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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I. 고전 문학 (서양)/1. 서양 - 고전 소설

죄와 벌 - 도스토예프스키 (오병택 옮김, 삼성당)

by handaikhan 2025. 2. 28.

 

 

도스토예프스키 - 죄와 벌 (1866년)

 

찌는 듯한 더위가 계속되는 7월 초순 어느 날, C 골목의 전셋집에 세들어 사는 한 청년이 저녁 무렵의 거리를 살피며 천천히 K 다리 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는 다행히 층계에서 그 집 안주인과 마주치지 않았다. 그의 골방은 5층 건물의 바로 지붕 밑에 있었는데, 그는 안주인에게서 식사뿐만 아니라 하녀까지 제공받고 있었다. 하숙집 안주인은 바로 아래층에 살림집을 가지고 있으므로 한길로 나가자면 항상 문이 활짝 열려진 주인집 부엌의 옆 층계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실은 하숙비가 잔뜩 밀려 있어서 청년은 안주인과 얼굴이 마주치게 될까 봐 겁이 난 터였고, 이 때문에 일종의 병적인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기가 죽은 태도로 전전긍긍하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는 가난에 몹시 쪼들리면서도 아예 그런 일에는 마음조차 쓰지 않았고, 일상적인 모든 일도 완전히  내동댕이쳐 버린 상태였다. 사실 안주인이 그를 상대로 어떤 계략을 꾸미고 있든 그까짓 여편네쯤은 하나도 무서울 게 없었다. 그러나 층계에서 마주치게 되면 또 쓸데없는 수다를 늘어놓거나, 그 귀찮은 하숙비 독촉으로 위협과 애걸하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 뻔한 노릇이었다. 그렇게 되면 이쪽에서도 뭐라고 변명을 하거나 용서를 빌며 거짓말을 해야 한다. 그보다는 고양이처럼 슬그머니 빠져 나와 밖으로 나가 버리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런데 무사히 거리로 빠져 나오자 하숙비 때문에 그토록 안주인을 두려워한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는 이토록 겁이 많은가 싶어 흠칫 놀랐다.

'그만한 큰일도 단번에 결단을 내린 내가 이따위 대수롭지도 않은 일에 겁을 집어먹다니!'

그는 야릇한 미소를 띠며 이런 생각을 했다. (p.21)

 

"지금까지 한 말은 물론 농담이라고 해 두지. .그런데 자네한테 한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 싶네. 예를 들자면 무지하고 심술궂은 병든 노파가 있어 아무에게도 쓸모가 없고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해가 되는, 자기 자신도 무엇 때문에 사는지 모르는 채 내일이라도 혼자 죽어 갈 노파가 있다. 이 말이야, 알아듣겠나?"

"그래, 알아듣고말고."

열띤 어조로 말하는 친구를 찬찬히 바라보며 장교는 대답했다.

"자, 그 다음을 들어 보게. 다른 한편에는 재정적인 뒷받침이 없다는 이유로 힘없이 좌절하는 젊고 활기찬 힘이 있어. 도처에 아주 많지. 이런 사람들은 수도원에 기부하기로 한 그 노파의 돈만 있다면 백 가지, 아니 천 가지의 훌륭한 사업이라도 성취할 수 있단 말이야. 빈곤과 부패, 파멸, 타락의 비참한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거야. 노파를 죽이고 그 돈을 빼앗는다. 단지 나중에 그 돈으로 전인류를 위해 봉사한다는 조건으로 말이야. 어떻게 생각해? 하나의 사소한 범죄는 수천 가지의 좋은 일로 보상될 수 없을까? 단 한 사람의 희생이 수천 명의 생명을 타락과 부패 속에서 소생시켜 준단 말이야. 하나의 죽음이 백 개의 생명으로 바뀌어진다 - 지극히 간단한 문제가 아닌가! 저 간악한 폐병쟁이 노파의 목숨이 이 사회에서 얼마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나? 한낱 풀벌레에 지나지 않지. 그것도 우리에게 괴로움이나 주는 이나 벼룩처럼 귀찮은 존재란 말이야! 그 노파는 해충처럼 타인의 생명을 좀먹고 있어. 요전번에도 홧김에 리자베타의 손가락을 물어뜯어 하마터면 손가락이 잘릴 뻔했지."

"그렇다면 결코 살아 있을 가치도 없는 인간이지.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게 인간의 법칙이 아닌가."

하고 장교가 응수했다.

"여보게, 인간은 자연을 무한히 바꾸어 나가면서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가고 있지 않나. 그것이 없다면 영영 편견 속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어. 그렇지 않다면 영웅이나 위정자 같은 고결한 인물이 나오지 못할 거야. 사람들은 흔히 '의무'니 '양심'이니 하지만 - 구태여 그런 것을 따지려 하는 것은 아니지만 - 우리는 그것을 어떠한 방법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생각하나?"(p.65)

 

처음에는 하나의 의문이 그를 휩싸고 돌았다. 왜 모든 범죄는 그렇게 쉽게 폭로되고 마는 것일까? 왜 그토록 간단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일까? 그는 차츰 범행에 대한 여러 가지 흥미로운 결론을 알아 냈다. 그의 생각에 의하면, 가장 중요한 원인은 범죄를 은폐하려는 행위라기보다는 오히려 범죄자 자신 속에 있다는 것이다. 즉, 범죄자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는 순간에 의지와 이성을 상실하여 꼭 어린애처럼 경솔하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거의 한 사람의 예외도 찾아볼 수 없다. 그가 확신하는 바에 의하면 이 이성과 의지의 상실은 마치 병마처럼 육체를 습격하여 차차 퍼져 나가, 범행 직전에 마침내 극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 상태가 사람에 따라 범죄 순간에서 범죄 후까지 얼마 동안 계속된다. 하지만 병이 낫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상태도 가라앉게 된다. 그러나 병이 범죄를 낳는 것인가, 아니면 범죄 그 자체가 좀 색다른 위치에서 늘 병과 유사한 무엇을 동반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에 이르러서는 아직 결정적인 힘이 모자란다고 느꼈다. 

이러한 결론에 도달한 그는 이렇게 결심했다. 자기의 경우에는 이러한 병적인 변화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이성과 의지는 엄연히 유지될 것이다. 그것은 자기가 계획한 일이 '범죄가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때문이다. (p.68-69)

 

그의 분노는 길들이지 않은 짐승처럼 흉포스러웠다. (p.69)

 

'그래, 어리석은 생각은 말자. 모든 것은 환영이다. 생명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나도 역시 살아 있다. 내 생명은 그 노파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나는 그 노파에게 천국에나 가라고 명복을 빌어 주면 그만이다. 지금은 광명의 왕국이다. 이성은 눈뜨고.... 그리고 의지와 힘! 자, 이제부터 힘을 겨루어 볼까. 나는 이미 손바닥만한 공간에서라도 발붙이고 살 각오를 하고 있다. 그래, 여기서 포친코프의 집은 바로 코앞이다. 어쨌든 라주미힌에게 들러야겠다. 그 녀석이 내기에 이긴다고 해도 좋다! 그 녀석을 기쁘게 해 줘야지 - 그렇지, 힘이 중요한 거야. 힘을 얻으려면 맞서야 해.'

그는 오만하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의 긍지와 자신감은 시시 각각으로 변하여, 다음 순간에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지푸라기라도 붙잡으려 했던 그가 갑자기 '살아갈 수 있다. 아직 생명은 있다. 내 생명은 그 노파와 함께 죽어 버린 것이 아니다.' 라고 느낀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p.155)

 

세상 만사가 모두 올바르게 될 수 없다. (p.254)

 

"언젠가 나는 이런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 가령 나폴레옹이 내 입장에 있고 입신 출세의 길을 여는 데 모든 아름답고 위대한 것 대신 오직 우스꽝스런 14등관의 미망인 노파만이 있다. 그리고 출세의 길을 열기 위해서 그 노파의 함 속에 든 돈을 꺼내려면 노파를 죽일 수밖에 없다. 그럴경우 그는 그것이 위대하지 못한 끔찍스런 죄라고 해서 주저했을까, 하고 그 문제에 대해 난 오랫동안 고민했어. 결국은 나폴레옹 같으면 오히려 그런 걸 주저해야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난 부끄러웠어. 그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면 주저하지 않고 목을 졸라 죽였을 거야. 죽인 거야. 소냐, 당신한텐 우습게 보일 테지만 진짜로 우스운 건 이 사건이 이렇게 해서 일어났다는 사실이야."

"그래, 이번에도 당신 말이 옳아. 이건 모두 쓸데없는 얘기야. 사실 우리 어머니와 누이동생의 희망은 오직 나 하나에 달려 있어. 그런데 나는 대학의 학비를 내지 못해서 휴학해야 될 형편이었어. 설사 대학을 계속 다닌다ㅗ 해도 10년이나 20년 후에 겨우 교사나 관리가 되어 연간 천 루블 정도의 봉급밖에 못 받아. 그러나 그땐 이미 어머니를 안심시켜 드리기에는 너무 늦어. 누이동생에겐 아마 더 나쁜 일이 일어날 테지! 그렇다면 나는 왜 그저 일평생 모든 것을 외면한 채 어머니를 잃고, 누이동생의 치욕을 참아야 하는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들을 매장하고 대신 아내와 자식을 얻어 역시 돈 한푼 없게 만들고 가기 위해선가? 그래서 난 결심한 어야. 노파의 돈을 빼앗아 새로운 방식으로 독립된 길에 들어서자고, 그래서....아니, 이게 다야. 물론 노파를 죽인 건 나쁜 짓임에 틀림없어....아아, 그러나 이젠 더 이상 말하지 말자!"

"하지만 나는 백해 무익한 더러운 이를 한 마리 죽였을 뿐이야."

"어머나, 사람을 보고 이라고구요!"

"나도 정말 이가 아니란 건 알아."

그는 이상한 눈으로 그녀를 바로보며 말했다.

"하긴 난 처음부터 무의미한 얘기만 늘어놓고 있었어. 사실은 당신 말이 옳아. 거기엔 완전히 별개의 원인이 있어. 나는 벌써 오랫동안 누구와도 얘기를 하지 않았거든, 소냐. 아아,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프군."

"소냐, 그건 착각이었어! 이렇게 생각해 보라구. 내가 자존심과 시기심이 강한 간악하고 비열한 놈이고, 게다가 발광 증세를 전부터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고 말이야. 나는 방금 대학을 계속 다닐 수 없었다고 했지만, 어쩌면 계속 다닐 수 있었는지도 몰라. 학비는 어머니가 송금해 주실 테고, 신발, 옷, 빵 등은 내 힘으로 해결할 수도 있었을 테니까. 전에도 가정 교사로 나가면 한 번에 50코페이카씩 받았어. 라주미힌도 벌이를 하고 있지. 그러나 난 심술이 나서 일하려 들지 않았던 거야. 그때 개미처럼 집에 틀어박혀 버렸어. 당신은 내 방에 와 봤으니까 잘 알겠지만, 비좁은 방과 낮은 천장은 정신까지 짓누르는 법이야. 나느 그 개집 같은 골방을 저주하면서도, 일부러 심술궂게 거기에 틀어박혀 지냈지. 며칠이고 줄곧 누워만 있으면서, 나스타샤가 먹는 걸 갖다 주면 먹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굶었어. 캄캄한 방에서 양초를 살 돈조차 벌려고 하지 않았지! 공부해야 할 중요한 책은 다 팔아 버렸고, 노트와 수첩엔 먼지가 잔뜩 쌓였어. 나는 누운채로 밤낮 생각에 잠겨 있었지. 그리고 계속 꿈만 꾸었지. 그런데 그 무렵부터 그 일이 점점 머리에 떠오르기 시작했어. 아니, 또 쓸데없는 소릴 하려 했군! 실은 난 그 무렵 늘 자신에게 질문을 했지. 난 왜 이렇게 바보일까? 만일 모두들 바보이고, 자기가 그것을 확신한다면 왜 자신만이라도 슬기로워지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후에 난 깨달았어. 소냐, 모든 사람이 다 현명해지기를 기다리자면 너무나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이고, 또 그런 때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며, 인간은 절대 변할 수 없는 것이므로 누구도 인간을 개조할 수 없다. 그렇다! 이것이 그들의 법칙이다. 정말로 그래. 그래서 난 깨달았지. 두뇌와 정신이 확고하고 강한 인간은 그들 위에 설 수 있는 주권자다! 보다 많은 것을 감행할 수 있는 인간이 가장 많은 권리를 갖고, 보다 많은 사람을 무시할 수 있는 인간은 군중에 대해 입법자가 된다! 이것은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장님만이 그것을 분별하지 못할 뿐이다."

"나는 그때 깨달았어, 소냐. 권력이란 그것을 잡기 위해 몸을 굽힐 수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 거기엔 감행하기만 하면 되는 조건밖엔 없다! 그때 머릿속엔 난생 처음으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어. 세상 사람은 이 엄청난 선물 옆을 지나면서 살짝 소매를 스치는 것조차 감히 행하는 자가 없었는데 이것이 문득 내 눈앞에 명백히 드러났어! 나는 그것을 감행하고 싶었어. 그래서 죽인 거야. 나는 단지 감행하고 싶었을 뿐이야. 이것이 전부야!"

"나는 농담을 하는 게 아냐. 난 다 알고 있어. 그런 건 어둠 속에 누워있을 때 이미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면서 자신에게 일렀던 일이야. 악마의 유혹이란 건 이미 세밀하게 검토해 보았는데 정말 지긋지긋했어. 그래서 모든 걸 잊고 새로 시작하고 싶었어! 난 모조건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았어. 난 지각 있는 사람으로서 행동했던 거야. 그것이 결국은 나를 파멸시켰지만! 그리고 당신은 내가 스스로 권력을 갖고 있는 자인가 하고 자문하며 생각을 거듭한 건 나 자신이 권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몰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진 않겠지. 그리고 인간은 이인가 아닌가 하고 자문한다고 해서 내게 있어서 인간은 이가 아니며, 다만 아무런 의심도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만 인간은 이 같은 존재임을 내가 몰랐다고 생각하나? 나폴레옹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문제로 그토록 고민한 걸 보면, 나 자신이 나폴레옹이 아님을 분명히 느꼈던 거야. 나는 그런 소용없는 반성을 하면서 고통을 견딜 만큼 견뎠어. 그 뒤에, 그런 고민을 깨끗이 털고 싶었어. 소냐, 나는 말이야, 오직 나를 위해 죽이고 싶었던 거야! 이 점을 자신에게까지 속이고 싶진 않았어. 나는 어머니를 돕기 위해 돈과 권력을 잡아 인류의 은인이 되려고 죽인 건 아냐. 단지 나를 위해서 죽였을 뿐이야. 그리고 죽인 다음에 누군가의 은인이 되든, 평생을 거미처럼 모든 인간으 피를 빨게 되든, 그 순간엔 어차피 마찬가지였어! 내가 살인을 할 땐 돈보다도 딴 걸 원했다는 걸 지금은 알겠어. 제발 내가 말하는 걸 이해해 줘. 나는 설사 같은 길을 걷게 되더라도 앞으론 살인 같은 것은 절대 되풀이 하지 않을 거야. 다른 걸 알고 싶다는 욕망이 내 등을 밀었던 거야. 나는 그때 자신이 남들과 같은 이인가, 아니면 인간인가를 한시 바삐 알고 싶었어. 나는 밟고 넘어설 수가 있는가? 몸을 굽혀서 감히 잡을 수 있는가? 나는 벌레 같은 존재냐, 아니면 권리를 가진 인간이야? 그 점을 알고 싶었던 거야." (p.320-323)

 

한 인간을 공정하게 비판하려면, 먼저 그에 관한 선입감과 습관에 의한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p.372)

 

난 결국 여자의 마음을 정복할 수 있는 위대하고도 결정적인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건 세상의 모든 여자들에게 절대적인 효력을 나타내는 겁니다. 즉 아첨하는 것이죠. 정직한 것처럼 어려운 것도 없지만, 또 아첨처럼 용이한 것도 없습니다. 만약 정직 속에 백의 하나라도 거짓이 섞이면 즉시 부조화가 생기고 추태가 벌어집니다. 그러나 아첨은 전부가 거짓말이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 흡족해하며ㅓ 들을 수가 있습니다. 비록 저열한 것이라도 만족은 만족이니까요. 아첨이란 아주 터무니없는 거짓말일지라도 적어도 반 정도는 정말이라고 느껴지는 법입니다. 이건 사회의 온갖 계층에도 다 적용될 수 있는 겁니다. 아첨을 무기로 한다면 성녀라도 유혹할 수 있을 것이며, 평범한 인간은 말할 나위도 없겠죠. (p.374)

 

인간은 한가지 일에 열중하기 시작하면 다른 일은 전혀 생각지도 않을 만큼 바보스러워집니다. (p.375)

 

하지만 부부나 애인 사이는 제삼자로선 절대로 모르는 법입니다. 거기엔 오직 두 사람만이 알고 있는 그 무엇이 있는 법입니다. (p.376)

 

"내가 그 쓸모없는 더러운 이를, 그 고리 대금업을 하는 노파를 죽인 것 말이냐? 가난한 이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사는 그따위 노파를 죽인 일은 도리어 마흔 가지의 죄를 용서받을 수도 있는 것인데 그게 죄가 된다구!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렇기 때문에 후회도 하지 않아. 그런데 왜 모두들 사방에서 그것이 죄라고 못살게 구는지 모르겠다! 난 치욕을 받으러 가는 이 순간에야 겨우 나 자신의 소심함과 우둔함을 똑똑히 깨달았다! 내가 이런 결정을 내린 건 오직 나의 이 비굴함과 무능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포르피리의 말대로 그 편이 유리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p.407-408)

 

"아, 그럼 방법이 틀렸단 말이냐! 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구나. 수많은 인간을 전쟁으로 인해 살육하는 쪽이 더 존경할 만한 방법일까? (p.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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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1821년-1881년)

러시아의 소설가이다.

1846년 첫 작품 《가난한 사람들》로 비평가 비사리온 벨린스키로부터 '제 2의 고골'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하였다. 데뷔 전에 도스토옙스키로부터 직접 작품을 건네받아 읽었던 니콜라이 네크라소프는 감동을 받은 나머지 밤 중에 그의 집을 찾아갔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데뷔는 화려했을지 모르나, 이어서 발표한 《백야》와 《분신》 등은 혹평을 면치 못했다. 이 때부터 서구주의 사상에 끌리고 사회주의 사상을 연구하는 미하일 페트라솁스키의 모임에 가담하였다.
젊은 시절 도스토옙스키는 페트라솁스키를 중심으로 작가 등 젊은 지식인들이 모여 공상적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급진적 정치 모임에 참가하였다. 당시 차르 니콜라이 1세는 첩자를 보내 정치 모임들을 감시하였는데, 도스토옙스키는 모임에서 절대 왕정의 입장을 신봉했다는 이유로 고골을 비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불온문서로 간주되었던 벨린스키의 〈고골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한 것이 원인이 되어 1849년 4월 23일 5시 당국에 의해 체포되었다. 니콜라이 1세는 체포된 지식인들을 사형에 처할 생각은 없었으나, 당시 확산되고 있던 급진주의 정치 모임들에 대해 경고하고자 직전에 특별 사면할 계획으로 사형을 선고하였다. 도스토옙스키를 비롯한 회원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였고, 총살형이 집행되기 직전에 형 집행이 중지되고 시베리아에 유형을 가는 것으로 감형되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나온 이 경험으로 인하여 몇몇 사람은 공포와 충격으로 머리가 백발이 되었다고 한다. 도스토옙스키도《백치》 등의 작품에 사형 집행 직전의 심정을 묘사하는 등 이 사건은 그의 작품 세계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당시 시베리아 유형은 감옥 수형과 출소 후에 수도로 복귀하지 못하고 시베리아에서 복무하는 것으로 구성되었는데, 도스토옙스키는 1854년까지 옴스크 감옥에서 4년간 수형 생활을 한다. 성서 이외에는 일절 출판물이 허용되지 않았던 환경에서 성서에 대한 깊은 독서와 감옥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혔던 죄수와 민중들의 생생한 삶이 그로 하여금 사회주의자에서 기독교적 인도주의자로의 사상적 변화를 겪게끔 하였다. 이 시기의 체험을 바탕으로 후일 《죽음의 집의 기록》을 펴냈다. 출소 후 세미팔라틴스크 수비대에서 4년 간 사병으로 근무하며 당시 남편이 있었던 여성 마리야 이사예바를 만난다. 마리야의 남편이 병으로 사망하자 도스토옙스키는 1857년 당시 29세였던 그녀와 결혼한다. 그는 가까스로 1859년에 페테르부르크로 귀환한 뒤 10년에 가까운 문학적 공백을 메꾸고자 의욕적으로 작품 활동을 재개하였다.
1861년 형과 함께 잡지 《시대》를 발간하고, 《학대받는 사람들》, 《죽음의 집 기록》을 연재하여 큰 인기를 얻었으나, 이듬해 발행 금지를 당하였다. 1864년 형과 함께 새로운 잡지 《세기》를 창간 하였으나 실패하여 큰 빚을 지게 되었다. 1866년 걸작 《죄와 벌》을 완성하였다. 1867년부터 외국, 특히 드레스덴에 거주하면서 《백치》, 《악령》 등을 쓰고 귀국하였다. 1874년 《미성년》을 발표하여 큰 돈을 벌어 빈곤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시베리아 유배 시절에 악화된 지병인 간질과 취미로 즐기던 도박 등이 창작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그의 작품 속에 중요한 요소들로 간질과 도박 등이 자주 등장한다. 도박은 그의 인생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고, 빚을 갚기 위해 출판사와 무리한 계약을 하여 마감에 쫓기는 나날을 보냈다. 바쁜 일정 때문에 《죄와 벌》, 《도박꾼》 등은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는 구술 필기의 형태로 작성되었다. 속기사였던 안나 스니트키나는 훗날 도스토옙스키의 두 번째 부인이 되었다.
소설 이외의 저서로는 《작가의 일기》가 있다. 이것은 단순한 일기가 아니라 잡지 《시민》에서 도스토옙스키가 담당했던 문예란에 게재했던 것으로, 문예 지평, 정치·사회평론, 에세이, 단편 소설, 강연 원고, 종교론 등을 포함하고 있어 훗날 도스토옙스키 연구에 귀중한 문헌 자료가 되었다.
1880년 그의 최후의 걸작인 장편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탈고하였다. 그 즈음에는 이미 사물을 분간하지 못할 만큼 눈이 어두워져 있었고 도스토옙스키가 침대 누워 구술한 것을 아내 안나가 속기 하여 작품을 완성했다. 그로부터 몇 달 후인 1881년 1월 28일에 폐동맥 파열로 인하여 가족의 간호를 뒤로 하고 6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는 임종 직전 아내에게 시베리아 형무소에 있었던 시절 지니고 있었던 성경책을 읽어 달라고 부탁했고 같은 날 밤 11시 성경책을 가슴에 안고 죽었다. 유해는 같은 달 31일 페테르부르크의 알렉산드르 넵스키 사원 묘지에 안장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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