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1. 서양 - 고전 소설

보바리 부인 – 플로베르 (이봉지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by handaikhan 2023. 2. 4.

 펭귄클래식 세계문학

귀스타브 플로베르 - 보바리 부인 (1856년)

때때로 엠마는 밖으로 삐져나온 그의 빨간 내복을 조끼 속으로 넣어주기도 하고, 넥타이를 바로잡아 주기도 하고, 그가 끼려던 빛바랜 장갑을 치워버리기도 했다. 샤를은 이 모든 것이 자기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그것은 순전히 그녀 자신을 위한 것으로, 이기심과 짜증의 발로일 뿐이었다. 그녀는 또한 자기가 읽은 것, 즉 소설이나 새로 나온 희곡의 한 구절, 혹은 신문 기사에 나온 상류사회의 일화 같은 것을 이야기해 주기도 했다. 어쨌건 간에 샤를은 언제나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었고, 항상 맞장구를 쳐주는 상대이기 때문이었다. 하긴 강아지에게도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는 판국에! 그러니 벽난로의 장작이나 시계추한테 이야기하지 못할 게 어디 있겠는가?

그러면서 그녀는 뭔가 사건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난당한 선원처럼 그녀는 자신의 고독한 삶 너머로 필사적인 시선을 던지며 수평선 저쪽 안개 속에서 나타날 흰 돛단배를 찾고 있었다. 그녀는 몰랐다. 그 우연이 어떤 것이며 또 어떤 바람을 타고 와서 어디로 데려갈 것인지, 그것이 쪽배일지 3층 갑판이 있는 대형선일지, 고뇌를 싣고 있는지, 아니면 뱃전까지 행복이 가득 차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면 그날이 오늘이기를 바랐다. 그녀는 모든 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으며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다가는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석양이 질 때면 더욱 슬퍼져서 빨리 내일이 오기를 갈망했다.

다시 봄이 돌아왔다. 배꽃이 필 무렵 처음으로 더위를 느끼면서 그녀는 숨이 막히곤 했다.

7월에 들어서면서부터 그녀는 손가락을 꼽아가며 10월까지 몇 주나 남았는지를 헤아려보았다. 당베르빌리에 후작이 또 보비에사르에서 무도회를 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9월이 다 가도록 편지도 방문도 없었다.

이 실망 이후, 그녀 가슴에 남은 것은 공허뿐이었다. 그리고 똑 같은 나날의 연속이었다.

이제 항상 똑 같은 날들이 하나씩 줄지어 지나가는 것인가! 셀 수도 없이 많은 날들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채로 이어진단 말인가! 다른 사람들의 경우, 아무리 평범한 사람이라도, 적어도 뭔가 생활의 변화가 일어날 기회가 있다. 때로는 우연한 일로부터 무한한 결과가 초래되기도 한다. 그러면 환경이 달라진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신의 섭리인 것이다. 미래는 깜깜한 복도이다. 그리고 그 끝에 있는 문은 꽉 잠겨 있다.

그녀는 연주를 그만두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연주한단 말인가? 누가 듣는다고? 그녀는 연주회에서 짧은 소매 벨벳 드레스를 입고 에라르 피아노의 상아 건반을 가벼운 손끝으로 두드릴 일이 없을 것이고 감탄의 속삭임이 미풍처럼 주위를 감도는 것을 느낄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뭣하러 수고스럽게 연습을 한단 말인가? 그녀는 스케치북도 자숫감도 장롱 속에 처박아 버렸다. 뭣하러? 무슨 소용이 있기에? 바느질은 그녀를 짜증나게 했다. (p98-99)

 

이런 비참한 생활이 앞으로 영원히 계속 될 것인가? 여기서 영영 벗어나지 못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녀는 행복하게 사는 다른 모든 여자들보다 못할 것이 없었다. 보비에사르에서 본 공작 부인들은 자기보다 허리도 굵고 행동거지도 별로 세련되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하느님을 원망하며 벽에 머리를 대고 울었다. 그녀는 극적인 삶, 가면무도회의 밤, 그녀가 알지 못하는 열광을 안겨줄 대담한 쾌락을 선망했다. (p104)

 

미래의 행복은 열대의 해안처럼 그 앞에 가로놓인 광대한 공간에 특유의 부드러움과 향기로운 바람을 보내준다. 그리고 사람들은 거기에 취한 나머지 아직 보이지 않는 지평선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p143)

 

엠마는 야위어갔다. 두 볼은 파리해졌고 얼굴은 길쭉해졌다. 그녀의 검은 머릿단과 커다란 눈, 곧바로 뻗은 콧날, 새처럼 가냘픈 걸음걸이, 게다가 이제는 언제나 침묵에 잠겨 있는 그녀의 모습은 삶이라는 바다를 닿을 듯 말 듯 스치며 가로질러 가는 존재를 연상시켰다. 또한 그녀의 이마에는 뭔가 숭고한 숙명의 낙인이 찍혀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너무도 슬프고 너무도 차분하고 너무도 부드러운 동시에 너무나도 삼가는 모습이었기 대문에 그녀 옆에 있으면 얼음과도 같은 차가운 매력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성당 안에서 대리석의 냉기가 서린 꽃향기에 전율을 느끼는 것과 흡사했다. 다른 사람들도 이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약제사는 곧잘 이렇게 말했다.

대단한 여성이야. 군수 부인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어.

중류층 부인들은 그녀의 검약을, 환자들은 그녀의 예절 바름을, 가난한 사람들은 그녀의 자비로움을 칭찬했다.

그러나 그녀는 탐욕과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주름이 똑바로 잡힌 옷이 그녀의 뒤틀린 마음을 감추고, 그토록 정숙해 보이는 입술이 그녀의 번뇌를 차단하고 있었다. 그녀는 레옹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그 모습을 마음껏 즐기기 위해 고독을 원했다. 그를 직접 눈앞에 보는 것은 이러한 상상속의 쾌락을 방해했다. 그의 발소리에 엠마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그가 나타나면 감동은 사라지고 커다란 놀라움만 남았다가 결국 그것마저 슬픔으로 변하고 마는 것이었다.

레옹은 매번 절망 속에서 그녀 집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알지 못하는 사실이 있었다. 그것은 그녀 또한 뒤쫓아 일어나 길을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지켜본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의 거동에 신경을 썼고 그의 안색을 살폈으며 그의 방에 들어갈 그럴듯한 구실을 찾느라 전전긍긍했다. 약제사의 마누라가 레옹과 한 지붕 밑에서 자는 것이 엄청난 행복처럼 생각되었다. 황금사자의 비둘기 떼가 분홍빛 다리와 흰 날개를 그 집 빗물받이에 적시러 가는 것처럼 그녀의 생각 역시 항상 그 집 위에 내려앉았다. 그러나 엠마는 자신의 사랑을 의식하면 할수록 더욱더 억눌러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했고 약화시키려 노력했다. 그녀는 레옹이 그것을 눈치채 주기를 바랐다. 그런 계기가 될 우연한 사건이나 돌발 사태 같은 것도 상상해 보았다. 그녀를 제어한 것은 아마도 게으름이나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물론 수줍은 탓도 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그를 지나치게 멀리했기 때문에 이제는 때가 늦어버렸으며 모든 것이 다 틀려버렸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정숙해라고 말하며 체념한 모습으로 거울에 스스로를 비춰볼 때면 자긍심과 함께 일말의 기쁨을 느꼈고 그것은 그녀의 희생을 다소나마 보상해 주는 듯했다.

그녀 내부에는 육욕과 금전욕, 그리고 정열로 말미암은 우수가 한데 뒤엉켜 하나의 고뇌로 응축되었다. 그녀는 생각을 딴데로 돌리려고 애쓰기는커녕 더욱더 거기에 집착하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통의 불씨를 쑤셔댔다. 그녀는 음식이 시원찮다고, 문이 제대로 안 닫혔다고 짜증을 냈고, 자기가 소유하지 못한 벨벳, 맛볼 수 없는 행복, 그리고 너무 높은 꿈과 너무 좁은 집 때문에 자기 신세를 한탄했다.

더욱 울화가 치미는 것은 샤를이 그녀의 고통을 도통 짐작조차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는 자기가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고 있다고 확신했고 그녀는 그것이 미련한 모욕으로 느껴졌다. 또한 그렇게 안심하는 모양이 배은망덕으로 느껴졌다. 도대체 그녀가 누구 때문에 정조를 지키고 있는데? 샤를이야말로 모든 행복의 장애물이요, 모든 비참의 원인이요, 그녀를 옴짝달싹 못 하게 옥죄고 있는 복잡한 가죽끈의 잠금 고리이자 거기에 달린 날카로운 바늘과 같은 존재가 아닌가?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불만에서 생긴 모든 증오심을 남편 한 사람에게로 돌렸다. 증오심을 줄이려는 모든 노력은 오히려 그것을 부채질하는 결과밖에 되지 않았다. 이런 쓸데없는 노력은 또 하나의 절망의 이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사이는 점점 더 멀어졌다. 심지어 그녀는 자신의 부드러운 태도에조차 화가 났다. 초라한 일상생활에 지쳐 사치스러운 생활을 공상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부 사이의 미적지근한 애정 때문에 간통을 꿈꾸게 되었다. 샤를이 그녀를 두들겨 패기라도 한다면 좋으련만. 그러면 그를 미워할 정당한 이유가 생길 텐데. 마음 편하게 복수할 수도 있을 텐데. 때로 그녀의 머릿속에 잔인한 생각이 떠올라 그녀 자신도 깜짝 놀랐다. 그런데도 계속 미소를 짓고, 행복하다고 말하고, 또 그런 척해야 하다니!

그녀는 이런 위선이 너무 싫었다. 레옹과 함께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먼 곳에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고 싶었다. 그러나 곧 그녀의 마음속에는 컴컴한 심연이 입을 벌렸다. (p161-163)

 

, 그런데 그는 가버렸다. 그녀 삶의 유일한 매력, 유일한 행복의 기회였던 그가 떠나버렸다. 왜 그녀는 그 행복을 잡지 않았단 말인가! 그가 도망가려고 했을 때 왜 그를 두 손으로 잡지 않았단 말인가! 왜 두 무릎을 꿇고 애원하지 않았단 말인가! 그녀는 레옹을 사랑하지 못한 자신을 저주하며 그의 입술을 갈망했다. 뒤쫓아가서 그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나예요, 나는 당신 거예요!하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일에 따르는 여러 난관을 생각하자 엠마는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해 버렸다. 그러자 아쉬움 때문에 그녀의 욕망은 더 커졌고 더욱 거세게 끓어올랐다.

그때부터 레옹에 대한 추억은 그녀의 권태로운 생활을 중심이 되었다. 그것은 러시아의 초원에서 나그네들이 눈 위에 버려두고 간 모닥불보다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그녀는 그에게 달려가 그 옆에 웅크리고 앉아 꺼져가는 불꽃을 살살 헤집었다. 또한 주위를 돌아보며 불꽃을 살릴 수 있는 것이 없을까 찾아보았다. 그녀는 모든 것을 줍고, 모든 것을 받아들여 슬픔의 불을 지폈다. 가장 아득한 기억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기회, 실제로 있었던 일과 상상한 일, 산산이 흩어지는 관능의 욕망과 죽은 나뭇가지처럼 바람에 꺾이는 행복의 욕망, 쓸데없는 그녀의 정조와 좌절된 희망, 그리고 집 안의 집일. 그녀는 이 모든 것을 불쏘시개로 썼다.

그러나 불길은 차츰차츰 가라앉았다. 연료가 고갈된 것일까, 아니면 한꺼번에 너무 많이 쌇아 올렸기 때문일까? 어찌 되었건 오랜 부재로 인해 사랑은 점차 꺼지고, 미련과 아쉬움은 습관의 무게 아래 질식하고, 창백한 그녀의 하늘을 붉게 물들이던 불꽃 위로 구름이 몰려와 어느새 붉은빛은 없어져 버리고 구름만이 남았다. 스스로의 내면에 대해 판단이 흐려진 그녀는 남편에 대한 혐오를 애인에 대한 갈망으로 착각하고, 한 사람에 대한 증오의 뜨거움을 다른 사람에 대한 애정의 따사로움으로 오해했다. 하지만 여전히 폭풍은 휘몰아치고, 열정은 고갈되어 재만 남았지만 어디서도 구원의 손길은 다가오지 않았고, 태양은 보이지 않아 천지 사방은 완전한 암흑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에 떨며 깜깜한 밤길을 헤매고 있었다.

그리하여 다시 토트에서와 같은 불행한 나날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지금이 그때보다 더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사이 그녀는 고통을 경험했고, 또 그것이 끝나지 않으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큰 자기희생을 감수한 여자이니만큼 약간의 변덕은 허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고딕식 기도대를 샀고, 손톱 손질용 레몬값으로 한 달에 14프랑을 썼다. 그녀는 루앙의 상점에 파른 캐시미어 옷을 주문했고 뢰뢰의 가게에서 가장 좋은 스카프를 사서는 실내복 허리에 맸다. 그런 차림새로 그녀는 창의 덧문을 닫아건 채 손에 책을 들고 소파에 드러누워 있었다. (p185-186)

 

그래! 내게는 없는 것이 너무 많았어! 언제나 혼자였어! ! 내 인생에 목적이 있었따면, 사랑이 있었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더라면….! 그랬다면 내 모든 열정을 다 쏟아부었으련만. 모든 것을 극복하고, 모든 것을 부수었으련만! (p206)

 

그녀는 잠시 동안 그 조악한 종이를 손가락 사이에 들고 있었다. 틀린 철자가 수없이 눈에 띄었지만 엠마는 가시나무 울타리 속에 반쯤 몸을 감추고 꼬꼬댁거리는 암탉의 울음소리처럼 그 속에서 퍼져 나오는 정다운 감정을 마음속으로 좇고 있었다. 화덕의 재로 잉크를 말린 듯, 편지에서 잿빛 먼지가 옷위로 떨어졌다. 부젓가락을 집으려고 난로에 몸을 구부리는 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아버지와 함께 난롯가의 의자에 앉아 탁탁거리며 따오르는 바다 골풀의 센 불꽃에 막대기 끝을 태우던 것은 얼마나 아득한 옛 일이지! 그녀는 햇빛으로 충만한 여름날 저녁을 생각했다. 사람이 지나가면 망아지들이 힝힝거리면서 껑충껑충 뛰었고그녀의 방 창문 밑에는 벌집이 있었고 때로 꿀벌들이 햇빛 속을 빙빙 돌다가 유리창에 부딪쳐 황금 구슬처럼 유리창을 두드리며 튀어나갔지. 그때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얼마나 자유롭고, 희망에 부풀고, 풍요한 환상에 젖어 있었던가! 지금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그녀는 그것을 처녀 시절, 결혼 생활, 그리고 연애라는 여러 단계를 거치며 갖가지 영혼의 모험에 소비해 버렸다. 마치 여행중, 길가의 모든 여관에 얼마쯤의 돈을 남기고 가는 나그네처럼 그녀는 인생 여정에서 그것들을 계속 잃어버렸다.

그런데 누가 그녀를 이토록 불행하게 만들었는가?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파괴한 엄청난 재앙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그녀는 얼굴을 들어 마치 고통의 원인을 찾기라도 하듯 주위를 돌아보았다. (p251-252)

 

! 이게 다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아시죠? 이제 나는 당신 없이는 살 수 없어요. 때때로 당신이 너무나 그리울 때면 미칠 듯한 사랑에 가슴이 미어질 것만 같아요. 그럴 때면 이런 생각을 해요. 그이는 어디 있을까? 다른 여자들과 함께 있는지도 몰라. 여자들이 그이에게 미소를 지으면 그이가 다가가겠지! 그럴 리가 없어요. 그렇죠? 나 외에는 없는 거죠? 물론 나보다 더 예쁜 여자도 있겠죠.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 깊이 당신을 사랑해요. 나는 당신의 하녀, 당신의 애첩이에요. 당신은 나의 왕이고, 우상이에요. 당신은 착해요! 미남이에요! 머리도 좋고 힘도 세요!

그는 이런 말을 너무나 자주 들었기 때문에 이제 전혀 새롭지 않았다. 엠마 역시 세상의 모든 정부들과 다를 바 없었다. 새로움의 매력이 옷가지처럼 한 꺼풀씩 벗겨지자 항상 같은 형태와 언어를 지닌 정열의 영원한 단조로움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는 경험이 풍부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표현들 아래 감춰져 있는 미묘한 감정의 차이를 알지 못했다. 헤픈 여자들과 몸 파는 여자들에게 그런 말을 지겹게 들었기 때문에 그는 엠마가 하는 말의 진정성을 별로 믿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대단치 않은 감정을 과장해 표현하는 그런 말은 적당히 에누리해서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충만한 영혼이라도 때로는 공허한 비유로밖에 표현되지 못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결코 자신의 욕망, 자신의 생각, 자신의 고통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며 또한 사람의 말이란 금 간 냄비와 같아서, 마음 같아서는 그걸 두드려 별을 감동시키고 싶지만 실제로는 겨우 곰이나 춤추게 만들 그런 어설픈 멜로디밖에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어떤 인간관게에서도 감정을 앞세우지 않았고 따라서 그런 사람들 특유의 뛰어난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덕택에 그는 이 연애에서 다른 종류의 쾌락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그는 모든 내숭을 배제했으며 그녀를 마구 거칠게 다루었다. 그리하여 그녀를 제멋대로 조종할 수 있는 유연하고 타락한 존재로 만들었다. 그것은 남자에 대한 찬미와 여자에 대한 애욕이 가득한 어리석은 집착이었으며 그녀를 마비시키는 지극한 행복이었다. 그녀의 영혼은 마치 말바지아 포도주 통 속에 빠진 클래랜스 공작처럼 이러한 도취 속에 빠져 오그라들었다. (p277-278)

 

하지만 여하튼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고, 과거에도 행복했던 적이 없었다. 왜 인생은 이렇게 불만족스러운 것일까? 무엇인가에 기대면 곧바로 썩어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나 만일 어딘가에 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면, 열정과 세련을 동시에 갖춘 가치 있는 인간이 있다면, 하늘을 향해 청동 리라로 애절한 결혼 축가를 연주하는 그런 천사 같은 외모에 시인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녀라고 그런 사람을 발견하지 말란 법이 어디 있는가? ! 어림없는 일이야! 게다가 애써 찾을 가치가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게 거짓일 뿐! 미소 뒤에는 항상 권태의 하품이 감춰져 있고 기쁨 뒤에는 저주가, 쾌락 뒤에는 혐오가 숨어 있으며 최상의 키스라 할지라도 더욱 큰 관능에 대한 채울 수 없는 갈증만 입술 위에 남겨놓을 뿐이다. (p409-410)

 

<참고> 

보바리즘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다르게 상상하는 것

 

.......................................................................................................................................................................................................................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1821년 12월 12일 -1880년 5월 8일)

프랑스의 작가.
1821년 프랑스 북부 루앙에서 태어났다. 16세였던 1837년 지역 문예지에 처음으로 글을 발표하며 습작을 시작했다. 파리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다가 23세 되던 해 갑작스러운 간질 발작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이 원하던 창작 활동에 전념했다. 1849년 『성 앙투안의 유혹』의 초고를 완성하지만 친구들로부터 혹평을 받았으며,[1] 1857년에는 『보바리 부인』을 출간하자마자 풍기문란과 종교 모독죄로 기소되기도 했다. 하지만 곧 무죄판결을 받은 플로베르는 큰 명성을 얻었고, 1866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이후 『감정 교육』의 상업적 실패를 경험하고 이십여 년 전부터 생각해온 작품 『부바르와 페퀴셰』를 집필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글쓰기의 어려움에 부딪힌 플로베르는 친구 투르게네프의 조언에 따라 짧은 이야기를 써보자는 생각에 마지막 도전으로 「구호수도사 성 쥘리앵의 전설」 「순박한 마음」 「헤로디아」를 차례로 완성한다. 1877년 『세 가지 이야기』로 한데 묶여 출간된 이 단편들은 평단 및 대중의 커다란 호응과 함께 그에게 작가로서의 자신감을 되찾아주었다. 플로베르는 『부바르와 페퀴셰』의 집필을 이어가다가 결국 미완으로 남긴 채 1880년 뇌출혈로 사망했다. 

 

..............................

마담 보바리 – 플로베르 (김화영 옮김, 민음사)

보바리 부인 – 플로베르 (민희식 옮김, 문예세계문학)

보바리 부인 – 플로베르 (민희식 옮김, 동서월드북)

마담 보바리 – 플로베르 (김남주 옮김, 문학동네 세계문학)

마담 보바리 – 플로베르 (진인혜 옮김, 을유 세계문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