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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 한국 문학/2. 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 - 현기영 (실천문학사)

by handaikhan 2023. 2. 28.

 

현기영 - 지상에 숟가락 하나 (1999년)

 

살아서 박복했던 아버지는 그래도 죽음만큼은 유순하게 길들일 줄 알았나 보다. 이렇다 할 병색도 없이 갑자기 식욕을 잃더니 보름 만에 숟갈을 아주 놓아버린 것이었다. 마지막 3일은 계속 혼수 상태였다. 의사는 폐가 나빠서 노환이 좀 빨리 온 것이라고 했다. 미음죽을 입 안에 흘려넣어 봤지만, 이미 소화 기관은 기능을 잃고 항문의 괄약근은 맥없이 풀려 번번이 설사였다. 결벽증이다시피 유난히 깔끔했던 아버지는 혼수 상태에 빠져 있다가도 설사가 나올 기미이면 소스라치게 놀라깨면서 좌변기를 찾곤 했는데, 그렇게 서너 번 시달리고 난 후로는 미음죽도 거절하고 차분히 죽음을 맞이할 차비를 하던 것이다.

가쁜 숨 속에 신음 소리가 낮게 실려 있었지만 당신의 얼굴은 평온했다. 낮은 신음 소리는 마치 모닥불이 꺼지면서 재가 조금씩조금씩 가라앉는 소리처럼 들렸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죽음의 진행을 지켜보면서 나는 6년 전 아버지가 당한 그 끔찍한 교통사고를 떠올렸다. 과다한 출혈로 죽음 직전까지 갔던 아버지, 대퇴부와 오른쪽 허벅지뼈의 심한 골절로 영영 앉은뱅이의 비참한 몰골로 오그라붙을 때까지 당신 엮었던 고통은 차마 끔찍한 것이었다. 죽음의 고통은 이미 그때 치러버렸길래 그래서 저렇게 평온한 것일까? 생과 늘 불화를 일으켰던 당신은 이제 죽음과는 더없이 화해로운 모습이었다. 이것은 실패자가 최후로 쟁취한 승리가 아닌가.

감사와 회한의 감정에 젖어 있던 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트속으로 손이 들어가 아버지의 발바닥을 주무르며 안마하고 있었다. 중학생 때 나는 아버지가 잠자리에 들면 그렇게 조물락조물락 발을 안마해 드리곤 했다. 그러나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한 그 일이 나중에는 지겨운 나의 의무가 되어버렸고, 순종적이던 중학생이 반항적인 고교생이 되어 제 아비를 무분별한 투쟁의 대상으로 삼고 말지 않았던가! 그러니깐 아버지가 겪은 생과의 불화 가운데에는 내가 저지른 불효의 몫도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숨을 거두시던 날, 나는 두 아우와 함께 수의를 입히기 앞서 향 삶은 물로 시신을 깨끗이 정화시켰다. 영혼을 벗어버린 시신은 뻣뻣하게 굳어, 한 토막의 마른 등걸처럼 이미 물질로 돌아가 있음을 실감케 했다. 바싹 말라 뼈가래는 앙상하고 피부는 마른 명태 껍질처럼 광택을 잃고, 골절상을 입었던 아랫도리는 몹시 뒤틀려 있었다. 그 서러운 몸을 향물로 정성껏 닦던 나는 마지막으로 두 가랑이 사이로 손이 갔을 때, 그만 격정에 못 이겨 후둑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난생처음 보는 아버지의 성기, 그 부위를 닦을 때의 감촉과 긴장감은 3년이 지난 지금에도 생생한 느낌으로 남아 있다. 나의 존재가 거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 너무 자명하여 오히려 추상적으로 느꼈던 그것이 그 순간 엄청난 무게의 실감으로 나를 압도했던 것이다. 존재의 한 점 씨앗, 나라는 존재의 우연을 발생시킨 그곳, 그러나 그 생명의 원천은 이제 폐허로 돌아가 있었다. 그 폐허가 아버지의 죽음, 그의 영원한 부재를 예리한 통증으로 나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그 죽음은 조만ㄴ간에 찾아올 내 죽음의 실체도 함께 느끼게 했다.

그동안 허다한 죽음ㅁ을 보고 들어왔지만, 그때처럼 죽음의 실체를 생생하게 느껴본 적은 없었다. 막연한 추상으로 먼 곳에 머뭇거리던 죽음이 어느 날 급습하여 아버지의 몸을 관통해서, 나와 정면으로 맞닥뜨렸을 때의 그 예리한 통증은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러므로 부친의 영전에서 맏상제로서 내가 흘린 눈물 속에는 필경 자신의 죽음을 미리 보아버린 자의 두려움과 슬픔도 함께 있었을 것이다. 이제 아버지가 가셨으니 다음은 내 차례로구나, 하는 각성이 나의 페부를 아프게 찔렀던 것이다. 탄생은 우연일지라도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필연이라는 것.

그러나 죽음이 곧 완전한 소멸을 의히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죽음이 인간 개체를 완전히 파괴하지는 못한다. 죽어서도 내 마음속에 뚜렷이 살아 있는 아버지 모습이 그것을 증거한다. 돌아가신 후로 아버지는 내 의식에 자주 출몰하고 있는데 마치 당신이 내 마음속으로 이사해 와 거주하고 있는 느낌이다. 아니, 그보다 아버지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이 아닌가. 나의 얼굴 모습도 점점 아버지와 닮은 꼴이 되어간다. 아버지의 목숨은 단절된 것이 아니다. 자식인 나에게 이어진 것이다. 종말은 단절이 아니라 그 속에 시작이 있다는 것, 따라서 나의 존재는 단독의 개체가 아니라 혈족이라는 집단적 생명의 한 연결 고리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한라산 기슭의 가족 묘지에 안장되었다. 사촌들과 함께 어렵사리 마련한 그 묘역에는 백부가 먼저 들어와 누워 있었는데, 그 옆으로 한 자리 떼어놓고 두번째 봉분이 생긴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봉분ㄴ으로부터 발걸음으로 거리를 재어 장차 내가 묻힐 자리에 서 보았다. 그러자 내 눈길이 자연스럽게 대학 1년짜리 큰아들 쪽으로 가는게 아닌까! 나는 야릇한 감회에 훅, 하고 웃음을 날렸다.

묘역은 전망이 좋았다. 산록의 고지대인지라 구름은 흰 명주필처럼 낮게 흐르고 질펀한 푸른 들판과 부드러운 능선의 오름들, 그리고 드넓은 하늘과 바다가 멀리 수펴여선에서 만나 서로 푸른빛을 다투는 정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보아도 물리지 않은 대자연의 풍광에 어느덧 슬픔은 증발해 버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망자의 유택이 이렇게 호사스러울진대, 죽음을 슬퍼할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육신을 떠난 아버지의 영혼이 흰 만장처럼 가벼이 떠 있는 저 구름 속에 실려 있겠거니 생각하면서, 나는 아버지의 죽음뿐만 아니라 나의 죽음도 매우 임의로운 것으로 받아들였다. 길 건너에 높다랗게 자란 삼나무 한 그루가 가족 묘지 앞의 탁 트인 전망을 그르치고 있길래 타고 올라가 나무의 상단부를 톱질로 잘라봤는데, 그 별것 아닌 일이 어찌나 힘들던지 헛구역이 다 나왔다. 과연 나이는 속일 수 없었다. 내 나이 오십,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훨씬 적어졌다는 냉엄한 사실을 나는 그날 온몸으로 수락하기로 한 것이다. (p.9-12)

 

지금의 나에게 과거란 오직 고향땅에서 보낸 유년,소년 시절만이 광휘를 발할 뿐, 나머지 세월은 무의미한 일상의 연속처럼 여겨진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객담 하나 섞어보자. 우리는 매일매일이 단 하루의 경험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천편일률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셈인데, 이렇게 살고서 과연 일생의 시간을 다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 하루의 삶이 아닐까? 기억에 남아 있는 시간만이 진정으로 살아 있는 과거이므로, 우리가 비교적 온전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오늘이란 시간뿐이다. 과거는 눈부신 오늘의 양광에 바래어, 어제는 오늘의 절반밖에 기억 안 되고, 그제는 어제의 절반, 또 그그제는 그제의 절반....이런 식으로밖에 기억이 안 된다면, 무한등비수열의 합의 공식에 의해, 살아 있는 과거, 즉 우리가 살아 있던 시간은 기껏해야 하루반분을 조금 상회할 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독자들이여, 제발 내가 엉뚱한 궤변을 늘어놓는다고 욕하지 마시기를. 이 궤변을, 무한대의 시간 속에서 다만 오늘의 태양만이 중요할 뿐이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지금 나에게는 오늘의 밝은 태양보다 망각된 과거가 더 중요하다. (p.13)

 

그런데 그 섬 땅에서 정작, 내가 태어나 그 탯줄을 묻은 함박이굴 마을은 지금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메타포를 통해서 세상 보는 일에 익숙한 글쟁이여서 그런지, 1948년 토벌대의 방화로 소진된 이래 그 부락은 오직 검은 재의 폐허로만 내 의식에 각인되어 있다. 물론 중간에 그곳을 찾아가 검은 재의 폐허가 푸른 곡식밭으로 변해 있음을 확인한 바 있기는 하다. 그러나 내 눈에 익은 것이라곤 남의 보리밭이 되어버린 집터 한쪽에 서 있는 시누대숲과 골목 어귀의 배롱나무뿐이었다. 무슨 말을 웅얼거리는 듯 바람에 휘적이는 대숲 소리와 저홀로 피어 부질없이 화사한 배롱나무의 붉은 꽃 무더기는 오히려 그곳이 초토임을 더욱 강조갛고 있지 않았던가.

그래서 나는 아직도 그 무서운 1948년의 초토의 불길과 함께 내 존재의 일부도 불타버린 듯한 상실감을 어쩌지 못한다. 막막한 어둠뿐인 장소, 거기에서 보낸 내 생애의 최초 6년도 먹칠로 지워져 버린 듯한 느김인 것이다. 물론 이 어둠의 고정 관념은 진실이긴 하지만, 생리적인 망각 작용에 의해 다분히 과장된 것이 틀림없다. 태어난 지 얼마 안되는 시기인지라 사고 또한 미발달 상태에 있었다. 아무튼 나는 지금 검게 탄 폐허의 어둠과 망각의 어둠을 동시에 뚫고 들어가 죽어 있는 그 부락을 되살리고 잊혀진 나의 유년을 다시 만나봐야겠다. (p.14)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 - 허영선 (서해문집)

우린 너무 몰랐다, 해방, 제주4.3과 여순민중항쟁 - 김용욱 (통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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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그 막막한 어둠, 그것은 달리 생각해 보면 원초와 맞닿아 있는 어둠이기도 할 것이다. 광대무변의 그 암흑을 수백 년 거슬러 올라간 어느 한 시점에 거대한 별똥별이 떨어졌다. 운석의 불덩이는 어둠을 대낮같이 밝히면서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땅과 충돌하여 그 자리에 커다란 웅덩이를 파놓았다. 그 후 그 웅덩이는 물이 모여들어 벼락구릉이란 못이 되고 그 물을 좇아 한 사내가 그 근처에 살기 시작했으니, 그가 바로 내 조상이었다. 그리하여 존재의 근원인 벼락구릉, 거기에서 시작된 종족의 생명들은 저마다 잠깐씩 반딧불을 밝혔다가 덧없이 그 암흑 속으로 소멸해 갔던 것이다. (p.15)

 

이제 고향의 그 막막한 어둠 속에서 한 점 생명이 꼼지락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그것은 나다. 나는 그 어둠의 소산으로 태어난다. 그러나 어미의 몸 밖으로 나온 나는 고고지성도 못 지른 채 거멓게 죽어간다.볼기를 때리고 몸을 흔들어도 막무가내로 죽어간다. 나는 다시 어둠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일까? 탄생은 전혀 우연의 소치였다. 하기는 한 점 반딧불 같은 것이 인생인데 탐날 것도 없었으리라. 그런데 생사경각에서 황망히 내 뱃구레를 내리쓸던 할머니의 손에 문득 밤톨만한 딱딱한 응어리가 만져졌다. 혹시나 하고 그것을 꾹 눌러본다. 마치 버튼 눌린 자동인형처럼, 바로 그 대목에서 나는 막혔던 숨통을 트면서 귀청 따갑고 고고지성을 내질렀던 것이다.

이렇게 나의 생존은 전적으로 우연이었던 셈인데, 식구들은 내가 위태로워 과연 사람이 될지 어쩔지 미심쩍어했다. 대략 생후 3년간의 나는 아직 인간이라기보다는 젖살 말랑말랑한 한 덩어리의 반죽에 불과했으리라. 암흑에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까닭에 암흑의 영향을 아직도 강하게 받고 있는 위태로운 존재, 자식 농사 반타작이라고 마마, 홍역에도 죽고 심지어 고뿔에도 시들기 일쑤인 시절이라 자칫하면 다시 저 암흑으로 돌아가 버릴 위험이 상존해 있었다. 내 위로 형 하나 있을뻔했는데, 그 역시 생후 1년 만에 시들고 말았던 것이다. (p.15-16)

 

침 흘리는 게 오죽 고질이었으면 돼지코를 잘라다 내 목에 매달았을까. 소나 말, 개와 달리 돼지가 침을 잘 흘리지 않는 짐승이어서 그것을 부적 삼아 내 목에 매달아놓았던 모양이다. 돼지 송곳니나 발톱이었더라도 보기에 나았을 텐데, 바싹 말라 쪼글쪼글 오므라든 돼지코, 그 흉칙한 것을 두 콧구멍에 노끈으로 꿰어 목에 매단 채, 허구한 날 침을 질질 흘리는 어린애를 상상해 보라. 꼴이 그 지경이고 보니, 집안 식구들은 내가 과연 사람이 될지 어쩔지 근심스러웠을 것이다.

만 네 살, 해방을 맞이한 그해를 기준해서 그 이전의 기억은 지우개로 지워진 듯 흐릿하지만 그 후부터 고향을 떠날 때까지 3년 동안의 일들은 더러 생각난다.

아버지는 병들어 밖으로만 돌고, 어머니는 아기를 데리고 외가에 가버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불화로 싸움이 잦은 그 집에서 자라고 있던 어린 나의 몸 속에는 외로움도 함께 자라고 있었다. (p.17)

 

할아버지, 할머니가 일하러 밖에 나가버리면 집안은 온종일 적막 속에 가라앉아 나의 외로움을 더욱 짙게 했다. 밖에 나가 놀고 싶었지만 내 동무 계성이는 마마를 앓고 있었다. 그래서 마당 바닥에 뿔뿔 기어다니는 벌레들이 내 동무가 되었다. 개미 떼의 행렬을 넋 놓고 바라보기도 하고, 유자나무 밑둥에 붙어 있는 매미 허물이나 날개 있어도 날지 못하는 땅가아지와 놀기도 하고, 구멍에 든 도롱이를 보리가스라기로 유인해 내기도 하고, 밖에다 흙을 토해놓고 구멍으로 들어가는 지렁이를 잡아당겨 허리를 끊어놓기도 했다. 그러한 장난은 미물들에게는 생사의 문제가 달려 있는 것이었지만, 그럴수록 나는 재미있었다. 풍뎅이를 잡아 네 발을 뚝뚝 분질러 뒤집어놓고 그놈이 맹렬한 날갯짓으로 마당 바닥을 쓸며 빙빙 도는 모양을 보며 좋아했고, 늙은 감나무 썩은 둥치 속에 바글대는 개미 유충에 오줌을 갈겨대고 호박꽃 속에 든 벌을 잡아 꽁무니의 침을 빼내 죽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 뼘 넘는 청지네와 흰 점액을 끌면서 기어다니는 흐물흐물한 달팽이는 무섭고 징그러웠다. (p.21)

 

밤은 한낮에도 있었다. 햇빛 밝은 마당에 있다가 방 안으로 들어갔을 때 갑자기 눈앞이 안 보여 와락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는데, 그래서 나는 한낮의 짙은 그늘 속에 밤이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p.22-23)

 

그래서 그런지 그 후에도 영재의 죽음은 실감으로 느껴지지 않고, 호열자로 못 만나고 있는 다른 아이들처럼 집에 살아 있을 것같이 생각되었다. 나는 아직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어린 나이였다. 아무 뜻도 없이 그냥 재미로 벌레를 죽이는 어린애가 어찌 인간의 죽음을 이해하겠는가.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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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 숟가락 하나 - 현기영 (창비)

똥깅이 - 현기영 (실천문학사) - 지상의 숟가락 하나 청소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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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영(玄基榮, 1941년 2월 11일 제주시 - )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1941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출생해, 오현중학교, 오현고등학교를 다니며 청소년기까지 제주도에서 보낸다. 이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1975년 단편 《아버지》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주요 작품으로 소설집 《순이삼촌》,《아스팔트》, 장편 《변방에 우짖는 새》,《난민 일기》,《귀환선》 등이 있다.
그는 제주도라는 향토적 세계를 중심으로 제주 4·3항쟁을 비롯해 민족의 수난기에 처한 역사적 삶의 내부를 치밀하게 탐색하고 한반도의 잊힌 현대사의 이면을 되살리고 조명하면서 깊은 감동을 주는 작품활동을 해왔다. 특히 제주 4·3항쟁사건을 바탕으로 쓴 책인 《순이삼촌》으로 인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질게 고문당했고 책은 금서가 되어버리기도 했다.
1986년 제5회 신동엽창작기금을 수상하고, 1989년 장편 《바람 타는 섬》을 냈다. 1990년 만해문학상을 수상했고, 1994년에는 오영수문학상, 1999년에는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지도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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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 삼촌 - 현기영 (창비, 현기영 중단편집)

마지막 테우리 - 현기영 (창비)

아스팔트 - 현기영 (창비)

변방에 우짖는 새 - 현기영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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