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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 한국 문학/6. 인문, 교양, 역사

고전소설속 역사여행 - 신병주, 노대환 (돌베개 2005 개정증보판)

by handaikhan 2023. 2. 5.

 

[출판사 책소개]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등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고전 소설을 통해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과 역사를 들여다본 대중 역사서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과연 소설처럼 살았을까'라는 호기심을 바탕으로 고전 소설 속에서 역사의 한 단면을 끄집어내 살아 있는 역사 이야기로 재구성했다.

각 문학 작품을 통해 조선시대의 정치사와 사상사, 경제사와 사회. 문화사 등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는 이 책은 각 장마다 소설의 줄거리와 작품의 특징, 작가와 시대 배경을 간략히 소개한 '작품 해설'과 각 고전 과 연관된 짤막한 읽을거리를 '박스글'로 담고 있다.

지난 2002년에 초판이 발행되었던 것을 <금오신화>를 비롯하여 <사씨남정기>, <채봉감별곡>, <홍경래전> 등 중요 소설 네 편을 추가하고 편집을 전면 개정하여 낸 개정증보판이다. 젊은 세대와 청소년의 취향에 맞추어 가로 판형을 늘리고 책 전체를 컬러로 전면 개정했고 또한 기존의 두 배가 넘는 110여 장의 컬러 도판을 활용하여 내용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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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금오신화 - 현실과 환상의 세계가 결합된 최초의 한문 소설
설공찬전 - 금서가 된 조선시대판 귀신 이야기
전우치전 - 소설로 다시 태어난 민중의 희망 전우치
임진록 - 전쟁 영웅들의 무용담
홍길동전 - 영웅 소설에 담긴 서얼들의 한풀이
계축일기 - 광해군은 정말 패륜아인가?
박씨전 - 병자호란의 치욕과 여걸의 탄생
사씨남정기 - 가정 소설의 형식을 취한 정치 풍자 소설
장화홍련전 - 실화를 바탕으로 한 계모 소설
인현왕후전 - 두 여인의 치마폭에 가려진 정치사
한중록 - 사도 세자에 관한 진실 혹은 거짓말
춘향전 - 춘향전 속의 역사, 역사 속의 춘향전
옹고집전 - 불교 배척론자 옹고집의 개과천선기
허생전 - 허생의 삶에 투영된 박지원의 꿈
은애전 - 국왕 정조, 1급 살인범을 석방하다
홍경래전 - 생생한 민중 항쟁사
배비장전 - 배 비장, 절해고도 제주에서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다
흥부전 - 해학으로 풀어 간 빈농과 부농의 갈등과 화해
채봉감별곡 - 매관매직의 사회사
심청전 - 조선시대 맹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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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오신화 - 김시습(金時習, 1435년 ~ 1493년)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 [금오신화]는 여러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오늘날로 치면 단편 소설집의 형태를 띠고 있는 셈인데,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 등이 그것이다. 이 다섯 편의 소설에는 시대와 결코 타협할 수 없었던 조선 전기 방랑과 광기의 지식인 김시습의 삶과 사상이 잘 투영되어 있다.

[금오신화]에 영향을 준 작품으로 중국 명나라 때 구우가 지은 [전등신화]가 손꼽히고 있지만, 질적 수준에 있어서는 [금오신화]가 훨씬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생규장전>은 [전등신화]의 <위당기우기>와, <용궁부연록>은 [전등신화]의 <수궁경회록>과 거의 유사한 구성을 보이지만, [금오신화]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사건의 배경을 우리나라의 현실로 설정하면서도 결정적인 상황은 비현실적인 환상의 세계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이들 작품의 소재는 귀신, 용왕, 용궁 같은 비현실적인 것들이지만, 작가 김시습은 귀신을 통해 부정하고 별세게를 통해 별세계의 존재를 부정하는 등 환상과 현실을 절묘하게 배합한 구성을 보여 준다.

또한 김시습은 몽유적 구성을 통해 현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몽유적인 표현을 쓴 것은 단순히 꿈속의 경험을 서술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현실의 고통이 없는 비현실의 세게에서나마 자신의 영혼을 찾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 소설은 낭만적이지만, 그 낭만성은 퇴행적이며 소극적인 측면이 많다. 아마도 김시습의 삶의 궤적이 이러한 경향을 낳은 것으로 보인다.

[금오신화]는 세조의 왕위 찬탈에 충격을 받은 김시습이 그 울분을 승화시킨 작품이자, 고려시대의 설화 문학, 전기 등을 게승하여 소설이라는 문학 양식을 확립시켰다는 점에서 문학사적으로 의미가 크다. (p.18-19)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금오신화와 전등신화 - 김시습, 구우 (미다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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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복사저포기>

만복사저포기는 전라도 남원의 양생이라는 사람이 만복사에서 부처님과 저포를 하면서 아름다운 아가씨를 배필로 맞게 해 줄 것을 소원하여 마침내 예쁜 여인을 만나지만 그녀는 이미 죽은 여인이었다는 내용으로, 산 남자와 죽은 여자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 죽은 여인은 공중에서 양생을 부르며 "당신의 은덕으로 저는 이미 다른 나라의 남자의 몸으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유명의 한게는 더욱더 멀어졌으나 당신의 두터운 은정을 어찌 잊겠습니까? 당신은 다시 갈 길을 닦아 저와 같이 속세의 누를 초탈하소서"라고 말한다. 불교의 윤회 사상과 초탈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대목이다. 이후 양생은 장기들지 않고 지리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며 살았는데 아무도 생사를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지리산은 예부터 삼신산의 하나로 도가 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공간이며, 양생의 생사를 모른다는 부분에서는 특히 도가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처럼 불교와 도교 사상이 혼재해 있는 <만복사저포기>는 삶과 죽음을 초월한 사랑과 해탈의 경지를 잘 보여준다.

 

<이생규쟁전>

이생규장전의 제목은 '이생이 담을 엿보다'라는 듯으로, 개성에 사는 이생이 최랑이라는 처녀가 사는 집의 담을 넘겨다본 후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가 줄거리를 이룬다. 이생은 부모 몰래 밤마다 담을 넘어 다니며 최랑과 사랑을 속삭인다. 그러나 이생이 아버지의 명으로 울주의 농장으로 쫓겨난 데다 두 집안의 신분 차이 때문에 두 사람은 쉽게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이러한 난관 속에서 최랑은 목숨을 걸고 부모를 설득하여 마침내 혼인에 성공한다. 더구나 이생이 과거에 급제하여 명망을 드날림으로써 이들의 행복은 절정에 오르는가 싶지만 곧 불행의 반전이 이어진다. 불행의 게기는 홍건적으로 난으로, 최랑이 홍건적에게 정조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저항하다 죽음을 맞음으로써 행복은 막을 내린다. 고려 말의 역사적 상황이 절묘하게 소설에 배합되어 잇는 것이다.

밤중에 최랑이 나타났을 때 이생은 이미 그녀가 죽은 줄 알았지만 반갑게 맞이하며 열렬한 사랑을 나눈다. 최랑의 죽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생, 그래서 현실 속에서 이루지 못한 그들의 사랑은 더욱 아름답고 비장하게 느껴진다. 이제 이생은 세상사를 잊고 친척과 친구마저 물리치고 두문불출하면서 현실보다는 환상의 세계에 집착하게 된다. 최랑의 혼령과 이별한 뒤 이생은 결국 병을 얻어 죽게 되는데, 김시습은 이생마저 죽게 함으로써 사랑의 극적인 효과를 더하고 있다.

이 작품은 주인공은 행복을 성취해 가는 운명의 상승 과정과 행복이 좌절되어 가는 하강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부는 이생과 최랑이 주위 상황에 맞서 점진적으로 결합을 이루어 가는 과정이고, 후반부는 이미 이루어진 사랑이 상황의 도전을 받아 분리되는 과정이다. 처음에는 난관에 부딪히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해피엔딩으로 끝맺는 대부분의 고전 소설과 달리 행복에서 불행으로 나아가는 특이성이 있다.

 

<취유부벽정기>

취유부벽정기의 주인공 홍생은 송도 출신의 부잣집 아들로, 친구들과 함께 평양에 물건을 팔러 갔다가 술ㅇ레 취한 후 이곳의 명승고적인 부벽정과 영명사의 절경에 심취되었다. 부벽정에 올라 노닐다가, 이곳이 기자 조선의 옛터였지만 영화는 간 곳이 없다며 세월의 무상함을 시로 읊었다. 한참 이곳에서 노닐던 홍생은 뜻밖에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는데 그녀는 기자의 딸이자 천상의 여인이었다. 홍생은 그녀와의 짧은 만남에서 시를 주고받았다. <취유부벽정기>는 제목 그대로 '부벽정에서 취해서 노닐다'가 천상의 여인을 만나 시를 주고받고, 끝내는 그 여인을 잊지 못해 병을 얻어 주구게 되는 꿈같은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작품에는 평양의 역사와 명승고적에 대한 묘사가 자세하다. "평양은 옛 조선의 도읍이다. 은나라를 정복한 주나라 무왕이 기자를 방문했을 때 기자가 홍범구주의 법을 일러주었다"거나 "부벽정 남쪽에는 돌로 된 사닥다리가 잇는데 왼쪽은 청운제, 오른쪽은 백운제라 한다. 돌에다 글자를 새기고 화주를 세워 구경꾼들의 흥미를 끌었다"라고 한 부분 등이 그러한 예이다.

 

<남염부주지>

남염부주지는 경주에 사는 박생이라는 선비가 잠깐 조는 동안 남쪽의 섬나라 염부주에 가서 그곳 국왕과 '주공, 공자, 석가, 천당, 지옥'등에 대해 토론한 꿈 이야기가 중심 내용이다. 조선 초에 유행한 지옥의 관념을 소재로 삼으면서 올바른 이념ㅁ이 실현되지 못하는 현실의 악을 고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에는 왕도 정치에 대한 김시습의 소신이 담겨 있다. 과거에 낙방한 박생은 불우한 선비지만 왕도 정치의 신봉자인데, 김시습은 박생을 통해 자신의 종교관과 인생관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박생이 꿈속에서 만난 염라왕을 왕도 정치를 구현한 이상적인 군주로 그리고 있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염라왕을 이상적인 군주로 보는 파격적인 발상, 이것은 김시습만ㄴ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함이 잘 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용궁부연록>

용궁부연록은 개성에 살던 한생이 어느 날 박연에 있는 용왕을 만난 후 세상의 명리에 마음을 두지 않고 명산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춘 행적을 담고 있다. 용왕은 한생에게 깨끗한 구슬 두 알과 빙초 두 필을 노자에 쓰라고 준 뒤 문밖까지 나와서 환송했다고 한다. 박연폭포에 산다는 용의 전설을 끌어들여 환상의 공간 속에서 모든 고통이 소멸되는 환희를 표현하고 있다. 한생은 용왕이 준 구슬과 빙초를 대나무 상자에 깊이 간직하고 남에게 보이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것은 바로 현실 속에서 자신의 이상을 드러내 보이지 않았던 김시습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p.18-23)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금오신화 - 김시습 (민음사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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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에 실린 글들은 인간과 귀신의 만남, 저승 세계와 용궁으로의 여행 등 비현실적인 소재를 택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애절한 사랑, 일상의 고통에서 탈출하고픈 욕망과 함께 작가 김시습의 현실 도피 의식이 잘 나타나있다. (p.24)

 

이긍익 <연려실기술>

"공은 사람됨이 호매하고 영리하며 강직하였다. 시대를 슬퍼하고 세속을 분개하여 울적한 기운을 펼치지 못하고 시속을 따로 넘지 못하여 드디어 물외에 방랑하였다. 국내 산천을 두루 돌아다니며 경치 좋은 곳을 만나면 머물렀다. 고도에 유랑하여 머뭇거리며 슬피 노래하며 여러 날을 보냈다. (...) 재주와 지혜가 탁월하였는데 유가의 종지를 잃지 않았고, 불교, 도교에 이르러서는 깊이 그 병근을 연구하였으며, .......명예가 일찍 드러났다가 일조에 세상을 도피하여 마음은 유학자이면서 행적은 불이어서 세상 사람들이 해괴하게 여길까 하여 짐짓 미친 태도를 취하여 실상을 숨기려 하였다." (p.25)

 

김시습은 유, 불, 도 삼교를 회통하면서 <신귀설>, <태극설>, <귀신론> 등 다양한 논설을 남겼는데, 이들 논설에서는 오히려 신비론을 부정하고 현실론을 강조하는 냉철한 학자의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하였다. 율곡 이이는 김시습의 전기를 쓰면서 '심유적불(心儒跡佛)' 이라는 네 글자로 그의 생애를 표현했다. '마음은 유가였지만 자취는 불가'라는 뜻이니, 이 말에는 결국 시대와 화합하지 못했던 김시습의 모습이 압축적으로 나타나 있다. 율곡은 또 "매월은 일종의 이상한 사람이다. 색은행괴(索隱行怪)에 가까우나 만난 시대가 마침 그러하여서 드디어 그 높은 절개를 이룬 것뿐이다"라고 하여 시대와의 불화로 인해 절개를 평가받은 것일 뿐 그의 도피적이고 기괴한 행실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중용 인간의 맛 - 김용옥 (통나무)

子曰: "素隱行怪, 後世有述焉, 吾弗爲之矣. (소은행괴, 후세유술언, 오불위지의)
君子遵道而行, 半塗而廢, 吾弗能已矣. (군자준도이행, 반도폐, 오불능이의. )
君子依乎中庸, 遯世不見知而不悔, 唯聖者能之." (군자의호중용, 둔세불견지이불회, 유성자능지)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숨어있는 오묘한 세계만을 찾아다니고 괴이한 것을 실행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후세에 잘 돋보여서 그에 대해 기술되는 바가 있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군자가 길을 따라 가다가 중도에 그만두는 일이 있는데, 나는 중도에 그만두는 그런 짓은 할수 없노라.
군자는 중용을 실천함ㅁ을 의지삼아, 세상에 은둔하여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아니한다 할지라도 후회함이 없나니, 이는 오직 성인만이 능할 뿐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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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생 (我生) - 김시습

 

백세 뒤 나의 무덤에 표할 적에

마땅히 꿈속에서 죽은 늙은이라 써 준다면

거의 내 마음을 안 것이라

천 년 뒤에는 나의 회포를 알아줄까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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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生 - 金時習 (아생 - 김시습)


我生旣爲人(아생기위인) 태어나서 보니 이미 사람이라
胡不盡人道(호부진인도) 어찌 사람 도리 다하지 않겠는가
少歲事名利(소세사명리) 어릴 때는 명리를 쫒아 다른 길 가고
壯年行顚倒(장년행전도) 늙은이 되어서는 거슬러 가고
靜思縱大恧(정사종대육) 지나온 길 바라보니 부끄러워라
不能悟於早(불능오어조) 더 일찍 깨닫지 못한 탓이라
後悔難可追(후회난가추) 길 따라 정신없이 달려 왔는지
寤擗甚如擣(오벽심여도) 수심장의 고동이 아직도 멈추질 안네
況未盡忠孝(황미진충효) 어쩔거나 충효의 길 더 가야하는 데
此外何求討(차외합구토) 이외에 무엇을 구하고 찾겠는가.
生爲一罪人(생위일죄인) 살아서는 큰 죄인이요
死作窮鬼了(사작궁혼료) 죽어서는 궁색한 귀신이 되리
更復騰虛名(갱부등허명) 헛된 마음 또 일어나고
反顧增憂悶 (반고증우민) 어리석은 번민은 더해 가니
百歲標余壙 (백세표여광) 백년 후에 내 무덤에 표할 때는
當書夢死老(당서몽사노) 꿈속에 죽은 늙은이라 써주시게나
庶幾得我心 (서기득아심) 누군가 내 마음 아는 이 있다면
千載知懷抱(천재지회포) 천년 뒤에, 속마음 알 수 있으리!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매월당 김시습 시선 - 김시습 (허경진 옮김, 평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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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설공찬전 - 채수 (蔡壽 1449년~ 1515년)

『설공찬전』은 '설공찬이 죽어 저승에 갔다가 그 혼이 돌아와 남의 몸을 빌려 수개월간 이승에 머물면서 들려준, 자신의 원한과 저승에서 들은 이야기'를 주요 내용으로 삼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그 제목만 기록되어 있던 것을 1996년 서경대학교 이복규 교수가 이문건의 <묵재일기>를 검토하던 중 3책의 이면에 『설공찬전』의 국문본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무려 500년 만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p.35)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저녁, 전라도 순창에 사는 설충수네 식구들이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설충수의 아들 공침이 숟가락을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옮겨 쥐고 밥을 게걸스럽게 퍼먹기 시작했다. 이를 이상히 여긴 아버지가 그 까닭을 묻자, 공침은 갑자기 음산한 표정을 지으면서 "5년 전에 죽은 조카 공찬을 기억하느냐"면서 저승에서는 다 이렇게 왼손으로 밥을 먹는다고 했다. 그 후로도 공찬의 혼령이 몸에 들어올 때마다 공침은 계속 왼손으로 밥을 먹었고 날로 피골이 상접해졌다. 이에 설충수는 귀신을 쫓는다는 김석산을 불렀으나 오히려 설공찬이 공침을 괴롭히는 정도는 더욱 심해진다. 마침내 설충수가 공찬에게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겟노라고 빌자 설공찬은 공침의 모습을 회복시켜 준다. 설공찬은 주변 사람들에게 저승 소식을 종종 전해 주었다.

설공찬이 전하는 저승의 분위기를 보면, 왕에게 충언을 하다가 억울하게 죽었지만 생전에 충언을 했다는 이유로 대접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승에서는 평범한 여인이었지만 글을 잘한다는 이유로 대접받는 여성도 나온다. 남녀 차별이 점차 강화되어 가던 시절, 여성의 지위를 저승에서나마 높이려 한 것은 아닐까 추측해 볼 수 있다.

또 중국 당나라의 신하였다가 국왕을 배반ㄴ하고 후량을 세운 주전충도 설공찬이 저승에서 만난 사람이다. 설공찬은 "비록 이승에서 임금을 하였더라도 주전충 같은 반역자는 다 지옥에 들어가 있었따"면서, "이승에서 비록 존귀한 인물이라도 악을 쌓으면 저승에 가서도 불쌍하고 수고롭게 지낸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처럼 [설공찬전]에 나오는 저승의 인물은 충ㅅ힌, 반역자, 여인 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정치적인 성격을 띤 인물이 많다.

이어 중국의 황제가 신하 애박을 염라왕에게 보내 자신이 "가장 예뻐하는 아무개를 한 해만 저승에 잡아오지 말라"는 청탁을 하는데 염라왕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것은 다 내 권한에 속하였는데 어찌 거듭 내게 빌어 청할 수가 있단 말인가"라면서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황제가 청탁했던 사람을 즉시 잡아오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이야기가 끝난다. (p.35-37)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설공찬전 연구 - 이복규 (박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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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고전 소설과 달리 작자가 확실한 『설공찬전』은 조선시대 최대의 필화(筆禍) 사건을 일으킨 작품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 책에 대한 금지 조치와 함께 작자 채수에 대한 처벌 논의가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마찬가지로 작자가 확실한 -역적으로 몰려 비참하게 사형당한 허균의 『홍길동전』 같은 사회 소설이 실록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p.38)

 

<중종실록>

 채수는 사람됨이 영리하며 글을 널리 보고 기억을 잘하여 젊어서부터 문예로 이름을 드러냈고, 성종조에서는 폐비(廢妃)의 과실을 극진히 간하여 간쟁하는 신하의 기풍이 있었다. 그러나 성품이 경박하고 조급하며 허망하여 하는 일이 거칠고 경솔하였으며, 늘 시주(詩酒)와 음률을 가지고 즐겼다. 일찍이 『설공찬전』을 지었는데, 떳떳하지 않은 말이 많기 때문에 사림(士林)이 부족하게 여겼다. 반정 뒤에는 관직을 맡지 않고 늙었다 하여 고향에 물러가기를 청해서 5년 동안 한가하게 휴양하다가 졸(卒)하였는데, 뒤에 양정(襄靖)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p.39)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조선왕조실록을 보다 - 박찬영 (리베르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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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채수가 『설공찬전』을 지었는데, 내용이 모두 화복(禍福)이 윤회(輪廻)한다는 논설로 매우 요망한 것인데, 중외가 현혹되어 믿고서 문자로 옮기거나 언어(諺語, 한글)로 번역하여 전파함으로써 백성들을 현혹합니다. 사헌부에서 마땅히 공문을 발송하여 거두어들이겠으나, 혹 거두어들이지 않거나 뒤에 발견되면 죄로 다스려야 합니다."

 

  이러한 건의에 대해 중종은 "『설공찬전』은 내용이 요망하고 허황하니 금지함이 옳다"는 답을 내린다. 이어 『설공찬전』의 배포를 금지하고 동시에 채수의 파직을 명한다. "그가 지은 『설공찬전』이 괴이하고 허탄(虛誕, 허망)한 말을 꾸며 사람들을 혹하게 하기 때문에, 부정한 도(道)로 정도(正道)를 어지럽히고 백성을 선동하여 미혹케 한 죄로 사헌부가 교수(絞首)할 것을 청했으나 파직만을 명한 것이다"라는 실록의 기록에서 『설공찬전』이 민심을 현혹했다는 것이 당시 조정의 주된 인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영중추부사 김수동 같은 사람은 "만약 채수가 죽어야 한다면 『태평광기』나 『전등신화』 같은 글을 지은 사람도 모조리 베어야 하겠습니까?"라며 귀신을 소재로 한 글을 저술했다고 하여 중죄로 다스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설공찬전』은 중종대의 뜨거운 감자였다. (p.40-41)

 

일반적인 저승 경험담의 경우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거나 혹은 마지막에 모든 것을 꿈속의 일로 돌리는데, 『설공찬전』에서는 죽은 자의 혼이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 저승의 모습을 진술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이것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귀신 소설 『장화홍련전』에서 장화와 홍련의 귀신이 직접 고을 수령에게 나타나는 것과도 차이가 있는데, 『설공찬전』은 무속에서 혼령이 무당의 몸에 실려 나타나는 것에 더 가깝다.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캡슐 마녀의 수리수리 약국 - 김소민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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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공찬전』이 금서가 된 첫 번째 이유는 귀신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백성을 현혹했다는 데 있었다. 특히 "적선(積善)을 많이 한 사람이면 이승에서 비록 천하게 다니다가도 가장 품계가 높이 다닌다"는 등의 글을 통해 불교의 윤회화복 사상을 표현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교의 윤회화복이나 사후 세계를 다룬 소설은 『설공찬전』이 처음은 아니다. 조선시대 한문 소설의 효시로 꼽히는 김시습의 『금오신화』 또한 사후 세계를 다룬 작품이며, 『금오신화』에 영향을 준 중국의 『전등신화』에도 사후 세계를 다룬 작품이 21편이나 실려 있다. 그뿐 아니라 16세기의 사상가 서경덕은 「귀신론」(鬼神論) 같은 논설을 써서 학문적으로 귀신에 대한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글들은 전혀 금서가 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귀신에 대한 소재 선택이 자유로웠음을 보여 준다. 그렇다면 왜 유독 『설공찬전』만 금서로 지목되었을까?
  『설공찬전』이 금서로 규정된 데는 무엇보다 당시 조선의 시대적·사상적 분위기, 그리고 채수의 사회적 지위와 관계가 깊다. 채수가 『설공찬전』을 쓴 16세기는 조선 사회의 지도 이념으로 수용된 성리학이 중앙 정계뿐만 아니라 지방 사회 곳곳에까지 침투한 시기였다. 따라서 15세기까지 어느 정도 용인되었던 불교 사상은 완전히 배척을 받게 되는데, 이러한 시대 흐름 속에서 불교의 윤회화복 사상을 주요 소재로 한 『설공찬전』은 매우 위험스러운 소설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둘째로 채수가 귀신 이야기로 은근히 시국을 비판한 것 또한 문제가 되었다. 채수는 성종의 총애를 받아 34세의 젊은 나이에 대사헌에 오를 정도로 자질이 뛰어났으며, 당시 정치권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조정의 입장에서는 성리학의 보급과 전파에 전념해야 할 유능한 인물이 오히려 불교 사상에 심취하여 그 역할을 소홀히 한다면 이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특히 『설공찬전』에서 채수는 은근히 국왕을 비판하고, 성리학적 사회 질서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여성의 지위 향상에 관한 내용도 거침없이 서술하고 있다. "비록 이승에서 임금을 하였더라도 주전충 같은 반역자는 다 지옥에 들어가 있었다"는 대목이 그것인데, 주전충은 당나라의 신하였다가 쿠데타를 일으켜 후량을 세우고 국왕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이 대목은 채수의 행적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해석에 따라서는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즉위한 중종을 겨냥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채수가 중종반정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만취한 상태에서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사위에게 이끌려 참여한 것이기 때문에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 그리고 만약 중종을 비판한 것이라면 비록 중국의 사례에 비유했다 할지라도 최고 권력자인 국왕에 대해 "지옥에 들어가 있었다"고 표현한 것은 엄청난 불충(不忠)이라 할 수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설공찬전』에는 이승에서 충언을 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죽은 관리가 저승에서는 귀인 대접을 받는 장면도 나온다. 곧은 말을 생명으로 하는 채수와 같은 언관의 모습을 상정한 것이 아닐까? "여자라도 글만 잘하면 세상의 아무런 소임이나 맡을 수 있다"고 표현한 대목 또한 당시의 사회 질서 속에서 쉽게 수용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승의 염라왕을 중국 황제보다 높은 최고의 지위로 파악한 점은 국왕 중심의 현실 정치, 나아가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비판한 것일 수 있었다.
  『설공찬전』의 배경이 되는 중종대는 사림파를 중심으로 성리학 이념이 주요 사상으로 대두된 시기였다. 이것은 『설공찬전』의 파문이 가라앉은 후에 중종이 기호 사림의 영도자 조광조(趙光祖)를 파격적으로 등용하여 성리학 중심의 국가를 지향한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또 도교의 제천 행사를 주관하던 소격서(昭格署)가 폐지되고 성리학 이념을 담은 『소학』(小學)과 향약이 보급되면서 철저하게 성리학 중심으로 사회 체제가 정비되었다.
  이러한 시대 흐름 속에서 채수 같은 사회 지도급 인사가 귀신과 저승에 관한 허황한 이야기를 쓰고 여기에 국왕과 체제에 대한 비판을 담았으니 조정에서는 커다란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나 이것이 백성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급속히 전파되어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이를 강력히 차단했던 것이다. (p.41-45)

 

<조선의 금서>

 

홍길동전 - 허균 (민음사)

정감록 비결 (빔우사)

천주실의 - 마테오 리치 (서울대출판부)

용담유사 - 최제우 (김용욱 해설, 통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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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우치전 (작가미상)


임진록 - 전쟁 영웅들의 무용담
홍길동전 - 영웅 소설에 담긴 서얼들의 한풀이
계축일기 - 광해군은 정말 패륜아인가?
박씨전 - 병자호란의 치욕과 여걸의 탄생
사씨남정기 - 가정 소설의 형식을 취한 정치 풍자 소설
장화홍련전 - 실화를 바탕으로 한 계모 소설
인현왕후전 - 두 여인의 치마폭에 가려진 정치사
한중록 - 사도 세자에 관한 진실 혹은 거짓말
춘향전 - 춘향전 속의 역사, 역사 속의 춘향전
옹고집전 - 불교 배척론자 옹고집의 개과천선기
허생전 - 허생의 삶에 투영된 박지원의 꿈
은애전 - 국왕 정조, 1급 살인범을 석방하다
홍경래전 - 생생한 민중 항쟁사
배비장전 - 배 비장, 절해고도 제주에서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다
흥부전 - 해학으로 풀어 간 빈농과 부농의 갈등과 화해
채봉감별곡 - 매관매직의 사회사
심청전 - 조선시대 맹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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