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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 고전 문학 (동양)/2. 동양 - 고전 시

사막을 여행하는 물고기 - 잘랄 앗 딘 알 루미 (최준서 옮김, 하늘아래)

by handaikhan 2023. 2. 5.

 

잘랄 앗 딘 알 루미 - 사막을 여행하는 물고기 (13세기)

 

<나는 다른 대륙에서 온 새>

하루 종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어 입을 뗍니다.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의 영혼은 다른 곳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내 생의 끝을 마치고 싶습니다.

 

이 취기는 다른 주막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곳 언저리로 다시 돌아가면 나는 온전히 취할 것입니다.

나는 다른 대륙에서 온 새, 그런데 이 새장에 앉아....

다시 날아오를 그 날이 오고 있습니다.

지금 내 귀속에서 나의 목소리를 듣는 이는 누구인가요?

내 입을 통해 말하는 이는 누구인가요?

내 눈을 통해 밖을 보는 이는 누구인가요?

영혼은 무엇인가요?

 

질문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만일 그 해답을 조금이라도 맛볼 수 있다면, 나는 그 취기로

이 감옥을 부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이 곳에 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이 곳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누가 나를 여기에 데려다 놓았건 그가 나를 다시 집에 데려다 주어야 합니다.

 

이런 말들...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문득문득 이어지는 생각들....

이 질문들 너머로, 깊은 고요와 침묵에 들어섭니다.                                                   

(p.31-32)

 

장님만 구덩이에 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 멀쩡하게 눈을 뜨고 걷던 사람도 구덩이에 빠집니다. 신성한 사람도 때로 타락합니다. 하지만 그런 시련을 통해 그(그녀)는 더 높은 정신에 이릅니다. 환상에서 탈출하고, 구태의연한 종교에서 탈출하고, 세상의 현상에서 탈출합니다. (p.42)

 

현상계는 넓은 길 위에서 넓은 변화를 이어갑니다. 모든 것들이 각기 다른 수많은 모습으로 변해갑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현상계의 환상은 우리를 미끄러져 지나갑니다. 번뇌의 무대가 오르고 내리듯이....

우리 모두의 안에 있는, 깊은 사랑의 우물에 와서 자기들의 물항아리를 채우고는 떠납니다. 여기, 이 안에, 그것들이 다가오는 근원의 샘이 있습니다.

관대하십시오. 감사하십시오.

마중을 못할 때는 용서를 구하십시오.

우리는 마음속에 있는 신성한 지혜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나는 누구인가, 생각의 교차로 한가운데 서 있는.... (p.43)

 

바다는 물고기가 자신을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거꾸로 땅에 사는 동물들은 바다로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민감하고 섬세한 물고기들이 노는 그 안으로는....

당신의 겉모습을 잊으십시오. 당신 자신도 잊어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친구에게 귀를 기울이십시오.

당신의 그 친구에게 온전히 순종하게 되었을 때, 당신은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p.48-49)

 

당신은 선지자가 아닙니다. 그저 선지자들이 걸었던 길을 겸손히 따르십시오.

그러면 그들이 있는 곳에 이를 수 있습니다.

들으십시오. 침묵하십시오.

당신으니 신의 입에 물려있는 재갈이 아닙니다.

귀가 되도록 노력하세요.

꼭 말을 해야 할 때는 이해를 구하십시오.

당신의 오만과 분노의 근원은 당신의 욕망입니다.

그 뿌리는 당신의 습관 안에 있습니다.

진흙을 먹는 습관을 가진 사람에게 진흙을 먹지 못하게 하면

그는 미쳐버립니다.

주인이 되는 것은 치명적인 습관을 갖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가 당신의 권한에 대해 물으면, 당신은 '이 자가 내 힘을 뺏으려 하는구나.'하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겉으로는 예의바르게 대답하겠지만, 속으로는 화를 냅니다.

 

항상 당신의 내부가 어떤지를 지켜보세요.

당신의 영혼의 주인과 함께.

금화는 자신이 금인 것을 모릅니다.

녹아버리기 전에는,

당신의 사랑은 그 위엄을 모릅니다.

그 무력함을 알기 전까지는. (p.69-70)

 

누가 뭐라고 하건 어리석은 말은 믿지 말라.

지난 일을 슬퍼하지 말라. 이미 지난 일이다. 이미 벌ㄹ어진 일을 후회하지 말라. (p.77)

 

불안정하거나 잠 속에 빠진 사람에게는 충고를 하지 말라. 모래 위에는 씨앗을 뿌리지 말라. 헤진 곳은 꿰맬 수 없는 법. (p.78)

 

일도 배우기 전에 가게부터 열었군요. (p.109)

 

좋은 왕은 자신의 식탁 위의 모든 것들을 대접해야한다. (p.113)

 

<손님>

인간이란 존재는 여관과 같습니다.

매일 아침 새 손님이 찾아옵니다.

기쁨, 우울, 비열.

때로 순간의 깨달음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손님.

 

모두를 환영하고 대접하십시오.

비탄의 무리가 당신의 집을 거칠게 휩쓸고, 가구를 부수더라도, 모든 손님을 극진히 대하십시오.

그러면 그 손님들이 당신을 새로운 기쁨으로 깨끗하게 씻어 줄 것입니다.

 

어두운 생각, 수치, 원한을 웃음으로 맞으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집에 초대하십시오.

누가 오더라도 감사하십시오.

그들 모두는 저 너머로 당신을 안내하고자 찾아왔습니다.

(p.141)

 

<갈대 피리의 노래>

끊어진 존재에 대한 두 개의 이야기

1.

나는 뿌리에서 잘려 나와 줄곧 이 슬픈 소리를 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사람은 내 노래를 이해할 것입니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은 늘 돌아갈 날만을 그리워합니다.

 

웃음과 비탄과,

그 어떤 노래를 친구에게 들려주어도 악보 안에 숨겨진 비밀을 듣지는 못합니다.

아무도 귀가 없습니다.

육체는 정신 없이 떠다니고, 정신은 육체를 떨치고서 나갑니다.

감출 것도 더 보탤 것도 없이, 제 영혼을 들여다 볼 기회도 없이.

 

갈대 피리는 바람이 아니고 불길입니다.

자신을 텅 비우시길.

 

2. 

저 피리가 울어대는 엉킨 사랑의 불꽃을 들어보세요.

놀라움은 술 속으로 녹아들고

갈대 피리는 세상을 짖고 날려버리려는 모든 사람의 친구.

 

저 피리는 고통이자 위안,

육체를 탐닉하고 탐닉함을 탐닉함,

비참한 몰락과 맑은 사랑.

모두....

비밀을 듣는 이들은 부질없음을 압니다.

 

혀는 한 분의 손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 손님은 귀.

 

사탕수수 피리가 잘려나가면 남은 줄기는 설탕이 되듯이...

누구나 그렇습니다.

 

하루하루는 욕망으로 그득합니다.

하루하루가 하는 대로 그냥 두십시오.

 

순수하고 텅 빈 악보처럼 당신 안에 모무르시길.

 

모든 갈증은 채워지지만 바다를 헤엄치는 물고기의 갈증은 채울 길이 없습니다.

먹지 않고 살 수 없듯이 피리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저 노래를 두려워하는 사람과 함께 하지 마십시오.

그저 '안녕'이라고 말하고 떠나십시오.

(p.153-155)

 

<아무리 빨리 달리더라도 당신의 그림자가 늘 앞서갑니다>

이 세상에 속한 한 조각이 어찌 이 세상을 떠나겠습니까?

습기가 물을 떠날 수 있단 말입니까?

 

불덩이를 던져 불을 끄려 하지 마십시오.

피로써 상처를 씻으려 하지 마십시오.

 

제 아무리 빨리 달리더라도 당신의 그림자가 늘 앞서갑니다.

때로는 당신보다도 앞서갑니다.

오직 당신 앞에 떠 있는 저 충만한 태양만이 그림자를 사라지게 합니다.

그러나 그림자는 지금껏 당신을 도왔습니다.

 

당신의 고통, 당신의 은총,

어둠은 당신은 촛불.

당신의 울타리는 당신의 탐색.

 

나는 당신에게 달려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당신의 심장을 감싼 유리는 깨지고 말 것입니다.

다시 고칠 길 없이.

 

당신은 그림자의 근원과 빛의 근원을 지니고 있습니다.

들어보십시오. 그리고 저 외경의 나무 그늘에 머ㅣ를 두십시오.

그 나무를 벗어날 때, 깃털과 날개가 당신으로부터 나올지니.

비둘기보다 더 고요해지길.

침묵하고, 침묵하라.

 

개구리가 물로 뛰어들면 뱀은 더 이상 쫓아가지 못합니다.

물 밖으로 나와 울어대야 뱀은 개구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설사 개구리가 뱀 소리를 내더라도 뱀은 그 소리 너무 필요한 소리를 찾아냅니다.

개구리 소리.

 

그러나 개구리가 완전히 침묵한다면 뱀은 제 둥지에서 잠이 들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개구리는 보리밭까지 갈 수 있습니다.

 

영혼은 침묵의 호흡 안에서 지냅니다.

대지에 심은 보리 씨앗처럼 움트고 자라납니다.

 

이런 말들로 충분한가요?

뭔가 더 쥐어 짜 내어 볼까요?

나는 누구인가요? 친구여!

(p.156-158)

 

나는 예전에 모든 장인들은 자신들음니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을 찾는다고 말했습니다.

집 짓는 이는 지붕을 꺼뜨린 썩은 구멍을 찾습니다.

물지게꾼은 빈 항아리를 찾습니다.

목수는 문이 없는 집을 찾습니다.

일꾼들은 빈 곳에서 힌트를 찾아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빈 곳을 채우기 시작합니다.

비록 그들의 희망이 텅 빈 곳에 있을지라도 피해서는 안 됩니다.

그 텅 빔이 당신이 원하는 것을 채워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당신의 마음속에 이 광대한 무가 머물고 있지 않다면

이제라도 그 안에 둥지를 트는 것은 어떻습니까?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이 보이지 않는 바다는 당신에게 무언가를 하나 가득 주어왔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여전히 그것을 '죽음'이라고 부릅니다.

당신에게 양식과 일자리를 주었건만

 

신도 때로는 극적인 역전을 허락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전갈로 가득 찬 욕망의 단지를 만납니다.

주위에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고, 독사들은 우글거립니다.

 

죽음과 고적함에 대한 당신의 공포가 이 얼마나 이상한 것인가요

욕망에 집착하는 것이 또 얼마나 일그러진 것인가요. (P.165-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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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랄루딘 루미 (1207-1273)


아프가니스탄과 이란과 터키의 시인이자 이슬람 법학자이자 이맘이자 철학자이다. 본래 출신지는 현 아프가니스탄 서부와 타지키스탄 사이에 걸쳐 있는 호라산의 발흐(بلخ, Balkh)로 페르시아어 문화권이다. 때문에 일생 동안 페르시아어를 사용했으나 장년의 그가 주로 활동하고 수피 계열의 메블라나 교단을 창시한 곳은 당시 룸 술탄국의 영토였던 터키이며 그의 무덤도 터키 중부의 도시 콘야(Konya)에 있다.
루미의 가르침은 '사랑과 자신과 신과의 합일'로 대표된다. 때문에 루미는 그게 기독교인이든 조로아스터 교인이든간에 제자들에게 항상 청렴하고 항상 타인을 존중하고 사랑하도록 가르쳤다. 이 점에서는 자이나교의 가르침과도 비슷한 면이 있지만 반면에 수피즘에서는 개인의 쾌락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편이라 다른 신비주의적 사상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가령 수피즘에 입교하는 사람이 테케(تكه‎, 수피 종단의 숙소이자 예배당 같은 일종의 수도원 같은 건물)에 들게되면 기존의 멤버들은 신입을 환영하기 위해 성대한 만찬을 열고, 부엌에 거주하게 하면서 신입으로 하여금 온갖 재료와 향신료들을 맛보게 하고 각각의 재료들이 갖는 특성을 배우게 했는데, 이것은 각각의 재료들이 불이나 기타 조리 등의 방법, 이를테면 고통이나 시련, 혹은 수련 등으로 치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원래의 본질과는 전혀 다른 '요리'가 탄생됨을 일깨우기 위함이었다. 세마젠(Semazen)이라고 불리는 원형무 또한 스스로 반복해서 회전하면서 그 속에서 신과 만나는 경험을 위해서 춘다고 한다. 이 춤은 '네이'라고 부르는 갈대피리의 반주에 맞춰서 추는데 음악을 부정적으로 여겼던 기존의 이슬람교에 비해 수피즘에서는 음악의 신비성과 서로 다른 음의 조화라는 수피즘의 사상에 걸맞기 때문에 장려하고 또한 자주 노래를 불렀다.
루미의 시는 수천 편에 이르는데, 대부분이 사랑과 신과의 만남, 그리고 쾌락을 노래하고 있는데 상당부문에서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기독교적 특징이 묻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주류 이슬람교에서는 상당히 이단시되는 주장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높으신 분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서민들 특히 다양한 종교가 혼재하던 터키에서 루미의 인기가 압도적이라 오늘날에도 터키인들은 루미의 어록이나 시 한두 편은 외우고 다닐 정도다. 루미의 시는 기본적으로 페르시아어로 쓰여있으며 '디반(دیوان, Divân)'이라는 사행시를 주로 썼다. 디반은 두 개의 행이 한 연을 구성하며 서로 연관된 연들로 내용을 구성하는 형식이다. 루미의 시들은 각운과 음보를 엄격하게 지키는 형식성 가운데 자유로운 시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시성(詩聖)'이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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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대륙에서 온 작은 새 - 잘랄 앗 딘 알 루미 (최준서 옮김, 하늘아래 2014)

루미 시집 - 루미 (정제희 옮김, 시공사)

루미 시초 - 루미 (이현주 옮김, 늘봄)

루미의 우화모음집 - 루미 (이현주 옮김, 아침이슬)

루미 평전 - 쉼멜 (김순현 옮김, 늘봄)

태양 시집 - 루미 (박은경 옮김, 문학동네)

갈대피리의 노래 - 루미 (왕은철 옮김, 달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