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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1. 서양 - 고전 소설

무무 - 투르게네프 (이항재 옮김, 민음사)

by handaikhan 2023. 2. 4.

투르게네프 - 첫사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0)

투르게네프 - 무무 (1854년)

 

그녀는 외출을 잘 하지 않았고, 메마르고 지루한 말년을 쓸쓸하게 보내고 있었다. 그녀의 불쾌하고 음산한 낮은 오래전에 지나갔지만, 그녀의 저녁은 밤보다 더 어두웠다.

그녀의 모든 농노 중에서 마당쇠 게라심이 가장 눈에 띄었다. 그는 1미터 95센티나 되는 키에 거인 같은 체격을 하고 있었지만, 태어날 때부터 벙어리에다 귀머거리였다. 여지주는 작은 오두막집에서 동료들과 떨어져 혼자 살고 있던 그를 시골에서 데려왔다. 게라심은 가장 성실한 농노로 알려져 있었다. 놀라운 힘을 가진 그는 네 사람분의 일을 거뜬히 해냈다. 그는 모든 일을 손쉽게 해치웠다. 징기질을 하면서 커다른 손바닥으로 쟁기를 잡고 말의 도움 없이 혼자서 탄력 있는 흙 가슴을 갈아엎을 때나, 성 베드로제경에 어린 자작나무라도 뿌리째 날려버릴 만큼 힘차게 큰 낫을 휘두를 때나, 민첩하고 끊임없이 2미터가 넘는 도리깨질을 하고 있을 때 그를 바라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언제나 말이 없는 그의 모습은 지칠 줄 모르는 그의 노동에 장엄한 위엄을 부여했다. 그는 훌륭한 농부였다. 그의 불행만 아니었다면, 어떤 여자든 흔쾌히 그에게 시잡갔을 것이다.....그런데 여주인이 바로 이 게라심을 모스크바로 데려와서 그에게 장화를 사주고, 여름용 카프탄과 겨울용 모피 외투를 지어주었고, 그의 손에 빗자루와 삽을 쥐어주면서 그를 마당쇠로 만들었다.

처음에 그는 새로운 생활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들일과 시골 생활이 익숙해져 있었다. 자신의 불행 때문에 사람들과 떨어져 살았던 그는 기름진 땅에서 나무가 자라듯 말없이 억세게 자라왔다....도시로 이사 온 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싱싱한 풀이 배때기까지 자란 밭에서 막 끌려와 철길의 차량에 매어진 힘센 황소처럼 그는 심심했고,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때론 불길이 번쩍이는 연기를, 때론 수증기를 살찐 몸뚱이에 끼얹으며, 사람들이 매질하고 고함치면서 황소를 어딘가로 끌고 가지만, 어디로 끌고 갈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게라심이 새로 맡은 일은 농부가 힘든 일을 끝내고 즐기는 장난 같은 것이었다. 그는 반시간만에 모든 일을 끝냈다. 그리고 그는 다시금 마당 한가운데에 서서, 마치 수수께끼 같은 자신의 처지에 대한 답을 구하려는 듯이 입을 벌리고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을 바라보았고, 대론 갑자기 골목 어딘가로 가서 빗자루와 삽을 멀리 내던지고는 얼굴을 땅에 대고 마치 사로잡힌 짐승처럼 꼼짝하지 않은 채 몇 시간 동안 누워 있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은 모든 일에 익숙해지게 마련이다. 마침내 게라심도 도시 생활에 익숙해졌다. (p.399-401)

 

처음에 게라심은 그녀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나, 그 후로 그녀와 우연히 마주치게 되면 살짝 웃음을 짓다가 그녀를 슬쩍 쳐다보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녀에게서 전혀 눈을 떼지 않았다. 게라심은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그녀의 온순한 표정이 마음에 든 건지 겁 많은 동작이 마음에 든 건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p.405)

 

게라심은 마땅히 여지주를 두려워했지만,, 그녀의 은총을 기대하며 타티야나와의 결혼을 허락해 주도록 청하려고 했다. 그는 단정한 모습으로 여지주 앞에 나타나려고 하인장이 약속한 새 카프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여지주가 타티야나를 카피톤에게 시집보낼 생각을 했던 것이다. (p.407)

 

계략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타티야나를 보자 그는 우선 평소대로 부드럽게 버버기러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그녀를 자세히 보더니, 삽을 내던지고 벌떡 일어나 그녀를 향해 다가가 자기 얼굴을 그녀의 얼굴에 바짝 들이댔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마당을 가로질러 회의가 열렸던 방으로 들어가서 카피톤 쪽으로 그녀를 밀쳤다. 타티야나는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게라심은 잠시 서서 그녀를 바라보다가 손을 내젓고는 쓴웃음을 짓고 무거운 발걸ㅇ름을 떼며 자기 방으로 걸어갔다...게라심은 하루 종일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마부인 안티프카가 게라심이 뭘 하고 있는지 벽 틈을 통해 본 것을 얘기했다. 게라심은 침대에 앉아서 한 손을 뺨에 대고 이따금 버버거리며 조용히 규칙적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부들과 배를 끄는 인부들이 구슬픈 노래를 길게 뽀을 때처럼 몸을 흔들고 두 눈을 감고 머리를 흔들어댔다는 것이었다. 안티프카는 무서워져서 벽 틈에서 물러났다. 다름 날 게라심이 방에서 나왔을 때, 그는 달라진 것이 별루 없었다. 단지 더 우울해진 듯했다. 그는 타티야나와 카피톤에게 조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날 저녁에 타티야나와 카피톤은 겨드랑이에 오리를 끼고 마님한테 갔고, 일주일 후에 결혼했다. 결혼식 날에 게라심은 아무런 행동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다만 강에서 물을 길어오지 않았다. 어쩐 일인지 그가 도중에 물통을 깨버렸기 때문이었다. 밤중에 그가 외양간에서 자기 소를 얼마나 열심히 깨끗하게 문질러댔던지 소가 바람에 날리는 작은 풀줄기처럼 흔들거리고, 그의 강철 같은 주먹 아래서 좌우로 비틀비틀 거렸다. (p.416-417)

 

일 년이 더 지났다. 그동안에 카피톤은 술로 완전히 신세를 망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는 아내와 함께 짐마차에 실려 시골로 보내졌다. 출발하는 날에 그는 처음에는 허세를 부리며 그가 어디로 가더라도, 비록 아낙네들이 셔츠를 빨다가 빨랫방망이를 하늘에 흔들어대는 곳으로 가더라도 죽지 않을 거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그는 곧 의기소침해져서 무식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자기를 데려간다고 불평하기 시작하더니 결국엔 힘이 빠져서 자기 모자도 스스로 쓸 수 없게 되었다. 어떤 동정심 많은 사람이 모자를 그의 이마로 가져가서 챙을 바로잡아 세게 눌러 씌워주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농부들이 '안녕히'라는 말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게라심이 자기 방에서 나와 타티야나에게로 다가가 일 년 전쯤에 사두었던 붉은 목면 스카프를 기념으로 선물했다. 그 순간까지 생활의 온갖 우여곡절을 묵묵히 견뎌냈던 타티야나는 이제 더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마차에 오르면서 그녀는 게라심에게 기독교식으로 세 번 입맞춤을 했다. 그는 시의 관문까지 그녀를 배웅하고 싶어서 처음엔 그녀가 탄 마차와 나란히 걸어갔따. 그러나 갑자기 크르임 나루터에서 걸음을 멈추고 한 손을 흔들고는 강을 따라 걸어갔다. (p.417-418)

 

그는 조용히 걷다가 강물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강가의 진흙 펄에서 뭔가가 바둥바둥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몸을 굽혀 까만 반점이 박힌 조그만 강아지를 보았다. 이 강아지는 온갖 노력을 다 했지만 물에서 기어 나오지 못하고, 부딪히고 미끄러지며 물에 젖은 깡마른 몸뚱이를 벌벌 떨고 있었다. 게라심은 이 불쌍한 강아지를 보고 한 손으로 잡아서 자기 품에 넣고는 큰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그는 방으로 들어가 구해 온 강아지를 침대에 놓고 두꺼운 외투로 덮어주었다. 그는 우선 외양간으로 가서 짚을 가져온 뒤, 부엌에서 우유 한 컵을 가져왔다. 그는 조심스럽게 외투를 뒤집고 짚을 펴고 나서 침대 위에우유를 올려놓았다. 불쌍한 강아지는 태어난 지 겨우 삼 주쯤 되어 보였고, 최근에야 눈을 뜬 것 같았다. 한 눈은 다른 한 눈보다 약간 커 보였다. 이 불쌍한 강아지는 컵의 우유를 먹지 못하고, 그냥 떨기만 하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게라심은 두 손가락으로 강아지의 머리를 가볍게 붙잡고 낯을 우유에 갖다 댔다. 강아지는 갑자기 우유를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게라심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갑자기 웃음을 지었다.....그는 밤새 강아지와 놀면서 강아지를 눕히고 쓰다듬다가 마침내 강아지 옆에서 유쾌하고 평온하게 잠이 들었다. (p.418-419)

 

어떤 어머니도 게라심이 강아지를 돌보는 것만큼 그렇게 정성스럽게 자기 자식을 돌보지는 못할 것이다. 처음에 강아지는 아주 약하고 삐쩍 마르고 볼품없었지만 조금씩 살이 붙고 튼튼해졌다. 팔 개월쯤 지난 뒤, 게라심의 끈기 있는 보살핌 덕분에 이 강아지는 길쭉한 귀와 나팔 모양의 북슬북슬한 꼬리와 감정이 풍부한 눈을 가진 스페인 혈통의 아주 멋진 개로 변했다. 강아지는 게라심에게 찰싹 달라붙어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았고, 작은 꼬리를 흔들며 그의 뒤를 쫓아다녔다. 그는 강아지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강아지를 무무라고 불렀다. 무무는 몹시 영리해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귀여움을 받았지만 게라심만을 좋아했다. 게라심도 무무에게 홀딱 반했다..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무무를 쓰다듬어줄 때 게라심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가 강아지를 걱정했는지, 혹은 질투했는지 그건 아무도 모를 일이다! 무무는 아침마다 옷깃을 잡아당기며 그를 깨웠고, 자기와 아주 친하게 지내는, 물을 운반하는 늙은 말의 고삐를 그에게 끌고 왔다. 무무는 거만한 표정을 짓고 게라심과 함께 강으로 가서 그의 빗자루와 삽을 지켰고, 그의 방에 아무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했다. 그는 무무를 위해 일부러 문에 구멍을 뚫었다. 무무는마치 자기가 게라심의 방에서만큼은 완벽한 여주인인 것처럼 느꼈다. 그래서인지 무무는 방에 들어서는 즉시 만족한 표정을 짓고 침대로 뛰어오르곤 했다. 밤에 무무는 전혀 잠을 자지 않았지만, 뒷다리를 괴고 앉아서 얼굴을 쳐들고 눈을 짜그린 채 그냥 심심해서 별을 향해 보통 세 번 연속 짖어대는 멍청한 집 지키는 개처럼 함부로 짖어대지는 않았다. 무무는 결코 아무 이유 없이 날카롭게 짖어대지 않았다! 낯선 사람이 담 가까이 다가오거나,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나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만 짖어댔다...한마디로 무무는 아주 훌륭하게 집을 지켰다. (p.419-420)

 

어느 화창한 여름날에 여지주가 식객들과 함께 거실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그녀는 기분이 좋아서 웃우며 농담을 했다. 식객들도 웃으며 농담을 했다. 

"오, 도대체 이게 왠 개야?"

"아마 벙어리의 개 같은데요.?

"아주 사랑스러운 개야! 저 개를 데려오도록 해."

"참, 귀여운 개야!"

여지주는 이렇게 말하고는 무무에게 다가가 몸을 굽혀 무무를 쓰다듬으려고 했다. 그러나 무무는 발작적으로 머리를 돌려 이를 드러냈다. 여지주는 재빨리 손을 움츠렸다..

순간적으로 침묵이 흘렀다. 무무는 마치 불평을 하고 용서를 비는 것처럼 약하고 날카롭게 짖었다...여지주는 뒤로 물러나 눈살을 찌푸렸다. 개의 갑작스러운 동작에 그녀는 깜짝 놀랐다.

"개를 저리 데려가." 바뀐 목소리로 노파가 말했다.

"나쁜 놈의 개 같으니라고! 사납기도 해라!"

(...)

이따금 정말로 사소한 것이 사람의 기분을 해칠 수 있는 것이다!

여지주는 저녁때까지 기분이 언짢앗허 아무하고도 얘기하지 않았고, 카드도 하지 않았으며, 기분 나쁘게 밤을 보냈다.

"도대체 우리 집 마당에서 어떤 개가 밤새 짖어댔나? 잠을 잘 수가 없었어!"

"개라니요...아마도 벙어리의 개일 겁니다."

"그게 벙어리의 갠지 다른 사람의 갠지 난 모르겠어. 단지 내가 잠을 잘 수 없었다는 거야. 왜 이렇게 개들이 많은지 놀랍군! 그 이유를 알고 싶어. 우리 집엔 집 지키는 개가 있잖아?"

"예, 볼초크가 있습니다."

"그럼, 다른 개가 왜 더 필요해? 혼란만 일으킬 뿐이야. 그래, 집 안에 선임자가 없는 거야. 그리고 벙어리에게 웬 개야? 누가 그자에게 우리 집 마당에서 개를 키우라고 허락한 거야? 어제 내가 창가로 가서 보니까, 그 개가 뭔가 더러운 것을 질질 끌고 와서 갉아먹더라고. 거기엔 장미가 심어져 있는데..."

"오늘 당장 그 개가 안 보이도록 해...알았나?"

"오늘 당장이야. 그럼 가봐. 이따가 불러 보고를 듣겠어." (p.422-425)

 

집밖으로 나와서 그는 즉시 무무가 없어진 걸 알아챘다. 무무가 그를 기다리지 않은 적이 한번도 없었으므로, 그는 사방을 뛰어다니며 무무를 찾고 자기식으로 불러대기 시작했다...그는 자기 방으로도 가보고, 건초를 쌓아두는 곳간으로도 가보고, 거리로 나가서 여기 저기 헤매고 다녔지만 무무는 보이지 ㅇ낳았ㄷ! 그는 필사적인 손짓과 몸짓으로 무무에 대해 사람들에게 물어보았고, 땅에서 30여 센티미터 떨어진 곳을 가리키며 무무를 그려 보였다...어떤 사람들은 무무가 어디로 갔는지 정말로 몰라서 단지 머리를 저었고, 무무의 행방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하인장은 아주 근엄한 표정을 짓고 마부들에게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이때 게라심은 마당에서 저 먼 곳으로 뛰어갔다.

그는 날이 저물어서야 돌아왔다. 녹초가 된 모습과 위태로운 걸음걸이, 먼지투성이가 된 옷으로 보아 그는 모스크바를 반쯤은 돌아다닌 듯했다. 그는 여지주의 집 맞은편에 걸음을 멈추고 일곱 명의 하인들이 모여 있는 별채를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한번 "무무!"하고 버버거렸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는 저쪽으로 걸어갔다. 모두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다음 날 아침 부엌에서 호기심이 많은 마부 안티프카는 벙어리가 밤새 한숨을 푹푹 쉬었다고 얘기했다. 

다음 날 하루 종일 게라심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마부 포타프가 게라심 대신에 물을 길어와야만 했다. 포타프는 이 일을 아주 싫어했다. 여지주는 자신의 지시를 수행했는지 가브릴라에게 물었다. 가브릴라는 수행했노라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에 게라심은 일을 하러 자기 방에서 나왔다. 그는 점심때 와서 밥을 먹고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않고 나갔다. 모든 농아들의 얼굴이 그렇듯이, 안 그래도 생기 없는 그의 얼굴은 마치 돌처럼 둗어졌다. 점심을 먹은 후에 그는 다시 마당에서 나갔따가 잠시 후에 돌아와서는 곧 건초를 쌓아두는 곳간으로 갔다. 밝은 달밤이었다. 깊은 한숨ㅇ믈 쉬고 끊임없이 뒤척이면서 누워 있던 게라심은 갑자기 뭔가가 자기 옷깃을 잡아당기는 것처럼 느꼈다. 그는 온몸을 흔들었지만 머리를 쳐들지는 않고 실눈을 떴다. 그러나 뭔가가 아까부터 더 세게 그를 잡아당겼을 때 그는 벌떡 일어났다...그 앞에는 목에 노끈을 맨 무무가 빙빙 돌고 있었다. 그의 무언의 가슴에서 긴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는 무무를 붙잡아 가슴에 꼭 껴안았다. 동시에 무무도 그의 코랑 눈이랑 콧수염이랑 턱수염을 핥았다...그는 잠시 서서 생각하고는 건초간에서 나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자신을 보고 있지 않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 그는 자기 방으로 무사히 들어갔다. 게라심은 무무가 저절로 사라진 게 아니라 분명히 마님의 지시에 따라 내쫓긴 것이라고 벌써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사람들도 그에게 무무가 마님에게 으러렁댔다고 손짓과 발짓으로 설명했다. 그래서 그는 나름의 조치를 취하기로 결심했다. (p.426-428)

 

내 상태가 어떤지 알죠. 그에게는 정말로 어떤 개 새끼가 그가 모시는 주인의 안정이나 목숨보다 더 소중하냐고, 난 그렇다고 믿고 싶는 않아. (p.432)

 

게라심이 꼼짝 않고 문지방에 서 있었다. 사람들은 계단의 층계참에 몰려 있었다. 게라심은 두 손을 옆구리에 살짝 걸치고 독일식 카프탄을 입은 이 모든 하인들을 내려다보았다. 붉은 농민 셔츠를 입은 게라심은 그들 앞에서 거인처럼 보였다.

(..)

게라심은 그를 쳐다보고는 개를 가리켰고, 마치 올가미를 조이는 것처럼 한 손으로 자기 목을 조르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미씸쩍은 얼굴로 하인장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래, 그래" 머리를 끄덕이며 하인장이 대꾸했다. "그래, 반드시 그래야 해."

게라심은 눈을 떨구었다. 그러고 나서 게라심은 몸을 휙 흔들고는 내내 그 옆에 서서 순진하게 꼬리를 흔들며 호기심으로 귀를 종긋 세우고 있는 무무를 다시 가리켰다. 그는 자기 목을 조르는 시늉을 반복하고는 마치 자기가 직접 무무를 죽이겠다고 말하는 듯이 의미심장하게 자기 가슴을 쳤다. (p.433- 434)

 

게라심은 계속 노를 젓고 또 저었다. 벌써 모스크바가 저 멀리에 있었다. 강기슭을 따라 벌써 여기저기에 초원, 채소밭, 들판, 숲이 쭉 펼쳐졌고, 오두막이 나타났다. 시골 냄새가 풍겼다. 그는 노를 내던지고 그 앞의 마른 횡목에 앉아 있는 무무 쪽으로 머리르 숙였다. 밑바닥으로 물이 흘러들었다. 그는 억센 두 손을 무무의 등에 포갠 채 꼼짝 않고 있었다. 이러는 동안에 쪽배는 파도에 밀려 조금씩 도시 쪽으로 움직였다. 마침내 게라심은 몸을 쭉 펴고는 어떤 병적인 분노의 표정으로 자기가 가져온 벽돌을 노끈으로 서둘러 묶고, 올가미를 만들어서 무무의 목에 걸고 무무를 물 위로 들어 올렸다. 그는 마지막으로 무무를 바라보았다....무무는 무서워하지 않고 신뢰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작은 꼬리를 살짝 흔들었다. 게라심은 얼굴을 돌리고 나서 실눈을 뜨고는 두 손을 폈다...게라심은 물에 떨어지면서 무무가 낸 날카로운 비명 소리도, '철썩' 하고 튀어 오른 둔탁한 물소리도, 다른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에게는 가장 소란스러웠던 하루가 아무 소리도 없이 조용하게 지나간 것이다. 마치 가장 고요한 어떤 밤이 우리에게는 전혀 고요하지 않을 수 있듯이, 그가 다시 두 눈을 떴을 때, 작은 파도가 서로서로를 뒤쫓듯 전처럼 강을 따라 빠르게 흐르고 있었고, 전처럼 쪽배의 측면에 철썩거리며 물을 끼얹고 있었다. 다만 강기슭 쪽 저 멀리에서 어떤 커다란 물결 무의가 동그랗게 퍼지고 있었다. (p.437-438)

 

이 순간에 T 거리를 따라 어떤 거인이 어깨에 자루를 메고 손에는 막대기를 든 채 열심히 쉬지 않괴 걸어가고 있었다. 이 사람은 게라심이었다. 그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자기가 태어난 시골 고향 집을 향해 급히 걸어가고 있었다. 불쌍한 무무를 물에 빠드리고 나서 그는 자기 방으로 가서 잽싸게 몇 가지 물건을 낡은 말 옷에 꾸려 넣고는 묶어서 어깨에 짊어지고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를 모스크바에 데려올 때부터 길을 눈여겨보아 두었다. 여지주가 그를 데려온 시골에서 큰길까지는 약 25키로미터 정도의 거리였다. 그는 큰길을 따라 굳건하고 용감하게, 절망적이면서도 기쁜 단호한 마음으로 걸어갔다. 그는 가슴을 활짝 펴고, 두 눈으로 열심히 똑바로 앞을 응시하며 계속 걸었다. 그는 늙은 어머니가 고향에서 자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듯이, 타향의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방황한 자기를 어머니가 고향 집으로 부르기라도 하듯이 서둘러 걸어갔다....이제 막 시작된 여름밤은 고요하고 따스했다. 태양이 지는 쪽에서는 아직도 하얀 하늘언저리가 사라져 가는 하루의 마지막 반사광으로 엷은 홍조를 띠고 있었다. 그 반대쪽에서는 푸른 잿빛 어스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쪽에서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수백 마리의 메추리들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빙빙 날고 있었고, 흰눈썹뜸부기들이 앞 다투어 서로를 부르고 있었다...게라심은 이 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그의 힘찬 발이 스쳐 지나가는 나무들의 예민한 밤의 속삭임도 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어두운 들녘에서 풍겨오는, 익어가는 호밀의 익숙한 냄새를 느꼈고, 그를 향해 불어오는 바람 -고향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 이 자기 얼굴을 부드럽게 때리며 머리칼과 턱수염을 간질이는 걸 느꼈다. 그는 자기 앞에 훤하게 밝아오는, 화살처럼 곧게 뻗은 집으로 가는 길을 보았다. 또 그는 자기의 갈 길을 비춰주는 셀 수 없이 수많은 하늘의 별을 보았다. 그는 마치 사자처럼 힘차고 씩씩하게 걸어나갔다. 마침내 떠오르는 태양이 촉촉한 붉은 빛으로 방금 길을 떠났던 젊은이의 머리를 비추었을 때, 그는 벌써 모스크바에서 35킬로미터 이상이나 떨어져 있었다...(p.439-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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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해설]

벙어리이자 귀머거리 농노인 게라심과 그가 사랑한 강아지에 관한 감동적인 이야기인 <무무>는 실제로 투르게네프 어머니의 영지에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쓰인 것이다. 투르게네프는 1852년에 이 작품을 완성했으나 러시아 농노의 비참한 운명을 노골적으로 그려냈다는 이유로 출판할 수가 없었다. 이 년 후 러시아 동물 학대 방지 협회는 <무무>의 주제가 혹사당하는 농노에 대한 동정이 아니라 학대받는 개에 관한 것이라는 다소 엉뚱한 청원을 올렸고, 검열관이 이 청원을 받아들여 이 작품은 어렵게 출판될 수 있었다.

'죽을 때까지 농노 제도의 폐지를 위해 투쟁하고 농노 제도와는 결코 타협하지 않겠다'는 투르게네프의 이른바 '한니발의 맹세'는 투르게네프 창작의 주요한 특징인 휴머니즘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무무>에는 변덕스러운 여지주로 대표되는 비인간적인 농노 제도에 대한 증오와 게라심같은 농노를 향한 따스한 휴머니즘이 가득하다. 세탁부 타티야나를 향한 게라심의 애틋한 첫사랑은 늙은 여지주의 변덕과 횡포로 결실을 맺지 못한다. 게라심은 타티야나 대신에 불쌍한 강아지 무무를 거두어서 보살피고 사랑하지만, 여지주는 무무에 대한 사랑조차도 허락하지 않고 결국 무무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이렇듯 변덕스럽고 무자비한 여지주의 성격은 바로 농노 제도가 만들어낸 기형적이고 비인간적인 모습인 것이다. 반면에 사랑하는 타티야나의 행복을 빌며 그녀를 고이 떠나보내고, 자신의 분신 같은 무무를 여지주에게 넘겨주지 않고 스스로 물에 빠뜨려 죽이는 게라심, 그리고 여주인의 허락도 없이 달밤의 시골 길을 성큼성큼 걸어가는 게라심의 모습에서 우리는 서사시나 전설에 등장하는 영웅이나 거인과 같은 위풍당당한 풍모를 느낀다. 벙어리인 게라심 앞에서 사지가 멀쩡한 여지주, 식객, 하인장은 오히려 정신적 불구자요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농노 제도의 부정적 측면을 조용한 목소리로 비판하고 비참한 농노들에 대한 한없는 연민과 사랑을 불러 일으킨 <무무>는 <사냥꾼의 수기>와 함께 알렉산드르 2세가 농노 제도의 페지를 결심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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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해설 - 강신주>

강신주 - 강신주의 감정수업 (민음사)

 

노예는 사랑을 할 자격이 없다. 인간의 가장 소중한 감정인 사랑은 오직 자유인에게만 허락되니까 말이다. 게라심은 온놈으로 그것을 느꼈다. 그것도 두 번이나. 나이 든 여지주는 노예가 사랑에 빠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는 순간, 노예는 그 사람을 지키기 위해 주인의 명령을 거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노예나 다름없었던 농노는 자신의 감정을 부정해야만 한다. 만일 부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부정하도록 만들어야만 한다.

 

마침내 게라심은 몸을 쭉 펴고는 어떤 병적인 분노의 표정으로 자기가 가져온 벽돌을 노끈으로 서둘러 묶고, 올가미를 만들어서 무무의 목에 걸고 무무를 물 위로 들어 올렸다. 그는 마지막으로 무무를 바라보았다....무무는 무서워하지 않고 신뢰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작은 꼬리를 살짝 흔들었다. 게라심은 얼굴을 돌리고 나서 실눈을 뜨고는 두 손을 폈다...게라심은 물에 떨어지면서 무무가 낸 날카로운 비명 소리도, '철썩' 하고 튀어 오른 둔탁한 물소리도, 다른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에게는 가장 소란스러웠던 하루가 아무 소리도 없이 조용하게 지나간 것이다. 마치 가장 고요한 어떤 밤이 우리에게는 전혀 고요하지 않을 수 있듯이 (p.437-438)

 

표면적으로 게라심은 여지주의 압력에 굴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여지주는 결코 게라심에게 무무를 죽이라고 명령하지 않았다는 사실ㄹ이다. 그러니까 게라심의 행위는 소극적이나마 주체적인 결단, 다시 말해 져지주에 대한 소극적인 저항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다. 비록 적극적으로 무무를 지키지는 못했지만, 게라심은 소극적이나마 여지주가 무무를 죽일수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부분이 중요한 것 아닐까? 무무를 강물 속에 던지는 순간, 게라심은 농노로서 가지고 있던 비루함도 함께 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철저하게 여지주의 말에 순종하는 존재였다면, 여지주의 손에서 무무를 빼앗아 자신의 손으로 무무의 생명을 앗으려는 결단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마침내 게라심은 자신을 지배하던 비루함을 극복하기 시작한 것이다. 스피노자는

비루함이란 슬픔 때문에 자기에 대해 정당한 것 이하로 느끼는 것이다.

'슬픔'은 어떤 타자가 나의 삶의 의지를 꺾으려고 할 때 발생하는 감정이다. 여지주가 주인으로서의 삶을 부정할 때, 게라심이 느꼈던 것도 바로 이 슬픔이다. 이런 슬픔이 반복되면 누구나 비루함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게라심은 자신이 사랑하는 무무의 목숨을 스스로 거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스로'라는 말일 것이다. 게라심의 행위는 제한적이나마 나름대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했던 능동적인 결단이었으니까. (p.3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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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Ива́н Серге́евич Турге́нев, 1818년 11월 9일 ~ 1883년 9월 3일)

러시아의 소설가이다.
그는 러시아 중부 오룔 시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1818년 10월 28일에 태어났다. 아버지가 육군 대령으로 퇴직하고 스파스코예 마을로 이주함에 따라서 투르게네프는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이 시골 마을에서 보냈다. 그 후 모스크바 대학 문학부와 페테르부르크 대학 철학부, 그리고 독일의 베를린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그는 러시아 고전 작가들 가운데 가장 서구적인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인생의 많은 세월을 서유럽에서 보냈고 서구인들과의 교류도 활발했으며, 사상적 기반도 서구주의적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는 러시아의 대자연과 시골 풍경이 섬세하고 수려한 필치로 묘사되고 있으며, 동시에 서구의 자유주의 사상과 휴머니즘이 조화롭게 반영되어 있다.
그는 1852년에 25편의 중단편 모음집으로 출간된 《사냥꾼의 수기》로 주목받는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 후 당시의 시대상과 인간상을 섬세한 서정적 필치로 심층 묘사하여 그에게 ‘러시아 인텔리겐차의 연대기 작가’라는 별칭을 얻게 해준 장편소설들 《루딘》(1856년), 《귀족의 둥지》(1859년), 《아버지와 아들》(1862년), 《연기》(1869년), 《처녀지》(1877년) 등이 출판되었다. 그는 1883년 8월 22일 러시아가 아닌 프랑스에서 사망했으며, 그의 유해는 러시아로 옮겨져 그 해 9월 27일에 페테르부르크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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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의 수기 - 투르게네프 (김학수 옮김, 동서월드북)

아버지와 아들 - 투르게네프 (이상원 옮김, 열린책들 세계문학)

첫사랑 - 투르게네프 (최진희 옮김, 펭귄 클래식)

첫사랑 - 투르게네프 (김학수 옮김, 문예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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