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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VII. 아동, 청소년/1. 한국 문학

화분 - 이효석 (계몽사)

by handaikhan 2023. 5. 3.

계몽사 실전독서논술작품선 9

 

목차

 

화분

도시와 유령

메밀꽃 필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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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 화분 (1939년)

 

5월을 접어들면 온통 녹음 속에 싸여 집 안은 푸른 동산으로 변하였다. 30평이 넘는 뜰 안에 나무와 화초가 무르녹을 뿐 아니라 사면 벽을 둘러싼 담장으로 해서 붉은 벽돌 굴뚝만을 남겨 놓고 집 전체가 새파란 치장으로 나타난다. 모습부터가 보통 문화 주택과는 달라 남쪽을 향해 엇비슷하게 선 방향이며, 현관 앞으로 비스듬히 뻗친 차양이며, 그 차양을 고이고 있는 푸른 기둥이며 - 모든 자태가 거리에서는 볼 수 없는 마치 피서지 산비탈에 외따로 서 있는 사치한 산장의 모양이다. 현관 앞에 선 사시나무와 자작나무도 깊은 산속의 것이라면, 뜰을 십자로 갈라놓은 하아얀 지름길도 바로 산장의 것이다. 생명력의 표정인 듯도 한 담쟁이는 창 기슭을 더듬어 오르고 현관을 둘러싸고 발가스름한 햇순이 집 안까지를 엿보게 되는 - 온전한 집이라기보다는 풀 속에 풀로 결어 놓은 한 채의 초막이라는 감이 있다. (p.11)

 

남편을 무시로 독차지하고 있을 수 없는 외로운 집에서 두 식구를 데리고 가장 노릇을 하려니 아쉽고 허전한 때가 많다. 풀은 우거질 대로 우거지고, 현관 기둥이며 창 기슭이며 나뭇가지에는 거미가 겹겹으로 그물을 드리워서 마치 폐가인 양 부지런히 줄을 쓸어 버려도 왕거미는 씨가 지지 않는다. 담쟁이 속 돌벽 위로는 다람쥐가 밤낮으로 농간을 부리며 오르내리는 눈치다. 불과 100평의 세상 안에서도 여왕 노릇을 하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생각하며 뜰을 거니는 세란은 모르는 결에 자꾸 얼굴에 와 걸리는 거미줄을 주체스럽게 쥐어 뜯지 않으면 안 된다. (p.12-13)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사양 - 다자이 오사무 (오유리 옮김, 문예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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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가 지더니 찔레꽃 봉오리가 연지같이 진하게 맺혔고, 라일락이 만발했다. 몇 포기 안 되건만 덤불을 이루어서 송이송이 불그런 자색 꽃망울이 풍준한 향기를 휘날리고 있다. 라일락 향기는 유난스럽게 진하고 세어서 한 포기 덤불의 향기가 집 구석구석에 배어 뒤꼍에서나 방 안에서까지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흘러오듯 코끝에 찰락거린다. 따뜻한 햇볕같이 땅 구석구석에 젖어드는 봄 향기 - 그것이 라일락 향기이다. 덤불 옆에 서서 파줄기같이 밋밋하게 살찐 찔레순 껍질을 벗기는 미란의 자태를 나뭇가지 사이로 바라보면서 세란은 느린 걸음으로 지름길을 거닌다. 철없는 아이로만 보고 있던 미란의 육체의 변화에 요새 차차 놀라게 되었던 것이다. 여학교를 마친 것이 마치 아이의 세상을 졸업해 버린 셈인 듯이 봄을 잡아들면서부터 애잔하던 팔다리가 봄 동안에 늘어나고 어깻죽지와 허리가 활짝 퍼지면서 어른의 체격을 갖추어 왔다. 큰 발견이나 한 듯 세란은 동생의 급작스런 발육에 놀라며 동생이라는 느낌보다도 이제는 한 사람의 동무를 대하는 듯한 느낌이 솟기 시작했다. 어른과 아이의 구별이 없어지고 어른과 어른의 대등한 대립이 시작된 듯한 - 두 사람의 세상의 문이 한데 합쳐서 무엇이든지 숨김없이 터놓고 말할 수 있는 듯한 그런 급격한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세란이 치마 아래를 뻗친 찔레순같이 밋밋한 동생의 다리를 탐스러운 것으로 바라보면서 꽃덤불 쪽으로 가까이 갈 때 미란은 흘낏 세란을 바라보고 괴덕스럽게 꽃망울을 잡아흔드는 - 그 희멀건 얼굴이 꽃다발같이 향기롭다. (p.13-14)

 

용감한 병사같이 앞잡이를 서서 결국 찾은 곳이 영화관이었다. 명화의 밤이란 굉장한 선전에 눈을 홀리운 것이나, 사실 고전 영화 <실낙원>의 한 편은 두 사람의 혼을 송두리째 뽑을 지경이었다. 검소하면서도 찬란한 화면이 폭 좁은 막 위에 꽉 차면서 어두운 홀 안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다. 낙원에서의 아담과 이브의 생활 - 각각 월계 나무 잎으로 앞을 가린 그들의 자태가 해면같이 시선을 빨아들며 미란은 정신 없이 몸을 앞으로 쏠리우다가도 그래도 부끄러운 마음에 문득 자세를 바로잡으며 어두운 주위를 휘둘러보곤 했다. 악마가 뱀으로 변신하고 낙원으로 숨어드는 장면에서는 문득 집 뜰에서 본 뱀 생각을 하고 섬뜩해지면서 얼마나 흉측스런 짐승인가를 느끼며, 뜰에서 뱀을 본 자기의 자태가 바로 낙원의 이브였던 듯한 생각이 들며 몸서리를 쳤다. 유혹의 장면을 보아 나가는 동안에 한 가지 의문이 가슴속에 서리기 시작했다 - 금단의 과실을 먹었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여간한 허물이 아니기 때문에 금했을 터인데, 아무리 유혹이 컸다고 하더라도 얼마나한 용기로 그 천법을 범하게 된 것인가. 그 무서운 공포와 불안이 두 사람을 어떻게 정복한 것일까.. 허물을 범하는 첫 순간의 용기를 두 사람은 대체 어떻게 얻은 것일까 - 하는 의문이었다. 아담과 이브는 얼마나 용감한 사람들인가. 뒷일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그 무서운 율법을 거역하고 깨뜨리지 않았나. 어떻게 하면 대체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것일까 - 이 커다란 의문의 벽에 부딪치자 단주와 미란은 그만 머릿속이 혼란해지면서 다음 장면들이 부질없이 눈앞을 어지럽힐 뿐이었다. 그 가장 중대한 의문을 해석하지 못하고는 벌써 그 다음부터의 이야기는 두 사람에게는 무의미한 것이었다. (p.32-33)

 

화를 내면서 수선스럽게 문을 열고 목욕실로 세수를 하러 들어가는 미란의 뒷모양을 보고는 세란은 사실 처녀의 마음을 믿어야 옳은지, 안 믿어야 옳은지를 분간할 수 없었다. 헐하게 믿어 버리기에는 미묘한 처녀의 마음인 것이요, 믿지 않기에는 너무도 가엾은 어제까지의 순진하던 동생인 것이다. 흑인지 백인지 하룻밤 사이의 변화조차도 알 수 없는 미묘한 자연의 조화를 세란은 야속히 여기면서 머릿속이 혼란해만 간다. (p.42)

 

비유 속에서 거짓 없는 진실을 들을 수는 있었으나, 그러나 하룻밤 사이에도 몇 치씩을 자라는 소년의 마음을 그 자리에서 믿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라고 현마에게는 생각되었다.

"요새 아이들은 숙성하고 엉큼해서 속을 좀체 알 수가 있어야지."

솜털이 아니고 까무잡잡하게 자라나는 풋수염을 단주의 코 아래에 보면서 현마는 신기한 생각이 들며 볼 동안에 자라 가는 것이 문득 두려워도 진다. 어느 결엔지 자라서 어른이 되어서는 어른의 악덕을 배우고 우주의 비밀을 샅샅이 알고야 마는 그 인생의 생장의 법칙이 두려워지는 것이다. 그 어느 특출한 한 사람만이 장구히 그 세상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요, 차례차례로 대를 이어 가고 꼬리를 물어 가는 그 자연의 법칙에 현마는 오늘 알 수 없는 일종의 질투조차 느끼게 되었다. 단주들이 자기의 세상을 뺏고 들어앉게 될 때 자기는 벌써 그 자유롭던 세상을 하직하고 물러서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적인 신세를 깨달음에서 오는 두려움이요, 질투인 것일까. 도랑을 사이에 두고 겁만 먹고 손에 땀을 흘렸다고는 하나 도랑을 건너뛰는 것은 순간의 서슬이다. 여차하면 숙성한 단주가 그날 밤을 경계로 감쪽같이 국경선을 넘어 이미 이 나라에 한 발을 들여놓은 것이나 아닐까 - 하는 의혹이 그 두려움과 질투 속에서 여전히 솟는다. (p.44)

 

현마는 비로소 소리를 높이면서 두 사람을 끌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이유와 사연을 말하고 표를 무르려고 할 때 밖에서는 비행기의 발동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미란은 발을 구르며 안타까워하나 어쩌는 수 없는 잡힌 몸이다. 별수없이 표는 물리우고 여객기는 두 사람의 낙오자를 대수롭지 않게 무시해 버리고 쏜살같이 달아나 버린다. 그 무례한 태도를 창으로 내다볼 때 단주는 인생이 굴레에서 밀려 떨어진 듯한 모욕을 느끼면서 화가 버럭 나는 것이었다.

"자유를 이렇게 속박해요? 권리를 짓밟구....창피해 못 견디겠네?"

"자유는 무슨 자유야 주제넘게, 미성년에겐 아직 그런 권리 없어."

현마는 맹랑한 단주를 핀잔을 주고 팔들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 미란은 팔을 끌리우면서도 몸을 흔들며 어린아이 모양으로 투정을 부린다.

"답답하고 가두구는 바람두 못 쏘이게 하니..."

"바람을 쏘이랴거든 다음 기회는 없나 왜? 꼭 비행기가 맛이라면 내 태워주지 않으리? 다음 번 동경 갈 때..."

뽀로통하게 빼진 미란과 얼굴에 심술의 빛을 가득 담고 게정을 부리는 단주를 데리고 자동차 안에 앉았을 때 현마는 비로소 안심되면서 가슴이 놓였다. 인생의 낙제생들을 떨어 버리고 홀로 자랑스럽게 나는 여객기는 어느덧 하늘 멀리 멀어진다. 그것을 쫓으려는 듯 자동차도 내닫기 시작했으나, 단주와 미란에게는 여객기와 자동차의 거리가 벌써 만 리 길이나 되는 듯 생각되면서 그 위대한 붕새는 아직 자기들로서는 따질 수 없는 엄격한 영물같이만 보이는 것이었다.

인생의 문을 열 계획을 세우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낙오해 버린 두 사람은 일단 반역하고 나온 집으로 다시 끌려들어가는 수밖에는 없었으나 그 일건을 실말리로 이상한 관계가 생기게 되었다. (p.51)

 

이미 세상을 버린 100여년 전의 쇼팽은 못 볼지언정 그를 흉내내고 그를 본받으려고 하는 한 세기 후의 그 소녀만이라도 보고 싶은 생각이 치밀었다. 문 앞에 자동차 한 대가 와 닿더니 안에서 그인 듯한 사람이 나타났다. 미란은 밀리는 파도에 휩쓸려 발돋움을 하고 몸을 비비대며 고개를 질쑥거렸으나, 원체 첩첩으로 모여드는 인종으로 해서 문 앞은 가리워져 버렸다. 어깨틈을 비집고 간신히 시선을 바로 돌렸을 때 어머니인 듯한 중년 여인의 뒤를 따라 막 차에 오르는 소복한 소녀의 얼굴이 확적히 보여 왔다.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았으나 갸름한 얼굴에 새까만 눈동자를 가진 모습이 분명하게 눈 속에 새겨진다. 천재라고 별다른 인상이 아니었다. 보통 모습에 새까만 눈망울이 차게 빛나는 - 그뿐이었다. 사람의 숲을 뚫고 차는 거만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많은 어리석은 나귀들은 한 필의 준마를 보내면서 천치 같은 얼굴들을 지니고 줄레줄레 움직였다. 자기도 필연코 그 중의 한 사람일 것이기는 하나, 미란은 그 천치 같은 얼굴들에 구역이 나고 염증이 나며 군중의 낯짝 하나하나에다가 침을 뱉고 발로 밟아서 까뭉기고 싶은 충동이 솟았다. 그 감정은 곧 자기 경멸로도 변하면서 범상한 모습 속에 차게 빛나는 눈망울을 감춘 소녀의 자태가 역시 으뜸 가는 것으로 여겨졌다. 마음 속으로 모르는 결에 천재와 군중을 저울에 달아보고 어느 편이 더 중한 것일까, 천재란 군중이 있으므로 빛나는 것이나 군중은 천재가 없으면 빛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천재를 살리고 천만의 군중을 죽여야 할 것인가, 천만의 군중을 구하기 위해 한 사람의 천재를 희생함이 옳을 것인가 하는 주저가 온 뒤 역시 천만의 추물보다는 한 사람의 아름다운 것, 천재 편에 마음이 기울어진다. 소녀의 인상이 가슴 속에 더욱 또렷하게 새겨지면서 그의 자태가 자꾸 높아만 갔다. (p.70)

 

"미란이와 동갑이야. 벌써 한 수 진 셈이지. 적어두 대여섯 살 때부터 시작해서 10여 년의 연습을 쌓구 오늘의 경지에 이르렀을 것이니 지금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그를 쫓아갈 셈야? 음악은 어떤 예술보다두 장구한 시간을 요하는 것이구, 음악의 천재란 말하자면 연습의 천재인데."

"왜 학교 때 음악을 못 했든구."

"공부는 안 하고 장난만 치구 놀구만 지냈으니 그렇지."

미란은 안타까워지고 슬퍼진다. 천지가 시간의 지배를 받는다면 그역 운명적인 것일까. 일찍 시작하고 못한 데서 자기들의 운명은 갈라진 것일까. (p.72)

 

자기가 천재가 못 되는 때는 밖으로 천재를 구하고 숭배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모양이거든. (p.97)

 

세란은 때와 곳을 가리지 않고 열정을 요구한다. 사랑이라는 것에 처음으로 눈을 뜬 것 같았다. 현마와의 부부 생활은 사랑의 생활이 아니었고 단주에 의해서 처음으로 사랑을 안 듯한 그런 무서운 열정으로 단주를 조른다. 사람이 극도로 욕심스러울 때는 물이나 불을 헤아리지 않는 아이와 같이 날뛰는 것인 듯하다. 세란이 단주와 대할 때에는 피차의 지위까지 거꾸로 바뀌어 세란이 아이가 되고, 단주가 어른 노릇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이가 지각 없이 욕심을 부리면 어른은 그것을 누르고 조절해 주어야 한다. 창기병이 들기 시작한 세란의 투정을 단주는 벌써 당하는 재주가 없었다. 이상한 것은 세란이 욕심을 피우면 피울수록 단주는 그의 열정이 달갑지 않아지고 귀찮아 갈 뿐이었다. 당초의 출발이 잘못 되었다는 것, 그른 제비를 뽑았다는 생각이 자꾸 들면서 불만한 생각만 늘어갔다. 어떤 때에는 두려워지면서 웬만한 곳에서 그와의 사이를 청산해야 할 것을 느끼나 그런 티를 조금이라도 표면에 내면 세란은 더욱 물인지 불인지를 모르고 분별을 잃어버렸다.

"누가 그 눈치를 모를까 봐. 사람이 앞이 닦여지면 욕심이 나는 법이라구. 룸펜 노릇을 하면서 찻집에서 뒹굴든 올챙이 적 생각을 좀 해 보지. 이래저래 처지가 흡족해지니까 눈앞을 깐보구, 아닌 욕심만 내면서..."

이런 말을 들을 때 반성되지 않는 바도 아니었으나, 반성하면 할수록 현마에게 대한 민망한 생각이 들며 세란과의 사이를 청산해야 하겠다는 결의는 더욱 굳어졌다. 세란은 참으로 무거운 짐이요, 비싼 대상이다. 그와 마주치면 모처럼 꾸며 두었던 슬픈 마음과 표정고 산신이 부서져 버리고 정염의 노예가 되어서 질질 끌리는 동안에 피곤해질 뿐이다. 창백하게 피곤한 속에서 미란에게 대한 생각이 외줄기 철사같이 가늘고 곧게 솟아오른다. 회오리바람같이 세란이 지나가 버린 후 빈 방에서 홀로 다시 병든 사람의 감상을 회복하고 슬픈 표정을 시작하는 것이 스스로 생각해도 우스운 일이었으나, 미란을 생각함은 그런 처지에서만 적적했고 그런 심정 속에서는 미란밖에는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세란과 미란은 품격이 다르다. 한 사람이 휘저어 놓는다면 한 사람은 가라앉혔다. 어쩌다가 미란이 혼자서 찾아와 주는 때면은 방 안은 고요하고 침대에 누운 단주의 모양은 한껏 슬프게 보여서 단주가 생각하는 효과가 제물에 충분히 발휘되었다. 의지가지 없는 외로운 사람이 여기에 병들어 누웠도다...그런 인상을 주기에 성공하였던 것이다.

미란이 단독 두 번째 찾아오던 날 저녁 그런 효과는 예측 이상으로 발휘되었던 것을 단주는 안다. 자신 그런 효과를 꾸며 놓고는 동시에 다른 편에 서서 그것을 계산하고 측량하는 국외자 - 말하자면 자기도 모르는 동안에 한 사람의 배우 노릇을 하는 셈이었다. 그 한 간의 방 안은 비극의 제 3막째 무대면이고, 단주 자신은 홀로 등장하는 비극 배우인 것이다. 새로 감은 하아얀 붕대의 잠옷이며 부러 코 아래 길러 논 수염이며는 배우로서의 분장인 셈이고, 새로 깔아 논 깨끗한 침대보며 어항 속에 죽어 버린 금붕어며는 일종의 무대 장치인 셈이다. 화병에 꽂힌 아지랑이꽃과 호국 등속의 애잔하고 푸른빛도 무대의 효과를 더하기에 도움이었다. 봄부터 차례로 진달래, 개나리, 장미, 스위트피, 튤립, 제라늄을 거쳐 화병도 어느덧 여름을 맞이하여 호국과 도라지꽃의 푸른 꽃을 자긴 셈이나, 붉은 꽃이나 누른 꽃과 달라 푸른 꽃같이 슬픈 것은 없다. 푸른 것이라면 화병의 푸른 꽃뿐이 아니라 방 전체를 푸르스름하게 물들여 주는 푸른 벽지며, 침대보의 푸른 가장자리며, 책상 위에 널려져 있는 푸른 표지의 책들이 모두 방 안의 빛깔을 한 가지 방향으로 통일하면서 비극적 색채를 나타내고 있다. 그 위에 특별히 그 날 저녁의 효과로서 방 안이 유심히 푸르둥절하게 어두웠던 것은 대체로 창 밖 공기의 탓이기도 했다. 온 누리가 푸르스름하게 저물어 가는 저녁때라는 것이었다. 바닷속 세상을 그대로 들어다놓으면 그런 것일 듯 짐작되는 주위가 안개나 연기가 긴 듯 푸르고 자옥해지면서 오고 가는 사람들이 꿈 속 사람들과 같이 보이는 그런 때가 있다. 그 날이 마침 그런 저녁이어서 열린 창으로 푸른 세상이 내다보이며, 푸른 공기는 바닷물같이 창으로 흘러들어서는 방 안을 전체로 밖 세상과 같이 푸르둥절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 푸른 분위기 속에서 주인공인 단주 자신도 푸른빛에 물들어 얼굴은 창백하게 병색을 띠고 희춘희춘한 전신이 비극의 주인공을 방불시켰던 것이다. 두 무릎을 곧추세우고 깍지낀 두 손 위에 뒷머리를 얹고 번듯이 누워 있는 꼴은 맞은편에 걸린 염소의 탈과도 같이 서글프게 보였다. 고물 사이에서 진귀한 고물이나 찾아낸 듯 사다가 건 염소의 탈이 오늘 그의 연극의 반주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두 뿌리의 뿔을 세우고 좁은 턱 아래로 수염을 드리운 염소의 모양은 비극의 모양 그것이다. 희랍의 옛적 디오니소스의 제삿날, 사람들이 염소가죽을 쓰고 노래를 불렀을 때 비극이 시작된 것이 아니던가? 그런 고사를 알던 모르던 간에 단주는 염소 탈을 사다 걸고 자기의 신세와 대조시켜서 비극을 가장한 셈이다. 그 바닷속같이 푸르고 고요한 방에 아무 예고도 없이 별안간 등장한 것이 미란이었던 것이다. 단주 자신이 비극의 주인공이 아닌 것 보다도 그가 그것을 꾸민 것이 중요한 것이요, 그 무대 장치가 참으로 비극의 터가 되고 안 된 것보다도 미란에게 준 비극적 인상이 단주로서는 필요한 것이었다. 그 점에 이어서 그건 성공한 셈이었다.

짙은 옥색으로 아래위를 단장하고 나타난 미란은 시절의 물고가깉이 기운찬 것이었으나 방 속에 들어오자 같은 빛 속에 잠겨지면서 금시 그 기운을 뺏겨 버렸다. 푸르고 침침한 방 안 공기에 놀라면서 그 속에 누운 희끄무레한 단주의 얼굴이 더 없이 쓸쓸하고 가엾은 것으로 보였다. 음울한 공기 속에서는 단주는 흡사 세상에서 쫓겨난 홀아비같이, 고아원에서 데려온 고아같이 보이면서 전에 없던 측은한 생각이 한꺼번에 솟아올랐다. (p.106-110)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 - 김헌 (을유 문화사)

푸른꽃 - 노발리스 (김재혁 옮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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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는 반드시 음악을 배우러만 그 곳을 찾는 것이 아니었고 이것은 아직 영훈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나, 결혼기를 앞둔 가야는 집안 사람의 성화를 피해서 그 곳을 피난처로 삼는 것이었다. 약혼자는 고명한 럭비 선수 - 여기에 비극의 근원이 있었다. 부모가 하필 체육가로 고른 것은 외딸의 약질임을 생각한 결과였으나, 약질인 딸 편으로 보면 그런 우생학의 입장같이 어리석은 것은 없었고 체육가같이 천하게 보이는 것이 없었다. 육체의 힘을 재주삼는다는 것이 인간의 재주로서는 가장 핫길인 것이어서 체육 편중의 현대주의라는 것이 원시로 돌아가라는 고함 소리같이 속되게 들리는 것이었다. 육체라는 것은 인간의 원시적인 전제인 것이요, 체육을 힘쓰지 않는다고 문화를 감당해 나가지 못하리만큼 체력이 퇴화되고 인류가 멸망할 법은 없는 것이다. 육체는 동물의 자랑거리일는지는 몰라도 인간의 자랑거리는 못 된다. 수십 명을 때려눕히는 권투가의 영광이라는 것은 투우장에서 두 뿔로 사람의 창자를 받아넘기는 황소의 영광 이상의 것은 아니다 - 이런 의견을 가진 가야에게 체육의 선수 갑재는 처음부터 어그러진 배합이요, 경멸의 대상이었다. 그에게는 권투나 럭비나 갑을을 매길 것이 못 되는 것이었고, 황소의 영광으로서 인간 일생의 영광을 짝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부모와의 충돌을 피해서 집을 나오는 날이 많았다. 이 얼마간 봉건적인 육체 멸시의 정신주의는 어디서부터 유래했는지 모르나, 가야의 마음 속에 깊게 뿌리를 박고 있어서 이것이 영훈과의 사이의 관계도 스스로 규정해 주는 것 같았다. 그의 음악을 존경하고 재주를 찬양하는 마음이 어느덧 그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변한 것이었으나, 그 사모하는 마음이 바늘 끝같이 점점 곧고 뾰족해졌다. 정신력이 유달리 강한 것일까, 한 곳으로 집중되면서 밖으로 활짝 타 나가는 것이 아니고 안으로 뜨겁게 피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영훈과 마주 앉으면 한 마디 하소연을 하지 못하면서도 속으로는 무섭게 타오른 불꽃을 느껴 갔다. (p.116-117)

 

같은 비밀을 가지고도 단주와는 반대로 세란에게 대해서 그것을 한없이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하는 것은 미란이다. 순간의 실수로 뜻하지 않은 비밀을 가지게 된 미란은 ㅎ여이 만약 그것을 알면 자기의 꼴을 무엇으로 여길까 해서 세란의 앞에서 무한히 부끄러워하는 것이었다. 그가 만약 세란과 단주와의, 도리어 자기 이전의 비밀을 안다면 이런 생각도 얼마간 변할는지는 모르나, 조물주가 아닌 그가 형들의 그것을 알 리는 없었던 것이다. 미란은 형에게 비밀을 감추려고 하고, 세란은 동생에게 비밀을 감추려고 하면서 두 사람은 방패의 각각 자기편의 한쪽 빛만을 알고 건너편의 남의 빛은 모르고 있는 장님이었던 것이다. 장님은 자신이 업고 염려가 깊은 법이어서 두 사람의 대담하지 못하고 활발하지 못한 태도는 그 서로의 흠집을 가지고 있는데서 왔다. 세란과도 비밀을 가지고, 미란과도 비밀을 가진 단 한 사람 단주만이 두 사람의 비밀의 열쇠는 자기의 손아귀에 있다는 듯이 두 사람에게 대해서 자랑을 보이고 은근히 위협을 하면서 기세를 올리는 것이다. 세 사람 속에서는 그만이 가장 유식하고 자랑스럽고, 사람의 자리가 아니라 조물주의 입장에 서 있는 셈이다. 두 사람을 한꺼번에 마음 속에 거느리고 지배하고 운전하면서 활개를 펴고 뽐내는 셈이었다. (p.135)

 

"이 염치 없는 것. 남의 일을 죄다 틀어 놓구."

거대한 몸집으로 다짜고짜로 달려들면서 형훈의 멱살을 쥐어잡았다.

"주먹이 떨릴 때 그까짓 말이라는 게 무슨 소용 있는 것이냐? 이것이 체육가의 버릇이다. 어디 대답을 하랴거든 얼마든지 해 보렴."

갑재가 미는 바람에 영훈은 나뭇가지같이 해깝게 걸음질을 쳐서 들창 기슭까지 밀려가고 말았다. 미란이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고 주먹을 쥔 것은 물론이요, 문을 열려던 가야도 선뜻 돌아서면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것이 야만이었던 것이다. 사랑의 감정은 아무리 진보되어도 야만과 그다지 거리가 멀지 않은 까닭에 스스로 야만을 부르고 요구하는 것일까. 사내들의 싸움을 보지 못했던 미란에게는 별안간에 벌어지는 그 한 장면이 진저리가 났다. 공격하는 갑재와 당하는 영훈은 별것 아니라 야만과 문명과의 대립이었다. 야만의 힘이 눈으로 보기에는 항상 사나운 것이어서 그만큼 그 대립의 꼴은 보기 민망하고 안타까웠다. 미란은 마음이 아파지면서 그런 꼴을 보게 된 것을 불행히 여겼다. 그 날은 흡사 싸움의 날 같아서 집에서 단주와 다투고 나오자 또 그 정경이다. 그러나 사내끼리의 그 싸움에 비기면 단주와의 옥신각신쯤은 아무것도 아닌 듯 그만큼 미란이 받은 충동은 컸다.

"해결의 방법으로 이렇게 빠른 건 없거든....강다짐이든 무어든 맹세를 받을 수 있는 건 이 방법뿐이야."

"완력으로 해서 이긴다구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거는 없어. 맘껏 해 보렴."

"맘만 살아서 힘이 얼마나 장하다는 걸 모르구..."

무서은 짓이었다. 갑재는 참으로 자기의 힘을 자랑하는 듯 육중한 몸으로 영훈을 깔아 버린 것이다. 영훈은 창 기슭에 머리를 뉘이고 내리덮치는 힘을 막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이나, 졸연히 그 힘을 물리칠 수 없을 뿐이 아니라 바위 밑에 눌린 자라같이 일신이 괴로워 가고 급해 갈 뿐이다. 미란과 가야는 그런 급한 경우에도 어쩌는 수 없이 한참 동안이나 주먹만을 쥐고 서 있는 수밖에는 없었으나, 참으로 경우가 긴급해졌을 때 거의 본능적으로 새우들 싸움에 한몫 참가하게 되었다. 갑재가 여전히 부락스럽게 힘을 쓰는 바람에 깔린 영훈은 멱살을 들리운 채 열린 창 밖으로 머리가 밀려 나간다. 창 밖은 바로 뒷골목 거리로서 2층이라 땅 위까지는 눈이 한참 내려간다. 갑재는 흥분된 판에 무슨 짓을 할는지 모르는 것이요. 영훈의 몸은 한 마디 거역도 없이 점점 밀려 나가고 있음을 볼 때 가야와 미란은 무언중에 반사적으로 달려들었다. 미란에게 대해서 갑재는 대체 무슨 뜻을 가지는 것일까. 내 편도 아니거니와 원수도 아닌 것이다. 가야의 존재를 의식에 둘 때 원수라기보다는 도리어 그 반대의 것이 아닐까? - 이런 반성이 있을 겨를이 없이 가야가 화병을 들고 나섰을 때 미란은 엉겁결에 보면대의 니켈 몽둥이를 집어 들고 가야와 합력해서 갑재의 뒤통수를 겨누었던 것이다. (p.138-140)

 

시절은 시절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도 있는 것이다. 여름이 한창 짙어서 날이 무덥고 초목이 무성해진 것은 '푸른 집'의 정원을 빈틈없이 울창하고 짙은 녹음 속에 무르녹게 해 준 것이요, 따라서 집 안 사람들의 감정까지도 거기에 맞도록 변해 주자는 것이었다. 나뭇잎은 우거질 대로 우거지고, 풀은 자랄 대로 자라고, 꽃은 필 대로 피어서 뜰 안은 모래를 깐 하아얀 지름길만을 남겨 놓고는 전면 푸른 바다요, 찬란한 색채의 동산이었다. 기운에 넘치는 풀줄기는 때로는 지름길의 경계선을 넘어서 길 위를 덮어 버려, 이른 아침에 첫길을 헤치는 사람은 흔한 이슬로 해서 옷자락과 발을 흠뻑 적시고야 만다. 옷을 적시게 하는 것은 이슬뿐이 아니어서 화단 위 꽃들도 벌써 남은 봉오리가 없이 활짝 피어나서 오색의 화려한 색채가 눈을 아프게 하고, 꽃밭에 들어서는 날이면 어느 결엔지도 모르게 옷자락 군데군데에 꽃물이 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자랄 대로 자라고 필 때로 피어서 청춘이라는 것, 생명이라는 것을 한껏 내 보이며 그 이상 더 자랄 틈이 없는 마지막 가위에 이른 듯했다. 뜰 안은 아름답고 찬란하고 자랑이 있고 힘이 넘치고 으늑한 그늘이 져서 그림자와 깊이가 생겼다. 그것은 그대로 바닷속을 흐르는 세찬 조수와도 같이 사람에게 옮아오고 영향을 주어서, 창을 덮고 대청 안을 물들이는 푸른빛에 그대로 젖으면서 모르는 결에 자연의 풍속을 본받고 모방하고 그것과 완전히 화하고 일치되어 제물에 청춘의 자랑을 배우고 자극을 흡수하고 생명력의 발전을 계획하고 비밀을 음모했다. 화단에 들어설 때 단주는 아직도 찬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 것이요, 풀 속에 설 때 세란은 진할 바 없는 울창한 정력을 맡길 바 없어서 기지개를 쓰고, 창밖으로 어두운 나무 그늘을 내다보는 현마의 마음 속에는 으쓱한 비밀이 거기줄같이 피어올랐다. 세상에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마음의 비밀 - 어머니에게도 말할 수 없고, 하늘과 땅에도 고백할 수 없고, 나뭇가지 위 새에게도 하소연하기가 부끄럽고, 아니 자기 자신에게조차 들려주기가 무서운 마음의 비밀이 있다. 현마는 그런 마음의 비밀에 떨면서도 그것이 점점 곰팡이나 좀같이 마음 속을 먹어 가고 점령해 가는 것을 억제하는 도리가 없었다. 그가 내다보는 나무 그늘 아래에선 미란은 자기가 바로 그 현마의 마음의 비밀의 대상이 되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그는 그로서의 딴 생각과 회포 속에 잠겨서 먼 것을 꿈꾸는 것이었다. 낮과 밤으로 한가한 틈을 타서는 봉선화를 뜯어서 손톱을 물들이고, 꽃밭에 들어 꽃씨를 찾고 하는 옥녀조차가 아득한 앞날을 내다보며 서글픈 기쁨을 느끼고 있는지 모른다....이렇게 해서 집안 전체가 시절의 영향을 입고 자연의 숨결을 받아서 각각 자기의 경영에 잠겨 있는 것이었다. (p.142-143)

 

세란의 성화에도 잠자코 생각에만 잠기면서 하룻저녁 저물어 가는 뜰을 창으로 내다보고 있을 때였다. 저녁 기운이 안개같이 자욱한 속에서 뜰도 푸르고 창도 푸르고 미란의 마음도 푸르렀다. 푸른 것은 바다같이 먼 것을 실어 오면서 아득한 생각이 마음 기슭을 아물아물 감돌았다. 그 아물아물한 것을 노리고 있노라면 줄을 타는 광대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위태위태한 느낌이 나면서 당돌하고 신기한 생각이 차례차례로 마음을 스친다. 보통 때에는 생각도 못 하던 당치도 않은 대담한 광경의 토막이 요지경 속의 그림같이 펀득펀득 지나는 것이다. 수풀 속이 나오고, 바닷속이 나오고, 기선 속의 방 한 간이 나오고, 절벽 위가 나오고 - 환영이라는 것이 대개 그런 것이지만 연락도 관계도 없는 산만한 장면의 토막이면서도 그러나 그 장면마다 반드시 영훈과 자기의 자태가 어리는 것이며, 두 사람은 마치 딴 세상 사람들 같이 그 속에서 자유롭고 때로는 부끄러운 시늉을 짓는 것이었다. 일상에 막연히 원하고 바라던 희망이 간단히 밤 꿈 속에 나타났고, 꿈에서 밀려난 대부분의 희망은 그런 때, 그런 혼몽한 의식의 틈을 타고 나타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상천외한 대담한 그 마음의 그림에는 사실 번번이 귓볼이 빨개지고 얼굴이 달면서, 바로 그 때 등 뒤에 사람이 있어 그 붉은 마음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 마음이 서성거려져서 미란은 잠깐 방 안을 살피고는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보내곤 했다. 바닷속같이 자욱하게 검푸른 속에서 여전히 영훈의 환영의 계속을 찾게 되어서, 오늘은 왜 이리도 번잡하게 그의 그림자가 떠오르는고 하고 마음이 분주할 때 별안간 벽의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리면서 홀연히 나타나기 시작하던 환영을 훌 몰아 버렸다. 얄궂은 전화라고 탄하면서 수화기를 들었을 때 반드시 얄궂은 전화가 아니었던 것은 의외에도 거기에 역시 영훈의 꿈이 연속되어 나타난 까닭이다. 전화는 바로 영훈이었던 것이다. (p.145-146)

 

여자들의 모양을 보고는 현마도 자기만이 팔짱을 끼고 있을 수도 없어서 산에서 나무를 베어다가는 톱과 자귀로 날림 의자를 만드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집에는 의자가 부족해서 만태가 올 때 여러 벌 사 가지고 오기로는 되어 있으나, 우선 아쉬운 판에 현마는 자진적으로 목수가 되어서 못을 개개 빗박으며 제 조작의 의자 제작에 종사했다. 필요가 행동을 요구하고 직업을 준다. 현마는 서투른 자귀질을 하다가는 빙그레 웃으면서 일종의 기쁨을 금하지 못하며 생활의 철학이라고 할까, 전에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한 가지의 이치를 터득하기 시작했다. 그 날림 의자가 대단히 소중한 것이어서 여자들은 다투어 한 개씩 들어 침대로 나르며 객실에 놓으며들 했다. 비교적 호사스럽게 자라온 미란에게는 그런 궁박한 처지는 처음 맛보는 것이나, 그럴 것이 없이 자란 아이들에게도 원족을 나간 하루 동안의 부자유는 도리어 즐겁게 참을 수 있는 격으로, 미란도 생후 처음으로 살림살이의 한몫을 거들어 요리도 하고 나무도 패고 장에도 가고 하는 동안에 격에 없는 생활을 기쁨을 알고 곤란을 곤란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현마에 밑지지 않게 도끼를 들고는 장작을 욱여 댔으며 바구니를 들고 온천으로 장을 보러 갈 때에는 휘파람을 불며 어깨춤을 추며 하는 것이었다. (p.158)

 

그것을 원할 때에는 그 원만이 세상에서 가장 바르고 떳떳하고 귀한 것인줄 알았던 것이 지금 와 보면 그 귀한 원이라는 것이 별것 아닌 자기 한 사람의 욕심이었던 것을 안 것이다. 남의 뜻을 뺏고 희생해서 손에 넣게 되었을 때 그것은 벌써 원이 아니고 죄였다. 그 허물을 덜기 위해서 무릎을 꿇고 합장을 하고 빌고 싶은 마음조차 솟았다. (p.182)

 

씨름이나 하듯이 뻗디디다가 결국 그 자리에 쓰러져서는 엎치락뒤치락 어울린 채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시원스럽게 때리고 눕히는 것이 아니라 끈적끈적 붙어 두 마리의 게같이 넓은 반석 위를 조금씩 밀린다. 반석 아래는 깊은 웅덩이가 져서 길이 넘는 물이 푸르게 고여 있는 속으로 헤엄치는 물고기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반석 높이래야 한 길 장간밖에는 안 되는 것이나, 고기 떼는 그 바위 위에서 겨루고 있는 두 마리의 미끼를 바라고 있는 듯 좀체 헤어지지 않는다. (p.189)

 

- 다시 안 오는 것이라면 가야의 그 몸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 눈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무엇 때문에 자기 손으로 자기 한 목숨을 끊었는가? 슬픔은 그렇게도 큰 것인가? 죽음보다도 큰 것인가? 누누 때문인가? 영훈 때문인가, 나 때문인가? 영훈을 위해선가, 나를 위해선가? 세 사람이면 왜 안 되는 것인가? 왜 한 사람은 없어져야 하는가? 없어지는 것이 왜 가야의 차례여야 하는가? 가야보다도 나라야 옳은 것이 아닌가? 차례가 바꾸어진 것 같다. 내가 가야 옳은 것이다. 가야를 남기고 내가 가야 옳은 것을 가야가 잘못 가 버린 것이다. 내 허물이요, 내 죄요, 내 책임이 아닌가. 가야여, 왜 그리 조급하게, 왜 그리 빨리 버렸는가? 나를 오죽이나 한하면서 갔을까? 가야, 가야, 가야.....

백 가닥 생각이 마음을 할퀴면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말았다. 가야의 눈과 표정이 피뜩피뜩 머릿속에 떠오르자 몸부림이 나면서 사람들의 눈치조차 무시하고 목소리를 놓아 버렸다. 방문이 열리는 바람에 방 안의 수선스런 기색이 물결같이 밀려왔다. 소파에 나와 앉는 것은 영훈이었다. 미란 옆에 주저 앉아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더니 그역 봇살같이 울음이 터졌다. 느낄 대로 느끼고 몸을 떨 대로 떨었다. 영훈이 추스르는 바람에 미란은 한층 감정이 복기우고 울음이 더해졌다. 두 사람에게는 지금 우는 것밖에는 없다는 듯, 마음껏 우는 것이 가야에게 보내는 정성이라는 듯....눈물이 뒤를 이었다.

죽음은 정리를 가져왔다. 슬픔은 그 정리를 위해서 요구되는 희생인 듯하였다.

영훈과 미란 두 사람에게는 한동안은 가야의 죽음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사건이어서 그것을 생각하고 슬퍼함에 마음과 몸을 그대로 바쳐 왔다. 아침에 잠을 깼다 밤에 다시 잠들 때까지 무엇을 하든 간에 그것은 마음을 붙들어서 뜻대로 떨쳐 버릴 수는 없었다. 시간을 쌓는 수밖에는 길이 없었다. 죽음이니 슬픔이니 하는 것이 세상의 큰 괴변이라면 그런 것들보다 한층 윗길의 괴변이 시간이다. 시간이 주름잡히는 동안에는 죽음이니 모든 것이 신통하게도 주름 사이에 잡혀 들어가서 잊혀지고 정리되어 버린다. 날이 거듭되고 주일이 거듭되어 한 달이 지나가는 동안에 두 사람에게는 가야의 죽음에서 받은 상처가 점점 나아 가고 눈물 자취도 뿌덕뿌덕 말라 갔다. 평화롭고, 고요한 추억 속에서 두 사람은 가야를 차차 멀고 그리운 것으로 생각하면서 겨우 자기들 일신 위로 주의를 돌리고 생활을 정리하게 되었던 것이다.]

생각하면 두 사람의 생활의 정리를 위해서 가야는 가 버린 셈이나, 둘만이 남았던 까닭에 생각은 단출해지고 방향은 단순해졌다. 두 사람에게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운 것이 가야였다. 영훈이 미란을 생각할 때에도 그 등 뒤에는 반드시 가야의 자태가 떠오르는 것이었고, 미란이 영훈을 생각할 때에도 역시 등 뒤에 가야의 자태가 한몫 끼이던 것이 가야가 가 버린 까닭에 두 사람은 피차에 한 사람씩만을 생각하면 족하게 된 것이다. 가야의 희생이 이 단순화를 두 사람에게 선물로 보낸 셈이다. 오랫동안 헤매던 미란도 이제는 확적한 마음의 안정을 얻게 되어 두 사람의 애정은 제물에 결정적으로 맺혔지고 굳어졌다. 조촐하고 검소한 두 사람의 사랑이 원하는 것은 창조적인 것의 생산이요, 예술의 완성이었다. 그것을 생각할 때 영훈에게 오는 문제는 구라파행의 계획이었다. <아름다운 것>의 창조를 위한 여행의 일건이었다. 이 계획을 속히 구체적으로 서두르게 한 것은 미란이 뜻을 같이하게 되었음이다. 미란도 구라파에 대한 원념을 은연중 불붙여 오던 중 영훈과 맺어지자 그와 응당 행동을 같이하려고 한 것이다. 영훈은 준비를 위해 시골에 있는 자기의 몫을 정리할 모양으로 여러 차례나 왔다 갔다 하게 될 때 미란도 스스로의 요량이 있었다. (p.199-201)

 

사람의 행복이란 어떤 길에서 찾아지고 어떤 고패에서 작정되는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길이 행복스럽게 보이다가도 저 길이 탐나 보이며, 저 길이 탐나 보이다가도 문득 이 길이 행복스럽게도 보이는 수도 있는 것이며.....아니, 저 길에서는 이 길이 좋은 것 같고, 이 길에 서면 저 길이 행복되어 보이는 것이다. 행복을 구해서 헤매고 갈팡질팡 설레는 것이 온전히 그 까닭인 것이나, 그러나 행복이란 그것만으로는 형상을 잡을 수도 없고 종적을 가릴 수도 없고 불행 속에 있는 사람이 반드시 자기의 불행을 느끼지 못하듯이 행복 속에 사는 사람이 반드시 그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적도 있으며, 되레 게정을 부리다가 일껏 온 행복을 손 안에 들었던 미꾸라지같이 놓쳐 버리는 수도 있다. 불행과 마주 설 때에 행복을 행복으로 느낄 수 있음은 행복과 대립될 때 불행의 맛이 알려지는 것과도 흡사하다.

이편이 불행할 때 저편이 행복되어 보이고, 저편이 불행할 때 이편의 행복이 몸 속에 사모치게 느껴지는 법이다. 피서지에서 문득 세란의 편지를 받은 죽석의 심경이 바로 이 경우에 속하는 것이었다. 세란의 편지 속에 자세히 적혀 있는 최근 푸른 집에 일어났던 변괴에 죽석과 만태는 크게 놀라며 세란들의 불행을 뼛속에 배게 느끼는 한편 오랫동안 잊었던 자기들의 ㅎ애복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하기는 자기들과 세란들의 두 경우에 어느 편이 행복스럽고 어느 편이 불행한 것인지...자기들이 행복스러운 편이고 세란들이 불행스런 편인지는 일률로 말하기 어려운 것이나, 죽석은 적어도 자기들의 경우를 행복스러운 것이라고 단정했던 것이다.

그도 한때는 - 이것은 그만의 마음의 비밀이요, 남편 만태에게도 고백하기 어려운 속뜻인 것이나 - 세란의 신세를 부러워하고 그가 세상에서 아마도 가장 행복스러운 여자라고 느껴도 보았다. 피서의 전반기 만태가 아직 별장에 오기 전에 세란들과 술을 먹고 춤을 추고들 했을 때 밤중이면 세란이 자기의 방에 살며시 숨어들어 색정의 진의를 설명하고 실감을 말하면서 한 사람의 남편과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수절한다는 것이 천치의 증거라느니 하면서 소곤소곤 들려주는 말이 천사의 말도 같고 딴 나라의 유혹도 같으면서, 사실 자기는 바보일까 천치일까 하면서 의혹도 해 보고 번민도 해 보았다.

그러던 것이 지금 와서 우연히도 세란들의 불행으로 말미암아 그 한때의 뜬 생각도 변해지며 세란이 반드시 최대한도로 행복스런 처지는 아니라는 것, 색정의 유희라는 것이 도시 위험하고 걱정 많은 것임을 느끼면서 자기들의 자극 없고 무미한 생활을 다시 한 번 고쳐 반성해 보게 되었다. 그 결과 그 깐에는 자기들의 단조한 생활이 결코 불행한 것이 아니고 행복된 것이라는 것, 행복 속에 있기 때문에 그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을 알기 시작한 것이었다. 편지를 받은 날 부부는 그 어느 날보다도 자별스럽게 머리를 모으고 오래도록 재깔재깔 지껄이면서 세상에서 자기들이 제일 행복스러운 짝이라는 듯 화평한 가정 풍경을 이루었던 것이다. (p.221-222)

 

산 속의 시절은 봄이 늦은 데 비겨 가을 철수는 한결 재촉되어서 야지보다는 빠르다. 뜰의 잡초가 건들하고 훌쭉해 갈 때에는 나뭇잎도 재빠르게 한 잎 두 잎 물들어 간다. 공기가 차지고 개울물 소리가 맑아 가면 산길에는 산사람들이 따 가지고 가다가 떨어뜨린 익은 머루송이가 군데군데 구르게 되고 누런 다래 잎새도 그 속에 섞이게 된다. 화단을 비추는 대낮의 햇빛은 짜링짜링 따가우면서도 아침 저녁으로는 몸이 가다들면서 첫서리 올 날이 오늘일까 내일일까 기다려지며 그 첫서리로 시절을 헤아리려는 듯 즐거운 조바심이 생긴다. 그날 죽석들 부부가 이렇게 일찍 눈들을 뜬 것은 아마도 간밤의 침대 속이 전에 없이 추웠던 모양, 새벽에 이들을 덜덜 갈면서 일어나 객실로 나왔을 때 아니나다를까 창 밖으로 먼산의 첫서리가 희끄무레하게 눈에 띄었다. 곧게 뻗친 마을길도 침침한 속에서 눈에 뜨이도록 하얗게 분가루를 섞고 뜰 앞 나뭇잎도 축 늘어져 보인다. 서리가 왔다는 느낌이 새삼스럽게 몸에 찬물을 끼얹자 부부는 금시 소름이 돋고 한층 추워지면서 수선을 떨고 옆방에서 아직도 잠들어 있는 식모를 들볶아 깨웠다.

세란들이 떠나자 온천에서 한 사람의 여인을 구해 두었던 것이 넓은 별장에서는 식모인 것만이 아니라 친한 놀음 동무도 되었다. 눈을 비비면서 일어나는 식모에게 분부해서 짧게 팬 장작을 날라다가 불을 피우게 한 것이다. 객실에는 한 편 벽에 벽돌로 단정하게 쌓아올린 벽로가 있었다. 일상 때에는 헛간같이 쓰지 않고 묵혀 두고 그 위에 책을 쌓아 놓거나 화병을 올려놓거나 할 뿐이던 그 화덕이 시절의 필요에 응해서 비로소 귀한 것으로서 등장하게 된 것이다. 휑휑한 속에서 장작을 무지고 불을 달아 놓으니 그 해의 첫불을 피운 셈이다. 마른 나무에 불은 쉽게 붙어 활활 피어오르면서 침침한 새벽 방 안을 불그레 비추고 따뜻하게 녹여 주었다. 의자들을 끌어다가 화덕 앞에 놓고 부부가 시절의 첫불을 사고 앉아 손들을 내밀었을 때 그 곳이 집 안에서 가장 행복스런 자리가 되고 두 사람에게서는 즐거운 생활의 의욕이 흔흔히 솟아올랐다. 따뜻한 불은 그대로가 바로 행복감의 상징이요, 생활감의 달가운 도가니다. 세란의 편지를 받은 것은 바로 그런 때였던 까닭에 죽석들의 행복감은 한층 의식 위에 샘솟아 올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편지는 아마도 전날 저녁때 배달되었던 것인지 만태가 아침마다의 습관으로 현관문을 열고 밖에 달린 우편통을 열었을 때 세란의 두터운 편지가 손 안에 집혔다. 묵직한 무게를 기뻐하면서 벽로 앞에서 아내와 함께 봉투를 뜯었을 때 그 내용이었던 것이다. 부부는 의외의 소식에 놀라고 동정하고 하다가 차차 자기들의 생활과의 대립이 의식에 떠오르자 행복감이 넘쳐흐르면서 아침 내내 화덕 앞에서 즐거운 생각과 회화가 계속되었다. 돌연히 알게 된 남의 불행을 말하고 반성하고 하는 것이 그대로가 바로 자기들의 행복을 뒤집어 말하는 셈이 되었다. 남의 불행을 이용해서 자기들의 행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불측하다고 해도 하는 수 없는 노릇, 두 사람은 넘쳐 나오는 행복감을 어쩌는 도리 없었던 것이다(p.223-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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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李孝石, 1907년 4월 5일 - 1942년 5월 25일)

일제강점기의 작가, 언론인, 수필가, 시인.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30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영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25년 『매일신보』 신춘문예에 시 「봄」이 선외 가작(選外佳作)으로 뽑힌 일이 있으나 정식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한 것은 「도시와 유령」(1928)부터이다.이 작품은 도시유랑민의 비참한 생활을 고발한 것으로, 그 뒤 이러한 계열의 작품들로 인하여 유진오(兪鎭午)와 더불어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진영으로부터 동반자작가(同伴者作家)라는 호칭을 듣기도 하였다. 대학을 졸업한 뒤 1931년 이경원(李敬媛)과 혼인하였으나 취직을 못하여 경제적 곤란을 당하던 중 일본인 은사의 주선으로 총독부 경무국 검열계에 취직하였다.그러나 주위의 지탄을 받자 처가가 있는 경성(鏡城)으로 내려가 그곳 경성농업학교 영어교사로 부임하였다. 그의 초기 작품은 경향문학(傾向文學)의 성격이 짙은 「노령근해(露嶺近海)」(1930)·「상륙(上陸)」(1930)·「북국사신(北國私信)」 등으로 대표된다. 생활이 비교적 안정되기 시작한 1932년경부터 그의 작품세계는 초기의 경향문학적 요소를 탈피하고 그의 진면목이라고 할 수 있는 순수문학을 추구하게 된다.그리하여 향토적·이국적·성적 모티프(motif)를 중심으로 한 특이한 작품세계를 시적 문체로 승화시킨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오리온과 능금」(1932)을 기점으로 하여 「돈(豚)」(1933)·「수탉」(1933) 등은 이 같은 그의 문학의 전환을 분명히 나타내주는 작품들이다. 1933년에는 ‘구인회(九人會)’에 가입하여 순수문학의 방향을 더욱 분명히 하였다.다음해에는 평양에 있던 숭실전문학교로 전임하였다. 그의 30대 전반에 해당하는 1936∼1940년 무렵은 작품 활동이 절정에 달하였을 때이다. 해마다 10여 편의 단편과 많은 산문을 발표하였으며, 「화분(花粉)」(1939)·「벽공무한(碧空無限)」(1940) 등 장편도 이때 집필된 것이다.「산」·「들」·「메밀꽃 필 무렵」(1936)·「석류(柘榴)」(1936)·「성찬(聖餐)」(1937)·「개살구」(1937)·「장미 병들다」(1938)·「해바라기」(1938)·「황제」(1939)·「여수(旅愁)」(1939) 같은 그의 대표적 단편들이 거의 이 시기의 소산이다.1940년에 상처(喪妻)를 하고 거기에 유아(乳兒)마저 잃은 뒤 극심한 실의에 빠져 만주 등지를 돌아다니다가 돌아왔다. 이때부터 건강을 해치고, 따라서 작품 활동도 활발하지 못하였다. 1942년 뇌막염으로 병석에 눕게 되고, 20여일 후 36세로 요절하였다.학창시절 체호프(Chekhov, A.)에 탐닉하기도 하고,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이 같은 외국 문학의 영향을 적절히 소화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작품세계를 형성하는 데 성공한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자연이나 인생을 바라보는 문학관에 있어서 싱그(Synge, J. M)나 로렌스(Lawrence, D. H) 등의 영향을 엿볼 수 있으며, 표현이나 구성의 기법면에서는 체호프·맨스필드(Mansfield, K.) 등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그러나 그는 이러한 영향들을 소화하여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효석의 작품세계의 특질은 한마디로 향수의 문학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 지향은 안으로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밖으로는 이국(異國), 특히 유럽에 대한 동경으로 나타난다.전자는 「메밀꽃 필 무렵」에서와 같이 고향의 산천을 무대로 한 향토적 정서 표현으로 나타나는 경우와, 「들」·「분녀」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근원적으로 인간 자체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에덴과 같은 것을 추구하는 원초적 에로티시즘(primitive eroticism)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후자는 서구적인 것에 대한 동경으로서 현대문명과 자유를 갈망하는 지향에서 이루어진 엑조티시즘(exoticism)주 01)인바, 이 같은 동경의 세계를 서정적 문체로 승화시켜 특유의 작품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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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전집 3 (화분) - 이효석 (서울대출판부)

화분 - 이효석 (부크크)

메밀꽃 필 무렵 - 이효석 (문학과지성사)

메밀꽃 필무렵 - 이효석 (창비)

 

메밀꽃 필무렵 - 이효석 (애플북스)

 

메밀꽃 필 무렵 - 이효석 (글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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