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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1. 서양 - 고전 소설

검은 고양이 - 에드거 앨런 포 (전승희 옮김, 민음사)

by handaikhan 2023. 2. 4.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8)

에드거 앨런 포 - 검은 고양이 (1843년)

 

내가 이제 써 나갈 이야기는 너무나도 괴이하면서 동시에 너무나도 평범한 이야기인데, 나는 독자들이 그 이야기를 믿어 줄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고, 믿어 달라고 부탁하지도 않는다. 나 자신의 감각들조차 내가 직접 보고 들은 증거를 거부하는데, 남들이 그것을 믿어 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실로 정신나간 일이리라. 하지만 난 분명 미친 것도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죽음을 목전에 앞두고 있으니, 오늘 내 영혼의 짐을 덜고자 하는 것뿐이다. 내 일차적인 목적은 한갓 집안일에 지나지 않는 아주 평범한 일련의 사건을 분명하고 간결한 언어로, 아무런 설명이나 덧붙임 없이 세상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그 사건들로 인해 나는 공포에 떨었으며 고통에 시달렸고 파괴되었다. 그러니 이 시간에 대해 상세히 설명 하는 일은 자제하겠다. 내게 그 사건들은 공포 그 자체였다. 하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에겐 그 사건이 바로크보다 덜 끔찍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또한 지금 내겐 환상적으로 느껴지는 사건이 사실은 평범한 사건임을 뒷받침할 만한 지식이 훗날 발견될지도 모르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지식으로 인해 이 사건을 더 침착하고 더 논리적으로, 더 차분하게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지식 덕분에 지금 내가 경외심을 갖고 묘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그때에는 자연스러운 인과관계로 인한 평범한 연쇄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겨질지도 모른다. (p.221-222)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내가 성격이 온순하고 사려 깊다고들 했다. 마음이 남다르게 여려서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동물들을 특히 사랑하는 나를 위해 부모님은 애완동물을 이것저것 구해 주셨다. 나는 대부분 애완동물들과 시간을 보냈고, 그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고 그것들을 쓰다듬어 줄 때가 가장 행복했다. 이런 성격이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된 뒤까지도 유지되었다. 바로 그런 것들이 내 큰 즐거움이었다. 충성심과 총기가 넘치는 개의 주인으로서 그 개를 극진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느꼈던 그런 만족감의 성격이나 정도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애를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무지한 짐승의 헌신적이고 자기 희생적인 사랑에는, 인간 따위의 보잘것 없는 우정과 덧없는 충성심을 시험해 볼 기회가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p.222)

 

그 녀석과 나 사이의 우정은 그렇게 몇 해 동안 이어졌다. 그런데 그 몇 해 동안 내 성격과 심리는 악마 같은 폭음 때문에 -이 사실을 고백하자니 얼굴이 붉어진다- 급격히 악화되었다. 나는 하루가 다르게 더 침울하고 쉽게 화를 내며 다른 사람의 감정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성격으로 변했다. 나는 나쁜 줄 알면서도 아내에게 심한 말을 퍼부어 대기를 서슴지 않았고, 종국에는 손찌검까지 하게 되었다. 애완동물들은 물론 내 성격의 변화를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나는 그들을 돌보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학대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플루토에 대해서만큼은 여전히 존중심을 유지했기 때문에 그 녀석까지 학대하지는 않았다. 토끼나 원숭이, 심지어 개까지도 우연히 혹은 나에 대한 애정으로 내 앞으로 얼쩡거리면 전혀 주저치 않고 그 녀석들을 학대했지만, 플루토에게만큼은 달리 대했다. 그러나 내 병 -술 만한 병이 또 어디 있을 것인가!- 은 점차 깊어졌고, 마침내 플루토도 내 사나운 심사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당시 노년에 접어들기 시작한 플루토의 성격도 다소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p.223-224)

 

어느 날 밤 늘 가던 시내 술집 중 한 곳에서 만취한 채로 집에 돌아왔는데, 얼핏 고양이가 나를 피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홧김에 그 녀석을 확 낚아챘더니 내 난폭한 행위에 놀란 녀석이 이빨로 내 손을 물어 상처가 약간 났다. 갑자기 악귀와도 같은 격노가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더 이상 제정신이 아니었다. 본래의 영혼이 순간적으로 육체를 벗어난 것 같았다. 몸의 모든 섬유조직 하나하나가 술이 부추긴 극악한 증오심으로 전율했다. 나는 조끼 주머니에서 주머니칼을 꺼내 펼쳐 들고, 그 불상한 짐승의 목을 손으로 꽉 눌러 잡은 뒤 한쪽 눈을 천천히 도려냈다! 저주받아 마땅한 그 잔혹 행위를 이렇게 적어 나가자니, 얼굴이 붉어지고 화끈거리며 몸서리가 쳐진다.

아침에 잠이 깨어 이성을 되찾고 전날 밤의 방탕함에 비롯된 흥분이 사라지자, 내가 지난밤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해 공포와 후회의 감정이 솟아났다. 그러나 그래 봤자 그런 감정은 희미하고 애매한 것에 지나지 않았으며, 영혼 깊숙한 곳까지 미치지는 못했다. 나는 이내 다시 극단적인 타락으로 빠져 들었고, 내 잔혹한 행위에 대한 기억은 모두 술 속에 잠겨 버렸다. (p.224-225)

 

그사이 고양이는 상처를 서서히 회복했다. 눈을 잃은 자리에 생긴 텅 빈 구멍은 보기에 참으로 흉측했다. 그러나 녀석은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는 않는 것 같았다. 이전처럼 집 안을 어슬렁거리기는 했지만, 내가 가까이 다가가기라도 하면,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극도로 겁에 질려 도망쳤다. 나에게도 옛날의 심정이 조금은 남아 있어서서 그 녀석이 처음에 그런 모습을 보일 때는 한때 그리도 나를 사랑했던 짐승이 이젠 이렇게 대놓고 나를 혐오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서글퍼졌다. 그러나 이 서글픈 감정이 짜증으로 변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리고 나를 회복 불가능한 파멸에 결정적으로 몰아넣기 위해서이기라도 하듯 도착적인 심리가 나를 찾아왔다. 이 도착적인 심리에 대해 철학은 아무런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도착적인 심리란 인간 감정의 원초적 충동 중 하나, 즉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인간으로부터 결코 분리해 낼 수 없는 본질적 기능 내지 감정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내 영혼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만큼이나 분명히 믿고 있다. 해서는 안 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사악하거나 어리석은 행위를 저질러 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법에 어긋나는 것임을 알면서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최상의 판단력을 무시하고 그 법을 위반하려는 충동에 끊임없이 사로잡히는 존재가 바로 인간 아니던가? 이 도착적인 마음이 마침내 나를 결정적인 파멸로 몰고 간 것이다. 바로 이 갈망, 스스로의 본성을 거슬러 혼동시키고, 오로지 잘못을 저지르기 위해 잘못을 저지르게 만드는 인간 영혼의 불가해한 갈망 때문에,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 짐승에게 내가 준 상처를 아물게 하기는 커녕 그 녀석을 아예 죽여 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어느 날 아침 나는 너무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그 녀석의 목에 올가미를 씌운 다음 나뭇가지에 매달았다. 그렇게 매달 때 내 눈에서는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 나왔고, 마음은 회한으로 가득 차서 비통하기가 그지없었다. 그 짐승이 나를 끔찍이 사랑해 왔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짐승이 내게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녀석을 목매달았던 것이다. 그런 행위를 함으로써 내가 범죄를 저지르고 있음을, 가장 자비롭고도 가장 무서운 신의 가없는 자비심도 도달할 수 없는 곳으로 내 불멸의 영혼을 쫓아낼 -만일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치명적인 범죄행위를 저지르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그 녀석의 목을 매단 것이다. (p.225-226)

(함께 읽어면 좋은 책)

심리학의 즐거움 - 크리스 라반, 쥬디 윌리암스 (김문성 옮김, 휘닉스)

 

범죄의 해부학 - 마이클 스톤 (허형은 옮김, 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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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계속해서 그 고양이를 쓰다듬어 주다가 집에 돌아가려 하자 그 녀석이 나를 따라가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가끔씩 몸을 숙여 그 고양이를 쓰다듬어 주면서 나를 따라오도록 가만히 놔 두었다. 집에 도착하자 고양이는 마치 자기 집에 귀가한 양 향동했고, 이내 내 아내의 사랑을 듬뿍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 경우엔 이내 그 고양이에 대한 혐오감이 내부에서 용솟음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 기대와는 정반대로 말이다. 도대체 어떻게 그리고 왜 그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고양이가 나를 따르는 것이 분명해지자 나는 점점 더 녀석이 싫어지고 녀석에 대해 짜증스러운 감정만 늘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같은 혐오감과 짜증은 점차 더욱더 강렬한 증오로 발전했다. 따라서 나는 그 고양이를 피했다. 그래도 일종의 수치심 때문에, 즉 이전에 내가 저질렀던 잔혹 행위에 대한 기억 때문에, 녀석을 신체적으로는 학대하는 일만은 피했다. 녀석을 때리거나 다른 식으로 학대하지는 않는 가운데 몇 주가 흘러갔다. 그러나 녀석을 바라볼 때 점차, 아주 서서히, 말로 표현할 길 없는 혐오감을 느꼈고, 그 짐승의 존재가 너무나 가증스러워 녀석으로부터 역병의 숨결을 피하기라도 하듯 말없이 도망을 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짐승에 대한 나의 증오심은 내가 녀석을 집으로 데려온 다음 날 아침 내가 발견한 사실, 즉 그 녀석도 플루토처럼 눈을 하나 잃고 없다는 사실 때문에 더 심해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 사실은 녀석에 대한 아내의 사랑을 더욱 공고히 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아내는 인도주의적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도주의적 감수성은 한때는 내 특징이기도 했고, 그 시절엔 나도 그런 감수성 덕분에 참으로 단순하고도 순수한 즐거움을 누리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그 녀석을 싫어하면 싫어할수록, 그 고양이란 녀석은 나를 더욱더 좋아하고 따르는 것 같았다. 그 녀석이 내 발뒤꿈치를 어찌나 끈질기게 졸졸 따라다녔던지, 아마 독자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내가 의자에 앉아 있으면 녀석은 언제나 의자 밑으로 들어가 웅크리고 앉아 있거나, 아니면 내 무릎 위로 날렵하게 뒤어올라 나한테 애무를 퍼부어 나름 소름 끼치게 했다. 내가 일어나 걸으려고 하면 내 두 발 사이로 끼어들어 나를 넘어질 뻔하게 만들었고, 아니면 길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내 옷을 짓밟으며 가슴께로 기어 올라갔다. 그럴 때 나는 주먹질로 그 짐승을 박살내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꾹 참았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이전의 범죄행위에 대한 기억 때문이기도 했고,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이 자리에서 고백하거니와- 그 짐승에 대해 느끼던 절대적인 공포심 때문이기도 했다. 

이 공포가 육체적인 위해에 대한 공포라고 말한다면 구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그러나 육체적인 위해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면, 다른 어떤 종류의 공포라고 정의하는 게 좋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 짐승이 내게 불러일으킨 공포와 전율이 가공의 괴물에 대해 상상함으로써 더 커졌다는 사실을 부끄럽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p.229-231)

 

그 윤곽은 아주 서서히,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변하다가 마침내 분명한 형태를 띠게 되었다. 윤곽의 색이 너무나 서서히 변했기 때문에, 내 이성은 오랫동안 그건 나의 상상의 산물일 뿐이라며 내가 목격했던 걸 애써 부인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반점은 그즈음 이름을 말하면 몸서리가 쳐지는 바로 그 물체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로 그 형태 때문에 나는 그 짐승을 더욱더 혐오하고 두려워하게 되었으며, 감히 그럴 용기만 있었다면 그 괴물 같은 짐승을 내 손으로 죽여 버렸을 것이다. 그 반점은 그때 아주 무시무시하고 소름 끼치는 것의 모양, 즉 교수대의 모양을 띠었던 것이다. 교수대여! 오, 서글프고 끔직한 공포와 범죄의 기계, 고뇌와 죽음의 기계여!

나는 정말 비참한 기분이었다. 그 비참함은 단순한 인간적 비참함의 경지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한갓 야수에 지나지 않는 그 존재가 지고하신 신의 모습을 본떠 만들어진 인간인 나에게 그렇게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괴로움을 주다니! 그 녀석의 동료인 또 다른 야수를 아무렇지도 않게 죽여 버린 내게 말이다. 오호, 슬프도다! 나는 더 이상 낮에도 밤에도 휴식이라는 충복을 알지 못했다! 낮 동안에는 그 짐승이 나를 한시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그리고 밤에는 매시간 형용할 길 없이 무시무시한 꿈에서 놀라 깨어나 보면, 그 존재의 뜨거운 숨결이 내 얼굴에 느껴졌으며, 떨쳐 버릴 수 없는 악몽의 헌신적인 그 존재의 엄청난 무게가 내 심장을 영원히 압박하고 있었다!

이 같은 격통의 무게로 인해 내 안에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선한 마음이 항복을 선언했다. 사악한 생각, 더없이 어둡고 사악한 생각들이 내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 평소에도 늘 우울했지만 이제는 모든 사물과 인간을 증오하게 되었다. 따라서 나는 이제 느닷없이 자주, 그리고 걷잡을 길 없이 분출하는 격노의 감정에 나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게 되었으며, 그 결과 -참, 불쌍하기도 하지!- 온순한 아내가 늘 묵묵히 그것을 받아 낼 수밖에 없게 되었다. (p.231-232)

 

(...)도끼를 번쩍 쳐들어 고양이를 향해 내리쳤다. 도끼가 내가 원한 곳으로 떨어졌다면 고양이는 당장 즉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가 손을 들어 가격을 막았다. 방해를 받자 더욱 미칠 듯 화가 난 나는 그녀의 손에서 내 팔을 빼낸 뒤 그녀의 머리를 향해 도끼를 내리쳤다. 그녀는 신음 소리 한번 못 내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이 끔찍한 살인 사건이 벌어지자마자 나는 즉시 온 정력을 기울여 시체를 감추는 작업에 착수했다.

(...)

시체를 지하실 벽 속에 넣고 발라 버리는 방법이었다. 중세의 수도사들이 희생자들을 처리했다고 전해지는 방법 그대로 말이다. (p.233-234)

 

작업의 다음 단계는 나를 이렇게 고생시킨 원인인 그 짐승을 찾는 것이었다. 녀석을 죽일 수밖에 없겠다고 굳게 결심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녀석이 내 눈앞에 나타났더라면 그 녀석이 맞았을 운명에는 아무런 의심의 여지도 없었다. 그러나 그 교활한 짐슴은 내가 바로 얼마 전에 보인 폭발적인 분노에 크게 놀란 나머지 내 기분이 그런 상태에 있을 때 내 앞에 나타나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한 듯했다. 그 가증스러운 짐승이 사라지고 나서 내가 맛본 더할 나위 없이 깊고도 행복한 안도감을 묘사하거나 상상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그 고양이는 그날 저녁 내내 내 눈앞에 얼씬거리지 않았고, 덕분에 나는 그날밤 그 짐승을 집에 데리고 온 이후 처음으로 편안하고도 깊은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그렇다, 난 잠을 잘 수 있었다. 내 영혼에 살인의 짐을 지고서도 말이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지만 내 고문자는 여전히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따. 나는 다시 한 번 해방된 인간이 되어 숨을 쉴 수 있었다. 그 괴물 같은 녀석이 공포에 질린 나머지 영원히 내 집을 떠났구나! 더 이상 그 녀석을 보지 않아도 되는구나! 난 너무나 행복했다! 내 흉악한 행위에 대한 죄의식에 시달리지도 않았다. 주위에서 더러 질문을 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물론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나는 이제 행복한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고 굳게 믿었다. (p.234-235)

 

"참, 그런데 여러분, 이 집, 이 집은 아주 튼튼하게 지어진 건물입니다. 아주 탁월하게 잘 지어진 건물이지요. 이 벽들, 이 벽들은 아주 단단하게 발라져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순수한 과시욕에 사로잡혀,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들어 지하실의 벽 중에서도 내 소중한 아내의 시체를 넣어 놓은 바로 그 지점을 탕탕 두들겼다.

그러나, 신이시여, 사탄의 송곳니로부터 저를 보호해 주소서! 내가 두들기는 소리에 대한 반향이 고요 속으로 잦아들자 마자 갑자기 그 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듯 그 무덤 속으로부터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처음에는 어린아이가 훌쩍훌쩍 우는 소리처럼 낮고 단속적이다가, 이내 길고 요란하며 지속적이면서도 괴아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소리 같지 않은 큰 고함 소리로 변했다. 그것은 공포와 의기양양함이 반반 섞인 듯한 통곡의 소리, 울부지는 듯한 비명 소리로, 고통에 사로잡힌 저주받은 자들과 그들에게 의기양양하게 고통을 가하는 악마들의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가 합쳐진 듯한, 오로지 지옥에서나 들릴 것 같은 소리였다.

(....)다음 순간 열두 개의 건장한 팔이 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벽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렸다. 이미 엄청나게 썩어 들어간, 굳은 피가 여기저기 얼룩진 시체가 똑바로 선 채 목격자들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체의 머리 위에는 붉은 입을 활짝 벌리고 이글거리는 외눈을 한 그 가증스러운 짐승이 앉아 있었다. 바로 그 교활한 짐승 때문에 내가 살인을 저질렀고, 또한 바로 그 짐승의 고자질 소리 때문에 내가 교수형 집행인의 손아귀에 떨어진 것이다. 내가 그 괴물을 무덤 속에 넣고 벽을 발라 버렸던 것이다! (p238-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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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1809년 1월 19일 ~ 1849년 10월 7일)

미국의 작가·시인·편집자·문학평론가.

미국 낭만주의의 거두이자 미국 문학사 전체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는 작가이다. 미스터리 및 마카브레 작품들로 가장 유명하며, 미국 단편 소설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또한,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최초로 만들어냈다고 평가받으며, 나아가 과학소설 장르의 형성에 이바지했다. 그는 오로지 저술과 집필을 통해서만 생활하려 한 미국 최초의 전업작가이며, 이 때문에 생전에 심한 재정난과 생활고를 겪으며 유년기를 제외한 평생을 불행하게 살았다.
보스턴에서 배우 부부의 둘째 아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1810년 가정을 버리고 떠나 버렸고, 이듬해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고아가 되었다. 이후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 살던, 존 앨런과 프란세스 앨런 부부가 어린 포를 데려갔다. 앨런 부부는 포를 정식으로 입양하지는 않았으나, 포는 청소년이 될 때까지 그들과 함께 살았다. 어른이 된 포는 도박 빚 및 교육비 문제로 존 앨런과 사이가 악화되었다. 포는 버지니아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돈이 없어서 한 학기만 다니고 중퇴했다. 포는 교육비 문제로 앨런과 싸우고 1827년 육군에 입대했다. 이때쯤 출판 경력이 시작되어 1827년 ‘보스턴 사람(Bostonian)’이라는 필명으로 《타메를란 외 시집》을 출간했다. 1829년 프란세스 앨런이 사망하자 포와 존 앨런은 일시적으로 화해를 했다. 그러나 이후 웨스트포인트 사관후보생이 되었다가 장교가 되지 못할 것 같자 시인이자 작가가 되겠다는 다짐을 하고 존 앨런과 완전히 갈라졌다.
포는 산문문학으로 관심사를 옮겨 그 뒤 몇 년 동안 문학학술지 및 정기간행물에 글을 기고했고, 특유의 문학비평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직업 관계로 포는 볼티모어·필라델피아·뉴욕 시 등지를 전전했다. 1835년 볼티모어에서 13살짜리 사촌 버지니아 클렘과 결혼했다. 1845년 포는 시집 《도래까마귀》를 출간해 일시적인 성공을 거두었다.하지만, 2년 뒤 아내 버지니아가 폐결핵으로 죽었다. 그 뒤 몇 년 동안 포는 《펜》이라는 이름의 자기 문학지를 만들기로 계획했으나(이후 제목은 《스타일러스》로 변경), 계획을 실현으로 옮기기 전에 사망했다. 1849년 10월 7일, 향년 40세였다. 포는 볼티모어에서 죽었는데, 그 사인이 불분명하다. 알코올·뇌내출혈·콜레라·마약·심장병·광견병·자살·폐결핵 등 다양한 원인이 거론되고 있다.
에드거 앨런 포와 그의 작품은 미국 문학뿐 아니라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으며, 우주론과 암호학 같은 문학 외의 분야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포의 작품들은 오늘날 문학·음악·영화를 막론하고 여러 대중문화에서 접할 수 있으며, 그의 생가 수 채가 박물관으로 지정 운영되고 있다. 전미 미스터리 작가상은 미스터리 장르에 포가 남긴 족적을 기념하여 매년 에드거 상이라는 상을 수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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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 소설 전집 (바른번역, 코너스톤 5권)

포 단편선 (김석희 옮김, 열린책들 세계문학)

포 단편선 (김기철 옮김, 문예 세계문학)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 (전승희 옮김, 창비 세계문학)

우울과 몽상 (홍성영 옮김, 하늘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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