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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1. 서양 - 고전 소설

어린왕자 - 생텍쥐페리 (심영아 옮김, 펭귄클래식)

by handaikhan 2023. 2. 4.

펭귄 클래식 155

생텍쥐페리 - 어린왕자 (1943년)

 

어른들은 언제나 혼자서 이해하는 법이 없다. (P9) 
 
신비가 압도적일 때는 감히 거역하지 못하는 법이다. (P12)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고 이야기하면 어른들은 항상 이렇게 묻는다. 몇 살이니? 형제가 몇이야? 몸무게는? 아빠는 얼마나 벌지? 그들은 이런걸 알아야만 그 친구를 안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은 원래 이런 식이다. 그들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을 아주 너그럽게 대해야만 한다. (p20-22)


내가 여기서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그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친구를 잊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누구에게나 친구가 있는 것은 아니다. (P22)

 

수천 년 동안 꽃들은 가시를 만들어냈어. 수천 년 동안 양들은 꽃들을 먹어왔고. 그런데도 왜 꽃들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가시를 만들어내는지 이해하는게 중요하지 않다고? 꽃과 양의 전쟁은 중요하지 않단 말이야? 이게 뚱뚱하고 시뻘건 남자의 계산보다 더 심각하고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내가 아는, 이 세상에 하나뿐인 꽃, 오로지 내 별에만 있는 꽃을, 어느 날 아침, 양 한 마리가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한입에 먹어버릴 수 있는데, 그게 중요하지 않다고?

만약 누군가 수백만 개의 별에 딱 한 송이 밖에 없는 꽃을 사랑한다면, 그는 별들을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할 거야. 저기 어딘가 내 꽃이 있어 하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양이 그 꽃을 먹어버린다면, 그에게는 갑자기 모든 별들이 꺼져버린 것과 같겠지! 그런데 그게 중요하지 않다고! (p35-36)

 

그 꽃은 어디서 왔는지 모를 씨앗에서 어느 날 싹이 텄고, 어린 왕자는 다른 싹들과 전혀 다른 그 싹을 아주 주의 깊게 감시했다. 새로운 종류의 바오바브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나무는 곧 자라기를 멈추더니 꽃을 피울 준비를 시작했다. 커다란 꽃봉오리가 생겨나는 것을 지켜본 어린 왕자는 분명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리라 짐작했지만, 꽃은 줄곧 초록색 방 안에 숨어 아름다운 모습을 준비했다. 꽃은 세심하게 색깔을 골랐다. 천천히 옷을 입으며 한 장 한 장 꽃잎을 매만졌다. 개양귀비처럼 온통 꼬깃꼬깃한 모습으로 나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꽃은 자신의 아름다움이 한껏 빛나는 가운데에서만 등장하고 싶었다. ! 그렇다. 꽃은 애교덩어리였다! 꽃의 몸단장은 며칠하고도 또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더니 마침내 어느 날 아침, 딱 해가 뜨는 시간에 꽃이 모습을 드러냈다.

꽃은 그토록 신경 써서 준비했으면서도 하품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 이제 막 깨어나서……이해해 주세요. 아직 머리가 엉망이라….

어린 왕자는 찬탄을 억누를 수 없었다.

! 당신은 너무나 아름답군요!

그렇죠? 게다가 저는 태양과 같은 시간에 태어났어요.

꽃이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린 왕자는 그 꽃이 그다지 겸손한 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그래도 그녀는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이렇게 꽃은 조금 예민한 허영심으로 곧바로 어린 왕자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p37-39)

 

이렇게 해서 어린 왕자는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선의에도 불구하고 곧 그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는 꽃의 하찮은 말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매우 불행해졌다. (p41)

 

꽃의 말을 듣지 말았어야 했어. 꽃들의 말은 절대로 들으면 안 돼. 꽃들은 그저 바라보고 향기를 맡는 거야. 꽃이 별을 향기롭게 해주었는데 나는 그걸 즐길 줄 몰랐어. 나에게 그토록 거슬렸던 그 발톱 이야기도 불쌍히 여겼어야 했는데

그때 나는 아무것도 몰랐어!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판단했어야 했는데! 꽃은 나한테 향기와 고운 빛깔을 주고 있었어. 도망가서는 절대 안 되는 거였어! 그녀의 딱한 속임수 아래 감춰진 다정한 마음을 헤아렸어야 했는데! 꽃들은 정말 모순투성이거든! 하지만 그녀를 사랑하기엔 난 너무 어렸어. (p41-42)

 

잘 있어.

그가 꽃에게 말했다. 하지만 꽃은 대답하지 않았다.

잘 있어.

그는 다시 말했다. 꽃은 기침을 했다. 하지만 기침 때문은 아니었다.

마침내 꽃이 입을 열었다.

내가 어리석었어. 용서해 줘. 행복해야 해.

그는 꽃이 비난하지 않는 데에 놀랐다. 그는 너무 당황해서 유리 덮개를 든 채 그대로 서 있었다. 이 침착한 부드러움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당연하지. 난 널 사랑해. 꽃이 말했다. 내가 잘못해서 너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하지만 너도 나만큼 어리석었어. 행복해야 해그 덮개는 그냥 둬. 더 이상 필요 없어.

하지만 바람이

그렇게 심한 감기는 아니야신선한 밤공기를 쐬는 게 좋을 거야. 난 꽃이잖아.

하지만 짐승들이

나비를 만나려면 애벌레 두세 마리는 참아야겠지. 나비는 정말 아름다운 것 같더라. 아니면 누가 날 찾아오겠어? 너는 멀리 있을 텐데. 덩치 큰 짐승들로 말하자면, 하나도 무섭지 않아. 나한텐 발톱이 있잖아.

그리고 순진하게 가시 네 개를 보여주었다. 그러더니 덧붙였다.

그렇게 질질 끌지 마, 짜증 나. 떠나기로 했잖아. 어서 가.

그녀는 우는 모습을 어린 왕자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토록 자존심이 센 꽃이었다. (p44-46)

 

맞다. 각자에게 그가 할 수 있는 것을 명령해야 하는 법이니라. 권위는 무엇보다 이성에 기반을 두는 법이다. 만약 네가 네 백성들에게 바다에 뛰어들라고 명령한다면 그들은 반란을 일으킬 것이다. 내가 복종을 요구할 권리가 있는 것은 합리적인 명령을 내리기 때문이니라. (p50-51)

 

그럼 너 자신을 재판하라. 그게 제일 어려운 일이지. 다른 사람을 심판하기보다 스스로를 심판하기가 훨씬 어려운 법이다. 스스로를 잘 심판할 수 있다면, 너는 진정한 현자이니라. (p51-52)

 

넌 누구니? 정말 예쁘게 생겼구나….어린 왕자가 말했다.

난 여우야. 여우가 말했다.

나랑 놀자. 난 너무 슬퍼…..

나는 너랑 놀 수 없어. 길들여지지 않았거든.

, 미안. 어린 왕자가 말했다.

하지만 잠시 생각한 뒤 다시 말했다.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야?

넌 여기 사람이 아니구나. 뭘 찾고 있니?

사람들을 찾고 있어.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야?

사람들은 총을 갖고 있고 사냥을 해. 골치 아픈 일이지! 닭도 키워.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점이라곤 그것뿐이지. 닭을 찾는 거야?

아니, 난 친구를 찾고 있어.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야?

다들 잊어버린 건데, 관계를 만든다는 뜻이지. 여우가 말했다.

관계를 만든다고?

그렇지. 나에게 너는 아직 수많은 다른 아이와 다를 바 없는 한 아이에 불과해. 난 네가 필요 없어. 너도 내가 필요 없지. 너에게 나는 수많은 다른 여우와 다를 바 없으니까.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될 거야. 너는 나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가 될 거야. 나는 너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가 되고

이제 알 것 같아. 꽃이 한 송이 있는데그 꽃이 나를 길들인 것 같아.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럴 수 있지. 지구에는 별의별 일이 다 있으니까.

! 지구에서가 아니야.

여우는 무척이나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다른 별에서 있었던 일이야?

.

그 별에 사냥꾼이 있어?

아니.

그거 흥비롭군! 그럼 닭은?

없어.

완벽한 건 없다니까. 여우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여우는 다시 하던 생각으로 돌아왔다.

내 삶은 단조로워. 나는 닭을 쫓고 사람들은 나를 쫓지. 닭은 모두 비슷비슷하고 사람도 모두 비슷비슷해. 그래서 난 좀 지루해.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내 삶은 햇빛이 비치는 것 같을 거야. 나는 다른 모든 발소리와는 다른 발소리를 알아듣게 될거야. 다른 발소리는 나를 땅 밑으로 숨게 하지. 네 발소리는 음악 소리처럼 나를 굴 밖으로 불러낼 거야. 그리고 잘 봐! 저기 밀밭이 보이지? 나는 빵을 먹지 않아. 밀은 나한테 아무 쓸모도 없어. 밀밭을 봐도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지. 서글픈 일이야. 그런데 네 머리카락은 황금빛이잖아. 그러니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거야! 황금빛 밀을 보면 네 생각이 날 테니까. 그럼 나는 밀밭에 부는 바람 소리까지 사랑하게 될 거고….

여우는 입을 다물더니 어린 왕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제발….나를 길들여줘! 여우가 말했다.

그러고 싶은데, 시간이 많지 않아.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어야 하고 알아내야 할 것도 많거든. 어린 왕자가 대답했다.

사람이 진짜 아는 건 자기가 길들인 것뿐이야. 이제 사람들은 아무것도 알 시간이 없어. 가게에서 다 만들어진 물건을 사거든. 하지만 친구를 파는 가게는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친구가 없지. 친구를 원한다면, 나를 길들여줘!

어떻게 하면 되는데? 어린 왕자가 물었다.

참을성이 아주 만하야 해. 먼저 풀밭에 그렇게, 나랑 조금 떨어져서 앉아. 나는 너를 슬쩍 쳐다볼 텐데 너는 아무 말도 하지 마. 말은 오해의 근원이야. 그 대신 매일 조금씩 더 가까이 앉는 거야.

다음 날 어린 왕자가 다시 왔다.

어제와 같은 시간에 왔으면 더 좋았을 거야. 여우가 말했다. 예를 들어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4시가 되면 나는 안절부절못하고 초조해하겠지. 행복의 대가를 알게 되는 거지! 하지만 네가 아무 때나 오면 나는 몇 시에 마음의 옷을 차려입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 의식이 필요하단 말이야.

의식이 뭐야?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것도 다들 너무 잊어버리고 있는 거지. 의식은 어떤 날을 다른 날과 다르게, 어떤 시간을 다른 시간과 다르게 만들어주는 거야. 예를 들어 나를 쫓는 사냥꾼들에게도 의식이 있어. 목요일마다 마을 처녀들이랑 춤을 추거든. 그래서 목요일은 멋진 날이야! 나는 포도밭까지 산책을 나갈 수 있어. 만약 사냥꾼들이 아무 때나 춤을 춘다면 모든 날이 똑같을 거고 난 쉬는 날도 없을 거야.

그래서 어린 왕자는 여우를 길들였다. 그리고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 울고 싶어. 여우가 말했다.

네 잘못이야. 나는 널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네가 나한테 길들여달라고 했잖아.

분명 그랬지.

그런데 울 거라며! 어린 왕자가 말했다.

물론이지. 여우가 말했다.

그럼 넌 얻는 게 하나도 없잖아!

얻는 게 있지. 밀밭은 황금빛이니까.

그리고 덧붙였다.

가서 장미들을 다시 만나봐. 네 꽃이 세상에 단 하나뿐이라는 걸 알게 될 거야. 그리고 나한테 작별 인사를 하러 돌아오면, 선물로 비밀을 하나 알려줄게.

어린 왕자는 장미들을 다시 보러 갔다.

너희는 조금도 내 장미와 닮지 않았고, 아직 아무것도 아니야. 너희를 길들인 사람도 없고 너희가 길들인 사람도 없으니까. 너희는 예전의 내 여우와 같아. 다른 수많은 여우와 다를 바 없는 한 마리 여우에 불과했지. 하지만 나는 그 여우랑 친구가 되었고, 그래서 지금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여우야.

장미들은 어쩔 줄 몰라했다. 어린 왕자는 다시 말했다.

너희는 아름답지만 공허해. 너희를 위해 죽을 사람은 없어. 물론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라면 내 장미도 너희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그 꽃 하나가 너희 모두보다 더 중요해. 내가 물을 준 건 그녀니까. 내가 병풍으로 바람을 막아준 건 그녀니까. 내가 애벌레를 잡아준 건 그녀니까. 내가 불평, 허풍, 때로는 침묵까지 들어준 건 그녀니까. 내 장미니까.

그리고 그는 여우에게 돌아왔다.

잘 있어…..그가 말했다.

잘 가. 내 비밀은 이거야. 아주 간단해. 마음으로 보아야만 잘 볼 수 있다는 것. 본질은 눈에 보이지 않아. 여우가 말했다.

본질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어린 왕자는 기억해 두려고 따라 했자.

네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드는 건 네가 그녀에게 쏟은 시간이야.

내가 장미에게 쏟은 시간….어린 왕자가 기억해 두려고 되뇌었다.

사람들은 이 진리를 잊어버렸어. 하지만 너는 잊으면 안돼.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언제나 책임을 져야 해. 너는 네 장미한테 책임이 있어.

나는 내 장미에게 책임이 있다….어린 왕자는 잊지 않으려고 반복했다. (87-94)

(같이 읽으면 좋은 책)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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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이 아름다운 건, 보이지 않는 꽃 한 송이 때문이야.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그래. 집이건, 별이건, 사막이건, 그것들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눈에 보이지 않아! (P100-101)

 

꽃이랑 마찬가지야. 만약 네가 어느 별에 있는 꽃을 사랑한다면, 밤에 하늘을 바라보는 게 달콤한 일이 될 거야. 모든 별에 꽃이 필 테니까.

물론이지….

물도 마찬가지야. 네가 나에게 준 물은 도르래와 밧줄 덕분에 마치 음악 같았어….기억나지….맛있는 물이었어.

물론이지……

밤이면 별들을 봐. 내가 사는 별은 너무 작아서 어디 있는지 보여줄 수 없어. 그게 오히려 나아. 너에게 내 별은 많은 별중 하나일 거야. 그럼 너는 모든 별을 설레는 마음으로 바라보겠지. 모든 별이 네 친구가 되는 거야. 그리고 너한테 선물을 하나 줄게….

그가 다시 웃었다.

! 난 네 웃음소리가 좋아!

그게 바로 내가 줄 선물이야. 물이랑 마찬가지야….

무슨 뜻이야?

사람들마다 다른 별을 갖고 있어.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별들은 안내자야. 어떤 사람들에게는 작은 빛에 지나지 않지. 학자들에게는 풀어야 할 문제이고. 내가 만난 사업가에게는 돈이었지. 하지만 이 사람들의 별은 모두 소리 없는 별이야. 넌 누구와도 다른 별을 가지게 될 거야….

무슨 말이야?

네가 밤에 하늘을 볼 때면, 내가 그 별들 중 하나에 살고 있을 테니까 너에게는 마치 모든 별들이 웃고 있는 것 같을 거야. 넌 웃을 줄 아는 별들을 가지게 되는 거지!

그가 또다시 웃었다.

그리고 슬픔이 가라앉고 나면 나를 알았다는 것이 기쁠 거야. 너는 언제나 내 친구일 거야. 너는 나와 함께 웃고 싶을 거야. 그래서 때로는 그냥 재미 삼아 창문을 열겠지네 친구들은 하늘을 보면서 웃는 널 보고 꽤나 놀랄 거야. 그러면 너는 이렇게 말하는 거야. 그래, 별만 보면 웃음이 나온다니까! 그들은 네가 미친 줄 알겠지. 내가 너를 골탕 먹이는 셈이네….

그러고는 또 웃었다.

별이 아니라 웃을 줄 아는 방울들을 한 아름 받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리고 그는 다시 웃었다. 그러더니 도로 심각해졌다.

오늘 밤….알지오지 마.

나는 너를 떠나지 않을 거야.

나는 아파 보일 거야….죽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원래 그래 그런걸 보러 오진 마. 그럴 필요 없어…..

나는 너를 떠나지 않을 거야.

하지만 그는 걱정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뱀 때문이기도 해. 너를 물면 안 되잖아….뱀들은 못됐어. 재미로 사람을 물 수도 있다고….

나는 너를 떠나지 않을 거야.

하지만 그는 이내 안심했다.

하긴 두 번째 물 때는 독이 없겠다….

그날 밤 나는 그가 떠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는 소리를 내지 않고 빠져나갔다. 내가 그를 다시 찾았을 때 그는 빠른 걸음으로 결연하게 걷고 있었다. 그는 단지 이렇게 만 말했다.

! 왔구나….

그러고는 내 손을 잡았다. 하지만 다시 괴로워했다.

오지 말지 그랬어. 힘들 거야. 나는 죽은 것처럼 보일 텐데 진짜 그런 건 아니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해하겠지. 거긴 너무 멀어. 이 몸을 가지고 갈 순 없어. 너무 무거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치 버려진 낡은 껍질 같을 거야. 낡은 껍질은 슬프지 않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조금 풀이 죽었다. 하지만 다시 힘을 냈다.

괜찮을 거야, 알잖아. 나도 별들을 바라볼 거야. 별들이 모두 녹슨 도르래가 달린 우물 같겠지. 별들이 모두 나에게 마실 물을 부어줄 거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말 재미있을 거야! 너한테는 방울 오억 개가 생기고 나한테는 샘 오억 개가 생기는 셈이니까

그리고 그도 입을 다물었다. 그는 울고 있었던 것이다…..

저기야. 내가 한 걸음만 혼자서 가게 해줘.

그러더니 겁이 나서 주저앉았다.

그가 다시 말했다.

았잖아. 내 꽃….나는 내 꽃에 책임이 있어! 그 꽃은 너무 약해! 그리고 너무 순진해.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진 거라곤 가시 네 개밖에 없는데….

나는 더 이상 서 있을 힘이 없어서 주저앉았다.

그가 말했다.

….다 왔어.

그는 다시 조금 망설이더니 일어났다. 그가 한 걸음 나아갔다.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발목께에서 노란빛이 한 줄기 번쩍였을 뿐이었다. 한 순간 그는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그는 나무가 쓰러지듯 부드럽게 쓰러졌다. 모래 때문에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p11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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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Antoine Marie Jean-Baptiste Roger de Saint-Exupéry, 1900년 6월 29일~1944년 7월 31일 추정)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공군 장교이다. 북서 아프리카, 남대서양, 남아메리카 항공로의 개척자이며, 야간 비행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이다. 
생텍쥐페리는 프랑스의 리옹에서 태어나 다카르에서 툴루즈까지 우편물을 항공 수송하는 회사에 다녔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초기에 공군에서 활동하다가 1940년에 프랑스 북부가 나치 독일에 점령되자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이후 1943년부터 다시 프랑스의 공군 조종사로 활동하다가 1944년 7월 그의 마지막 비행에서 실종됐다(추락사로 추정). 1990년 그의 유품으로 보이는 비행기 부품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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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 생텍쥐페리 (황현산 옮김, 열린책들)

어린왕자 - 생텍쥐페리 (이정서 옮김, 새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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