 놈이 어디 있어!" "다음에는 허리를 삐지 않고 뛰어내리는 걸 보여드릴게.. 2023. 2. 2.
사양 - 다자이 오사무 (오유리 옮김, 문예출판사) 문예 세계문학 36 다자이 오사무 - 사양 (1947년) 석양이 어머니의 얼굴을 비춰, 어머니의 눈이 검푸르게 빛나고, 두 눈 속에 희미한 분노의 빛이 스쳐, 그 얼굴은 와락 달려들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워 보였다. 그리고......아아, 어머니의 얼굴은 조금 전 그 쓸쓸하고 슬퍼 보였던 뱀과 닮았다. 그리고 내 가슴속에 있는 살무사처럼 꿈틀거리는 흉측한 뱀이, 이 슬픔에 사무쳐 오히려 아름다운 어미 뱀을 언젠가 잡아먹어버리지는 않을까, 왠지, 무엇 때문인지,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나는 어머니의 가냘프고 우아한 어깨에 손을 얹고, 왠지 모를 몸부림을 했다. (p.153) 아아, 돈이 없어진다는 것은, 뭐라 표현해야 좋을지 모를, 두려운, 비참한, 살아날 구멍 없는 지옥 같다는 걸 태어나 처음으로 깨닫고는 .. 2023. 2. 2.
인간실격 - 다자이 오사무 (오유리 옮김, 문예출판사) 문예 세계문학 36 다자이 오사무 - 인간실격 (1948년) 부끄러운 생애를 살아왔습니다. (p.13)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관념과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관념이 서로 엇갈린 것 같다는 불안, 나는 그 불안감 때문에 밤마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며 신음했고, 발광할 뻔한 적도 있습니다. 도대체 나는 행복한 걸까요. 어릴 때부터 사람들에게 행운아라는 말을 자주 들어왔습니다만, 언제나 사는 것이 지옥 같았고, 오히려 날 보고 행운아라고 말한 그 사람들이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편안해 보였습니다. (p.16) 난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그렇다고 인간을 아무래도 단념할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이런 우스운 행동을 수단으로 인간과의 가느다란 연결 고리를 이을 수 있었습니다. (p.. 2023. 2. 2.
전원의 우울 – 사토 하루오 (유숙자 옮김, 소화) 사토 하루오 - 전원의 우울 (1919년) 그는 자주 무심히 그런 것을 생각했다. 참으로 “태양 아래 새로운 건 없다”인가. 그렇다면 일반 세상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삶의 보람으로 해서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다만 그들 자신의 각각의 어리석음 위에 자못 그럴듯하게 각자의 공허한 꿈을 쌓아 올려, 그것이 아무것도 없는 꿈이라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정신없이 살고 있을 뿐이 아니까-그것이 현자건 바보건 철학자건 상인이건 간에. 인생이란 과연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죽음이란 또 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는 밤마다 그런 것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더구나 이 괴롭고 지칠대로 지친 권태로움이 그의 마음속 깊이까지 침투한 이상, 그런 마음을 소유한 자의 눈이 보는 것처럼, 세.. 2023. 2. 2.
뜬구름 - 하야시 후미코 (이상복 옮김, 어문학사) 하야시 후미코 - 뜬구름 (1951년) 젊은 여자에게 평범이라는 것만큼 괴로운 것은 없다. (p29) 내가 돌아올 때까지는 반드시 해결해서, 부인과 헤어져 깨끗하게 나를 맞이할 거라고 말한 것은 거짓말이지요? 남자란 사기꾼이야. 여자를 말로만 위로하고 자신의 경계는 확실히 해두지요. 나를 이런 곳으로 데리고 와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지독한 사람이야. 일본으로 돌아오면 모든 옛날 생활은 깨끗이 청산하고 둘이서 일용 노동자라도 하면서 살자고 말해놓고선….(p94) 당신은 나 따위는 버리고 싶겠지요?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이제 나의 일 따위는 어떻게 되든 관심이 없겠지요. 나라는 존재가 당신에게는 고통일 테니까. 나는 당신과 헤어지면 지옥으로 떨어져 버릴 거예요. 재가 되어 바람에 날아가 버릴거예요. 당신.. 2023. 2. 2.
바람이 분다 – 호리 다쓰오 (남혜림 옮김, 더클래식) 호리 다쓰오 - 바람이 분다 (1937년)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가을을 맞이한 숲은 모습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럽게 바뀌어 있었다. 우수수 잎을 떨군 나무들 사이로 인적이 끊긴 별장의 테라스가 성큼 가까이 보였다. 균류의 축축한 냄새가 낙엽 냄새와 뒤섞여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런 계절의 변화가, 너와 헤어진 뒤 나도 모르는 사이 이토록 흘러 버린 시간이라는 것이, 내게는 이상하게 느껴졌다. 마음속 어딘가에 너와의 헤어짐은 단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확신 따위 때문인지, 이런 시간의 흐름까지도 내게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 것인지, 나는 잠시 후 분명히 깨닫게 될 이러한 것들을 이때 이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십여분 뒤, 숲이 하나 끝나더니 갑자기 시야.. 2023. 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