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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 한국 문학/2. 소설

잉여인간 - 손창섭 (민음사)

by handaikhan 2023. 2. 28.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

 

손창섭 - 잉여인간 (1958년)

 

만기 치과의원에는 원장인 서만기 씨와 간호원 홍인숙 양 외에도 거의 날마다 출근하다시피 하는 사람 둘이 있다. 그 한 사람은 비분강개파 채익준 씨요, 다른 한 사람은 실의의 인간 천봉우 씨다. 두 사람은 다 같이 서만기 원장의 중학교 동창생이다. 그들은 도리어 원장보다도 먼저 나와서 대합실에 자리 잡고 신문을 읽고 있는 날도 있었다. 더구나 채익준은 간호원보다도 일찍 나오는 수가 많았다. 큼직한 미제 자물쇠가 잠겨 있는 출입문 앞에 버티고 섰다가 간호원이 나타날 말이면 "미스 홍, 오늘은 나에게 졌구려." 익준은 반가운 낯으로 맞이하는 것이었다. 그런 날은 인순이가 아침 청소를 하는 데 한결 편했다. 한사코 말려도 익준은 굳이 양복저고리를 벗어부치고 소매까지 걷고 나서서 거들어주기 때문이다. 대합실과 진찰실을 합쳐도 겨우 다섯 평이 될까 말까 한 방이지만 익준은 손수 마룻바닥에 물을 뿌리고 방구석이나 테이블 밑까지도 말끔히 쓸어내는 것이다. 무슨 일에나 몸을 사리지 않고 앞장을 서는 그의 성품은 이런 데도 잘 나타났따. 청소가 끝나면 익준은 작달막한 키에 가로 퍼진 그 둥실한 몸집을 대합실 의자에 내던지듯 털썩 걸터앉아서 신문을 본다. 그러노라면 원장과 천봉우가 대개 전후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p.259-260)

 

"그래, 미스 홍은 어떻게 생각해. 이놈들을 어떻게 처리했으면 속이 시원하겠느냐 말요?"

마치 따지고 들듯 했다.

"그야 뻔하죠 뭐. 으레 법에 의해서 적당히 처벌될 게 아니겠어요."

그러자 익준은 한층 더 분개해서 흡사 인숙이가 범인이기나 한 듯이 핏대를 세우고 대드는 것이었다.

"뭐라구? 법에 의해서 적당히 처벌될 게라? 아니, 그래 이 다위 악질 도배들을 그 뜨뜻미지근한 의법 처단으로 만족할 수 있단 말요! 미스 홍은 그 정도루 만족할 수 있느냔 말요. 무슨 소리요. 어림없소. 이런 놈들은 그저 대번에 모가질 비틀어버리구 말아야 돼. 아니 즉각 총살이다. 그저 당장에 빵빵 하구 쏴 죽여버리구 말아야 돼. 그러구두 모가지를 베어서 옛날처럼 네거리에 효수를 해야 돼요. 극형에 처해야 마땅하단 말요!"

"어마 선생님두 온. 끔찍스레 그렇게까지 할 게 뭐예요?"

"끔찍하다? 아, 그럼 그놈들을 몇만 환의 벌금이다, 몇 년 징역이다, 하구 감방 속에 피신시켜놓구 잘 처먹구 낮잠이나 자게 하다가 세상에 도로 내놔야 옳단 말요?"

익준은 잠시 인숙을 노려보듯 하다가,

"이거 봐요, 미스 홍. 우리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못 사는지 알우? 우리나라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피폐해 가는지 알우? 모두가 이 따위 악당들 때문이오. 이거 봐요. 그런 놈들은 말야, 이완용이나 마찬가지 역적이오! 나라야 망하든 말든 동포들이야 가짜 약을 사 쓰구 죽든 말든 내 배때기만 불리면 그만이라구 생각하는 그딴 놈들은 살인강도 이상의 악질범이오. 그런 놈들을 극형에 처하지 않으니까 유사한 사건이 꼬리를 물구 발생한단 말요. 난 그놈들의 뼈를 갈아 마셔두 시원치 않겠소..." (p.260-261)

 

빼빼 말라붙은 몸집에 키만 멀쑥하게 큰 그는 언제나 말이 적고 그림자처럼 조용하다. 어딘가 방금 자다 깬 사람 모양 정신이 들어 보이지 않는 표정을 하고 있다. 하기는 그는 대합실 구석 자리에 앉은 채 곧잘 낮잠을 즐긴다. 봉우의 낮잠 자는 모양이란 아주 신기하다.소파에 앉은 채로 허리와 목을 꼿꼿이 펴고 깍지 낀 두 손을 얌전히 무릎 위에 얹고는 눈ㄴ을 감고 있다. 그러고 자는 것이다. 그는 밤에 집에서 잘 때에도 자세를 헝클어뜨리지 않는다고 한다. 천장을 향하고 반듯이 누우면 다음날 아침까지 몸을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잔다는 것이다. 그러한 봉우는 언제나 수면 부족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육이오 사변을 치르고 나서부터 현저해졌다는 것이다. 전차나 버스를 타도 자리를 잡고 앉기만 하면 그는 으레 잠이 들어버린다. 그렇지만 자다가도 그는 자기가 내릴 정류장을 지나쳐버리는 일이 없다. 자면서도 그는 차장의 고함 소리를 꿈속에서처럼 어렴풋이 듣고 있기 때문이다. 밤에 집에서 잘 때에도 그렇다. 자는 동안에도 그는 주위에서 일어나는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다. 재깍재깍 시계 돌아가는 소리, 천장이나 부엌에 쥐 다니는 소리, 아내나 아이들의 잠꼬대며 바깥의 바람 소리까지도 들으면서 잔다. 말하자면 봉우는 오관 중 다른 감각 기관은 다 자면서도 청각만은 늘 깨어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자연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렇게 된 연유를 그는 육이오 사변으로 돌리는 것이다. 피란 나갈 기회를 놓치고 적치 삼 개월을 꼬박 서울에 숨어 지낸 봉우는 빨갱이와 공습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잠시도 마음 놓고 깊이 잠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밤이나 낮이나 이십사 시간 조금도 긴장을 완전히 풀어본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처럼 불안한 긴장 상태가 어느덧 고질화되어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꼬집어 말하면 그는 자면서도 깨어 있고 깨어 있으면서도 자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까닭에 그는 밤낮 없이 자면서도 항시 수면 부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모양이다. 그것은 단지 육체적으로 오는 증상이라기 보다는 더 많이 정신적인 데서 결과하는 심리적 현상인 것이다.

이러한 봉우는 자연 무슨 일에나 깊은 관심과 정열을 기울이지 못하는 것이다. 중학 시절에는 그토록 재기 발랄하고 야심가였던 그가 일단 현실 사회에 몸을 담그고 부대끼기 시작하면서부터 차츰 무슨 일에나 시들해지기 시작하더니 전란 통에 양친과 형제를 잃고 난 다음부터는 영 딴 사람처럼 인간 만사에 흥미를 잃은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심지어 그는 자기 아내에게까지 남편다운 관심과 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 달이면 절반은 사업을 합네, 혹은 친정에 가 있습네 하고 집을 비우기가 일쑤인 봉우 아내는 여러 가지 불미한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었다. 그 여자는 본시 평판이 좋지 못하였다. 봉우와 결혼한 지 여덟 달 만에 낳은 첫 아기가 봉우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것은 가까운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둘째 아이 역시 누구의 씬지 알 게 뭐냐고 봉우 자신이 신용을 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둘이 헤어지지 않고 지내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따. 그러나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리라고 만기는 생각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활동 의욕과 생활력을 완전히 상실하다시피 한 봉우는 아내의 부양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고, 경제 활동이 비범한 봉우 처는 무슨 짓을 하며 나가 돌아다녀도 말썽을 부리지 않으니, 어쨌든 봉우가 편리한 남편이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아무튼 봉우는 그만큼 가정에 대해서나 세상일에 무관심한 인간이었다. 이상한 것은 그러면서도 단 한 가지 간호원인 인숙 양을 바라볼 때만은 잠에서 덜 깬 사람같이 언제나 게슴츠레하던 그의 눈이 깨어 있는 사람의 눈답게 빛나는 것이었다. 봉우는 인숙을 사랑하고 있는 성싶었다. 그러고 보면 봉우가 날마다 이 병원 대합실을 찾아와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오로지 인숙을 보기 위해서 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그의 다음과 같은 거동으로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퇴근 시간이 되어 만기와 인숙이 병원 문을 닫고 한길로 나서면 물론 봉우도 그림자처럼 따라나선다. 그러면 인숙은 만기와 봉우에게 인사를 남기고 헤어져 전차 정류장 쪽으로 간다. 거기서 인숙이가 전차를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봉우가 옆에 척 따라와 서 있는 것이다.

"어마, 선생님 어디 가세요?"

인숙이가 의외란 듯이 물으면 봉우는 아이들 모양 손을 들어 한방향을 가리키며,

"저어기 좀...."

그러고는 자기도 같이 전차를 가디라는 것이다. 인숙이가 전차를 타면 얼른 봉우도 따라 오른다. 전차 안에서도 봉우는 별로 말이 없이 인숙이 곁에 서 있다가 인숙이가 내리면 그도 따라 내리는 것이다. 인숙은 한참 앞서 걷다가 자기 집 골목 어귀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고,

"그럼 안녕히 다녀가세요."

머리를 숙이고 나서 인숙이가 빠른 걸ㅇ름으로 골목길을 걸어 들어가면 봉우는 처량한 표정을 하고 서서 인숙의 뒷모양을 지켜보다가 보이지 않게 되어서야 풀이 죽어서 발길을 돌이키는 것이었따. 봉우는 거의 매일 그러하였다. 어떤 기회에 인숙에게서 우연히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만기는 단순히 웃어버릴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p.264-267)

 

만기와 익준이와 봉우는 중학 시절에 비교적 가깝게 지낸 사이지만 가정환경이나 취미나 성격이나 성장해서의 인생 태도는 판이하게 달랐다. 만기는 좀처럼 흥분하거나 격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렇다고 활동적인 타입도 아니지만 봉우처럼 유약한 존재는 물론 아니었다. 반대로 외유내강한 사내였다. 자기의 분수를 알고 함부로 부딪치지도 않고 꺽이지도 않고 자기의 능력과 노력과 성의로써 차근차근 자기의 길을 뚫고 나가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놀라운 일에 부닺치거나 비위에 거슬리는 사람을 대해서도 도리어 반감을 느낄 만큼 그는 침착하고 기품 있는 태도를 잃지 않는다. 그것은 본시 천성의 탓이라고도 하겠지만 한편 그의 풍부한 교양의 힘이 뒷받침 해 주는 일이기도 하였다. 문벌 있는 가문에 태어나서 화초 가꾸듯 정성 어린 어른들의 손에서 구김살 없이 곧게 자라난 만기는 예의범절이 자연스럽게 몸에 베어 있을 뿐 아니라 미술, 음악, 문학을 비롯해서 무용, 스포츠, 영화에 이르기까지 깊은 이해와 고급한 감상안을 갖추고 있었다. 크레졸 냄새만을 인생의 유일한 권위로 믿고 있는 그런 부류의 의사와는 달랐다. 게다가 만기는 서양 사람처럼 후리후리한 키와 알맞은 몸집에 귀공자다운 해사한 면모를 빛내고 있었다. 또한 넓고 반듯한 이마와 맑고 잔잔한 눈은 그의 총명성과 기품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누구를 대해서나 입을 열 때는 기사가 바둑돌을 적소에 골라 놓듯이 정확하고 기품 있는 말을 한마디 한마디 신중히 골라 썼다. 언제나 부드러운 미소와 침착한 언동으로 남에게 친절히 대할 것을 잊지 않았다. 좋은 의미에서 그는 영국풍의 신사였다. 자연 많은 사람 틈에 섞이면 군계일학 격으로 그의 품격은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그는 한편 같은 치과 의사들 가운데서도 기술이 출중한 편이었다. 그러면서도 현재는 근방에 있는 딴 치과에 많은 손님ㅁ을 뺏기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것은 단지 시설이 빈약하고 병원 건물이 초라한 까닭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의 만기로서는 딴 도리가 없었다. 좀 더 많은 손님을 끌기 위해서는 목좋은 곳에 아담한 건물을 얻어 최신식 시설을 갖추는 길밖에 없는데, 현재의 경제 실정으로는 요원한 꿈이 아닐 수 없었다. 이나마도 병원 건물은 물론 시설 일체가 만기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건물이 나 기구 일습이 봉우 처가의 소유물인 것이다. 봉우의 장인이 생존했을 당시 빚값에 인수했던 담보물이었는데 막상 팔아치우려고 하니 워낙이 구식인데다가 고물이어서 값이 나가지 않기 때문에 육이오 사변 이래 줄곧 세를 놓아오던 터였다. 그것을 봉우의 소개로 만기가 빌려 쓰게 되었던 것이다. 다달이 그 셋돈을 받으러 오는 것은 봉우 처였다. 친정에 가서도 도리어 오빠들보다 발언권이 강한 봉우 처는 종내 오빠를 휘어잡아 병원 건물과 거기에 딸린 시설을 거의 자기 소유나 다름없이 만들어놓았던 것이다. 이 분방하기 이를데 없는 봉우 처로 말미암아 만기는 난처한 일을 당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p.267-269)

 

봉우 처는 이 집은 갈비찜이 명물이라고 하고 약주와 함께 안주와 음식을 시키었다. 소녀가 사라지자 여자는 식탁에 기대어 두 손으로 턱을 고이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왜 그런지 몹시 피로해 보였다. 삼십을 한둘 남긴 여자의 무르익은 모습은 어떤 요염한 독소조차 느끼게 해주었다. 만기도 까닭 모를 피로감과 함께 저절로 긴장되었다. (p.274)

 

친구의 소개로 돈푼이나 있다는 사람을 만나 얘기를 비치어 보았더니 지금 세상에 일 할 장사를 위해 돈 내호을 시러베아들이 어디 있겠느냐고 영 상대라면 한두번에 팔자를 고칠 구멍을 뚫어야지 제정신 가지고 금리도 안 되는 미친짓을 누가 하겠느냐고 핀잔을 주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세상 사람이 모두도둑놈이 아니냐고 외쳤다. 사리사욕을 위해서는 남을 속이거나 망치는 일쯤 당연하다고 생각할 판이니 도대체 이놈의 세상이 끝장에 가서는 어떻게 되겠느냐고 익준은 비분강개를 금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행정 당국의 무능을 통매하면서 'D.D.T 정책' 이라는 말을 내세우곤 했다. 디디티를 살포해서 이나 벼룩을 박멸하듯이 국내의 해충적 존재에 대해서는 강력한 말살 정책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소매치기가 날치기에서부터 간상 모리배도 총살, 협잡 사기한도 총살, 뇌물을 먹고 부정을 묵인해 주는 관리도 총살, 밀수범도 총살, 군용 물자를 훔쳐 내다 팔아먹는 자도 총살, 국고금을 횡령해 먹는 공무원도 총살, 아무튼 이런 식으로 부정 불법을 자각하면서도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서 국가 사회에 해독을 끼치는 행위를 자행하는 대부분의 형사범은 모조리 총살해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양민이 안심하고 살 수 없을 뿐 아니라 나라의 앞날이 위태롭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흥분한 어조로 이러한 지론을 내세울 때의 익준의 눈에는 살기에 가까운 노기가 번득거리었다. 그럴 때 만일 누가 옆에서 그의 지론을 반박할 말이면 당장 눈앞에 총살형에 행당하는 범법자라도 발견한 듯이 격분하는 것이다. 언젠가 어는 경솔한 외국 기자가 한국을 가리켜 도둑의 나라라고 해서 물의를 일으켰을 대의 일이다. 대개의 신문이나 명사들이 그 기사를 쓴 외국 기자를 비난하고 한국의 사회 실정을 엄폐 변명하려는 논조로만 치우쳐 있었다. 당시의 익준은 거의 매일같이 흥분해 있었다. 그 외국 기자야말로 한국의 현실을 날카롭게 투시하고 가차없는 비평을 가해 왔다는 것이다. 잠깐 다녀간 외국 기자의 눈에도 도둑의 나라로 비칠 만큼 부패한 우리나라의 현실이 슬프고 부끄러울망정 바른 소리를 한 외국 기자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덮어놓고 외국 기자를 비난 공박하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을 냉정히 반성하고 다시는 외국인으로부터 그처럼 치욕적인 말을 듣지 않도록 전 국민이 깊은 각성과 새로운 노력을 가져야 할 일이 아니냐. 결국 도둑놈 소리가 듣기 싫거든 도둑질을 하지 않으면 될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래서 만기는 몇 마디 반대 의견을 말해 본 일이 있었다. 어쨌든 그 외국 기자가 한국에 대해서 호감을 갖고 보지 않았다는 것만은 사실은 이상 국교상의 우호 관계로 보아서도 경솔한 태도였다는 비난을 면할 수는 없었다는 점과, 어느 나라치고 도둑이 없는 나라란 있을 수 없을 터인데 정도가 좀 심하다고 해서 왜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었는가 하는 객관적인 원인과 이유를 밝히는 일이 없어 일언지하에 대뜸 도둑의 나라라고 단정해 버린다는 것은 너무나 피상적 관찰에만 치우친 편견이 아닐 수 없다는 점을 들어서 만기는 은근히 익준의 소견을 반박해 보았던 것이다. 그랬더니 익준은 대번에 안색이 달라져가지고 만기에게 대들듯이 덤비었다.

"아니, 도둑놈에게 도대체 변명이 무슨 변명야? 그래 자넨 아직두 한국놈이 도둑놈이 아니라구 우길 수 있단 말야? 이 지구상에 우리나라처럼 도둑이 들끓구 판을 치는 나라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이거봐, 만기. 덮어놓구 자기 나라를 두둔하구 추어올리는 게 애국자, 애국심은 아닌 거야. 말을 좀 똑바루 하란 말야. 그래 아무리 조심을 해두 전차나 버스를 한 번 탔다 내리기만 하면 돈지갑이나 시계, 만년필 따위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리는데 이래두 한국이 도둑의 나라가 아니란 말인가? 백주웨 대로상을 걸어가노라면 바람도 안 부는데 모자가 행방 불명이 되기 일쑤구, 또 어떤 놈이 불쑥 나타나 골목으로 끌구 들어가서는 무조건 뚜들겨 팬 다음 양복을 벗겨가지구 달아나는 판이니, 아 이래두 한국은 도둑의 나라가 아니구 알량한 동방예의지국이군 그래. 시장 바닥은 물론 심지어는 일국의 수도 한복판에 있는 소위 일류 백화점이란 델 들어가 물건을 사두 가격을 속이구 품질을 속이구 중량을 속여먹기가 여반장이니, 아 이래두 한국은 의젓한 신사국이란 말인가. 아무리 아전 인수라두 분수가 있지 열 놈이면 아홉 놈까진 도둑놈이라 눈 뜬 채 코 베어 먹힐 세상인데, 그래두 자넨 한국이 도둑의 나라가 아니라구 뻔뻔스레 잡아뗄 셈인가. 그야 물론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구 자네 말대루 도둑질하는 놈에게두 이유야 있을 테지. 이를테면 사흘 굶어 도둑질 않는 사람 있느냐는 식으루 말일세.. 그렇지만 남은 사흘은 고사하구 닷새 엿새를 굶어두 도둑질 않구 배기는데 한국놈은 어째서 단 한 끼만 굶어두 서슴지 않구 도둑질을 하느냐 말야. 아니, 한 끼를 굶기는커녕 하루에 네 끼 다섯 끼 배지기 터지도록 처먹구두 한국놈은 왜 도둑질을 하느냐 말야. 이러니 죽일 놈들 아냐. 복통을 할 노릇이 아니냐 말야!"

익준은 흡사 미친 사람 모양 입에 거품을 물고 핏발 선 눈알을 뒹굴리었던 것이다. (p.282-284)

 

이러한 곤경 속에서도 만기는 가족들 앞에서 결코 짜증을 내거나 불평을 말하는 일이 없었다. 얼굴 한 번 찡그려본 일이 없었다. 아무와도 나눌 수 없는 고민이라 영혼까지도 고갈하게 만드는 법이다. 만기는 자기에게 지워진 고통을 혼자서만 이를 사려 물고 이겨나갔다. 하도 고민이 심할 때는 입맛을 잃고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그러한 만기의 심중을 아내만은 알았다. 밤새껏 엎치락뒤치락하며 남편이 잠을 못 드는 밤이면 아내는 말없이 만기를 끌어안고 소리를 죽여가며 흐느껴 울었다. 그런때 만기는 도리어 아내의 등을 어루만지며 위로해 주는 것이었다.

"<장 크리스토프>라는 로랑의 소설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우. '사람이란 행복하기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의 정해진 길을 가기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여보, 나를 위해서 진심으로 울어줄 아내가 있는 이상 나는 결코 꺾이지 않을 ㅇ테요. 그러니까 나 위해 과히 걱정말구 어서 울음을 그쳐요. 자 어서, 이게 뭐야 언내처럼." (p.290)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장 크리스토프 - 로맹 롤랑 (손석린 옮김, 동서둴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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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대담하게 엔조이할 줄 아는 현대인 가운데 먼지 낀 샘플처럼 거의 폐물에 가까운 도금한 인간이 자기만족에 도취하고 있는 우스꽝스런 꼴을 아시겠습니까? (p.294)

 

봉우 처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딴 사람이 전화를 받았지만 이내 만날 수 있게 연락을 취해 주었다. 지정한 다방으로 가보니 봉우 처가 기다리고 있었다. 앞장서 들어서는 만기를 보고 반색을 하다가 뒤따라 들어오는 자기 남편을 보고 여자는 놀라는 눈치였다. 마주 앉기가 바쁘게 만기는 용건부터 얘기했다. 익준이와 봉우와 자기는 중학 시절 이래 막역한 친구임을 말하고 나서 익준이네 비참한 가정 형편을 들려주었다. 그러고는 장례비용을 희사하거나 빌려주기를 간청한 것이다.

"정말이야. 이 친구 말대루야. 나두 보구 가만있을 수가 없어. 몇 달 동안 내 용돈을 안 타 써두 좋으니까 사정을 봐줘."

봉우는 제법 용기를 내서 아이가 어머니에게 조르듯이 옆에서 거들었다. 그 사이 봉우 처는 몇 번이나 낯색이 변하였다.

"선생님에게두 저 같은 여자가 소용에 닿을 때가 있군요. 좋아요. 저는 점잖은 선생님의 청을 거절할 용기가 없어요!"

여자는 언어 이상의 의미를 표정으로 나타내고 나서 일어서 저쪽으로 가려다가,

"오만 환 정도라면 당장 되겠어요. 물론 현금이 좋으시겠죠."

대답도 듣지 않고 카운터 뒤로 사라져버리더니 좀 뒤에 현찰을 신문지에 꾸려가지고 돌아왔다. 만기가 치하를 하고 일어서려니까,

"이 돈, 그냥 드리는 건 아니에요."

여자가 그래서

"알겠습니다. 이 자리에서 기일 약속은 할 수 없지만 반드시 책임지고 갚아드리겠습니다."

그랬더니 봉우 처는 문간까지 따라 나오며 애교 띤 농담조로,

"고지식한 양반. 그렇다면 원금만 가지고는 안 되겠어요. 적당한 이자까지 듬뿍, 아시겠어요?"

거의 아양에 가까운 교태였다. 봉우의 눈치를 곁눈질로 살피며 당황히 줄달음치듯 나오는 만기 등 뒤에다 대고,

"일간 다시 들러주세요. 선생님 일루 꼭 의논할 일이 있으니까요!"

여자는 꺼리낌 없이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하여튼 그 돈으로 간소하나마 격식을 갖추어 장례식을 무사히 치를 수 있은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관을 사오고 광목을 떠다 아이들ㅇ레게 상복을 지어 입히고 고무신도 사다 신겼다. 의논해서 화장을 않고 망우리에 무덤을 남기기로 했다. 장지로 향하는 차 안에서 익준이가 없는 것을 만기가 탄식했더니,

"살아서두 남편 구실 못 한 위인, 죽은 다음에야 있으나마나지!"

익준의 장모는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좀 늦게나마 남편 구실을 못 한 익준이 그날로 집에 돌아오기는 한 것이다. 거의 황혼 무렵이 되어서 산에서 돌아온 일행이 익준네 집 골목 어귀에서 차를 내렸을 때였다. 저쪽에서 머리에 흰 붕대를 감고 이리로 걸어오는 허줄한 사내가 있었다. 아이들이 먼저 알아차리고,

"아, 아버지다!"

소릴 질렀다. 그러자 익준은 멈칫 걸음을 멈추었고, 이쪽에서들도 일제히 그리로 시선을 보냈다. 익준은 머리에 상처를 입은 모양이었다. 한 손에는 아이들 고무신 코숭이가 비죽이 내보이는 종이 꾸러미를 들고 있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이쪽을 향하고 꼼짝않고 서 있었다. 석상처럼 전연 인간이 느껴지지 않는 얼굴이었다.

"어이구, 차라리 쓸모없는 저 따위나 잡아가지 않구 염라 대왕두 망발이시지!"

익준의 장모는 사위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중얼대고 인제야 눈물을 질금거리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제일 반가워했다. 일곱 살 먹은 끝의 놈은,

"아부지!"

하고 부르며 쫓아가서 매달렸다.

"아부지, 나, 새 옷 입구, 자동차 타구 산에 갔다 왔다!"

어린것이 자랑스레 상복 자락을 쳐들어 보여도 익준은 장승처럼 선 채 움직일 줄을 몰랐다. (p.30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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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해설 - 송하춘>

손창섭 소설의 현줏호는 정확히 육이오 전쟁 직후로 제한된다. 그 안에 일제와 해방 후의 좌우 대립과 피란이라는 복잡한 역사가 얽혀 있지만, 그래도 그것들은 모두 전쟁이 휩쓸고 간 파란지에서부터 시작된다. 그의 작중 인물들도 모두가 피란민들이다. 그들의 삶은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돌 수밖에 없는 피란 생활 그 자체다.

피란지에서의 삶은 경제적인 궁핍과 사랑의 결핍 두 가지로 요약된다. 손창섭 소설은 이런 결핍에 대한 단순한 불만이나 고발이 아니다. 그것은 결핍된 삶 자체로서 전후의 극단적인 상황을 의미한다. 이때 결핍 또는 궁핍이란 말은 상대적으로 정상이란 말을 상정케 한다. 손창섭 소설은 왠지 정상적인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모두가 비정상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인물들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불구자들뿐이고, 그들의 얽힘도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다. 그리고도 이런 비정상이 정상인 것처럼 리얼리티를 확보하는데, 전쟁 직후라는 특수 상황이 그 점을 가능케 한다.

손창섭 소설은 전후의 왜콕된 상황에 대한 하나의 전형이다. 이점에서 또한 손창섭 소설은 전체가 하나의 모습으로 귀착된다. 이상의 소설이 <날개> 하나로 기억에 남듯 손창섭 소설도 한 가지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것은 <날개>나 <오감도>처럼 별개의 작품이 아니다. 손창섭 소설은 그냥 전체가 한 가지 모습이다. 소설의 현장이 하나이고, 인물들끼리의 관계가 하나이고, 가난이 하나이고, 사랑이 하나이다.

먼저 그 인물들과, 그들이 얽혀 지내는 모습을 보면 다음과 같다. 손창섭 소설의 인물은 기본적으로 네 사람이다. 남자가 세 사람, 여자가 한 사람, 그들은 대개 한 집에 모여 지낸다. 때로는 방한 칸에 모여 살기도 하지만, 그들은 한 집안 식구는 아니다. 각각이 남남이거나, 최소한 두 가구 이상이 모여 이룬 복합형 취락 구조다. 그 집 혹은 그들의 방은 동굴 속처럼 어둡고 칙칙하다. 그 안에서 그들은 부조화의 조화를 이루면서 생활한다. 손창섭 소설의 전체는 불협화음이다. 가족끼리 어울려 살면서도 남남처럼 서먹하고, 남남끼리 어울려 살면서도 가족처럼 끈끈한 것이 손창섭 소설의 특징이다.

 

만기 치과의원에는 원장인 서만기 씨와 간호원 홍인숙 양 외에도 거의 날마다 출근하다시피 하는 사람 둘이 있다. 그 한 사람은 비분강개파 채익준 씨요, 다른 한 사람은 실의의 인간 천봉우 씨다. 두 사람은 다 같이 서만기 원장의 중학교 동창생이다.

 

<잉여인간>의 첫 장면이다. 여기서도 주요 작중 인물은 세 남자와 한 여자 모두 넷이다. 서만기와 책익준과 천봉우와, 그리고 홍인숙. 그 가운데 서만기 혼자만 생업이 있고, 채익준과 천봉우는 무직이다. 벌이가 없기 때문에 그들은 자연 벌이가 있는 서만기에게 생계를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도 손창섭 소설은 벌이가 없는 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벌리는 것이 특징이다. 그들의 어울려 살기란 모두 정상적인 얽힘이 아니다. 서로 얽힐 수 없는 관계이지만, 전쟁이 그것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 손창섭의 시각이다. 손창섭은 처음부터 가능한 인간의 관계들을 주목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가능한 관계들이 서로 어떻게 얽혀 지내는가를 그는 주목한다. <잉여인간>의 인물들은 목적 없이 만나는 생활의 낙오자들이지만, 중학교 동창이라는 인연으로 하나의 가족적인 틀을 형성한다. 

손창섭 소설의 인물들은 대부분 무력증 환자다. <잉여인간>의 천봉우처럼 모두 실의에 빠져 있다. 천봉우는 늘 말이 없고, 방금 자다 깬 사람처럼 가수 상태에서 허덕인다. 그가 그렇게 된 이유를 작가는 육이오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피란 나갈 기회를 놓치고 적치 삼 개월을 꼬박 서울에 숨어 지내다 보니, 빨갱이와 공습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쟁은 끝났지만, 아직도 불안한 긴장상태가 지속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중학 시절의 그는 재기 발랄한 야심가였다. 그러던 것이 전란 통에 양친과 형제를 잃고 나자 인간 만사에 흥미를 잃고 말았다.

이처럼 손창섭 소설의 인물은 모두가 전쟁 후유증을 앓고 있다. 환자의 증세는 다시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가 경제적인 무력감이라면, 다른 하나는 애욕의 무력감이다. 천봉우의 무력감은 일종의 성적 편집 증세로 나타난다. 간호원 인숙에 대한 천봉우의 연애 감정이 그 예다.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항상 무력감에 빠져 있던 그가 인숙한테만은 유난히 강렬한 애욕을 느끼는데, 그것은 정상적인 관계의 사랑이 아니라, 일방적이고도 충동적인 욕구일 뿐이다. "인숙 양을 바라볼 때만은 잠에서 덜 깬 사람같이 언제나 게슴츠레하던 그의 눈이 깨어 있는 사람의 눈답게 빛나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가 살아 있음에 대한 존재의 확인이다.

<잉여인간>에서 이 점은 만기를 둘러싼 봉우 처의 맹복적인 애욕과, 처제 은주가 형부에게 바치는 순결한 사랑과, 간호원 인숙이의 헌신적인 사랑에서도 나타난다.그것들은 모두 정상적인 사랑이 아니라, 극단적이고도 병적인 상태의 인간상을 말해준다. 상호 이해와 신뢰에서 생기는 정상적인 인간관계가 아니라, 위기의 상황에서 자행되는 자기 존재에 대한 충동적인 확인이다.

손창섭 소설의 인물들은 작가 자신이 표현한 대로 '비분강개파'와 '실의에 빠진' 두 가지 유형의 인물로 나뉜다. 비분강개파는 세상을 향해 적극적이지만 오히려 불합리한 데가 많고, 실의에 빠진 인물은 합리적이지만 그 대신 세상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 있다. 비분강개파나 실의에 빠진 인물이나 전후 세대라는 점ㅁ에서는 같다. 합리적인 행동도 전쟁 때문에 무기력해졌고, 불합리한 행동도 전쟁 때문에 가능해졌다. 손창섭 소설은 이 두 가지 유형의 극단적인 인물들이 꾸려내는 전후 사회의 풍속도다. (p.353-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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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섭(孫昌涉, 1922년 5월 20일 ~ 2010년 6월 23일, 일본 귀화 이름은 우에노 마사루上野昌渉)

일본에 귀화한 대한민국의 소설가.

1922년 5월 20일 평안남도 평양시(현 평양직할시)의 한 빈한한 집안에서 2대 독자로 태어났으나, 상세한 가계는 알려져 있지 않다. 14세가 되던 1935년 만주로 갔다가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와 도쿄에서 고학(苦學)으로 겨우 중학교 과정을 마쳤다. 이후 니혼대학 법학과에 들어갔으나 제대로 학업을 마치지 못하였는데, 이 시기의 자세한 사항 역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946년 해방을 맞아 일본에서 귀국하여 평양으로 갔지만 1948년 무렵 월남하였다. 이후 교사, 잡지사 사원, 출판사 사원 등을 전전하다가 1949년 단편 「얄궂은 비」를 『연합신문』에 발표하지만 본격적인 문학 활동은 하지 못하였다. 한국전쟁 중에 단편 「공휴일」과 「사연기」를 『문예』를 통해 발표하면서 이 잡지의 추천을 받아 등단하였다. 등단 이후 빠른 시일 내에 전후의 비참한 현실과 그로 인한 인간성 상실을 자연주의 수법으로 묘사한 소설들을 통해 문단의 주목을 받고 1950년대 전후소설을 대표하는 신진 작가로 평가받았다. 1973년 급작스럽게 일본으로 간 이후에는 다시는 귀국하지 않았고 국내 문인들과의 교유도 1976년 『한국일보』에 장편역사소설 『유맹』을 연재하는 과정에서의 접촉 이외에는 일체 단절하였다. 이러한 일본행의 이유로는 오랜 창작에 지쳤다는 설, 1970년대 초의 한국 정치상황에 대한 절망 때문이라는 설, 이미 1960년대 말에 일본으로 돌아갔던 아내 우에노 지즈코를 따라갔다는 설 등이 있다. 1998년 일본의 외국인에 대한 등록제도 때문에 결국 일본으로 귀화하였다(귀화 시기가 1984년이라는 설도 있음). 2010년 6월 23일 도쿄 근교의 한 병원에서 폐질환으로 인한 노환으로 타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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