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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1. 서양 - 고전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두행숙 옮김, 에이치엔비)

by handaikhan 2023. 2. 1.

목차
제 1 부 - 1771년 5월 4일부터 1771년 9월 10일까지의 서간
제 2 부 - 1771년 10월 20일부터 1772년 12월 6일까지의 서간
제 3 부 - 편집자로부터 독자에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감상하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위한 시 모음
에세이 : 천재를 꿈꾸며 고뇌하는 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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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1774년)

 

아! 정말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불평을 늘어놓다니, 인간이라 대체 어떤 존재일까!

나는, 빌헬름, 자네에게 약속하지. 스스로 고쳐나갈 것을 말이야. 운명이 우리들에게 부여하는 아무리 사소한 잘못이라도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네.

이제 나는 현재를 즐길 작정이네. 지나간 일은 그저 지나간 일로 내버려두고 말이야. 자네 말이 맞네, 빌헬름. 만약 인간이 지나친 상상력으로 과거의 잘못들을 돌이키지 않고, 그저 무덤덤하게 현재를 살아간다면 슬픔은 훨씬 덜할 것이네. 그런데 왜 사람은 그처럼 지나간 일에 얽매이도록 만들어졌는지, 오직 신만이 아시겠지? (p.13)

 

이번의 사소한 일을 겪으면서, 이 세상에서 분쟁을 일으키는 것은 사람의 간교함이나 사악함보다는 오히려 오해와 태만이라는 것을 깨달았네. 앞의 두 가지는 적어도 생각보다 흔하진 않아. (p.14)

 

어쨌든 나는 이곳에서 아주 잘 지내고 있네. 천국과도 같은 이 고장에 머물다 보니, 고독이 값진 향유처럼 느껴진다네. 이 청춘의 계절을 감싸고 있는 온갖 풍요로움이 이따금 나도 모르게 섬뜩해지곤 하는 내 마음을 따스하게 해주고 있지.

나무마다, 울타리마다 꽃들이 만발해 있고, 이 멋진 향기의 바다 속을 헤엄쳐 다니며 온갖 감미로운 먹이를 모으기 위해, 나는 기꺼이 한 마리 풍뎅이가 되어도 좋은 심정이네. (p.15)

 

달콤한 봄날 아침과 같은 상쾌함이 내 영혼을 사로잡고 있네. 나는 그것을 온몸으로 즐기고 있지. 비록 혼자이지만, 바로 나와 같은 영혼을 위해서 창조된 듯한 이 고장에서 진정으로 내 삶을 향유하고 있다네. 고요함을 느끼며 거기에만 침잠해 지내다 보니 오히려 나의 예술적 감각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아 고통스러울 지경이네. 나는 지금 스케치조차 할 수 없다네. 선 하나도 제대로 그려지지가 않아.

하지만 내가 지금 이 순간보다 더 위대한 화가였던 적이 있을까.

골짜기에 훈훈한 공기가 피어오를 때면, 그리고 한낮에 솟아오른 태양이 울창하고 어두운 숲 위에 내리쪼이고 햇살이 성스러운 숲속으로 깊이 파고들어올 때면, 나는 물이 철철 넘치며 흘러가는 시냇가의 무성한 풀포기들 사이에 누워 땅 위에서 자라나는 수천 가지의 초목들을 눈여겨 본다네. 풀포기들 사이에서 꼬물대고 있는 작은 세계를, 이름도 모를 수많은 벌레들과 모기들의 형상을 가슴 가득 느낀다네.

그럴 때면 나는 다름 아닌 그것들을 창조해 낸 전능하시며 영원하신 존재를 느끼게 되네. 우리들을 당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하시고, 영원한 기쁨 속에서 헤엄치도록 보호하시며 만물을 사랑하시는 무한하신 분의 숨결을 말이네.

빌헬름, 이제 내 눈앞에 석양빛이 감돌고, 나를 감싸는 이 세계와 하늘이 마치 연인처럼 내 영혼 속으로 고요히 가라앉을 때면, 나는 아련한 동경에 몸을 떨며 이런 생각을 한다네.

'아, 내가 이 모든 것을 재현해 낼 수 있다면! 내 가슴속에 이처럼 풍요롭게 살아 숨 쉬는 것들을 종이 위에 옮겨 다시 생명을 부여할 수 있다면!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내 영혼이 무한한 신의 거울이듯이, 종이 위에 그려진 사물들 역시 내 영혼의 거울이 될 수 있을 텐데!'

그러나 빌헬름, 이런 생각은 곧 허물어지고 만다네. 자연 속에 드러나는 찬란하고 아름다운 위력에 그만 압도되어 쓰러지고 마는 걸세. (p.16-18)

 

혹시 우리의 눈을 속이는 정령들이 이곳에 서러 있는 것인지, 아니면 따사로운 천국과 같은 환상이 내 가슴 속에 숨 쉬고 있어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마치 낙워너럼 보이게 하는 것인지 나로서는 잘 모르겠네. (p.18)

 

물론, 나도 우리 인간은 모두 평등하지 않으며 또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네. 그렇지만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소위 자신들이 천박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멀리하려는 사람은, 굴복하게 될 것이 두려워 적을 피하는 비겁자와 마찬가지로 비난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네. (p.22)

 

소년 시절에 정신적으로 나를 이끌어 주던 여자 친구가 있었네. 그러나 그녀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네! 한때는 그리도 서로 다정하게 알고 지냈건만!

나는 가슴 속에 불현듯 솟구치는 불안이, 어쩌면 내가 이 지상의 아름다운 자연에 도취되면서도 가슴 한 구석에서는 이 지상에서 발견할 수 없는 것을 찾고 있기 때문 아닌가 라고 스스로 물어보곤 한다네. 그리고 그런 나야 말로 바보라고 말한다네. 그러나 나는 한때 나를 이끌어 주던 그녀의 마음을, 그 위대한 영혼을 느끼지 않았던가.

그녀가 내 앞에 있어줄 때면 나는 본래의 나 자신 이상으로 대단해 보였네. 비로소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내가 될 수 있었으니 말이야. (p.24-25)

 

인간의 삶이 한낱 꿈일 뿐이라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겠지만, 그런 생각이 내 머리에도 줄곧 떠오른다네. 인간이 활동하고 탐구하는 힘이 어떤 한계 속에 있다는 것을 볼 때면, 그리고 우리의 온갖 활동이 결국은 가엾은 실존을 연장시키는 것 외에 아무런 목적도 없는 욕구만을 만족시키려는 것임을 볼 때면, 그리고 탐구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을 때 만족하는 것 또한 꿈꾸는 듯한 체념에 지나지 않음을 볼 때면, 빌헬름, 나는 할 말을 잊고 만다네.

그것은, 인간이 자기가 갇혀 있는 방의 벽에 가지각색의 형상과 밝은 풍경을 그려 놓고 기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나는 나 자신의 내부로 은둔하고 거기서 하나의 세계를 발견하는데, 그 세계는 생생한 힘으로 표현되기보다는 오히려 예감이나 막연한 욕망같은 것으로 나타나는 것일세. 그리하여 나의 감성 앞에서는 모든 것이 흐느적거리지만 나는 그 세계 속을 향하여 또다시 꿈꾸듯 미소를 던진다네.

어린아이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면서도 왜 원하는지를 모른다네. 이에 대해서는 어린아이들ㄹ을 많이 다루고 있는 교사들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 그러나 어른들 역시 아이들처럼 이 지상 위를 헤매고 다니면서도 자신이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책, 진정한 목적에 따라 행동하지도 못하고 비스킷이나, 자작나무 회초리에 의해 자극을 받을 뿐이네. 그러나 그것을 믿으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내게는 그 사실이 손에 잡힐 듯 명백한데도 말이네. (p.28-29)

(함께 읽어면 좋은 책)

장자 교양강의 - 푸페이룽 (심의용 옮김,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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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자기들이 하는 잡동사니 같은 일거리나 열정에 그럴듯한 이름을 붙이거나, 인류의 구원과 복지를 위한 사업이라며 간판을 내걸곤 하는 사람들도 행복하다고 할 수 있겠지.

그러나 겸허한 마음으로, 이런 모든 일들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들이 있다네. 그런 사람들은 유복한 시민들이 자기네의 정원을 낙원처럼 꾸미는 즐거움으로 살고 있는 일이며, 불행한 시민들도 그들대로 무거운 짐을 진 채 허덕이면서도 쉬지 않고 자기 인생의 길을 계속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 모든 사람들이 햇빛을 한 순간이라도 더 오래 보는 것에 대해서는 똑같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인생의 그런 맹목성을 깨달은 사람은 침묵을 지킨 채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낸다네. 그런 사람들도 행복하다고 할 수 있지. 그들은 비록 제약을 받고 있더라도 가슴 속에는 여전히 자유라는 아름다운 느낌을 간직하고 있네. 원하면 언제든지 감옥 같은 이 세상을 버리고 떠날 수 있다는 그런 자유 말일세. (p.29-30)

 

아아, 빌헬름! 천재의 물줄기가 세차게 넘쳐흐르는 일은 왜 이리도 드물단 말인가. 넘치고 소용돌이치며 우리들의 영혼을 뒤흔드는 일이 왜 이리도 드물단 말인가.

사랑하는 벨헬름, 그것은 천재의 물줄기가 흘러가는 강의 양쪽 기슭에는 평범한 신사들이 살고 있기 때문일세. 그들은 기성세대의 사고방식과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속하려는 자들, 성직자들이나 우리 같은 귀족들, 혹은 돈 많은 속물들이라네. 그들은 다가오는 거센 물결이 넘쳐 자신들이 가꾸어 놓은 정원, 예쁜 튤립 꽃밭과 잔디밭이 망가질까봐 분주히 둑을 쌓아 물길을 돌려놓음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위험에 미리 대비하기 때문이란 말일세. (p.34-35)

 

발헬름, 나는 참으로 사랑스러운 한 여인을 알게 되었네. 그녀는 내 영혼을 사로잡았네! 그러나 그녀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자네한테 조리 있게 설명하기가 정말 어렵네. 나는 가슴이 너무 벅차고 행복감에 ㄷ들떠 있어 역사가들처럼 일어난 사건을 사질적으로 꼼꼼하게 쓸 수가 없네.

아아, 그녀는 바로 천사라고 불러야 할 것이네. 어느 누가 자신의 연인을 그렇게 부르지 않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녀가 얼마나 완벽한지, 도 왜 완벽한지를 말로 표현할 수는 없네. 다만 그녀가 내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다는 말 한마디면 충분하겠지.

로테는 영민하면서도 소박하고, 그토록 꿋꿋하면서도 착하며, 성실하고 활발하게 일을 하면서도 고요한 영혼을 간직하고 있는 여성이네. 그녀에 대한 어떤 설명도 조잡하고 수다스러운 말장난이나 추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을 뿐, 그녀의 진정한 면모는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네. (p.41-42)

<참고>

오월의 노래 - 괴테

 

눈을 뜨면 찬란히 빛나는

자연이여!

빛나는 태양이여!

미소 짓는 들판이여!

 

가지 사이에

꽃들은 피어나고

숲 속의 떨기에서는

노래의 물결이 넘치니

 

가슴마다

솟는 기쁨이여,

대지여, 태양이여!

행복이여, 환희여!

 

사랑이여, 사랑이여!

황금빛 아름다움이여!

저 건너 산 위에 걸린

아침 구름 같은 사랑이여!

 

그대의 축복이

상쾌한 들ㄹ에 넘치고

대지도

꽃구름에 싸인다.

 

소녀여, 소녀여!

그대를 사랑하노라.

그대 빛나는 눈빛이여,

나를 사랑하는 그대의 영혼이여!

 

종달새처럼

노래를, 하늘을 사랑하리.

아침에 피는 꽃처럼

하늘의 향기를 사랑하리.

 

나 그대를 사랑하리.

뜨거운 피로.

그대는 나에게 청춘을,

기쁨을, 용기를.

 

새로운 노래에 맞춰

내 마음은 춤추리

영원히 나는 행복하리라,

그대가 나를 사랑하는 한.   (p.337-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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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분들에게 용기를 주려고 하다 보니 저 스스로 용기가 난 거예요.

우리는 창가로 다가갔네. 천둥소리는 서서히 사그라져 갔고, 시원한 비가 소슬거리며 땅 위를 적시고 있었네. 따스한 대기가 가득 피어오르면서 시원한 향기가 우리 쪽으로 솟아올라왔네. 로테는 팔을 창가에 기대고 선 채 바깥에 시선을 두고 있었네. 그녀는 하늘을 쳐다보다가 내게로 눈길을 돌렸는데, 그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네. 그녀는 내 손 위에 자기의 손을 놓으며 말했네.

"클롭슈토크"

그 순간, 이 한 마디로 쏟아놓은 감상의 물결 속으로 나는 휩쓸려 들어가고 말았네. 그리고 그녀가 떠올렸을 그 위대한 독일 시인의 송시가 내 기억 속에서 떠오르는 것이었네. 그것은 바로 <봄의 축제>였네. 나는 감정에 복받쳐 눈물을 흘리며 그녀의 손에 키스했다네. 그리고 그녀의 눈ㄴ을 들여다보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시를 낭송하기 시작했네. (P.58-59)

<참고>

봄의 축제 - 클롭슈토크

세상의 거대한 바다 속에 나를

곤두박질치지 않겠다! 최초로 창조된 

빛ㄱ의 의기양양한 아들들이 환희의 송가를 부르며

찬미하는, 깊이 찬미하는 그곳에

떠돌지 않겠다!

희열에 넘쳐 사라져가지 않겠다!

 

차라리 나는 양동이에 붙은 작은 물방울이 되어

오로지 이 땅 위를

부유하며 찬미하겠다!

양동이의 물방울조차도

전지전능한 분의 손에서 흘러나온 것이니!

 

거대한 땅들이

전지전능한 분의 손에서 솟아 나왔고

빛의 강물 속에서 홀연 북두칠성이 떠올랐듯이

너 작은 물방울도 그 분의 손에서 나왔으니!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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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친구여! 나는 자신의 사고를 넓히고,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이리저리 방랑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구에 대해 생각해 보았네. 또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주어진 제한된 삶을 기꺼이 받아들여 평범한 생활의 궤도 속에서 살아가려는 내적인 충동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네.

정말 놀랍네. 언덕 위에 올라서서 아름다운 골짜기를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온통 내 마음을 빼앗은 것 뿐이네. 펼쳐진 저 작은 숲, 그 그늘 속에 파고 들고 싶네. 저기 산등성이가 보이네! 아아, 산꼭대기에 올라가 넓게 펼쳐진 이곳을 한눈에 내려다보고 싶네. 사슬처럼 이어져 있는 구릉들이여, 다정한 골짜기들이여!

아아, 이 모든 자연에 내 몸ㅁ을 내맡긴 채 조금이라도 내 자신을 잊어버리고 싶네. 그래서 그곳으로 달려갓지만 나는 다시 되돌아오고 말았네. 내가 소망한 것은 어디에도 없었네.

아, 저 먼 곳은 우리의 미래와도 같네. 우리의 영혼 앞에 어렴풋이 가로놓여 있는 미래, 우리의 감성은 우리의 눈처럼 그 속으로 빠져들어 한없이 그것을 동경하고 갈망하는 걸세. 아아! 그것에 자신을 완전히 몰입시키며, 유일하고 위대하며 찬란한 환희를 가득 느끼고 싶어한단 말일세.

그러나 그곳으로 달려가 보면, 늘 모든 것은 전과 마찬가지일 뿐이네. 우리가 그토록 동경하던 곳에서 정작 생활하다 보면 결국 전과 달라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우리는 여전히 초라하고 제한된 삶에 갇혀 있을 뿐이며, 우리의 영혼 또한 넘쳐흐르는 생명수를 갈망하면서 방황하는 거라네. 이처럼 항상 어딘가로 떠나고자 하는 방랑자라도 결국 자신이 태어난 조국을 그리워하고 그의 오두막, 아내의 품과 자식들 속에 묻혀 그들을 부양하느나 바쁘게 지내다 보면, 비로소 자신이 한때 먼 세계로 나가 찾으려 했던 기쁨을 찾게 되는 것이네. (p.62-64)

 

내 마음을 조용하고 참된 느낌으로 가득 채우는 것은 바로 그런 먼 옛날 부족국가 시대의 순박하며 단순한 생활상, 바로 그것이라네. 다행히도 나는 그러한 삶을 아무런 과장 없이 지금의 나의 생활 속에 짜 넣을 수 있게 된 것일세.

인간의 소박하고도 순진무구한 기쁨을 느낄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네. 직접 가꾼 양배추를 내 식탁에 올려놓는 기쁨. 어디 그뿐인가. 양배추뿐만이 아니라 멋진 나날들, 채소와 꽃을 가꾸던 아름다운 아침들, 물을 주던 사랑스러운 저녁들, 그리고 그것들이 자라는 것을 보며 기쁨을 느끼고,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함께 올려놓으며 즐겼던 흐뭇한 저녁, 좋았던 저녁의 모든 것을, 식탁 앞에 앉은 그 시간에 다 맛볼 수가 있는 것이지. (p.65)

 

이 지상에서 아이들처럼 사랑스러운 존재는 없네. 아이들을 바라보면 그 작은 모습 속에 언젠가 그들에게 필요할 온갖 미덕과 힘의 새싹이 자라는 것이 보인다네. 그들의 고집 속에는 미래의 굳건하고도 확고한 성품이, 씩씩한 모습에는 세상의 위험을 헤치고 나갈 의젓하고 쾌활한 기상이 깃들어 있는 것이네. 그 모든 것이 그대로 아이들 속에 존재하고 있네. (p.67)

 

우리는 어른의 본보기가 될 아이들, 어른과 동등한 아이들을 마치 종처럼 다루고 있네. 마치 아이들은 의지라는 것을 갖지 말아야 하는 듯이 말일세. 그러나 우리 어른들은 과연 어떤가? 도대체 무슨 특권으로 어른들만 의지를 가져야 하는가?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여, 당신의 눈에는 다만 나이 많은 아이와 나이 적은 아이만이 있을 뿐입니다. (p.67)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월든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이덕형 옮김, 문예출판사)

옛사람에게는 낡은 행동방식이 있고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겐 새로운 행동방식이 있는 법이다......아무리 현명한 사람일지라도 삶의 체험을 통해 절대적 가치가 있는 무언가를 배웠는지 의심스럽다. 사실상 노인은 젊은이들에게 해줄 중요한 충고의 말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들의 경험은 한쪽으로 치우친 것이며, 그들의 인생은 개인적인 여려 이유로 비참한 실패로 끝났다고 스스로 믿기 때문이다. 그런 비참한 경험을 거울 삼겠다는 성실성을 잃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예전처럼 젊지 않다. 나는 이 지구에서 30년 가량 살아왔지만 이제까지 인생 선배들에게 유익한 가르침이나 진심에서 우러난 충고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들은 적절한 말 한마디도 해준 적이 없으며, 그러고 싶어도 그럴 능력이 없었을 것이다.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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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네, 특히 젊은 이들이 마음을 활짝 열어놓고 온갖 것을 즐길 수 있는 인생의 청춘기에 며칠간만이라도 서로 함께 장난치며 보내는 것을 모마땅해 하다가, 뒤늦게야 자신들이 놓치고 만 그 청춘을 다시 돌이킬 수 없어 후회하는 것 따위 말일세. (p.71)

<참고>

내 청춘을 돌려주오 - 괴테

 

내 자신이 아직 되어가고 있던

그 시절을 나에게 되돌려주오

가슴 속에서 충동질 하던 노래의 샘이 끊임없이

새롭게 솟아나오던 그 시절을

 

안개가 나에게서 세상을 감추어 주고,

꽃봉오리는 아직도 기적을 약속하던 시절을.

골짜기마다 풍요로이 들어찼던

무수한 꽃들을 꺾어 가졌던 시절을.

 

내  가진 것은 없었으나, 그래도 가슴만은

진리에의 충동과 즐거운 망상으로 뿌듯했다오

 

그 억제 못할 충동을 나에게 되돌려주고,

그 깊고도 쓰라림에 가득 찼던 행복을,

증오할 수 있는 힘과 사랑할 수 있는 힘을,

내 청춘을 나에게 되돌려주오.                                      (p.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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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만약에 사랑이 없다면 이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 보았는가?

램프 없는 환등이나 다를 바 없는 걸세! 작은 램프를 끼움과 동시에 다채로운 영상이 하얀 벽에 나타나지. 설령 그것들이 스쳐지나가는 환영에 불과할지라도, 우리는 생기발랄한 소년들처럼 그 앞에 서서 벽에 나타나는 그림들을 보며 기뻐한다면, 그것은 역시 우리에게 한없이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일세. (p.87-88)

 

세상만사 따지고 보면 다 할잘 것 없는 것들일세. 자신이 진정 갈망하는 것을 위해 열정을 쏟는 게 아니라, 다른 것을 위해 돈을 벌거나 명예 따위를 위해 일하는 자야말로 어리석은 사람일세.

qㅣㄹ헬름! 나는 다른 것을 동경한다네. 나만의 것을! 새로운 것, 진정으로 아름답고 내 가슴을 충만하게 해줄 수 있는 미지의 것을! 나는 그것을 관직이 아닌 나의 예술 속에서 찾고 싶네. 그러나 나의 시적인 열기는 미미하고, 나는 더욱 우울해진다네. 나의 우울함은 때로는 나를 알수 없는 행복감에 젖게 해주기도 하지만. (p.90)

 

알베르트가 돌아왓네. 빌헬름, 이제 떠나야 할 것 같아. 

그는 모든 점에서 나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이라네. 그렇다 하더라도 그처럼 완벽하고 아름다운 여인을 그 혼자 차지한다는 사실은 참을 수가 없네, 빌헬름.

아무튼 그녀의 약혼자가 돌아왔네. 유능하고 다정스러운 사람이어서 사람들 모두 호감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네. 다행이도 사람들이 그를 마중 나갔을 때 나는 거기에 없었다네.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내 가슴은 갈갈이 찢어지고 말았을 것이네.

알베르트 역시 예의 바른 신사여서 내 앞에서는 한 번도 로테에게 키스를 한 적이 없다네. 신이시여, 그를 칭찬하소서! 솔직히, 여성을 존중한다는 점에서는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네. 그 역시 나를 잘 대해주는데, 아마도 스스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로테가 시킨 듯하네. 그런 일에야 여성들이 더 섬세하고 유능하지 않은가. 두 명의 숭배자를 얻으면서 그 두 사람의 사이 또한 좋다면 그 여성이 얻는 이득이야 더욱 크겠지. 물론 쉽지 않지만.

어쟀든 알베르트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네. 그의 의젓하고 침착한 태도는 불안한 내 성품과는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네. 그는 감성이 풍부하고 또 누구보다 로테를 잘 알고 있네. 그는 도무지 불쾌해지지 않는 사람인 것 같네. 자네도 알겠지만, 불쾌한 감정이야말로 인간의 기질 가운데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감정이라는 것을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알베르트는 나를 이해심 많은 사람으로 여기고 있네. 로테에 대한 애착, 그녀가 보이는 모든 행동에 대해 느끼는 나의 열렬한 기쁨은 그의 승리감을 더 높여 주며, 그런 만큼 그는 더욱 그녀에게 사랑을 솓게 되는 걸세. 혹 그도 이다금 조금이나마 질투를 느껴 그녀를 괴롭힐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그런 말은 그만하세. 아마 내가 그라도 이런 악마 같은 질투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니 말일세. (p.93-94)

 

정녕,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바로 그것이 또다시 불행의 근원이 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p.115)

 

인간들은 작은 집안에 안전하게 모여 앉아 둥지를 틀고 살면서, 마음속으로 이 넓은 세계를 지배하려 든다네. 가련하고 어리석은 자들! 그들은 모든 것을 하찮은 것인 양 무시하고 있네. 결국 자신들이 보잘 것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네. 어떤 발길도 닿지 않은 오지 위에 펼쳐진, 감히 접근하기 힘든 산으로부터 미지의 대양 끝에 이르기까지 영원한 창조자의 정신의 숨결이 불어롤 때면, 만물은 그것을 받아들여 생기를 띠며 심지어 티끌마저도 기쁨에 젖는다네.

아아! 그때 나는 내 머리 위를 날아 헤아릴 수 없는 넓은 바닷가로 날아가는 학의 날개를 얼마나 자주 동경했던가. 무한한 신의 거품이 이는 잔 속에 넘쳐흐르는 삶의 희열을 마시고자 얼마나 갈망했던가. 모든 것을 자신 속에서, 자신을 통해 창조해 내는 신의 본질적 지복한 생명의 물방울을 내 가슴 속의 억압된 힘 속에서 한 순간이라도 느끼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던가.

친구여, 그 시간을 회상하면 나는 기쁨에 젖는다네. 그 형용할 수 없는 느낌들을 다시 불러와 표현하고 싶어 애태울 때조차도 내 영혼은 승화된다네.

그러나, 그런 환희가 지나간 다음에는 지금처럼 나는 더 깊은 불안에 둘러싸이고 마네. 나의 영혼 앞에 어두운 장막이 드리워진 듯하네. 그리고 무한한 삶의 무대는 내 앞에서 영원히 열린 무덤 같은 심연으로 바뀌고 말았네.

빌헬름, 자네는 '그것은 존재하고 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은 지나가 버리고 마는데도? 모든 것이 뇌우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가 버리고, 존재하는 모든 힘은 온전히 지속되는 일이 드물고, 아아! 강물에 휩쓸려 사라져 버리거나 물 속에 가라앉으며, 바위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마는데도 말일세. (p.117-118)

 

내 마음을 무너뜨리는 것은 바로 자연 속에 숨겨져 있는 위력이네. 그 힘은 자신의 이웃과 자기 자신을 파괴하고 나서야 비로소 다시 창조해 내는 것일세. 그것을 생각하며 불안에 휩싸인 채 나는 희청거린다네.

하늘과 당, 그것들을 창조해 낸 위력이여! 내 눈에는 영원히 삼켜 버리고 영원히 반추하는 괴물만 보일 뿐이네. (p.119)

 

한때 로테가 나를 이 어둠 속에서 이끌어내 줄 나의 여신, 나를 이끌어 영원한 사랑과 평화와 안식이 있는 곳으로 데뎌다 줄 연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네. 그러나 알베르트가 도착한 이후로 로테는 의식적으로 나를 멀리 하고 있네. (p.120)

 

나의 활동력은 어느덧 불안한 나태함으로 바뀌었네. 한가로이 지내지도 못하며 그렇다고 무슨 일을 하려 해도 손에 잡히지 않는데. 나는 자연을 바라보아도 더 이상 아무 것도 상상할 수 없고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네. 책 따위는 쳐다보기만 해도 역겨워진다네. 자신을 잃으면 결국 우리에게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가 봄세. (p.120-121)

 

인생의 황금기도 그저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착각일 뿐이네. 흘러가고 나면 그 뒤에는 아무런 자취도 남지 않고 허망할 뿐이지. 거기에서 얻어지는 열매는 얼마나 적으며, 무르익는 열매 또한 얼마나 적은가! 그런데도, 아아, 빌헬름! 우리는 그 무르익은 열매들을 소홀히 하고 경멸하고, 향유하지도 않은 채 썩도록 내버려둘 수 있는가! (p.123)

 

불행한 인간이여! 너는 바보가 아닌가? 자신을 속이고 있지 않은가? 끝없이 날뛰는 이 열정을 도대체 어찌하란 말인가?

나는 오직 로테를 위해서만 기도하고, 상상 속에는 오직 그녀의 모습만 떠오를 뿐이라네. 내 주위의 모든 것은 오로지 그녀와의 관계 속에서만 보이네. 그런 것들이 나를 더없이 행복하게 한다네. 비록 내가 다시 그녀로부터 벗어나야 할 때까지에 불과하겠지만. (p.123)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바보배 - 제바스티안 브란트 (노성두 옮김, 안티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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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나는 알 수 있네. 그리고 알고 있네. 운명이 나에게 가혹한 시련을 주고 있다는 것을 말일세. 그러나 용기를 내야지. 마음을 가볍게 가지면 모든 것을 견뎌낼 수 있을 걸세. 그런데 가벼운 마음이라고? 이런 말을 내가 쓰고 있다니 우습군. 내 혈관 속의 피가 조금만 더 가볍다면 나는 태양 아래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으련만. 기가 막히는 일 아닌가!

다른 사람들은 얼마 안 되는 역량과 재능을 가지고도 만족하며 안락하고 행복하게 살고 심지어 큰소리치며 돌아다니기까지 하는데 나는 내 역량과 재능에 절망하고 있으니 말일세!

하느님! 제게 모든 것을 부여해 주신 당신은, 왜 그 절반을 거두고 대신 자신감과 만족하는 마음을 주지 않으셨습니까?

참아야지. 참아야 하네. 그러면 지금보다 더 나아질 걸세. 빌헬름, 자네 말이 옳은 것 같네. 소박한 서민들 틈에 섞여 하루하루를 그럭저럭 소일하고 그들이 하는 일을 바라보며 지내는 가운데 나는 예전보다 훨씬 잘 타협할 수 있게 되었네.

확실히, 우리는 모든 것을 우리 자신과 비교하고 또 우리를 다른 모든 것과 비교하도록 만들어졌네. 행복과 불행은 우리가 소유하고 우리가 의지하는 대상들 속에 들어있는 것일세. 그러므로 그것들을 떠나 고독하게 머무는 일만큼 위험한 것은 없네.

우리의 상상력은 ㄴ포이 승화되고 싶은 절박한 본성을 갖고 있어 시와 예술 속의 환상적인 영상으로부터 자양분을 얻으며, 존재하는 대상들을 승화시킨다네. 거기에서 우리들 자신은 가장 낮은 존재이며,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이 더 훌륭해 보이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완전해 보인다네. (p.138-139)

 

우리는 늘 스스로에게 많은 것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바로 우리에게 없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은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네. 그것을 얻기 위해 우리는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바치네. 그뿐인가, 이상적이고 진정으로 소중한 삶마저도 기꺼이 희생하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들은 참된 행복을 모두 잃고 마네. 우리들 스스로가 그렇게 만드는 것일세.

반대로 우리는 나약하고 힘겹지만 계속 노력해 나가면, 비록 불어 닥치는 바람에 밀려 흔들리며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더라도 결국 돛과 노의 힘을 빌려 평범하게 저어가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멀리 나아간다는 것을 아네.

이처럼 다른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거나 아니면 그들보다 앞서 나아갈 때야말로 진정 우리에게는 자신감이 생겨나는 것일세. (p.139-140)

 

나는 이곳에서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네. 무엇보다도 다행한 것은 적당히 할 일이 있다는 걸세. 게다가 각양각색의 사람들도 만날 수 있네. 새로 만나는 그 사람들으미 갖가지 모습을 보면 내 눈앞에 다채로운 연극이 펼쳐지는 듯하다네. (p.140)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 공사는 정말 지겨운 사람이네. 쓸데없이 모든 것을 정확하고 꼼꼼하게 챙기는, 그야말로 바보 같은 사람이네.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고 일을 일부러 번거롭게 하기 좋아하는 것이 영락없이 까다로운 아낙네 같네. 결코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는 일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도 절대로 고마워할 줄 모르는 그런 위인일세. (p.141)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 리차드 칼슨 (정영문 옮김, 창작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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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그는 나에게 내 상관인 공사가 행동이 굼뜨고 일을 할 때 늘 망설여서 아주 불만스럽다고 솔직하게 말했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힘들게 만든다면서 말일세. 그러나 백작은 높은 산을 오르는 여행자처럼 그것을 받아들이고 체념해야 한다고 말했네. 산이 가로막고 있지 않다면 물론 길을 가기에 더 편하고 빠르겠지만 일단 산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네. (p.142)

 

빌헬름, 물론 나는 다른 사람들을 내 생각에 맞추려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날이 갈수록 더욱 절실히 깨닫고 있네. 그리고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만약 다른 사람들이 내가 가는 길을 방해하지 않고 내버려두기만 한다면 이 질풍노도와도 같은 내 가슴도 그들이 무슨 일을 하든 개의치 않을 걸세. (p.144-145)

 

그녀의 숙모는 그 나이에도 제대로 갖추고 있는 것이 없었네. 내세울 만한 재산도 없고, 그렇다고 정신적인 역량이 있는 것도 아니며, 의지할 것이라고는 조상들 족보뿐이고, 그녀를 보호해줄 것이라고는 그녀의 신분밖에 없었네. 그런데 그녀는 그런 가문이나 신분 속에 자신을 가둔 채 높은 계단 위에 서서 서민들의 머리를 경멸스러운 시선으로 내려다보는 것 외에는 다른 즐ㄹ거움을 모른다는 것이었네. (p.146)

 

지위라는 것은 대수로운 게 아니네. 제일 높은 지위에 있다고 해서 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라네. (...) 제일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란 대체 누구인가? 내 생각으로는, 다른 사람들을 통찰할 줄 알고 다른 사람들이 지닌 위력이나 열정을 팽팽히 조여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는 데 이용할 수 있는 정신력이나 계략을 지닌 사람이 아닐까 하네. (p.147)

 

그리고 쓸데없이 바빠 한동안 잊고 있었던 호메로스의 시집을 펴들고 고향을 떠나 10년 동안 방랑하던 오디세우스가 착한 돼지치기 목동들에게서 대접을 받는 멋진 장면을 읽었네. (p.159)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오딧세이아 - 호메로스 (천병희 옮김,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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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로테가 사는 마을로 돌아와 있네, 빌헬름! 어리석다고 비난해도 할 수 없네. 나는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할 뿐이네.

성문을 나서서 내가 처음 로테를 무도회에 데려가기 위해 마차를 타고 갔던 그 길을 따라서 걸어가보니 모든 것이 다 사라져 버렸네! 모든 것, 모든 것이! 이제는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네.

그 당시의 자취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고, 내 감정의 맥박 역시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앗네. 나는 마치 불타 페허가 되어 버린 성으로 되돌아온 유령과 같은 심정이네. 한때 영화롭게 살던 그 성의 영주가 직접 지어 정성껏 장식하고 가꾸다가 사랑하는 자식에게 희망과 더불어 남겨 주고 떠났으나, 이제는 허물어진 그런 성으로 되돌아 온 망령 말일세. (p.176-177)

 

"방랑자는 올 것이다. 나를 알고 있던 아름다운 모습의 그 방랑자는 올 것이다. 그리고 물을 것이다. 핑갈의 뛰어난 아들, 그 노래하던 영웅은 어디 있는가? 라고, 그는 말할 것이다. '그의 발걸음이 내 무덤 위를 지나간다. 그는 지상 위에서 헛되이 나를 찾아다니고 있다.'라고."

아, 빌헬름 나 역시 그 고귀한 용사처럼 당장 검을 빼어 들고 싶네. 그러고는 서서히 죽어가는 삶 속에서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위대한 시인 오시안을 푹 찔러 단숨에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이 풀어주고 싶네. 그리고 내 영혼도 마치 신처럼 자유로워진 그의 뒤를 따라가고 싶네. (p.192-193)

<참고>

오시안 (Ossian)

3세기경의 고대 켈트족의 전설적인 시인 ·용사.

오시안이라는 이름은 1765년 영국 시인 J.맥퍼슨이 그의 시를 수집하여 영역본(英譯本) 《고지방수집 고대시가 단장(高地方蒐集古代詩歌斷章)》(1760) 《핑갈 Fingal》(1762) 《테모라 Temora》(1763) 등 3권을 발표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맥퍼슨은 자신이 게일어로 구전되던 서사시들을 직접 채록했으며, 자신이 한 것은 서사시를 영어로 번역한 것일 뿐 새로 지어낸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맥퍼슨의 오시안은 아일랜드 신화의 영웅 핀 막 쿠월의 아들인 음유시인 오신을 원형으로 한다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켈트 신화와 전설 - 찰스 스콰이어 (나영균, 천수용 옮김, 황소자리)

켈트의 여명 - 윌리엄 예이츠 (서혜숙 옮김, 펭귄클래식)

켈트족 옛 이야기 - 조지프 제이콥스 (서미석 옮김, 현대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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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delssohn - The Hebrides, Op.26 (Fingal's Cave) - Antal Dorati, LSO (Mercury, 1956) 

멘델스존 - 핑갈의 동굴

 

(01) Antal Dorati, LSO (1956) Mendelssohn - The Hebrides, Op.26 (Fingal's Cave).mp3
9.56MB

Antal Dorati, LSO (1956) Mendelssohn - The Hebrides, Op.26 (Fingal's C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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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이 공허함! 이 가슴 속 깊이 느껴지는 끔찍한 공허함! 이따금 이런 생각이 드네. 그녀를 한 번만, 한 번만이라도 꼭 안을 수만 있다면 이 공허함은 단숨에 채워질 것이라고. (p.193)

 

나의 활발한 상상력은 벌써 이 병든 가련한 사람들의 병상으로 옮겨가 있었네. 그들은 얼마나 비참한 심정으로 이 세상을 등지지 않으려고 애쓰는가. 그런데도, 빌헬름! 내가 사랑하는 여인과 그녀의 친구는 마치 자신들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인 듯 무심하게 얘기하고 있는 것이네. (p.194)

 

'보라, 도대체 너는 이 집에서 뭐란 말인가! 결국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네 친구들은 너를 존중하고 있다. 너는 때로 그들에게 기쁨을 주면서도, 너 자신은 마치 그녀가 없으면 아무 즐거움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약 이제 네가  떠나가 버린다면? 이 사람들과 이별을 고한다면 어떻게 될까? 너를 상실한 뒤 느끼는 가혹한 공허감을 과연 그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간직할까?"

빌헬름, 인간이란 그토록 덧없는 존재라네. 자신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는 곳에서조차도,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인상 깊게 남길 수 있는 장소에서조차,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의 추억과 그들의 영혼 속에서조차 희미하게 사라져가고 마네. 그것도 누깜짝할 사이에 말일세. (p.195)

 

사람이 이처럼 냉담해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찢기는 듯하고 머리가 터질 것만 같네. 아, 사랑도, 기쁨도, 온유함도, 환희도 내가 다른 사람ㅁ에게 줄 수 없으면 다른 사람도 나에게 줄 수 없네. 그리고 아무리 행복을 나누려 해도 차갑고 무력하게 서 있는 자를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네. (p.195)

 

인간의 운명은, 다름 아닌 자신에게 주어진 처지를 참고 인내하며 자기 몫의 잔에 부어진 술을 다 들이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네. 천상의 하느님마저 인간인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내려왔을 때 이 잔이 너무 쓰다고 말했는데, 내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허세를 부리며 그것이 달콤한 척을 하겠는가? (p.200)

 

그녀의 모습이 줄곧 나를 쫓아다니고 있네. 깨어 있을 때도 꿈을 꾸고 있을 때도 온통 내 영혼을 휘어잡는다네. 눈을 감고 있어도 여기 이 머릿속에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보이는 걸세. 바로 여기에! 자네는 이해하지 못할 거네. 어쨌든 눈을 감고 있으면 그녀의 눈동자가 보인다네. 마치 바다처럼, 심연처럼 깊은 그 눈동자는 내 앞에 있고 내 마음 속에 자리를 잡고 온통 내 머리 속을 채우고 있네. (p.215-216)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바로 그 과부를 몹시 연모했던 젊은 하인이었다. 얼마 전만 해도 그처럼 가슴에 절망을 간직한 채 우수에 잠겨 말없이 배회하던 바로 그 젊은이였다.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건가!"

베르테르는 군인들에게 끌려오고 있는 남자에게 달려가면서 외쳤다. 그 젊은이는 물끄러미 베르테르를 바라보더니 마침내 태연스럽게 대답했다.

"아무도 그 분을 갖지 못할 거예요. 그 분 역시 아무도 갖지 못할 겁니다."

사람들이 젊은이를 음식점 안으로 끌고 들어가자 베르테르는 급히 그 장소를 떠났다.

이 끔찍하고 폭력적인 사건에 충격을 받아 베르테르의 내면은 뒤죽박죽 혼란스럽게 변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슬픔, 불만,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한 순간 벗어났다. 그 살인사건이 베르테르를 완전히 사로잡았으므로 그는 그냥 무관심하게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 젊은이를 구해야겠다는 충동이 일어난 것이다.

베르테르에게 그 젊은이는 너무도 가여웠고, 비록 살인을 했지만 무고하게 느껴졌다. 자신은 그의 행위를 깊이 공감하고 있으므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점을 확신시킬 수 있을리라 믿었다. (p.224)

<비교>

삼국지 - 조조 (曹魏)

寧敎我負天下人 休敎天下人負我 (영교아부천하인 휴교천하인부아)

차라리 내가 천하 사람을 버릴지언정 세상 사람이 나를 버리게 하지는 않겠다.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관계중독 - 박수경 (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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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은 오히려 우리의 친구 베르테르가 자신의 말을 가로막으면서 잔인한 살인자를 옹호하고 있다고 격렬하게 비난했다. 그러면서 베르테르에게 말했다.

"당신 말대로라면 모든 법은 폐기되고 말 것이고 국가의 안전도 모두 파괴될 것이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이런 사안을 처리하면서 나로서는 막대한 책임을 짊어지지 않을 수 없소. 모든 것을 질서에 따라, 법규에 쓰인 절차에 따라서 해결해 갈 수밖에 없는 것이오." (p.225)

 

"조금만 자중하세요! 당신의 정신, 당신의 학문, 당신의 재능, 그 모든 것은 당신에게 얼마나 많은 기쁨을 안겨줄지 아세요? 대장부가 되세요! 당신을 보고 안타까움만 느낄 뿐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저 같은 사람에게 집착하는 슬픈 일에서 벗어나세요.

한 순간만이라도 감정을 조용히 누르세요, 베르테르! 당신은 자신을 속여왔고, 당신의 의지 때문에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있다는 것을 느기지 못하시는 군요! 왜 하필 저여야만 하나요? 꼭 그래야만 하는가요? 저는무서워요, 두려워요. 저를 소유하고 싶어하는 당신의 소망을 성취하기는 불가능해요." (p.239)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미저리 - 스티븐 킹 (조재형 옮김,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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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세상에 당신의 가슴 속에 담긴 소망을 이뤄줄 여자가 없겠어요? 그런 여자를 찾아서 그녀의 마음을 얻으세요. 지금부터라도 찾으세요. 당신은 분명 그런 여성을 발견하실 거예요. 벌써 오래 전부터 당신 스스로를 가둔 그 제한된 생각과 삶이 당신이나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답니다. 베르테르, 자신을 위하여 그것을 극복하세요. 여행을 해보세요. 그러면 마음이 바뀔지도 몰라요. 당신의 사랑을 바칠 만한 값진 대상을 찾으세요. 그런 다음에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 우리 함께 진정한 우정을 나누며 행복하게 살아요." (p.240)

 

[오시안의 노래]

 

어두워져가는 밤의 별이여, 너는 서녘에서 아름답게 빛나고 있구나!

너를 가린 구름 속에서 찬란한 머리를 드러내고 언덕 위를 당당하게 넘어가는 구나.

는 저 황량한 벌판 어디를 바라보느냐? 폭풍은 가라앉고 멀리 계곡물의 웅성거리는 소리 들려온다.

파도소리가 쏴아쏴아 바위 위에서 희롱하고 들판 위로 파리들이 윙윙 날아다닌다.

는 어디를 바라보느냐, 아름다운 별빛이여?

너는 미소를 지으며 스쳐 지나가 버리고, 네 주위를 구름이 감미롭게 감싸며 너의 사랑스러운 머리를 쓰다듬는다.

잘 가거라, 고요한 별빛이여, 너 오시안의 영혼이 깃든 찬란한 별빛이여!

스스로 힘차게 빛나고 있는 빛이여.

세상을 떠난 벗들의 모습이 지난날의 여명이 서린 들판으로 모여든다.

영웅 중의 영웅 핑갈은 축축한 안개에 싸인 기둥처럼 다가온다.

그의 주위에 부하들이 둘러서 있다, 보라!

그 영웅들을 노래하던 시인들도 함께 다가오는 것을.

백발이 성성한 울린! 위풍당당한 리이노! 사랑스러운 악사 알핀!

그리고 그대 부드럽게 탄식하는 미노나여! 나의 벗들이여!

셀마의 언덕에서 보낸 그 축제의 날들 이후로 그대들은 너무도 변했구나.

때 우리는 언덕을 부드럽게 스치며 넘어가는 봄바람에 산들거리는 풀들이 번걸아 흩날리듯 서로 다투어 노래했었다.

촉촉히 젖은 눈을 아래로 살짝 내리뜨던 아름다운 미노나!

언덕 위로 휘몰아쳐 오는 불안한 바람 속에 선 그녀의 머리카락은 세차게 휘날렸다.

 

사랑스러운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영웅들은 이따금 영웅 살가르의 무덤을 바라보다가

그의 백옥 같던 연인 콜마가 누워 잠들어 있는 어두운 안식처를 바라보며 가슴이 우울해진다.

름다운 ㅁ고소리로 노래하던 아름다운 처녀 콜마는 그 언덕 위에 홀로 남겨졌다.

살가르는 전쟁에서 살아 돌아오겠노라고 약속했으나 돌아오지 않았고 주위에는 밤이 내려앉았다.

언덕 위에 홀로 앉아 있는 콜마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온다.

들어보라. 언덕 위에 홀로 앉아 잇는 저 콜마의 노래를 들어보라. (p.251-253)

 

<알핀>

리이노여, 나의 눈물은 죽은 자들을 위한 것이며,

의 음성은 무덤 속에 누워 있는 자들을 위해 울린다.

이 언덕 위를 그대의 몸이 날쌔게 달리니,

초원의 아들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구나!

그러나 너 또한 모라르처럼 쓰러지고 말 것이니, 네 무덤 위에는

너를 슬퍼하는 자들이 다가와 앉으리라.

언덕은 너를 잊을 것이며 너의 활은 네 무덤 속에

시위가 풀린 채 놓여 있으리라.

모라르여, 너 또한 이 언덕 위에서 한 마리 양생마처럼 얼마나 용감하게 뛰어다녔던가.

밤하늘에 번쩍이는 불길처럼 얼마나 무서웠던가.

네가 화를 내면 폭풍이 몰아치는 듯했고, 싸움터에서 너의 검은 초원 위에 번개처럼 번쩍거렸다.

너의 음성은 비온 후 숲에 넘쳐호르는 거센 강물과 같았고 멀리 언덕 위로 내리치는 천둥과 같았다.

그대의 팔 아래로 얼마나 많은 용사들이 쓰러졌던가.

그대가 분노하면 그 화염이 얼마나 많은 용사들을 휩쓸어 버렸던가.

그러나 싸움터에서 돌아오면 그대의 이마는 얼마나 평화스러워 보였는가!

그대의 얼굴은 폭풍이 지난 후의 태양과도 같았고,

고요한 밤을 흘러가는 달과도 같았다. 그대의 가슴은 거센 바람이 지난 후의 바다와 같았ㄷ.

그런데 이제 그대가 누워 있는 그 무덤은 비좁기만 하구나!

네가 머물고 있는 그 집은 너무도 어둡구나!

겨우 세 걸음의 크기에 불과한 작은 무덤이여.

아한때 그토록 위대하고 용맹스러웠던 그대의 무덤이여!

이끼 낀 네 개의 비석만이 그대를 기억하게 하는 유일한 흔적이요, 헐벗은 나무 한 그루, 바람에 흩날리는 무성한 잡초만이 한때 위대하던 그대 모라르를 회상시켜 준다.

너늘 위해 슬퍼해 줄 어머니도 보이지 않고,

너를 위해 사랑의 눈물을 흘려 줄 여인의 모습도 없다.

그대를 낳아 준 여인은 이미 세상을 떴고, 그대의 애인인 모르글란의 아름다운 딸도 이미 죽고 없도다.

지팡이에 의지하고 서 있는 저 사람은 누구인가? 머리는 백발이 성성하고

눈에 눈물 가득한 그는 누구인가? 오오, 모라르여.

바로 너의 부친이다. 아들을 잃고 홀로 떠도는 늙은 아버지다.

그는 싸움터에 나가 쓰러진 너의 소식을 들었고, 미친 듯 날뛰는 적들의 소문도 들었다.

용감한 아들 모라르의 명성을 들었도다!

울어라! 백발의 노인이여!

그러나 그대의 아들은 그대 울음소리를 드지 못하리라!

죽은 자들의 잠은 깊고 그들이 베고 있는 먼지의 베개는 낮으니,

아, 언제 무덤가에 다시 아침이 찾아와 잠들어 있는 자들에게 다시 깨어나라! 하고 외칠 것인가.

안녕히! 사랑하는 이들 가운데 가장 고귀한 이여! 전장의 정복자여!

그러나 그 전장은 다시는 네 모습을 볼 수 없으리라!

다시는 저 어두운 숲이 그대의 영광으로 인해 빛나는 일이 없으리라!

너는 뒤에 아무도 남기지 않았으나

너의 이름은 영원히 남으리.

후세에 오는 이들이 너와, 전사한 영웅 모라르에 대해 들으리라! 

 

산 위에 다시 폭풍이 불어오고 북쪽에서 파도가 세차게 이렴,

나는 윙윙거리는 바닷가에 앉아 무시무시한 바위를 바라다본다.

이따금 지는 달빛 속에서 사라져간 영웅들의 혼이 보인다.

쯤 여명이 서린 속에서 그들은 서글프게 화합하여 함께 떠돌고 있다.

왜 그대는 다시 나의 잠을 깨우는가, 봄바람이여?

그대는 다정스레 바라보며

"나는 하늘의 물방울로 대지를 적시노라!"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시들어갈 때는 가까워졌다.

나의 잎들을 날려 흩트려 버릴 폭풍이 가까이 다가왔다!

내일은 나그네가 올 것이다. 내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한 시절에

를 보았던 그 나그네가 나를 다시 찾아올 것이다.

벌판 위로 여기저기 눈을 돌려 그는 나를 찾으려 하지만

마침내 찾지 못할 것이다!  (p.259-263)

 

로테!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나는 눈을 떴습니다. 아! 이 두 눈은 다시는 저 태양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안개 낀 흐릿한 날씨가 태양을 가리고 있습니다.

대자연이여, 슬퍼하거라! 그대의 품에서 태어나고 그대의 벗이었으며, 그대가 사랑하던 나는 종말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로테, 이것이 마지막 아침이라고 스스로에게 타이르는 심정은, 무러라고 말할 수 없으나 마치 몽롱한 꿈처럼 느껴집니다.

마지막 아침입니다, 로테! 그러나 마지막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나는 온 힘을 다해 버티고 서 있으나 내일이며....내일이면 몸을 쭉 뻗고 힘없이 땅 위에 누워 있을 것입니다.

죽는다는 것! 그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죽음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꿈을 꾸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죽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이란 자기 존재의 시작과 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정도로 제한된 힘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는 나 자신의 것입니다. 아니, 당신의 것입니다. 나의 사랑이여! 우리가 헤어진다 해도, 그것은 한 순간일 뿐입니다. 아니면, 영원한 이별일까요? 아닙니다, 로테! 아닙니다! 내가 어찌 사라져 버릴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어찌 사라져 버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들은 영원히 함께 할 것입니다.

사라져 버리다니요!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 그건 단지 말일 뿐입니다. 내 가슴에는 아무런 느낌도 주지 않는 공허한 말일 뿐입니다! 죽는다는 것은, 로테여! 차가운 땅속에, 그 어두운 곳에 갇혀 있는 것이지요.

한때 내 유년 시절에 마음의 벗이었던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녀가 죽었을 때 나는 그녀의 시신을 따라 무덤가로 가서 그녀를 담은 관이 내려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관을 감고 있던 밧줄이 풀려 올려지자, 첫 번째 삽에 담긴 흙이 구덩이 속으로 떨어지면서 관 뚜껑이 불안한 소리를 냈습니다. 그러나 그 소리는 점점 둔탁하게 바뀌어 관이 완전히 흙으로 덮이자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습니다! 나느 ㄴ무덤 가에 쓰러져 전율과 불안과 슬픔을 가슴 깊이 느꼈습니다. 그러나 내게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 그리고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죽는다는 것! 무덤! 나는 그 말들을 알지 못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어제의 일은 그것은 내 생애의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나의 천사여! 처음으로, 진정 처음으로 가슴 깊이 행복을 느꼈습니다. 로테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그 성스러운 불꽃이 아직도 내 입술 위에 살아 있습니다. 그때의 따스한 행복감이 새삼 내 가슴 속을 파고듭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물론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처음 만난 순간 당신의 눈길과 마주쳤을 때 나는 그것을 알았습니다.

.알베르트가 다시 돌아와 더 이상 당신이 나에게 손을 내밀 수 없게 되었을 때 말없이 선물을 내주던 그 곷들을 기억합니까? 아! 나는 밤새 그 꽃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습니다.나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보여준 그 꽃들 앞에서, 그러나,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허무할 뿐입니다. 그러나 어떤 영원한 생명도 어제 당신의 입술에서 느꼈던 불타는 생명을 내게서 지워 버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영원한 생명도 어제 당신의 입술에서 느꼈던 불타는 생명을 내게서 지워 버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나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로테여, 영원히!

알베르트가 당신의 남편이라는 게 어떻다는 것입니까? 남편이라니요? 그것은 이 세상에서만 그럴 뿐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의 품에서 빼내어 내 품에 안는 것이 죄가 되는 이 세상에서만 그렇습니다. 죄라니요? 좋습니다. 나는 그 대가를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이 죄야말로 나에게는 천상의 기쁨이었으며, 내 가슴 속에 생명의 유향과 힘을 불어넣었습니다.

이 순간부터 당신은 나의 것입니다, 로테!

먼저 떠나겠습니다. 나의 아버지이며, 당신의 아버지이기도 한 전능한 분이 계시는 곳으로 가겠습니다. 나는 그분에게 하소연할 것이며, 그 분은 당신이 뒤따라올 때까지 나의 오리로움을 달래 주실 것입니다. 그때, 나는 날개를 활짝 펴고 당신에게 날아가 당신의 손을 꼭 부여잡고 고귀한 분이 보시는 앞에서 당신을 영원히 포옹하며 함께 날아가겠습니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망상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무덤이 가까워지니 눈앞은 더욱 환해지는 듯합니다.

우리는 다시 만날 것입니다! 우리는 영

원히 함께 있을 것입니다.

 (p.267-271)

 

베르테르는 죽기 전에 포도주 한 잔을 마셨을 뿐이었다. 그의 책상 위에는 <에밀리아 갈로티>가 펼쳐진 채로 놓여 있었다. (p.285)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에밀리아 갈로티 -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 (송전 옮김, 서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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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열두 시, 젊은 베르테르는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한때 그토록 영혼 가득히 생명력으로 넘치던 그의 아름답고 준수한 얼굴은 이미 죽음의 사자에 의해 거두어지고, 백짓장 같은 시신만이 이 세상에서 그의 마지막 흔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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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볼프강 폰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년 8월 28일 - 1832년 3월 22일)

 

괴테는 1749년 8월 28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태어났다. 왕실고문관인 아버지 요한 카스파르 괴테와 프랑크푸르트암마인 시장의 딸인 어머니 카타리네 엘리자베트 텍스토르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리스어, 라틴어, 히브리어, 불어, 영어, 이탈리아어 등을 배웠고, 그리스 로마의 고전 문학과 성경을 읽었다. 그는 북독일계 아버지에게서 '체격과 근면한 생활 태도', 남독일계 어머니에게서 예술 사랑과 '이야기 짓는 흥미'를 이어받았다. 어린 나이에 신년시를 써서 조부모에게 선물할 정도로 문학적 재능을 타고났다.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1767년에 첫 희곡 ‘연인의 변덕’을 썼다. 1770년 슈트라스부르크( 스트라스부르 ) 대학 재학 당시 호메로스 , 오시안 ,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에 눈을 떴으며, ‘ 질풍노도 운동 (Sturm und Drang)’의 계기를 마련했다. 그는 법률 사무소 견습생일 때 약혼자 있는 샤를로테 부프와 사랑에 빠지는데, 이때 체험을 소설로 옮긴 게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1774)이다. 그는 1775년 바이마르로 이주했으며, 이 도시를 문화의 중심지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 했다. 행정가로 국정에 참여해 다양한 성과를 거두었고, 식물학, 해부학, 광물학, 지질학, 색채론 등 인간을 설명하는 모든 분야에 관심을 기울였다. 1786년 이탈리아 여행에서 고전주의 문학관을 확립했고, 1794년 실러를 만나 함께 독일 바이마르 고전주의를 꽃피웠다. 1796년에 대표적인 교양소설 [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를 썼다. 1805년 실러의 죽음으로 큰 충격에 빠지지만, 이후 창작 활동과 연구는 끊임이 없었고, [ 색채론 ](1810), [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1821), [ 이탈리아 기행 』(1829) 등 완성했다. 스물네 살 구상하기 시작하여 생을 마감하기 바로 한 해 전에 완성한 역작 [ 파우스트 ]를 마지막으로 1832년 세상을 떠났다.
어려서 천재교육을 받았으며, 7년 전쟁 중 그의 고향이 프랑스군에게 점령되었을 때 프랑스 극과 회화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그레트헨과의 사랑(1763년-1764년)이 깨어진 후 16세 때 입학한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재학 중(1765년-1768년), 안나카타리나 쇤코프와 연애를 하였고, 이 체험을 통해 로코코풍의 시나 희곡을 발표하였는데 목가조의 희극 <애인의 변덕>, <공범자>가 그것이다. 분방한 생활로 병을 얻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귀향하여 요양 중(1768년-1770년), 수산네 폰 클레텐베르크(1723-1774)와의 교제를 통하여, 경건한 종교감정을 키웠으며, 또한 신비과학이나 연금술에 흥미를 기울였다. 회복 후, 1770년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에서 법률박사 학위를 얻었다. 그러던 중에 헤르더와 상봉해, 문학의 본질에 눈뜨고 성서, 민요,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등에 친숙해졌다. 그의 영향으로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을 알게 되고 당시 지배적이었던 프랑스 고전주의 미학에의 반발이 심해졌다.
제센하임의 목사의 딸인 프리데리케 브리온을 사랑하여 민요풍의 청신소박한 서정시를 지었고, 대승원의 건물을 보고 고딕 건축의 진가를 터득하기도 하였다?. 귀향후 변호사를 개업(1771년)하였으나, 관심은 오히려 문학에 쏠려 《괴츠 폰 베를린힝겐》(1773년)의 초고를 정리하고 다름슈타트의 요한 메르크(1741-1791)와 친교를 맺었다. 1772년 법률실습을 위해 베츨라어 고등법원으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샤를로테 부프(1753-1828)를 알게 되었다.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슈투름 운트 드랑기의 대표작인 희곡 《괴츠 폰 베를린힝겐》 및 비극 《클라비고》, 비극 《슈텔라》와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표하여 작가적 지위를 확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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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김재혁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2008)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송영택 옮김, 문예출판사 2004)

젊은 베르터의 고통 - 괴테 (정현규 옮김, 을유문화사, 2010)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박찬기 옮김, 민음사 1999)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곽복록 옮김, 동서문화사 2007)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안장혁 옮김, 문학동네 2010)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두행숙 옮김, 부북스, 2010)

H&book 판(양장)에 있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감상하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위한 시 모음
에세이 : 천재를 꿈꾸며 고뇌하는 젊음....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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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영감을 준 소설>

슈테른하임 아씨 이야기 - 조피 폰 라 로슈 (김미란 옮김, 시공사 세계문학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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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행숙 추천도서>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 베르벨 바르데츠키 (두행숙 옮김, 걷는나무, 2013)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 헤르만 헤세 (두행숙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3)

 

오레스테이아 - 아이스킬로스 (두행숙 옮김, 열린책들, 2012)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니체 (두행숙 옮김, 부북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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