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책의 향기
V. 현대 문학/1. 소설

소녀의 죽음 - 미셸 투르니에 (이규현 옮김, 현대문학)

by handaikhan 2023. 3. 16.

 

미셸 투르니에 - 꼬마 푸세의 가출

 

목차

아담가

로빈슨 크루소의 종말

산타 할머니

아망딘 또는 두 정원

꼬마 푸세의 가출

튀피크

기쁨이 내게 머물게 하소서

붉은 난쟁이

트리스탄 복스

베로니크의 수의

소녀의 죽음

들닭

은방울꽃 휴게소

페티시스트

 

................................................

미셸 투르니에 - 소녀의 죽음

 

교실 안쪽에서 킥킥대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여교사가 갑자기 동작을 멈추었다.

"또 뭐지?"

한 소녀가 고개를 들었다. 홍조를 띤 명랑한 얼굴이어다.

"멜라니가요, 선생님, 지금 레몬을 먹고 있어요."

학급 전체가 웃음을 터뜨렸다. 여교사가 맨 뒷줄까지 걸어갔다. 멜라니는 순진한 얼굴을 들어 여교사를 쳐다보았다. 숱이 많은 검은 머리 때문에 야위고 창백한 모습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얼굴이었다. 손에는 정성스럽게 껍질을 벗긴 레몬이 들려 있었다. 레몬 껍질이 황금빛 뱀처럼 책상 위에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여교사는 난처한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번 학년을 밭은 이래 여교사는 이 멜라니 블랑샤르가 끊임없이 마음에 걸렸다. 그녀는 유순하고 똑똑하며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다. 학급에서 가장 모범적인 학생이라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사실 도전적인 태도가 엿보이는 장난은 아니라서 화를 낼 수 없게 하기는 해도, 여러 가지 기발한 장난과 야릇한 행동으로 눈총을 받았다. 가령 역사 시간에 이 여학생은 사형 선고를 받았거나 사형을 당한 유명 인물들에 대해 열렬하다 못해 거의 병적인 호기심을 내보였다. 잔다르크, 쥘 드 레, 마리 스튜어트, 라비약, 샤를 1세, 다미앵의 마지막 순간에 관해 모든 세세한 사항을 암송했다. 그들의 고통을 설령 잔혹한 것이라 할지라도 빼먹지 않고 정확하게 말했다. 눈초리가 염려스러울 정도로 초롱초롱 빛났다.

단순히 혐오스러운 것 앞에서 어린이들이 흔히 빠져드는 현혹, 가학, 취미 때문에 심해지는 현혹 현상일까? 다른 언행들로 입증되었듯이, 멜라니에게는 더 복잡하고 더 심층적인 어떤 것이 문제였다. 신학년이 시작되자 마자 멜라니는 여교사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두각을 나타냈다. 관례적으로 여교사는 학급 아이들에게 지난 방학 중 어느 하루에 관해 이야기해보라고 했었다. 멜라니의 이야기는 아주 진부하게 전원에서의 점심으로 시작되었으나, 별안간 할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넘어갔다. 할머니의 죽음으로 온 가족이 들놀이를 그만두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내용이 부정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멜라니는 하지도 않은 산책의 경로, 아무도 듣지 못한 새들의 노래, 차리지도 않은 나무 아래에서의 점심을 일종의 환시에 따라 침착하게 묘사했다. 뇌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돌아오다가 겪은 우스꽝스러운 우발 사건들도 모두 현실정이 없었다. 왜냐하면 떠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멜라니는 다음과 같이 결말을 맺었다.

"온 가족이 할머니의 몸이 누워 있는 침대 주위에 서글프게 모여 있었어요. 누구도 웃으면서 헛간으로 달려가 몸을 피하지 않았죠. 거실의 유일한 작은 거울 앞에서 서로 밀치면서 머리를 매만지지도 않았어요. 젖은 옷을 말리기 위해 벽난로에 불을 활활 지피지도 않았어요. 벽난로 앞에 모인 가족의 젖은 옷에서 땀에 젖은 말의 털처럼 김이 모락모락 나지도 않았죠. 할머니는 모두를 집에 남겨두고 혼자 떠났어요."

이제는 레몬이다! 계집아이의 기발한 착상들 사이에 연관성이 있을까?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여교사가 마음속으로 물음을 되뇌었다. 어떤 대답이 들려올까 짐작해보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러한 착상들 모두에는 명백히 '가정환경'이 있고, 동일한 개성의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교사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레몬을 좋아하니?"

멜라니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그럼 왜 먹어? 괴혈병에 걸릴까봐?"

이 두 질문에 멜라니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여교사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교탁으로 되돌아갔다.

"어쨌든 수업 중에 먹는 건 금지되어 있단다. '저는 수업 중에 레몬을 먹었습니다'를 오십 번 써서 선생님에게 제출해라."

멜라니는 순순히 따랐다. 더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신이 두려워하고 레몬으로 치료하려는 것은 괴혈병이 아니라 더 깊은 육체적이고 동시에 정신적인 병, 갑자기 세계로 몰려들고 세계를 휩쓸어버리겠다고 위협하는 무미함과 단조로움의 파도라는 것을 자신도 알까 말까 한데, 어떻게 남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겠는가? 멜라니는 권태로웠다. 일종의 현기증 같은 관념들로 권태를 참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로 멜라니가 지루했을까? 오히려 사물들, 멜라니 주위의 풍경이 지루하지 않았을까? 갑자기 어슴푸레한 빛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희끄무레한 진창 속에서 방, 교실, 거리가 반죽된 듯했다. 형태들이 서서히 사라졌다. 이 메스꺼운 황량한 정경에서 멜라니만이 살아 있는 듯했다. 이번에는 멜라니 자신이 진흙 속으로 빠져들지 않으려고 악착스럽게 싸웠다.

사물들의 정기를 변모시키는 이 갑작스러운 빛의 변화와 동등한 것을 멜라니는 아주 어렸을 때 느꼈다. 대수롭지는 않았지만 인상적인 것이었다. 집의 고미다락방으로 통하는 나선형 계단에서였다. 계단을 비추는 창문은 다색의 작은 창유리들이 끼워진 좁은 총안에 지나지 않았다. 멜라니는 계단의 층계참에 앉아 있었다. 저마다 다른 색깔의 창유리들을 통해 정원을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보곤 했다. 매번 동일한 놀람, 동일한 작은 기적이었다. 멜라니에게 그토록 친숙하고 멜라니가 자세히 알고 있는 정원이 붉은 창유리를 통해서는 희미한 화재의 빛 속으로 잠겨 들었다. 그곳은  더 이상 놀이와 몽상의 장소가 아니었다. 알아볼 수 있었고 동시에 알아보기 힘들었다. 잔혹한 불길이 혀를 날름대는 끔찍한 동굴이었다. 멜라니의 시선이 초록색 창유리로 옮겨갔다. 그러자 정원이 깊은 바닷속 구덩이의 바닥으로 변했다. 청록색 심해에 수중 괴물들이 숨어 있는 듯했다. 반대로 노란색 창유리는 태양의 따뜻한 반사광, 기운을 돋우는 금빛 먼지를 담뿍 퍼뜨렸다. 청색은 나무와 잔디를 낭만적인 달빛으로 감쌌다. 남색은 미물들에게 장엄하고 웅대한 풍모를 부여했다. 언제나 똑같은 정원이었지만, 매번 깜짝 놀랄 만큼 새로운 모습을 나타냈다. 멜라니는 정원을 마음대로 참혹한 지옥에, 노래하는 듯한 기쁨에, 또는 멋진 장중함에 잠기게 하는 마력에, 자신에게 그러한 마력이 있다는 사살에 경탄했다.

사실 층계참의 작은 창문에는 회색 창유리가 없었고, 재처럼 쏟아져내리는 권태는 덜 순수하고 더 현실적인 다른 원인이 있었다. (p.215-220)

 

모든 어린이처럼 멜라니도 죽음의 신비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멜라니의 눈에는 죽음이 서로 상반된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났다. 짐승의 시체들은 대개 부풀어 있었고 부패한 모습이었다. 피고름이 스며나왔다. 최후의 순간에 놓인 존재가 자체의 근본적인 부패성을 노골적으로 내보이는 셈이었다. 반대로 죽은 곤충들은 가벼워졌고 물질성이 제거되었으며 미이라의 가볍고 순수한 영원에 자연적으로 근접했다. 곤충들뿐만이 아니었다. 멜라니는 헛간을 샅샅이 뒤지다가 곤충들처럼 바짝 마르고 정화된, 이를테면 고유한 본질로 환원된 생쥐와 작은 새를 발견했다. 좋은 죽음이었다. (p.221-222)

 

멜라니는 무남독녀였다. 마메르스의 공증인이 아버지였다. 부녀관계는 몹시 서먹서먹했다. 늦은 나이에 얻은 딸이 아버지에게 위압감을 주는 듯했다. 멜라니의 어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았다. 너무 빨리 세상을 떴다. 공증인과 딸만이 남겨졌다. 멜라니가 열두 살이던 때였다. 멜라니는 어머니의 죽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 처음에는 가슴앓이를 느꼈다. 한 부위가 찌르는 듯이 아팠다. 마치 궤양이나 내장 상해인 듯했다. 심각한 병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얼마 뒤에 자신의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 그런 아픔이 바로 마음의 괴로움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동시에 몹시 기분 좋은 연민의 움직임이 점점 더 아련해져 간다고 느꼈다. 어머니, 어머니의 죽음, 차디찬 구덩이 밑의 상자 안에 누워 있는 야위고 뻣뻣한 시신을 열심히 생각하는 것으로 충분했다....눈이 눈물로 축축해졌다. 쓰라린 짧은 웃음소리와 유사한 딸꾹질 섞인 흐느낌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럴 때면 들어올려지고 사물들의 포위망에서 벗어난 느낌, 실존의 무게에서 해방된 느낌이 들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일상의 현실이 비웃음에 강타당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과장된 위세를 잃었다. 어린 소녀를 짓누르는 끈질긴 현실의 중력이 경감되었다.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소중한 엄마가 죽었기 때문이다. 반박할 수 없는 추론의 명증성이 정신의 태양으로 빛을 발했다. 멜라니는 폭소가 울려퍼지는 공중에서 슬픔에 취해 떠다녔다.

그러고 나서 멜라니의 비애는 해소되었다. 상흔만이 남았을 뿐인데, 그것은 누군가가 고인에 관해 말을 할 때나 어떤 날들의 밤에 멜라니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커다란 눈으로 어둠 속을 응시할 때 덧나는 상처였다.

날들이 이어졌다. 그날이 그날 같았다. 늙은 하녀는 점점 귀가 어두워져 갔고, 아버지는 과거를 회상하기 위해서만 서류에서 눈을 뗐다. 멜라니는 뚜렷한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자랐다. 주위 사람의 눈에는 까다롭지도, 과묵하지도, 우울하지도 않은 소녀로 비쳤다. 누구라도 멜라니가 암울한 잿빛 허공에서 빛바랜 비애를 이겨내려고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깜짝 놀랄 터였다. 부유한 집에는 추억들이 가득 차 있었고 거리에서는 새로운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으며 이웃 사람들은 졸고 있는 듯했다. 멜라니는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누군가가 갑자기 나타나기를 열렬히 기다렸다. 이러한 기다림은 끔찍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p.222-223)

 

쿠바사태 때문에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핵전쟁 발발의 위협이 있었을 때, 멜라니는 신문을 읽고 라디오 및 텔레비전 뉴스를 알아들을 수 있는 나이였다. 멜라니가 느끼기에는 신선한 바람이 이 세상을 쓸어갈 것만 같았다. 멜라니의 가슴은 희망으로 부풀었다. 멜라니를 허탈 상태에서 끌어내기 위해서는 현대의 분쟁으로 인한 엄청난 파괴와 무시무시한 대살육에 못지않은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위협은 해소되었다. 실존의 덮개가 한순간 살짝 열렸다가 다시 닫혀버렸다. 멜라니는 역사에서 기대할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223-224)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결정의 본질 - 그레이엄 앨리슨, 필립 젤리코 (김태현 옮김, 모던아카이브)  결정의 엣엔스의 개정신판

.......................................................................................................................................................................

 

그렇지만 멜라니는 아비지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와는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듯이 편지 연락을 주고받았다. 당시로서는 사랑의 경이로운 기쁨, 제재소의 굉장한 광기, 전적으로 이 두 가지 것에서 유쾌한 쉬로의 계획으로 인해 현재의 삶과 아버지 집 사이에 벽이 세워졌다. 추억의 눈에 아버지 집은 낡아빠진 방주처럼 잿빛 물속에 좌초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바람은 아직 차가웠고 눅눅했다. 냉혹하게도 그녀 주위에 공허가 다시 자리 잡았다. 숲이 해빙되면서 칙칙하고 험악한 모습을 다시 드러냈다. 오두막이 숲의 황량함에 휩싸였다. 어느 날 멜라니는 자신이 숙명적인 몸짓을 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하품을 했던 것이다. 이 하품에서 그녀는 권태의 찰랑거리는 물결에 인사하고 동시에 그 물결을 불러들이는 신호를 감지하고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레몬, 겨자 따위의 유치한 장난이 통하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이제 그녀는 자유로운 몸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로든 달아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디로 간단 말인가? 실제로 권태의 해로운 힘은 엄청난 것이다. 권태는 일종의 보편적인 전염력으로 무장하고 있으며, 불길한 파장을 세계 전체로, 우주 전체로 퍼뜨린다. 어떤 것도, 어떤 장소도, 어떤 사물도 권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p.227-228)

 

밧줄과 의자라는 두 물건은 그 자체로 찬탄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의자와 일종의 대마 다림추의 완벽한 결합, 그리고 이 결합에서 발산되는 치명적인 의미가 중요했다. 그녀는 정말 만족해하면서 형이상학적 명상에 빠져들었다. 자신의 죽음을 준비함으로써, 삶의 황량한 전망에 가시적이고 만질 수 있는 장벽을 세움으로써, 그리고 시간의 고여 있는 물을 제방으로 가로막음으로써 권태를 단번에 끝장냈다. 밧줄과 의자에 의해 구체화된 임박한 죽음으로 말미암아 현재의 삶에 밀도와 비할 데 없는 열기가 부여되었다. (p.229)

 

마을에는 봄기운이 완연했고 자클린은 멜라니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그래서 멜라니는 자신의 강박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죽음이라는 해결책을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멜라니가 닫힌 오두막집의 어둠 속에 의자와 수직으로 매달린 아름다운 밧줄을 어쩔 수 없는 귀환의 증거로 남겨놓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친구가 수업을 하는 동아는, 멜라니는 집안에 있었다. 얼마 후에는 아이들에게도 관심이 간 그녀는 뒤처진 아이들을 대상으로 개인 지도를 하려고 시도했다. 여름과 겨울의 사랑 이후에 이처럼 자연의 봄과 더불어 우정을 발견했다. 인생의 이 두 가지 축제 사이에는 적막한 사막, 터무니없고 구역질 나는 어두운 그림자들만으로 가득 찬 사막, 고리매듭의 목 넣는 구멍으로 끝나는 밧줄에 의해서만 거주할 만하게 되는 사막이 펼쳐져 있었다. (p.230-231)

 

그는 그녀가 형이상학에 적합한 소질을 타고났다는 것, 그렇지만 모든 존재론에 대한 무의식적인 거부가 수반되어 있다는 것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고, 그녀가 두 가지 사유 형태의 아주 오랜 대립을 초보적인 상태로 구현한다는 것을 그녀에게 이해시키려고 애썼다. 서구인의 가장 머나먼 여명기부터, 두 흐름은 서로 교차하고 대립한다. 하나는 엘레아의 파르메니데스에 의해, 다른 하나는 에페소스의 헤라클레이토스에 의해 주도되었다. 파르네미데스에 의하면 현실과 진실의 토대는 덩어리 같은 부동의 동일성 존재에 있다. 이러한 고정된 시각에 대해 다른 한 쪽의 사상가, 헤라클레이토스는 반감을 내보인다. 그는 요란하게 흔들리면서 타오르는 불을 모든 사물의 본보기로 생각한다. 그리고 노래하면서 흘러가는 맑은 물을 영원히 창조적인 생명의 상징으로 여긴다. 존재론과 형이상학, 존재 안에서의 휴식과 존재 지양으로 인해 두 가지 지혜와 두 가지 사변이 오래전부터 서로 대립하고 있다....(p.242)

<참고>

형이상학(形而上學, metaphysics)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형이상학은 존재의 근본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서양 사상에서는 인간은 형이상학적 진리들을 직접적인 경험으로 알 수 없으며, 형이상학적 진리들은 사색 · 추론, 또는 근거 없는 신념 또는 신앙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또한 모든 사상 체계는 서로 간에 대립 또는 모순되어, 하나가 진실이라면 다른 하나는 거짓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동양 사상에서는 인간은 직접적인 경험에 의해 형이상학적 진리들을 알 수 있으며, 형이상학적 진리들을 알기 위해 사색 · 추론 · 신념 또는 신앙에 의존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하나의 형이상학적 진리에 대해 여러 가지의 해석이 있을 수 있는데, 이들 여러 가지 해석은 대립하거나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라고 보며, 각각의 해석은 다양한 종교적 · 사상적 · 철학적 배경 또는 경향성을 가진 여러 다른 사람들 중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직접적인 경험으로 이끌어 주기에 적합하다고 본다.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서양철학사 - 버트런드 러셀 (서상복 옮김, 을유문화사)

그리스 철학자열전 -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전양범 옮김, 동서월드북)

서양의 붓다-헤라클레이토스 강론 - 오쇼 라즈니쉬 (손민규 옮김, 태일출판사)

.............................................................................................................................

 

죽음, 이를테면 특별한 수단에 의해 구체화될 죽음의 전망만이 구역질 나는 실존 속으로의 함몰에서 그녀를 빼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해방은 일시적일 뿐이었고 점차로 효력을 잃어갔다. 그것은 또 다른 '열쇠'가 그 여자에게 제시되어 새로운 죽음의 약속, 더 새롭고 더 신선하며 더 설득력 있는 약속, 온전한 신뢰성이라는 자산을 소유하고 있는 약속이 성립할 때까지만 효력을 발휘하는 약과 같았다. 그런데 이러한 유희가 앞으로 오랫동안 계속 될 수 없으리라는 것은 분명했다. 모든 약속이 번번이 지켜지지 않고 모든 만남이 성사되지 않다 보면 언젠가는 불가피한 종말이 다가오는 법이다. 멜라니는 존재의 늪에서 또다시 난파할 위험에 직면하여, 자살의 날짜와 시간을 10월 1일 일요일 오후로 정해버렸다.

처음에는 자신과의 이 약속을 생각할 때마다 경악스러웠다. 그러나 좀 더 진지하게 고찰했다. 정신 속에서 결정이 무르익었다. 이에 따라 에너지와 기쁨의 흐름이 느껴졌다. 용기가 돋구어졌다. 점점 더 강렬해지는 연속적인 파동 속에서 마음이 부풀었다. 그 여자의 행동을 부추기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이었다. 죽음은 아직 먼 나중의 일이지만 확실성만으로도, 실행 날짜의 결정만으로도 성큼 다가간 느낌이었다. 일단 날짜가 정해지자, 어떤 커다란 기쁨의 불길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면서 빛과 열기를 좀더 강하게 느끼게 되듯이 하루하루 매 시간 그 유익한 광휘가 강해져 갔다. (p.244-245)

 

...............................................................................................................................................................................................................................

미셸 투르니에 (Michel Tournier, 1924년 -2016년)
프랑스의 작가.
1924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소르본 대학교와 독일 튀빙겐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어린 시절부터 철학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으나 스물다섯 살 때 치른 대학교수 자격시험에 실패한 후 에리히 레마르크 등 독일 문학 작품 번역에 몰두하였다. 1954년부터 5년간 유럽 제1방송에서 문화 프로그램 PD로 근무하였으며, 플롱 출판사에서 10년간 문학 편집부장을 지냈다. 1967년에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재해석한 데뷔작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을 발표하면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이어 20세기 최고의 전쟁 문학으로 평가받는 『마왕』을 발표하여 1970년에 공쿠르상을 수상했고, 1972년에는 공쿠르상을 심사하는 아카데미 공쿠르 종신회원으로 선출되었다. 유럽의 정신사를 대변하는 지성인이자 증언자 미셸 투르니에는 파리 근교에서 평생 집필 활동에 전념하다 2016년 1월에 사망했다. 대표적인 소설 작품으로 『메테오르』(1975), 『가스파르, 멜쉬오르 그리고 발타자르』(1981), 『질과 잔』(1983)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뒷모습』(1981), 『짧은 글 긴 침묵』(1986), 『예찬』(2000) 등이 있다.

 

.............................................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 미셸 투르니에 (김화영 옮김, 민음사 세계문학)

마왕 - 미셸 투르니에 (이원복 옮김, 민음사 세계문학)

짧은 글 긴 침묵 - 미셸 투르니에 (김화영 옮김, 현대문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