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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1. 서양 - 고전 소설

걸리버 여행기 - 조나단 스위프트 (류경희 옮김, 미래사)

by handaikhan 2023. 2. 4.

목차

걸리버가 사촌 심슨에게 보내는 편지
출판업자가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제1부 릴리펏(소인국) 여행기
제2부 브롭딩낵(거인국) 여행기
제3부 라퓨타, 바니발비, 그럽덥드립, 럭낵, 일본 여행기
제4부 휘넘국(마인국) 여행기

역자 후기 *** (반드시 읽어야 할 부분)
작가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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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스위프트 - 걸리버 여행기 (1726년)

 

1부 릴리펏(소인국) 여행기

 

나는 두 명의 관리들을 내 손에 들고 그들을 먼저 외투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그러고 나서 나머지 다른 주머니들 속에도 집어넣었다. 하지만 나는 두 개의 시계 주머니와 수색당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던 비밀 주머니는 몰래 제외 시켰다. 이 주머니들 안에는 나 이외에는 누구에게도 필요 없는 사소한 필수품들이 들어있었다. (p.52)

(주석)

이상과 같은 걸리버의 몸수색은 18세기 초반 영국의 휘그 당과 토리 당의 갈등을 암시한다. 1710년부터 토리 당에 몸담게 된 스위프트는 1714년 앤 여왕이 서거한 후 정권을 잡게 된 휘그 당 정적들의 탄압과 수색에 불만이 많았다. 특히 여기서는 1715년 시행된 토리 당 지도자 옥스퍼드 백작과 볼링블룩 자작에 대한 몸수색을 주로 풍자하고 있다. 이 두 지도자들은 스위프트의 절친한 친구들이기도 했다. 릴리 펫 (소인국) 여행 중의 걸리버는 종종 이 두 귀족들을 상징한다.

 

이 오락은 오직 고위 공직자나 왕실의 총애를 얻고자 하는 지원자들만이 할 수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젊은 시절부터 이 기술을 연마했으며, 대개 미천한 신분을 타고났거나 교양 교육을 받지 못한 자들이었다. 전임자의 사망이나 기타 불미스러운 사건에 의하여 어떤 공직 자리가 비게 되면 대여섯 명의 지원자들이 황제와 신료들 앞에서 자신들의 줄타기 솜씨를 과시하게 해달라고 청원을 드린다. 그러면 줄타기를 시행하여 떨어지지 않고 가장 높은 높이까지 점프를 하는 사람이 그 자리를 승계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종종 주요 대신들에게는 줄타기 기술을 시범적으로 보여 줌으로써 아직 그들의 솜씨가 녹슬지 않았다는 사실을 황제에게 확신시키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신료들 강에서도 특히 재무 담당 대신인 프림냅에게는 아주 가느다란 줄 위에서 그 나라의 어떤 귀족보다도 1인치 정도 더 높이 점프 하는 ㄴ것이 허락되었다. 나는 그가 줄 위에 고정된 쟁반 위에서 연달아 여러 차례 공중제비를 하는 것도 보았다. 정보 담당 비서였던 내 친구 렐드레살이, 공평하게 말한다면, 내 생각으로는 재무 대신에 이은 제2인자인 것 같았다. 나머지 고위 공직자들은 다 실력들이 비슷비슷했다. 

이런 오락들은 종종 치명적인 사고를 동반했으며 그에 관한 많ㅇ흔 사례들이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또 나 자신이 두세 명의 지원자들이 팔, 다리를 부러뜨리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신들에게 그들의 솜씨를 시범적으로 보이라는 명령이 내려졌을 때 그 위험은 한층 더 컸다. 그스스로의 기량을 과시하고 동료들의 기량을 뛰어넘어 보려고 경쟁을 벌이다가 너무 긴장한 나머지 한 번이라도 추락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들 중 단 한 명도 엇었다. 어떤 자들은 두세 차례나 추락하기도 했다. 나는 내가 이곳에 도착하기 일이 년 전쯤 프림냅조차도 추락을 하여, 만약 땅 위에 우연히 놓여 있던 왕의 쿠션 하나가 추락의 강도를 완충시키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그의 목이 부러졌을 것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줄타기 놀이와 비슷한 오락이 또 하나 있었다. 이 놀이는 특별한 경우에 오직 황제와 황후, 총리 대신 앞에서만 보여졌다. 황제가 6인치 길이의 멋진 비단실 꾸러미 세개를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하나는 파란색이고, 다른 하나는 빨간색, 세 뻔째는 초록색이다. 이 비단실 꾸러미들은 황제가 각별히 총애를 표시하고 싶은 신하들에게 상으로 주는 것이었다. 이 의식은 황제의 의전실에서 행해진다. 이곳에서 지원자들은 앞서의 줄타기 놀이 기술과는 전혀 다른 기술을 선보여야 한다. 나는 과거의 세계에서건 현재의 세계에서건 그 어떤 국가에서도 이와 조금이라도 비슷한 오락을 본 적이 없다. 양끝이 바닥과 수평 상태로 평행이 되게 황제가 양손으로 장대를 든다. 그러면 지원자들이 차례로 나와 그 장대 위를 뛰어넘기도 하고, 또 장대가 앞으로 움직이느냐 뒤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여러 차례 앞뒤로 장대 밑을 기어다니기도 한다. 어떤 때는 총리 대신이 전적으로 혼자서 이 장대를 잡기도 한다. 가장 민첩한 솜씨로 자신의 재능을 과시하며 도약이나 포복을 가장 오래 하는 사람에게 파란색 비단실이 주어진다. 다음이 빨간색, 세 번째가 초록색이다. 이들은 모두 상으로 받은 이 실을 허리에 두 번씩 감는다. 황실의 고위 관리들 중에서 이 실들을 허리에 장식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p.61-64)

(주석)

앞서의 줄타기 놀이와 이 장대 뛰어넘기 등의 놀이는 군주에게 알랑거리는 정부 고위 관료들의 형태와 군주의 변덕에 놀아나는 그들의 위험한 운명을 풍자한 것이다. 여기 나오는 재무 대신 프림냅은 스위프트가 싫어하던 휘그 당 지도자 로버트 월폴(이 작품의 주요 풍자 대상이다)을 의미하며, 렐드레실은 17171년 월폴을 승계한 후계자를 의미한다. 프림냅을 구해 준 왕의 쿠션은 실각한 월폴이 1721년 다시 재집정할 때 그를 도와주었던 왕의 정부를 의미한다. 삼색 비단실들은 각각 영국의 세 가지 최고 훈장들(가터, 바스, 써슬)을 상징한다.

 

 

진정한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은 편리한 쪽을 택하여 계란을 깨먹을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쪽이 편리한 쪽인지는 , 내 미천한 생각으로는, 모든 사람들의 양심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은 적어도 조정 책임자의 권한에 그 결정권이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p.82)

(주석)

계란을 깨먹는 방법에 관한 이 분쟁은 다음 세 가지의 종교 분쟁들을 암시하는 것이다. 1. 교황권을 부정한 헨리8세의 칙령 발표 이후 시작된 영국과 로마 교회 사이의 갈등 2. 영국 내의 로마 가톨릭 교도들(넓적한 쪽 지지자들)과 개신교도(청교도)들(뾰족한 쪽 지지자들) 사이의 갈등, 이로 인해 찰스 1세가 처형당했고, 제임스 2세가 강제로 국외 추방당했으며, 국내의 가톨릭 교도들에 대한 박해가 생겨났다. 3. 개신교 국가인 영국과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 사이의 갈등, 이 갈등 기간 동안 프랑스는 영국 출신 가톨릭 망명자들을 포용하였으며, 영국에 대한 음모를 획책하고 있다고 비난받았다.

 

황제 폐하는 다음에 기회를 봐서 내가 적의 나머지 배들도 포획해 오기를 바랐다. 군주들의 야심이랑 그처럼 끝이 없는 것이다. 이 황제 또한 블레퓌스크 제국을 제압하여 그곳을 자신의 한 영토로 만드는 일, 계란의 넓은 쪽을 깨먹자고 주장하다가 추방당한 자들을 전멸시키고 모든 사람들에게 뽀죡한 쪽만을 깨먹게 강요하는 일, 그리고 이런 모든 일들을 통하여 자신이 전세계의 유일한 군주가 되는 일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많은 정치적 주제들과 내 정의감에서 나온 근거들을 대며 황제의 관심을 이런 의도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나는 자유롭고 용감한 어떤 민족을 노예상태로 몰아넣는 도구는 절대로 되지 않겠다는 점을 그에게 분명히 밝혔다. 이 문제가 각료 회의에서 논의되었을 때 현명한 대신들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이런 대담하고 공공연한 선언은 황제 폐하의 의도나 정략과 너무나 어긋났기 때문에 그는 나를 용서하지 못했다. 그는 이런 속마음을 각료 회의에서 교묘한 방법으로 언급했다.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그 회의에서 몇몇 현명한 대신들은 적어도 침묵을 지킴으로써 나와 생각이 같음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비밀스런 나의 정적들은 간접적으로 나를 비방하는표현들을 억제하지 못했다고 한다. 바로 이때부터 황제와, 나에 대해 악의를 지닌 대신들 사이에 음모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이 음모는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모습을 드러냈으며, 나를 완전히 파멸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뻔하였다.군주들에게 바치는 공험이 아무리 막중한것이라 할지라도, 단한 차례라도 그들의 욕심을 충족시키는 일을 거부할 경우 그 공헌을 다시 저울에 놓고 달아 보면 그 무게가 너무나도 가벼워지는 것이다. (p.89-90)

 

 

2부 브롭딩낵(거인국) 여행기

 

비교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것도 크거나 작다고 말할 수 없다. (p.150)

 

그러나 다음날 아침 꼬마 보모 그럼달크리치가 자기 엄마에게서 재치 있게 모든 내용을 알아낸 뒤 그 음모를 내게 다 말해 주었따. 그 불쌍한 소녀는 나를 자기 가슴에 올려놓고 부끄러움과 슬픔 때문에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거칠고 난폭한 시골 사람들 때문에 내게 불행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며 불안해했다. 그들이 나를 잡아 보려다가 눌러 죽일지도 모르고 또 내 팔다리를 부러뜨릴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내가 얼마나 겸손한 성격을 지녔으며, 얼마나 명예를 존중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돈벌이를 위해 천박한 시골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된다는 사실을 얼마나 치욕으로 여길지도 알고 있었다. (p.172)

(주석) 스위프트의 시대에는 인간이든 동물이든 비정상적인 모습을 지닌 생물을 돈벌이를 위한 대중들의 구경거리로 만드는 일이 아주 흔했다. 따라서 걸리버의 봉변은 18세기에 유행했던 이런 오락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웃는 남자 - 빅토르 위고 (이형식 옮김, 열린책들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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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같이 그러한 중노동에 시달리느라 불과 몇 주 사이에 내 건강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주인이 나로 인해 돈을 더 많이 벌면 벌수록 그의 욕심은 그칠 줄을 몰랐다. 나는 뱃가죽이 등에 붙어 버릴 정도였으며, 온몸의 피골이 상접한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주인인 농부도 그걸 알았다. 그는 내가 곧 죽을 거라고 결론을 내리고는 가능한 나로부터 최대한의 이익을 뽑아내려고 마음먹었다. (p.180)

 

그들은 나를 난쟁이로 인정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내 왜소함이 모든 비교의 정도를 넘어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나라에서 가장 키가 작은 사람으로 알려진 왕비 마마의 난쟁이조차 키가 30피트에 가까웠다. 많은 토론끝에 결국 그들은 만장일치로, 내가 렐프럼 스칼카스, 즉 자연의 별종(글자 그대로 해석한다면)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러한 결론은 정확하게 유럽의 현대 철학과 일치하는 것이다. 현대 철학자들은 뭔가 신비로운 사례들이 발생하면 이를 회피해 버리는 옛 관습(이런 방식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추종자들이 자신들의 무지를 은폐하려고 애썼지만 실패했다)을 경멸하면서, 그 모든 곤란한 문제들에 대해 앞서와 같이 결론을 내려 버리는 놀라운 해결책을 발견해 내었으며, 이를 통하여 그들은 인간의 지식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시켰다. (p.187-188)

 

나는 매일같이 궁궐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이야깃거리들을 제공했다. 그럼달크리치는, 비록 그녀가 나를 사랑하긴 했지만, 내가 왕비 마마가 재미있어할 바보 같은 짓만 하면 바로 그녀에게 달려가 일러바쳤다. 한번은 몸이 좋지 않은 그녀에게 바람을 쏘여 주기 위해 가정교사가 시내에서 30마일쯤 떨어졌으며 약 한시간쯤 걸리는 거리에 있는 시골로 그녀를 데려간 적이 있었다. 그녀들은 들판의 작은 길 근처에서 내렸다. 그럼달크리치가 내 여행용 상자방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나도 그곳에서 나와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길 가운데에 커다란 소똥이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불가피하게 그것을 멋지게 뛰어넘는 활약상을 보여 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힘껏 내달렸지만 너무 낮게 도약하는 바람에 그만 무릎 부위까지 소똥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간신히 그 똥을 헤치고 나오자 마부 중 한 명이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손수건으로 나를 깨끗이 닦아 주었다. 온몸이 온통 소똥투성이였기 때문에 꼬마 보모는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나를 상자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다. 이 소식은 바로 왕비 마마에게 전해졌으며 마부 녀석들까지 온 궁궐에 소문을 퍼뜨려서, 여러날 동안 사람들은 나를 희생양삼아 실컷 즐거워했다. (p.224-225)

 

다른 세상에 대한 지식의 결핍은 늘 많은 편견들과 편협한 사고방식을 낳게 되는 것이다. (p.242)

 

국왕은 이 금찍한 장치(화약)에 대한 내 설명과 내가 했던 제안 때문에 공포감에 휩싸였다. 그는 나같이 땅바닥이나 기어다니느 벌레 녀석이 어쩌면 그렇게도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생각을 하게 됐는지 궁금해하며 깜짝 놀랐다. 또 내가 이 파괴적인 기계장치의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설명했던 유혈 낭자한 파괴의 장면들에 대해 전혀 무감각하고 친숙한 태도로 이야기하는 것에도 놀랐다. 이에 대해 그는, 아마 인류의 적인 어떤 사악한 천재 녀석이 이 장치의 최초 발명자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기 생각에 대해 말한다면, 비록 예술이나 자연 과학의 새로운 발견들만큼 자신을 기쁘게 하는 건 별로 없지만, 내가 말한 그런 위험한 비밀을 알게 되느니 차라리 자신의 왕국의 절반을 잃는 게 낫겠다고 주장했다. 그는 내게 목숨을 소중히 여긴다면 앞으로 다시는 이에 대한 언급을 삼가라고 명령했다.

이것은 참으로 편협한 원칙들과 근시안적 시각이 빚어 낸 기이한 태도였다! 존경과 사랑과 숭배를 자아내는 모든 자질과, 강력한 재능과, 큰 지혜와, 심오한 학식을 지니고 있으며, 존경할 만한 통치 기술을 갖고 있고, 거의 모든 백성들로부터 숭배를 받는 군주가, 우리 유럽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편협하고 불필요한 망설임 때문에 모든 백성들의 생명과 자유를 지킬 수 있고 자신을 막대한 재산의 주인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어떻게 놓쳐 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추후라도 이 훌륭한 국왕의 많은 덕목을 깎아내리려는 의도에서 이런 비난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이 비난 때문에 영국의 독자 여러분들에게 그의 성격이 좋지 않게 비춰질지 모른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나라 사람들의 이런 단점이 그들의 무지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보다 명민한 유럽의 지식인들처럼 아직까지 정치술을 학문으로 정착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하루는 국왕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던 일이 생각난다. 내가 우연히 우리 나라에는 통치 기술에 대해 씌어진 책이 수천 권이나 있다고 말하자, 그는 우리의 이해력을 아주 낮게 평가했다. 그는 군주이건 대신이건 간에 신비적인 태도와 교활함, 음모를 갖고 있다면 자신은 그 모든 것을 혐오하고 경멸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적이나 어떤 경쟁 국가가 관련되어 있지 않는 한, 내가 말한 국가의 기밀이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는 통치에 필요한 지식을 매우 편협한 기준, 즉 상식과 이성, 정의와 자비, 민사 및 형사 사건에 대한 신속한 결단력에 국한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고려할 필요도 없는 명백한 분야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누구든지 이삭 하나, 풀 한 포기가 자라던 땅에 이삭 두 개, 풀 두 포기가 자랄 수 있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모든 정치인들을 합쳐 놓은 것보다 더 큰 공헌을 인류에게 하는 것이며, 자기 나라에 더욱 필요한 봉사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p.244-245)

(함께 읽으면 좋은 책)

탁월한 사람을 모방하라: 마키아벨리처럼 - 신동준 (미다스북스)

마키아벨리의 조국 이탈리아는 서로마제국이 무너진 후 1천년 가까이 무수한 소국으로 분열되어 있다가, 13세기부터 몇 나라로 정리되기 시작했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시기에는 그 판도가 대체로 확정되어 북부에는 밀라노, 동북부에는 베네치아, 중부에는 피렌체와 교황령, 남부에는 나폴리 왕국이 자리 잡았다.

이렇게 되기까지 각국 간에는 급격한 충돌과 치열한 경쟁이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피렌체만 하더라도 해안을 끼고 있는 피사를 정복해 지배해야 했고, 이웃의 루카와는 늘 갈등을 빚고 있었다. 모든 도시국가가 이런 부단한 갈등과 불안 속에 있었기에 결과적으로 이탈리아는 커다란 분열을 드러냈고, 알프스 이북 통일국가의 침략을 당했을 때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1492년 마키아벨리가 23세 되던 해에 프랑스의 샤를 8세가 피렌체를 침공했을 때 메디치 정권은 곧바로 붕괴하고 말았다. 비록 경제적으로 번영되고 또한 문화와 예술로 유럽을 제압했을지라도, 정치적으로 통일국가를 이룩하지 못했던 탓에 통일된 프랑스의 무력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피렌체는 외형으로는 공화정 체제였으나, 실제로는 각 계층의 불안정한 연합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표면상의 평화에도 불구하고 각 계층 간의 불화와 갈등이 끊이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프랑스가 통일국가를 완성해 인근의 약소국을 도모할 당시 이탈리아는 국가적 통일을 이루지 못한 채 여러 소국으로 나뉘어 상호 대립과 충돌을 일삼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소국들은 또 제각기 외세와 결탁해 자국의 방위를 도모하고, 또 어떤 때는 가까운 나라를 침공하기도 했다. 자유도시 피렌체는 내부에 많은 위험을 안고 있었다. (...)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알프스 이북의 대륙국가처럼 강력한 군주가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서양의 근대 국가 형성기 때 강력한 군주가 등장해 주변의 영주를 평정해 통일왕조를 이뤘다. 이들 왕국은 국왕의 절대권으로 유지되었다. (p.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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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사전 - 김원중 (휴머니스트) <한마디의 인문학, 고사성어 사전의 개정판>

고복격앙 (鼓腹擊壤)

요임금은 백발의 한 노인이 배를 두드리고 땅을 구르며 흥겹게 노래 부르는 것을 보았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쉰다네

밭을 갈아 먹고

우물을 파서 마시니

임금의 힘이 어찌 내게 필요하겠는가

(日出而作 日入而息 耕田而食 鑿井而飮 帝力何有于我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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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나라로부터 어떠한 접근도 불가능한 영토를 지닌 이 군주가 도대체 어떻게 해서 군대를 생각해 내게 되었고, 백성들에게 군사 훈련을 시킬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무척 궁금했다. 그러나 나는 곧 그와의 대화와 역사책을 통하여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 나라 역시 수세기 동안 세월이 흘러오면서, 모든 인간들이 걸리기 쉬운 바로 그 질병 때문에 고통을 겪어 왔던 것이다. 즉 종종 귀족들은 권력을 잡기 위해 싸우고, 백성들은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하고, 국왕은 절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싸워 왔던 것이다. 다행이 이 모든 갈등들은 그 나라의 법들이 잘 조절해 오긴 했지만, 가끔씩 세 당사자 중의 한쪽이 원칙을 위반하여 한 차레 이상 내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이 나라의 마지막 내란은 다행이 국민 총 의회를 소집한 현 군주의 조부에 의하여 종식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모두의 동의 하에 정착된 민병대가 그 이후로도 가장 엄격하게 자신들의 의무를 다하며 지금까지 유지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p.259)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조그만 집들과 나무들, 가축들,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릴리펏에 다시 돌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혹시 밟을까봐 불안했으며, 몇 번이나 길을 막는 사람들에게 비켜서라고 큰소리를 질러 댔다. 이 무례한 행동 때문에 나는 한두 차례 머리가 깨지는 봉변을 당할 뻔했다.

집에 도착하여 하인이 문을 열어주자 나는 머리를 부딪칠까봐 마치 문 밑을 지나는 거위처럼 몸을 숙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내가 달려나와 나를 포옹했지만, 나는 그녀가 내 입술에 결코 닿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는 그녀의 무릎 높이보다도 더 낮게 몸을 숙였다. 또 딸이 내게 축복을 내려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무릎을 꿇었지만 나는 그녀가 일어설 때까지 그녀를 볼 수 없었다. 너무 오랫동안 머리와 눈을 60피트 이상의 높이로 놀려다보며 치켜뜨는 데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또 딸의 허리를 한 손으로 잡고 들어올리려고도 하였다.

나는 하인들과 집으로 찾아온 친구들을, 마치 그들이 피그미족들이고 내가 거인인 양 내려다보았다. 나는 또 아내에게 검소한 생활을 너무 심하게 한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그녀와 딸이 너무 굶어서 말라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ㅇ니다. 요컨대 나는 설명이 안 되는 이상한 태도로 행동했기 때문에, 가족과 친지들은 선장이 그랬던 것처럼 처음에는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습관과 편견이란 것이 얼마나 큰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p.270-271)

 

제3부 라퓨타 (하늘을 나는 섬)

Sea of Corea (한국해) (p.276)

(참조)

 

 

걸리버 여행기 - 조나단 스위프트 (신현철 옮김, 문학수첩)

Sea of Corea (한국해)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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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동안 바위 사이를 걸어다녔다. 하늘은 완벽하게 맑았고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얼굴을 돌려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다. 구름이 해를 가려 일어나는 현상과는 사뭇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를 돌아다보니 나와 태양 사이에 위치한 거대한 불투명 물체가 섬 쪽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

생명에 대한 자연스러운 애착이,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나는 충동적인 환희로 나를 몰고 갔다. 나는 이번 일이 어떤 식으로든 이 황량한 섬과 내가 처해 있는 상황에서 나를 구출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람이 사는, 이 하늘에 떠 있는 섬을 보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독자 여러분께서는 상상하실 수 없을 것디아. (p.280-281)

 

의자에서 내리자 사라믇ㄹ이 몰려와 나를 에워쌌다. 하지만 내게서 가장 가까이 서 있는 사람들이 좀더 지위가 높은 사람들인 듯했다. 그들은 온갖 놀라운 표정들과 몸짓들을 하며 나를 바라다보았다. 하지만 그 점에 있어서는 사실 내가 더했다. 나는 그때까지 외모나 복장, 얼굴 생김새가 그렇게 이상한 사람들은 결코 본 적이 없었다. 그들으니 머리는 모두 오른쪽 아니면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으며, 한쪽 눈은 안쪽으로 다른 쪽 눈은 하늘 위쪽으로 쏠려 있었다. (p.286)

(주석)

이 라퓨타(하늘을 나는 섬) 사람들은 과학 이론, 수학 이론, 음악 이론 등 스위프트가 생각하기에 인간의 고유한 관심사인 윤리학과 무관하며 터무니 없이 비실용적이기만 한 이론들에 열중해 있던 동시대 사람들을 풍자한 것이다.

 

그들의 주변 곳곳에는 하인 복장을 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 하인들은 마치 도리깨처럼 생긴, 바람 주머니가 붙어 있는 짤막한 채 모양의 막대기들을 들고 있었다. 바람 주머니 안에는 소량의 마른 콩들이나 조그만 조약돌들이 들어 있었다. 이들 하인들은 수시로 이 바람 주머니를 가지고 자신들 주변에 있는 주인들의 입과 귀를 툭툭 쳐댔다. 나는 처음에는 그게 뭘 의미하는 행동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 주인들의 정신이 온통 사색에만 몰두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말하고 듣는 신체 기관에 외부적인 자극을 주지 않으면 그들이 말도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도 못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이 때문에 감당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늘 자신의 가정에 플래퍼라는, 즉 바람 주머니 채로 입과 귀를 쳐서 주의를 환기시켜 주는 하인을 두고 있었다. 그들은 이 하인 없이는 외출을 하지 않았으며 누군가 방문도 하지 않았다. 이 하인의 임무는 두 사람 이상의 사람들이 만났을 때, 우선 말하려고 하는 사람의 입과 그 말을 들을려고 하는 사람의 오른쪽 귀를 부드럽게 쳐주는 것이었다. 이 플래퍼는 그의 주인이 걸어가는 도중에도 부지런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다. 즉 때가 되면 주인의 눈을 부드럽게 쳐주었다. 그가 늘 사색에 골몰해 있었기 때문에, 분명히 가파른 절벽을 만나면 굴러 떨어지고 장대를 만나면 머리를 부딪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거리에서 다른 사람들과 부딪치거나 혹은 하수구에 빠질 위험도 있었다. (p.287-289)

 

마침내 우리는 왕궁으로 들어가 대전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의 옥좌에는 국왕이 앉아 계셨으며, 그 양 옆으로는 대신들이 늘어서 있었다. 옥좌 앞의 큰 테이블에는 지구의, 천체의, 온갖 종류의 수학 도구들이 잔쯕 놓여 있었다. 왕은 왕실의 모든 사람들이 모여 있는 한가운데로 우리 일행이 아주 시끄럽게 입장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를 전혀 주목하지 않았다. (p.289)

(주석)

이 왕은 음악과 과학의 후원자였지만, 사실은 양 분야에 대해 무식했던 조지 1세를 풍자한다.

 

내가 날아다니는 섬, 혹은 허공에 떠 있는 섬이라고 해석했던 이 나라의 국명은 본래 라퓨타였다. 나는 이 단어의 진정한 어원이 무엇인지 결코 알 수가 없었다. 본래 '라프'란 단어는 고어에서 '높다'는 우ㅢ미였으며, '운투'는 '통치자'를 의미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여기서 '라푼투'라는 단어가 생겨났으며, 말의 와전 과정에 의하여 다시 이 단어에서 '라퓨타'라는 단어가 파생되어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식의 파생 과정이 약간 억지 설명처럼 들려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그 나라의 학자들에게 내가 추론한 이론을 감히 제시했다. 즉 '라퓨타'라는 말이 '콰지 라프 아우티드'란 말에서 나온 것 같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라프'는 정확하게 바다 위에서 춤추는 태양 광선을 의하며, '아우티드'는 날개를 의히한다는 말이다. 어쨌든 나는 이 문제에 대하여 내 의견을 무리하게 주장하진 않겟으며, 다만 그 결론을 현명하신 독자 여러분께 맡기겠다. (p.292)

(주석)

자신의 시대의 문헌적 연구에 대한 스위프트의 또 다른 패러디이다. 걸리버는 이 단어의 또 다른 어원인 스페인어의ㅣ "라 퓨타"는 빠뜨리고 있다. 이 단어는 '창녀'란 뜻으로 자신의 육체적 외모에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열중해 있는 이곡 사람들을 빈정대는 적절한 이름이다.

 

내가 그들 나라에 도착하기 3년쯤 전에, 왕이 자신의 영토에 시찰을 나갔다가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한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게 정례화되어 있지만, 왕이 시찰을 나가면 가장 첫 번째로 방문하는 도시가 바로 그 나라의 제2 도시인 린달리노였다. 왕이 출발한 지 사흘째 되던 날, 극심한 압제에 대해 종종 불평을 해오던 이 도시의 시민들은 도시의 문들을 모두 닫아걸고 총독을 체포한 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와 엄청난 노력으로 그 도시의 네 귀퉁이에 네 개의 대형 탑을 세웠다. 그것은 도시 중심부에 서 있는 강력한 뾰족 바위와 높이가 같은 탑들이었다. 그들은 바위뿐만 아니라 각 탑의 꼭대기에 거대한 자석을 붙여 놓았다. 그들은 또 계획이 실패했을 때를 대비해서 엄청난 양의 화약을 준비해 놓았다. 만약 자석 계획이 잘못되는 경우에는 이 화약을 가지고 섬의 밑바닥을 폭파시키려는 의도에서였다.

여덟 달이 지나서야 왕은 란달리노 시민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완전히 알게 되었다. 그는 그때서야 섬을 이동시켜 그 도시 위에 떠 있게 하라고 명령했다. 시민들은 모두 마음을 하나로 모았으며 충분한 돌덩이들을 비축해 놓았다. 그 도시의 시내 한가운데로는 큰 강이 흐르고 있었다. 왕은 그들로부터 햇볕과 비를 빼앗기 위해 며칠 동안 그들의 머리 위에 떠 있었다. 그는 많은 줄들을 아래로 내려보내라고 명령했지만, 단 한 사람도 청원서를 올려 보내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그 대신 시민들은 자신들의 모든 불만 사항의 개선, 대사면 조치 실시, 자신들의 총독 선출권 인정, 기타 면제 조치 실시 등과 같은 매우 대담한 요구 사항들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왕은 모든 섬 주민들에게 섬의 가장 아래쪽 회랑으로 내려가 거대한 돌덩이들을 그 도시로 던지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이미 시민들은 자신들의 몸과 재산을 네 개의 탑들과 다른 튼튼한 건물들, 그리고 지하 저장실들에 옮겨 놓음으로써 이런 불행에 대비하고 있었다.

왕은 이제 이 오만한 백성들을 진압하기로 결심하고는 섬을 서서히 하강시켜 탑들과 뾰족 바위로부터 40야드되는 곳까지 이르게 하라고 명령했다. 명령은 즉시 실행되었다. 그러나 이 명령을 집행하던 관리들은 섬의 하강 속도가 평상시보다 훨씬 빠르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또한 자석의 방향을 바꾸어도 섬을 멈추게 하는 것이 매우 힘들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오히려 섬이 자꾸 아래쪽으로 끌리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 놀라운 사태를 왕에게 긴급히 보고했으며, 신속하게 섬을 높이 상승시키라는 허락을 내려 달라고 간청했다.

왕은 즉시 이에 동의했다. 곧 전체 대신 회의가 소집되고 그곳에 자석 담당 관리들도 참석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그들 중에 가장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은 관리가 한 가지 실험을 해 보겠다는 허락을 얻어 냈다. 그는 100야드짜리 튼튼한 줄을 준비한 뒤, 그들이 느낀 자력이 미치지 않는 곳까지 섬을 상승시켰다. 그러고 나서 그는 그 줄의 끝에 섬의 팀바닥, 즉 아래쪽 표졈을 구성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성분의 광물을 부착시킨 뒤, 섬의 제일 아래쪽 회랑으로 내려가 아래 도시의 첨탑 꼭대기 쪽으로 천천히 내려뜨려 보았다. 그 관리는 줄에 매달린 광석이 채 4야드도 내려가지 않아 갑자기 강력하게 아래쪽으로 끌려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줄을 다시 위로 끌어올리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는 또 조그만 철광석 조각들도 아래로 던져 보았다. 그것들 역시 맹렬한 기세로 모두 탑 꼭대기 쪽으로 끌려 내려가는 사실이 관측됐다. 나머지 세 탑들과 바위에 대해 같은 실험을 했을 때도 역시 같은 결과가 나왔다.

이 사건은 왕의 조치들을 완전히 무산시켰다. 이에 따라 다른 상황들은 더 이상 고려하지 않고 왕은 그 도시가 요구하는 조건들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나중에 한 대신으로부터, 만약 그때 이 섬이 다시 자신들의 도시로부터 상승이 불가능할 정도로 하강했더라면, 시민들은 단호하게 자신들의 도시에 그 섬을 붙여 버린 후 왕과 그의 신하들을 모두 죽이고 정부를 완전히 바꿔 버릴 계획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왕국의 기본법에 의하여 왕과 그의 두 아들은 절대로 이 섬을 떠날 수가 없었으며, 왕비 또한 출산이 불가능한 나이가 될 때까지 마찬가지였다. (p.308-311)

(주석)

이 내용들은 초판을 포함하여 1899년까지의 <걸리버 여행기>, 모든 판에서 삭제되었던 부분이다. 초판 출판인들은 이 내용이 정부의 비위를 상하게 할까봐 빼버렸던 것이고, 그 후의 출판인들은 이런 내용이 있었는지 몰라서 빠뜨린 것이다. 주 내용은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의 영국에 대한 반항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가짜 화폐 제작권을 왕의 정부를 이용하여 얻어 낸, 우드라는 영국 출신 위조 화폐 제작자에 대한 아일랜드인들의 반발을 암시하고 있다.

여기서 제2 도시 린달리노(lINDALINO)는 'lin' 이라는 철자가 두번 (double) 들어간데서 'double', 'lin' 즉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Doublin)을 암시한다.

 

나는 비록 이 섬에서 푸대접을 받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상당히 무시를 당햇으며 경멸의 대상까지 되었음을 고백한다. 왕과 그의 신하들은 수학과 음악 이외의 다른 어떤 지식에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으며, 나는 그 두 분야에서 그들보다 훨씬 열등했기 때문에 매우 무시를 당한 것이다.

사실 이 섬의 신기한 볼거리들을 이미 다 본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이 섬을 떠나고 싶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진짜로 지겨워지기도 했다. 그들이 앞의 두 분야에 있어서 탁월한 사람들이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나도 높이 평가하며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너무나 추상적인 사색에만 몰두해 있었다. 나는 그렇게 재미없는 사람들은 만나 본 적이 없다. 그 나라에 머무르는 동안 나는 주로 여자들과 상인들, 플래퍼들, 시동들하고 대화를 나누었다. 그 때무누에 나는 경멸의 대상으로까지 전략해 버렸지만, 그래도 이런 사람들이 내가 합리적인 대답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p.312-313)

 

나는 마침내 왕과 그의 신하들과 작별을 하고 지상으로 내려갔다.

라퓨타 왕의 영토인 지상의 나라는 바니발비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그 수도는 라가도라고 불리는 도시였다. 나는 지상의 딱딱한 땅 위에 서 있게 되자 다소 안도감을 느꼈다. 내 복장이 그곳 사람들과 똑같았기 때문에 아무런 관심도 끌지 않으면서 그 도시를 걸어다닐 수 있었으며,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곧 소개받았던 인사의 집을 찾아냈다. 그에게 그의 친구인 섬의 귀족이 써준 소개장을 내밀자 그는 아주 친절하게 나를 맞아 주었다. 문오디라는 이름의 이 귀족은 내게 자기 집 방 하나를 내주었따. 이곳에 모무르는 동안 나는 그의 극진한 환대를 받으며 계속 여기에 묶었다.

이곳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그는 나를 자신의 마차에 태워 시내를 구경시켜 주었다. 그 도시는 런던의 절반만한 크기였다. 그러나 집들이 아주 이상하게 지어져 있었고 대부분은 수리가 안 되어 낡은 상태였다. 거리의 행인들은 빨리 걸어다녔고 난폭한 표정들이었으며, 시선은 한 군데에 고정되어 있었고 대부분 누더기 옷들을 걸치고 있었다.

우리는 시의 성문을 지나 시골 쪽으로 3마일 정도를 가보았다. 많은 농부들이 여러 종류의 농기구를 들고 일하고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땅이 꽤 비옥해 보이는데도 밀이나 다른 곡식의 잎들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도시와 시골 모두의 이런 이상한 광경에 대해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따라는 나는 무례를 무릅쓰고 안내하던 문오디 경에게, 거리건 들판이건 사람들의 머리와 손, 얼굴들이 그처럼 바쁘게 돌아가는데 그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 전혀 보이지 않으니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물어보았다. 또 땅들은 왜 그렇게 형편없이 경작되고 있는지, 집들은 왜 그렇게 이상하게 지어져 있고 다 허물어져 가며, 사람들의 표정과 옷차람은 왜 그렇게 불행해 보이고 남루한 것인지 설명을 부탁했다. (p.314-345)

(주석)

문오디(Munodi)라는 이름은 '문둠 오디(mundum odi)', 즉 '나는 세상을 증오한다'는 의미의 라틴어에서 온 것이라고 한 학자가 주장한 바 있다. 문오디 경은 스위프트의 친구들이었던, 실각당한 토리 당 지도자 블링브룩 자작과 옥스퍼드 백작을 상징한다.

 

내가 그에게 그 나라와 주민들에 대해 솔직하게 바난을 해도 그는 별다른 반응 없이 다음과 같은 말만 했다. 즉 내가 아직까지 어떤 판단을 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그 나라에 오래 있었던 것이 아니며, 세상의 여러 나라는 각각 나름대로의 관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일반적인 화제에 대해서도 그는 마찬가지였다.(p.316)

 

그는 집에서 20마일쯤 가면 자신의 사유지가 있으며, 그곳의 별장에 가면 이런 종류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한가한 시간을 더 많이 즐길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전적으로 그의 뜻에 따르겠다고 햇으며, 우리는 다음날로 길을 떠났다.

여행을 하던 도중에 그는 농부들이 토지를 운영하는 몇 가지 방법들을 내게 관찰해 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모습은 내게 전혀 이해가 안 되는 모습이었다. 왜냐하면 극소수의 몇몇 곳을 제외하고는 어디에서도 밀 이삭이라거나 풀 이파리 하나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 시간 정도를 나아가자 풍경이 완전히 뒤바뀌기 시작했다. 매우 아름다운 시골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인근의 농가들은 멋들어지게 지어져 있었으며, 들판은 포도밭, 밀밭, 초원들로 깔끔하게 구획 정리가 되어 있었다. 나는 이보다 더 마음에 드는 전경을 본 기억이 없었다. 문오디 경은 내 안색이 밝아오는 것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며, 바로 여기서부터가 그의 사유지의 시작이며, 별장에 도착할 때까지는 그런 풍경이 변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나라 사람들은 그가 일을 형편없이 처리하고 왕국 전체에 아주 나쁜 본보기를 보이고 있다며 조롱하고 경멸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그런 행동을 노인들이나 고집쟁이들, 혹은 자신처럼 힘없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따르고 있다고 했다. (p.316-317)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비상경보기 - 강신주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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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침내 그의 시골 별장에 도착했다. (..) 나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적절한 찬사를 늘어놓았다. 그러나 그는 저녁 식사를 마칠때까지 그런 찬사에 대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옆에 아무도 없게 되자 그는 우울한 태도로, 이제는 아무래도 자신의 집을 재건축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또 자신의 모든 농경지를 파헤치고 다른 땅들까지 합쳐서 현대의 경작 방법이 요구하는 대로 다시 개간을 해야 할 것 같으며, 자신의 모든 소작농들에게도 같은 지시를 내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에게 오만하고, 괴팍하고, 가증스럽고, 무식하고, 변덕스럽다는 비난이 쏟아질 것 같고 나아가 왕의 불쾌감을 고조시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가 나에게 그 일에 관한 자세한 사정을 이야기해 주자, 내가 품었던 경탄의 감정은 중지되거나 줄어들어 버렸다. (..) 그가 말한 사정의 골자는 다음과 같았다.

"약 40년 전쯤에 업무로 간 것인지 놀러 간 것인지 모르겠지만 몇몇 사람들이 라퓨타로 올라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 5개월 정도 모무르다가 수박 겉 핥기 식의 수학 지식과 거기서 얻은 경박한 기질을 잔뜩 품고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돌아오자마자 아래쪽 지상 나라의 모든 일들의 진행 방식이 싫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예술, 과학, 언어, 기술들을 새로운 기초 위에서 다시 시작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 목적을 위하여 그들은 라가도에 학술 연구원을 설립하기 위한 국왕의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그러자 이런 분위기가 백성들 사이에도 급속히 퍼져 나갔으며 왕국의 영향력 있는 도시들 중에서 그런 학술원이 세워지지 않은 도시는 단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이 학술원의 학자들은 농업과 건축에 필요한 새로운 제도들과 도구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런 것들에 의해 한 사람이 열 사람 몫의 일을 하게 될 것이고, 일주일 안에 영구적인 자재들을 사용하여 영원히 수리하지 않아도 되는 궁궐을 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그들은 모든 과일들을 우리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철에도 재배할 수 있을 것이며 지금보다 100배 이상 수확을 늘릴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그들은 그외에도 수많은 행복한 제안들을 했습니다.

유일한 불편은, 이런 계획들 중 아직까지 그 어느 것 하나도 완성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와중에 온 나라는 비참할 정도로 황폐해졌으며, 집들은 폐허로 변해 버리고, 백성들은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든 페허들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낙심하기는커녕 희망과 절망에 동시에 내몰리면서, 자신들의 계획을 시행하는 일에 전보다 50배는 더 격렬하게 열중하였습니다.

하지만 나의 경우, 전혀 그런 사업가적인 기질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 옛날 방식에 만족해하며 그것을 지켜 나갔습니다. 즉 조상들이ㅣ 지은 집에 계속 살았고, 아무런 개혁 없이 인생의 모든 분야에서 조상들이 살던 방식대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몇몇 다른 고위 인사들과 귀족들도 나와 같은 방식을 고수했지만, 우리는 에술의 적이며, 무식하고, 불량 국민이란 비난을 들었습니다. 또 국가를 전반적으로 향상시키는 일보다 자신의 안락함과 나태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란 비난도 들었습니다." (p.318-319)

(주석)

라가도의 이 학술원은 1660년에 과학의 연구 발전을 위해 세워진 영국 왕립 학술원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곳의 '연구원'들은 비실용적이고 허황한 연구 계획들과 활동들에 빠져 있는 모든 학자들을 풍자한다.

 

나는 정치학 연구를 하는 연구원들의 학교에서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내가 판단하기에 이옷의 교수들은 모두 정신이 나간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런 광경은 늘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 불행한 학자들은 군주들에게 제시할 여러 가지 허황된 제안들을 연구하고 있었다. 즉 총신을 뽑을 때 지혜와 능력, 도덕성을 근거로 하라고 설득한다든지, 백승들의 이익을 염두에 두라고 대신들을 가르치라는 제안 같은 것들이다. 또한 그들은 훌륭한 공적과 위대한 능력, 탁월한 봉사에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하고, 왕자들에게 자신들의 진정한 관심사를 깨닫게 하여 그것이 백성들의 관심사와 공통의 기반 위에 있게 해야 하며, 공직자를 임명할 때 그 자리의 적임자를 선출해야 한다고 군주들을 설득하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들은 그외에도 그동안 어떤 사람도 가슴에 품어 본 적이 없는, 터무니없는 많은 망상들을 제안하였다. 이런 제안들은 내게 다시 한 번 다음과 같은 옛말이 진실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철학자들이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은 한결같이 너무나도 허황되고 비합리적인 것들뿐이다." (p.336-338)

(주석)

이곳은 스위프트 특유의 아이러니가 짙게 베어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부분이다. 걸리버가 미친 사람들로 규정한 이곳 정치학자들의 생각은, 사실은 스위프트가 생각하던 이상적인 정치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학술원에서 정치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모두 그처럼 몽상적인 사람들만은 아니라고 인정하며, 그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내리려고 한다. 우선 이 학교에는 통치술의 모든 본질과 이론 체계에 완벽하게 정통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매우 독창적인 의사 한 명이 있었다. 이 훌륭한 의사 선생은 통치자들이 지닌 악덕과 나약함, 복종자들이 지닌 방종에 의해 공공 행정이 빠지기 쉬운 모든 부정부패에 대한 효과적인 치유책을 발견하는 데 자신의 연구를 아주 유용하게 활용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모든 작가들과 이론가들이 동의하고 있듯이 우리의 타고난 육체와 정치 집단 사이에는 아주 엄격한 보편적 유사성이 존재한다. 이 양자의 건강과 질병이 동일한 치료법에 의해 보존되고 치유된다는 사실보다 더 명백한 증거가 또 있을 수 있을까? 종종 상원 의회나 대회의의 의원들은 다음과 같은 질병들을 앓는다고 인정되고 있다. 즉 반복성, 염증성, 만성 피부염, 과다한 두통이나 그보다 심한 정신 질환, 강력한 발작증....무수한 질병들이다.

따라서 이 의사는 매년 상원 의회가 열리게 되면 처름 사흘 동안은 의사 몇 명이 그곳에 참석을 해서, 하루의 논쟁이 끝날 때마다 모든 상원들의 맥박을 체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고 나서 심각하게 몇몇 질병들의 원인과 치료책을 숙고하고 난 뒤, 나흘째 되는 날 적절한 약을 갖고 다시 상원으로 돌아와 의원들이 의회에 참석하기 전에 그들 각각에게 다음과 같은 약들을 조제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따. 즉 진정제, 식용증진제, 설사약, 부식제, 변비 유발제....그리고 이 약들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보고 다음번 회기 때 약을 다시 쓰거나, 바꾸거나, 빼거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계획은 대중들에게 많은 비용 부담이 요구되는 일이 아니며, 내 초라한 견해에 의하면 상원이 입법에 참여하는 나라들의 빠른 업무 수행에도 큰 효용 가치가 있을 것 같았다. 또 만장일치를 이끌어 내고, 논쟁을 줄이고, 지금 현재 입을 다고 이쓴 몇몇 입들을 열어주고, 젊은이들의 성질을 죽이고, 노인들의 독선을 고쳐주고, 어리석은 자들을 일깨워 주고, 뻔뻔한 자들의 기를 죽게 할 것 같았다.

한편 왕의 총신들이 짧고 취약한 기억력 때문에 고생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이 의사는 이런 주장을 폈다. 누구든 총리 대신을 접견할 때에는 자신의 용무를 최대한 짧게, 그리고 가장 명료하게 이야기해야 하며, 떠날 때는 그의 건망증을 예방하기 위하여 그의 코를 비틀고, 배를 걷어차고, 티눈 난 곳을 밟아 주고, 양쪽 귀를 세 차례 세게 잡아당기고, 엉덩이를 바늘로 찌르고, 팔을 꼬집어 시퍼렇게 멍들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매번 접견 때마다 용무가 해결되거나 혹은 완전히 거절될 때까지 같은 일을 반복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전국 총 의회에 참석하는 모든 상원 의원은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고 그것을 옹호하기 위하여 논쟁을 벌이고 난 뒤, 실제 투표에서는 그 의견과 정반대로 투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만 한다면 틀림없이 그 투표 결과는 일반 대중들의 이익을 위하는 방향으로 결말이 날 것이라는 것이다.

국가의 당파 싸움이 격렬해질 때를 대비하여 그는 양당을 화해시키는 놀라운 묘안을 제안하기도 했는데,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각 당에서 100명의 지도자들을 뽑는다. 그리고 각 당에서 머리 크기가 비슷한 사람들을 뽑아 짝을 지어 분류한다. 그런 다음 솜씨 좋은 두 명의 외과 의사들을 시켜 짝이 되는 두 사람의 후두부를 동시에 똑같이 절개한다. 그렇게 절개된 후두부들을 교환하여, 즉 뇌의 절반씩을 서로 바꾸어 상대방의 절개된 후두부 자리에 각각 가져다 붙인다.

이 수술은 사실 상당히 정확성을 요구하는 작업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 의사는, 만약 이 일이 솜씨 있게 잘되기만 한다면 정당의 파벌 싸움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책이 될 것임을 절대적으로 확신한다고 자신했다. 그의 주장은 이러했다. 즉 하나의 두개골이라는 공간 안에서 서로 논쟁을 벌이게 된 두 반쪽 뇌들은 곧 서로를 이해하게 될 것이고, 또한 중용과 건전한 사고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들만이 세상을 감시하고 지배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상상하는 사람들의 머리에 너무나도 요구되는 사항이었다. 그리고 각 정파 지도자들의 뇌의 양이나 질에서의 차이에 대해서, 그근 그것은 아주 사소한 문제라고 우리를 확신시켰다. (p.338-341)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가 오랫동안 살았었던 트리브니아라는 나라는 (그곳 백성들은 당그덴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만), 백성들 대다수가 온통 발견자, 목격자, 밀고자, 고소인, 기소인, 증인, 맹세하는 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핫후인과 똘마니들이 몇 명씩 붙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특정 각료 대신이나 그의 부관의 돈을 받고 매수되어 그 대신의 깃발 아래 모여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나라에서 일어나는 음모들은 대개, 영향력 있는 정치가로서 자신의 입지를 끌어올리려는 사람들, 엉망진창인 행정부에 새로운 원기를 불어넣어 복구시키려는 사람들, 모든 사람들의 불만을 억누르고 관심을 다른데로 돌려 버리려는 사람들, 몰수한 재산으로 자신의 금고를 채우려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개인적 이익에 얼마나 잘 부합하는가에 따라 대중들이 신뢰할 만한 여론을 조작하는 사람들이 하는 수작입니다.

그들은 우선 어떤 음모가 시작되면 의심받는 사람들 중 누구를 고소할지 자기들끼리 미리 의견을 모으고 결정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며 이 희생자들의 모든 편지와 서류들을 확보한 뒤 이들을 체포합니다. 이 서류들은 단어, 음절, 글자로부터 수수께끼 같은 의미를 찾아내는 데 이골이 난 능숙한 전문 기술자들에게 보내집니다. (..)

이런 방법이 실패하면 그들은 더욱 효과적인 다른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합니다. 바로 그들 나라의 학자들이 글자 수수께끼라고 부르거나 철자 바꾸기 놀이라고 부르는 방법입니다. 첫째로 그들은 모든 단어의 첫 글자들을 정치적 의미로 해독해 냅니다. 예를 들어 N자는 음모를 의미하고, B는 기병대를, L은  함대를 의한다고 해독하는 식입니다. 두 번째는 어떤 의심스러운 문서에 있는 알파벳 글자들의 위치와 순서를 재배열하여 불만이 있는 측의 깊은 계략을 밝혀 낼 수 있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만약 내가 한 친구에게 '우리 형 톰이 치질에걸렸어 (Our Brothe Tom has just got the Piles)'라고 편지에 썼다면, 암호 해독 기술자는 이 문장을 구성하는 똑같은 글자들이 다음과 같은 단어들로 재배열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냅니다. '저항하라-음모가 감지되고 있다-탑으로부터(Resist, - a Plot is brought home-The Tour)' 이것이 바로 철자 바꾸기 해독법입니다." (p.343-345)

(주석)

트리브니아(Tribnia)는 브리튼(Britain)의, 랑그덴(langden)은 잉글랜드(England)의 철자 바꾸기 장난이다.

 

총독과 그의 가족들은 좀 유별난 하인들의 시중을 받고 있었다. 그는 강신술(영혼 소환 능력)을 이용하여 자기 마음대로 죽은 자들을 불러내어 24시간 동안 그들에게 봉사하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

총독 각하는 태총부터 지금까지 죽은 모든 사람들 중에서 내가 이름을 부르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몇 명이든 불러 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내가 물어보고 싶은 질문을 무엇이든 해보라고 했다. 다만 내 질문은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만 국한되어야 한다는 게 조건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틀림없이 진실만을 말할 것이라고 믿어도 좋다고 했다. 왜냐하면 거짓말이란 지하 세계에서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p.348-350)

 

나는 특히 현대 역사에 대하여 가장 혐오감을 많이 느꼈다. 지난 100여 년 간 가장 명망이 높았던 모든 왕실 사람들을 꼼꼼히 조사해 본 결과, 나는 이 세상이 비열한 역사 저술가 녀석들에 의해 얼마나 오도되어 왔는가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저술가 녀석들은 전쟁에서의 가장 위대한 공을 겁쟁이들에게 돌리고, 현명한 충고는 바보들에게, 정직함은 아첨꾼들에게, 로마인다운 덕성은 나라를 배반한 자들에게, 경건한 신앙심은 무신론자들에게, 정조는 남색주의자들에게, 진실은 밀고자들에게 그 공을 돌리고 있었다.

나는 도 얼마나 많은 무고한 훌륭한 인사들이 재판관들의 부패와 악의적인 당파 싸움을 틈탄 각료 대신들의 농간으로 죽음을 당하고 추방을 당했는지, 얼마나 많은 악당 녀석들이 신뢰와 권력, 위엄, 이익을 받는 최고위직 자리로 승진했는지, 얼마나 많은 왕실, 각료 회의, 상원 의회에서 결정된 조치와 결정들이 갈보, 창녀, 뚜쟁이, 기생충 같은 인간, 광대들에 의해 도전을 받았는지 등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세상의 모든 사업과 혁명의 기원과 동기에 대해 진정으로 알게 되었고, 그런 것들의 성공이란 것이 얼마나 하찮은 우연한 사건들 덕택이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따라서 나는 인간의 지헤와 정직함에 대해 너무나도 좋지 않은 생각을 품게 되었다.

이곳에서 나는 또한 소위 야사와 비밀 역사를 썼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악행과 무식함에 대해서도 깨달았다. 그들은 수 많은 왕들이 독배를 마시고 무덤으로 사라지게 만들었고, 아무런 목격자도 없는 곳에서 이루어진 군주와 총리 대신의 대화를 날조해 냈고, 대사들과 내각 대신들의 캐비닛을 마음대로 열어 보였고, 영원한 불행이 대상을 잘못 찾아가게 만들었던 것이다.

나는 또 이곳에서 세상을 놀라게 했던 많은 중대 사건들의 진상을 알아냈다. 한 창녀가 뒷구멍에서 공작하는 음모꾼들을 지배하면, 그들은 추밀원을 지배하고, 다시 추밀원은 상원을 지배했다. 한 장군은 자신의 승리가 순전히 겁과 사악한 행동 덕분이었다고 내 앞에서 고백했다. 또 한 명의 해군 장군은 적절한 정보 부족으로 인해, 자기 조국을 배반하고 함대를 헌납하려 했던 적들을 잘못 격퇴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어떤 세 명의 왕들은 자신들의 모든 통기 치간 동안 진정한 가치를 지닌 적임자를 승진시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며, 혹시 그런 적이 있었다면 그건 실수였거나 자신들과 비밀 얘기를 나누는 각료 대신의 음모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다시 살아난다 해도 그런 짓, 즉 진정한 가치를 지닌 적임자를 승진시키는 일은 역시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거기에 대한 강력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즉 국왕의 자리란 부패 없이는 절대로 유지될 수 없는 자리이며, 도덕성이 인간에게 불어넣어 주는 적극성, 자신감, 고집 같은 기질은 공적인 업무를 영원히 방해하는 장애물이라는 것이다. (p.358-360)

 

나는 전에 종종 국왕과 국가를 위해 행해진 위대한 업적과 공험들에 대한 글을 읽었던 적이 있다. 따라서 그런 위대한 업적을 직접 수행한 당사자들을 만나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사를 해보니, 그들의 이름이 누구의 기억에도 남아 있지 않으며, 그저 몇몇 사람만 역사책 속에 가장 비열한 악당이나 반역자로 기록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머지 사람들에 대해서는 단 한 차례도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모습을 드러낸 그들은 모두 한결같이 낙심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며, 가장 남루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일부는 교수대 위에 서 있기도 했다. (p.361)

 

제4부 휴이넘(마인국) 여행기

 

우리 나라 사람들은 휘넘이 만물의 영장이며 야후가 짐승이라는 사실을 도저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p.428)

 

나는 세상의 다른 지역들에 살고 있는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내 주인과 자주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난다. 우연히 거짓말과 거짓 표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을 때 그는 내 말을 이해하느라고 아주 힘들어했다. 물론 그외의 사항들에서는 아주 예리한 판단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 점에 대해 그는 이렇게 논박했다.

"언어의 효용은 우리 서로가 상대방을 이해하고 사실들에 관한 정보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오. 그런데 누군가가 존재하지 않는 내용을 말한다면, 이러한 목적은 깨져 버리오. 내가 그 사람을 적절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이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정보를 받아들인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서 차라리 무지한 상태에 있흔 것보다 더 니쁜 상태에 빠지게 되오. 왜냐하면 어떤 사물이 하얀색인데 검정색이라고 믿고, 긴데 짧다고 믿어 버리게 되기 때문이오."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들 사이에서는 너무나 완벽하게 잘 이해되고 너무나 보편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거짓말이라는 기능에 대해 그가 가진 모든 개념들이었다. (p.429-430)

 

그는 야후들만이 유일하게 이성을 부여받고 태어나는 나라가 있다면, 그들이 지배 동물이 되는 일이 분명히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이성이란 시간이 지나면 어떠한 짐승들의 힘도 능가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신체 형태, 특히 내 신체의 구조를 고려해 볼때, 우리 인간과 비슷한 크기의 어떤 동물이라도, 일상생활에서 적절하게 이성을 사용하기 위하여 우리처럼 그렇게 부적절하게 잘못 만들어지진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p.432-431)

 

그는 나에게 한 나라가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게 되는 통상적인 원인이나 동기가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나는 무수히 많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몇 가지만을 말씀드리겠다고 대답했다.

"어떤 때는 통치하기에 충분한 영토와 백성들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군주들의 야망 때문에 전쟁이 발생하고, 어떤 때는 부패한 각료 대신들 때문에 전쟁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 대신들은 부패한 정부에 대한 백성들의 시끄러운 불만을 눌러 버리거나 백성들의 관심을 딴 데로 돌려 버리기 위하여 자신들의 군주를 부추겨 전쟁에 휘말리게 합니다.

또 견해의 차이가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 가기도 합니다. 예컨대 살이 빵이냐 빵이 살이냐의 여부, 어떤 장과류 열매의 즙이 피냐 술이냐의 논란, 휘파람을 부는 일이 악이냐 선이냐의 여부, 막대에 키스를 하는 게 더 나은가 불에 던져 버리는 게 더 나은가의 여부, 외투의 색깔을 흑, 백, 적, 회색 중에서 어떤 걸로 하는 게 최선인가의 문제, 또 외투가 길어야 할지 짧아야 할지, 좁아야 할지, 넓어야 할지, 더러워야 할지 깨끗해야 할지의 문제, 기타 수많은 문제들에 대한 견해 차이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견해 차이에 의한 전쟁만큼 맹렬하고, 잔혹하고, 유혈적이고, 오랫동안 지속되는 전쟁도 없습니다. 특히 그 주제가 아무래도 상관없는 무가치한 것들일수록 더합니다. (p.440-441)

 

사실 그는 비록 자기 나라에 있는 야후들을 혐오하긴 했찌만 그가 그들의 불쾌한 성질을 비난한 것은 그저 성질 고약한 그나쉬 새를 비난하거나 발굽에 상처를 입힌 돌멩이를 비난하는 것과 같았었다.

그러나 그는 이성을 주장하는 (인간이란) 동물이 그런 극악무도한 악행들을 저지를 수 있다면, 그런 이성 능력의 타락이 순수한 야수의 본성 자체보다도 훨씬 더 나쁠 수 있을 거라며 두려워했다. 따라서 그는 우리가 가진 것은 이성이 아니라, 단지 우리의 타고난 악을 증가시키기에 적합한 어떤 자질에 불과한 것이라고 확신하는 듯이 보였다. 마치 맹렬히 흐르는 시냇물이 신체의 모습을 더 크게 비춰 줄 뿐만 아니라 더 일그러지게 비춰 주는 거소가 같다는 것이었다. (p.445)

 

그는 모든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의도로 만들어졌다는 법이 어찌해서 어떤 사람의 파멸의 원인이 되는 일을 발생시키는 것인지 당황스러워했다. 따라서 그는 현재 우리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법과 법 집행자들에 대해 좀더 만족스러운 설명을 듣고 싶어했다. 우리가 스스로 주장하듯 정말 이성적인 동물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과 피해야 할 일을 보여주는 데 자연과 이성만 있으면 충분한 지침이 되는 게 아니냐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직업에서 벗어나면 다른 모든 일에서 그들은 대개 우리들 중에서 가장 무식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또 일상 대화에서 가장 경멸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며, 모든 지식과 학문의 공공연한 적들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직업에서처럼 다른 모든 대화의 주제에서도 한결같이 인류 모두가 지닌 보편적인 이성을 왜곡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p.449)

 

어떤 야후가 이 귀중한 물체를 다량 갖고 있으면 그는 가장 멋진 옷, 가장 훌륭한 집, 엄청난 토지, 가장 값비싼 고기와 음료 등 마음먹은 건 뭐든지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여자까지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돈 하나만 있으면 이런 모든 훌륭한 일들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나라의 야후들은, 소비용이든 저축용이든, 돈이란 아무리 많이 자기고 있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타고난 성향이 광이니나 탐욕으로 흐른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또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이 이룩한 노동의 결실을 즐깁니다. 그런데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비율은 1대1,000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우리 나라의 수많은 노동자들은 극소수의 사람들을 풍족하게 만들기 위해 저임금ㅁ을 받으면서 매일같이 노동을 하며 비참하게 살도록 강요받고 있습니다. (p.450-451)

 

내가 설명하고자 하는 국무 대신, 혹은 총리 대신은 희로애락, 증오심, 연민, 분노 같은 감정이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적어도 그는 권력, 부, 지위에 대한 격렬한 욕망 외에는 다른 어떠한 감정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말을 모든 용도에 사용하지만 자신의 속마음을 나타내는 데 있어서만은 에외입니다. 그가 진리라고 말을 하면 그것은 당신이 그것을 거짓말로 알아들으라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겆ㅅ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거짓말이라고 말하면 그건 분명히 당신이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라는 의도에서 한 것입니다. 그가 뒤에서 험담ㅇ믈 하는 사람은 가장 확실하게 승진의 길로 들어선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당신을 다른 사람들이나 당신 자신에게 칭찬하기 시작한다면 당신은 그날부터 버림을 받은 겁니다. 당신이 받을 수 있는 최악의 표시는 약속입니다. 특히 맹세까지 붙여 확신하는 약속입니다. 그런 약속이 있고 나면 모든 현명한 자들이 은퇴를 하고 희망을 포기합니다.

어떤 사람이 총리 대신으로 승진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의 부인, 딸, 누이를 지혜롭게 처분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의 전임자를 배반하거나 몰래 해치는 것이며, 셋째는 왕실의 부정부패에 대한 대중 집회의 광적인 열광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명한 군주는 이 세 가지 방법 중에서 마지막 방법을 실행하는 자들을 선출하려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열성 분자들일수록 항상 자기 주인의 의지와 감정에 가장 충실하게 복종적인 사람들로 판명되기 때문입니다. 이 총리 대신은 모든 공직들을 마음대로 주무르며 상원이나 대의회의 다수 의원들을 매수함으로써 권력을 보존합니다. 그리고 끝으로 그는 면책 법안이라고 부르는 편법에 의하여 사후의 문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국가의 모든 이권과 전리품들을 가득 짊어진 채 대중들로부터 은퇴합니다.

총리 대신의 공관은 자신과 비슷한 자들을 키워 내는 온상이기도 합니다. 시종, 종복, 문지기까지도 자신들의 주인을 흉내내어 각자 자신들의 동네에서는 국가의 대신이 되며, 게으름, 거짓말, 뇌물 수수 등의 세 가지 주요 기본 요소들에 있어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웁니다. 따라서 그들은 최고 지위의 인사들에게 부름을 받아 제2의 왕실을 구성하며, 어떤 때는 교활함과 뻔뻔함에 힘입어 여러 단계들을 거쳐 자신들이 모시는 주인의 후계자가 되기도 합니다.

총리 대신은 대개 부패한 계집이나 총애하는 하인들에 의해 지배를 받습니다. 이들은 모든 인사 특혜가 전달되는 통로입니다.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마땅히 왕국의 통치자들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p.458-459)

 

타락한 인간의 심성들과 정반대가 되는 그 고귀한 네발 동물들의 수많은 덕성들이 내 눈을 새로이 개안시키고 내 이해력을 확장시켜 주었기 때문에, 나는 인간들이 저지르는 행위들과 그들의 감정을 새로운 각도로 보기 시작했으며, 우리 인간들의 명예라는 것이 지켜 줄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그런 일은, 내가 전에는 인식조차 하지 못했으며 우리 인간들의 세계에서라면 결코 약점이나 결점으로 거론되지도 않았을 내 안의 과오들을 매일 천여 가지씩 확인시켜 줄 정도로 날카로운 판단력의 소유자였던 내 주인 같은 존재 앞에서는 불가피한 일이었다. 나는 또한 그를 모범삼아 모든 거짓과 위장을 완전히 혐오하게 되었다. 그리고 진리가 내게 너무나 사랑스러워 보였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하기로 결심했다. (p.462-463)

 

나는 이런 부자연스러운 욕심의 이유와, 도대체 이 돌들이 야후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소.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인간들이 가지고 있다는 바로 그 탐욕이란 원칙에서 그런 욕심이 나온 것이라고 믿게 되었고. 한번은 내가 시험삼아서 야후 한 마리가 보석을 파묻어 놓은 장소에서 보석더미를 몰래 치운 적이 있소. 그랬더니 보석을 잃어버린 이 더러운 녀석은 큰소리로 울ㄹ음을 터뜨렸으며, 그 때문에 모든 야후 무리가 다 그에게로 달려올 정도였고. 그곳에서 비참하게 울부짖던 녀석은 다른 야후들을 잡고 물어뜯기까지 하였소. 녀석은 점점 야위어 갔으며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일도 안했소. 마침내 내가 하인을 시켜 몰래 그돌들을 다시 구덩이에 갖다 놓고 전처럼 감춰 놓자, 녀석은 그걸 발견하고는 즉시 다시 기운을 차리고 기분이 좋아졌소. 하지만 녀석은 그 보석들에 특별히 신경을 써서 더 좋은 은닉처로 옮겨 버렸소. 그리고 그 이후 녀석은 아주 말 잘 듣는 야후가 되었소. (p.467-468)

 

이 고귀한 휘넘들은 천성적으로 모든 덕성들에 대한 일반적인 기질을 타고났으며, 잇헝적인 동물들로서 악에 대한 개념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따랏허 그들의 위대한 격언은 이성을 개발하고 전적으로 그것의 지배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그들 사이에서 이성이란 우리의 경우처럼 논란의 대상이 아니었다. 우리의 경우, 어떤 의문이 있으면 그 의문의 양쪽 측면 모두를 신빙성을 갖고 논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경우, 이성이란 즉시 확신을 주며 머릿속에 떠로으는 것이었다. 그것이 감정이나 이해 관계에 의해 뒤섞이고, 흐려지고, 변질되지 않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주인에게, 의견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시키고 어떤 논점을 논박한다는 의미를 이해시키기 위해 아주 힘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왜냐하면 이성이란 오직 확실할 때에만 우리에게 긍정이나 부정을 하라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확실히 모를 때에는 그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논쟁, 다툼, 논박, 잘못되거나 의심스러운 명제들에 대한 확인 같은 것들은 휘넘들 사이에서는 알려져 있지 않은 해악들이었다.

마찬가지로 내가 그에게 우리의 여러 가지 자연 철학과 이론 체계에 대해 설명을 할 때마다, 그는 이성은 지녔다고 주장하는 척하는 자들이 다른 사람들의 억측에 의한 지식에 근거하여 가치를 판단한다고 비웃곤 했다. 그런 지식이란 비록 확실한 것이라 하더라도 아무런 효용 가치도 지니지 못하는 문제들이라는 것이다. (p.479-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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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 1667년 11월 30일 ~ 1745년 10월 19일)

영국계 아일랜드의 소설가이자 성공회 성직자.

1667년,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영국계 부모의 유복자로 태어났다.[1]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삼촌 손에 자랐으며, 더블린의 킬케니 스쿨과 트리니티 칼리지를 나온 후, 제임스 2세의 왕위 양위와 그에 따른 아일랜드 침공으로 인해 잉글랜드로 이주하였다. 유명한 정치가 윌리엄 템플 경의 비서로 일하며 영국 정치계에서 자리 잡기 위해 노력했다. 템플 경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정치적인 야망은 꺾였으나, 발표한 글들이 유명세를 타면서 스위프트는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토리당을 대표하는 정치 평론가로 활동하게 되었다.
하지만 곧 그의 신랄하고 비판적인 글을 두려워한 정치가들의 견제를 받게 되었고, 반대편인 휘그당의 세력이 커지자 아일랜드로 낙향해 더블린의 성 패트릭 성당 사제장으로 일했다. 이곳에서 스위프트는 식민지 아일랜드의 기아와 가난이 점령국인 영국의 탓이라고 비난하며,아일랜드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써 아일랜드의 애국자 칭호를 받았다. 노년에는 정신장애로 고생하기도 했으며, 1745년 죽은 뒤 성 패트릭 성당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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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 조나단 스위프트 (신현철 옮김, 문학수첩)

걸리버 여행기 - 조나단 스위프트 (이종인 옮김, 현대지성)

걸리버 여행기 - 조나단 스위프트 (박용수 옮김, 문예 세계문학)

걸리버 여행기 - 조나단 스위프트 (이혜수 옮김, 을유 세계문학)

걸리버 여행기 - 조나단 스위프트 (유영 옮김, 동서월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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