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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1. 서양 - 고전 소설

판사와 형리 – 뒤렌마트 (차경아 옮김, 문예출판사)

by handaikhan 2023. 2. 4.

뒤렌마트 - 판사와 형리 (1952년)

 

바로 이런 겁니다!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은, 그다음 것을 알도록 도와주지요. (p32)

 

자네 앞에는 일 년이 남았네. 그리고 40년 동안이나 자네는 길 쓰고 내 뒤를 추적했지. 그 당시 토파네 시 교외의 곰팡내 나는 주막에서 터키제 담배 연기에 휩싸인 채 우리가 무엇에 대해 토론했는지 기억이 나는가, 베르라하? 자네의 명제인즉 인간의 불완전함, 즉 우리가 타인의 행동 방식을 자신있게 예견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아가 만사에 개입하여 작용하는 우연을 고려할 수 없다는 사실이 어쩔수 없이 대부분의 범죄가 폭로되고 마는 근거라는 거였지. 인간은 장기 말처럼 조작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자네는 주장했네. 그와는 달리 나는 반대를 위해서라기보다는 확신을 가지고 이런 명제를 내세웠지. 바로 인간관계의 뒤얽힌 상태야말로 인식조차 되지 못할 완전범죄를 가능케 한다는 것, 이 같은 이유에서 엄청나게 많은 범죄가 처벌되지 않음은 물론, 짐작도 할 수 없는 상태로 감추어져 벌어질 수 있다는 말이었네. 그렇게 우리는 유태인 술집 주인이 따라주는 지옥불처럼 얼얼한 화주와, 더욱이 젊은 열기의 유혹을 받아 계속 논쟁을 벌이다가 마침 가까운 소아시아 뒤로 달이 가라앉을 즈음, 객기에 빠져 내기를 하나 걸었지. 고집스럽게 하늘에 걸고 한 내기였네. 이렇듯 우리는 가공스러운 장난을 억제할 수 없는 존재라네. 우리를 매혹 하는 포인트가 정신에 의한 정신의 악마적 유혹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실상 그런 장난은 신에 대한 일종의 모독인데 말이세. (p74-75)

 

내가 그 사람을 악하다고 칭하는 것은, 그는 내가 그에게 치부하는 악을 행할 때와 마찬가지로 순전한 기분에서, 불현듯 떠오른 착상에서 선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뭔가를 성취하려는 목적에서 악을 행하는 법이 결코 없을 겁니다. 이를테면 다른 이들이 돈을 벌거나 여자를 정복하거나, 또는 권력을 얻으려고 범죄를 저지르는 식으로 말이죠. 아마도 그는 그것이 아무 의미가 없을 때 악을 행할 겁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항상 두 가지 경우가, 즉 선악이 모두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결정을 내리는 건 우연입니다. (p90)

 

기하학의 도형을 다른 대칭 상으로 작도할 수 있듯이, 우리는 그의 역의 부분을 악 에도 짜맞출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어디에든 그런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아마 당신도 그런 인간을 만날는지 모르지요. 한쪽 인간을 만날 때, 우리는 대칭되는 인간도 만나는 거죠. (p90)

 

나는 자네가 저지른 범죄를 유죄로 입증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네. 그렇지만 이제 나는 자네가 저지르지 않은 범죄를 유죄로 입증할 걸세. (p108-109)

 

그렇게 그들은 마지막으로 만났다, 사냥꾼과 야수는. 그 야수는 지금 처치되어 그의 발치에 누워 있었다. 베르라하는, 이제 두 사람의 생이 끝까지 하나의 유희였음을 막연히 느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의 시선은 몇 년의 세월을 통과하며 미끄러졌고, 그의 정신은 두 사람의 생이기도 했던 저 불가사의한 미궁의 길들을 헤맸다. 이제 그들 사이에는 측량할 길 없는 죽음 밖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죽음은 하나의 판관, 그 심판은 침묵이었다.

베르라하는 여전히 몸을 굽히고 서 있었따. 좁은 방의 희미한 빛이 그의 얼굴과 손을 비추면서 동시에 시체 주변에도 어른거렸다. 두 사람 모두에게 해당되는, 두 사람 모두를 위해 창조된 빛, 그것은 둘을 화해시키는 빛이었다. 죽음의 침묵이 그에게 내려앉아 그의 내부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상대방과 같은 평안이 없었다. 죽은 자들은 항상 옳았다.

베르라하는 천천히 가스트만의 얼굴을 다시 덮었다. 그가 가스트만을 본 마지막 순간이었다. 이제부터 그의 적수는 무덤에 속했다. 그를 없애겠다는 단 하나의 생각이 몇 년간 그를 지배해왔었다. 듬성듬성 내리는 가벼운 눈발에 덮인 듯 떨어지는 회칠로 덮여서, 그 황량한 잿빛 방 안 그의 발치에 누운 그를 없앴겠다는 일념이었다. 이제 노수사관에게는 맥없이 수건을 덮는 일밖에는, 망각을 염원하는 겸허한 기도밖에는 아무것도 남은 게 없었다. 망각이야말로 분노의 불길에 타오르는 심장을 달랠 유일한 은총 아니랴. (p11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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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렌마트 - 혐의 (1958년)

  

이제 국가에 봉직하는 일을 관두게 되어 기쁘군요. 터키 경찰도, 또 베른 시경도. 이제부터 몰리에르며 발자크를 읽을 시간이 넉넉해졌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좋은 일이지만 가장 주된 이유는, 이른바 시민의 세계 질서라는 것이 이미 참되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데 있습니다. 나는 그 일을 너무나 잘 압니다. 사람들이란 항상 똑 같은 존재지요. 일요일에 하기아 소피아에 가든 베른의 성당에 가든 간에. 거물 악한은 풀어주고, 조무래기 악당은 가둡니다. 요컨대 세상에는, 신문에 날 만큼 눈에 띄는 살인보다 단지 약간은 유미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관심을 돌리지 않는 범죄가 한 무더기 존재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범죄들도 환상을 갖고 엄밀히 살펴보면 신문에 난 살인과 똑 같은 범죄란 말입니다. 환상, 바로 그겁니다, 환상을 가져야지요! 환상의 결여 때문에 한 착실한 상인이 식욕 항진제를 먹으며 점심 식사를 하는 사이에 흔히 어떤 장사에 휩쓸린 범죄를 저지릅니다. 어느 누구도 예상 못 하고, 상인 자신은 꿈도 못 꾸는 범죄지요. 왜냐하면 아무것도 그것을 들여다볼 환상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계는 소홀함ㅁ으로 인해 그릇되었고, 소홀함 때문에 몰락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 같은 위험이 스탈린 전체와 그 밖의 요제프 집안을 몽땅 합친 것보다 더 크단 말입니다. 나 같은 늙은 사냥개한테는 국가에 봉직하는 일이 이미 마땅치가 않아요. 너무나 많은 사소한 사건이 있고, 너무나 끝없이 냄새를 맡고 킁킁거려야 하니까요. 그런데 정작 추적해야 할 돈벌이 야수, 진짜 거물급 짐승들은 마치 동물원 안에 있는 것처럼 국가의 보호를 받는단 말입니다. (p148-149)

 

오늘과 그 사건 사이에는 엄청난 세월이 버티고 있어서, 꿈과 현실이 뗄 수 없이 서로 얽혀버렸다고나 할까. 그렇지만 뭐라 해명할 수 없는 공포감만은 아직도 분명히 기억한다네. (p155)

 

이 도착된 세계 안에는, 오로지 악랄한 행위로만 갚을 수 있는 자선 행위가 존재한답니다. (p172)

 

그의 실험의 유별난 점은, 고도의 학대만은 아니었습니다. 치밀하게 포박된 유태인들은 다른 의사들의 메스 밑에서도 죽어갔어요. 의사의 기술 때문이 아니라 바로 고통에서 오는 충격 때문에 죽어갔단 말입니다. 그런데 넬레의 악마적 행위는, 그가 이 모든 과정을 바로 자기 희생자의 동의를 받아 수행한다는 점에 있었습니다. 실로 믿기 어려운 얘기지만 넬레는 자발적으로 지원한 유태인들만 수술했다 이겁니다. 자기 앞에 닥친 상황을 정확히 아는 지원자들 말이지요. 그들은 심지어 그 고문이 주는 온갖 공포를 직접 보도록 수술 현장을 참관하지 않으면 안 되었지요. 그가 이것을 조건으로 내세웠으니까요. 그러고 나서야 똑 같은 고문을 당하는 데 동의할 수 있었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베르라하는 숨을 죽이고 말했다.

희망 때문이지요. 거인은 웃었다. 그의 가슴이 볼록 나왔다가 가라앉았다. 희망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자님. 그의 두 눈은 뭐라고 포착할 수 없는 야수 같은 점을 드러내며 번득였고, 얼굴의 흉터는 더욱 뚜렷이 두드러졌다. 또 짐승의 앞발처럼 베르라하의 담요에 두손을 얹고는, 그 망가진 몸체 속으로 끊임없이 보드카를 게걸스레 빨아들이는 형체 잃은 입은 아득한 슬픔의 신음 소리를 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멋들어지게 읊는 것들입니다. 그렇지만 이 중에서 가장 끈질긴 것은 소망이랍니다. 이 희망이라는 것이 지금도 붉은 흉터 범벅인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유태인 걸리버의 편을 들고 있습니다. 사랑과 믿음, 그 두 가지는 슈트트호프에서 일찌감치 악마한테 가버렸지요. 그렇지만 희망만은 남아 있어 사람들은 그것을 끌고 악마한테 갔던 겁니다. 희망, 희망! 넬레는 희망을 호주머니 안에 준비해 갖고 있다가, 그것을 원하는 누구에게나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자들이 그것을 가지려고 했습니다.

믿기 어려운 얘기입니다만 경감님, 몇백 명이 사색이 되어 바들바들 떨면서 앞선 지원자들이 수술대 위에서 뒈져가는 광경을 목격한 뒤에, 아직도 아니라고 거부할 수 있는 사정인데도 결국 넬레한테서 마취 없는 수술을 받았던 겁니다. 이 모든 일은, 넬레가 그들에게 약속한 자유를 얻겠다는 맹목적 희망을 근거로 벌어진 거랍니다. 자유! 그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참아낼 만큼 자유에 대한 인간의 열망은 엄청나지요. 그 당시 슈트트호프에서도, 사람들은 자진해서 연옥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오로지 자신에게 제공된 이 자유의 초라한 사생아를 끌어안겠다는 일념으로 말입니다.

자유란 때로는 창녀의 모습이고, 때로는 선녀의 모습이지요. 각자에게 각기 다른 모습이랍니다. 노동자에게 보이는 자유, 성직자의 자유, 은행가의 자유는 모두 다릅니다. 또 아우슈비츠, 루브린, 마이다네크, 나츠바일러, 슈트트호프 같은 근절수용소에 있는 한 가엾은 유태인에게는 역시 또 다른 것입니다. 거기서는 그 수용소 바깥에 있는 모든 것이 자유를 의미했지요. 그렇다고 감히 창조주의 아름다운 세계를 바란 것도 아닙니다. , 그건 아닙니다. 사람들은 끝도 없이 겸손해져서, 단지 그저 부켄발트나 다카우 같은 편안한 곳으로 반송되기만을 희망했지요. 이제 와서 보니, 그곳에는 실로 황금빛 자유가 있었으니까요. 죽을 위험, 가스화할 위험은 없고 다만 죽도록 매를 맞을 위험만 있던 곳, 근절수용소에서의 절대적으로 확실한 죽음에 비하면 그나마 어떤 예기할 수 없는 우연에 의해 구출될 수 있으리라는 백만 분의 1의 희망이 있던 곳, 그곳으로 되돌아가기를 희망했답니다.

, 경감님. 우리 자유라는 것이 모두에게 똑 같은 것이 되도록 싸웁시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자유를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가소로운 일이지요. 다른 강제수용소로 이송될 수 있다는 희망이 사람들을 대량으로, 아니면 적어도 과반수를 넬레의 고문대로 몰아갔습니다. 웃기는 일이지요. 그리고 기독교 신자이신 경감님, 나 역시 피투성이 도마에 누워, 넬레의 메스와 집게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도깨비처럼 내 위에서 어른거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고는 끝없는 고통의 나락으로, 단말마의 고통 속 점점 더 참담하게 벗겨지는 저 휘황한 거울 캐비닛으로 굴러떨어졌지요! 나 역시, 그래도 빠져나와 살아남겠다는, 그놈의 저주받은 수용소를 떠나겠다는 희망에서 그에게 갔던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멋들어진 심리학자 넬레는 다른 때는 자비심과 신뢰감도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 점에서 그를 믿었던 겁니다. 극도의 곤경에 처하면 줄곧 기적의 존재를 믿듯이 말이지요.

아닌 게 아니라 과연 그는 약속을 지켰어요! 내가 유일하게 터무니없는 위절제술을 이겨냈을 때 그는 내가 회복되도록 보살펴주기까지 하고, 이월 초순경 부켄발트로 되돌려 보냈습니다. 하지만 끝없는 이동을 거치고도 나는 끝내 거기에 닿지 못했지요. 왜냐하면 아이스레벤 시 근처에서 저 화창한 오월을 맞았으니까요. 라일락이 만발했던, 그래서 그 밑에 내가 기어들어 숨었던, 예의 그날 말입니다. (p175-178)

 

이제 보드카가 기운을 발하기 시작했다. 실상 환자의 눈에는 저편 창가의 커튼이 마치 사라져가는 배의 돛처럼 부푸는 것이 보였고, 귀로는 밀어올리는 덧문의 달각거리는 소리까지 들리는 듯싶었다. 이어서 한층 몽롱하게, 거대하고 육중한 몸집이 어둠 속으로 침잠하는 것도 느꼈다.

그러나 곧 열린 창틈으로 무수한 별빛이 쏟아져 들어오자, 노인의 내부에서는 누를 길 없는 용기가 솟아올랐다. 이 세상 안에서 존속하겠다는, 더 나은 다른 세계를 위해 싸우겠다는, 암이 좀먹는 처참한 몸뚱이를 이끌고서라도, 일 년밖에 안 남은 여생 동안 열렬히 줄기차게 싸우겠다는 용단이었다. (p180)

 

난 자네한테 단지 내 명제들의 개연성을 입증했을 뿐이야. 하지만 개연성이 높다고 해도 그것이 아직은 실재하는 것이 아닐세. 내가 내일 비가 올 확률이 높다고 말한다고 해서 내일 꼭 비가 올 필요는 없지. 이 세상에서는 사고가 꼭 진실과 일치하지는 않거든. 그렇기만 하다면 우리는 많은 면에서 한결 쉽게 살 거야, 사무엘. 사고와 실재 사이에는 여전히 현존이란 모험이 버티거든. 우리 이제 맹세코 그것을 이겨내보자고. (p194)

 

경감님, 경감님, 인간다운 삶을 살아내려고 내가 내 타자기로 시도해보지 않은 게 있는 줄 아십니까? 그래 봤자 중간치기 시골 가난뱅이만큼의 소득도 거두지 못했어요. 계획했던 일을 차례대로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고 희망도 차례대로 포기했지요. 최상의 희곡 작품, 뜨거운 시, 가장 품위 있는 소설들! 공중누각, 한낱 공중누각이었어요! 스위스는 나를 바보로, 삐딱한 망상가로, 풍차랑 양 떼를 상대해서 싸우는 돈키호테로 만든 겁니다. 여기서는 자유, 정의와 동시에 조국의 장터에 팔려고 내놓은 저 다른 품목들을 옹호해야 하지요. 또 장사가 아닌 정신에 몸을 바치려 하면, 건달과 거지의 실존을 끌고 가도록 강요당하는 그런 사회를 존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삶을 즐겁게 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향락의 천 분의 일도 내놓으려 하지는 않습니다. 한 조각 빵도, 땡전 한 푼도. 그리고 언젠가 어느 천년왕국에서 사람들이 문화라는 말을 듣자마자 권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듯이, 이 땅에서는 그 말을 들으면 지갑에 안전장치를 하지요.

포르트쉬크. 베르라하는 엄중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이 돈키호테를 끌고 오다니 잘됐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건 내가 사랑하는 주제라오. 만약 한 줌 심장을 지녔고 두개골 밑에 콩알만 한 오성이라도 지녔다면, 모름지기 우리는 모조리 돈키호테가 되어야 할 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양철 갑옷을 걸친 그 옛날의 초라한 기사처럼 풍차에 맞서 싸워서는 안 되지요. 오늘날 전장의 적수는 위험한 거인들이란 말입니다. 때로는 잔인무도하고 교활한 괴물이고, 때로는 태초부터 참새의 뇌수를 가진 진짜 공룡입니다. 모조리 짐승이지요. 그렇다고 동화책에 나오거나 우리의 환상 속에 있는 그런 짐승이 아니라 현실에서 버티는 짐승이라오. 이제 우리의 과제는, 만난을 무릅쓰고 어떤 형태든 비인간성과 맞서 싸우는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실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싸우느냐이며 동시에 조금은 현명하게 투쟁에 진전을 보는 것이지요. 악에 맞선 투쟁은 불을 갖고 노는 유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바로 포르트쉬크 당신은, 불을 가져다놓는단 말이오. 왜냐하면 당신은, 물 대신 기름을 뿌리는 소방수처럼 훌륭한 투쟁을 어리석게 벌이니까. 당신이 발행하는 잡지, 그 초라한 팸플릿을 읽노라면, 사람들은 당장 온 스위스가 폐기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이 나라 안에는 제대로 되어 있지 못한 것이 얼마나 많은지! 그런 거라면 나도 당신한테 얼마든지 읊어댈 수 있고, 결국 그 때문에 나도 약간은 속을 썩였다오. 그렇다고 해서 마치 소돔과 고모라에 사는 것처럼 만사를 불에 던져버린다는 건 어리석을 뿐 아니라 온당치 못한 일이지요.

당신은 마치 이 나라를 여전히 사랑하는 것조차 부끄러운 것처럼 행동해요. 그건 내 맘에 들지 않아요, 포르트쉬크. 우리는 모름지기 자신의 사랑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되지요. 조국애라는 것도 여전히 좋은 사랑이오. 다만 그 사랑은 엄격하고 비판적이어야 하오. 그렇지 않ㅎ으면 그건 한낱 본능적 사랑이 되고 말지요. 따라서 우리는 조국의 더러운 부위와 얼룩을 발견하면, 실로 헤라클레스가 아우기아스의 외양간에서 똥을 쳐낸 것처럼 쓸고 닦는 일부터 파악해야 할 거요. 그 영웅의 열 가지 행적 가운데 이 일이 나한텐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오. 집채를 몽땅 무너뜨린다는 건 무의미하고 현명치 못한 짓이지요. 이처럼 초라하게 파손된 세계 안에서 새집을 짓기는 어려울테니. 새집을 지으려면 한 세대 이상 세월이 걸릴 테고, 마침내 완성된다 해도 그것 역시 낡은 집보다 더 나으리란 보장이 없지요.

중요한 건 진실이 말해질 수 있다는 사리, 그리고 재치 있는 허튼 소리를 곧장 뒤쫓아가지 않고 진실을 위해 투쟁할 수 있다는 점이요. 그것이 스위스에서는 가능하지요. 우리 이 점을 냉정하게 시인하고, 또 감사히 여깁시다. 우리는 어떤 정부나 연방의회, 또는 의회라고 이름 붙은 어떤 것 앞에서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개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초라한 행색으로 돌아다니며 무턱대고 다분히 편안치 못한 삶을 이어갑니다. 이것이 돼지 같은 삶이라는 점은 시인해요. 그렇지만 참된 돈키호테는 자신의 초라한 무장에 대해 긍지를 느끼지요.

인간의 어리석음과 이기주의에 맞선 투쟁은 예부터 힘들고 값진 수고를 요하며, 늘 가난 및 멸시와 묶인다오. 그렇지만 그 투쟁은 한탄이 아닌 존엄성을 가지고 끝까지 임해야 하는 성스러운 투쟁이오. 그런데 당신은 우리 선량한 베른 시민들의 귀가 아플 정도로 아우성을 치며 저주만 퍼부어요. 그러면서 그들 가운데서 얼마나 부당한 운명을 겪습니까! 당신은 다음번 혜성의 꼬리가 다가와서 우리의 고도를 폐허로 조각내기를 윈한단 말이오.

포르트쉬크, 포르트쉬크, 당신은 사소한 동기들을 가지고 당신의 투쟁을 벌인다오. 누구든 정의를 거론하려면, 그가 오로지 빵 광주리에만 매달린다는 혐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당신의 불행에서, 당신이 지금 걸친 해진 바지에서 빠져나오시오. 하잘것없는 사항과의 유격전에서 벗어나라고요. 이 세상에는 기필코 교통경찰보다 큰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p200-203)

 

선과 악은 다시 떨어지기에는, 이것은 잘됐고 저것은 잘못되었다, 이것은 선으로 통하고 저것은 악으로 통한다라고 말하기에는 이 인류가 낳은 지옥과 천국 간의 저주받을 결혼의 밤에 너무나 깊이 서로 엉켜버렸습다. 너무 늦었어요! 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을 이미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복종이나 우리의 항거가 어떤 사건을 초래하는지, 우리가 먹는 과일, 우리가 자식들에게 주는 우유와 빵에 어떤 착취, 어떤 유의 범죄가 들러붙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희생자를 보지도 않고, 그에 관해 아는 바도 없이 살인을 하지요. 그리고 살인자가 알지도 못하는 새에 살해당합니다.

너무 늦었어요! 현세의 유혹은 너무나 크고, 은총을 누리기엔 인간은 너무나 보잘것없거든요. 알고 보면 은총이란 결국 살아가는 것, 그리고 헛된 존재로 머무는 것, 그 이상이 못 됩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행동의 암에 부식당해 불치의 병을 앓습니다. 세계는 썩었어요, 경감님. 세계는 잘못 저장해놓은 과일처럼 부패했단 말입니다.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요? 어떻게 해도 우리는 이 지구를 천국으로 만들어놓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수치스런 개선의 날들, 부와 명예의 방탕스러운 날들에 불려 나온, 그래서 지금 우리의 밤을 밝혀 주는 저 지옥의 용암류를 우리는 이제 그것이 뿜어져 나왔던 분화구로 되돌려 가두어놓을 수가 없다는 말이지요. (p246)

 

실로 사람들은 대체 자신이 무엇을 믿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지요. 모르긴 해도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믿는 것이 허무는 아닙니다. 그들은 어쨌든 믿어요. 비록 겹겹이 쌓인 불확실한 안개처럼 몽롱하긴 해도 인간성이니, 기독교 정신이니, 관용이니, 정의니, 사회주의니, 이웃 사랑이니 하는 것들을….그리고 그들 역시 그 점을 인정하지요. 그렇지만 그들은 여전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실상 중요한 건 어쨌든 성실하게 최선의 양심을 좇아 사는 것이지, 라고. 사람들은 때론 타의에 쫓기면서 그렇게 살려고 애를 씁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기도하는 모든 것, 올바른 행동과 그릇된 행동은 요행을 바탕으로 일어납니다. 선과 악은 추첨의 경우처럼 우연한 운명에 의해 우리 품 안에 떨어지지요. 우연에 의해 우리는 정의롭기도 하고, 우연에 의해 우리는 그릇되기도 한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허무주의자라는 거창한 단어를 쉽게 쥐고, 뭔가 위협적인 낌새가 느껴지는 누구에게나 그 단어를 던지지요. 거창한 포즈를 하고는, 머릿속에는 더욱 큰 확신을 갖고서. (p272)

우리는 개인으로선 세상을 구제할 수 없습니다. 그건 가엾은 시시포스의 작업처럼 희망 없는 일일 겁니다. 세상은 우리 수중에 놓여 있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한 권력자나 한 민족, 또는 그래도 가장 막강한 악마의 수중에도 놓여 있지 않답니다. 세상은 하느님의 손에 놓여 있으며 신만이 결정을 내립니다.

우린 오로지 낱낱의 개인으로서만 도움을 줄 수 있지 전체로서는 도움이 안 돼요. 이것이 가엾은 유태인 걸리버의 한계이며 모든 인간의 한계랍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을 구제하려고 애를 쓸 게 아니라 세계를 버티어 이겨내려고 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 후대를 사는 우리에게 그나마 남은 유일하게 진실한 모험이지요.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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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뒤렌마트(Friedrich Dürrenmatt, 1921년 1월 5일 ~ 1990년 12월 14일)

스위스의 극작가다. 

스위스의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브레히트 등의 영향도 받으면서 그로테스크한 폭로나 쇼크적 효과를 통해 인식하는 작풍을 확립했다. 그는 무자비한 자세로 현대의 모랄을 추구하는데, 극의 형식은 비영웅적인 희극이다. <천사 바빌론에 오다> <미시시피씨의 결혼>등을 발표하고, <귀부인 고향으로 돌아오다>(1956)의 성공과 논문 <연극의 여러 문제>로 주목을 끌었다. 과학과 정치문제에까지 육박하는 허구의 희극 <물리학자들>에서는 브레히트와의 대결의 자세가 보인다. 근작으로는 <혜성> <재세례파(再洗禮派)의 사람들> 등이 있다.
1990년 12월 14일 노이샤텔에 있는 저택에서 심장마비로 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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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렌마트 희곡선 - 뒤렌마트 (김혜숙 옮김, 민음사세계문학)

약속 - 뒤렌마트 (차경아 옮김, 문예세계문학)

천사, 바빌론에 오다 - 뒤렌마트 (황혜인 옮김,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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