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1. 서양 - 고전 소설

어머니 – 막심 고리끼 (최윤락 옮김, 열린책들세계문학)

by handaikhan 2023. 2. 4.

막심 고리끼 - 어머니 (1906년)

 

매일같이 마을로부터 떨어져 있는 노동자촌의 열기와 기름냄새로 절어 있는 대기 속에서 공장 사이렌이 떨리는 듯한 소리로 울려 펴지면, 그 소리를 따라 회색빛 작은 집들로부터 아직 잠에서 덜 깬 몸으로 제대로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침울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마치 질겁한 곤충처럼 거리로 뛰쳐나온다. 차디찬 어둠 속에서 그들은 병든 거리를 따라 높다랗게 솟아 있는 공장의 돌담으로 나아갔고, 그러면 돌담은 수십 개의 기름기 흐르는 정방형 눈으로 진창길을 환히 비추어 주면서 냉혹한 시선으로 그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진창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옮겨 놓을 때마다 괴상한 소리를 냈다. 또 거친 욕설로 새벽공기를 맹렬히 가르며 잠이 덜 깨어 목이 잠긴 듯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그런가 하면 사람들을 향해서 또 다른 소리들이 날아들었는데, 그것은 기계의 지독한 소란스러움과 수증기의 으르렁거림이었다. 굵다란 막대기처럼 노동자촌 위로 우뚝 솟아 있는 검은 굴뚝들이 멀리 우울하면서도 험상궂게 보였다. 집집마다 유리창에 붉은 햇살이 맥없이 걸리는 저녁 무렵이면 공장에서는 타다 남은 석탄 부스러기 같은 사람들이 돌덩어리처럼 묵직한 건물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러고는 검게 그은 얼굴로 끈적끈적하고 고약한 기계 기름 냄새를 풍기면서 굶주린 이를 허옇게 드러내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의 목소리는 생기를 되찾아 즐겁기조차 했는데, 오늘도 이것으로 노역이 끝나고 집에서는 저녁밥과 휴식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공장은 또다시 만 하루를 통째로 삼켰다. 공장 기계는 필요한 모든 힘을 인간의 육체로부터 빨아들였고, 시간은 흔적 하나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인간은 결국 자신의 무덤을 향해 일보를 더 내디딘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휴식의 즐거움과 왁자지껄한 선술집이 눈앞에 아른거려, 그들은 비로소 나른해지며 더구나 신바람까지 나는 것이었다. (p.9-10)

 

혹독한 노동에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은 금세 술에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선 이해할 수 없는 병적인 흥분이 도사리고 있었다.그들에겐 탈출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주 사소한 일에서 이런 불안한 감정을 해소할 만한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찾아보려고 몸부림쳤다. 그러다 보니 툭하면 야수와도 같이 서로에게 덤벼들었다. 피를 보는 싸움이 뻔한 결과였음에도 불구하고 간혹 그들은 심한 상처를 입거나,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어느 한편이 죽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싸움을 그쳤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원한의 감정이 지배적어있는데, 이러한 감정은 근육의 피로가 불치의 병이듯 만성적인 것이었다. 아버지들로부터 물려받은 이런 마음의 병 때문에 사람들은 이유없는 잔인함으로 평생 혐오스러운 행동을 서슴지 않게 되고 결국엔 그 검은 그림자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죽어갔다. (p.11)

 

삶이란 항상 그러했다. 해가 거듭되어도 삶은 마치 더럽고 탁한 개울물이 흐르듯 그렇게 단조롭게 흘러갔다. 어느덧 이미 오래전에 몸에 배어 버린 습관이 그렇듯 똑 같은 생각의 반복이 모든 일의 운명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누구 하나 그와 같은 상태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 (p.12)

 

외지사람들이 이 공장촌으로 흘러들었다. …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쨌든 노동자의 삶은 어디를 가나 별다른 차이가 없음이 명백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대체 무슨 할 말이 더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몇은 이 공장촌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었다. 그들과 논쟁을 하지는 않으면서도 어쨌든 사람들이 그들의 말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어떤 사람에게는 맹목적인 흥분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어렴풋한 혼란을 야기하기도 했으며, 어떤 사람에게는 뭔가 분명치 않은 것에 대한 막연한 희망을 품게 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은 불필요하고 쓸데없는 상념을 쫓아 버리기 위해 더욱더 많은 술을 마셨다.

낯선 사람들에게서 뭔가 다른 면을 눈치채고, 공장촌 사람들은 그것을 염두에 두다 보니, 결국 자신들과는 뭔가 다른 데가 있는 이 사람들을 무의식적인 경계심을 품고 대하게 되었다. 그들은 정말 이 사람들이 비록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피할수 없는 우울하면서도 규칙적인 자신들의 삶의 궤도를 파괴함으로써 삶에 파문을 던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괴롭히는 변함없는 삶의 힘에 익숙해 있어 결코 더 나은 방향으로의 어떤 변화도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변화를 단지 억압하기에 적합한 것으로만 생각했다. (p.13-14)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던가요? 어머니 벌써 마흔이예요. 그런데 과연 어머닌 살아 있었다고 할 수 있겠어요?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리기만 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진 비참한 삶에 대한 분풀이를 어머니 옆구리에 해댄 거예요. 자기의 비참한 삶에 대한 분풀이를 말입니다. 비참한 삶이 자기를 짓누르고 있는데도 아버진 그게 무엇 때문인지를 몰랐던 거지요. (p29-30)

 

마음대로 하거라, 난 말리지 않겠다. 대신 한 가지 부탁이 있다. 겁 없이 아무 데서나 사람들과 이야기 하지 마라! 사람들을 조심해야 돼. 모두들 서로서로를 미워하고 있어. 탐욕과 질투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야. 모두들 나쁜 일을 즐겨 하고 남들을 밀고하기도 하지. 네가 그들을 비난하면 아마 그들은 증오심으로 널 파멸시키고 말 거야! (p34)

 

우리 모두는 두려움 때문에 파멸하는 거예요! 우리들을 지배하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그런 우리의 두려움을 이용해서 우리를 더욱더 겁에 질리도록 하는 겁니다. (p.36)

 

짜증이 나고 쑥스럽기도 하니까 그저 험악한 표정을 짓고서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화를 내는 거예요. (p.76)

 

과연 이 세상 어느 천지에 고통받지 않는 영혼이 있겠어요? 전 하도 고통을 당해놔서 이젠 모욕감 느끼는 데에도 지쳤어요. 사람들이 오죽했으면 그랬겠어요. 말해 무엇 하겠어요. 이러니저러니 자세히 애기해 보았댔자 시간만 아까울 뿐이지요. 그런게 바로 삶입니다. 전 예전에 사람들한테 화낸 적이 많았어요.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그럴 필요가 하나도 없었는데 말이에요. 모든 사람들은 이웃이 날 치지나 않을까 하고 두려워해요. 그러다 보니 맞기 전에 먼저 상대편을 때려눕히려고 애를 쓰는 겁니다. 그런 게 삶이에요. 낸꼬! (p.77-78)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눈물은 마르지 않아! (p.87)

 

나이가 많다느니 적다느니 하는 말은 되도록 하지 맙시다! 누구의 생각이 더 옳은가 하는 것을 가리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문젭니다. (p.95)

보았는가, 빠벨! 만물의 근원은 머리가 아니고 바로 이 가슴이야! 가슴은 인간 영혼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지. 그 외엔 어떤 것도 자라날 수 없어

인류를 해방시켜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이성뿐입니다.

이성은 힘을 주지 않네. 가슴이 힘을 주는 거야. 머리가 아니란 말야. 알겠나?  (p.97)

 

자네, 얘기는 잘했는데, 그들의 가슴에다 대고 얘기하지를 못했어. 그게 문제야! 그들의 가슴에다 대고 말을 해야 해. 그래서 그들의 가슴에 불을 댕겨야 한다고. 가슴 깊숙한 곳에 말야. 자네는 이성으로 사람들을 휘어잡지 못했어. 결국 신발이 발에 맞지 않는 거야. 너무 볼이 좁고 작아! (p.114-115)

 

사람들은 맨살의 말을 믿지 않아. 그러니 말에 피를 물들이려고 노력해야만 하네.. (p.116)

(사견) 말로만 선동하지 말고, 행동으로 투쟁하라

 

인간은 모욕을 용서하면 안됩니다. (p.163)

 

원래 가슴 안에 불꽃이 희미하게 타오르고 있으면 그을음이 많이 쌓이는 법이에요. (p.189)

 

사람이란 말을 딱 부러지게 할 줄 알아야 해.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야. 난 발에 족쇄를 채워 구속하려 드는 사랑이나 우정 따위는 원치 않아… (p.212)

 

난 알아. 사람들이 서로를 아끼고 누구나가 타인에게 반짝이는 별이 되는 날이 오리라는 것을! 해방된 민중들이 온 누리를 활보하고 해방으로 위대해진 모든 사람이 가슴을 활짝 여는, 그리고 개개인의 가슴이 질투에 초연해지고 모든 이가 악의 없이 되는 그날, 바로 그날이 오면 삶은 지금의 삶이 아닌, 인간에 대한 봉사로 변할 것이고 인간의 모습은 고상하게 끌어올려질 거야. 해방 민중에 걸맞은 더없는 고상함에 다다르게 되지! 또 그날이 오면 모두 아름다움을 위한 진리와 해방으로 살아 넓은 가슴으로 세계를 포옹하는 사람들, 세계를 심오한 사랑으로 덥혀 주는 사람들이 최고의 찬사를 받게 되고, 가장 해방된 사람들이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간주되어 존경받게 될 거야.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야말로 정말 위대한 사람 아닌가… (p226)

(사견) 인간의 자유와 인권이 신장되는 사회가 온다고 해서 그 세계가 유토피아는 아니다. 제도적으로 여러 민중을 위한 질서는 만들 수 있지만. 개개인의 성품과 인격은 바꿀수 없다. 어떠한 세계, 어떠한 질서가 자리 잡더라도 개개인이 모두 우리가 원하는 이상적인 사람이 될수는 없다. 제도는 전체를 위한 질서만을 제공할 뿐이다.

물론 19세기 러시아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인권과 농노의 해방, 노동자의 권익신장이었으며 무지한 민중의 교화에 있었다. 따라서 당시의 시각에서는 저와 같은 이상적인 생각이 지식인들 사이에 자리잡는 것은 당연하다.

 

민중을 압살하고 그들의 영혼을 일그러뜨리는 짓을 하는 이유가 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이해가 갈 수도 있지만, 그자들도 그런 짓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재산을 위해서 서슴없이 자행한다는데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p.232)

 

비록 죽음이 앞에 가로놓여 있다 해도 진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야만 하지요. (p.262)

 

우리들, 바로 어둡고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모든 걸 느낄 줄 안다오. 단지 그걸 표현하는 데 무진 애를 먹어서 그렇지. 사실 우리네 같은 사람에겐 이해는 하는데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게 큰 부끄러움이라오. 그러다 보니 그 부끄러움 때문에 우린 우리 자신들의 생각에 화가 치미는 거지. 삶이란 게 어떤가 보시오. 그저 사방에서 죽도록 얻어터지는 일 말고 뭐가 있느냐 말야. 그러니 그저 좀 쉬고 싶은 마음만 간절하게 되고 결국 생각 따윈 귀찮게 되어 버리는 거라오. (p.320)

 

우린 이미 보상을 받았어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만족시키는 삶을 발견했어요. 온 정성을 다해서 소중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그 외에 무얼 더 바랄 수 있겠어요. (p.330)

 

사람이란 뭔가 좋은 걸 기대하며 살게 마련인데, 기대할 게 없다면 그게 어디 삶이야?

선량한 사람은 혼자 살지 않아. 주위에 항상 사람들이 모여드는 법이거든… (p.371)

 

아주 작은 행복이라도 모두에겐 좋은 거예요.. (p405)

 

전에는 삶이라는 것이 어딘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누구 때문에, 또 무엇을 위해서 진행되는지도 모르는 채 흘러가 버렸다면, 지금은 많은 것들이 바로 그녀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더욱이 그녀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녀의 가슴속에선 자신에 대한 불신과 만족, 그리고 의혹과 조용한 우수의 감정이 복잡하게 뒤얽혔다. (p.436)

 

사는거야 문제가 아닌데, 웅덩이 속에 주저앉아 살지 않으려면 많이 알아야 해요. 그만한 힘을 길러야 한단 말입니다. (p.476)

 

삶이란 개간도 안한 울퉁불퉁한 들판으로 자유롭고 정직한 손들을 통해 알찬 수확을 약속하며 말없이 그 일꾼을 기다리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p.484)

 

..................................................................................................................................................................................................................................

막심 고리키(Макси́м Го́рький, 1868년 3월 28일 - 1936년 6월 18일)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태어났고 4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으며 11세에 고아가 되었다. 술에 취한 외조부가 상습적으로 모친과 자신을 폭행했던 것 때문에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었으며 경제적 형편 때문에 대학에 진학할 수 없는 처지를 비관하여 12세에 카잔으로 가출하면서 5년간 떠돌이로 러시아 전역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19살에는 자살 시도도 벌였다. 이때의 경험은 자서전인 '유년시대'와 '세상속으로'에서 잘 묘사되고 있다.
고리키는 별다른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책이 손에 잡히는대로 읽었으며, 이러한 경험을 통해 좋은 책과 나쁜 책을 확실히 구별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여행으로 얻은 견문과 습작을 통해 필력을 얻은 고리키는 성인이 되자 신문 기자로 일하게 되었다. 신문 기자로서 그는 러시아 제국의 모순과 하류계급의 참혹한 생활상을 세세하게 폭로하고, 틈틈히 소설도 쓰면서 명성을 얻어갔다. 초창기의 그는 정제되지 않은 글쓰기로 혹평을 얻었으나 그의 순수한 태도에 감격을 받은 평론가들의 지도로 글쓰기를 다시 배울 수 있었다 한다.
당시 생존해 있던 대문호 안톤 체호프나 레프 톨스토이의 부인과도 안면을 트고, 혁명세력과 어울리게 되었고 특히 블라디미르 레닌이 이끌던 볼셰비키와도 밀접하게 교류하게 되었다. 그의 희곡 “밑바닥에서”가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상영되면 대성공을 거두자 그는 자선 사업을 벌이며 가난한 어린이들과 실업자들을 위한 도서관을 지었다 한다.

 

...................................................

어머니 - 막심 고리끼 (정보라 옮김, 을유 세계문학 123)

은둔자 - 막심 고리끼 (이강은 옮김, 문학동네 세계문학 110)

 

어린시절 - 막심 고리끼 (최홍근, 동서 월드북 223)

밑바닥 - 막심 고리끼 (최홍근 옮김, 동서 월드북 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