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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X. 정리중

자기만의 방 - 버지니아 울프 (오진숙 옮김, 솔출판사)

by handaikhan 2023. 2. 5.

버지니아 울프 전집 11

버지니아 울프 - 자기만의 방 (1929년)

 

여성과 픽션에 대해 말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나서, 어느 강둑에 앉아 그 단어들이 무엇을 으미히나는지 생각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여성이 픽션을 쓰고자 한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 (p.10)

 

나는 한두 주일 전, 날씨가 화창한 시월의 어느 날 생각에 잠겨 강둑에 앉아 있었지요. 내가 언급한바 있는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 즉 온갖 종류의 편견과 격정을 불러일으키는 그 주제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려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머리를 숙인 채 말입니다. 강의 양옆에는 황금색과 진홍색의 이름 모를 잡목들이 현란하게 빛났으며 심지어 열기로, 불의 열기로 타오르는 듯했지요. 저 멀리 강둑에는 버드나무들이 머리카락을 어깨에 늘어뜨린 채 영원한 비탄에 잠겨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강물에는 하늘과 다리와 타오르는 나무가 반사되고 있었고 대학생 하나가 그 반사된 풍경을 가르며 노 저어 지나가고 나자 그 물 위에 비친 풍경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완전히 맞물렀습니다. 그곳에서 사색에 빠져 시계가 한바퀴 다 돌도록 줄곧 앉아 있을 수도 있었겠지요. 사색이 그 낚싯줄을 강물 속으로 드리웠습니다. 매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것은 물결이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하는 대로 자신을 내버려두면서 반사된 풍경과 잡초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흔들렸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무언가 잡아끄는 힘을, 사색의 낚싯줄 끝에서 어떤 상념들이 갑자기 응집되어 오는 것을 감지하고는 그것을 조심스레 잡아당겨 주의 깊게 펼쳐보았습니다. 아아, 슬프게도 잔디밭에 내려놓자 나의 이 생각은 얼마나 작고 하찮아 보였는지요. 마치 능숙한 어부라면 요리해 먹기에 적당할 만큼 살이 더 붙으라고, 잡았다가는 강물 속으로 도로 놓아주는 그런 물고기 같아 보였지요. 지금 그 나의 생각으로 여러분을 귀찮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여러분이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펼쳐나가는 과정에서 여러분 스스로가 그것을 찾아낼는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그 생각이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그 나름대로의 신비로운 속성을 지니고 있어서, 마음속에 도로 집어넣으니까 즉시 매우 재미있고도 중대한 것이 되더군요.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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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덜린 버지니아 울프(Adeline Virginia Woolf, 1882년 1월 25일 ~ 1941년 3월 28일)

20세기 잉글랜드의 모더니즘 작가.
본명은 애들린 버지니아 스티븐으로 188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모더니즘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평생 정신 질환을 앓으면서도 다양한 소설 기법을 실험하여 현대문학에 이바지하는 한편 평화주의자, 페미니즘 비평가로 이름을 알렸다.

빅토리아 시대 소위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 환경에서 자랐고, 주로 아버지에게 교육을 받았다. 비평가이자 사상가였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의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오빠 토비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한 후 리턴 스트레이치, 레너드 울프, 클라이브 벨, 덩컨 그랜트, 존 메이너드 케인스 등과 교류하며 ‘블룸즈버리 그룹’을 결성하기도 했다. 이 그룹은 당시 다른 지식인들과 달리 여성들의 적극적인 예술 활동 참여, 동성애자들의 권리, 전쟁 반대 등 빅토리아시대의 관행과 가치관을 공공연히 거부하며 자유롭고 진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어머니의 사망 후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아버지의 사망 이후 울프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평생에 걸쳐 수차례 정신 질환을 앓았다. 1905년부터 문예 비평을 썼고, 1907년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리먼트]에 서평을 싣기 시작하면서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파도』 등 20세기 수작으로 꼽히는 소설들과 『일반 독자』 같은 뛰어난 문예 평론, 서평 등을 발표하여 영국 모더니즘의 대표 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소설가로서 울프는 내면 의식의 흐름을 정교하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 내면서 현대 사회의 불확실한 삶과 인간관계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1970년대 이후 「자기만의 방」과 「3기니」가 페미니즘 비평의 고전으로 재평가되면서 울프의 저작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졌고, 「자기만의 방」이 피력한 여성의 물적, 정신적 독립의 필요성과 고유한 경험의 가치는 우리 시대의 인식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버지니아 울프는 픽션과 논픽션을 아우르며 다작을 남긴 야심 있는 작가였다. 그녀의 픽션들은 플롯보다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더욱 초점을 맞춘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해 쓰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소설 『출항』, 『밤과 낮』, 『제이콥의 방』, 『댈러웨이 부인』, 『파도』,『현대소설론』 등과 페미니즘 비평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에세이 『자기만의 방』과 속편 『3기니』 등이 있다. 1927년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쓰인 『등대로』를 발표하며 소설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고 『올랜도』, 『물결』, 『세월』 등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평화주의자로서 전쟁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쳐 왔던 울프는 1941년 독일의 영국 침공이 예상되는 가운데 정신 질환의 재발을 우려하여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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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 버지니아 울프 (이소연 옮김, 펭귄클래식)

자기만의 방 - 버지니아 울프 (정윤조 옮김, 문예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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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전집 13권 (솔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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