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로 코엘료 - 연금술사 (1988년)
양치기 산티아고가 양떼를 데리고 버려진 낡은 교회 앞에 다다랐을 때는 날이 저물고 있었다. 지붕은 무너진 지 오래였고, 성물 보관소 자리에는 커다란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양들을 부서진 문을 통해 안으로 들여보낸 뒤, 도망치지 못하도록 문에 널빤지를 댔다. 근처에 늑대는 없었지만, 밤사이 양이 한 마리라도 도망치게 되면 그 다음날은 온종일 잃어버린 양을 찾아다녀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p.19)
그는 이 마을에서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 친구를 사귀는 일은 여행의 큰 즐거움이었다. 늘 새로운 친구들과의 새로운 만남. 하지만 그렇게 만든 친구들과 며칠씩 함께 지낼 필요는 없었다. 항상 똑같은 사람들하고만 있으면 - 산티아고가 신학교에 있을 때 그랬던 것처럼 - 그들은 우리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해버린다. 그렇게 되고 나면, 그들은 우리 삶을 변화시키려 든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이 바라는 대로 바뀌지 않으면 불만스러워한다. 사람들에겐 인생에 대한 나름의 분명한 기준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현실로 끌어낼 방법이 없는 꿈 속의 여인 같은 것이니 말이다. (p.39-40)
"나는 살렘의 왕일세."
노인이 말했다.
"어째서 왕께서 양치기와 더불어 이야기하십니까?"
너무도 놀라 당황하고 들뜬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산티아고가 물었다.
"이유야 많지.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자네가 자아의 신화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는 걸세."
산티아고는 '자아의 신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자네가 항상 이루기를 소망해오던 바로 그것일세. 우리들 각자는 젊음의 초입에서 자신의 자아의 신화가 무엇인지 알게 되지. 그 시절에는 모든 것이 분명하고 모든 것이 가능해 보여. 그래서 젊은이들은 그 모두를 꿈구고 소망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그 신화의 실현이 불가능함을 깨닫게 해주지."
노인의 이야기는 젊은 양치기에게 그리 대단한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무언지 알고 싶었다. 가게 주인의 딸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면 아주 놀라워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것은 나쁘게 느껴지는 기운이지. 하지만 사실은 바로 그 기운이 자아의 신화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네. 자네의 정신과 의지를 단련시켜주지. 이 세상에는 위대한 진실이 하나 있어.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거야.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은 곧 우주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때문이지.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는 게 이 땅에서 자네가 맡은 임무라네."
"그저 떠돌아다니고 싶은 마음도 그런 것인가요? 양털 가게 주인의 딸과 결혼하고 싶다는 마음도요?"
"아무렴. 보물을 찾겠다는 마음도 마찬가지야. 만물의 정기는 사람들의 행복을 먹고 자라지. 때로는 불행과 부러움과 질투를 통해서 자라나기도 하고, 어쨌든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된 유일한 의무지. 세상 만물은 모두 한가지라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p.46-48)
"사람들은 삶의 이유를 무척 빨리 배우는 것 같아. 아마도 그래서 그토록 빨리 포기하는지도 몰라. 그래, 그런 게 바로 세상이지." (p.50)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인생의 모든 일에는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는 것을 배우는 건 좋은 일일세." (p.51)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 어떤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대로 세상을 보는 게 아니라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대로 세상을 보는 거지." (p.73)
"제 마음은 참으로 간사합니다."
말들을 쉬게 하기 위해 잠시 멈춰 섰을 때, 그가 연금술사에게 말했다.
"마음은 제가 이대로 계속 가는 걸 원치 않아요."
"바로 그걸세. 그건 그대의 마음이 살아 있다는 증거일세. 그대가 마침내 얻어낸 모든 것들을 한낱 꿈과 맞바꾸는 데 두려움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지."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제가 제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거죠?"
"그대가 그대의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없기 때문이네. 아무리 그대가 듣지 않는 척해도, 마음은 그대의 가슴속에 자리할 것이고 운명과 세상에 대해 쉴새없이 되풀이해서 들려줄 것이네."
"제 마음이 이토록 저를 거역하는데도요?"
"거역이란 그대가 예기치 못한 충격이겠지. 만일 그대가 그대의 마음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그대의 마음도 그대를 그렇게 놀라게 하지는 않을 걸세. 왜냐하면 그대는 그대의 꿈과 소원을 잘 알고, 그것들을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지도 알 것이기 때문이네. 아무도 자기 마음으로부터 멀리 달아날 수는 없어. 그러니 마음의 소리를 귀담아듣는 편이 낫네. 그것은 그대의 마음이 그대가 예기치 못한 순간에 그대를 덮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야."
그는 사막의 길을 가는 내내 자기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마음이 부리는 술책과 꾀를 알게 되었고, 결국은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두려움이 가시고,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사라졌다. 어느 날 오후, 마음이 이제는 행복하다고 그에게 말해주었다.
'내가 때때로 불평하는 건, 내가 인간의 마음이기 때문이야. 인간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지. 인간의 마음은 정작 가장 큰 꿈들이 이루어지는 걸 두려워해. 자기는 그걸 이룰 자격이 없거나 아니면 아예 이룰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지. 우리들, 인간의 마음은 영원히 사라져버린 사랑이나 잘될 수 있었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던 순간들, 어쩌면 발견할 수도 있었는데 영원히 모래 속에 묻혀버린 보물 같은 것들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두려워서 죽을 지경이야. 왜냐하면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나면, 우리는 아주 고통받을 테니까.'
마음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 마음은 고통받을까 두려워하고 있어요."
달이 뜨지 않은 어두운 하늘을 함께 올려다보고 있던 어느 날 그가 연금술사에게 말했다.
"고통 그 자체보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더 나쁜 거라고 그대의 마음에게 일러주게. 어떠한 마음도 자신의 꿈을 찾아나설 때는 결코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것은, 꿈을 찾아가는 매순간이란 신과 영겁의 세월을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라고 말일세."
연금술사는 별을 바라보며 말해다.
'그래, 무언가를 찾아가는 매순간이 신과 조우하는 순간인 거야. 내 보물을 찾아가는 동안의 모든 날들은 빛나는 시간이었어. 매시간은 보물을 찾고자 하는 꿈의 일부분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어. 보물을 찾아가는 길에서, 나는 이전에는 결코 꿈꾸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했어. 한낱 양치기에게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일들. 그래 그런 것들을 감히 해보겠다는 용기가 없었다면 꿈도 꿀 수 없었을 것들을 말이야."
그는 자기 마음에게 말했다.
그날 오후 내내 그의 마음은 평온했고, 그는 아주 편안하게 잠들었다. 다음날 눈을 뜨자, 그의 마음은 만물의 정기로부터 나온 이야기들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모든 행복한 인간이란 자신의 마음속에 신을 담고 있는 사람이라고 마음은 속삭였다. 연금술사가 말했던 것처럼, 행복이란 사막의 모래 알갱이 하나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 횄다. 모래 알갱이의 하나는 천지창조의 한순간이며, 그것을 창조하기 위해 온 우주가 기다려온 억겁의 세월이 담겨 있다고 했다.
'지상의 모든 인간에게는 그를 기다리는 보물이 있어. 그런데 우리들, 인간의 마음ㅇㄴ 그 보물에 대해서는 거의 얘기하지 않아. 사람들이 보물을 더이상 찾으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어린이등게만 얘기하지. 그리고는 인생이 각자의 운명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그들을 이끌어가도록 내버려두는 거야. 불행히도, 자기 앞에 그려진 자아의 신화와 행복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거의 없어. 사람들 대부분은 이 세상을 험난한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새상은 험난한 것으로 변하는 거야. 그래서 우리들 마음은 사람들에게 점점 더 낮은 소리로 말하지. 아예 침묵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우리의 얘기가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기를 원해. 그건 우리가 가르쳐줄 길을 따라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걸 바라지 않는다는 뜻이지" (p.210-214)
'너는 먼 곳에서 만물을 바라보기 때문에 정말 지혜로워. 하지만 사랑은 모르는 것 같구나. 천지창조의 엿새째가 없었다면 인간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테고, 구리는 언제나 구리이고, 납은 언제까지고 납일 수밖에 없었을 거야. 만물에게는 저마다 자아의 신화가 있고, 그 신화는 언젠가 이루어지지. 그게 바로 진리야. 그래서 우리 모두는 더 나은 존재로 변해야 하고, 새로운 자아의 신화를 만들어야 해. 만물의 정기가 진정 단 하나의 존재가 될 때까지 말이야.'
그는 스스로에게 확인하듯 조용히 말했다.
해는 청년의 말을 한참 새기는 눈치더니, 한층 환하게 밫나기 시작했다. 둘의 대화를 주의깊게 듣고 있던 바람 역시 자신의 역할을 잊지 않았다는 듯, 해가 청년의 눈을 멀게 하지 못하도록 더욱 거세게 불어댔다.
'바로 그게 연금술의 존재 이유야. 우리 모두 자신의 보물을 찾아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게 연금술인 거지. 납은 세상이 더이상 납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납의 역할을 다 하고, 마침내는 금으로 변하는 거야.
연금술사들이 하는 일이 바로 그거야. 우리가 지금의 우리보다 더 나아지기를 갈구할 때,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도 함께 나아진다는 걸 그들은 우리에게 보여주는 거지.'
'그런데 어째서 내가 사랑을 모른다고 말하는 거지?'
해가 물었다.
'왜냐하면 사랑은 사막처럼 움직이지 않는 것도 아니고, 바람처럼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야. 그렇다고 너처럼 멀리서 만물을 지켜보는 것도 아니지. 사랑은 만물의 정기를 변화시키고 고양시키는 힘이야. 처음으로 그 힘을 느꼈을 때, 난 그것이 완벽한 것일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것은 모든 피조물들의 반영이며, 만물의 정기에도 투쟁과 열정이 있다는 걸 곧 깨달았어. 만물의 정기를 키우는 건 바로 우리 자신이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도 우리의 모습에 따라 좋아지거나 나빠지는 거지. 사랑은 바로 거기서 힘을 발휘해. 사랑을 하게 되면 항상 지금의 자신보다 더 나아지고 싶어하니까.' (p.241-242)
"무엇을 하는가는 중요치 않네. 이 땅 위의 모든 이들은 늘 세상의 역사에서 저마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니. 다만 대개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지." (p.253)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지상의 양식 - 앙드레 지드 (김화영 옮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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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 1947년 8월 24일~)
브라질의 소설가이다.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고 삶의 본질적 측면을 다루는 소설을 써서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았다.
1947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다. 저널리스트, 록스타, 극작가, 음반회사 중역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다, 1986년 돌연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로 순례를 떠난다. 이때의 경험은 코엘료의 삶에 커다란 전환점이 된다. 그는 이 순례에 감화되어 첫 작품 『순례자』를 썼고, 이듬해 자아의 연금술을 신비롭게 그려낸 『연금술사』로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이후 『브리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악마와 미스 프랭』 『오 자히르』 『알레프』 『아크라 문서』 『불륜』 『스파이』 『히피』 『아처』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다. 2009년 『연금술사』로 ‘한 권의 책이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작가’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었다. 2002년 브라질 문학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2007년 UN 평화대사로 임명되어 활동중이다.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훈하는 등 여러 차례 국제적인 상을 받았다.
파울로 코엘료는 SNS에 가장 많은 팔로워가 있는 작가로, 독자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일상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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