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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1. 서양 - 고전 소설

호징냐, 나의 쪽배 – 바스콘셀로스 (이광윤 옮김, 동녘)

by handaikhan 2023. 2. 4.

 

바스콘셀로스 - 호징냐, 나의 쪽배 (1962년)

 

늘 그렇듯이, 제 오로꼬는 삶이라는 것이 아주 놀랍도록 아름다운 여정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남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쪽배를 젓는 노가 찰팍팔팍, 정말 부드러운 소리를 내기에, 흐르는 강물은 마치 아름다운 선율처럼 바뀌었으며 쪽배는 나는 듯 부드럽게 미끄러져 나아갔다.

열기 없는 나른한 태양은 구름 속에 가려진 채 차츰 떨어지면서 오후의 시작을 재촉하였다. 강가의 하얀 모래톱에 있는 두루미는 마치 끝이 없을 것 같은 침묵과 속삭이기라도 하는 양 긴 다리를 움직이며 이쪽저쪽으로 거닐다가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걷는 모습은 아주 보기 싫고 비틀거렸지만, 나는 모습을 보면 이 세상의 무엇도 그처럼 우아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p8-9)

 

잠시 잊고 있던 쪽배를 생각하며 싸움을 끝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화가 난 쪽배가 제 오로꼬에게 말조차 건네지 않고 지낸 지 벌써 이틀이나 되었다. 평화를 원한다는 마지막 말은 언제나 그의 몫이었으니 이번에도 먼저 말을 붙이고야 말았다. (p15)

 

빌어먹을, 무슨 비가 이리도 온담!

그런 말 말아요, 쉬꾸, 잠시 후면 언제 그렇게 쏟아졌나 싶게 그칠 아름다운 빗방울이잖아요.

아니, 끝없이 퍼붓잖아요. 내가 브레자웅 집을 나선 후부터 줄곧 내 등을 때리며 쏟아지니

이렇게 건장한 남자가 저리도 아름다운 비를 함부로 이야기하다니. 이봐요, 잘 생각해 봐요. 저 비가 옥수수를 잘 자라게 하잖아요.

정말 아름다운 강이로구나!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비가 내릴 때 나무마다 녹색 이슬방울이 맺혀 푸르름을 한층 더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든 것이 마드링냐 플로르에게는 더없이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p20-21)

 

편안하게, 천천히 물 속에 몸을 담그고 허리의 통증을 풀면서 강바닥에 몸을 쭉 폈다. 먼 하늘에는 아직도 파란색의 여백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두루미가 저 멀리, 바람 부는 대로 몸을 내 맡긴 채, 커다란 원을 그리며 날았다. 앵무새는 쌍을 이루어 소리를 지르고, 남쪽으로부터 흘러온 구름이 갑자기 그의 몸과 쪽배에 그늘을 만들어 놓더니 그것도 잠시, 곧 흘러가 버렸다.

그가 등을 돌려 아득히 높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느님의 모든 영광을 다 안을 만큼 높이 있었다. 강물이 귓전을 부드럽게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이따금씩 작은 물고기들이 발바닥을 간지럽혔다. 그는 해질녘의 고요함과 가슴속에 찾아드는 평온함을 만끽하면서 지그시 눈을 감아보았다. 마음이 아주 편안해졌다. 사방이 온통 적막 속으로 자취를 감춘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다 문득 눈을 떴을 때, 여느 때보다 훨씬 성큼 밤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p47-48)

 

대지의 냄새가 씨앗 상태인 그의 몸뚱이를 아주 강렬하게 자극하였다. 처음에는, 그러니까 바람이 그를 실어 와 땅에 떨구어 놓았을 때만 해도 다소 움직일 수 있었으나, 다시 그 바람이 불고 난 후에는 마치 멀리 떠나보내진 것처럼, 흙으로 뒤덮일때까지 빙빙 돌았다. 그러나 바람은 무슨 중대한 임무라도 완수하려는 듯 날마다 불어와 결국 그의 작은 몸이 흑에 뒤덮이고 말았다.

그렇게 땅속에 깃눌린 생활에 점차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숨 쉰다는 게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앞으로 그가 그다지 오래 자지는 않으리라는 사실을 암시해 주는 듯하였다. 거대한 슬픔과 고통이 밀려들면서 자기 존재의 무의미함이 더해 가기만 하였다. 왜냐하면 언제나 어둡기만 한 땅속은 바깥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것도 얘기해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그때 그가 절실하게 그리워한 것은 따사로운 햇살과 새들의 노랫소리였다. 그러나 그는 점차 그 생활에 순응해 갔으며, 자신이 처한 알 수 없는 생활이 자신의 성숙에 꼭 필요한 역할을 함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길고도 늘 똑 같은 하루하루의 세월이 자꾸 흘러갔으며, 점점 뜨거운 계절이 다가왔다. 때때로 더러운 땅벌레들이 그의 나약하고 신경이 곤두선 몸뚱이를 건드렸는데, 그때마다 그는 예전의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뜨거운 대지가 모든 것을 숨막히게 하며 그의 언어를 침묵으로 바꾸어 버렸기 때문에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처지와 마찬가지로 서글픈 기다림의 고통을 겪을 다른 씨앗들을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완벽하던 정적 속으로 미미한 진동이 찾아들더니 그의 작은 몸을 떨게 하였다. 잠시 후, 어떤 엄청난 것에 긴장한 몸은 마비된 듯했고, 요란한 소리에 놀라 잠이 달아났다. 대지 위의 모든 자연이 천둥과 번개에 놀라 겁에 질렸음을 느낄 수 있었고, 땅 위로 떨어지는 빗줄기의 충격과 대지의 부드러운 내음이 비를 통해 땅속으로 젖어드는 것 또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빗방울들은 계속해서 대지의 더욱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었다. 빗방울들이 저 하늘에서부터 구름들과 함께한 기나긴 여정에 지친 듯 떨어져 내려 성난 대지 속으로 파고 들었다.

작은 씨앗은 빗방울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자 잠에서 깨어났다. 차가운 빗물이 그의 등에까지 들이닥쳤기 때문에 몸을 떨었는데, 그 순간 청명한 목소리가 씨앗의 귀에 들려왔다.

이봐요, 꼬마 아가씨! 이제 너는 자유로워질 거야. 이제 곧 땅 위로 뚫고 나가 자유를 만끽할  있게 될 거란 말이야.

그런데 저는

그게 무슨 소리냐, 얘야? 너 몹시 떠는구나!

! 비님. 저는 태어난다는 것이 무척 두렵답니다.

바보 같은 소리.. , 내가 도와주마!

저는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나는지조차 모른답니다.

여기로구나!요 부분의 껍질이 아주 얇지 않니? 내가 더 무르게 해줄 테니 너도 힘을 내야 한다.

그리고는 더 말이 없었다. 씨앗은 조금씩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조금씩, 조금씩, 조금 더. 그리고 점점 몸이 터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씨앗이 힘을 내자 무엇인가가 그의 몸 안에서 진동을 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작은 새싹의 팔이 생겨난 것이었다.

다시 한번. , 힘을 내라.

숨을 깊이 들이마시면서 다시 안으로 힘을 주자 터질 것같이 극심한 아픔이 밀려왔다. 마치 위아래로 껍질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팔의 한 부분이 밖으로 뻗어 나왔다.

아이고, 아파라!... 아이고, 추워라!

그래, 그럴거야. 이제 다른 팔을 꺼내 봐.

이번에는 조금 전처럼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다. 그래, 껍질의 바깥 세상이란 이렇게 새로운 모험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지. 씨앗은 그제야 비로소 막 새싹을 틔워 낸, 알 수 없는 극도의 흥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세상 밖으로 나온 연약한 몸뚱이와 축축한 대지의 접촉이 씨앗에게 새로운 생활의 매력과 황홀감을 안겨 주었다.

얘야, 이제 알겠지? 태어난다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니란다.

그런데 조금은 아픈걸요.

그렇지. 아픔이 없는 인생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거란다. 이제 걷는 연습을 해 봐라. 걸어다니고 바깥 구경을 하기 위해 구멍을 뚫고 나오는 일이 필요하단다. 그리고 그런 연습이 없었기 때문에 너는 밤새 그 일들을 해야 한단다.

앞으로 네 인생에서 비가 오고 난 뒤에는 항상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거야.

비님의 말이 옳았다. 머리를 바깥 세상으로 디밀고 나왔을 때 씨앗은 심한 어지러움 때문에 눈을 감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아마 밤새도록 몸을 짓누르고 굵고 거친 모래알과 바싹 마른 껍질을 뚫고 나오느라 기운이 다 빠졌기 때문이었으리라. 새싹이 가녀린 두 팔에 의지해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다. 바로 그 순간, 갖가지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어쩌면 저다지도 아름다울까? 밝고 싱싱한 신록의 잎들이 햇살 아래 반짝였다. 비님이 말한 대로 삶이란 풍요롭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주변의 모든 것은 신록, 다시 새로워진 각양각색 초록의 잔치, 바로 그것이었다.

그녀는 그 잎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저마다 다른 모양, 다른 색깔이었다. 마치 밤새 내린 비로 신선한 초록 물감을 선사받기라도 한 양 초록색이 더더욱 빛났다. 풍겨나오는 향기는 또 어떠한가? 그것은 먼지가 전혀 섞이지 않은 신선한 대기의 냄새였다. 굽이치며 뻗친 굵직한 뿌리 속에 간직해 오던 습기까지 올라와 합쳐진 냄새

저도 빨리 자라서 어른이 되고 싶어요, 할아버지.

아직 시간은 충분하단다. 얘야.

니닝냐는 그에게 입을 맞추었고 오후 내내, 거미가 인내심을 갖고 거미집을 짜듯,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밤이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날 오후가 평소보다도 훨씬 길게 느껴졌다.

비가 그칠 때쯤, 니닝냐는 일상에서 겪는 모든 일의 규칙이나 습관이 어쩌면 감정을 메마르게 한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한동안 자취를 감추고 있던 태양이 마침내 다시 그 모습을 나타냈을 때, 세상 만물은 기쁨으로 넘쳤다.

언제나 그렇듯이 태양이 하늘 높이 떠오르자 나무들은 마지막까지 맺혀 있는 한 방울의 빗방울마저도 털어 내려는 듯 온 잎새를 뒤흔들며 그 빛과 열기를 깊숙이 들이마셨다.

강물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떠나 있던 새들이 떼를 지어 돌아왔다. 강물은 거울처럼 매끈하게 흘러가면서 삶의 노래를 불렀다. 첫 번째로, 어수선하던 백사장이 조금씩 예전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뒤이어 또 다른 강변들이 강 속 깊은 곳에서 오랜 잠을 자고 난 듯 다소 피곤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동안 강물 속에 잠겨 있던 각종 생물들이 하나둘씩 물 위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악어 한 마리가 나타나서는 아직 젖은 등을 말리려는 듯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모래톱에 엎드려 잠을 청했다.

언제나 뭔가 슬프고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의 지혜로운 두루미들도 강변 모래톱을 이리저리 거닐면서 아직 물기가 덜 말라 황갈색을 띤 모래 숲에서 뭔가를 찾아내 쪼아댔다. 해질녘이 되자 강 가운데 있는 작은 섬 위로 장각조들이 날아들더니 널따란 장밋빛 날갯죽지를 제 부리로 쓰다듬었다.

모래톱이 점차 넓게 모습을 드러내자 갈매기들이 마치 누군가가 그들에게 다가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시끄럽고 떠들썩한 소리를 내며 산란을 위해 모래를 파러 돌아왔다.

멀리, 아주 멀리서 인디오들이 고기를 잡으러 내려왔다. 그들은 임시로 거주할 움막을 짓고, 밤에는 마라까리듬에 맞춰 달과 태양, 샛별과 그들의 신을 위한 찬양의 노래를 불렀다.

니닝냐는 달이 없다면 밤은 별들과 함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강물은 자신의 친구인 별들이 강물 속에서 편히 잘 수 있게 배려해 주고, 별들이 잠든 밤이면 그들을 깨우지 않으려고 더욱 천천히 흘러간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것이 삶이었다. 삶은 그렇게 모든 풍요로움과 아름다움, 자애로움을 실현하였다.

수컷 장각조가 힘차게 붕 하고 날아오르더니 평지 쪽을 향하여 하강했다. 그리고는 주둥이에 넝쿨 한 묶음을 물고 돌아와 둥지를 엮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 니닝냐는 자신의 삶과 늙은 나무들이 전에 보인 잔인함을 잊어버렸다. 니닝냐의 인생이 달라졌다.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던 삶에서 다른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을 내주는 삶으로 바뀌었다. (P52-91)

 

우리 마음은 우리가 만들어 낸 아름다운 것을 결코 잊지 않는단다.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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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 마우루 지 바스콘셀루스 (José Mauro de Vasconcelos, 1920년 2월 26일 ~ 1984년 7월 24일)
브라질의 소설가.

원주민계 어머니와 포르투갈계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고로 작가는 메스티소이다. 어린 시절에는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나타우 시에 위치한 삼촌 집에서 살았고 9살에 수영을 배운 기억을 즐겁게 회자했다고 한다. 이후 의대에 들어갔다가 2학년에 학업을 중단하고 리우데자네이루로 돌아왔다. 돌아온 바스콘셀루스는 페더급 권투 선수의 트레이너, 마좀바(Mazomba) 시의 바나나 공장 인부, 야간 업소의 웨이터 등과 같은 다양한 직업들을 전전하였고 이후에 리우데자네이루의 해변에서 어부일을 하다가 헤시피 시로 이사를 간 뒤에는 초등학교 교사일을 했다. 이 모든 직업을 22살 전에 경험했다.
억척스러운 환경을 통한 경험으로 23세가 되던 1942년, 첫 소설 「성난 바나나」(Banana Brava) 를 출간한다. 금 채굴업자들의 억압과 비리를 밝히는 책으로 비평가들의 호평은 받았지만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한다. 문학적 입지를 다진 것은 1962년 출간한 「호징냐, 나의 쪽배」(Rozinha, Minha Canoa) 를 통해서였다. 서사구조의 흐름과 인물의 묘사로 극찬을 받으며 브라질 국민 소설의 반열에 오르게되고 동시에 언론의 주목도 받기 시작한다.
1963년에 출판된 「광란자」(Doidão)의 주인공 제제의 유년 시절을 담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Meu Pé de Laranja Lima)는 1968년 출간되자마자 브라질에서 유례없는 판매기록을 세웠고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되기 시작했으며 1970년과 2012년에 2번 영화화 되었고, 1970년, 80년, 98년에 3번 TV 드라마화 되었다. 브라질 초등학교에서 강독시간 교재로도 사용된다고 한다. 작가는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성공 6년뒤 1974년에 후속작 「햇빛사냥」(Vamos Aquecer o Sol)을 통해 제제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젊어서 몸을 너무 혹사시킨 탓에 건강을 많이 해쳐 작가로서 성공한 후에도 동료 작가들이 걱정이 많았다. 그 우려대로 1984년 7월 64세의 나이에 기관지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사후 그의 작품들인 제제 3부작은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이 되어 대중매체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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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 바스콘셀로스 (박동원 옮김, 동녘)

햇빛사냥 - 바스콘셀로스 (박원복 옮김, 동녘)

광란자 - 바스콘셀로스 (이광윤 옮김, 동녘)

장미, 나의 쪽배 - 바스콘셀로스 (이승덕 옮김, 한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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