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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1. 서양 - 고전 소설

데미안 - 헤르만 헤세 (안인희 옮김, 문학동네)

by handaikhan 2023. 2. 5.

문학동네 세계문학 101

헤르만 헤세 - 데미안 (1919년)

 

나는 오로지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에 따라 살아가려 했을 뿐, 그것이 어째서 그리도 어려웠을까?

 

내게는 이 이야기가 중요하다. 이것은 나 자신의 이야기, 한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가공의 인간, 어떠 가능한, 어떤 이상적인, 또는 어쨌든 존재하지 않는 한 인간의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로 존재하는, 단 한 번분인, 살아 있는 인간의 이야기인 것이다. 하지만 진짜로 살아 있는 인간이란 대체 무엇이냐에 대해 오늘날 사람들은 예전보다 잘 모른다. 그 모두가 저마다 자연의 아주 소중한, 닥 한 번뿐인 시도인 인간들을 총으로 쏘아 대규모로 죽이는 판이니 말이다. 우리가 단 한번뿐인 인간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면, 누구든 우리 각자를 정말 총알 하나로 세상에서 완전히 없애버릴 수 있다면 이야기를 한다는 건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다. 인간은 누구나 저 자신일 뿐만 아니라 세상의 현상들이 교차하는 지점, 단 한 번뿐이고 아주 특별한, 어떤 경우에도 중요하고 특이한 한 지점이다. 단 한 번만 그렇게 존재하는, 두 번 다시는 없는 지점이다. 그래서 각자의 이야기는 소중하고 영원하고 거룩하며, 그래서 어쨌든 아직 살아서 자연의 의지를 충족시키는 인간은 누구라도 극히 주목할 만한 경이로운 존재인 것이다. 그 모든 인간 각자에게서 정신이 형상이 되고, 각자에게서 피조물이 고통받고, 각자에게서 구세주가 십자가에 못 박힌다.

오늘날에는 인간이 대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드물다.. 인간이 무엇인지 감을 잡은 사람들은 죽을 때 더 가벼운 마음으로 죽는다. 이 이야기를 다 쓰고 나면 나도 더 가벼운 마음으로 죽을 것이다.

나 자신이 무엇인가를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그냥 탐색하는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렇지만, 이제는 별들과 책들에서 탐색하지 않고 그저 내 안에서 피가 속삭이는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

모든 사람의 삶은 제각기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길의 시도이며 좁은 오솔길을 가리켜 보여주는 일이다. 그 누구도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이 없건만,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애쓴다. 어떤 이는 둔하게, 어떤 이는 더 환하게, 누구나 제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누구나 제 탄생의 찌꺼기를, 저 근원세계의 점액질과 알껍질을 죽을 때까지 지니고 다닌다. 어떤 이들은 결코 인간이 되지 못하고 개구리나 도마뱀이나 개미로 남는다. 어떤 이들은 상체는 인간인데 하체는 물고기다. 하지만 누구나 인간이 되라고 던진 자연의 내던짐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기원, 그 어머니들은 동일하다. 우리는 모두 같은 심연에서 나왔다. 하지만 깊은 심연에서 밖으로 내던져진 하나의 시도인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누구나 오직 자기 자신만을 해석할 수 있을 뿐이다. (p.7-9)

 

내가 열 살 때 우리 소도시의 라틴어 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체험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련다.

그 시절로부터 짙은 향기가 풍겨 내면에서부터 아픔과 상쾌한 전율로 나를 건드린다. 어두운 골목길과 밝은 집들과 탑들,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와 사람들의 얼굴, 따스한 안락함과 쾌적함으로 가득 찬 방들, 비밀과 유령에 대한 깊은 두려움으로 가득 찬 방들, 따스한 비좁음, 작은 토끼와 하녀들, 온갖 가정상비약, 말린 과일의 향기가 풍겨온다. 두 세계가 거기 한데 뒤섞여 있어다. 두 극단의 낮과 밤이 나왔다.

한 세계는 아버지의 집인데 이 세계가 더 좁다. 실제로 오직 나의 부모님만이 있는 세계였다. 내가 잘 아는 그 세계는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이름, 사랑과 엄격함, 모범과 학교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온화한 공채, 명료함과 깨긋함이 이 세계의 것이었고, 부드럽고 친절한 이야기, 깨끗이 씻은 손과 옷가지, 좋은 습관이 여기 속했다. 아침에 찬송가를 부르고 크리스마스를 축하 하는 곳이기도 했다. 이 세계에는 미래로 통하는 곧은 선들과 길들이 있었다. 의무와 죄, 양심의 가책과 참회, 용서와 좋은 의도, 사랑과 존경, 성경말씀과 지혜가 있었다. 삶을 분명하고 깨끗하게, 아름답고 질서 있게 하려면 이 세계에 머물러야 했다.

또다른 세계는 우리 집 한가운데서 시작하지만 전혀 다른 세계였다. 냄새도 다르고, 말도 다르고, 약속이나 요구도 달랐다. 이 두번째 세계에는 하녀들과 기술을 배우는 견습공들이 있었다. 거기에는 귀신 이야기와 추잡스러운 소문들이 있었고 끔찍한 것, 유혹적인 것, 무시무시한 것, 수수께끼 같은 온갖 것이 있었다. 도살장이며 감옥, 술 취한 사람들과 말다툼하는 여자들, 새끼를 낳는 암소들, 쓰러진 말들이 있었고 강도질, 사람을 때려죽인 일, 자살 등의 이야기들도 있었다. 이런 모든 아름답고도 무섭고, 사납고도 잔인한 일들이 사방에 있었다. 바로 다음 골목에서, 바로 옆집에서 경찰관과 부랑자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술에 취한 사내들이 마누라를 두들겨 패고, 저녁이면 공장에서 젊은 아가씨 무리가 쏟아져나오고, 노파들이 사람을 마법에 걸리게 만들거나 병이 들게도 하고, 숲에는 강도들이 살며, 방화범들이 경관들에게 붙잡혔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는 우리 방들만 빼고는 사방 어디서나 이 두번째의 격한 세계가 쏟아져들어와 냄새를 풍겼다. 그것이 참으로 좋았다. 우리 집에 평화와 질서와 휴식이 있다는 사살, 의무와 선한 양심, 용서와 사랑이 있다는 사실이 멋졌다. 그리고 단 한 번만 폴짝 뛰면 재빨리 어머니에게로 도망칠 수 있는 곳에 다른 온갖 것도 다 있고, 그 모든 날카로운 소리와 어둡고도 폭력적인 것이 있다는 사실도 멋졌다.

가장 이상한 일은 그 두 세계가 나란히 붙어 있다는 것이었다. 두 세계는 얼마나 가까이 붙어 있었던가! 예를 들면 우리 집 하녀 리나는 저녁예배 시간에는 거실 문가에 앉아 깨끗이 씻은 두 손을 매끈하게 다린 앞치마 위에 얹은 채 밝은 목소리로 우리와 함께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럴 때 그녀는 완전히 아버지와 어머니의 세계, 우리의 세계, 밝고 올바른 세계에 속했다. 그러고 나서 곧바로 부엌이나 외양간에서 내게 머리 없는 난쟁이 이야기를 해줄 때나 작은 푸줏간에서 이웃 아낙네들과 싸움질을 할 때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다른 세계에 속했고 비밀에 둘러싸인 사람이 되었다. 모든 것이 그런 식이었다. 나 자신이 가장 그랬다. 물론 나는 밝고 올바른 세계에 속했고 우리 부모님의 자식이었지만, 눈과 귀를 어디로 향하든 어디에나 또다른 것이 있었다. 그것이 내게는 때때로 낯설고 무시무시했고 또 그곳에서는 규칙적으로 양심의 가책과 두려움을 얻곤 했지만, 그래도 나는 이 다른 것들 속에서도 살고 있었다. 심지어 이따금 이 금지된 세계에 사는 것이 가장 좋기도 했다. 그리고 밝은 세계로 돌아오는 일이 - 꼭 필요하고도 좋은 일이었건만 - 덜 아름다운, 더 지루하고도 황량한 곳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내 삶의 목표는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되는 것, 그토록 밝고 순수하고, 그토록 뛰어나고 잘 정돈된 상태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이르는 길은 아득히 멀었고, 거기 도달하려면 학교에 앉아 공부를 하고 연습을 하고 시험을 보아야 했다. 그 길은 언제나 또다른 더 어두운 세계의 바로 옆을 스쳐지나가거나 아예 그 세계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길이었으니, 그곳에 머물러 거기 빠져드는 것도 아주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었다. 그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잃어버린 아들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그들에게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탐독했다. 거기선 언제나 아버지와 선한 세계로 돌아오는 것이 구원이며 위대한 일이었다. 나는 그것만이 올바르고 선하고 바람직한 일임을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런 이야기에서 악당과 잃어버린 아들들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 부분이 훨씬 더 매력적이었고, 당시 솔직하게 말해도 되었다면 잃어버렸던 아들이 참회하고 다시 제 길을 찾는 것이 때때로 퍽이나 유감이었다. 하지만 그런 말은 물론 입 밖에 내지 않았고 또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냥 예감이나 막연한 가능성처럼 감정의 맨 밑바닥에 아슴푸레하게만 존재했다. 악마를 상상할 때면 나는 언제나 악마가 저 거리 아래쪽에 있는 모습을 아주 똑똑히 떠올릴 수 있었다. 변장하거나 아니면 아예 변장도 하지 않은 채로, 또는 연시가 열리는 시장이나 선술집 같은 데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지만 우리 집에 있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p.10-13)

 

"너희 집엔 돈이야 충분하지. 그건 네가 알아서 해. 그러니까 내일 수업 끝난 다음에 보자. 이 말만 해두지. 안 가져왔다간 - " 그는 끔찍한 눈길로 나를 쏘아보고는 한번 더 침을 뱉고 그림자처럼 사라져버렸다.

나는 계단을 올라갈 수가 없었다. 내 삶은 무너졌다. 도망쳐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거나 아니면 물에 빠져 죽을까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그 어느 쪽도 분명하게 그려볼 수가 없었다. 나는 집으로 올라가는 맨 아래쪽 계단에 그대로 주저앉아 어둠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는 불행에 온몸을 맡겨버렸다. 리나가 땔나무를 가지러 광주리를 들고 아래로 내려왔다가 울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집에서 아무 말도 하지 말아 달라고 리나에게 부탁하고는 위로 올라갔다. 유리문 옆의 격자옷걸이에 아버지의 모자와 어머니의 양산이 걸려 있었다. 이런 물건들을 보자 집의 따스함이 밀려왔다. 나는 마치 잃어버린 아들이 옛날 고향의 방들을 보며 냄새를 맡는 듯 간절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그 따스함을 맞아들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이제 더는 내 것이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밝은 세계였다. 나는 죄의식에 가득 찬 채로 낯선 물결에 빠져들고, 모험과 죄악에 연루되어 적에게 위협을 당하고, 위험과 두려움과 수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자와 양산, 사암으로 된 낡은 바닥, 현관 장롱 위에 걸린 커다란 그림, 저 안 거실에서 울려 나오는 누이의 목소리, 그 모든 것이 이전보다 더욱 사랑스럽고 다정하고 소중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위안이나 안전한 선량함이 아니라 순수한 비난이었다. 그 모든 것이 이제 내 것이 아니었으니, 나는 그 명랑함과 고요함에 동참할 수 없었다. 나는 매트에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 더러움을 두 발에 묻힌 채 집에선 알지도 못하는 그림자를 집으로 끌어들였다. 전에도 나는 이미 얼마나 많은 비밀을 가졌던가, 얼마나 많은 두려움을 가졌던가.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오늘 내가 이 공간 안으로 가져온 것에 비하면 그저 놀이이고 농담에 지나지 않았다. 운명이 내 뒤를 따라 들어와 나를 향해 두 손을 뻗었으니, 어머니도 그 손길에서 나를 보호할 수 없었고, 그 손길에 대해 알아서도 안 되었다. 나의 범죄가 도둑질이든 거짓말이든 마찬가지였다. 내 죄는 이것 아니면 저것이 아니었다. 악마에게 손을 내민 그 자체가 죄였다. 어쩌자고 나는 함께 갔던가? 어쩌자고 크로머의 말을 들었던가? 아버지의 말도 그렇게 잘 들은 적이 없건만, 어쩌자고 저 도둑질 이야기를 꾸며냈던가? 어쩌자고 무슨 영웅의 행동이기라도 한 양 범죄 이야기로 허풍을 떨었던가? 이제 악마가 내 손을 잡았고, 적이 내 뒤를 쫓았다.

한순간 내일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무엇보다 나의 길이 이제는 계속해서 저 아래 어둠으로 내려가리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나의 잘못에서 새로운 잘못이 나오리라는 것을, 누이들 사이에 내가 있고 부모님에게 인사하고 키스하는 일이 거짓이리라는 것을, 그리고 내가 속으로 감춰둬야 할 운명과 비밀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을 뚜렷이 느꼈다.

아버지의 모자를 바라보자 한순간 마음속에 신뢰와 희망이 번쩍 나타났다. 아버지에게 모조리 말해야지. 아버지의 판단에 따라 벌을 받고 아버지에게 비밀을 털어놓아 나의 구원자로 삼아야지. 지금까지 자주 그랬듯이 단 한 번의 참회면 되리라, 힘들고 괴로운 한 시간, 후회에 가득 차서 힘겹게 용서를 간청하는 일 한 번이면.

얼마나 달콤한 울림이었던가! 얼마나 멋진 유혹이었던가!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내가 그러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제 나는 비밀을, 나 혼자서만 감당해야 하는 죄를 지녔다. 어쩌면 나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고, 이 순간부터 영원히 나쁜 쪽에 속하고, 사악한 자들과 비밀을 공유하고, 그들에게 의존하며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과 같은 자가 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남자 행세, 영웅 행세를 했으니 이제 그 결과를 감당해야만 했다. (p.22-24)

 

내가 안으로 들어섰을 때 아버지가 나의 젖은 신발을 꾸짖은 것은 차라리 다행이었다. 덕분에 아버지는 더 나쁜 일을 알아채지 못한 채 딴 데로 주의를 돌렸고, 나는 은밀히 다른 일에 연결시켜서 비난을 견딜 수 있었다. 그 순간 이상하고도 새로운 느낌이, 갈고리들이 잔뜩 박힌 듯 사악하고도 날카롭게 베어내는 느낌이 번뜩였다. 아버지보다 내가 우월하다는 느낌이었다! 한순간 아버지의 무지에 대해 어떤 경멸감 같은 것을 느꼈다. 내 젖은 신발에 대한 아버지의 나무람이 하찮게 여겨졌다. '만일 아버지가 그걸 아신다면! 하는 생각이 들면서 실제로는 살인을 고백해야 하는 처지인데 빵을 훔친 일로 심문을 맡는 범죄자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추잡하고도 역겨운 느낌이었지만 강렬했고, 그런 만큼 깊은 매력이 있었다. 그것은 다른 어떤 생각보다도 더욱 확고하게 나를 내 비밀과 죄악에 얽어맸다. 어쩌면 지금쯤 크로머가 경찰관한테 가서 나를 고발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이렇게 어린아이 취급을 당하는 동안 내 머리 위로 사나운 비구름이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 이야기한 전체 체험에서 이 수간이 중요하고도 지속적인 부분이다. 이것은 아버지의 거룩함에 드러난 최초의 균열이었고, 나의 어린 시절을 떠받치던, 그리고 누구나 스스로 자기 자신이 되기 전에 무너뜨리지 않으면 안 되는 기둥들에 나타난 최초의 금이었다. 우리 운명의 본질적인 내면의 선은 아무도 보지 못하는 이런 체험들로 이루어진다. 이런 금이나 균열은 도로 덮여 아물고 잊히지만, 가장 비밀스러운 방에서는 계속 살아남아 피를 흘리는 것이다.

곧 이 새로운 감정이 두려워졌다. 나는 용서를 받고 싶어 하마터면 아버지의 발에 키스할 뻔했다. 하지만 누구라도 본질적인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할 수는 없다. 어린아이 역시 현자와 마찬가지로 그 사실을 아주 깊이 느끼고 잘 아는 법이다.

나는 내게 일어난 일을 곰곰이 생각하고 또 내일을 위한 방법도 궁리해야 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저녁 내내 오로지 우리 집 거실의 변화된 공기에 익숙해지는 일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다. 벽시계와 탁자, 성경과 거울, 책꽂이와 벽에 걸린 그림들도 나와 작별을 고했다. 나의 세계, 선량하고 행복한 나의 삶이 이제 과거가 되는 모습을, 내게서 떨어져나가는 모습을 나는 얼어붙은 심정으로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내가 수액을 빨아들이는 새로운 뿌리를 저 바깥 어둡고 낯선 곳에 내려 고정시켰음을 느껴야 했다. 나는 처음으로 죽음을 맛보았다. 죽음 쓴맛이 났다. 죽음은 탄생이었고, 무시무시한 혁신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이기도 했으니까. (p.24-25)

 

지금이라도 문득 크로머의 휘파람 소리가 다시 들린다면 나는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다. 그후로 나는 그 소리를 자주 들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그 어떤 장소나 놀이, 그 어떤 일이나 생각이라도 그 휘파람 소리가 뚫고 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없었고, 그 소리는 그때부터 나를 종속시켜 내 운명이 되고 말았다. 세상이 알록달록하게 물든 따사로운 가을날 오후면 나는 내가 무척 좋아하던 우리 집 작은 꽃밭에 머물곤 했다. 나는 이전 시절의 아이들 놀이를 다시 하고 싶은 이상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나보다 조금 더 어린 소년, 아직 선량하고 자유롭고 아무런 잘못도 없는 품 안의 소년처럼 굴었다. 하지만 그 한가운데로 크로머의 휘파람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면, 언제나 그러려니 하면서도 늘 소스라칠 만큼 방해받고 놀라면서 맥이 끊기고 온갖 상상도 무너지곤 했다. 그럼 나는 가야만 했다. 나를 괴롭히는 녀석을 따라 고약하고 더러운 장소로 가서 그에게 변명하고 또 돈을 내놓으라는 추궁을 들어야 했다. 이 일은 기껏해야 몇 주 동안 계속되었지만 내게는 여러 해, 아니 영원히 계속되는 일만 같았다. 돈이 생기는 일은 드물었다. 5 페니히 동전 또는 리나가 장바구니를 올려놓은 부엌 탁자에서 훔쳐낸 10 페니히가 고작이었다. 나는 번번이 크로머에게 야단을 맞고 비웃음을 샀다. 그를 기만하고 그의 정당한 권리를 뺏는 사람은 오히려 나였다. 내가 그의 돈을 훔친 사람이었고, 내가 그를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살면서 그렇게 자주 절박함이 가슴까지 차오른 적이 없었으며, 그보다 더 큰 좌절과 더 큰 종속감을 느낀 적도 없었다. (p.30-31)

 

당시 나는 일종의 착란상태였다. 우리 집의 질서 정연한 평화 한가운데서 나는 유령처럼 소심하고도 고통스럽게 살며 다른 가족의 삶에 동참하지 못하고, 한 시간이라도 무언가에 열중하는 일이 드물었다. 나한테 자꾸 이야기를 시키려던 아버지에게는 차갑고도 폐쇄적인 태도만을 보였다. (p.32-33)

 

"그래, 그러니까, 그렇다면 카인은 전혀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는 말이네? 그럼 성경에 나온 이야기도 전부 참말이 아니라는 거고?"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그렇게 오래된 이야기들은 언제나 참말이야.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언제나 있는 그대로 기록되지도 않고, 언제나 제대로 설명되지도 않아. 짧게 말하자면 내 생각에 카인은 멋진 사람이었어. 사람들은 카인이 두려워서 그에게 그런 이야기를 덧붙여놓은 것뿐이지. 이야기는 그냥 소문일 뿐이야. 그러니까 사람들이 여기저기 제멋대로 지껄여댄 거란 말이지. 카인과 그의 후손이 일종의 '표'를 지녔고,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랐다는 것만이 진짜야." (p.39)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카인 - 주제 사라마구 (정영목 옮김, 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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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도 어딘가 정상이 아니었다. 아니 대단히 비정상이었다. 나는 밝고도 깨끗한 세계에서 살아왔다. 나 자신이 아벨 부류였다. 그런데 이제 나는 '다른'세계에 아주 깊숙이 빠져 있었다. 그토록 나락으로 떨어져 가라앉아버려 근본적으로 어찌해볼 도리가 별로 없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그렇다. 지금 기억 하나가 번뜩이면서 한순간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지금의 불행이 시작되던 그 메스꺼운 저녁에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 나는 한순간 아버지와 그의 밝은 세상과 그 지혜를 갑자기 꿰뚫어 본 양 경멸했었다! 그렇다. 그 순간 나 자신이 카인이 되어 그 표를 지녔고, 그 표는 수치가 아니라 뛰어남의 표지였다. 나는 나의 사악함과 불행으로 아버지보다 더 높은 자리에, 선하고 경건한 사람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서 있었던 것이다. (p.40-41)

 

이런 생각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것은 내 어린 영혼이라는 샘에 떨어진 돌멩이였다. 한동안, 아니 아주 오랫동안 카인, 때려죽임, 표 따위가 내 생각의 중심점이 되었다. 깨달음, 의심, 비판을 시도할 때마다 나는 늘 이 중심점에서 출발하곤 했다. (p.41)

 

그사이에도 프란츠 크로머와의 일은 줄곧 피할 수 없는 길을 가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중간중간 그가 며칠씩 나를 건드리지 않고 가만 놓아두어도 나는 그에게 묶여 있었다. 꿈속에서 그는 내 그림자처럼 나와 함께 살았고, 내 생상력은 그가 현실에서 하지 않은 일을 꿈속에서 하게 만들었다. 꿈속에서 나는 완전히 그 놈의 노에였다. 나는 현실보다 오히려 이런 꿈속에서 살았는데 이런 그림자에 힘과 생기를 뺏겼다. 크로머가 나를 괴롭히는 꿈을 자주 꾸었다. 그가 내게 침을 뱉고 무릎으로 깔아뭉개는 꿈이었다. 그보다 더 나쁜 것은 그가 나를 끔찍한 범죄로 이끌어가는 것이었다. 이끌어간다기보다 그의 무시무시한 힘으로 그냥 강요했다. (p.42-43)

 

꿈에서 겪은 일과 현실에서 겪은 일을 이제 와서 아주 정확하게 구분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어쨌든 크로머와의 고약한 관계는 계속되었고, 순전히 좀도둑질을 해서 그에게 빚진 돈을 다 갚고 나서도 끝나지 않았다. 절대로 끝나지 않았다. 그가 언제나 돈이 어디서 났는지 물어서 나의 좀도둑질에 대해 알아두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전보다 더욱 단단히 그의 손아귀에 잡혔다. 이제는 아버지에게 모든 일을 이르겠다고 자꾸 협박했다. 그럴 때면 두려움보다는 오히려 처음부터 나 자신이 아버지에게 말씀드리지 않았다는 후회가 더 컸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비참해도 모든 일을 다 후회하지는 않았고, 적어도 항상 후회만 하지는 않았다. 이따금은 모든 일이 이럴 수밖에 없다는 느낌도 들었다. 불운은 이미 내 머리 위에 드리워 있었고, 그것을 부수고자 해도 헛일이었다. (p.43-44)

 

많은 이들이 채 열한 살도 되지 않은 아이가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걸 믿지 않으리란 사실을 안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을 더 잘 아는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자기 느낌의 일부를 생각으로 바꾸는 법을 배운 어른들은, 아이에게는 그런 생각이 없으니까 체험도 없으려니 여긴다. 하지만 나는 살면서 당시처럼 그토록 깊이 체험하고 고통받은 적이 드물었다. (P.45)

 

자, 한번 시험해 보자. 그러니까 나는 너를 좋아해. 아니면 적어도 네게 관심이 있고. 그래서 네 안에 숨어 있는 듯 보이는 것을 밖으로 끄집어내고 싶어. 그렇게 하려고 벌써 첫걸음은 내디뎠어. 내가 너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으니까. 그러니까 넌 잘 놀라는 거지. 네가 두려움을 느끼는 일들과 사람들이 있는 거야. 그게 대체 어디서 왔을까? 사람은 그 누구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데 말이지. 누군가를 두려워한다면, 그건 그 사람에게 자기를 지배할 힘을 내주었기 때문이야. 예를 들어 어떤 못된 짓을 했어. 그런데 다른 녀석이 그 사실을 안다. 그러면 그가 너를 지배할 힘을 갖데 되는 거지. 알아듣겠니? 아주 분명하지. 안 그래? (p.48)

 

우린 이 실험을 더 진행해볼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널 괴롭힐 생각은 없어. 그 녀석을 두려워하는 게 옳지 않다는 건 너도 알지, 안 그래? 그런 두려움은 우리를 완전히 망가뜨려. 그런 건 없애버려야 해. 진짜 사나이가 되려면 그걸 없애버려야 해. 알아듣겠니?

한 가지만 더 말할게.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니까. 넌 그 녀석을 떨쳐버려야 해! 다른 방법이 전혀 통하지 않으면 녀석을 때려죽여버려! 그렇게 한다면 내게 깊은 인상을 줄 거고 나도 좋아할 거야. 나도 널 돕겠어. (p.50-52)

 

이제 나는 고백을 한 셈이었다. 다른 사람한테, 낯선 사람한테. 그러자 구원의 예감이 강렬한 향기처럼 풍겨왔다!

내 두려움은 여전히 극복되지 못한 상태였지만 나는 적과의 길고도 끔찍한 대결을 각오했다. 그럴수록 모든 것이 그토록 고요하고, 그토록 완전히 비밀스럽고도 평온한 채로 지나가는 것이 이상하기만 했다.

우리 집 앞에서 크로머의 휘파람 소리가 사라졌다. 하루, 이틀, 사흘, 일주일 동안이나. 나는 감히 믿을 수가 없었고, 전혀 예기치 못한 순간에 그가 별안간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내심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새로운 자유를 의심하면서 여전히 그 사실을 믿지 못했다. 마침내 프란츠 크로머와 부딪칠 때까지. 그는 내 바로 정면에서 자일러가세를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고 흠칫하더니 얼굴을 사납게 일그러뜨리면서 나를 피해 돌아서서 가버렸다.

나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순간이었다! 나의 원수가 내 앞에서 도망치다니! 나의 사탄이 나를 두려워하다니! 기쁨과 놀라움이 거듭 내 몸을 뚫고 지나갔다. (p.52-53)

 

고마운 감정이란 도무지 신뢰할 만한 미덕이 아니다. 그런 걸 어린아이한테 요구하는 것은 잘못된 일 같다. 그런 만큼 내가 막스 데미안에게 보여준 철저한 배은망덕은 아주 이상할 것도 없다. 지금도 나는 그가 나를 저 크로머의 손아귀에서 빼내주지 않았더라면 평생 병들고 망가진 사람이 되었으리라 확신한다. 당시에 이미 그 구원이 내 어린 시절의 삶에서 가장 큰 체험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나를 구원해준 사람이 그런 기적을 행하자마자 나는 그를 그대로 무시해 버렸다.

이미 말했듯이 배은망덕이 이상하게 생각되지는 않는다. 내가 보인 호기심의 결핍이야말로 이상한 일이다. 데미안이 내게 알려준 그 비밀을 더 자세히 탐색하지 않고 어떻게 단 하룬들 편안히 사는 게 가능했단 말인가? 카인에 대해서, 크로머에 대해서, 그리고 생각 읽기에 대해서 더 듣고 싶다는 열망을 대체 어떻게 누를 수가 있었단 말인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정말로 그랬다. 나는 갑자기 악마의 그물에서 풀려난 나 자신을 보았고, 밝고도 즐거운 모습으로 다시 내 앞에 놓인 세상을 보았다. 두려움의 발작과 목을 조르는 듯한 두근거림이 사라졌다. 속박이 깨졌고 나는 이제 고문당하는 저주받은 자가 아니라 다시 평범한 학생이 되었다. 내 천성은 가능한 빨리 균형과 평화로 되돌아가려 했고, 수많은 추하고 위협적인 것을 떨쳐내고 잊어버리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다.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내 잘못과 두려움의 그 긴 이야기가 기억에서 사라졌다. 언뜻 보기에는 그 어떤 흉터나 인상도 남기지 않은 채.

동시에 내게 도움을 준 구원자마저 똑같이 빨리 잊으려 했음을 지금은 이해한다. 나는 손상된 영혼의 온갖 추진력과 힘을 모아 내 저주의 골짜기로부터, 크로머에게서 겪은 두려운 종살이로부터 도망쳐 예전의 행복하고도 만족스럽던 상태로 되돌아갔다. 이제 다시 문이 열린 잃어버린 낙원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밝은 세계로, 누이들에게로, 순수함의 향기로, 아벨처럼 하느님의 뜻으로. (p.54-55)

 

이제 나는 내 온갖 뿌리를 모조리 동원해서 이전의 낙원 같은 세계에 달라붙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왔고 자비롭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데미안은 절대로 이 세계에 속하지 않았고 여기 어울리지도 않았다. 그는 크로머와는 달라도 여전히 유혹하는 자였고, 그 역시 나를 악하고 나쁜 이 두번째 세계와 연결시키는 존재였다. 바로 그 세계에 대해 나는 영원히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제 아벨을 내려놓고 카인을 찬양하는 일을 도울 수가 없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나 스스로 아벨이 되어버린 지금 말이다.

겉으로 드러난 맥락은 그랬다. 하지만 속에 숨은 맥락은 이러했다. 나는 악마인 크로머의 손아귀에서 벗어났지만 나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의 능력으로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 세상의 좁은 오솔길을 걸어보려 했지만 그 길이 내게는 너무 미끄러웠다. 이제 친절한 손길이 나를 붙잡아 구원해 놓으니, 나는 곁눈질 한 번 하지 않고 곧바로 어머니의 품으로, 잘 보존된 경건한 어린 시절의 안전함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나는 실제보다 더 어리고 의존적이고 어린아이같이 굴었다. 크로머에의 종속을 새로운 종속으로 바꾸어야 했다. 혼자서는 갈 수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눈먼 가슴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옛날의 사랑스러운 '밝은 세계'에 종속되는 것을 선택했다. 그것이 유일한 세계가 아님을 잘 알면서도. 그러지 않았더라면 나는 데미안을 붙잡고 그에게 비밀을 털어놓았을 것이다. 내가 그러지 않은 것이 당시는 그의 이상한 생각에 대한 지극히 올바른 불신처럼 생각되었지만, 실제로는 두려움에 지나지 않았다. 데미안은 내게 부모님보다 더 많은 것을 기대했을 테니까. 훨씬 더 많은 것을. 자극과 경고, 조롱과 아이러니를 동원해서 나를 훨씬 더 독립적으로 만들려고 했을 테니까. 아, 지금은 안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을 가는 것보다 사람이 더 싫어하는 일은 없다는 것을! (p.56-57)

(추천 도서)

고전독서법 - 정민 (보림)

초등 고전 읽기 혁명 - 송재환 (글담출판사) (구판)

잘못된 자기주도학습이 아이를 망친다 - 김성태 (이지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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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용된 밝은 세계 안으로 슬그머니 기어들어와 숨어 있는 원초적 충동이 내 안에도 살고 있음을 드디어 깨닫게 되는 시절이 찾아왔다. 모든 인간을 찾아오는, 천천히 깨어나던 성의 감정이 원수이며 파괴자처럼 내게도 찾아온 것이다. 그것은 금지된 것, 유혹이자 죄악이었다. 내가 호기심으로 탐색하는 것, 꿈과 쾌감과 두려움이 만들어내는 것,, 사춘기의 그 거대한 비밀은 잘 보호된 어린 시절의 평화로운 행복감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다른 모든 사람처럼 행동했다. 나는 이미 어린아이가 아니면서 아이인 척 이중생활을 했다. 내 의식은 이미 허용된 친근한 것 안에 살면서 새롭게 솟아나는 이 세계를 거부했다. 하지만 그와 나란히 꿈과 충동과 지하세계에 속한 소망들 속에서도 살았다. 저 의식된 삶은 이런 소망들 위로 점점 더 위태로워지는 다리들을 세웠다. 내 속에 어린이세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부모가 그렇듯이 나의 부모님도 깨어나는 삶의 충동에는 도움을 주지 않았고, 그것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도 없었다. 그분들은 다만 한없이 세심하게 내 가망 없는 노력들을 도와주었을 뿐이다. 엄연한 현실을 무시하고, 점점 더 비현실적이고 거짓으로 변해가는 어린이세계에 계속 머물려는 절망적인 노력이었다. 부모가 이런 문제에서 정말로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으니 나의 부모님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일을 스스로 처리하고 내 길을 찾는 일은 나 자신의 문제였고, 잘 키운 집 자식들이 대개 그렇듯이 나도 내 일을 잘 해내지 못했다.

인간은 누구나 이런 어려움을 겪고 넘어간다. 보통 사람들에게 이것은 자기 삶의 요구와 주변세계가 가장 심하게 갈등하는 지점,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장 힘들게 쟁취해야 하는 삶의 지점이다. 어린 시절이 물러지면서 천천히 붕괴하는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은 인생에 단 한 번, 우리의 운명인 죽음과 재탄생을 경험한다. 그동안 친숙해진 것이 모조리 곁을 떠나고, 돌연 고독과 세계공간의 죽을 듯한 냉기가 자신을 둘러싸는 것을 느낄 때면 그렇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 낭떠러지에 영원히 매달려 있고, 평생 동안 고통스럽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잃어버린 낙원의 꿈에 달라붙어 있다. 그것은 모든 꿈 중에서 가장 고약스럽고도 치명적인 꿈이다. (p.60-61)

 

약 반년에 걸친 이 종교 수업의 가치는 우리가 여기서 배운 내용이 아니라 데미안과 가까이하면서 받은 영향에 있다는 생각이 피할 길 없이 밀려 들었다. 나는 교회에 받아들여질 준비를 한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것, 곧 사색과 개성의 교단에 받아들여질 준비가 ㅏ된 것이다. 지상 어딘가에 분명히 그런 교단이 있을 테고, 내 친구가 그곳의 대표 또는 사절일 거라고 느꼈다. (p.78-79)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사람의 아들 - 이문열 (민음사)

황제를 위하여 - 이문열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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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마음을 닫은 채, 어딘가 상당히 조숙하고도 거드름 피우는 듯한 내 이야기에 별로 기쁨을 느끼지 않았다.

"우린 말을 너무 많이 한다." 그가 평소와 달리 진지하게 말했다.

"그렇게 똑똑한 말은 아무 의미가 없어. 전혀 없지.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질 뿐이야.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건 죄악이야. 사람은 거북이처럼 자신 속으로 완전히 기어들어갈 줄 알아야 하는데." 9p.79)

 

수업이 시작되자 나는 집중하려고 애썻고 데미안은 나를 방해하지 않았다. 한참 뒤 그가 앉아 있는 옆쪽에서부터 어떤 특이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비어 있음, 차가움 또는 그 비슷한 느낌, 마치 그 자리가 갑자기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그 느낌이 차츰 답답해지기 시작했기에 나는 옆을 보았다.

거기에는 내 친구가 언제나처럼 반듯하고 올곧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하지만 평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무언가가 그에게서 나가버린, 내가 전혀 모르는 무언가가 그를 둘러싼 모습이었다. 나는 그가 눈을 감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눈을 뜨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눈은 무엇을 바라보지 않았고, 볼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다. 그냥 멍하니 자기 속을, 아니면 아주 먼 곳을 향했다. 그는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는데 숨조차 쉬지 않는 것 같았다. 입은 목재나 돌로 깎아놓은 듯했다. 얼굴은 창백하여 마치 돌처럼 한결같이 파리한데 갈색 머리카락만이 살아 있는 모습이었다. 두 손은 자기 앞 의자위에 놓여 있었는데, 돌이나 과일 같은 물건처럼 고요하고 생명이 없이 파리하고 움직임이 없었지만, 힘없이 느슨하게 풀린 것이 아니라 감추어진 강인한 생명을 감싼 단단하고 좋은 껍질 같았다.

그 모습에 몸이 떨렸다. 그가 죽었구나! 생각하고 하마터면 큰 소리로 말할 뻔했다. 하지만 그가 죽지 않았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마법에 사로잡힌 듯 그 얼굴, 그 돌 같은 창백한 마스크에 눈길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나는 느꼈다. 저게 데미안이다! 그전의 모습, 나와 함께 걷고 이야기할 때의 그는 절반만 데미안이었다. 이따금 어떤 역할을 하고, 거기 적응하고, 좋은 마음에서 함께하는 절반의 데미안이었다. 진짜 데미안은 지금의 모습, 돌로 된, 태고를 간직한, 짐승과 같은, 돌과 같은, 아름답고 차가운, 죽어 있으면서 동시에 들어본 적 없는 생명으로 은밀히 가득 차 있는 저런 모습이었다. 그를 에워싼 이 고요한 공허, 이런 에테르와 별의 공간, 이 고독한 죽믐!

순간 그가 완전히 자기 속으로 들어가버렸음을 느끼고 나는 전율했다. 나는 저토록 고독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와 함께하지 못하고, 그는 내게는 닿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마치 이 세상의 가장 먼 섬에 있는 듯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 말고 아무도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나는 거의 알지도 못했다! 틀림없이 모두가 보고 모두가 전율하겠지! 하지만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그는 그림처럼, 내 생각에는 이교의 신처럼 굳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파리 한 마리가 그의 이마에 앉아 코와 입술 위를 천천히 기어갔지만 그는 주름살 하나 짓지 않았다.

그는 지금 어디에, 어디에 있을까? 무슨 생각을 하나, 무엇을 느끼나? 대체 하늘에 있나, 지옥에 있나?

그에게 그걸 물어보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수업 마지막에 그가 다시 살아나서 숨을 쉬는 것을 보았을 때, 그의 눈길이 내 눈길과 부디쳤을 때, 그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대체 어디서 돌아왔을까? 어디 갔었나? 그는 지쳐 보였다. 얼굴색이 다시 돌아왔고, 두 손도 다시 움직였다. 하지만 갈색 머리카락은 이제 빛을 잃고 지친 모습이었다. (p.79-81)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세속에서의 명상 -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장순용 옮김, 산해)

명상비법 - 오쇼 라즈니쉬 (석지현 옮김, 일지사)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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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어린 시절은 내 주변에서 떨어져 부스러졌다. 부모님은 살짝 당혹해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누이들은 완전히 낯설어졌다. 각성이 일어나면서 익숙한 감정들과 기븜들이 변질되고 빛이 바랬다. 정원엔 향기가 사라지고, 숲은 유혹하지 않고, 내 주변의 세계는 낡은 상품의 떨이판매같이 김빠지고 자극이 없고, 책들은 종이, 음악은 소음이 되어버렸다. 가을 나무 주변으로 그렇게 잎사귀가 떨어진다. 나무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비가 나무에 내리고, 햇빛이나 서리도 내리지만, 나무는 천천히 가장 내밀하고 가장 깊은 속으로 점점 더 움츠러든다. 나무는 죽지는 않는다. 기다린다. (p.81-82)

 

그날 저녁을 아주 또렷이 기억한다. 우리 두 사람이 늦은 시간에 흐릿하게 타오르는 가스등을 지나, 차갑고 축축한 밤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술에 취해 있었다.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고 오히려 지극히 고통스러웠지만 거기엔 무언가가 있었다. 어떤 매력, 어떤 달콤함이 있었고, 궐기와 도취, 삶과 정신이 있었다. 베크는 나더러 새파란 애송이라고 욕을 하면서도 씩씩하게 나를 보살폈다. 그는 나를 반쯤은 업어서 집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열린 복도 창문 너머로 나를 밀어넣고 자기도 슬그머니 들어올 수 있었다.

아주 잠깐 죽은 듯이 잠을 잔 후 통증과 함께 깨어나면서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보니 나는 낮에 입었던 셔츠를 그대로 입은 채였고 바닥에는 옷가지와 신발이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었다. 담내 냄새와 토한 냄새, 두통과 구토와 미칠 듯한 갈증 사이로 오랫동안 눈ㄴ에 보이지 않던 모습이 나타났다. 고향과 부모님의 집, 아버지와 어머니, 누이들과 정원이 보이고, 고요한 고향 집의 내 침실이 보이고, 학교와 시장이 보이고, 데미안과 견진례 수업 시간들이 보였다. 모든 것이 밝았고, 모든 것이 광채로 둘러싸였고, 모든 것이 훌륭하고 신적이고 순수했다. 이 모든 것이 어제까지만 해도,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내 것이고 나를 기다리던 것이지만, 이제 이 순간, 이토록 추락하고 저주받은 이 순간부터는 더는 내 것이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이 나를 밀어내면서 역겨운 듯이 나를 바라 보았다! 모든 사랑스럽고도 내적인 것, 가장 멀고도 가장 아름다운 어린 시절의 정운으로 되돌아가 부모님 곁에서 겪은 것들, 어머니의 모든 키스, 모든 크리스마스, 고향에서 맞은 모든 경건하고 밝은 일요일 아침, 정원의 모든 꽃, 그 모든 것이 황폐해졌다. 그 모든 것을 내가 발로 짓밟은 것이다! 이제 형리가 나타나 나를 포박해 인간쓰레기이며 성전의 파괴자인 나를 교수대로 이끌어간다면 나는 동의할 것이고, 기꺼이 따라갈 것이며, 그것이 훌륭하고 올바른 일이라 여길 것이다.

나의 내면은 이런 모습이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세상을 비웃던 나! 정신은 오만하며 데미안의 생각을 함께 나누던 나! 내 모습은 이랬다. 인간쓰레기이자 불결한 놈, 취하고 더러운, 역겹고도 비열한, 끔찍한 충동에 사로잡힌 상스러운 짐승! 나는 그런 모습이었다. 온갖 순수함, 광채와 사랑스러운 애정이 넘치던 정원에서 온 내가, 바흐의 음악과 아름다운 시들을 사랑하던 내가! 역겨움과 분노를 품고 나 자신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술에 취해 자제력을 잃은, 이따금 우둔하게 터져나오는 웃음. 그게 나였다! (p.88-90)

 

그사이 겉으로만 보면 나는 착실하게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처음으로 술에 취한 일이 곧 더는 처음이 아니게 되었다. 우리 하교에는 술집을 찾아다니며 법석을 떠는 아이들도 꽤 있었다. 나는 거기 어울리는 아이들 가운데 나이가 가장 어린 축에 들었다. 머지않아 나는 그럭저럭 받아들여진 꼬마가 아니라 주동자가 되고 스타가 되었으며, 유명하고 대담한 술꾼이 되었다. 나는 다시 한번 완전히 어두운 세계, 악마에게 속하게 되었고, 이 세계에서 소문난 녀석이 되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자기파괴적인 방종함 속에서 살았다. 동료들 사이에서 주동자이며 끝내주는 녀석으로, 무지하게 단호하고도 재치 있는 놈으로 통하는 동안에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불안으로 가득 찬 두려워하는 영혼이 팔랑거렸다. (p.90)

 

내가 장차 무엇이 되든지 상관이 없었다. 나는 술집에 앉아 의기양양해하면서 이상하고도 아름답지 못한 방식으로 세상과 싸웠으며, 그것은 세상에 항의하는 나의 방식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망가졌고 이따금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세상이 나 같은 인간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세상이 그런 인간들을 위해 더 나은 장소, 더 높은 과제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나 같은 인간들은 망가지는 법이다. 손실이야 세상이 입겠지. (p.93)

 

나는 베아트리체와 말 한마디 나누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당시 내게 무척 깊은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녀는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내게 거룩한 신전의 문을 열어주고 나를 그 신전의 기도자로 만들었다. 당장 하루 만에 나는 술집에 앉아 있거나 밤마다 쏘다니는 짓을 그만두었다. 다시 혼자 있을 수 있었고,, 다시 기꺼이 책을 읽었고, 다시 기꺼이 산책을 했다.

이런 느닷없는 개전은 넉넉한 조롱을 불러들였다. 하지만 나는 이제 사랑하고 숭배할 대상이 생겼고, 다시금 이상을 지니게 되었다. 삶은 다시 다채로운 비밀을 품은 여명과 예감으로 넘쳤다. 덕분에 조롱에 무심할 수 있었다. 숭배하는 대상에 봉사하는 노에가 되었을망정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 시절을 어떤 감동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나는 다시 가장 내적인 수고를 다하여 부서진 삶의 시기의 파편들을 모아 '밝은 세계'를 건설하려고 했으며, 내 안에서 어둠과 악을 몰아내고 완전히 밝은 데서 머물려는, 신들 앞에 무릎을 끓으려는 단 한 가지 소망에 묻혀 살았다. 그렇다 해도 이번의 '밝은 세계'는 어느 정도 나 자신이 만들어 낸 이었다. 그것은 어머니에게로 도망쳐 책임감 없이 안전함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일이 아니었다. 나 자신이 만들어내고 요구한 새로운 복무였으며, 책임과 자기 기율을 갖춘 것이었다. 내게 고통을 주고 또 거듭 회피하곤 하던 성적인 욕구가 이런 성스러운 불길 안에서 정신과 경건함으로 숭화되었다. 어두운 것, 추악한 것은 없어져야 했다. 신음으로 지새운 밤들, 외설스러운 모습들 앞에서의 가슴 두근거림, 금지된 문 앞에서의 귀 기울임, 음탕함이 없어져야 했다. 그 모든 것 대신에 나는 나만의 제단을 세우고 거기에 베아트리체의 모습을 걸었다. 그렇게 그녀에게 자신을 바침으로써 나는 정신과 신들에게 자신을 바친 것이다. 어두운 힘들에게서 빼낸 삶의 부분을 밝은 힘들ㅇ게 바쳤다. 이제 나의 목적은 쾌락이 아니라 순결함이었으며, 행복이 아니라 아름다움과 정신성이었다.

베아트리체를 향한 이런 숭배는 나의 삶을 통째로 바꾸어놓았다. 어제만 해도 조숙하고 빈정거리는 아이였던 나는 이제 성인 되겠다는 목표를 지닌 신전의 근무자였다. 나는 이미 익숙해진 일상생활을 완전히 끊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바꾸려고 했다. 모든 것 속에 순결함과 고귀함과 품위를 주려 했고, 먹고 마시고 말하고 옷을 입을 때도 그런 생각을 했다. 차가운 물에 목욕하는 것으로 아침을 열었다. 처음에는 나 자신을 힘들게 채찍질해야만 했다. 나는 진지하고 품위있게 행동했고, 자세를 똑바로 했으며, 걸음걸이를 더 느리고 우아하게 만들었다. 구경꾼들에게는 우스꽝스럽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내면에서 그것은 신을 향한 순수한 예배였다. (p.96-98)

 

친애하는 싱클레어. 네게 불쾌한 말을 하려던 건 아니었어. 게다가 네가 지금 어떤 목적으로 그 잔을 들이켜는지 우리 둘 다 모르지. 네 안에서 네 삶을 만드는 것은 그걸 이미 알고 있겠ㅈ. 그걸 아는 건 좋은 일이야. 우리 안에 누군가가 있어서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원하고, 모든 것을 우리 자신보다도 더 잘 한다는 사실 말이야. 그런데 용서해라, 난 그만 집에 가야겠어. (.104)

 

그날 밤에 나는 데미안과 그 문장 꿈을 꾸었다. 문장은 끊임없이 변했다. 데미안이 문장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것은 때로는 작고 잿빛이었다가 또 때로는 엄청 크고 다채로운 빛깔이 되었는데, 그는 그것이 언제나 동일한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마지막에 그는 내게 문장을 먹으라고 강요했다. 그것을 삼키자 놀랍게도 삼킨 문장의 새가 내 안에서 살아나더니 나를 가득 채우고는 안에서부터 나를 쪼아먹기 시작했다. 나는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벌덕 일어나며 잠에서 깼다. (p.106)

 

나는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문장의 새였다. 그것이 원래 어떤 모양이었는지 더는 분명히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아는 한 문장의 일부는 가까이에서 보아도 잘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오래되어 여러 번이나 색을 덧칠한 탓이었다. 새는 무언가의 위에 서 있거나 앉아 있었다. 꽃이나 바구니 혹은 둥지, 어쩌면 나무우듬지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더 이상 그런 데 신경쓰지 않고 똑똑히 생각나는 것부터 시작했다. 불확실한 어떤 욕구에 따라 곧바로 강렬한 색으로 시작했다. 내 그림에서 새의 머리는 황금색이었다. 기분 내키는 대로 계속 그려서 그림을 며칠 만에 완성했다. (p.106-107)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Der Vogel kämpft sich aus dem Ei. Das Ei ist die Welt. Wer geboren werden will, muß eine Welt zerstören. Der Vogel fliegt zu Gott. Der Gott heißt Abraxas.

 

난 그 구절을 몇번이고 읽은 다음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것은 데미안에게서 온 답장이었다. 그와 나 말고는 아무도 그 새에 대해 알 리가 없었다. 그가 내 그림을 받은 것이다. 그는 이해했고, 내가 그 뜻을 해석하도록 도운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게 어떤 연관성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이 부분이 무엇보다 나를 괴롭혔는데- 아프락사스란 대체 무엇인가? 나는 이 말을 들어본 적도 읽어본 적도 없었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p.110)

(함께 읽어면 좋은 책)

악의 꽃 - 보들레르 (박철화 옮김, 동서월드북)

<비상>

늪을 건너고, 골짜기를 건너,

산과 숲, 구름과 바다를 넘어,

아득한 태양, 끝없는 허공,

별들 반짝이는 하늘 끝도 지나,

 

영혼아, 너는 훨훨 날아가는구나.

망망대해에서 능숙하게 헤엄을 즐기는 사람처럼

말로 다하기 어려운 힘찬 쾌락에 빠져

끝없는 우주를 즐겁게 누비누나.

 

날아라, 복잡한 속세에서 저 멀리,

가서 높은 곳의 공기로 몸을 씻어라.

그리고 마셔라, 더없이 순수한 하늘의 술처럼,

맑은 공간 가득 채우는 밝은 불을.

 

복잡한 삶 짓누르는

권태와 고뇌 뒤로하고

힘차게 날갯짓하여 밝고 고요한 저 하늘로

날아오르는 자는 행복하여라!

 

시상이 종달새처럼

새벽하늘 자유로이 날아다니며

속세를 내려다보고, 목소리 없는 것과 사물의 언어를

이해하는 자는 행복하여라!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문학동네)

<참고>

아브락사스(ΑΒΡΑΞΑΣ · Abraxas)

아브락사스(ΑΒΡΑΞΑΣ · Abraxas)는 기원후 2세기의 나스티시즘 교부였던 바실리데스의 철학 체계에서 사용된 낱말로 신비적인 의미를 띄는 낱말이다. 바실리데스의 나스티시즘 철학 체계에서, 아브라삭스는 365 영역들의 수장인 대아르콘(Great Archon)이다.
아브라삭스(ΑΒΡΑΣΑΞ)는 일곱 그리스어 문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일곱 문자들은 나스틱파의 우주론에서 서양의 고대의 일곱 행성인 태양 · 달 · 수성 · 금성 · 화성 · 목성 · 토성을 의미한다. 아브라삭스라는 낱말은 《불가시의 위대한 스피릿의 신성한 책》과 같은 나스티시즘 문헌에서 발견된다. 또한 《그리스 마법 파피루스》에서도 나타난다.
아브라삭스라는 낱말이 고대의 보석들에 새겨져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 보석들을 아브라삭스 보석(Abrasax stones)이라 한다. 아브라삭스 보석은 호신부나 액막이 부적으로 사용되었다. 아브라삭스 보석들에 새겨진 초기 문자들이 아브라삭스(ΑΒΡΑΣΑΞ)였기 때문에, 아브락사스(ΑΒΡΑΞΑΣ)라는 낱말은 후대에 그리스어 낱말을 라틴어로 음역할 때 그리스어 문자 시그마(Σ)와 크시(Ξ) 사이에 혼동이 생겨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 오늘날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아브라삭스라는 낱말은 마법사의 주문인 아브라카다브라와 관련이 있다고 하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이와는 다른 견해도 있다.
바실리데스의 교의, 고대 나스티시즘 문헌들, 그리스 · 로마의 마법 전통들, 현대의 마법 및 밀교 저작들에서 보이는 아브라삭스에 대한 견해는 어떤 점에서는 서로 간에 유사하기도 하고 어떤 점에서는 전혀 다르기도 하다. 아브라삭스에 대한 견해는 여러 가지이다. 최근 수 세기 동안에 아브라삭스는 이집트 신화의 신들 중의 하나이며 또한 악마들 중의 하나라고 주장되었다. 스위스의 심리학자인 칼 융은 《죽은 자들에게 주어진 7 강의들》이라는 짧은 나스티시즘적인 글을 썼다. 여기에서 칼 융은 모든 대립물이 한 존재 안에 결합된 신이 아브라삭스이며, 아브라삭스는 기독교의 신과 사탄의 개념보다 더 고차적인 개념의 신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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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렌 선생님은 내가 놓친 앞부분에 이어 설명을 계속했다. "우리는 고대 종파들의 의견과 신비적인 합일을, 합리주의의 관점으로 바라볼 때 흔히 그러듯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에서의 학문이란 고대에는 아예 없었다. 그 대신 철학적이고도 신비주의적인 진리를 향한 깊은 탐색이 있었는데, 그런 탐색은 매우 높은 수준으로 발전했다. 부분적으로는 거기서 마법과 농간이 생겨났고, 그것은 자주 기만과 범죄로 발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법도 고귀한 기원과 깊은 사상을 지녔다. 앞에서 예를 들었던 아프락사스의 기르침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이 이름을 흔히 그리스의 마법 주문과 연결시켜 말하면서, 오늘날에는 야만적인 종족들이 믿는 무슨 마법을 부리는 악마의 이름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아프락시스는 훨씬 더 많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 이름이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의 결합이라는 상징적 과제를 지닌 어떤 신의 이름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ㄷ." (p.111-112)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의 결합'이라는 말이 여전히 귓가에 울렸다. 나는 여기서 연관성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 우정의 맨 끝 무렵에 데미안과의 대화에서 친숙해진 생각이었다. 데미안은 당시 우리가 숭배하는 하느님이란 멋대로 나누어놓은 세계의 절반만을 나타낸다고 말했다(공식적으로 허영된 '밝은' 세계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세계 전체를 숭배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러려면 신이면서 동시에 악마이기도 한 신을 갖듣가, 아니면 신에 대한 예배와 나란히 악마에 대한 예배도 드려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아프락사스는 바로 신이면서 동시에 악마인 신이었다. (p.112)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성 앙투안느의 유혹 - 귀스타프 플로베르 (김용은 옮김, 열린책들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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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내면에서 생겨난 이 모습과, 내가 찾으려는 신에 대해 외부에서 들어온 신호 사이에 오직 무의식에서만 차츰 그 어떤 결합이 나타났다. 그 결밥은 점차 긴밀해지고 내밀해졌다. 나는 나 자신이 이 예감의 꿈속에서 아프락사스라는 이름을 부른다는 것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희열과 공포, 남자와 여자가 뒤섞인, 가장 거룩한 것과 추한 것이 서로 뒤엉킨, 깊은 죄가 가장 사랑스러운 무죄를 번개처럼 관통하는 - 내 사랑의 꿈의 모습은 그랬고, 아프락사스 또한 그랬다. 사랑은 이제 내가 맨 처음에 두려워하며 느끼던 동물적인 어두운 충동이 아니었다. 그리고 베아트리체의 모습에 바치던 경건하게 정신화된 예배도 아니었다. 사랑은 두 가지 모두였다. 두 가지 모두이면서 동시에 그 이상이었다. 사랑은 천사의 모습이며 악마이고, 하나가 된 남자이며 여자이고, 인간이며 동물이고, 최고의 선이며 극단적인 악이었다. 이를 겪는 것이 내게 주어진 일이었고, 이를 맛보는 것이 내 운명이었다. 나는 운명을 향해 동경과 공포를 품었지만, 운명은 언제나 거기 있었고, 언제나 내 위에 있었다. (p.114)

 

이듬해 봄에 김나지움을 떠나 대학에 가게 되었지만 아직도 어디서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몰랐다. 내 입술 위로는 수염이 살짝 자랐고, 나는 이제 다 자란 인간이었는데도 어쩔 줄 모르고 목적도 없었다. 오직 한 가지만 분명했다. 내 안의 목소리, 꿈의 영상이었다. 나는 그것의 안내를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과제라고 느꼈다. 하지만 그것이 힘들어서 매일 거부했다. 어쩌면 내가 미쳤나, 어쩌면 내가 다른 애들과 다른가 하는 생각도 드물지 않게 들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애들이 하는 일을 모두 할 수 있었고, 약간의 부지런함과 노력만 기울이면 플라톤을 읽을 수 있었고, 삼각법 과제를 풀거나 화학 분석도 따라갈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만은 못했다. 다른 애들이 하듯이 내 안에 어둡게 감추어진 목적을 끄집어내서 내 앞 어딘가에 또렷이 그려보는 일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교수나 판사, 의사나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고, 그것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 어떤 이점이 있을지 잘 알았다. 냐는 그러지 못했다. 어쩌면 나도 언젠가 그런 뭔가가 되겠지만, 그게 뭔지 내가 어찌 알겠는가. 어쩌면 여러 해 동안 찾고 또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다음에도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떤 목적지에 도달하긴 하지만 그것이 사악하고 위험하고 끔찍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로지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에 따라 살아가려 했을 뿐, 그것이 어째서 그리도 어려웠을까? (p.115)

 

당시 나는 독특한 피난처를 찾아냈다. 흔히 말하듯이 '우연'을 통해서 였다. 하지만 그런 우연이란 없다. 누가 무언가를 꼭 필요로 하는데 제게 꼭 필요한 그것을 찾아낸다면, 그것은 우연이 가져다준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그 자신의 갈망과 필연성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것이다. (p.117)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광기와 우연의 역사 - 슈테판 츠바이크 (안인희 옮김,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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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은 인적이 드물었기에 나는 교회 모퉁이의 갓돌 위에 앉아 외투 깃을 세우고 음악을 들었다. 크지는 않아도 좋은 오르간이었고 연주는 아주 훌륭했다. 그것은 마치 기도처럼 들렸다. 나는 저기서 연주하는 저 남자가 이 음악 속에 보석이 감추어져 있음을 알고, 자신의 생명을 얻듯이 이 보석을 얻으려고 건반을 두들기며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음악을 많이 알지 못하지만 이런 영혼의 표현만은 어린 시절부터 본능적으로 이해했고, 내 안에서 음악을 어떤 자명한 것처럼 느끼곤 했다. (...)

그 뒤로 이따금 저녁 시간에 교회 앞에서 앉아 있거나 이리저리 서성였다. 한번은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연주자가 저 위쪽 오르간석에서 빈약한 가스 불빛에 연주하는 동안 반시간이나 추위에 벌벌 떨면서 행복하게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가 연주하는 음악에서 나는 연주자 자신만을 들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연주하는 것이 모두 서로 연관된 듯, 어떤 비밀스러운 연관성을 가진 듯했다. 연주하는 음악마다 모두 신앙심과 헌신, 경건함이 깃든 것이었지만 교회 신자들이나 성직자들처럼 경건한 것이 아니라 중세의 순례자나 거지처럼 경건했다. 모든 종파를 넘어선 세계감정에 대한 가차 없는 헌신이 담긴 경건함이었다. 바흐 이전의 대가들과 옛날 이탈리아 작곡가들의 곡을 열심히 연주했다. 그리고 모든 곡이 같은 것을 이야기했다. 모든 곡이 악사가 자기 영혼에 간직하고 있는 것을 이야기했다. 그리움, 세상을 지극히 내적으로 움켜잡기, 세상과 다시 가장 거칠게 작별하기, 자신의 어두운 영혼에 열렬히 귀 기울이기, 헌신에의 도취, 경이로운 것에 대한 깊은 호기심을. (p.117-118)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광염 소나타 - 김동인 (사피엔스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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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ngen - Saints - Sequentia (DHM, 1996)

빙헨 - 세인트

(05) Sequentia Ensemble (1996.6.11-18) Hildegard Von Bingen - O viriditas digiti Dei (Responsory, To St. Disibodus - women, instruments).mp3
13.59MB

Sequentia Ensemble (1996.6.11-18) Hildegard Von Bingen - O viriditas digiti Dei (Responsory, To St. Disibodus - women, instru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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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젊은 사람이구먼. 김나지움 학생이나 대학생 정도? 댁은 음악가요?"

?아닙니다. 음악 듣기를 좋아하죠. 그냥 당신이 연주하는 음악 같은걸요. 아주 절대적인 음악을, 그러니까 한 인간이 하늘과 지옥을 흔들어대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음악은 내 생각에 별로 도덕적이지 않아서 참 좋죠. 다른 건 모두 도덕적인데, 나는 그렇지 않은 걸 찾고 있거든요. 도덕적인 것에선 고통만 느기죠. 내 마음을 잘 표현할 수가 없네요. 당신은 아시지요? 신이면서 동시에 악마인 신이 있어야 한다는 걸요. 그런 신이 있었다고 하던데요. 그런 말을 들었어요." (p.120)

 

사람들이 시대에 따라 어떤 신들을 생각해냈는지가 내겐 언제나 극히 중요한 관심사니까. (p.123)

 

"불꽃 숭배는 지금까지 고안된 것 가툰데 가장 멍청한 건 아니지."

그가 혼잣말처럼 웅얼거렸다. 그 말 말고 우리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불꽃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꿈과 고요 속에 빠져들어 연기의 형상들과 재의 그림들을 보았다. 한번은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함께 불을 보고 있던 그가 잉걸불 속에 송진 한 조각을 던져넣자 작고 날씬한 불꽃이 솟구쳐올랐다. 그 속에서 노란 새매의 머리를 한 그 새를 보았다. 스러져가는 벽난롯불 속에서 황금색으로 빛나는 실들이 그물처럼 엉켜 철자와 그림 들이 나타났고, 얼굴, 동물, 식물, 벌레, 뱀 들에 대한 기억이 나타났다. 내가 깨어나서 그를 바라보자 그는 두 주먹에 턱을 괸 채 완전히 몰두하여 열광적으로 재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p.124)

 

다음번에 아주 정선된 옛날 오르간 음악 한 곡을 들려주기로 약속했다. 북스테후데의 파사칼리아였다. (p.125)

(참고)

Dieterich Buxtehude - Passacaglia for organ in D minor, BuxWV 161

Archiv Produktion 1959-1981 (50CSs - CD36)

북스테후드 - 오르간을 위한 파사칼리아

(02) Helmut Walcha (1977) Dieterich Buxtehude - Passacaglia for organ in D minor, BuxWV 161.mp3
14.79MB

Helmut Walcha (1977) Dieterich Buxtehude - Passacaglia for organ in D minor, BuxWV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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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어린 시절에 나는 자연의 기묘한 형태들을 바라보려는 성향이 있었다. 관찰이 아니라 그 본래의 마법에, 그 뒤얽힌 깊은 언어에 마음을 빼앗겼다. 목화된 긴 뿌리, 암석에 나타난 여러 색깔의 광맥들, 물 위에 떠다니는 기름얼룩, 유리에 난 균열들 - 이런 모든 것이 내게는 때때로 대단한 마법을 부렸으며, 무엇보다도 물과 불, 연기, 구름, 먼지, 그리고 특히 눈을 감으면 보이는 빙글빙글 도는 색깔점이 그랬다. 피스토리우스를 처음 방문하고 난 다음 며칠 동안 그런 것들이 다시 생각나기 시작했다. 내가 그 뒤로 느낀 어느 정도의 활력과 기쁨, 나 자신에게서 나오는 감성의 상승이 순전히 활활 타오르는 불을 오랫동안 바라본 덕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불을 바라보는 일이 특이하게도 좋은 영향을 미쳐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었다! (p.125-126)

 

지금까지 내 삶의 원래 목적을 향해 가는 도중에 겪은 몇 안 되는 경험에 이 새로운 경험도 더해졌다. 그런 형태들을 관찰하다보면, 그러니깐 비합리적이며 이상하고도 꿈틀거리는 자연 형태에 몰두하다보면, 이런 형태들을 있게 한 의지력과 우리의 내면이 서로 일치한다는 느낌이 생겨난다 -물론 곧바로 그런 일치감을 우리 자신의 변덕으로, 우리 자신의 창작으로 여기려는 유혹을 느끼지만- 우리는 자신과 자연 사이에 있던 경계가 흔들리면서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되며, 또한 이런 형태들이, 외부의 인상이 우리 망막에 맺혀서 생긴 것인지 아니면 내면의 인상이 눈앞에 나타난 것인지 모르는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창조자인지, 우리 영혼이 언제나 끊임없는 세계의 창조에 얼마나 많이 동참하고 있는지를 그렇게 쉽고도 간단하게 알아낼 수 있는 길은 이런 연습 말고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나뉘지 않은 동일한 신이 우리 안에서, 그리고 자연에서도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외부세계가 붕괴한다면 우리 중 한 명이 세계를 다시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산과 강, 나무와 잎새, 뿌리와 꽃, 자연의 모든 형태가 우리 안에도 미리 새겨져 있으며 바로 영혼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영혼의 본질은 영원성이며 우리는 그 본질을 알지 못하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대개의 사랑의 힘, 창조의 힘으로 느껴진다. (p.126)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눈물과 미소 - 칼릴 지브란 (김승희 옮김, 문예출판사) 개정판나옴

<사랑의 생애 - 겨울>

내 가까이로 다가오라, 영혼의 동반자여. 가까이 끌어안아 차가운 숨결이 우리의 몸과 몸을 나누지 못하게 하자.

이 로가에 나와 함께 앉으라. 불이야말로 겨울의 과일인 것이므로.

나ㅏ 함께 시대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자. 나의 귀는 바람들의 한숨 소리와 폭풍우의 비탄에 지쳤으므로.

문과 유리창을 단단히 잠그자. 대자연ㄴ의 분노에 찬 얼굴은 우리의 영혼을 슬프게 만들고 마치 죽은 어머니처럼 앉아 백설 아래 묻힌 도시를 내려다보게 하며 내 가슴에서 피를 흘리게 하므로.

그런 다음 그대여, 등잔에 기름을 채우라. 벌써 희미해지고 있으니. 그리고 어둠이 그대 얼굴 위에 무엇을 적고 있는지 내가 볼 수 있도록 등잔을 그대 옆에 놓으라. 포도주 항아리를 이리 가져와 우리 함께 마시며 포도를 밟던 그 시절을 기억하게 하라.

나에게 가까이 오라, 내 영혼의 연인이여, 불길은 죽어 가고 재가 그것을 숨기고 있다.

드불은 희미해지고 암흑이 그것을 감켜 버렸으니 나를 포옹해 다오.

우리의 눈동자는 세월의 포도주로 무겁구나.

잠으로 어두워진 그대 눈동자를 들어 나를 바라보아 다오. 잠이 우리를 포옹하기 전에 나를 껴안아 다오. 그리고 입맞춤을 해 다오. 눈이 내려 그대의 입맞춤만 빼놓고 모든 것들을 장악하고 있으므로.

오, 사랑하는 사람이여, 잠의 바다는 얼마나 깊은가! 이런 밤 속에서....아침이란 얼마나 멀리 있는가! (p.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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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번 만남에서 오르간 연주자는 내게 이런 설명을 해주었다.

"우린 우리 개성의 경계를 언제나 너무 좁게 잡는단 말이지! 우리가 개인적이라고 구분하는 것만을 따로 떼어내 우리 개성에 속한 것이라 여기는 거야. 하지만 우리는 모두 제각기 세계의 전체 구성성분으로 이루어져 있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그래. 우리 몸은 물고기나 그 보다 훨씬 더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진화의 게보를 속에 지니고 있고, 그와 똑같이 우리 영혼도 지금까지 인간의 영혼에 나타났던 것을 모조리 지니고 있다는 말이야. .과거에 존재한 적이 있는 모든 신과 악마는 그리스 사람 것이건 중국 사람 것이건 아니면 줄루족 것이건 상관없이 모두가 우리 안에 있어. 가능성으로, 소망으로, 탈출구로 존재하는 거야. 인류가 어느 정도 재능을 가진 아이 단 한 명만 남기고 모조리 멸종한다 해도. 그리고 이 아이가 수업을 받은 적이 없는 아이라 해도 이 아이는 모든 과정을 다시 찾아낼 거야. 신과 데몬과 낙원과 계명과 금지 들. 그리고 신구약 성경, 모든 것을 다시 창조해낼 거란 말이야." 

"좋습니다." 나는 항의했다. "그렇다면 대체 개인의 가치는 어디 있단 말인가요? 우리가 모든 것을 이미 완성된 채로 우리 안에 지니고 있따면 우리는 무얼 위해 노력하는 거죠?"

"자네가 그냥 세계를 속에 지니고만 있느냐, 아니면 그 사실을 알기도 하느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는거야. 미친 사람들이 플라톤을 상기시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 헤른후트파 학교의 경건한 꼬마 학동이 그노시스파나 조로아스터에게 나타나는 깊은 신비주의 맥락의 생각을 독창적으로 펼치는 일도 가능해. 그런데 그는 그런 것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른단 말이야! 그것을 모르는 한 그는 나무나 돌, 고작해야 짐승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인식의 첫 불꽃이 깜박거리면 그는 인간이 되지. 자넨 설마 저 바깥 길거리를 두 발로 서서 돌아다니는 모든 존재를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들이 두 발로 똑바로 서고 애를 임신하면 태내에 아홉 달을 품는 다는 이유만으로? 그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물고기나 양, 벌레나 거머리인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개미이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꿀벌인지 알고 있겠지! 하지만 그들 모두에겐 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어. 다만 스스로 그걸 눈치채고, 스스로 어느 정도는 그걸 의식하는 법을 배워야만 이 가능성이 진짜 그의 것이 되는 거지." (p.127-128)

 

그 모든 대화가 나의 형성을 돕고 내가 허물을 벗도록, 내가 알껍질을 깨뜨리도록 도와주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머리를 조금 더 위로, 조금 더 자유롭게 들어올리곤 했다. 나의 노란 새가 부서진 세계의 껍질에서 맹금류의 아름다운 머리를 치켜들 때까지.

한번은 꿈속에서 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익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크게 도약을 하다가 공중에서 나뒹굴며 떨어지곤 했다. 이 날아오르는 느낌은 상쾌했지만 뜻하지 않게 상당한 높이에 오르는 순간 상쾌함은 곧바로 두려움으로 변했다. 그 순간 나는 숨을 참거나 쉬는 것을 통해서 상승과 하강을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매우 안심했다.

그 꿈에 대해 피스토리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자네를 날게 만든 도약은 누구나 갖고 있는 우리 인율의 크나큰 재산이지. 모든 힘의 근원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하지만 동시에 그건 누구에게든 두려운 일이기도 해! 끔찍하게 위험한 일이니까!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날기를 포기하고 차라리 정해진 규정의 손길에 붙잡혀 보행자의 길을 걷기를 선택하는 거야. 하지만 자넨 안 그렇지. 자넨 계속 날아오르고 있어. 씩씩한 청년에게 어울리는 방식이지. 그리고 보라고, 자넨 차츰 스스로 날기를 통제할 수 있다는 그 경이로움을 발견하고 있어. 섬세하고도 작은 독자적임 힘, 하나의 신체기관, 하나의 방향키가, 자네를 계속 이끌어가는 그 거대한 보편적인 힘을 향해 나아가는 걸 말이지! 그건 정말 멋진 일이야. 그게 없다면 인간은 의지도 없이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꼴이지. 예를 들어 미친 사람들이 그렇다네. 미친 사람들에게는 저 보행자 도로를 걷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보다 더욱 깊은 예감이 주어졌네. 다만 그들은 그리로 날아갈 어떤 열쇠도 방향키도 없기에 바닥 없이 추락하는 거야. 그런데 싱클레어, 자넨 그 일을 잘해내고 있어. 하지만 어떻게? 그걸 아직 모르겠나? 자넨 새로운 기관, 호흡을 조절하는 기관으로 그걸 해내는 거야. 그렇다면 이제 자네의 영혼이란게 깊은 곳에선 거의 '개인'의 것이 아니라는 걸 볼 수 있겠지. 자네의 영혼이 이 기관을 새로 발명한 건 아니니까. 그건 새로운 게 아니지! 그냥 빌린 거야. 수천 년 전부터 있던 거니까. 그건 물고기들에게 있는 평형기관인 부레라네. 실제로 오늘날에도 몇몇 특이하고 오래된 물고기 종류들에게선 부레가 동시에 일종의 폐여서, 상황에 따라서는 진짜로 호흡에 쓰일 수도 있다네. 그러니까 자네가 꿈속에서 비행용 부레로 사용한 페와 아주 똑같은거지!" (p.128-130)

(함께 읽어면 좋은 책)

갈매기의 꿈 - 리처드 바크 (공경희 옮김, 나무옆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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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나 자신이 천재 같다가도 이따금은 절반쯤 미친 것 같았다. 또래 친구들의 기쁨과 삶을 함께 누리는 일이 내게는 잘되지 않았다. 내가 희망 없이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만 같아서, 삶이 내게는 닫혀 있는 것만 같아서 때때로 스스로를 비난과 근심으로 괴롭혔다. (p.131)

 

자넨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지. 음악이 도덕적이지 않아서 좋다고 말이야. 좋을 대로. 하지만 자네 자신도 도덕가가 되어선 안 되는 거야!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말게. 자연이 자네를 박쥐로 만들었다면 스스로 타조가 되려고 해서는 안 돼. 자넨 이따금 자신을 괴짜라 여기고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간다고 스스로를 비난하지. 그런 짓은 말아야 해. 불꽃을 들여다보게. 구름은 올려다보게. 예감들이 나타나면, 영혼 안에서 목소리가 말을 시작하면 그 소리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고, 그것이 선생님이나 아버지 또는 그 어떤 신에게 어울리는 일일까 묻지 말게! 그런 질문은 자신을 망칠 뿐이니까. 그랬다가는 보행자 도로를 걸으면서 화석이 되고 말지. 친애하는 싱클레어, 우리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야. 그 신은 신이며 동시에 악마지. 자기 안에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동시에 지니고 있어. 아프락사스는 자네의 생각 그 어느 것도, 자네의 꿈 그 어느 것도 반대하지 않아. 이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게. 하지만 자네가 언젠가 흠 없이 정상적인 사람이 되면 이 신은 자네곁을 떠날 거야. 자네 곁을 떠나서 자신의 생각을 담아 요리할 새로운 그릇을 찾아보겠찌. (p.132)

 

사제는 전도를 하는 게 아니고 다만 신도들 사이에서, 그러니까 자기와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살면서, 우리 인간이 신들을 만든 기원이 되는 감정을 지니고 그것을 표현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p.134)

 

"자네도 신비 의식을 갖고 있지. 나한테 말하지 않는 꿈을 꾼다는 걸 알아. 그걸 꼭 알고 싶진 않네. 하지만 이 말은 해두지. 그 꿈대로 살고, 그것을 놀이하고, 그것을 위해 제단을 만들게! 그게 완벽한 것은 아니라도 하나의 길이니까. 우리가, 그러니까 자네와 나와 다른 몇 사람이 앞으로 언젠가 세계를 새롭게 혁신하게 될지 어떨지는 두고 봐야겠지. 하지만 우리는 우리 안에서 매일 세계를 새롭게 만들어야 해. 안 그랬다간 우린 아무것도 아니게 되니까. 그 점을 생각하게! 자넨 이제 열여덟 살이지. 싱클레어. 자넨 길거리 창녀에게 가질 않아. 자넨 분명 사랑의 꿈, 사랑의 소망을 갖고 있을 거야. 어쩌면 그건 자네가 두려워하는 모습이겟지. 두려워하지 말게! 그건 자네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이니까. 내 말 믿게. 나는 자네 나이에 내 사랑의 꿈을 능멸해버렸고, 그로써 많은 것을 잃었어. 그래선 안 되지. 아프락사스에 대해 안다면 그래선 안 돼.. 그 무엇도 두려워해선 안 돼. 우리 안에서 영혼이 소망하는 그 무엇도 금지된 것으로 여겨선 안 되네."

나는  깜짝 놀라서 항의했다. "하지만 생각나는 대로 모든 것을 할 수야 없지요! 어떤 인간이 역겹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죽여선 안 되잖아요."

"상황에 따라선 그래도 되지. 다만 대부분의 경우에 그건 오류에 지나지 않아. 그렇다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야. 자체로 분명한 의미가 있는 발상들을 쫓아버리거나 그것을 놓고 이리저리 도덕적으로 저줄질해서 해치지는 말아야 한다는 말이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지 말고 뛰어난 생각이 담긴 잔을 마시면서 제물의 신비 의식을 생각할 수도 있다네. 그런 행동을 하지 않고도 자신의 충돌들과 이른바 유혹들을 존경과 사랑으로 대할 수도 있다네. 그러면 그런 충동들과 유혹들이 그 의미를 드러내지. 그것들은 모두 의미를 갖고 있으니까. 언제든 무언가 진짜 및친 생각, 죄 많은 생각이 떠오르거든, 싱클레어, 누구를 죽이고 싶거나 아니면 어떤 엄청나게 추잡한 짓을 하고 싶어지면 한순간만 생각해보게. 자네 안에서 그런 공상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프락사스라는걸! 자네가 죽이고 싶은 인간은 아무개 씨가 아니라, 틀림없이 하나의 위장에 지나지 않을 거야. 우리가 어떤 인간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 모습 속에서 우리 안에 있는 무언가를 보고 미워하는 거지. 우리 자신 안에 없는 것은 우리를 자극하지 않는 법이니까."

:우리 안에 있는 것과 같은 것들이야. 우리 안에 있는 현실 말고 다른 현실은 없어.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토록 비현실적으로 사는 거지. 자기 밖의 모습들을 현실이라 여기고, 자기 안에 있는 본래의 세계가 발언 할 수 없게 하니 말이지. 그렇게 해서 행복할 수도 있어. 하지만 한번 다른 것을 알게 되면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을 선택하지는 않게 되지. 싱클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은 쉽지만 우리의 길은 어려워. 자, 우리 함께 가보세." (p.135-136)

 

그려진 얼굴은 램프 불빛 속에서 이름을 부를 때마다 모습을 바꾸었다. 밝게 빛나기도 하고, 시커멓게 어두워지기도 하고, 죽은 눈길 위로 창백한 눈꺼풀을 떨어뜨리기도 하고, 눈꺼풀을 다시 활짝 열고 빛나는 눈길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것은 여자이고, 남자이고, 소녀이고, 작은 아니이고, 짐승이고, 줄어들어 울룩이 되었다가 다시 크고 분명해졌다. 마지막에 나는 내면의 강력한 부름은 좇아 눈을 감고는 내 속에서 그 그림을 보았다. 진짜보다 더 강렬하고 힘찬 모습이었다. 그 앞에 무릎을 꿇으려 했지만, 그 모습이 얼마나 깊숙이 나의 내면으로 들어와 버렸는지 나 자신에게서 떼어낼 수가 없었다. 마치 그것이 순수하게 내가 되어버린 것처럼.

그 순간 이른 봄의 폭풍처럼 어둡고 무거운 솨아 소리가 들렸다. 말로 표현할 길이 없는 두려움과 체험이 뒤섞인 새로운 느낌에 몸이 떨렸다. 별들이 내 앞에서 번쩍 빛나다가 꺼지고, 저 최초의 잊어버린 어린 시절에까지 이르는 기억들이, 아니 존재 이전의 시기, 생성의 처음 단계에까지 이르는 기억들이 물밀듯이 나를 스쳐지나갔다. 가장 비밀스러운 것에 이르기까지 내 생애 전체를 되풀이하는 듯이 보이는 이 기억들은 어제와 오늘에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미래를 비춰주고, 나를 오늘에서 떼어내 새로운 삶의 형식으로 이끌어갔다. 그 모습들은 끔찍하게 밝고 눈부셨는데, 그중 어느 것도 나중에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p.143)

(깉이 읽으면 좋은 책)

싯다르타 - 헤세 (이인웅 옮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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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집으로 가, 그리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라! 넌 잘못된 길을 간 거야, 잘못된 길을! 우린 네가 말한 것처럼 돼지가 아니야. 우리는 인간이다. 우리는 신들을 만들고, 신들과 싸우고, 신들이 우리를 축복해주는 거야. (p.146)

 

그 시절 성 OO시에서 내게 생긴 가장 좋은 일은 오르간 연주를 들으며, 혹은 벽난롯불 앞에서 피스토리우스와 함께 보낸 시간이었다. 우리는 아프락사스에 대한 그리스어 텍스트 하나를 함께 읽었다. 그는 <베다>의 번역 몇 구절을 낭독하고 거룩한 '옴'을 말하는 법도 가르쳐주었다. 그러는 사이 이런 학술적인 태도는 나의 내면을 격려해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내게 도움이 된 것은 내가 나 자신의 내면에서 앞으로 나아갔음을 보는 것, 그리고 내 안에 지닌 힘에 대해 점점 더 알아가는 것이었다. (p.146)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베다 - 이명권 (한길사)

우파니샤드 (이재숙 옮김,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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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없는 사람들도 삶에서 한두 번쯤 경건함이나 고마움 같은 미덕들과 갈등에 빠지는 일을 면하기는 어렵다. 누구나 언젠가는 제 아버지와 선생님들에게서 떨어져나오는 발걸음을 옮겨야 하고, 누구나 고독이 가혹함을 조금이라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p.148)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내 안에서 친구인 티스토리우스를 그렇게 무조건 안내자로 인정하는 데 반대하는 감정이 생겼다. 청소년기의 가장 중요한 몇 달 동안 나는 그와의 우정을 체험했고, 그의 충고와 위로, 그가 가까이 있음을 체험했다. 신이 그를 통해 내게 말을 했다. 내 꿈은 그의 입을 통해 내게로 되돌아오고, 설명되고, 해석되었다. 그는 내게 나 자신에게로 갈 용기를 선물해주었다. 아, 그런데 지금 나는 천천히 그에 대한 반감이 자라고 있음을 느꼈다. 그의 말에서 너무 많은 가르침을 들었고, 그가 오로지 나의 일부분만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느낌이 밀려왔다.(p.149)

 

한동안 막연한 예감 같은 것이 나를 짓눌렀다. 그것은 어느 일요일 그의 낡은 서재에서 뚜렷한 감정이 되었다. 우리는 불 앞쪽 바닥에 엎드려 있었고, 그는 신비 의식과 종교 형태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그런 것들을 연구하고 곰곰히 생각했으며, 그 가능한 미래에 열중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내게는 목숨만큼 중요한 것이라기보다는 호기심을 끄는 흥미로운 것 정도였다. 내게는 지겨운 가르침으로, 옛날 세계의 폐허 더미를 힘들게 헤집는 일 정도로만 들렸던 것이다. 불현듯 이런 모든 방식, 신비주의에 대한 이런 숭배, 전해내려오는 신앙 형태들을 이용한 이런 모자이크 놀이에 반감이 들었다. (p.149)

(같이 읽으면 좋은 책)

텅빈 가슴을 넘어서(남전) - 오쇼 라즈니쉬 (손민규 옮김, 태일출판사)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무문관) - 강신주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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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토리우스는 고마움을 모르는 시건방진 제자인 나의 일격을 그렇게 소리 없이 받아들임으로써, 내가 옳다고 말하고 침묵함으로써, 내 말이 운명임을 인정함으로써 내가 스스로에게 증오스러운 존재가 되게 만들었고, 나의 무분별함을 천 배나 더 크게 만들었다. 내가 공격했을 때 나는 방어력이 있는 강한 사람을 때린다고 생각했으나 실은 조용하고 참을성 있는 사람, 침묵하면서 항복해버리는 방어력이 없는 사람을 때렸던 것이다. (p.152)

 

나는 아주 천천히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내 생각은 모조리 나를 고발하고 피스토리우스를 방어하려는 의도를 지닌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정반대로 끝나고 말았다. 천 번이라도 기꺼이 내 성급한 말을 후회하고 철회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 말이 맞았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피스토리우스를 이해하고, 그의 꿈 전체를 내 앞에 지어놓을 수가 있었다. 그의 꿈은 사제가 되어 새로운 종교를 선포하고, 사랑과 숭배, 고양의 새로운 형식들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상징들을 세우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그의 능력도 그의 직분도 아니었다. 그는 과거의 것에 너무 오래 머물렀고, 옛날에 있었던 것을 너무 정확하게 알았다. 이집트, 인도, 미트라스 신과 아프락사스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았따. 그의 사랑은 세계가 이미 보았던 옛날 모습들에 달라 붙어 있었는데, 그 자신이 새로운 것은 새롭고도 달라야 한다는 사실을, 또 그것은 신선한 바탕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지 온갖 수집품과 도서관에서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가장 깊은 내면에서 무척이나 잘 알았다. 그의 직분이란 어쩌면 이미 내게 그랬듯이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로 가도록 돕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그동안 들어보지 못한 것, 새로운 신을 제시하는 일은 그의 직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리고 여기서 깨달음이 날카로운 불꽃처럼 갑자기 나를 불태웠다. 각자에게 '직분'이 주어져 있지만, 그 누구도 자신이 직접 그것을 고르거나 고쳐 쓰거나 멋대로 지배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새로운 신들을 원하는 것은 잘못이다. 세계에 그 어떤 새로운 것을 부여하려는 것은 완전히 잘못이다! 깨어난 인간에게는 단 한 가지, 자기 자신을 탐색하고, 자기 안에서 더욱 확고해지고, 그것이 어디로 향하든 자신만의 길을 계속 더듬어나가는 것 말고는 달리 그 어떤, 어떤, 어떤 의무도 없다. 이 깨달음이 나를 깊이 뒤흔들었다. 그리고 이 체험에서 얻은 열매는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자주 미래의 모습들을 가지고 장난을 쳤고, 내게 배정되어 있을 역할들, 시인이나 어쩌면 예언자, 아니면 화가 등의 역할들을 꿈꾸었다. 그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문학작품을 쓰거나 설교하거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나뿐만 아니라 다른 누구도 그런 이유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모든 것은 오로지 곁다리로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진정한 소명이란 오직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그것뿐이다. 그는 마지막에 시인이나 미친 사람, 예언자나 범죄자가 되어 있을 수도 있다 - 이것은 그 자신의 문제가 아니며, 결국은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다. 그의 과제는 멋대로의 운명이 아닌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 내면에서 완전하고도 끊임없이 그에 따라 사는 것이다. 그것 말고 다른 것은 모두 반쪽이자 벗어나려는 시도이며, 대중의 이상으로서의 도주, 그냥 적응, 자신의 내면에 대한 두려움일 뿐이다. 내 앞에 새로운 모습이 두렵고도 거룩하게 떠올랐다. 이미 수없이 예감했고 어쩌면 자주 표현했던 것, 그러나 나는 이제야 비로소 진짜로 체험했다. 나는 자연의 내던짐이었다. 불확실성을 향한, 어쩌면 새로움을 향한,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향한 내던짐이었다. 그리고 태고의 깊이에서 나오는 이 내던짐이 완전히 이루어지도록 내 안에서 그 의지를 느끼고, 그것을 완전히 나의 의지로 삼는 것, 그것만이 내 소명이었다. 오직 그것만이! (p.152-154)

나는 이미 많은 고독을 맛보았다. 하지만 이제 그보다 더 깊은 고독이 있음을, 그것이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예감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자기로부터의 혁명 -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범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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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제가 되려는 소망을 품었네, 자네도 알지. 나는 기꺼이 새로운 종교의 사제가 되고 싶었어. 그에 대해 우리는 많은 것을 에감하고 있으니까. 나는 절대로 그렇게 될 수 없을 거야. 나도 알아.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고, 나 자신한테 제대로 고백하지 못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말이지. 나는 아마 다른 사제 노릇을 하게 될 거야. 어쩌면 오르간으로, 어쩌면 다른 방식으로, 하지만 나는 언제나 나 스스로 아름답고 거룩하다고 느끼는 무언가에 둘러싸여 있어야만 한다네. 오르간 음악이나 신비 의식, 상징과 신화, 나는 그런 게 필요하고 거기서 벗어나고 싶지 않아. 그게 내 약점이야. 나도 이미 알아, 싱클레어. 이따금은 그런 소망을 갖지 않아야 한다는 걸. 그게 사치며 약점이라는 걸. 내가 아무런 요구도 없이 그냥 온전히 운명에 자신을 맡긴다면 그게 훨씨 위대하고 올바른 일이겠지. 하지만 난 그렇게 못해. 이것이 내가 할 수 없는 유일한 일이야. 어쩌면 자넨 언젠가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거야. 그건 어려운 일이지. 존재하는, 유일하게 힘든 일이라네. 때때로 그런 꿈을 꾸기도 했지만 난 못해. 그러면 난  벌벌 떨려. 나는 그렇게 완전히 벌거벗고 고독하게 서 있을 수가 없다네. 내가 비록 가련하고 허약한 개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무언가 온기와 먹이가 필요하고 이따금 자기와 같은 자들이 가까이 있음을 느끼고 싶어. 정말이지 자기 운명 이외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자기와 비슷한 자들을 옆에 두지 않아. 그는 온전히 홀로 서고, 자지 구변에 차가운 세계공간만을 두지. 이걸 알아두게.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가 그랬어. 기꺼이 십자가에 못박힌 순교자들이 있었지만 그들도 영웅은 아니었지. 그들은 해방되지 못했어. 그들도 자기들에게 사랑스러운 것, 친숙한 것을 원했네. 그들은 모범과 이상이 있었던 거지. 오직 운명만을 원하는 사람은 모범도 이상도 없고, 사랑스러운 것도 위안이 되는 것도 없다네! 사람은 본래 이런 길을 걸어야겠지. 나나 자네 같은 사람들은 매우 고독하지. 하지만 우리에겐 서로가 있어. 다른 사람과는 다르고, 서로 기대고, 특이한 것을 바란다는 은밀한 쾌감이 있지. 하지만 누군가 자기만의 길을 온전히 가고자 한다면 그것도 없애버려야 해. 그는 혁명가나 어떤 본보기나 순교자가 되려고 해서는 안 되는 거야.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

그렇다 생각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꿈을 꿀 필요는 있었다. 미리 느끼고 예감해야만 했다. 완전히 고요한 시간을 찾아냈을 때 몇 번 그런 것을 느꼈다. 그러고는 나 자신을 들여다보다가 내 운명의 모습의 단호한 두 눈을 보았다. 이 눈은 지혜로 가득할 수도, 광증으로 가득할 수도 있다. 사랑을 내뿜을 수도, 깊은 악의를 내뿜을 수도 있으나 상관없다. 우리는 그중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으며 선택하려 들어서도 안 된다. 인간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오로지 자기 운명만을 원할 수 있을 뿐이다. 피스토리우스는 길 안내자로서 내게 그 길의 한 구간을 안내해주었던 것이다. (p.155-156)

 

그녀는 데미안의 어머니 사진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녀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한데 그 작은 사진을 보는 순간 심장이 멎고 말았따. 그것은 내 꿈속의 모습이었다! 그녀였다. 키가 큰, 거의 남성적인 여인의 모습, 아들과 비슷한, 모성의 모습을 지닌, 엄격함과 깊은 정열을 드러낸, 아름답고 유혹적인, 아름답고 다가갈 수 없는, 데몬이며 어머니, 운명이며 연인이었다. 바로 그녀였다! (p.158)

 

나는 그녀를 거의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마치 그녀가 공기이기라도 하듯 지나쳐버렸다. 단 한 시간이라도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두느니 차라리 당장 죽고 싶었다. (p.159)

 

교외의 낡은 집에 조영히 살며 책상 위에는 니체의 책 몇 권을 올려놓았다. 나는 니체와 함께 살면서 그의 영혼의 고독을 느꼈고, 그를 쉴새없이 몰아간 운명을 냄새 맡고, 그와 함께 고통받았으며, 또 그토록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간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pp.160)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니체 - 백승영 (한길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니체 (곽복록 옮김, 동서월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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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hard Strauss - Also Sprach Zarathustra Op.30 (RCA Living Stereo, vol.1 - CD 4)

리하르트 스트라우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01) Fritz Reiner, CSO (1954.3.8) Richard Strauss - Also Sprach Zarathustra Op.30 - 1. Sunrise.mp3
3.60MB

Fritz Reiner, CSO (1954.3.8) Richard Strauss - Also Sprach Zarathustra Op.30 - 1. Sunr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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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유럽의 정신과 이 시대의  징표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디서나 연합과 패거리 짓기가 이루어진다고 했다. 하지만 자유와 사랑은 어디에도 없다. 대학생 연합과 합창 동아리부터 국가들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단체는 강박감에 의해 형성되고 두려움과 공포와 당혹감에서 나온 공동체로서, 그 내면은 부패하고 늙었으며 거의 붕괴에 이르렀다고 했다.

"함께한다는 건," 데미안이 말했다. "아름다운 일이지. 하지만 지금 사방에서 번성하고 있는 건 아름다운 게 아니야. 아름다운 함께하기는 개인들의 상호이해에서 새로 생겨나게 될 거야. 그리고 한동안 세계를 변화시키겠지. 지금 사람들의 함께하기란 그냥 패거리 짓기일 뿐이야. 사람들은 서로서로가 두려워서 서로에게로 도망치는 거지. 신사들은 신사들끼리. 노동자들은 노동자들끼리, 학자들은 학자들끼리 말이지! 그럼 그 사람들은 어째서 두려워하느냐? 인간은 자기 자신과 하나가 아닐 때만 두려움을 갖는 법이야. 자기 자신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는 거지. 그러니까 자기 안에 있는 모르는 존재를 두려워하는 사람끼리의 공동체인 거야! 그들은 모두가 제 삶의 법칙이 이제 더는 맞지 않음을, 자기들이 낡은 규범에 따라 살고 있음을 느끼지. 그들의 종교도 도덕심도 그 무엇도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에는 어울리지 않아. 백 년이 넘도록 유럽은 그냥 대학 공부를 하고 공장이나 세웠을 뿐이야! 그들은 한 인간을 죽이려면 화약 몇 그램이 필요한지 정확히 알고 있지. 하지만 신에게 기도하는 방법을 모르고, 한 시간 동안을 어떻게 만족스럽게 보낼 수 있는지도 몰라. 대학생 주점들을 한번 살펴봐라! 아니면 부자들이 가는 유흥의 장소들을! 희망이 없어! 친애하는 싱클레어. 이런 모든 것에서 명랑한 것이 나올 순 없다. 이렇게 두려워서 함께 모여 있는 사람들은 두려움과 악의에 가득 차 있어. 아무도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지. 그들 모두가 이제 더는 이상이 아닌 이상들에 매달리면서 누군가 새로운 이상을 내놓기만 하면 그를 돌로 쳐죽이지. 대립들이 있다는 게 느껴져. 그 대립들이 올 거야. 내 말을 믿어. 머지않아 나타날 거다! 물론 그런 것들이 세계를 '개선'하진 못해. 노동자들이 공장주를 때려죽이거나 러시아와 독일이 서로 총을 쏜다 해도 그냥 소유주만 바뀌고 말거야. 그렇다고 그게 아주 소용없는 일은 아니야. 그건 오늘날의 이상들이 가치가 없음을 보여줄 거다. 석기시대의 신들을 제거해주겠지. 지금 이 세계는 죽을 거야. 무너질거라고, 그럴거야." 

"그럼 우린 어떻게 되지?" 내가 물었다.

"우리? 오, 아마 우리도 함께 무너지겠지. 우리 같은 사람도 때려죽일 테지. 다만 우리는 그걸로 끝장나지는 않아. 우리에게 남은 것, 또는 우리 중 살아남은 자들 주변으로 미래의 의지가 모여들겠지. 인류의 의지가 드러나겠지. 우리 유럽이 한동안 기술과 학문의 박람회에서 소리쳐 부르짖던 인류의 의지 말이야. 그다음엔 그 인류의 의지라는 게 오늘날의 공동체, 국가와 민족, 협회와 교회 들과는 절대로 같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나겠찌. 자연이 우리 인간에게 원하는 것은 각 개인 안에 쓰여 있어. 너와 내 안에 말이야. 그건 예수 안에, 그리고 니체 안에 쓰여 있었어. 현재의 공동체들이 무너지면 유일하게 중요한 그런 흐름들을 위한 - 물론 그 흐름들은 매일 다르게 보일 테지만 - 공간이 생겨나겠지." (p.163-165)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유럽 외교사 - 윤경철 (보광) 절판

어머니 - 고리키 (최윤락 옮김, 열린책들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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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늘해진 밤에 기쁜 마음으로 먼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도시 여기저기서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이 떠들어대며 비틀거렸다. 나는 그들의 우스꽝스러운 즐거움의 방식과 나의 고독한 삶 사이에 존재하는 대립을 이미 자주 느꼈다. 때로는 결핍의 감정으로, 때로는 조소를 품은 채로. 하지만 그런 일이 나와는 얼마나 상관없는지, 이 세계가 내게는 얼마나 멀리 사라져버렸는지를 오늘처럼 평온하고도 은밀한 힘을 품은 채 느낀 적은 없었다. 고향 도시의 관리들이 생각났다. 늙고 기품 있는 신사들, 마치 지복의 낙원에 대한 추억처럼 선술집에서 보낸 대학 시절의 기억들에 매달려 사는 사람들, 사라져버린 '자유'의 향수를 지닌 채 시인들이나 낭만주의자들이 어린 시절에 바치던 것과 같은 숭배를 학창 시절의 추억에 바치는 사람들이었다. 어디서나 똑같았다! 어디서나 그들은 '자유'와 '행복'을 저 과거에서만 찾았다. 자신의 본래의 책임이 생겨날까봐, 자신의 본래의 길을 가라는 경고를 받을까봐 두려워서였다. 몇 년 동안 퍼마시며 즐겁게 살다가 안전을 찾아 기어들어가서 국가기관에 근무하는 엄격한 신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 주변은 썩어빠지고 게을렀다. 그래도 대학생들의 이런 어리석음은 수많은 다른 일들보다는 덜 어리석고 덜 나쁜 일이었다. (p.165-166)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오늘을 살기 위하여 -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박윤정 옮김, 판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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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색채를 잃어버린 것이 어린 시절의 상실과 뗄 수 없이 연관되어 있다고, 또 이런 고운 광채를 포기해야만 영혼의 자유와 어른스러움을 얻을 수 있다고 여겼다. 이제야 나는 이 모든 것이 그냥 파믿힌 채 어두워져 있었을 뿐임을 알고 황홀해졌다. 자유롭게 되어서도, 어린 시절의 행복을 포기하고 나서도 여전히 빛나는 세상을 볼 수 있고, 어린이처럼 바라볼 때 느끼는 내면의 전율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p.167)

 

"길이란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어려운 건가요?"

"태어나는 일은 언제나 어렵죠. 당신도 알죠. 새는 알에서 밖으로 나오려고 애쓴다는 걸. 돌이켜 물어보세요. 길이 그토록 어려웠던가? 오직 어렵기만 했던가? 아름답기도 하지 않았던가요? 당신은 그보다 더 아름답고 더 쉬운 길을 알 수 있었을까요?"

"어려웠어요. 꿈이 나타나기까진 어려웠죠."

"그렇죠. 누구나 자신의 꿈을 찾아내야죠. 그러면 길이 쉬워져요. 하지만 언제까지나 지속되는 꿈은 없어요. 지난 꿈을 밀어내고 새로운 /꿈이 나타나죠. 그 어떤 꿈도 꼭 붙잡으려 해서는 안돼요."

"모르겠어요. 내 꿈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그게 영원하기를 바라죠. 내 운명이 새 그림 아래서 나를 어머니처럼, 연인처럼 맞아들였어요. 나는 내 운명에 속하지요. 그 누구에게도 아니고."

"그 꿈이 당신의 운명인 한 거기에 충실해야 합니다. (...) 싱클레어, 당신은 아이예요! 당신의 운명은 당신을 사랑하죠. 당신이 충실하기만 하다면 운명은 언젠가 당신이 꿈꾸는 대로 완전히 당신 것이 될 거예요" (p.170-172)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다 지나간다 - 지센린 (허유영 옮김, 추수밭)

인생 - 지센린 (이선아 옮김, 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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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부터 나는 아들이며 형제처럼, 또한 애인처럼 그 집을 드나들었다. 내 뒤로 대문을 닫으면서, 그렇다, 멀리서 정원의 높은 나무들이 보이기만 해도 벌써 나는 마음이 풍요롭고 행복했다. 바깥에는 '현실'이 있었다. 거리와 집, 사람과 여러 가지 시설, 도서관과 강의실 들이 있었지만 이 안에는 사랑과 영혼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동화와 꿈이 살았다. 그렇다고 우리가 세상과 단절하고 살았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자주 생각과 대화를 통해 세상 한가운데서 살았는데, 다만 다른 영역에서 살았을 뿐이다. 우리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어떤 경계를 통해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보는 방법이 다름으로써만 나뉘어 있었다. 우리의 과제는 세상에 하나의 섬을 보여주는 것, 어떠면 하나의 모범으로, 적어도 다른 가능성을 알리는 존재로 사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고독한 사람이던 나는 완전한 고립을 맛본 사람들 사이에서만 가능한 공동체를 알게 되었다. 이제 다시는 행복한 사람들의 식탁으로, 즐거운 사람들의 축제로 돌아가기를 갈망하지 않았다. 이제 다시는 다른 사람들이 함께하는 것을 보아도 질투와 향수가 나를 덮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표'를 지닌 사람들의 비밀을 전수받았다.

표를 지닌 우리는 세상의 눈에는 기묘하고 심지어 돌았으며 위험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는데, 그건 어쩌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었다. 우리는 이미 깨어난 사람들, 또는 깨어나는 도중의 사람들이었다. 우리의 열망은 점점 더 완전한 깨어 있음을 향했다. 그에 반해 다른 사람들의 열망과 행복 찾기는 자신들의 의견, 자신들의 이상과 의무, 자신들의 삶과 행복을 점점 더 패거리의 그것에 밀착시키는 일로 향했다. 그곳에도 열망이 있고, 그곳에도 힘과 위대함이 있었다. 하지만 표를 지닌 우리는 자연의 의지란 새로운 존재를, 개인과 미래의 존재를 향한다고 여기는 데 반해서, 다른 사람들의 지속의 의지 속에서 살았다. 그들에게 인류는 - 그들도 우리처럼 인류를 사랑했다 - 완성된 것, 그래서 유지하고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인류는 먼 미래였다. 우리 모두 그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도중에 있으며, 그 미래의 모습을 아무도 알지 못하고, 그 법칙은 그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았다. (p.173-174)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섬 - 장 그르니에 (김화영 옮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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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교단>

1891년, 신지학 협회의 창설자 헬레나 블라바츠키 부인은 '협회의 진정한 목적은 세계의 교사가 지상에 재림하실 때를 위해 회원들을 준비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1911년, 장차 세계의 교사로 발탁되어 세계적 복음을 가져올 조직으로서, 협회와는 별개로 〈별의 교단〉이 창설되었다. 소년 크리슈나무르티에게 지도자의 자질을 키워주기 위해 그를 대학에 입학시켜려 하였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입학하지 못한 채 1921년 다시 인도로 돌아왔다. 다음 해 미국으로 건너가 로스엔젤레스에서 80마일 떨어진 캘리포니아 오하이 협곡 안의 요양처에 머무른다. 인디안 말로 보금자리를 뜻하는 이 곳에서 크리슈나무르티는 일생 일대 전환점이 된 '신비적 체험'을 겪었다. 25세 때의 일이다. 이 신비적 체험에 대해 그는 '삶의 원천에서 깨끗하고 맑은 물을 마신 것 같다.고 했다. 나의 갈증은 치유되었다. 나는 두 번 다시 갈증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두 번 다시 빛이 없는 어둠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광명'을 보았다.

<별의 교단 해단>
1929년 8월 2일 네델란드 옴멘 캠프는 다음날 아침에 있게 될 '별의 교단 해산선언 연설문'을 듣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긴장된 시간 속에서 연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앞으로 다가올 세계를 이끌어 가기를 믿고 따르는 사람이 이 '별의 교단'에서 나왔고, 그 교단의 주인인 크리슈나므르티 자신이 그를 오랫동안 지켜봐 온 수천명의 단원들을 하루 아침에 해산하려고 하였다. 그의 별의 교단 해산 선언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회원들을 해산하는 발표문이기 때문에, 거기 모인 단원들은 물론 전 세계에 흩어져 그를 지켜보아 온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긴장된 가운데 이 연설을 듣기 시작하였다.
그는 1929년 8월 3일 네델란드 국영방송을 통하여 3천명이나 모여 있는 청중들을 향해, 그는 예고도 없이 갑자기 오랜 전통 속에서 계획되어 있던 인류를 구원하고자 준비된 지도자를 거부하고, 그를 추앙해 온 거대한 조직과 수십만 회원들을 해산해버리는 결단으로 연설을 하였다.
그는 '진리는 길이 없는 육지'라고 말문을 열면서, '진리를 구할 목적으로 조직이 구성된다면, 그것은 목발이 되고 붕대가 되어 진리를 구하려는 사람을 불구로 만들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나는 추종자들을 원치 않으며 인간을 모든 새장, 공포, 종교로부터 자유롭게 만들고 싶다’고 선언하였다. 그는 1930년에 공식적으로 신지학회에서 탈퇴했고, 그해 7월부터 스스로 새로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공개강연을 하기 시작하였다.

고개든 성자 -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한국번역가협회 옮김, 세종출판사) 절판

크리슈나무르티의 마지막 일기 -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김은지 옮김, 청어람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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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에 표를 지닌 우리에게는 미래의 형성을 걱정하는 일이 의무가 아니었다. 우리에게는 그 모든 신앙, 그 모든 치유이론이 처음부터 쓸모가 없고 죽은 것이었다. 우리 각자가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는 일, 자신 안에서 작동하는 자연의 소질에 완전히 어울리게 되어 자연의 의지에 맞게 사는 일, 불확실한 미래가 가져오는 것이 무엇이든 그에 대한 각오를 다지는 일만이 우리의 의무이며 운명이라고 느꼈다.

왜냐하면 새로운 탄생과 현존하는 것의 붕괴가 눈앞에 다가와 이미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상관없이 우리 모두의 감정에 뚜렷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데미안은 이따금 이렇게 말하곤 했다. "무엇이 다가올지 미리 생각할 수는 없어. 유럽의 영혼은 끝없이 오래 사슬에 묶여 있던 짐승이야. 그게 풀려나면 그 최초의 움직임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 될 순 없어. 사람들이 그토록 오래 두고두고 없다고 거짓말하고 마비시켜온 이 영혼의 진짜 곤궁이 드러나는 날이면 온갖 길과 우회로도 아무 소용이 없지. 그럼 우리의 날이 오는 거지. 사람들에겐 우리가 필요할 거야. 안내자나 새로운 입법자로서가 아니라 - 우린 이제 새로운 법을 경험하지는 못해 - 함께 가다가 운명이 부르는 곳에서 멈춰 설 각오가 된 사람으로서 말이지. 봐, 모든 사람은 자기의 이상이 위협을 받으면 믿을 수 없는 일도 해낼 각오가 되어 있어. 하지만 새로운 이상이, 새롭고도 어쩌면 위험한, 엄청난 성장의 움직임이 문을 두드리면 거기엔 아무도 없지. 우리는 그럴 때 거기 있다가 함께 가는 극소수의 사람이 될 거야. 그러라고 우린 표를 지닌 거니까. 두려움과 증오를 불러일으키면서 당시 사람들을 좁은 목가적 생활에서 위험한 너른 세상으로 몰아내도록 카인이 표를 지녔던 것처럼 말이지. 인류의 걸음에 영향을 남긴 사람들은 모두 예외 없이 운명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었기에 그렇게 능력을 발휘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거지. 그건 모세나 붓다에게, 나폴레옹이나 비스마르크에게 모두 해당되는 말이야. 그가 어떤 파도를 위해 봉사할지, 어떤 극단의 지배를 받을지는 그 자신의 선택이 아니야. 비스마르크가 사회민주주의자들을 이해하고 그들 편을 들었다면 그는 영리한 사람이었을 테지만 운명의 사람은 아니었을 거야. 나폴레옹도 그렇고, 카이사르도, 로욜라도, 모두가 그래! 그걸 언제나 생물학적으로 발전사적으로 생각해야만 해! 지구 표면의 격변이 물속에 사는 동물을 육지로, 육지에 사는 동물을 물속으로 몰아붙였을 때, 운명을 받아들일 각오가 되었던 표본들은 전에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일을 완수하고 새롭게 적응하여 자기들의 종을 구원할 수 있었지. 이런 표본들이 전에 자기들의 종에서 기존의 것을 지키는 보수주의자로 뛰어난 존재였는지, 아니면 괴짜이며 혁명가로 뛰어났는지 우리는 알지 못해. 그들은 각오가 되어 있었고, 그래서 자기들의 종을 새로운 발전으로 이끌어 구원한 거야. 우린 그걸 알지. 그러니 우리도 각오를 하려는 거다." (p.176-177)

 

그는 사랑했고, 그로써 자기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하면서 자신을 잃어버린다. (p.180)

 

이런 꿈들에서 나는 이미 너한테 말한 적이 있는 그런 예감들을 얻지. 우린 세계가 완전히 썩었다는 걸 알아. 그렇다고 그게 종말이나 뭐 그런 걸 예언할 근거가 되지는 못해.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낡은 세계의 붕괴가 가까이 다가왔다는 결론을 내리게 해주는, 또는 느끼게 해주는,  그걸 뭐라 말하든 아무튼 그런 꿈을 꾸었어. 처음에는 멀리 있는 아주 약한 예감이더니 점점 뚜렷해지고 강해졌어. 아직도 나는 나와도 연관된 무언가 거대하고 끔찍한 일이 시작되었다는 것밖엔 몰라. 싱클레어, 우리는 이미 여러 번이나 이야기한 그 일을 체험하게 될 거야! 세계는 스스로를 갱신하려고 한다. 죽음의 냄새가 난다. 새로운 것은 그 무엇도 죽음이 없이는 오지 못하니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끔찍하구나. (p.186-187)

 

슬프진 않아요, 어머니. 우린 그냥 이 새로운 징조의 수수께끼를 조금 풀어보았죠. 하지만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 다가오는 것이 갑자기 나타나면 우리가 알 필요가 있는 걸 경험하게 될 테니까. (p.187)

 

아름답고 편안한 일들과 감정들에만 홀린 채 느긋하게 살아도 되는 섬.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던 새롭고도 더욱 높은 공동체의 전조임을 예감했다. 그럴수록 이런 행복을 넘어선 깊은 슬픔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것이 계속될 수 없음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풍요로움과 안락함 속에서 숨쉬는 일은 내게 주어진 몫이 아니었다. 나는 고통과 서두름이 필요했다. 어느 날인가 나는 이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들에서 깨어나 다른 사람들의 차가운 세계에서 다시 홀로, 완전히 홀로 서게 되리라는 사실을 짐작했다. 오로지 고독이나 싸움만 있고, 누군가와 함께 사는 일도 평화도 없는 그런 세계에서 말이다. (p.108-109)

 

아마 일주일 뒤면 난 전쟁터에 있을 것 같아.

이거봐, 꼬마야 감상적으로 받아들여선 안 돼. 살아 있는 사람들을 향해 발사 명령을 내리는 일이 내게 근본적으로 즐거울 리는 없지.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이제 우리는 모두 제각기 거대한 수레바퀴 속으로 들어가게 될 거야. 너도 마찬가지야. 넌 분명 징집될 거다. (p.192)

(깉이 읽으면 좋은 책)

광야 - 정찬 (문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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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세계의 물살이 우리 곁을 스쳐지나가지 않고, 돌연 우리의 가슴 한복판을 뚫고 지나간다. 모험과 사나운 운명들이 우리를 불렀고, 이제 혹은 머지 않아 세계가 우리를 필요로 하며 스스로 변하기를 원하는 순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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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서 '전쟁'이라는 낱말이 울렸다! (p.193)

<참고>

제1차 세계 대전(World War I)

1914년 7월 28일부터 1918년 11월 11일까지 일어난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 대전이다. 1914년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게 선전포고를 하며 시작되었고, 1918년 독일의 항복으로 끝이 났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단순히 세계 대전(World War) 또는 대전쟁(Great War)이라고 불렸다. 미국에서는 처음에 유럽 전쟁이라고 불렸다. 제1차 세계 대전으로 병사 900만명 이상이 사망했다. 기술 및 산업의 고도화와 전술적 교착 상태로 인해 사상자 비율이 악화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은 사망자가 많았던 전쟁 중 하나이며, 참전국의 수많은 혁명 등을 포함하여 주요한 정치적 변화가 일어났다.
이 전쟁은 전 세계의 경제를 두 편으로 나누는 거대한 강대국들 동맹끼리의 충돌이다. 한쪽 편은 대영제국, 프랑스, 러시아 제국의 삼국 협상을 기반으로 한 협상국이며, 다른 한편은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있는 동맹국이다. 이탈리아 왕국은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함께 삼국 동맹에 가입되어 있었지만 동맹국에 참여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협상국으로 참가하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침공했다. 이러한 동맹은 재조직되었고 더 많은 국가가 전쟁에 참여하도록 압력을 가하면서 확장되었다. 이탈리아 왕국, 일본, 미국이 연합국에 가입했으며 오스만 제국, 불가리아 왕국이 동맹국에 가담했다. 궁극적으로 유럽인 6천만 명을 포함한 군인 7천만 명이 전쟁에 가담하면서 역사적으로 가장 큰 전쟁 중 하나에 동원되었다.
이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신제국주의때문이었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왕위 후계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세르비아 국민주의자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당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 왕국에게 최후 통첩을 내리면서 7월 위기가 시작되었고, 지난 수십년에 걸쳐 형성된 국제적 동맹끼리 서로 연결되었다. 수주 이내에 강대국끼리 전쟁을 시작했고 이 분쟁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를 침공하면서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다. 러시아가 총동원령을 내리면서 독일군은 중립국인 룩셈부르크와 벨기에를 침공하면서 프랑스로 진격했고, 이로 인해 영국이 독일에게 선전포고했다. 파리 앞에서 독일군이 진격을 멈춘 이후, 서부 전선은 1917년까지 참호전과 같은 소모전 양상으로 굳어지게 된다. 한편, 동부 전선에서는 러시아군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로 진격하는데는 성공했지만 동프로이센 침공은 독일군의 반격으로 실패하게 된다. 1914년 11월에는 오스만 제국이 참전하면서 전역이 코카서스, 메소포타미아, 시나이반도 등으로 확대되게 된다. 이탈리아와 불가리아는 1915년 참전했고, 루마니아 왕국은 1916년 참전했으며, 미국은 1917년 참전했다.
러시아 정부가 1917년 3월 붕괴된 이후 동부 전선이 해소되었으며 이후 10월 혁명으로 인해 동맹국이 러시아 영토를 획득했다. 1918년 11월 4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휴전에 합의했다. 1918년 서부 전선에서 독일군의 춘계 공세 이후, 연합군은 일련의 공세를 방어하고 이후 진격하여 독일군 참호들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독일 11월 혁명 이후, 독일이 1918년 11월 11일 휴전에 합의하면서 연합국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면서,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러시아 제국, 오스만 제국 등 4개 주요 제국이 해체되게 되었다. 앞의 2개 제국은 승계국가가 탄생했지만 많은 영토를 잃었으며 후자의 2개 제국은 완전히 해체하게 되었다. 유럽 및 서남아시아 지도는 새로운 독립 국가가 생기면서 새롭게 그려지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끔찍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국제 연맹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목표는 유럽의 민족주의 부활과 독일에서 파시즘의 장악으로 인해 상황이 악화되며 실패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World War II)

1939년 9월 1일부터 1945년 9월 2일까지 일어났던 세계 대전이다. 당시 강대국 전부와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전쟁에 개입해 연합국과 추축국이라는 적대적인 두 군사동맹이 생겨났다. 제2차 세계 대전은 30개국 이상에서 1억명이 넘는 군인이 직접 참전한 총력전이다. 세계 대전 참전국은 총체적인 경제적, 산업적, 과학적 역량을 전부 전쟁 수행에 쏟아 부어 민간 자원과 군사 자원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항공기도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 항공기를 통해 인구 밀집지대의 전략폭격이 수행되었고 유일하게 실전 사용된 핵무기 2발도 배치하고 투하하는 데 항공기가 사용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은 인류 역사상 사망자가 가장 많은 전쟁으로 전쟁으로 총 7천만명에서 8,500만명이 사망했으며 이 중 대부분이 민간인이었다. 또한 수천만명이 홀로코스트를 포함한 제노사이드, 기아, 학살, 질병 등으로 사망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추축국이 패배해 독일과 일본이 연합국에게 점령당했으며 전쟁범죄를 일으킨 독일과 일본의 주요 지도자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꼽히고 논쟁도 많지만, 대표적으로는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스페인 내전, 중일전쟁, 소련-일본 국경 분쟁과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의 파시즘 대두와 긴장 고조가 꼽힌다. 제2차 세계 대전의 개전일은 통상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폴란드 침공을 개시한 1939년 9월 1일로 본다. 뒤이어 영국과 프랑스가 9월 3일 독일에게 선전포고했다. 1939년 8월 맺어졌던 독일-소련 불가침 조약에 따라 독일과 소련은 폴란드를 분할하고 핀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루마니아의 세력권을 분할하는데 합의했다. 1939년 말부터 1941년 초까지 독일은 여러 군사작전과 조약을 통해 유럽 대륙 대부분을 정복하거나 지배하고 파시스트 이탈리아, 일본 제국 등과 동맹을 맺고 추축국을 수립했다. 북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 전역이 시작되고 1940년 중순에는 프랑스가 항복하면서 전쟁은 유럽의 추축국과 대영제국 사이 발칸반도, 영국 본토의 대공습, 대서양 해전으로 이어졌다. 1941년 6월 22일에는 독일을 주축으로 한 유럽 추축국이 소련을 침공하기 시작해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전구인 독소전쟁이 발발했다.
한편 아시아와 태평양을 전부 지배하러는 일본 제국은 1937년부터 중화민국과 전쟁을 치르기 시작했다. 1941년 12월에는 일본이 진주만의 미국 함대를 공격하고 동남아시아와 중앙태평양에 대한 전면적인 공세로 미국과 영국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미국이 일본에 선전포고한다. 유럽의 추축국도 곧 연대하여 미국에게 선전포고한다. 일본은 곧 서태평양의 대부분을 장악했지만 1942년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이 패배하며 진격이 멈췄다. 뒤이어 독일과 이탈리아는 북아프리카와 소련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패배했다. 1943년에는 독일의 동부 전선 패배, 연합군의 시칠리아 침공과 이탈리아 본토 침공, 연합군의 태평양 공세 등 추축국이 주도권을 쥐고 있던 모든 전선에서 전략적 후퇴를 강요하며 연합국과 처지가 뒤바뀐다. 1944년에는 서방 연합국이 독일이 점령한 프랑스 본토에 상륙하고, 소련은 수 차례 공세를 통해 영토를 되찾고 독일과 추축국을 향해 진격했다. 1944년과 1945년에는 일본이 아시아 본토에서도 역전당해 밀리기 시작하고 연합군이 일본 제국 해군을 무력화하고 서태평양의 주요 섬을 탈환했다.
유럽에서의 전쟁은 독일이 점령한 유럽이 해방되고 서쪽으로는 서구 연합군이, 동쪽으로는 소련군이 독일 본토를 침공해 소련군이 베를린을 함락시키고 아돌프 히틀러가 사망하며 독일이 무조건 항복한 1945년 5월 8일 끝났다. 뒤이어 1945년 7월 26일 포츠담 선언에도 일본이 항복하지 않자 미국은 8월 6일에 히로시마시에, 8월 9일에는 나가사키시에 처음으로 핵폭탄을 실전에 사용했다. 일본 본토 침공이 임박한 가운데 추가 원자폭탄 투하 가능성이 재기되고 동시에 만주 전략공세작전 전날 소련이 대일전에 참전할 것을 선포하자 일본은 8월 10일 항복 의사를 밝히고 1945년 9월 2일 항복문서에 정식으로 서명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은 전 세계의 정치 조직과 사회 구조를 뒤바꿨다. 국제 협력을 촉진하고 미래에 일어날 분쟁을 막기 위해 유엔이 설립되었으며[1] 승전국인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중국 5개 강대국이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상임이사국에 올랐다. 미국과 소련은 서로 경쟁하는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반세기동안 이어질 냉전의 단초가 되었다. 또한 전쟁으로 유럽이 황폐화되자 강대국의 영향력이 약해졌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탈식민지화가 촉발되었다. 전쟁으로 산업 피해를 입은 대부분의 국가는 종전 이후 경기 회복과 호황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미래의 전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시작된, 특히 유럽을 중심으로 발생한 정치적, 경제적 통합은 전쟁 전의 적의를 줄이고 공통의 정체성을 만들어냈다.

사료로 읽는 서양사 5 현대편 - 노경덕 (책과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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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편안한 일들과 감정들에만 홀린 채 느긋하게 살아도 되는 섬.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던 새롭고도 더욱 높은 공동체의 전조임을 예감했다. 그럴수록 이런 행복을 넘어선 깊은 슬픔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것이 계속될 수 없음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풍요로움과 안락함 속에서 숨쉬는 일은 내게 주어진 몫이 아니었다. 나는 고통과 서두름이 필요했다. 어느 날인가 나는 이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들에서 깨어나 다른 사람들의 차가운 세계에서 다시 홀로, 완전히 홀로 서게 되리라는 사실을 짐작했다. 오로지 고독이나 싸움만 있고, 누군가와 함께 사는 일도 평화도 없는 그런 세계에서 말이다. (p.108-109)

 

이제 세계의 물살이 우리 곁을 스쳐지나가지 않고, 돌연 우리의 가슴 한복판을 뚫고 지나간다. 모험과 사나운 운명들이 우리를 불렀고, 이제 혹은 머지 않아 세계가 우리를 필요로 하며 스스로 변하기를 원하는 순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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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서 '전쟁'이라는 낱말이 울렸다! (p.193)

 

나는 이제 끝에 이르렀다.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곧 전쟁이 시작되었고, 데미안은 군복에 은회색 외투를 걸치고 묘하게 낯선 모습으로 떠났다. 나는 그의 어머니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머지않아 나도 그녀와 작별했다. 그녀는 내 입술에 키스하고 한동안 나를 품에 안아주었다. 그녀의 커다란 눈이 내 눈 가까이엣허 단호하게 불타올랐다.

모든 사람이 형제가 된 듯했다. 그들은 조국과 명예를 말했다. 하지만 한순간 그들 모두가 들여다본 것은 운명의 감추어지지 않은 얼굴이었다. 젊은 남자들은 막사에서 나와 기차에 올라탔다. 나는 수많은 얼굴에서 표를 보았다. 우리의 것과 같은 표는 아니지만 사랑과 죽음을 뜻하는 아름답고 기품 있는 표였다. 나 역시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포옹을 받았다. 나는 그것을 이해하고 기꺼이 응답했다. 그들은 도취상태에서 그렇게 했다. 그것이 운명의 의지는 아니어도 도취는 거룩했다. 그들 모두가 흔들어 깨우는 듯한 이 짧은 눈길을 운명의 눈 안으로 보냈기에 그것은 감동적이었다.

나는 겨울이 다 되어서야 전쟁터에 나갔다.

총질의 흥분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모든 것에 실망했다. 나는 전에 인간이 이상을 위해 사는 경우가 어째서 그렇게 드문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 아니 모든 사람이 이상을 위해 죽을 수 있음을 알았다. 다만 그것은 자유롭게 선택한 개인적인 이상이 아니라 남들에게서 떠맡은 공통의 이상이어야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인간을 얕잡아보았음을 알았다. 임무와 공통의 위험이 그들을 그토록 획일화해놓았어도, 살아 있는 그리고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이 운명의 의지에 훌륭하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았다. 많은, 아주 많은 사람이 공격의 순간뿐만 아니라 언제다로 단호하고도 먼, 약간의 광기 어린 눈길을 보였다. 목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시무시하고 거대한 것을 위한 완전한 헌신을 뜻하는 눈길이었다. 그들이 무엇을 믿고 생각하든 그들은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쓸모가 있었고 그들에게서 미래가 형성될 것이다. 그리고 세계가 전쟁과 영웅, 명예와 다른 낡은 이상들을 고집스레 지향하면 할수록, 언뜻 인간성으로 보이는 것의 목소리 하나하나가 더욱 멀고도 비현실적으로 들리면 들릴수록, 이 모든 것은 그냥 표면에 지나지 않았다. 전쟁의 외적이고 정치적인 목적들에 대한 질문이 표면에 지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깊은 고셍서 무언가가 생성되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바로 내 옆에서 죽었는데, 그런 사람들은 증오와 분노, 때려죽이기와 없애버리기가 대상과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느낌으로 깨달았다. 아니, 대상이란 목적만큼이나 완전히 우연한 것이었다. 근원적 감정은 가장 사나운 것일지라도 적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근원적 감정의 피비린내 나는 행위는 내면의 표출, 속으로 찢긴 영혼이 겉으로 터져나온 데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찢긴 영혼은 미쳐 날뛰며 죽이고, 파괴하고, 스스로 죽기를 원했다. 새로 태어나기 위하여, 거대한 새가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오고 있었다. 알은 세계이고 세계는 부서져야 했다. (p.194-195)

 

내 매트리스 바로 옆에 또다른 매트리스가 있었다. 그 위에 누군가가 누워서 내 쪽으로 몸을 돌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마에 표를 지니고 있었다. 막스 데미안이었다.

나는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도 말을 못했거나 아니면 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는 나를 바라만 보았다. 그의 머리 위쪽 벽에 매달린 현등 불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는 나를 향해 미소지었다.

"꼬마야! 프란츠 크로머를 아직 기억하니? 꼬마 싱클레어, 잘 들어! 나는 가야만 해. 너는 어쩌면 다시 내가 필요할지도 몰라. 크로머나 다른 어떤 것에 맞서기 위해서 말이지. 그럴때 네가 나를 부르면 나는 이젠 그냥 말이나 가치를 타고 오진 않을 거야. 너는 네 안에 귀를 기울여야 해. 그럼 내가 네 안에 있음을 알게 될거야. 알겠니? 그리고 또 한 가지! 에바 부인이 말했어, 너한테 어떤 나쁜 일이 생기며ㅑㄴ 나더러 당신이 내게 준 키스를 전해주라고...눈을 감아, 싱클레어"

나는 얌전히 눈을 감았다. 여전히 피가 줄어들 기미 없이 조금씩 흘러나오는 내 입술에 가벼운 키스를 느꼈다. 그리고 나는 잠미 들었다.

붕대를 감는 과정은 아팠다. 그후로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이 아팠다. 하지만 내가 이따금 열쇠를 찾아내 나 자신 안으로 완전히 내려가면 그곳 어두운 거울에서 운명의 모습들이 잠들어 있었다. 그럼 나는 검은 거울 위로 그냥 몸을 숙여 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면 되었다. 그 모습은 이제 완전히 그와 같았다. 내 친구이며 길 안내자인 그 사람과. (p.197-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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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카를 헤세(Hermann Karl Hesse, 1877년 7월 2일 ~ 1962년 8월 9일)

독일계 스위스인이며, 시인, 소설가, 화가.
20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 1877년 독일 남부 뷔르템베르크의 칼프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요하네스는 신교(新敎)의 목사이고, 어머니 마리는 인도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교육을 받고, 인도로 돌아가 그곳에서 영국인 선교사와 결혼하였으나, 그와 사별한 후 요하네스와 재혼하여 그를 낳았다. 헤세는 4세부터 9세까지, 한때 스위스의 바젤에서 지낸 것 외에는 대부분 칼프에서 지냈다. 1890년 신학교 시험 준비를 위해 괴핑엔의 라틴어 학교에 다니며 뷔르템베르크 국가시험에 합격했다.
1892년 마울브론 수도원 학교를 입학했으나 천성적인 자연아로서, 개성에 눈뜨면서 미래의 시인을 꿈꾼 헤세는, 신학교의 속박된 기숙사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그곳을 탈주, 한때는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하였다. 이때의 경험은 지나치게 근면한 학생이 자기 파멸에 이르는 소설 『수레바퀴 밑에서』(1906)에 잘 나타나 있다. 노이로제가 회복된 후 다시 고등학교에 들어갔으나 1년도 못 되어 퇴학하고, 서점의 점원이 되었다. 그 후 한동안 아버지의 일을 돕다가 병든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칼프의 시계공장에서 3년간 시계 톱니바퀴를 닦으면서 문학수업을 시작하였다.
1899년 낭만주의 문학에 심취한 헤세의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을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산문집 『자정 이후의 한 시간』이 출간됐다. 특히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인정을 받았으며, 문단에서도 헤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1904년 첫 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통해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으며 문학적 지위가 확고해졌다. 9세 연상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하고, 스위스의 보덴 호반의 마을 가이엔호펜으로 이주한 후 글쓰기에 전념하였으며, 1923년 이혼하고 스위스 국적을 취득하였다. 1906년 헤세의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를 출간했고, 『동화』 『차라투스트라의 귀환』을 출간했다.
스위스 베른으로 이주한 후 1914년 1차 세계대전을 맞는다. 군 입대를 지원하나 부적격 판정을 받고 독일 포로 구호 기구에서 일하며 전쟁 포로들과 억류자들을 위한 잡지를 발행한다. 그는 융의 제자인 랑 박사와 함께 정신 분석을 연구하며 융과도 알게 되었는데 그 영향이 『데미안』(1919)에 나타난다. 이 작품은 고뇌하는 청년의 자기 인식 과정을 고찰한 작품으로 독일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서른세 살이 되는 해 인도 여행을 감행하고 이 경험은 1922년 출간된 『싯다르타』에 투영되었다.
나치의 광기가 극에 달한 시기에 쓴 마지막 소설 『유리알 유희』(1943)는 931년에 쓰기 시작해서 1943년에 최종적으로 완성 하였다. 정신적인 봉사와 문화적인 삶을 추구하는 유토피아적 세계를 『유리알 유희』 속에 세웠다. 유토피아적인 세계를 배경으로 동서양의 철학, 문학, 음악 등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을 녹여내 유럽 지식인들의 찬사를 받았다. 1946년 『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과 괴테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두 개의 동화가 있는 크리스마스」는 1951년 발표된 에세이로, 헤세 동화집 『두 형제』에 담겨 있다. 1955년에는 독일출판협회의 평화상을 받았다.
이후 정치적 논문, 경고문, 호소문 등 전쟁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글들을 발표하는 한편, 이상 사회의 실현을 꿈꾸며 다양한 소재의 동화를 집필하기도 했다. 계속해서 『동방순례』 등 세계 독자들을 매료하는 작품들을 발표했다. 타고난 평화주의자로서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전쟁을 비판하여 나치 정권으로부터 ‘매국노’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노년을 스위스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보내며 수채화를 즐겨 그리고 정원 일을 매우 좋아했다. 헤세는 화가로도 성공을 했으며, 3,000점 이상의 수채화를 남겼다.그가 걸어온 긴 생애에는, 인도 여행으로 동양에 대한 관심이 깊어진 일, 제1차 세계대전과 아버지의 죽음, 아내의 정신병, 그 자신의 신병 등 가정적 위기를 당하자 정신분석 연구로 이 위기를 타개하고, 제2차 세계대전 중 인간성을 말살시키려고 한 나치스의 광신적인 폭정에 저항한 일 등 많은 파란을 겪었지만, 1962년 8월 9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오로지 자기실현의 길만을 걸었다. 뇌출혈로 사망한 후 아본디오 묘지에 안치되었다.소설 『데미안』은 1919년 헤르만 헤세가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창작에 임했으며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출판한 소설이다. 이후 평론가들의 끊임없는 연구와 분석을 통해 원작자가 헤르만 헤세인 것으로 밝혀졌다. 소설 『데미안』은 당시 사회는 물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의 가슴을 두드리고 있으며 자아 정체성을 찾아가는 인간 내면의 혼란과 시대적 상황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명작 소설로 손꼽힌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몸부림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작품 『데미안』에 나오는 말이다. 이 유명한 말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헤르만 헤세는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의 작품에 흠뻑 빠지도록 만들고, 특히 우리의 청소년들에게는 거의 필독서가 되었을까?
헤세의 대부분의 소설은 자기가 겪은 그때그때의 역사적 현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헤세는 단 한 번도 시대 자체를 자기 소설의 주제 또는 대상으로 삼지는 않았다. 한 사회와 함께 있는 “집단 인간”을 생각하지 않았고 반대로 “개인 인간”을 중시하였기 때문이다. 즉 작가 자신의 체험을 자서전적으로 묘사하였고, 그의 작품 주인공들 모두가 청소년이다. 헤세의 문학 세계는 세상에 대한 적극적인 고독과 반항의 기록이고, 영원한 청춘의 기록이다. 19세기와 20세기 독일 기독교 주류 사회의 엄격한 계율과 관습에 적응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고독에 시달렸지만,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그 당시의 위압적인 분위기에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주요작품으로 제2의 장편소설 『수레바퀴 밑에서』, 『로스할데』, 『크눌프』, 정신분석 연구로 자기탐구의 길을 개척한 대표작 『데미안』, 『싯다르타』, 『황야의 늑대』, 『나르치스와 골트문트』, 『황야의 이리』, 『지와 사랑』, 『동방여행』,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유리알유희』, 『헤세와 로맹 롤랑의 왕복서한』 등이 있다. 또 이 밖에 단편집, 시집, 우화집, 여행기, 평론, 수상, 서한집 등 다수의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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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 데미안 (송영택 옮김, 동서월드북)

헤르만 헤세 - 데미안 (이영임 옮김, 을유문화사)

헤르만 헤세 - 데미안 (김인순 옮김, 열린책들)

헤르만 헤세 - 데미안 (구기성 옮김, 문예출판사)

 

헤르만 헤세 - 데미안 (전영애 옮김, 민음사)

헤르만 헤세 - 데미안 (홍성광 옮김,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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