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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1. 서양 - 고전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조영학 옮김, 열린책들)

by handaikhan 2023. 2. 4.

열린책들 세계문학 174

 

목차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메리 맨
마크하임
목이 돌아간 재닛
프랑샤르의 보물

 

역자 해설: 무의식과 광기의 탐험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연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1886년)

 

'그런데 저 폐가에 대해 묻지 않았다고?' 어터슨 씨가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나는 신중했어요. 너무나 하고는 싶었지만, 질문이란 게 워낡 최후의 심판과 비슷하거든요. 질문을 하는 것은 돌을 굴리는 것과 같답니다. 우리는 언덕 위에 가만히 앉아 있고, 돌은 멀리 굴러가 다시 다른 돌을 굴리게 되죠. 그러다가 결국 뒷마당에서 일하던 애꿎은 노친네 뒤통수를 때리고, 가족은 커다란 슬픔과 당혹감에 빠지게 될 겁니다. 그래요, 제 신념은 이렇습니다. 기이한 일일수록 캐묻지 않는 게 좋다.' (p.15)

 

'불쌍한 헨리 지킬, 아무래도 깊은 수렁에 빠진 모양이야! 젊었을 때 제멋대로 놀더니! 물론 오래전의 일이긴 해도, 신의 법엔 공소 시효라는게 없지 않은가. 그래, 그 때문일 거야. 과거의 망령과 감춰진 치욕의 암이 재발한 거라고. 마침내 기억도 사라지고 스스로도 과오를 용서했건만 복수의 화신이 돌아오다니.' 이런 생각에 더럭 겁이 난 변호사는 한동안 자신의 과거를 되새겨 보았다. 기억의 구석구석을 더듬자니, 도깨비 상자에 담긴 해묵은 죄 하나가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p.27)

 

'지킬, 나를 몰라서 그러나? 난 믿어도 돼. 자네 속을 후련하게 털어놓게나. 분명 곤경에서 빠져나올 수를 강구할 테니/ 어터슨이 항변했다.

'어터슨, 이 친절한 친구 같으니라고. 고마운 얘기일세. 물론 고맙고말고.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군 그래. 물론 자네를 믿네. 이 세상 누구보다.....아니, 선택이 가능하다면 나 자신보다 자네를 더 믿을 거야. 하지만 이건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네. 그렇게 나쁘지도 않고. 그러니 그 선한 마음을 접어 두게나. 내 한 가지만 말해 두지. 내가 원하면 언제든 하이드 정도는 떨쳐 낼 수 있다네. 믿어도 좋아. 아무튼 그 마음만은 너무도 고마우이. 진심일세.' (p.30-31)

 

나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다. 좋은 체격에 근면성까지 타고난 덕에, 총명한 명망가 동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누렸으며, 당연한 얘기겠지만 미래의 명예와 영광도 따놓은 당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런 내게도 치명적인 약점은 있었다. 유희에의 탐닉, 내 천성적인 쾌활함은 타인이야 행복하게 해주겠지만, 문제는 대중들 앞에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근엄한 표정을 지을 위치에 오르고 말겠다는 내 오만한 욕망과 양립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탐닉을 억루르기로 했다. 그리고 이제 성찰이라는 걸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 주변을 둘러보고 내 성취와 지위를 반추해 보니, 이미 내가 이중생활에 깊이 빠져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야 그런 난잡한 행실들을  떠벌리고 다녔겠으나 나는 크게 죄의식을 느꼈다. 내 스스로 정한 고귀한 원칙들 때문이었다. 나는 거의 병적인 수치심에 그런 부정한 삶들을 몰래 숨기기로 했다.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특정한 성격적 결함이라기보다는 성공을 위한 엄격한 기준들이었다. 대다수의 사람들보다 선과 악의 영역을 극명하게 나눈 이유도 역시 그 때문일 것이다. 그로 인해 나는 엄격한 삶의 법칙에 대해 깊이 천착하는 버릇이 생겼다. 삶이란 종교의 뿌리이자 가장 거대한 고통의 원천 중 하나이다. 나는 이중인격자이기는 하나, 결코 위선자는 아니다. 내 이중성 어느 쪽이든 극도로 진지하기 때문이다. 절제심을 버리고 치욕 속으로 뛰어드는 나 또한, 밝은 빛 속에서 지식을 넓히거나 타인의 슬픔과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노력하는 나만큼이나 나 자신이다. 그동안 전적으로 신비하고 초월적인 현상에 매진했던 내 과학의 연구 방향으로 말미암아, 나는 동료들 간에 끝없이 이어졌던 논쟁의 본질을 확연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날이 갈수록, 나는 도덕적 의식과 지적 의식 양면으로 부단히 진실에 접근해 나갔다. 그 진리의 일부를 깨달은 탓에 이렇게 끔찍한 파멸의 늪에 빠지고 만 것이다. 바로 인간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사실이었다. 내가 둘이라고 하는 까닭은 내 지식 수준이 그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내 견해에 동조하거나 아니면 그 선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갈 것이다. 어쨌든 나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다면적이며 이율배반적인 별개의 인자들이 모여 이루어진 구성체라는 가설을 감히 내놓고자 한다. 나로 말하자면, 살아온 방식상 한 점의 오류도 없이 오직 한 방향으로만 나아갔었다. 그것은 바로 도덕적 측면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인간의 절대적이고 근원적인 이중성을 나 자신이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의식 속에서 갈등하는 두 개의 본성을 본 것이다. 내가 그중 어느 한 본성에 속한다고 주장하는 게 가능하다면, 그건 단지 근본적으로 그 둘 모두에 속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애초에 내 과학적 발견이 기적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전부터, 나는 그런 인자들의 분리를 백일몽처럼 즐기곤 했었다. 각각의 인자가 각각의 인격으로 분리될 수 있다면 인생의 갈등이 완전히 해소될 거라며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부도덕은 보다 강직한 쌍둥이 인자의 규율과 자책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제 갈 길을 갈 것이다. 도덕적 인자 또한 굳건하고 안전하게 출세의 길에 오르고, 원하는 대로 선행을 베풀면 그만이다. 더 이상 관련없는 악으로 인해 굴욕과 후회를 반복할 필요도 없다. 이율배반의 쌍둥이가 함께 붙어 있는 건 인류의 비극이다. 번민하는 의식의 자궁 속에서 이 양극의 쌍둥이가 끊임없이 갈등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좋아. 그럼 어떻게 분리할까? (p.81-83)

 

우리가 옷을 걸쳐 놓은 이 단단한 육체의 비실체성과 무상함에 대해, 나는 그 누구보다 깊이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강풍이 천막의 휘장을 날리듯, 육신의 옷을 흔들어 벗겨 낼 강력한 약물 일부를 찾아냈다. 두 가지 이유로 인해 이 과학적 측면에 대해서는 깊이 서술하지 않을 참이다. 첫째, 우리의 삶의 저주와 멍에는 영원히 인간의 어깨를 벗어날 수 없다. 행여 그 짐을 벗어던지려 한다면 결국은 보다 낯설고 치명적인 무게로 우리엑 되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아아, 내 고백이 증명해 주듯, 내 과학적 업적은 너무도 불완전했다. 그때만 해도, 난 육체가 영혼을 구성하는 어떤 기운의 발산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 기운을 영혼으로부터 분리하고 제2의 형태와 외모가 만들어지는 약만 조제해 내면 끝이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그 외형 또한 내 영혼의 저급한 부분을 그대로 표현하고 복제하기 때문에 본래의 나인 것이다. (....) 용기를 내어 약을 입속에 털어넣었다.

극도의 고통이 이어졌다. 뼈가 뒤틀리고 미치도록 토악질을 해댔지만, 무엇보다 영혼의 공포는 생사의 순간조차 초월할 정도였다. 다행이 격통은 금세 가라앉았다. 나는 중병을 털고 일어나듯 의식을 회복했다. 느낌이 이상했다. 뭔가 새로웠으며 그 새로움 때문인지 믿을 수 없을 만큼 상쾌했다. 몸이 더 젊고 더 가볍고 더 행복해진 느낌어었다. 그 안에 통제할 수 없이 무모해진 내가 있었다. 감각적인 이미지들이 마구 얽힌 채 머릿속을 급류처럼 흘러갔다. 의무감은 녹아내렸으며, 영혼은 낯설고 순수하지 않은 자유를 갈구했다. 새로운 생명을 처음 호흡하는 순간 나는 더욱, 그것도 수십 배나 더 사악해졌음을 깨달았다. 결국 노에 근성을 원초적 악마에게 팔아넘긴 것이다. 마침내 그 본성을 깨달은 순간, 마치 와인을 마실 때처럼 나는 쾌감을 느꼈다. 나는 두 손을 뻗어 이 신선한 감각을 만끽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내 덩치가 왜소해졌음을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 집안 식솔들은 모두 깊고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나는 희망과 승리에 도취된 채 새로운 모습으로 침실까지 가보기로 했다. 별들이 안뜰을 가로지르는 나를 내려다 보았다. 지난한 불면의 밤을 통해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의 등장에 그들 역시 놀랐을 것이다. 나는 복도를 지나, 몰래 침투한 이방인처럼 살금살금 내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방에서 처음으로 에드워드 하이드의 존재를 확인했다. (p.83-85)

 

내가 도장 찍듯 복제해 낸 본성의 악한 측면은, 조금 전 방기해 버린 선한 자아보다 나약하고 왜소했다. 결국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라는 게, 십중팔구 노력과 미덕과 절제뿐, 사악한 자아를 활용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따라서 에드워드 하이드는 헨리 지킬보다 훨씬 작고 가벼우며 또 젊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헨리 지킬이 선이 빛나는 용모라면 하이드의 얼굴엔 악의 특성이 선명하고도 노골적으로 새겨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악은 내 신체에 기형과 타락의 징후를 새겨 놓았다. 하지만 거울에 비친 추악한 외모를 보며 내가 느낀 건 반감이 아니라 반가움이었다. 그 역시 나 자신이므로 내게는 너무도 자연스럽고 인간적으로 보였다. 내가 보기에 하이드는 영혼을 보다 생생하게 영상화 했다. 지금껏 나라고 여겼던 불완전하고 분열된 자아의 모습보다 명확하고 개성적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분명 옳았다. 내가 에드워드 하이드의 모습을 하고 있는 한, 접근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불안의 기색을 드러내고 만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것은 일반적인 인간 모두가 선과 악이 혼재된 존재인데 반해, 이 모든 인류 가운데 오직 에드워드 하이드만이 순수 악의 존재였기 때문이다. (p.85-86)

 

내 변신이 회복 불능의 수준을 넘어섰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 나는 황급히 서재로 돌아와 다시 한 번 약을 조제해 마셨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극심한 분열의 고통을 겪은 끝에 헨리 지킬의 성격과 체격과 용모를 지닌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나는 운명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보다 고귀한 영혼으로 하여금 가설을 담당하게 하고, 고결하고 경건한 열망의 차원에서 실험을 이끌었다면 모든 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생사의 고통을 통해 악마가 아닌 천사를 만들어 냈을 수도 있다. 약물의 작용에는 차별이 없다. 약은 악하지도 신성하지도 않다.다만 내 내면의 감옥 문을 흔들어, 필립비의 포로들이 방면된 것처럼, 내 안의 죄인을 끄집어내고 만 것이다.

그 당시 내 미덕은 깊은 잠에 빠지고 야망으로 깨어난 악이 재빨리 기회를 꿰찼다. 그로써 에드워드 하이드가 튀어나온 것이다. 그로 인해, 나는 비록 나한테 두 개의 외모와 두 개의 성격이 존재하고, 하나가 순수 악이며 다른 자아는 여전히 과거의 헨리 지킬이라고 해도, 교정과 개선의 부조리한 조합은 이미 실패했음을 깨달았다.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 갔다. (p.86-87)

 

그 당시조차 나는 무미건조한 연구 생활에 대한 반감을 극복하지 못했다. 이따금 유희를 시도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사실 그 재미라는 게 그다지 방정하지는 못했다. 이미 난 초로의 나이에 접어든 평판 좋은 저명인사였으니, 그런 식의 모순된 삶이 마득할 리가 없었다. 결국 새로운 힘이 나를 유혹해 그것의 노에로 만들어 버렸다. 결국을 약을 마시기만 하면, 유명 교수의 몸을 벗어던지고 두터운 망토를 걸치듯 에드워드 하이드로 변신할 수 있지 않은가. 나는 이런 생각이 맘에 들었다.  (...) 행여 지킬 박사의 자아에 어떤 일이 생긴다 해도, 경제적 어려움 없이 에드워드 하이드의 몸으로 살아가기 위해....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갖춘 후, 나는 드디어 지위에서 비롯된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 즐기기 시작했다. (p.87)

 

이전 사람들은 자객을 고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식으로 자신의 인격과 명예를 고스란히 보호했다. 나는 쾌락을 위해 범죄를 저지른 최초의 사람이다. 대중의 눈앞엣허는 점잖은 체모를 유지하다가, 한순간 동네 악동처럼 껍데기를 모두 벗어 던지고 곧바로 자유의 바다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내 경우 그 모든 것이 두터운 막에 가린 터라 위험의 소지도 없었다. 생각해 보라. 나는 존재조차 없는 존재가 아닌가! 단지 실험실로 달려가, 준비해 둔 약재를 섞어 마실 1-2초의 시간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럼 에드워드 하이드가 무슨 짓을 했든 간에 거울에 닿은 입김처럼 사라져 버리고, 그 대신 서재에는 한 명사가 조용히 앉아 연구에 몰두하며 한밤의 램프를 조절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그 어떠한 의혹도 비웃어 줄 수 있는 거물, 바로 헨리 지킬이. (p.88)

 

말한 대로, 내가 위장을 통해 추구한 쾌락은 불건전하기는 해도 그 이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에드워드 하이드에게 그 쾌락이 넘어가자 내 두 손은 악마의 손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탈에서 복귀했을 때 종종 그가 저지른 악행에 아연해야 했다. 나 자신의 영혼에서 불러내, 내키는 대로 행하도록 세상에 내보낸 존재는 천성적으로 야비하고 악랄했다. 그의 행동과 사고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석상처럼 무자비하기까지 했다. 그가 온갖 종류의 고문과 학대를 동물처럼 탐욕스럽게 휘두르는 통에, 헨리 지킬은 이따금 그의 악행 앞에서 기겁해야 했으나, 사실 애초부터 일반적인 법과는 무관한 상황인 탓에 교활하게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벗어나 있었다. 결국 죄가 있는 건 하이드였다. 오직 하이드뿐이었다. 지킬이 타락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다시 깨어났을 때 본래의 선한 양심이 훼손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하이드의 악행을 어떻게든 만회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그런 식으로 양심은 마비되어 갔다. (p.88-89)

 

헨리 지킬의 손은 모양과 크기 모두에서 직업에 걸맞았다. 클고 강한 흰색의 잘생긴 손. 그런데 런던의 누런 아침 햇살 속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손은 가늘고 굽고 매듭진 데다 거무스레한 털까지 덮여 있었다. 그건 에드워드 하이드의 손이었다.

아마도 30초 정도는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당혹감에 멍하니 있다가 순간 심벌즈가 울리기라도 한 듯 가공할 만한 공포가 가슴을 때렸다. 나는 후다닥 침대에서 내려와 거울로 달려갔다. 눈앞에 펼쳐진 모습엔 피가 꽁꽁 얼어붇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다. 헨리 지킬로 잠들어 에드워드 하이드로 깨어난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하지만 이런 자문은 또 다른 공포로 이어지고 말았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나는 나 자신에게 물ㄹ었다. 그런 다음 또 다른 공포가 밀려왔다. 어떻게 바로잡지? ...나는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 지금까지의 경험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이 이해 불가한 사건은 마치 바빌로니아 벽에 적힌 예언처럼 나를 겨냥한 판결문 같았다. 그로 인하여 나는 이중 자아의 현실과 가능성에 대해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너무 자주 변신을 시도하고 그걸 또 부추겼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에드워드 하이드의 체격도 더 커진 것처럼 보였다. 그의 몸을 하고 있을 때에는 피도 더 빠르게 흐르는 기분이었다. 난 위험을 직감하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게속된다면, 본성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지고 변신의 자율적 조정 능력이 파괴될 수도 있다. 요컨대 에드워드 하이드의 성격이 나 자신의 본성으로 고착되고 만다는 얘기다. 약의 효력도 항상 균일하게 나타나는 건 아니었다. 초기에 한번, 약효가 듣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 후로는 이따금 용량을 두 배로 늘리기도 했다. 한번은 세 배를 지어 복용했는데, 그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쓴 행위였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이런 식의 불안정이 변시니의 만족도를 해치는 유일한 그림자였다. 하지만 그날 아침의 사건을 곰곰히 생각해 보니, 초기에는 지킬ㅇ릐 몸을 벗는 문제가 난점이었던 데 반면, 최근에는 그 반대의 현상이 느리지만 분명하게 강화되고 있었다. 이 모든 점을 고려해 볼 때 결론은 하나였다. 원래의 좀 더 나은 자아가 조금씩 소멸되고, 그와 반대로 두 번째 유해한 자아가 득세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두 본성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으나 다른 기능들의 사용은 서로 달랐다. 선악의 복합체로서 지킬은 한 손에는 가장 민감한 두려움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마음껏 누리는 즐거움을 만지작거리며 하이드의 쾌락과 모험을 투사하고 공유했다. 하지만 하이드는 지킬에게 흥미가 없었다. 지킬은 단지 산적들이 추적을 피해 몸을 숨기는 은신처에 불과했다. 지킬은 아버지 이상의 관심을 지녔으나 하이드는 아들의 무관심을 극한으로 구현했다고 말할 수 있다. 지킬과 운명을 같이하겠다면, 오랫동안 탐닉해 오다가 최근에 이르러 한껏 포식하게 된 은밀한 욕구들을 모두 죽여야 한다. 하지만 하이드와 함께한다면, 무수한 이익과 큰 뜻을 포기하고 단박에 그리고 영원히 사람들의 경멸을 받으며 친구 하나 없이 살아가야 할 것이다. 거래는 부당해 보였으나 거기엔 여전히 고려 사항이 남아 있었다. 지킬은 절제의 불속에서 끔찍한 고통을 겪는 반면 하이드는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의식조차 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이다. 상황이 기이하기는 했지만, 이런 식의 논쟁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고 보편화되어 있었다. 자극과 불안감은 유혹에 쉽게 흔들리는 죄인에게 운명의 주사위를 던졌다. 결국 그 수 많은 친구들처럼 나 역시 선한 자아를 선택했지만 그를 지켜 낼 힘이 부족했다.

그렇다. 나는 초로의 투덜이 박사를 선택했다. 친구들한테 둘러싸인 채, 정직한 희망을 소중히 여기는 나. 지금껏 하이드로 변신해 누렸던 자유와 젊음, 가벼운 발걸음과 거침없는 충동, 은밀한 쾌락 등 난 그 모든 것에 단호하게 작별을 고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을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미련이 남았던 모양이다. 소호의 집도 포기하지 않고 에드워드 하이드의 옷도 서재에 그대로 보관해 두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두 달 동안 난 결정에 충실했다. 그 두 달간 난 그 어느 때보다 엄격한 삶을 영위하며 그 보상으로 양심의 가책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시간은 최초의 불ㄹ안감을 지워 버리기 시작했다. 양심에 대한 찬양도 당연한 것으로 되어 버려, 나는 다시 고민과 갈망으로 고통받기 시작했다. 바로 자유를 갈망하는 하이드의 고통이었다. 그리고 도덕적으로 나약해진 지 채 한 시간도 안 되어 변신 약을 제조해 마시고 말았다. (p.90-93)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카인 - 주제 사라마구 (정영목 옮김, 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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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말로 현재의 상황에 대해 그렇게 고민했으면서도, 에드워드 하이드의 성격을 특징짓는 철저한 도덕적 무감각과 과도한 악에의 탐닉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내가 벌을 받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우리에 갇혔던 악의 본성이 포효를 지르며 뛰쳐나왔다. 약을 마실 때조차, 나는 보다 무분별하고 무자비한 악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불행한 희생자 댄버스 경의 충고를 들을 때 내 영혼에 조바심의 폭풍이 일어난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신 앞에 단언컨대, 도덕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그렇게 사소한 자극에 그런 흉악한 범죄를 저지를 수 없다. 이제 나는 이픈 아이가 장난감을 부수는 것보다 더 비이성적인 상태에 빠졌다. 아무리 악한 인간이라도 어느 정도는 유혹에 대해 저항력을 유지할 수 있는 본능적인 균형 감각이 있다. 하지만 나는 자발적으로 이것을 모두 벗어던졌다. 더욱이 내 경우엔 아무리 사소한 유혹이라도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지옥의 분노는 즉각 나를 깨웠다.  나는 더없는 쾌락에 휩싸인 채 저항하지 않는 노신사를 무차별 난타하고 한 대 한 대 마다 쾌감을 맛보았다. 그러고 나자 발작적 황홀경 속에 갑자기 피로감이 이어지더니 공포의 전율이 심장을 관통했다. 안개가 걷혔다. 나는 인생이 끝장났음을 깨닫고 저 광란의 현장에서 달아났다. 나는 환희와 전율에 온몸을 떨었다. 악에 대한 갈망은 충족되어 사라졌고 삶에 대한 애착도 최고조에 달했다. 나는 소호의 집으로 달려가 위험한 서류들을 파기하고 곧바로 가로등이 켜진 거리로 나와 쏘다녔다. 마음은 완전히 둘로 나위어 있었다. 범죄 행위에서 비롯된 충만감에 고무된 채 향후의 악행을 궁리하는가 하면, 행여 누군가 보복을 위해 뒤쫓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자꾸 뒤를 돌아보고 발걸음을 재촉하기도 했다. 하이드는 약을 조제하며 노래를 불렀고 약을 마시며 죽은 자를 위해 건배했다. 차라리 변신의 고통이 그를 갈기갈기 찢어 놓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이윽고 헨리 지킬이 감사와 후회의 눈물을 펑펑 쏟으며, 무릎을 끓고 신께 두 손을 모았다. 방탕의 장막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찢겨 나가면서 난 내 인생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기억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산책하던 어린 시절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자기 부정적인 노고의 직업적 삶을 거쳐, 그날 저녁의 저주받은 공포와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끊임없이 회구했다. 목 놓아 울고 싶었다. 눈물과 기도로써, 기억을 통해 꾸역꾸역 달라붙는 저 끔찍한 이미지들과 비명을 철저히 억누르고 싶었다. 하지만 간절한 기도 사이에 내 악행의 추악한 얼굴이 나의 영혼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쓰디쓴 양심의 가책이 무디어지자 또다시 환희가 밀려들었다. 내 행위의 문제는 해결되었다. 이후로 하이드는 없으리라. 의도와 상관없이 이제 난 선한 자아로서만 살아갈 것이다. 오, 그 생각만으로도 얼마나 기뻤던지!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삶의 제약들을 포용했다. 그리고 분명한 포기와 함께, 그동안 부지런히 드나들던 문을 잠그고 열쇠도 짓밟아 버렸다.

다음 날 살인 사건의 목격자가 나오고 하이드의 범죄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게다가 희생자는 평판이 훌륭한 귀족이었다.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비극적 참사였던 것이다. 사실 그 소식을 듣고 기쁘기도 했다. 교수대의 공포 때문에라도 선한 자아를 더 단단히 지켜 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킬은 이제 나의 은둔처가 되었다. 하이드여, 온 세상 사람들이 그대를 잡아 사형대로 끌고 갈지니, 행여 고개조차 내밀지 말지어다. (p.93-95)

 

지난해 마지막 몇 개월 동안 고통엣허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는 어터슨도 잘 알 것이다. 나는 타인을 위해 많은 일을 해냈다. 이제 그 시절도 조용히 지나갔고 나도 충분히 행복했다. 은헤와 선행으로 가득한 삶에 지쳤다는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그보다 그 삶을 충실히 만끽했다고 애기하고 싶은 것이다. 문제는 여전히 이중의 목적으로 고통받았다는 데 있었다. 더욱이 참회의 칼날이 무디어 가면서 사악한 자아도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자유를 구가하다 완전히 갇히고 말았으니 그도 견디기가 쉽지 않았을 터였다. 하이드의 소생을 꿈꾸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 생각만 해도 난 식겁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양심을 가지고 희롱했던 건 온전히 지킬의 존재로서였다. 마침내 일반적인 은밀한 죄인으로서 내가 유혹의 맹공격에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만사에 종말이 있다. 아무리 넓은 그릇도 결국엔 채워지게 되어 있다. 결국 이렇게 잠깐 악에 순종하게 된 것이 내 영혼의 균형을 파괴하고 말았다. 더군다나 난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따라서 타락은 악의 자아를 발견하기 이전의 시절로 돌아가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 나는 보통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비교하고, 또 내 능동적인 선의지와 보통 사람들의 나태한 잔인함을 비교해 보며 씩 웃고 말았다. 그렇게 헛된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현기증에 끔찍한 욕지기가 나더니 온몸에 미친 듯이 경련이 일었다. 증세는 금세 진정되었으나 난 그만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이윽고 정신이 돌아왔다. 그리고 내가 느낀 건 사고가 바뀌었다는 사실이었다. 훨씬 더 대담하고 무모해졌으며, 의무감도 눈 녹듯 사라졌다. ...에드워드 하이드가 돌아온 것이다. (p.95-96)

(함께 읽어면 좋은 책)

죄와벌 - 도스토엡스키 (홍대화 옮김, 열린책들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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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로는, 즉각적인 투약과 지속적인 정신 단련이 없으며 지킬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해졌다는 얘기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조를 알리는 경련에 시달려야 했다. 더욱이 잠이 들거나 의자에서 깜박 졸고 나면, 깨어나는 건 늘 하이드였다. 이 끊임업이 반복되는 저주와 내가 나 자신에게 선고한 불면으로 인해, 아아, 그것도 인간으로서 견딜 수 있는 것 이상인 터에, 나는 열병에 시달리고 탈진했으며 심신이 축 처져 쇠약해져 가고 있었다. 그것도 지킬의 몸으로 말이다. 게다가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 제2의 자아에 대한 공포뿐이었다. 하지만 잠이 들거나 약효가 떨어질 때면, 곧바로 공포의 이미지들로 가득 찬 환영 속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영혼은 근거없는 증오로 들끓었으나, 그 반면에 육신은 끓어오르는 에너지를 담을 수 없을 정도로 허약해졌다. 더군다나 하이드의 힘은 지킬이 약해짐에 따라 점점 더 강해졌다. 그리고 이제 그 둘을 구분해 주었던 증오조차 양쪽 모두에게 균일하게 드러났다. 지킬에게 증오는 생존 본능이었다. 지킬은 이제 자신과 의식의 일부를 공유하고 또 죽음까지 동행할 괴물의 기행을 모두 목격했다. 그들은 가장 고통스럽게 만드는 이런 공존의 관계를 초월해서 하이드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는 하이드의 생명 에너지가 사악할 뿐 아니라 무생물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건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무저갱의 연니가 비명을 지르고 고함을 쳤으며, 무정형의 티끌 덩어리가 손짓을 하고 죄를 지었다. 죽어서 형체도 남기지 못할 존재가 삶의 공간을 강탈하려 든 것이다. 게다가 그 가공할 만한 공포야말로 아내보다, 아니 눈보다 더 가깝게 달라붙지 않았던가. 그는 자신의 살갗 안에서 놈이 투덜거리거나 부활하기 위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놈은 그가 약해지거나 잠에 빠져들 때마다 그를 지배하고 삶에서 물러서게 했다. 지킬을 향한 하이드의 증오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교수대가 두려운 탓에 부단히 일시적인 자살을 감내하고 그래서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종속 상태로 회귀해야 했지만, 그것이 맘에 들 리가 없었다. 지킬이 지금 처해 있는 무기력 상태도 마찬가지였다. 그로 인해, 내 역할을 대신한 원숭이 인형 놈은 내 노트에 내 필체로 더러운 욕들을 적어 놓고 편지를 찢어발기고 아버지의 초상화를 불태웠다. 아아, 죽음의 공포가 아니었던들 그자는 오래전에 자해라도 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나를 고통에 빠뜨리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삶에 대한 그의 집착도 놀라웠다. (p.99-101)

 

누구나 이런 고문을 당한 적이 없다는 정도로만 얘기해 두련다. 하기야 그런 고통도 반복되다 보니 영혼조차 무디어져 갔다. 고통이 완화된 게 아니라 절망에 순응해 간다는 얘기다. 이런 식의 천벌이 몇 년간 이어질 수도 있었지만, 결국 최후의 재앙이 닥쳤고 그로써 나 자신의 얼굴과 본성은 완전히 빼앗기고 말았다. (p.101)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마지막 조제분의 힘을 빌려 이 기록을 마무리하고 있다. 기적이 없다면, 헨리 지킬이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거울ㅇ레 비친 자기 얼굴을 보는 것도 마지막일 것이다. 아, 이토록 얼굴이 상할 수가 있다니! (...) 우리 둘을 짓누르고 있는 재앙은 이미 그를 변화시키고 짓밟아 버렸다. 지금으로부터 30분 후, 그 역겨운 인격을 다시 걸치게 되면 나는 이 의자에 앉아 몸을 떨며 흐느기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긴장과 극도의 두려움으로 혼미해진 채, 마지막 은신처인 이 방을 어슬렁거리며 사소한 위협의 소리에마다 깜짝짬짝 놀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이드가 교수대에서 죽을까? 아니면 마지막 순간, 용기를 내어 자살이라도 시도할까? 모르겠다. 상관도 없다. 지금은 내가 죽을 시간이다. 이후로는 내가 아니라 하이드의 문제가 될 것이다. 이제 나는 펜을 내려놓고 이 고해의 편지를 봉인한 후, 불행한 헨리 지킬의 삶을 마감코자 한다.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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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해설]

고딕 소설이란 중세 분위기를 통해 신비와 공포를 드러내는 유럽 낭만주의 소설로, 영국에서는 1790년 호레이스 월폴의 <오트란토 성>을 그 기원으로 여기고 있다. 비록 외딴곳에 떨어져 있는 고대 성, 지하의 미로 및 토굴 등 전통적 고딕 요소들이 결여되어 있지만,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분명 고딕 소설의 전통에 속하며, 그것도 리바이어던으로서의 사회, 문화적 폭력과 자아의 분열을 테마로 한 <백설 공주>와 같은 범주라 할 것이다.

.............날이 갈수록, 나는 도덕적 의식과 지적 의식 양면으로 부단히 진실에 접근해 나갔다. 그 진리의 일부를 깨달은 탓에 이렇게 끔찍한 파멸의 늪에 빠지고 만 것이다. 바로 인간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사실이었다. 내가 둘이라고 하는 까닭은 내 지식 수준이 그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내 견해에 동조하거나 아니면 그 선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갈 것이다. 어쨌든 나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다면적이며 이율배반적인 별개의 인자들이 모여 이루어진 구성체라는 가설을 감히 내놓고자 한다.... (p.82)

고딕 중편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두 주인공 지킬 박사와 에드워드 하이드 씨의 관계를 해석 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프로이트식으로 말한다면, 하이드는 성공한 중산층 신사인 지킬의 억압된 자아에 해당한다. 이 경우 성실하고 도덕적인 지킬은 하이드라는 <마스크>를 쓰고, 맨얼굴로 감히 일견조차 못 했던 이드의 세계를 탐색하고 나서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읽을 수도 있다. 자상한 아버지 지킬은 방종한 아들을 무조건 옹호하고 심지어 모든 재산을 물려주려고 하다가 사회적,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되는데, 이런 식의 해석은 스티븐슨이 당시 <빅토리아 시대> 만연했던 장자 상속의 풍토를 비판하고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아니면 <프랑켄슈타인>의 '몬스터'나, <제인 에어>의 '다락방의 광녀'처럼, 하이드 씨 역시 지킬 박사의 '억압된 분노'이며, 자신을 잘못된 규범으로 예속해 버린 사회 전반에 대해 무조건적, 무차별적 복수를 획책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또한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백설 공주>의 남성적 버전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를 백설 공주와 여왕으로 대체하는 게 하나도 어색하지 않으며, 또한 지킬 박사가, 두 여성 피해자처럼 자기 모습을 자주 거울에 비춰 보면서 스스로를 반사회적 악마로 규정하는 과정도 눈여겨볼 만하다. (p.304-306)

<참고-백설 공주에 대한 해석>

다락방의 미친 여자 - 샌드라 길버트, 수전 구바 (박오복 옮김, 북하우스)

샌드라 길버트와 수전 거버의 페미니즘 이론서 <다락방의 미친 여자 (1979)>

선악의 대결 구도와 권선징악을 다룬 단순하고 가벼운 이야기 속엔, 흑백의 이분법을 통한 인종적 편견 및 편협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는 물론,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 했던, 또 다른 엄청난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두 여성학자가 본 <백설 공주>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어떤 식으로 여성들에게 내재되며 그로 인해 여성 스스로 어떻게 남성 중심 사회에 예속되는지들 보여준다.

여성들은 남성 중심의 세계관과 가치 기준에 자신을 비춰 보는 부차적 존대로 드러나며(거울아, 거울아, 누가 제일 예쁘니), 그 속에서 백설 공주와 여왕은 예속의 강화를 통해 안정과 그와 반대로 예속을 벗고 독립된 개체로 서고자 하는 갈망을 각각 대변한다. 여왕은 자신에게 내재된 남성 순종적 자아, 즉 <백설 공주>를 제거하고자 한다. 이때 여왕이 공주에게 선물한 빗, 레이스, 사과는 상징적인데, 남성에게 예쁘게 보이려는 여성의 내면을 대변하거나(빗, 레이스), 아니면 여성을 지배하기 위한 남성의 궁극적 무기인 성에 대한 굴복을 뜻하기 때문이다(사과). 결국 백설 공주는 선물을 모두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의 굴종적 성격을 강화한다.

공주가 여왕에 의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남성들의 도움을 받는데(왕, 나무꾼, 일곱 난장이 그리고 왕자), 그 횟수가 잦아질수록 공주, 도망자, 식모, 시체 등으로 변하여 인격체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남성들은 최종적으로 그렇게 철저히 "죽은" 공주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물론 남성 중심 사회에 저항해 백설 공주의 자아를 지키려 했던 여왕은 남성 이데올로기에 의해 철저히 배제된다. 결국 문화 텍스트로서의 <백설 공주>는 기존의 사회 시스템을 부인하고 그 외부에서 독립적 자아를 추구하는 여성을 "마녀"라는 이름으로 배제하고 매장하며, 또 그 의도를 분명히 하는 식으로 여성들을 위협하고 교육하여, 이른바 남성 중심 사회를 끊임없이 재생산해 내고자 하는 가부장적 지침서라는 것이다. (p.302-304)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그림 형제 동화집 - 그림 형제 (김열규 옮김, 현대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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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 1850년 11월 13일 ~ 1894년 12월 3일)

영국의 소설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출생. 토목기사인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 에든버러대학 공과에 입학했지만, 허약한 체질과 문학을 애호하던 성향 때문에 전과해 변호사가 되었다. 그 후 폐결핵으로 건강이 악화되자 유럽 각지로 요양을 위한 여행을 했고, 이 경험이 수필과 기행문을 쓰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당시 파리에서 만난 11세 연상의 오즈번 부인을 사랑하게 되어 1880년에 결혼했다. 1883년 대표작 중 하나인 『보물섬』을 출간해 작가로서 명성이 한층 높아졌고, 이어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1886) 등 수많은 화제작을 발표했다. 1888년 고국을 떠나 남태평양의 사모아섬에 저택을 짓고 살면서 건강을 회복했으나, 뇌출혈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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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사례 - 스티븐슨 (송승철 옮김, 창비 세계문학)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 스티븐슨 (권진아 옮김, 시공사 세계문학의숲)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 스티븐슨 (윤혜준 옮김, 을유 세계문학)

지킬 박사와 하이드 - 스티븐슨 (강혜숙 옮김, 동서 월드북)

지킬 박사와 하이드 - 스티븐슨 (박찬원 옮김, 펭귄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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