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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X. 정리중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이재룡 옮김, 민음사)

by handaikhan 2023. 2. 5.

민음사 세계문학 234

밀란 쿤데라 -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984년)

 

영원한 회구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이 어느 날 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이 우스꽝스러운 신화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뒤집어 생각해 보면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14세기 아프리카의 두 왕국 사이에 벌어진 전쟁 와중에 30만 흑인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처참하게 죽어 갔어도 세상 면모가 바뀌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잔혹함이나 아름다움 따위는 전혀 염두에 둘 필요가 없는 셈이다.

이 전쟁이 영원한 회귀를 통해 셀 수 없을 만큼 반복된다면 14세기 아프리카의 두 왕국 사이에 벌어졌던 전쟁도 뭔가 달라질 수 있을까?

그렇다. 그 전쟁은 우뚝 솟아올라 영속되는 한 덩어리로 변할 것이고 그 전쟁의 부조리는 치유될 수 없을 것이다.

프랑스 혁명이 영원히 반복되어야 한다면, 로베스피에르에 대한 프랑스 역사의 자부심도 덜할 것이다. 그런데 역사는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을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 피투성이 세월조차도 그저 말뿐, 새털보다 가벼운 이론과 토론에 불과해서 누구에게도 겁을 주지 못한다. 역사 속에 단 한 번 등장하는 로베스피에르와, 영원히 등장을 반복하는 프랑스 사람의 머리를 자를 로베스페이르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래서 영원한 회귀라는 사상은, 세상사를 우리가 아는 그대로 보지 않게 해 주는 시점을 일컫는 것이라고 해 두자. 다시 말해 세상사는, 세상사가 덧없는 것이라는 정상참작을 배제한 상태에서 우리에게 나타난다. 사실 이 정상참작 때문에 우리는 어떤 심판도 내릴 수 없다. 곧 사라지고 말 덧없는 것을 비난할 수 있을까? 석양으로 오렌지 빛을 띤 구름은 모든 것을 향수의 매력으로 빛나게 한다. 단두대조차도.

얼마 전 나는 기막힌 감정의 불꽃에 사로잡혔다. 나는 히틀러에 관한 책을 뒤적이다 사진 몇 장을 보곤 감격했다.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을 전쟁 통에서 보냈다. 내 가족 중 몇몇은 나치 수용소에서 죽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이, 되돌아갈 수 없는 내 인생의 한 시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해 줬던 히틀러의 사진에 비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러한 히틀러와의 화해는 영원한 회귀란 없다는 데에 근거한 세계에 존재하는 고유하고 심각한 도덕적 변태를 보여준다. 왜냐하면 이런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처음부터 용서되며, 따라서 모든 것이 냉소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이다. (p.9-11)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니체 (곽복록 옮김, 동서월드북)

현재의 삶을 영원히 반복한다고 해도 삶을 긍정할 수 있는 사람을 초인이라 부르며 초인의 삶을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한다.

<영원 회귀>

이 세상이 일정한 크기의 힘과 일정한 수의 힘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면, 존재의 거대한 주사위놀이 속에서 계산 가능한 수의 조합들을 계속 되풀이하는 수밖에 없다. 무한의 시간 속에서 가능한 모든 경우의 조합이 빠짐없이 한 번 씩은 나타나게 될 것이고, 더 나아가 무한히 여러 차례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조합'과 다음 번에 그것이 '다시 되돌아오는 것(회귀)' 사이에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조합들이 일어날 수 밖에 없고, 또 그 각각의 조합마다 전체 조합들이 일어나는 순서에 있어서 똑같은 조건인 만큼, 절대적으로 동일한 순서의 순환이 입증될 수 있을 것이다.

[해석]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파괴와 창조를 거듭하면서, 동일한 것을 반복한다. 반복이 지루해지면 쇼펜하우어가 말했듯 그것은 고통이 된다. 하지만 니체는 이 권태의 반복을 뒤집는다. 모든 반복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깨달음이다. 즉, 삶의 반복되는 모든 순간들은,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에게 항상 새로운 시간이 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니체의 '영원 회귀' 사상이다.
니체는 필연적인 반복의 세계란 직선으로 표현할 수 없고, 원 모양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을 떠올린다. 원은 직선과 다른 특유의 특징이 있다. 원 위에서의 모든 점은 선후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원 위의 모든 점들은 그 자신이 중심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는 특징이다. 태양을 살펴보면 떠오르는 아침과 정점에 있는 정오가 가장 찬란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를 '선후를 알 수 없는 원운동'으로 살펴보면 저물어가는 태양도 그 자신이 중심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삶의 모든 부분은 스스로에게 항상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모든 사람들 역시 제각각 자신의 삶이 중요하다고 외칠 수 있다. 자신의 삶이 중요하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것처럼 남 역시 자신의 삶이 중요하다고 주장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서로의 가치가 더 높은 곳을 향해 경쟁하는 것이 힘에의 의지가 된다. 또한 삶의 모든 부분이 중요하다는 것은, 스스로의 성공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몰락'마저 긍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즉, 영원 회귀 사상을 통해 '필연적인 것을 긍정'하고자하는 아모르파티 (필연적인 것에 대한 사랑) 개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니체가 자신의 책에서 '몰락'을 자주 말하는 것도, '황혼'이나 '아침놀', '정오' 등을 이야기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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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hard Strauss - Also Sprach Zarathustra (Document)

리하르트 스트라우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Serge Koussevitzky, Boston SO (1947) Richard Strauss - Also Sprach Zarathustra - I. Einleitung

[리하르트 스트라우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1곡 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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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의 매순간이 무한히 반복되어야만 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듯 영원성에 못 박힌 꼴이 될 것이다. 이런 발상은 잔혹하다. 영원한 회귀의 세상에서는 몸짓 하나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을 떠맡는다. 바로 그 때문에 니체는 영원 회귀의 사상은 가장 무거운 짐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를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

그러나 묵직함은 진정 끔찍하고, 가벼움은 아름다울까?

가장 무거운 짐이 우리를 짓누르고 허리를 휘게 만들어 땅바닥에 깔아 눕힌다. 그런데 유사 이래 모든 연애 시에서 여자는 남자 육체의 하중을 갈망했다. 따라서 무거운 짐은 동시에 가장 격렬한 생명의 완성에 대한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에 짐이 완전히 없다면 인간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려, 지상의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겨우 반쯤만 현실적이고 그 움직임은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

그렇다면 무엇을 택할까? 묵직함, 아니면 가벼움?

이것이 기원전 6세기 파르메니데스가 제가했던 문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세상은 빛-어둠, 두꺼운 것-얇은 것, 뜨거운 것- 찬 것, 존재-비존재와 같은 반대되는 것의 쌍으로 양분되어 있다. 그는 이 모순의 한쪽 극단은 긍정적이고 다른 쪽 극단은 부정적이라 생각했다. 이 이론은 모든 것을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으로 나누는 극단적 이부넙이 유치하게 느껴질 정도로 안이하게 보일 수도 있다. 단 이 경우는 예외다. 무엇이 긍정적인가? 묵직한 것인가 혹은 가벼운 것인가?

파르메니데스는 이렇게 답했다.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이라고, 그의 말이 맞을까? 이것이 문제다. 오직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 (p.12-13)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러셀의 서양철학사 - 서상복 (을유문화사)

역경-운이 스스로 돕게 하라 - 쩡스창 (박찬철 옮김, 위즈덤하우스)

중용 강의 - 남회근 (송찬문 옮김, 마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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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삼 주 전쯤 보헤미아의 한 작은 마을에서 테레자를 만났다. 그들은 한 시간 남짓 함께 있었다. 그녀는 그를 역까지 배웅하고 그가 열차에 오르는 순간까지 함께 기다려 줬다. 열흘 후 그녀는 프라하에 있는 그를 찾아 왔다. 두 사람은 그날로 동침했다. 그날 밤 그녀는 몸이 펄펄 끓었고 독감 때문에 일주일 동안 그의 집에 주저앉았다.

그는 그녀에 대해서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도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사랑을 느꼈다. 그녀는 마치 송진으로 방수된 바구니에 넣어져 강물에 버려졌다가 그의 침대 머리맡에서 건져 올려진 아이처럼 보였다. 

그녀는 그의 집에서 일주일 간 머무른 뒤 몸이 회복되자 프라하에서 200킬로미터 떨어진, 그녀가 살던 도시로 돌아갔다. 내가 토마시 삶의 열쇠를 보는 순간, 조금 전에 언급했던 그 순간이 바로 이곳에 있다. 그는 건너편 건물 벽에 시선을 고정한 채 창가에 서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녀에게 프라하로 와서 살림을 차리자고 제안해야 할까? 그는 뒷감당이 두려웠다. 지금 그녀를 자기 집에 불러들인다면 그녀는 자신의 온 생애를 그에게 바치려 들 것이다.

아니면 그녀를 포기해야만 할까? 그럴 경우 테레자는 촌구석 술집의 종업원으로 살 것이며, 그는 다시는 그녀를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그녀와 합치기를 바라는 것일까, 아닐까?

그는 건너편 벽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앞마당을 멍하니 바라보며 답을 찾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그리고 변함없이 소파에 누운 이 여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과거 그의 삶에 등장했던 어떤 여자와도 닮지 않았다. 그녀는 애인도, 부인도 아니었다. 그녀는 송진으로 방수된 바구니에서 꺼내져 그의 침대 머리맡에 내려놓인 아기였다. 그녀는 잠을어 있었다. 그는 그녀 곁에 무릎을 끓었다. 열에 들뜬 그녀의 호흡이 가빠졌고 희미한 신음마저 들렸다. 그는 그녀의 빰에 얼굴을 부비며 잠에 빠진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속삭였다. 잠시 후 그녀의 호흡이 한결 고르게 변하더니, 그녀 얼굴이 그의 뺨을 향해 무심코ㅗ 다가오는 듯했다. 그녀의 입술에서 신열의 약간 텁텁한 냄새가 느껴졌고 그는 마치 그녀의 육체의 은밀함 속에 파묻히고 싶다는 듯 그 냄새를 들이마셨다. 그 순간 그녀가 오래전부터 그의 몸속에 있어 왔고 지금 죽어 가고 있다는 상상이 들었다. 불현듯 그녀가 죽고 나면 자신도 살아남지 못하리란 것이 너무도 당연한 진실처럼 느껴졌다. 그는 그녀 곁에 나란히 누워 함께 죽고 싶었다. 그는 이러한 상상에 잠겨 그녀의 얼굴에 뺨을 대고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그는 그 순간을 떠올렸다. 그때 체험한 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이었을까?

그런데 그것이 과연 사랑이었을까? 그는 그녀 곁에서 죽고 싶었다고 확신했는데, 그 감정은 명백히 과장된 것이었다. 겨우 두 번째 만남이었는데! 자기가 사랑의 부적격자임을 뼈저리게 깨달은 한 남자가 스스로에게 사랑의 희극을 연기하면서 빠져들었던 신경질적인 반응은 아니었을까? 동시에 그의 무의식은 너무도 비열한 나머지 이 희극을 위해서 자신의 삶에 동참할 만큼 격상될 기회라곤 거의 없는 촌구석의 불쌍한 종업원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마당의 더러운 벽면을 바라보면서 그것이 정신병인지 사랑인지 분간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진정한 남자라면 당장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상황이지만 그는 머뭇거리면서 자기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그녀가 죽으면 자기도 따라 죽으리라 확신하고 여자 발치에 무릎을 꿇은 순간)으로부터 모든 의미를 박탈하는 자신을 책망했다.

그는 한없이 자책하다가 결국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한 번밖에 살지 못하고 전생과 현생을 비교할 수도 없으며 현생과 비교하여 후생을 바로잡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테레자와 함께 사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혼자 사는 것이 나을까?

도무지 비교할 길이 없으니 어느 쪽 결정이 좋을지 확인할 길도 없다. 모든 것이 일순간, 난생 처음으로, 준비도 없이 닥친 것이다. 마치 한 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그런데 인생의 첫 번째 리허설이 인생 그 자체라면 인생에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기에 삶은 항상 밑그림 같은 것이다. 그런데 '밑그림'이라는 용어도 정확하지 않은 것이, 밑그림은 항상 무엇인가에 대한 초안, 한 작품의 준비 작업인데 비해, 우리 인생이라는 밑그림은 완성작 없는 초안, 무용한 밑그림이다.

토마시는 독일 속담을 되뇌었다. 한 번은 중요치 않다.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p.14-17)

 

그녀는 다음 날 저녁 찾아왔다. 기다란 어깨 끈이 달린 핸드백을 메고 있었는데 지난번보다 훨씬 우아해 보였다. 손에는 두꺼운 책 한 권을 들고 있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였다. (p.18)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안나 카레니나 - 톨스토이 (윤우섭 옮김, 작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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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까지만 해도 프라하의 아파트로그녀를 초대하면 그녀가 인생 전체를 자기에게 헌납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던 그였다. 지금 트렁크가 수화물 보관소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는 그녀가 자신의 삶을 이 트렁크에 넣어 역에 잠깐 맡겨 두었다가 자기한테 주려는 것은 아닌지 생각했다.

그는 건물 앞에 세워 두었더너 차를 타고 그녀와 함께 역에 가서 트렁크를 찾아 테레자와 트렁크를 그의 아파트에 들여놓았다.

거의 보름 가까이 망설였고 엽서 한 장 보내지 않았던 그가 어떻게 그토록 빨리 결심할 수 있었을까? 

그는 스스로도 놀랐다. 그는 자기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던 것이다. (p.19)

 

하지만 이번에는 그녀 곁에서 잤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직도 그의 손을 잡고 있는 테레자의 모습을 그는 보았다. 그들은 밤새 그렇게 손을 잡고 있었던 것일까? 그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잠든 그녀는 깊은 숨ㅁ을 쉬며 그의 손을 잡고 있었고 엄청나게 무거운 트렁크가 침대 곁에 놓여 있었다. (p.20)

 

이번에도 여전히 테레자가 송진으로 방수된 바구니에 담겨 강물에 버려진 아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가 담긴 바구니를 난폭한 강물에 띄워 보낼 수 있다니! 파라오의 딸이 어린 모세가 담긴 바구니를 강물에서 건져 내지 않았다면 구약성서도 없었을 테고, 그러면 우리 문명은 어찌 되었을까! 수많은 고대 신화의 도입부에는 버려진 아기를 구하는 누군가가 있다. 폴리보스가 아기 오이디푸스를 줍지 않았다면, 소포클레스는 그의 가장 아름다운 비극도 쓰지 않았을 것을!

그 당시 토마시는 은유란 위험한 어떤 것임을 몰랐다. 은유법으로 희롱을 하면 안 된다. 사랑은 단 하나의 은유에서도 생겨날 수 있다. (p.20-21)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오이디푸스 왕 - 소포클레스 (천병희 옮김, 문예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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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소송에서 판사는 어머니가 아이를 데려가고 토마시는 월급의 3분의 1을 그들에게 주라고 판결을 내렸다. 판사는 이와 더불어 한 달에 두 번 아들을 볼 수 있을 것을 토마시에게 허락했다.

하지만 아들을 보러 갈 때마다 부인은 약속을 뒤로 미뤘다. 그들에게 푸짐한 선물을 안겼다면 필경 쉽게 만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아들에 대한 사랑의 값을 어머니 쪽에, 그것도 선불로 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나중에 어머니의 생각과는 조목조목 대립되는 그의 생각을 아들에게 주입하고자 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생각만으로도 그는 벌써 피곤해졌다. 어느 일요일엔가 아들을 데리고 나가려는 마지막 순간 그녀가 그를 가로막자, 그는 죽을 때까지 다시는 아들을 보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런데 다른 아이가 아닌 딱히 이 아이에게 그토록 집착할 이유가 있을까? 부주의했던 하룻밤 인연 외에는 그와 아이를 이어 주는 끈은 없는 것이다. 양육비는 꼼꼼하게 챙겨 주겠지만 부성애 같은 이런저런 감정을 내세워 아버지의 권리를 위해 싸우라는 요구까지는 그에게 하지 말았으면!

물론 누구도 이런 생각을 쉽게 받아들이진 않을 것이다. 토마시의 부모까지도 그를 비난했다. 그가 아들에게 무관심하면 자기들도 그들의 아들인 토마시를 외면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래서 부모는 며느리와 보란 듯 당당한 우호 관계를 유지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그들의 모범적 태도와 정의감을 자랑하곤 했다.

그래서 그는 단시일 내에 부인, 아들, 어머니, 아버지를 성공적으로 떼어 버릴 수 있었다. 그의 몫으로 남은 유일한 상속재산은 여자들에 대한 두려움뿐이었다. 그는 여자를 갈망하면서도 두려워했다. 두려움과 갈망 사이에서 어떤 타협점을 찾아야만 했고 그 타협점을 그는 '에로틱한 우정'이라 불렀다. 그는 애인들에게 이렇게 못을 박았다. 두 사람 중 누구도 상대방의 인생과 자유에 대한 독점권을 내세우지 않는, 감상이 배제된 관계만이 두 사람 모두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고.

에로틱한 우정이 결코 공격적 사랑으로 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는 고정 애인 하나하나를 긴 간격을 두고 만났다. (p.22-23)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모든 사람은 혼자다 - 시몬 드 보부아르 (박정자 옮김, 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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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틱한 우정의 불문율을 지킨다는 것은 토마시가 자신의 삶에서 사랑을 배제하는 것도 의미한다. (p.25)

 

그는 다른 여자들과는 결코 함께 잠을 자지 않아 왔다. (p.25)

 

그는 정사를 마친 직후 혼자 있고 싶다는 억누를 수 없는 욕구를 느꼈던 것이다. 한밤중에 잠에서 깼을 때 옆자리에 낯선 존재가 있다는 것이 불쾌했다. 부부가 함께 아침에 일어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고, 욕실에서 자기 칫솔질 소리가 누군가의 귀에까지 전해지는 것이 싫었으며, 두 사람만의 다정한 아침 식사가 아쉽지도 않았다.

그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테레자가 그의 손을 꼭 잡고 있는 것을 보고 그토록 기겁을 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지난밤을 돌이켜 생각해 보았더니 자신이 알지 못했던 행복의 향기를 들이마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모두 잠까지 함께 잘 수 있다는 것에 미리 즐거워했다. 나는 그들이 정사를 나누는 목적은 관능성이 아니라 그 뒤에 이어지는 잠에 있었노라고 말하고 싶다. 특히 테레자는 그가 없으면 잠들지 못했다. (p.26)

 

토마시는 생각했다. 한 여자와 정사를 나누는 것과 함께 잔다는 것은 서로 다를 뿐 아니라 거의 상충되는 두 가지 열정이라고. 사랑은 정사를 나누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라 (이 욕망은 수많은 여자에게 적용된다) 동반 수면의 욕망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이 욕망은 오로지 한 여자에게만 관련된다). (p.28)

 

과거 은밀했던 그의 애정 편력을 그녀가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알아냈던 것이다.

처음에 그는 전부 부인했다. 증거가 너무 명백할 때는, 그의 다처주의 삶과 테레자에 대한 사랑 사이에 어떤 모순도 없다고 강변도 해 보았다. 어떤 때는 바람피운 것을 부정했고 어떤 때는 정당화했기 때문에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였다. (p.30)

 

그녀는 스튜디오를 그만두고 잡지사의 사진기자가 되었다. 토마시는 춤추기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병원 동료 중 하나가 테레자와 춤을 췄다. 두 사람은 무대 위를 화려하게 미끄러져 갔고, 테레자는 그 어는 때보다도 아름다웠다.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순순히 파트너의 뜻에 따르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그는 기가 막혔다. 그녀의 헌신, 토마시의 눈빛을 읽고 그의 뜻에 따르려는 그녀의 뜨거운 욕망이 딱히 토마시라는 한 남자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라 그녀가 만난 어떤 남자의 요구에도 기꺼이 응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 댄스 장면이 강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테레자와 그의 젊은 동료가 애인 사이라고 상상하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었다. 이렇듯 너무도 쉽게 상상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 상처를 줬다. 테레자의 육체가 다른 어떤 수컷의 몸통과 격렬한 사랑의 자세를 취하는 모습이 완벽하게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 그는 불쾌해졌다. 저녁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와 그는 질투심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이론적 가능성에서 비롯된 터무니없는 질투는 토마시가 그녀의 정절을 불가결한 전제 조건으로 간주한다는 증거였다. 하물며 진짜 존재하는 그의 애인들에게 질투심을 느끼는 그녀를 어찌 나무랄 수 있을까? (p.31-32)

 

테레자는 토마시가 하는 말을 낮에는 곧이곧대로 믿고 (실제 그렇게 하진 못했다) 그때까지 그래 왔듯 명랑한 표정을 지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낮 동안 고분고분하게 길들었던 질투심이 꿈속에서는 격렬하게 기승을 부렸다. 그녀의 꿈은 항상 토마시가 곁에서 흔들어 깨워 줘야만 멈추는 신음 소리로 마무리되었다. (p.33)

 

라틴어에서 파생된 언어에서 동정이라는 단어는 타인의 고통을 차마 차가운 심장으로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달리 말해 고통스러워하는 이와 공감한다는 뜻이다. 거의 같은 뜻을 지닌 연민이라는 단어는 고통 받는 존재에 대한 일종의 관용을 암시한다. 한 여인에게 연민을 느낀다는 것은 그녀보다 넉넉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몸을 낮춰 그녀의 높이까지 내려간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동정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의심쩍은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사랑과는 별로 관계없는 저급한 감정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동정 삼아 사랑한다는 것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동정심을 갖는다는 것은 타인의 불행을 함께 겪을 뿐 아니라 환희, 고통, 행복, 고민과 같은 다른 모든 감정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동정은 고도의 감정적 상상력, 감정적 텔레파시 기술을 지칭한다. 감정의 여러 단계 중에서 이것이 가장 최상의 감정이다. (p.36-37)

 

그녀의 행동은 점차 거칠어지고 일관성을 잃어 갔다. 그녀가 토마시의 바람기를 발견한 지도 이 년이 지났고 그의 바람기는 더욱더 심해졌다. 도무지 해결책이 없었다.

뭐라고! 에로틱한 우정을 끊고 살 수 없다고? 그렇다. 그것이 없으면 그의 가슴은 찢어질 것이다. 그에게는 다른 여자에 대한 탐욕을 자제할 힘이 없다. 그리고 그는 자제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바람기가 테레자에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토마시였다. 그러니 무엇 때문에 자제하고 살 것인가? 그것은 축구 경기 관람을 포기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결정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외도 속에 여전히 쾌감이 있었을까? 애인 중 하나를 만나러 집을 나서자마자 토마시는 그 여자에 대한 혐오감을 느꼈고 이번 만남이 마지막이라고 다짐하고는 했다. (p.39)

 

당신을 보고 있자니 당신이 내 그림의 영원한 테마 속에 녹아드는 중이란 느낌이 들어. 두 세계의 만남이라는 테마. 이중노출이랄까? 바람둥이 토마시의 그림자 뒤에 낭만적 사랑에 빠진 연인의 모습이 나타나거든,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어. 오직 테레자만을 생각하는 트리스탄의 모습에서 바람둥이의 아름다운 세계가 언뜻 엿보이기도 하고. (p.40-41)

(같이 읽으면 좋은 책)

트리스탄과 이졸데 - 조제프 베디에 (최복현 옮김, 와우라이프)

트리스탄은 콘월의 왕 마크의 조카로 용맹하고 뛰어난 기사이다. 트리스탄은 콘월에 조공을 요구하러 온 아일랜드의 기사 모홀트(Morholt)와 일대일로 맞싸워서 그를 죽이지만 부상을 입는다. 독이 밴 칼에 맞아 부상을 입은 탓에 콘월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했고, 이에 트리스탄은 아일랜드의 치료사이자 모홀트의 사촌동생이자 약혼녀였던 이졸데에게 신분을 숨기고 찾아가 치료를 받는다. 이졸데는 이 때 트리스탄이 자신의 약혼자를 죽인 원수라는 걸 알게 되지만, 죽이지 않고 치료를 해준다. 이후 트리스탄은 삼촌 마크 왕의 신부감을 찾아 나서는데, 하필 일전에 자신을 치료했던 이졸데가 선택돼서 그녀를 데리러 간다. 트리스탄이 이졸데를 콘월로 데려가는 과정에 마크왕에게 주려고 했던 사랑의 묘약을 이졸데와 함께 마셔버리고, 약기운 때문에 둘은 그대로 사랑에 빠져버린다. 콘월에서 마크왕과 이졸데는 결혼하는데, 결혼 후에도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계속 밀월관계를 유지한다. 결국 둘의 관계가 발각되면서 왕궁이 뒤집어진다. 이졸데는 마크왕 곁에 남고 트리스탄은 콘월을 떠나게된다. 콘월에서 쫓겨난 트리스탄은 방랑기사가 되어 여기저기 떠돌다가 브르타뉴(프랑스 북부지역)에서 호엘(Hoel, Howel)왕을 도와 침략자들을 물리치며, 그 보답으로 트리스탄은 그의 딸이자 자기의 연인과 동명이인인 흰 손의 이졸데(Isolde, the White Hand)와 결혼하고 그의 오빠인 카에딘(Kahedin)과 의형제를 맺는다. 트리스탄은 모종의 이유로 무뢰배 기사들과 싸우고 이들을 물리치는데 이 과정에서 트리스탄은 또 독이 밴 칼을 맞고 치명상을 입는다. 이 독은 치료방법이 없는데, 유일한 해결방법은 자신의 옛 연인이자 최고의 치료사인 이졸데를 데려오는 것이다. 트리스탄은 이졸데를 데려오기 위해 급히 사절을 콘월로 보내면서 돌아올 때 이졸데를 데려왔다면 흰 돛을 달고 데려오지 못했다면 검은 돛을 달고 오라는 부탁도 해둔다. 사절을 기다리던 트리스탄은 상처가 계속 악화되면서 죽어 가는데, 죽기 직전에 극적으로 흰 돛을 단 배가 해변에 나타난다. 하지만 질투심에 사로잡힌 아내 흰 손의 이졸데는 배가 검은 돛을 달고 있다고 트리스탄에게 거짓말을 하고 낙담한 트리스탄은 그대로 죽는다. 이윽고 이졸데가 나타나는데 이미 죽어 있는 연인을 보고 절망하면서 그의 시체 위에 쓰러져서 같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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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gner - Tristan und Isolde (DG)

바그너 - 트리스탄과 이졸데

 

(04) Furtwangler, BPO (1954.4.27.Berlin Live) Wagner - Tristan und Isolde - Isoldes Liebestod.mp3
15.80MB

Furtwangler, BPO (1954.4.27.Berlin Live) Wagner - Tristan und Isolde - Isoldes Liebestod

[바그너 -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에서 <이졸데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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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izetti - L'elisir d'amore (Naxos)

도니제티 - 사랑의 묘약

 

 

(23) Enrico Caruso (1903.4.19.Milano) Una furtiva lagrima (Donizetti - L'elisir d'amore).mp3
8.10MB

Enrico Caruso (1903.4.19.Milano) Una furtiva lagrima (Donizetti - L'elisir d'amore)

[도니제티 - 사랑의 묘약] 중에서 <남몰래 흘리는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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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출구가 없는 상황에 빠져 있었다. 애인들 눈에 그는 테레자에 대한 사랑의 도장이 찍힌 사람으로 보였고, 반면 테레자의 눈에는 여러 애인들과 나눈 사랑 편력의 도장이 찍힌 사람으로 보였던 것이다. (p.42)

 

테레자의 고통을 잠재우기 위해 그는 그녀와 결혼했고 그녀에게 작은 강아지를 사 주었다. (p.43)

 

토마시가 스위스 의사의 제안을 망설임 없이 거절했던 것은 테레자 때문이었다. 그녀가 떠나고 싶지 않을 거라고 짐작했던 것이다. 더구나 소련군이 진주한 후 일주일 동안 그녀는 거의 행복과 유사한 일종의 전율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녀는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섰고 외국 기자들에게 필름을 나누어 줬다. 기자들은 필름을 얻으려고 아우성을 쳤다. 어느 날 그녀는 너무 대담해져서 시위 군중에게 권총을 겨누는 한 장교의 사진을 가까이에서 찍었다. 그녀는 체포되어 소련군 본부에서 밤을 샜다. 소련군은 그녀를 총살하겠다고 위협했지만 그녀는 석방되자마자 거리로 돌아가 사진을 찍었다.

그런 까닭에 소련군이 점령한 지 열흘째 되던 날 그녀가 한말에 토마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왜 당신은 스위스에 가려 하지 않아?"

"왜 가야 하지?"

"여기에 있으면 저들이 당신에게 보복할 거야."

토마시는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들이 보족할 사람이 한둘이겟어. 하지만 당신은 외국에서 살 수 있겠어?"

"못 살 것도 없잖아?"

"이 나라를 위해 목숨까지 기꺼이 희생하려는 당신 모습을 본 후부터 과연 당신이 이 시점에 떠날 수 있을까 하고 자문해 보았어."

"둡체크가 돌아온 후부터 모든 게 변했어."라고 테레자가 말했다.

사실이었ㄷ. 국민들의 행복한 도취는 점령 후 일주일 이상 지속되지 못했다. 체코 정치인들은 잡범처럼 소련군에게 끌려갔고,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모든 사람이 그들의 안위를 걱정했고, 소련군에 대한 증오는 술기운처럼 치밀어 올랐다. 증오감에 도취된 축제였다. 보헤미아의 도시는 손으로 그린 포스터로 온통 뒤덮였다. 포스터에는 냉소적 글귀, 서시, 시구절, 브레즈네프와 그의 군대 캐리커처가 자극적으로 표현되었다. 그의 군대를 일자무식한 광대 집단이라고 조롱하는 포스터였다. 그러나 어떤 축제도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그동안 소련은 체코 정치인을 모스크바로 납치하여 타협 문서에 서명하도록 강요했다. 둡체크는 이 타협안을 가지고 프라하로 돌아와 라디오 방송에서 연설문을 낭독했다. 구금 생활 엿새 동안 너무도 쇠약해진 그는 가까스로 입을 열다가 말을 더듬었따. 그는 중간 중간 거의 삼십 초가량이나 말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기도 했다.

그의 타협안은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해 마지않던 학살과 시베리아 집단 유배 같은 최악의 상황으로부터 국가를 구해 내기는 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게 드러났다. 보헤미아는 정복자 앞에 머리를 조아려야만 했다. 알렉산드르 둡체크처럼 영원히 말을 더듬고, 횡설수설하고, 호흡을 가다듬어야만 했다. 일상적 모욕 상태로 돌입한 것이다. (p.46-48)

<참고>

프라하의 봄(Pražské jaro)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비에트 연방이 간섭하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민주화 시기를 일컫는다. 이 시기는 1968년 1월 5일에 슬로바키아의 개혁파 알렉산데르 둡체크가 집권하면서 시작되었으며, 8월 21일 소비에트 연방과 바르샤바 조약 회원국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하여 개혁을 중단시키면서 막을 내렸다.
프라하의 봄 당시 둡체크는 경제와 정치면에서 부분적인 분권화를 실시하여 시민의 자유를 좀 더 보장하는 개혁을 시도하였다. 이 가운데는 보도, 표현, 이동의 자유 제한을 폐지하는 것도 있었다. 또 둡체크는 두 개의 개별 공화국으로 이루어진 연방으로 개편하였는데, 이 조치는 프라하의 봄이 끝나자 다시 좌절되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개혁은 소련측에서 달갑지 않은 일이었으며, 소련은 협상이 실패하자 장갑차와 탱크를 보내어 이 나라를 침공하였다. 대규모 이주 물결이 체코슬로바키아를 휩쓸었다. 한 학생이 자살 항의를 하긴 하였으나 사람들은 비폭력 시위로 대응하였으며 군사 저항은 없었다. 이 시기에 소비에트 연방군이 장갑차와 탱크를 앞세워 무고한 시민들을 죽이자 전 세계 여론의 비판이 일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1989년까지 점령 상태가 된다.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한 소비에트 연방군은 당중앙위원회를 해체시키고,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이자 체코슬로바키아의 1서기였던 알렉산데르 둡체크를 외국으로 망명시켰다. 바르샤바 조약군의 침공 이후 체코슬로바키아는 정상화의 과정에 들어가는데, 이후 지도자들은 둡체크가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KSČ)을 장악하기 전에 우세했던 정치적, 경제적 가치를 복원하고자 하였다. 둡체크의 뒤를 이어 집권한 구스타프 후사크는 대통령에 올라 둡체크의 모든 개혁을 무효로 돌렸다.

(같이 읽으면 좋은 책)

프라하의 봄 - 야로슬라브 세이페르트 (양성우 옮김, 동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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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프라하의 봄 OST

Janacek - String Quartet No.1 (BBCL, 1975)

야나체크 - 현악 4중주 1번 <크로이처>

 

(05) Smetana Quartet (1975.2.2.London Live) Janacek - String Quartet No.1 - I. Adagio - Con moto - Vivo.mp3
8.95MB

Smetana Quartet (1975.2.2.London Live) Janacek - String Quartet No.1 - I. Adagio - Con moto - Vi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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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목숨을 걸고 거리에서 소련군 사진을 찍으며 그녀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만끽했다. 그동안만은 연속극처럼 계속되었던 그녀의 꿈이 중단되어 그녀는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탱크로 무장한 소련군이 그녀에게 평온을 가져다 준 셈이었다. 축제가 끝난 지금, 그녀는 다시 그녀의 밤이 두려워졌고 밤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자신이 강하다고 느낄 수 있는 상황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와 유사한 상황을 다시 찾겠다는 희망에 부풀어 외국으로 떠나고 싶은 것이었다. (p.48)

 

자신이 사는 곳을 떠나고자 하는 자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다. 테레자는 망명 욕구를 토마시는 죄인이 유죄 선고를 받듯 답아들였다. 그는 그 선고에 따라 얼마 후 테레자, 카레닌과 함께 스위스의 가장 큰 도시에 있게 되었다. (p.49)

 

그는 빈 아파트를 메울 침대 하나를 샀고 마흔 살이 넘어 새 인생을 시작하는 사람처럼 미친 듯이 일에 몰두했다. (p.50)

 

호텔을 나와 취리히의 집으로 돌아가면서 토마시는 달팽이가 자신의 집을 메고 다니듯 자기도 자신의 삶의 방식을 휴대하고 다닌다는 생각을 하며 행복을 느꼈다. 테레자와 사비나는 그의 삶에 있어서 두 극점, 서로 멀리 떨어져 화해가 불가능하지만 하나같이 아름다운 극정을 표상했다.

그러나 토마시가 몸 안에 맹장을 달고 다니듯 삶의 방식을 어디에나 지니고 다녔기에, 데레자는 언제나 같은 꿈을 꿨다. (p.51)

 

보헤미아와 나머지 세계 사이의 경계는 그들이 떠나왔던 시절처럼 더 이상 열려 있지 않다. 전보도 전화도 테레자를 돌아오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정부 당국은 그녀가 떠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도무지 믿기지 않았지만 테레자가 떠난 것은 돌이킬 수 없었다. (p.52)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그를 멍한 상태에 빠뜨렸고 동시에 그를 진정시키기도 했다. 어떤 결정을 내리라고 그에게 강요하는 사람은 없었다. 건너편 건물 벽을 바라보며 자신이 그녀와 함께 살고 싶은 것일까 아닐까를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테레자가 모든 것을 결정해 주었다. (p.53)

 

그는 음식값을 치르고 레스토랑을 나와서 더욱더 감미로워지는 우울에 빠져 거리를 산책했다. 테레자와 함께 산 칠년이라는 세월은 이제 과거의 일이다. 그런데 돌이켜 보니 이미 추억이 된 그 시절이 당시에 느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와 테레자의 사랑은 분명 아름다웠지만 피곤하기도 했다. 항상 뭔가 숨기고, 감추고, 위장하고, 보완하고, 그녀ㅓ에게 용기를 주고, 위로하고,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질투심과 고통과 꿈에서 비롯된 비난을 감수하고, 죄의식을 느끼고, 자신을 정당화하고, 용서를 구해야만 했다. 이제 피곤은 사라지고 아름다움만 남았다.

토요일 저녁이 시작되었다. 그는 처음으로 혼자 취리히 거리를 산책했고 자유의 향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셨다. 거리 모퉁이마다 연애 가능성이 널려 있었다. 미래는 다시 하나의 신비로 되돌아갔다. 그는 오로지 독신으로만 진정한 자신의 모습으로 살 수 잇으니 자신의 운명은 그런 것이라고 굳게 확신했던 삶, 독신자의 삶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그는 테레자에게 얽매여 칠 년을 살았고, 그녀는 그의 발길 하나하나를 감시했다. 마치 그의 발목에 방울을 채워 놓은 것 같았다. 이제 그의 발걸음은 갑자기 훨씬 가벼워졌다. 거의 날아갈 듯했다. 그는 파르메니데스의 마술적 공간 속에 들어간 것이다. 그는 존재의 달콤한 가벼움을 만끽했다. (p.54)

<참고>

파르메니데스(Παρμενίδης, 기원전 510년 경 - 기원전 450년 경)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논리적으로만 따졌을 때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에서 없는 것이 되고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이 되는, 세상의 모든 "운동과 변화"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같이 읽으면 좋은 책)

플라톤의 파르메니데스 연구 - 김귀룡 (충북대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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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어린 이 이상한 도취는 일요일 저녁까지 지속되었다. 월요일, 모든 것이 달라졌다. 테레자가 그의 머릿속에 돌연 출연한 것이다. 그는 테레자가 이별의 편지를 쓰며 겪었던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그녀의 손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한 손에는 무거운 트렁크를 들고 다른 손에는 카레닌을 묶은 줄을 잡고 천천히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니 떠올랐다. 프라하 아파트의 열쇠 구멍에 열쇠를 넣고 돌리는 그녀 모습이 떠올랐고 문을 열었을 때 얼굴에 스쳐 지나가는 홀로 된 그녀의 슬픔이 그의 가슴에 와 닿았다.

우울했던 아름다운 이틀 동안 그의 동정심이 쉬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 노동자가 주 중의 고된 일을 마치고 월요일에 다시 격무로 돌아가기 위해 일요일에 잠을 자 두듯, 동정심도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p.56)

 

나는 그녀가 아니라 동정심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전에는 몰랐지만 그녀가 병균을 주입한 이 병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토요일과 일용일에 그는 미래로부터 존재의 감미로운 가벼움이 그에게 다가옴을 느꼈다. 월요일, 그는 한 버도 느낀 적 없는 중압감에 짓눌리는 듯했다. 수천 톤이나 나가는 소련 탱크의 무게도 이 중압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동정심보다 무거운 것은 없다. 우리 자신의 고통조차도, 상상력으로 증폭되고 수천 번 메아리치면서 ㅓ깊어진, 타인과 함께, 타인을 위해, 타인을 대신해 느끼는 고통만큼 무겁지는 않다.

그는 동정심에 굴복하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채찍과 명령을 가했고, 동정심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그의 말을 따랐다. 동정심은 자기가 권력을 남용했다는 것을 인정했찌만 은근히 고집을 꺾지 않아서 결국 테레자가 떠난 지 닷새 후 원장에게 당장 돌아가야만 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부끄러웠다. 무책임하고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라고 원장이 생각할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p.57)

 

베토벤의 마지막 4중주 중 마지막 악장은 이 같은 두 모티프로 작곡되었다. (p.58)

Muß es sein? (그래야만 하는가?)

Ja, es muß sein!... (네, 그래야만 합니다!)

<참고>

Beethoven - String Quartet No.16 (EMI, 1933)

IV. Grave ma non troppo tratto - Allegro

베토벤 - 현악 4중주 16번

제4악장. 괴로워하다가 간신히 굳힌 결심. 그라베, 마 논 트로포 탄토 ("그래야만 하는가?") - 알레그로 ("그래야만 한다") - 그라베, 마 논 트로포 탄토 - 알레그로

베토벤이 쓴 악보의 제4악장 맨 앞에는 Der schwer gefasste Entschluss ("괴로워하다가 간신히 굳힌 결심")이라는 제목이 있고, 이어 두 개의 동기를 두고 있다. 이 중 "그라베"의 것에는 Muß es sein? ("그래야만 하는가?"), "알레그로"의 것에는 Es muß sein! ("그래야만 한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러한 문구를 베토벤이 적은 이유에 관하여는 여러가지의 억측이 존재한다. 그 중 하나는 "가정부와의 급료에 관한 문답"이라는 설이다. 또한 베토벤은 1826년 4월에 이 Es muß sein! ("그래야만 한다!")의 알레그로의 동기를 사용하여 카논을 작곡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있는데, 이 카논은 빈의 부호이자 예술 후원자, 또 아마추어 첼로 연주자인 이그나츠 뎀프셔(1776-1838)가 13번 사중주, 작품 130의 파트보를 빌려달라고 부탁한데서 비롯되었다. 이때 베토벤은 슈판치히를 통해 50굴덴을 지불하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뎀프셔는 슈판치히의 예약 연주회를 무시하고 자기 집에서 이 곡을 연주할 속셈으로 빌려달라고 했던 것이다. 이 50굴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뎀프셔는 웃으면서 Muß es sein? ("그래야만 하는가?")라고 했다. 사람들로부터 이 말을 들은 베토벤은 크게 웃고는, Es muß sein! ("그래야만 한다!")라는 내용의 가사를 붙였다. 이때의 말들을 베토벤은 매우 마음에 들어했던 것 같다. 이 사중주의 첫 스케치와 카논의 작곡 시기는 대체로 같은 무렵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카논의 동기를 처음부터 사중주 작품에 쓸 예정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사중주 작품에 쓸 계획이었는데, 뎀프셔의 Muß es sein? ("그래야만 하는가?")라는 말에 영감이 떠올라 그 말을 붙인 카논을 썼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곡은 Grave, ma non troppo tratto ("그라베, 마 논 트로포 탄토/장중하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 바단조의 서주로 시작된다. 이 서주에는 처음의 그라베의 동기가 교묘하게 짜여져 들어가 있다. 처음의 비올라와 첼로가 연주하는 동기가 그것이다. 알레그로 바장조의 주요부에 들어가면 두개의 바이올린 서두에서 Es muß sein!... ("그래야만 한다!")의 동기가 나타낸다. 대위법적인 제1주제가 나온 뒤 첼로가 밝은 제2주제를 연주하고 나서 간결하게 제시부가 끝난다. 악장은 소나타의 구조에 따라 진행되며, 마치 모든 음악의 의미를 원시적이고 치기스레한 단순함으로 되돌리려 하는 듯, 아이들의 노래와 비슷한 피지카토로 갑자기 끝을 맺는다.

 

(08) The Busch String Quartet (1933.11.13) Beethoven - String Quartet No.16 in F major, Op.135 - IV. Grave ma non troppo tratto - Allegro.mp3
16.18MB

The Busch String Quartet (1933.11.13) Beethoven - String Quartet No.16 in F major, Op.135 - IV. Grave ma non troppo tratto - Alleg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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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메니데스와 달리 베토벤은 무거움을 뭔가 긍정적인 것이라고 간주했던 것 같다. "Der schwer gefaste Entschluss." 진중하게 내린 결정은 운명의 목소리와 결부되었다 (es muß sein!). 무거움, 필연성 그리고 가치는 내면적으로 연결된 세 개념이다. 필연적인 것만이 진중한 것이고, 묵직한 것만이 가치 있는 것이다. (p.60)

 

우리 생각에는 인간을 위대하게 하는 것은, 아틀라스가 어깨에 하늘을 지고 있듯 인간도 자신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베토벤의 영웅은 형이상학적인 무게를 들어올리는 역도 선수다. (p.60)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다 - 토마스 불핀치 (노태복 옮김, 리베르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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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시는 "Es muss sein!" 이라고 되뇌었지만 금세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정말 그래야만 할까?

그렇다. 취리히에 남아 프라하에 혼자 있는 테레자를 상상하는 것은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오랫동안 동정심으로 고통을 받아야 했을까? 일생 동안? 한 달 동안? 딱 일주일만?

어찌 알 수 있을까? 어떻게 그것을 확인할 수 있을까?

물리 실험 시간에 중학생은 과학적 과정의 정확성을 확인하기 위해 실험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오직 한 번밖에 살지 못하므로 체험으로 가정을 확인해 볼 길이 없고, 따라서 자기 가멍에 따르는 것이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 알 길이 없는 것이다. (p.61)

 

테레자가 그의 친구 Z가 아닌 자기와 사랑에 빠진 것은 철저히 우연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달은 것이다. 가능성의 왕국에는 토마시와 이루어진 사랑 외에는 실현되지 않은 다른 남자와의 무수한 사랑이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사랑이란 뭔가 가벼운 것,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는 무엇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반드시 이런 것이어야만 한다고 상상한다. 또한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삶도 더 이상 아닐 거라고 믿는다. 덥수룩한 머리가 끔찍한, 침울한 베토벤도 몸소 그의 'Es muss sein!'을 우리의 위대한 사랑을 위해 연주했다고 확신한다.

토마시는 그의 친구 Z에 대해 테레자가 한 말을 떠올리고 그들의 사랑의 역사는 'Es muss sien!' 이라기보다는 'Es  könnte auch anders sein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었는데...) 에 근거한다는 것을 확인했따. (p.63-64)

 

그는 그녀 때문에 보헤미아로 되돌아왔다. 이렇듯 치명적 결정은 칠 년 전 외과 과장에게 좌골 신경통이 없었더라면 존재하지도 않았을 우연한 사랑에 근거한 것이다. 그리고 절대적 우연의 화신인 그 여자가 지금 그의 곁에 누워 깊은 숨을 내쉬며 잠들어 있다.

아주 늦은 시간이었다. 절망의 순간에 항상 그랬듯 토마시는 위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테레자의 호흡이 한두 번인가 가벼운 코 고는 소리로 변했다. 토마시는 추호도 동정심을 느끼지 못했다. 그가 느낀 유일한 것은 위를 누르는 압박감, 귀향으로 인한 절망감뿐이었다. (p.65-65)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삶의 한가운데 - 루이제 린저 (전혜린 옮김, 문예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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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육체를 통해 자기를 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자주 거울을 보았다. 그녀는 그러다가 어머니에게 들키는 것을 두려워했기에, 거울을 보는 그녀의 시선은 은밀한 죄악의 흔적을 띠었다.

그녀는 거울로 이끌었던 것은 허영심이 아니라 거울 속에서 자신의 자아를 발견하는 경이감이었다. 그녀는 눈앞에 있는 것이 육체적 메커니즘의 계기판이라는 것을 잊었다. 그녀는 얼굴 구석구석에서 드러나는 자신의 영혼을 본다고 믿었다. 코란 허파에 공기를 대 주는 파이프의 말단부라는 것을 잊었다. 그녀는 그것을 자신의 품성을 성실하게 표현하는 부뤼라고 믿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거울을 보았고, 가끔은 자기 얼굴에서 어머니의 윤곽을 보는 것을 거북해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녀는 더욱 고집스레 거울을 보며 어머니의 윤곽에서 벗어나려 했고 백지 상태에서 출발하여 자신의 얼굴에 오직 자기 자신의 것만 남기려고 애썼다. 그것에 도달하면 도취의 순간이 왔다. 그때 그녀의 영혼은 선실에서 기어 나와 갑판 위에서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고 노래를 부르는 뱃사람처럼 육체의 표면으로 솟아올랐다. (p.73-74)

 

어머니는 테레자에게 어머니가 되는 것은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이라며 지칠 줄 모르고 설명했다. 아이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한 여인의 체험을 표현하는 것이기에 그녀의 말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그 말을 들은 테레자는 삶의 최고 가치는 모성애이고 모성애랑 큰 희생이라고 믿었다. 모성애가 희생 그 자체라면, 태어난 것은 그 무엇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죄인 셈이다. (p.79)

 

이 카페에서 테이블 위에 책을 펼쳐 놓았던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테레자에게 책이란 은밀한 동지애를 확인하는 암호였다. 그녀를 둘러싼 저속한 세계에 대항하는 그녀의 유일한 무기는 시립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책뿐이었다. 특히 소설들. 그녀는 필딩에서 토마스 만까지 무더기로 소설을 읽었다. 책은 그녀에게 아무런 만족도 주지 못하는 삶으로부터 벗어나는 상상의 도피 기회를 제공했지만, 그 자체로도 으미가 있었다. 그녀는 겨드랑이에 책을 기고 거리를 산책하는 것을 즐겼다. 책은 그녀에게 19세기 멋쟁이들이 들고 다녔던 우아한 지팡이와도 같았다. 책을 통해ㅐ 그녀는 남과 자기를 구분 지었다. (p.85)

(같이 읽으면 좋은 책)

톰 존스의 모험 - 헨리 필딩 (최홍규 옮김, 동서월드북)

마의 산 - 토마스 만 (윤순식 옮김, 열린책들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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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한 사건이 보다 많은 우연에 얽혀 있다면 그 사건에는 그만큼 중요하고 많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우연만이 우리에게 어떤 계시로 나타날 수 있다. 필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 기다려 왔던 것, 매일 반복되는 것은 그저 침묵하는 그 무엇일 따름이다. 오로지 우연만이 웅변적이다. 집시들이 커피 잔 바닥에서 커피 가루 형상을 통해 의미를 읽듯이, 우리는 우연의 의미를 해독하려고 애쓴다. (p.87)

 

필연과는 달리 우연에는 이런 주술적 힘이 있다. 하나의 사랑이 잊히지 않는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성 프란체스코의 어깨에 새들이 모여 앉듯 첫 순간부터 여러 우연이 합해져야만 한다. (p.88)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성 프란치스코 - 니코스 카잔자키스 (박석일 옮김, 동서월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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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뛰쳐나와 운명을 바꿀 용기를 테레자에게 주었던 것은 마지막 순간 그가 그녀에게 내밀었던 이 명함보다는 우연(책, 베토벤, 6이라는 수자, 광장의 노란 벤치)의 부름이었다. 그녀의 사랑에 발동을 걸고, 끝나는 날가지 그녀에게 힘을 준 에너지의 원천은 아마도 이런 몇몇 우여들일 것이다.

우리의 일상적 삶에는 우연이 빗발치듯 쏟아지는데,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소위 우연의 일치라고 부르는, 사람과 가선 간의 우연한 만남들이 일어난다. 라디오에서 베토벤의 음악이 나오는 순간 토마시가 술집에 등장하는 것처럼, 이러한 엄청나게 많은 우연의 일치를 우리는 대개 완전히 무심결에 지나쳐 버린다. (p.91)

 

인간의 삶은 마치 악보처럼 구성된다. 미적 감각에 의해 인도된 인간은 우연한 사건(베토벤의 음악, 역에서의 죽음)을 인생의 악보에 각인될 하나의 테마로 변형한다. 그리고 작곡가가 소나타의 마를 다루듯 그것을 반복하고, 변화시키고, 발전 시킬 것이다. 그러나 역과 죽음의 테마, 사랑의 탄생과 결부되어 잊을 수 없는 이 테마가 그 음울한 아름다움으로 절망의 순간에 그녀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인간은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에서조차 무심결에 아름다움의 법칙에 따라 자신의 삶을 작곡한다.

따라서 소설이 신비로운 우연의 만남에 (예컨대 브론스키, 안나, 플랫폼, 죽음의 만남이나 혹은 베토벤, 토마시,, 테레자, 코냑 잔의 만남 같은 것) 매료된다고 해서 비난할 수 없는 반면, 인간이 이러한 우연을 보지 못하고 그의 삶에서 미적 차원을 배제한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p.92-93)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안나 카레니나 - 톨스토이 (윤새라 옮김, 펭귄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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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thoven - Variations in D on an Original Theme Op.76 (EMI, 1968)

베토벤 - 변주곡 작품 76번

 

(32) Emil Gilels (1968.4.29-5.4) Beethoven - Variations in D on an Original Theme Op.76 - Thema - Allegro risoluto.mp3
1.70MB

Emil Gilels (1968.4.29-5.4) Beethoven - Variations in D on an Original Theme Op.76 - Thema - Allegro risolu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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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에 모여 앉은 우연의 새들 덕분에 대담해진 그녀는 어머니에게 알리지 않고 일주일의 휴가를 받아 열차에 올라탔다. 그녀는 자주 열차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을 보며 인생의 결정적인 날에 육체의 갑판을 단 한 순간도 떠나지 말아 달라고 그녀의 영혼에게 애원했다. (p.94)

 

그녀가 어머니 집에 살던 시절 욕실을 잠그는 것은 금지였다. 그 점에 대해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네 몸도 다른 사람의 몸과 다를 바 없다. 너에겐 수줍어 할 권리가 없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동일한 형태로 존재하는 무엇인가를 감출 이유가 없다. 어머니의 세계에서 모든 육체는 같은 것이며 줄줄이 발을 맞춰 행진하는 형상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테레자에게 있어서 나체는 집단 수용소에서 강요하는 획일성의 상징이었다. 모욕의 상징이었다. (p.101-102)

 

모든 여자들이 노래를 불러야만 하다니! 자신들의 육체가 한결같이 평가절하되고 영혼 없는 단순하고 동일한 음향 기계가 되었을 따름인데 설상가상으로 그런 사실을 즐겨야 하다니! 그것은 영혼 없는 자들의, 환호에 찬 유대감이었다. 개성에 대한 환상이자 우스꽝스러운 오만인 영혼의 짐을 내던지고 모두가 비슷해졌다는 점에 대해 그들은 행복해졌다. 테레자는 그녀들과 더불어 노래를 했지만 즐거워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노래를 한 것은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다른 여자들에게 살행당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p.102)

 

철저하게 비슷하고 무차별화된 것을 즐거워하는 여자들은 그들의 유사성을 절대적인 것으로 만드는 미래의 죽음을 축하하는 것이다. 권총 소리는 죽음의 행진을 해옥하게 마무리 할 따름인 셈이다. 총 소리가 날 때마다 그들은 쾌활하게 웃었고 시체가 천천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으면 더욱 목청 높여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왜 총을 쏘는 사람이 토마시였고, 왜 그는 테레자를 쏘려고 했을까?

테레자를 여자들 가운데로 보낸 것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테레자는 자신이 그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꿈을 통해 토마시에게 그것을 가르쳐 준 것이다. 그녀는 모든 육체가 평등했던 어머니의 세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와 함께 살러 온 것이다. 자신의 육체를 유일하고 대체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와 함께 산 것이다. 그런데 이제 토마시 역시 그녀와 다른 여자들 사이에 평등의 선을 그었다. 그는 같은 방식으로 모든 여자에게 키스했고 같은 식으로 애무했으며 테레자의 육체와 어떤 구별도, 정말 추호의 구별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그녀가 벗어났다고 믿었던 세계로 그녀를 되돌려 보낸 샘이다. 그는 다른 벌거벗은 여자들과 함께 행진하라고 그녀를 내몰았던 것이다. (p.102-103)

 

꿈들은 웅변적일 뿐 아니라 아름답기까지 하다. 프로이트가 그의 꿈에 대한 이론에서 놓쳤던 것이 바로 이런 측면이다. 꿈은 커뮤니케이션일 뿐 아니라 미학적 활동, 상상력의 유희이며, 이 유희는 그 자체가 하나의 가치다. 꿈은 상상하는 것, 없는 것을 희구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심층적인 욕구 중 하나라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다. 바로 그 점이 꿈속에 철면피한 위험이 은폐된 이유이기도 하다. 꿈이 아름답지 않다면 쉽게 잊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테레자는 쉴새 없이 자신의 꿈으로 되돌아가며 꿈을 머릿속에서 되풀이하고 전설로 만들었다. 토마시는 테레자의 꿈이 지닌 처절한 아름다움의 최면적 매력 속에서 살았다. (p.104-105)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꿈의 해석 - 프로이트 (김인순 옮김,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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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사랑 어린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곧 다가올 밤이 무섭고 그러한 꿈들이 두려웠다. 그녀의 삶은 둘로 갈려 있었다. 밤과 낮이 서로 그녀를 차지하려고 다투고 있었다. (p.105)

 

끊임없이 '신분 상승'을 원하는 자는 어느 날엔가 느낄 현기증을 감수해야만 한다. 현기증이란 무엇인가? 추락에 대한 두려움? 하지만 튼튼한 난간을 갖춘 전망대에서 우리는 왜 현기증을 느끼는 것일까? 현기증, 그것은 추락에 대한 두려움과는 다른 그 무엇이다. 현기증은 우리 발밑에서 우리를 유혹하고 홀리는 공허의 목소리, 나중에는 공포에 질린 나머지 아무리 자제해도 어쩔 수 없이 끌리는 추락에 대한 욕망이다. (p.106)

 

이 그림은 망친 거야. 붉은 물감이 캔버스에 흘렀거든. 처음에는 화를 냈는데 점차 그 얼룩이 맘에 들더군. 그 공사장이 진짜가 아닐 뿐 아니라 눈속임용으로 그려 넣은 낡은 무대장치 같았고, 붉은 물감 자국은 찢어진 틈 가았기 때문이지. 그래서 나는 이 틈을 확대해서 그 뒤에서 볼 수 있을 것을 상상하는 놀이를 시작했어. 그런 이유로 내가 그린 첫 연작을 무대장치라 불렀던 거야. 물론 아무도 내 그림을 보진 못하게 했지. 보았다면 나는 퇴학당했을 거야. 앞은 완벽한 사실주의 세계였고, 그 뒤에는 무대장치의 찢어진 캔버스 뒤편처럼 뭔가 다른 것, 신비롭고 추상적인 것이 보였지.

앞은 파악할 수 있는 거짓이고, 뒤는 이해할 수 없는 진리였지. (p.114)

 

테레자에게 카메라는 토마시의 애인을 관찰하는 기계눈인 동시에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 베일 구실을 했다. (p.118)

 

사비나가 토마시의 입에서 수없이 들었던 "벗어!"라는 말은 그녀의 기억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정부가 부인에게 지금 한 말은 토마시의 명령인 셈이다. 이렇듯 두 여자는 똑같은 마술적 문장으로 연결된 것이다. 평범한 대화 도중에 난데없이 에로틱한 상황이 돌발케 하는 것이 바로 그의 방식이었다. 토마시는 애무도 하지 않고 옷싯도 스치지 않은 채 찬사나 애원이 아닌 명령조로, 멀리 떨어져 낮지만 힘차고 권위적인 목소리로 명령을 내리곤 했다. 그 순간 그는 명령을 듣는 여자에게 절대로 손도 대지 않았다. 테레자에게도 바로 이런 말투로 종종 "벗어!"라고 명령하곤 했다. 부드럽게 말하고 나즈막이 속삭였지만 명령이었고, 그녀는 그 말에 복종하는 것만으로도 항상 흥분했다. 그런데 그녀는 방금 똑같은 말을 들었고, 굴종하고 싶은 욕구는 더욱 컸다. 낯선 이에게 복종한다는 것은 이상한 광기이며 그 명령을 남자가 아닌 여자가 내린다면 더욱 아름다운 광기인 것이다. (p.118-119)

 

소련군의 침공이 비극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누구도 그 이상한 도취감을 이해하지 못할 증오의 축제이기도 했다. (p.121)

 

그녀는 자신이 지닌 모든 기술과 정성을 깅ㄹ여 직접 현상한 사진 쉰여 장을 스위스로 가져갔다. 그녀는 대량의 판매 부수를 자랑하는 한 잡지사에 그것을 보여 줬다. 편집국장은 그녀를 정중히 맞이하고 소파에 앉으라고 말하더니 사진을 검토하고 친찬을 했다. 그러고는 이 사건은 이미 먼 옛날이야기라며 이 사진들이 공개될 가능성은 조금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프라하에서는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어요!" 하고 테레자는 분개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의 점령 치하 조국에서는 공장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학생들은 점령군에 대항하기 위해 동맹 휴학을 하며 국민 모두가 나름대로 계속 투쟁 중이라고 서툰 독일어로 반박했다. 바로 그 점이 기가막힐 노릇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그런 것에는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p.122-123)

 

그렇다. 소련 침공을 찍은 사진, 그것은 별개다. 그 사진은 토마시를 위해 찍은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열정에 더밀려 한 일이었다. 그러나 사진에 대한 열정은 아니다. 증오의 열정이었다. 그러한 상황은 더 이상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그녀가 열정적으로 찍은 사진에는 이제 더 이상 시사성이 없으므로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오로지 선인장에만 영원히 시상이 있다. 그리고 그녀는 선인장에는 관심이 없었따. (p.126)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박은정 옮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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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1929년 4월 1일 ~ )

체코슬로바키아 브륀 태생의 소설가.

1929년 체코의 브륀에서 야나체크 음악원 교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밀란 쿤데라는 그 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프라하의 예술아카데미 AMU에서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감독 수업을 받았다. 1963년 이래 「프라하의 봄」이 외부의 억압으로 좌절될 때까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운동'을 주도했으며, 1968년 모든 공직에서 해직당하고 저서가 압수되는 수모를 겪었다. 『농담』과 『우스운 사랑』 2권만이 쿤데라가 고국 체코에서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농담 La Plaisanterie』이 불역되는 즉시 프랑스에서도 명작가가 되다. 그 불역판 서문에서 아라공은 "금세기 최대의 소설가들 중 한 사람으로 소설이 빵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증명해주는 소설가"라고 격찬한바 있다. 2차대전 후 그는 대학생, 노동자, 바의 피아니스트(그의 아버지는 이미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다)를 거쳐 문학과 영화에 몰두했다. 그는 시와 극작품들을 썼고 프라하의 고등 영화연구원에서 가르쳤다. 밀로스 포만(Milos Forman), 그리고 장차 체코의 누벨 바그계 영화인들이 될 사람들은 두루 그의 제자들이었다.
소련 침공과 '프라하의 봄' 무렵의 숙청으로 인하여 그의 처지는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의 책들은 도서관에서 제거되었고 그 자신은 글쓰는 것도 가르치는 것도 금지되는 역경을 만났다. 1975년 그가 체코를 떠나 프랑스로 왔을 때 "프라하에서 서양은 그들 스스로가 파괴되는 광경을 목도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1975년 프랑스로 이주한 후 르네 대학에서 비교문학을 강의하다가 1980년에 파리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유명한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작가는 어떤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테레사와 토마스는 우연히 서로 만났다가 사고로 함께 죽는다. 그들의 운명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정들과 우연한 사건들과 어쩌다가 받아들이게 된 구속들의 축적이 낳은 산물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죽음을 향한 그 꼬불꼬불한 길,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의 완만한 상호간의 파괴는 영원한 애매함을 드러내 보이려는 듯 어떤 내면의 평화를 다시 찾는 길이기도 하다.
그 배경에는 60년대 체코와 70년대 유럽을 뒤흔들어놓은 시련이 깔려 있다. 지금은 멀어져버린 체코이지만 쿤데라의 작품 한복판에 주인공인 양 요지부동으로 박혀 있는 체코, 실제로 존재하는 나라라기보다는 신화적이고 보다 보편적인 나라, 유적과 멀리 떨어져 있는 거리 때문에 오히려 더욱 그 본질이 더 잘 보이는 듯한 그 나라. 변함 없는 성실성과 배반, 현실과 꿈,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찢겨진 존재들의 복합성, 그리고 또한 둘로 쪼개진 세계와 유럽의 드라마와 작가의 근원적 정신질환의 원인은 체코에 있었다.
밀란 쿤데라는 프랑스로 망명 후 소설가로서의 성공에 대해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변화가 너무나 급작스러웠던 게 사실입니다. 1968년까지 나는 체코 국내의 소설가였을 뿐 아무것도 외국어로 번역된 것이 없었으니까요. 그 뒤에 작품들이 더러 번역이 되긴 했습니다만 체코 안에서 작가로서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나는 프랑스를 작가로서의 조국으로 선택한 겁니다. 내 책들이 먼저 나온 곳은 파리였고 나로서는 그 상징적 의미를 매우 귀중하게 여기고 있어요."
밀란 쿤데라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에 대한 개념이다. 지혜의 그물망이 촘촘하게 얽혀 있는 그의 작품으로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농담』『생은 다른 곳에』『불멸』『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이별』『느림』『정체성』『향수』 등이 있다. 그의 작품들은 거의 모두가 탁월한 문학적 깊이를 인정받아서 메디치 상, 클레멘트 루케 상, 유로파 상, 체코 작가 상, 컴먼웰스 상, LA타임즈 소설상 등을 받았다. 미국 미시건 대학은 그의 문학적 공로를 높이 평가하면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1978년에 출간된 『이별』은 유럽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문학상 프레미오 레테라리오 몬델로 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별』은 현대의 살아있는 신화라고 할 수 있다. 시간과 공간 속에 놓인 우리의 삶을 마치 모자이크처럼 정교하게 수놓으면서 사랑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시인, 소설가, 희곡작가, 평론가, 번역가 등의 거의 모든 문학장르에서 다양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작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이외에도 『향수』와 오늘날 현대 소설이 지닌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의의를 쿤데라만의 날카로운 시각과 풍부한 지식, 문학에 대한 끝없는 열정으로 풀어 낸 에세이집 『커튼』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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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 전집 15권 (민음사)

웃음과 망각의 책 - 밀란 쿤데라(문학사상사)

농담 - 밀란 쿤데라 (문학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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