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 - 상처받지 않을 권리
1부. 무의식의 트라우마를 찾아서 (이상 vs 짐멜)
1. 돈, 내 것이 아닌 욕망의 분열
모던보이 이상의 조울증 / 화폐경제가 바꾼 우리 정신세계 / 내가 종교적 안식을 주리라! / 타자의 타자의 타자의 …… 욕망 /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2. 도시, 즐거운 지옥의 현기증
권태와 향수 사이에서 / 공간과 일상의 관계 / 자유로움의 빛과 그림자 / 짐멜, 질적 개인주의를 말하다 / 치사스런 도시 이야기
2부. 화려한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보들레르 vs 벤야민)
3. 유행, 돌고 도는 뫼비우스의 강박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 벤야민, 미완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 백화점 혹은 욕망과 허영의 각축장 / 패션의 에로티시즘 / 보들레르의 충족되지 않는 갈망
4. 도박과 매춘, 명멸하는 망상
퇴폐와 쾌락의 이중주 / 보편적 도박장으로서의 사회 / 신의 주사위, 우연성의 경이로움 / 매춘에서 사랑을 꿈꾸다! / 존재와 무, 양극단의 숙명
3부. 매트릭스는 우리 내면에 있다 (투르니에 vs 부르디외)
5. 불안, 가난한 이웃이 혁명을 일으키지 않는 이유
로빈슨 크루소와 타자의 발견 / 구조화된 구조이자 구조화하는 구조 / 전자본주의적 인간 vs. 자본주의적 인간 / 혁명의 최소 조건 / 아비투스의 대결
6. 허영, 내면 깊숙한 소외의 논리
웃음에는 혁명적인 힘이 있다 / 판단력 비판 vs. 판단에 대한 사회적 비판 / 취향, 분별하기와 구별짓기 / 허영의 뿌리 / 타자의 힘, 혹은 인간의 진정한 빛
4부. 건강한 노동을 선물하기 (유하 vs 보드리야르)
7. 쇼퍼홀릭과 워커홀릭, 금단의 무기력 너머
바람 부는 압구정동의 불빛 / 낡은 것은 폐기하고 새로운 것을 소비하라 / 금욕은 어떻게 사치가 되었나 / 소비, 자본주의 생산성의 비밀 / 수족관에 갇힌 낙지의 삶
8. 교환, 대가 없는 나눔의 마법
문명의 빛 반대편에 서려는 시인의 의지 / ‘공산당 선언’에서 ‘생산의 거울’까지 / 바타유, 저주의 몫의 바람직한 파멸 / 불가능한 교환을 꿈꾸며! / 자전거로 달리는 영원회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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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무의식의 트라우마를 찾아서 (이상 vs 짐멜)
1. 돈, 내 것이 아닌 욕망의 분열
첫사랑이 개인에게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앞으로 빠지게 될 모든 사랑의 원초적 트라우마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첫사랑의 실패로 우리는 다시는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망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고맙게도 시간은 절망감을 치유해주고 마음에 새로운 희망과 설렘의 바람을 넣어주지요. (p.27)
어느 날 새로이 사랑에 빠진 사람과 차를 마시다가, 나는 흠짓 놀라고 맙니다. 창밖을 물끄럼미 바라보는 상대의 목덜미를 본 순간, 첫사랑의 귀밑머리를 만졌던 감촉을 마치 지금인 양 생생히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첫사랑이 던진 미소, 혹은 수줍은 사랑 고백이 실타래 풀린 듯 뚜렷이 기억납니다. 이때 우리는 씁쓸한 미소를 짓게 되겠지요. 지금 새로 만난 사람과의 관계에서 첫사랑의 흔적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고스란히 반복되는 걸 직감하기 때문입니다.
푸르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소설에서 우리가 의식적으로 경험하는 자발적 기억과 자신도 모르게 경험하게 되는 비자발적 기억을 구분했습니다.
자발적 기억이 우리 의지에 따라 수행되는 기억이라면, 비자발적 기억은 어떤 사건이나 사물 혹은 사람과 우연히 마주쳤을 때 발생하는 기억입니다. 완전히 잊었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일이 어떤 일을 계기로 우연히 떠오를 때, 바로 비자발적 기억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첫사랑의 감정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트라우마를 안겨 준 중요한 대상들은 자발적 기억으로는 상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프로이트라면 자신의 아픈 상처를 기억하지 않으려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원초적 반응이라고 이야기 했겠지요. 유쾌한 것을 수용하고 불쾌한 것을 거부하는 '쾌락 원리'가 우리를 규정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억하지 않으려고 아무리 애써도 불쾌했던 흔적, 즉 트라우마는 마치 화상의 흔적처럼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야말로 우리 현재 삶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p.28-29)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마르셀 푸르스트 (김희영 옮김, 민음사)
정신분석 강의 - 지크문트 프로이트 (임홍빈, 홍혜경 옮김,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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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보이는 과자나 아이스크림이 줄 수 있는 쾌감은 실질적인 반면, 돈을 저축하면서 앞으로 다른 것을 구매할 수 있다고 꿈을 꾸는 쾌감은 관념적일 수밖에 없다. (p.30)
일본 제국주의가 경성 시민에게 가져다준 것은 바로 자본주의적 소비문화였다. (p.31)
이상의 문학을 통해 우리는 1930년대 지성인들의 자본주의와 모던의 세계를 어떻게 겪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날개 - 이상>
"내객이 아내에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나 아내가 내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나 일종의 쾌감 - 그 외의 다른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을 나는 또 이불 속에서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쾌감이라면 어떤 종류의 쾌감일까를 계속하여 연구하였다.....나는 아내 이불 위에 엎드러지면서 바지 포켓 속에서 그 돈 5원을 꺼내 아내 손에 쥐어준 것을 간신히 기억할 뿐이다. 이튿날 잠이 깨었을 때 나는 내 아내 방 아내 이불 속에 있었다. 이것이 이 삼십삼번지에서 살기 시작한 이래 내가 아내 방에서 잔 맨 처음이었다."
<날개>라는 단편소설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돈'이라는 소재가 반복해서 출현한다는 점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아내가 몸을 팔아서 번 돈으로 생계를 연명합니다. 유일한 취미는 아내가 바깥으로 몸을 팔러 나갈 때마다 혼자 남아서 볼록렌즈로 휴지를 태우는 일이지요. 아내는 매춘으로 받은 돈의 일부분을 꼬박꼬박 우리의 주인공에게 건네줍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처음엔 돈의 가치와 의미를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데 왜 아내는 매춘으로 번 돈을 주인공에게 주었을까요? 그것은 일종의 심리적 거래로 보입니다. 아내로서의 부도덕성을 묵인 받는 대가로 남편에게 돈을 건네준 것이지요. 그런데 어느 날 거꾸로 주인공이 아내 손에 돈을 쥐어 줍니다. 그날 비로소 처음으로 우리의 주인공은 자신의 골방이 아닌 아내의 방에서 잠자리에 듭니다. 마치 아내의 몸을 돈으로 샀던 손님들처럼 말입니다. 아내는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남편을 재워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아내가 내민 기존의 심리적 거래가 결렬되었으니까요. 이어지는 구절을 읽어보면
"정신이 한결 난다. 나는 지난밤 일을 생각해보았다. 그 돈 오원을 아내 손에 쥐어주고 넘어졌을 때에 느낄 수 있었던 쾌감을 나는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객들이 내 아내에게 돈 놓고 가는 심리며 내 아내가 내게 돈 놓고 가는 심리의 비밀을 나는 알아낸 것 같아서 여간 즐거운 것이 아니다. 나는 속으로 빙그레 웃어 보았다. 이런 것을 모르고 오늘까지 지내온 내 자신이 어떻게 우스꽝스러워 보이는지 몰랐다. 나는 어깨춤이 났다. 따라서 나는 또 오늘밤에 외출하고 싶었다. 그러나 돈이 없다. 나는 엊저녁에 그 돈 오원을 아내에게 주어버린 것을 후회하였다.....뜻밖에도 내 손에 쥐어지는 것이 있었다. 2원밖에 없다. 그러나 많아야 맛은 아니다. 얼마간이고 있으면 된다. 나는 그만한 것이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기운을 얻었다. 나는 그 단벌 다 떨어진 콜덴 양복을 걸치고 배고픈 것도 주제 사나운 것도 다 잊어버리고 활갯짓을 하면서도 또 거리를 나섰다."
<날개>는 돈을 배워나가는 주인공 이야기, 그러니까 일종의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우리의 주인공은 마치 돈을 전혀 모르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자본주의에 대해 미성숙한 태도를 보입니다. 그러나 이제 주인공은 돈이 있을 때 '활갯짓'이 가능함을 알 만큼 성장합니다. 손님들이 아내에게 돈을 주는 심리며 아내가 자신에게 돈을 주는 심리를 알아채버린 '나'는, 이제 도리어 지난밤 아내에게 수중의 돈을 모두 주어버린 것을 후회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지금 2원의 돈을 손에 쥔 것을 깨닫고 다시 기분이 좋아집니다. '돈'이야말로 그가 활갯짓할 수 있게 해주는 장본인이었던 셈이지요. 한편 자신과 마찬가지로 돈에 대해 알아채버린 남편이란 존재는, 몸을 파는 아내에게는 매우 부담스러운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주인공의 아내는 비를 맞아 감기에 걸린 남편에게 아달린이라는 최면제를 아스피린이라고 속여서 먹이지요. 아마도 그것이 그녀가 아내로서 아무런 거리낌없이 몸을 파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무척 아이러니하지요. 주인공 자신은 전통적 부부 윤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돈의 의미에 대해 조금씩 배워가고 있는데, 정작 몸을 파는그의 아내는 오랫동안 돈을 벌어왔으면서도 여전히 전통적 부부 윤리의 부담을 느끼니 말입니다.
<날개>라는 소설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주인공과 그의 아내 사이에 사실 사랑과 같은 남녀 사이의 애뜻한 감정이 전혀 도입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직 돈과 상품의 교환만이 두 사람 사이에 중요한 소재로 다루어질 뿐입니다. 이 때문에 유학적 사고에 기반을 둔 기존 부부 윤리도 마치 돈으로 살 수 있는 일종의 상품처럼 다루어질 수 있었지요. <날개>를 썼던 이상의 독특함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그는 우리 사회에 본격적으로 도래한 자본주의의 핵심을 '돈'의 논리를 통해 찾는 데 최초로 성공했던 작가입니다. <날개>의 주인공은 이상이 돈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그는 돈이란 인간에게 '날개를 단 것처럼' 활개를 치도록 만드는 신비한 마력을 지녔음을 간파했습니다. 자본주의의 핵심에 놓인 돈의 논리를 좀 더 깊이 이해하자면, 이상의 소설에서 멈출 수는 없습니다. 아직 돈의 논리를 이론적으로 명료하게 포착하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p.32-35)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정본 이상 문학전집 - 이상 (소명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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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허영, 내면 깊숙한 소외의 논리
4부. 건강한 노동을 선물하기 (유하 vs 보드리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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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한국 문학 > 6. 인문, 교양,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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