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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VII. 아동, 청소년/1. 한국 문학

저 거대한 포옹 속에 - 송병수 (한국헤르만헤세)

by handaikhan 2023. 4. 28.

큰 한국문학 413 (60)

 

목차

 

송병수

쑈리 킴

저 거대한 포옹 속에

오상원

유예

모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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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수 - 저 거대한 포옹 속에 (1972년)

 

산이 저기 있다. 그러기에 나는 거기 갈 뿐이다. 산 너머 또 산, 굽이 뻗은 장장 유곡, 만고의 정적과 신비를 간직한 저 겹겹 산들은 말이 없다. 우리는 지금 거기를 가고 있다.

산은 유구하고 장엄하다. 우리는 지금 거기를 가고 있다. 단순히 비탈을 오르고 골짜기를 건넌 끝에 능선에 노니는 그러한 피크닉 행차가 아니다.

이른바 알피니스트, 우리 4인조 자일 파트너들은 한결같이 산을 존경한다. 또한 지극히 사랑한다. 이러한 외경의 염과 지극한 애정 말고도 우리 록 클라이머들에게는 강인한 의지가 있고 확고한 신념이 있다. 용솟음치는 용기가 있고 드높은 기백과 절묘한 기량이 있다. 한 마디로 우리는 젊다. 젊음,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의 전부이다. 그것은 절대의 신앙과 같다.

그토록 믿는 것이 있기에 우리는 깎아지른 듯한 수직의 암벽에 임할 수가 있다. 

록 클라이밍, 그것을 목표한 산이 저기 있다. 그 화강암의 거봉이 산 너머 저 멀리 가물거린다. 우리는 지금 거기를 가고 있다.

자꾸만 '우리'라고 했는데 어쩐지 이 어휘가 좀 섬뜩하다. 아무튼 이 우리 속에 내가 있다. 우리 알피니스트들에게는 나 하나의 존재는 지극히 무력하다. 독단이나 독선 따위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나는 철저히 응결된 우리 속에 일체가 되어야 한다. 규율과 통제로 강요된 그 지긋지긋한 우리와는 물론 성격이 다르다. 이를테면 군대 사회의 그것과 같은 우리 말이다. 우리 알피니스트, 더욱이 록 클라이밍을 강행할 자일 파트너들은 어떤 규범이나 제약 이전에 이미 혼연일체 된 우리를 스스로 필요로 한다. 우리는 항시 일체된 우리를 구사한다. 나보다 우리를....(p.43-45)

 

내가 철들어서부터이지. 나보다는 그야말로 우리가 더 소중하고 절실하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기 시작한 것이 아마도 대학교 때부터일 거야....아무튼 우리를 구현하기 위해서 할 일이 너무나 많았지. 나는 많은 일을 제안했어. 모두들 공감하고 공명은 하더군. 그런데 말야, 막상 실천 단계에 들어가서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더군. 반대자가 생겼지 뭐야. 수염을 기르면 멋있을 거라 해서 빌헬름 대제라는 별명을 가진 학생회장 후보생이 있었는데, 이 친구가 그냥 반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방해 공작을 하고 나섰지. 이유인즉, 나는 학생회장 따위는 출마할 꿈도 꾸지 않고 있는데 이 친구가 자기의 라이벌 세력을 키워 주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지레 단정을 해 버렸단 말야. 아무리 내가 뜻한 바 그 우리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방해자로부터 타도해야겠다는 투혼이 왕성하게 끓어오르더군. 그래 당초에는 염두에도 없던 학생회장에 일약 출마를 했지. 나는 '나보다 우리를...'이라는 명언을 선거 구호이자 공약으로 내걸었지. 의외로 성과가 좋아서 그러나 미리미리부터 돈과 주먹으로 득표 공작을 해 온 그 녀석을 당할 수가 없었다. 결국은 압도적인 열세로 패배하는 쓴잔을 마시고야 말았지. 그런데 모두들 그 녀석을 선출해 놓고는 곧 후회를 했지. 왜냐하면 그 녀석에게는 그야말로 빌헬름 대제와 같은 전횡과 독선밖에 기대할 게 없었거든, 다음번에 재대결을 한다면 승리는 나에게 보장되어 있는 거나 다름없었지. 그런데 그 녀석에게 설욕을 할 기회를 영영 잃고 말았단 말야. 그 녀석이나 나나 모두 그해에 졸업을 했거든, 하하하..."

나는 실성한 사람처럼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p.49-50)

 

우리 이 4인조 알파인 클럽의 이름은 예티이다. 예티, 그것은 히말라야 산속의 경이이자 영원한 불가사의이기도 한 설인을 뜻한다. 리더인 철규가 택한 이름이다. 이상 난동으로 산에 눈이나 얼음은 없지만 우리는 예티처럼 산에 가고 있다.

우리에게 어째서 산에 가느냐고 묻는다면, 산이 있기 때문에 갈 뿐이라고 우리는 에티와 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예티의 마음으로 그득 차 있다.

창천에 우둑한 저 산이 우리에게 미소를 머금고 있다. 어서어서 오라고 손짓해 부르는 소리가 예티의 마음속에는 들린다.

"야, 제1코스가 저거다. 어서 가자."

철규가 뒤를 돌아보며 다시 한 번 소리친다. 우리에게 리더인 그는 절대의 명령권자이다. 우리는 그에게 절대 복종한다. 그는 절대의 명령권과 함께 절대의 능력을 동시에 구사한다. 그는 예티처럼 산에 능숙하다. 우리는 그를 지극히 신뢰한다. 그는 항상 우리의 선두에 서서 진로를 개척하는 고난과 위험을 무릅쓴다. 우리는 말없이 그의 뒤를 따른다.

절대의 명령과 복종, 어쩐지 이 말도 좀 섬뜩하다. 나는 아직 한 번도 절대의 명령권을 행사해 본 적이 없다. 물론 절대 복종을 해 본 적도 없다. 월남에 파병되었을 때 나는 소대장이었었다. 그 치열한 격전장에서도 지휘자의 명령이 결코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p.51-52)

 

마침내 우리는 거대한 암벽 바로 밑에 이르렀다. 우리는 크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철규는 그 거대한 암벽을 포옹이라도 하듯 큰대 자로 양손을 벌려 바위를 쓰다듬는다. 나도 역시 그를 따라 그 차디찬 화강암의 절벽을 애무해 본다.

해발 600미터가 넘는 거대한 화강암의 봉우리, 흑갈색으로 퇴색한 장엄한 절벽은 천고를 두고두고 지켜 온 침묵과 무감각 그대로이다. 하지만 알피니스트들은 이 장엄한 침묵과 무감각 속에서 온후한 체온을 의식한다 바위의 살아 있는 맥박을 의식하고 고요로운 숨소리를 듣는다.

알피니스트, 내가 이토록 지극히 애무하는 이 거대한 돌덩이는 정녕 살아 있다. 나는 이 생동하는 바위와 정겹고도 절실한 대화를 나눈다.

산, 네가 있기에 내 여기 왔노라고...이 대자연의 생동력과 인간의 애정과 의지가 상통하고 결합할 때, 화강암의 절벽은 결코 외면하지 않고 우리를 따뜻하게 포옹해 준다.

"자아, 간다."

철규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한마디 하고는 마침내 아티피셜 크램핑을 스타트한다.

거대한 암벽은 미소하듯 틈을 열어 준다. 이른바 크랙, 여기에 쇠붙이 하켄을 꽂는다. 해머로 두들겨 크랙에 하켄을 박고 나면 거기에 카라비너라는 쇠붙이 괴를 건다. 이 카라비너에 줄사다리와 자일을 매단다.

이 줄사다리와 자일에 60킬로그램 이상의 체중과 10킬로그램 가량의 장비가 매달린다. 그런 채로 이 아티피셜 크램핑을 되풀이 하면서 한 걸음씩 절벽을 기어오른다.

철규는 노련하다. 그는 잘도 해내고 있다. 우리는 그를 지극히 신뢰한다. 우리는 그가 앵커의 위치를 확보할 때까지 신묘하기 이를 데 없는 그의 동작을 주시하고 있었다.

거대한 암벽에 뻐끔히 벌어진 그 틈새에 꽂은 조그마한 쇠붙이 고리에 70킬로그램이 넘는 중량이 거뜬히 매달리는 불가시의가 잘도 이루어지고 있다.

인력과 밸런스의 상식을 초월한 경이로운 조화, 그것은 초연한 대자연이 영원 불가해한 신비의 베일을 벗고 한 인간의 강인한 투혼과 숭고한 의지를 포옹해 준 자연 대 인간의 정겨운 커뮤니케이션이다. 이 경이로운 하모니야말로 경건하고도 엄숙한 창조의 순간이다. 적어도 알피니스트에게 있어서 이 정적과 몰아의 순간은 보람의 전부요, 신앙의 전부이다. (p.61-63)

 

비교적 안전한 위치에 이른 나는 보조 앵커로 그를 도왔다. 안전한 위치라 해도 위험은 항시 따른다. 불시의 사고를 예측할 수가 없다. 인간 능력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우리가 믿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것은 네 사람을 연결한 한 가닥의 자일뿐이다. 우리의 혼연일체한 호흡과 맥박이 이 자일에 교류한다. 완벽한 팀워크, 오직 정상에의 의지와 신념이 이 자일에 교류되는 한 우리가 행하는 이 장엄한 절벽의 절묘한 트래피즈(곡예)는 성공을 거둔다. (p.65)

 

"긴장한 탓이라니까....월남에 있을 때는 항상 긴장해 있었지. 한 차례의 격전을 치르고 나서 쉬는 동안에도 긴장은 풀리지 않았어. 오히려 불안하고 초조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 글세, 늪 건너에서 우리를 저격하는 베트콩을 잡고 보니 이놈이 열렬한 따이한 팬을 자처하면서 우리 부대를 무상 출입하던 놈이지 뭐야. 우리는 놈을 믿고 먹을 거랑 입을 거랑 후하게 주면서 친절하게 대했지. 그런데 그놈이 바로 베트콩의 지방 두목으로 둔갑하여 우리를 저격할 줄을 누가 알았어? 참으로 분통이 터지더군. 나는 놈을 사로잡았지만 홧김에 M16으로 갈겨 놈을 벌집으로 만들어 버렸어. 그러고 나서부터는 월남 사람을 보기만 해도 무섭더군. 모두가 베트콩 같아서 말야..."

이미 철규는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았다. 현우나 창원이도 흥미를 잃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누가 듣든 말든 할 말은 하고야 마는 버릇이었다.

"나는 쉬는 것보다 격전장에 출동하는 것이 오히려 속 편했지. 적어도 그 치열한 총격전과 육박전 속에서는 고질화된 두려움을 잊을 수가 있었으니까 말야..."

"자아, 가자."

철규는 자일을 챙겨 들고 벌떡 일어난다. 내 말을 조금도 귀담아듣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목표한 정상은 아직도 까마득하다. 마치 오벨리스크처럼 아름답고 현란한 저 암봉, 그것이 저기 있기에 우리는 거기 간다. 가야 한다. 한데 이번의 암벽은 더욱 강파르고 거세다. 4인조의 트래피즈를 전개하기에는 위험하다.

"이번엔 듀엣 파티다." (p.66-67)

 

알피니스트, 우리는 결코 곡예사는 아니다. 우리의 작업은 곧 창조적인 소산으로 직결된다. 우리는 중력과 균형의 상식을 초월하여 제아무리 험난한 곳이라도 우리의 발자국을 남기면서 갈 수 있는 지혜와 권리를 획득한다.

나는 지금 한 가닥 자일에 매달려 있다. 위를 보나 아래를 보나 까마득한 절벽이다. 나는 결코 위험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위험을 과시하는 것도 아니다. 중인환시 리의 갈채, 그 속된 각광을 누리자는 것도 물론 아니다.

삶, 오로지 그것을 수행할 뿐이다. 아무도 보아 주는 사람이 없어서 오히려 좋다. 속된 갈채 따위는 애당초부터 염두에도 없다. 이 순간의 집요한 투혼과 완강한 집념과 혹독한 고난을 나는 애착한다. 적어도 이 순간의 나는 어느 누구보다도 담백하고 솔직하고 선량하다. 나는 이 순간의 나 스스로를 지극히 신뢰하고 지극히 경애하며 또한 찬미한다.

무엇인가 한 가기 일에 이토록 집념하고 전력 투구할 수 있다는 것, 나에게는 그것이 행복의 조건인지도 모른다. 월남 전선에서 소정의 복무를 마치고 귀국하자 대위로 진급한 나는 서해안 경비부대의 일선 중대장으로 부임했다. 그때는 참으로 무료하기만 했다. 치열한 전투가 있을 없었고, 적의 간첩이 언제나 침투해 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 무료한 나날 속에 월남전에서 비롯된 공포증이 고질화돼 가고 있었다. 공연히 불안하고 초조롭고 두려웠다. 

나는 해안 초소를 순찰할 때도 반드시 구명 재킷을 착용하고 완전 무장을 한 호위병을 대동하곤 했다.

병사들은 나를 겁쟁이로 낙인찍고 있었다. 내가 월남전에서 용명을 떨친 그 무훈을 곧이들으려 하지 않았으며 내가 차고 있는 훈장조차 의심했다. 기실 나는 겁쟁이였다. 머리맡에다 장탄을 한 권총을 놓고서야 잠을 잘 수가 있었으며, 외출할 때도 반드시 무장을 하고 철모를 썼다. 

어느 날, 서울의 번화가에서였다. 까만 지프차 한 대가 불시에 내 옆을 스치며 지나갔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홱 돌리며 권총을 뽑았다. 마치 서부 활극과 같은 한 장면을 멋지게 해낸 것이었다. 다행히도 지프차의 유리창만 박살이 났을 뿐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나는 곧 관계 기관에 연행되어 심문을 받았다.

간첩이 나타난 것만 같아서 쏘았노라고 나는 주장했다. 취조관 대신 군의관이 나를 맡았다. 결국은 무슨무슨 쇠약증이라는 진단과 함께 장기간 심신의 휴양과 안정이 필요하다는 처방이 내려졌다. 나는 이를 핑계로 전역 신청을 냈으나, 군 당국은 월남 차전에서 쌓은 나의 전투 경험이 아까워서인지 퇴역은 시키지 않고 무기한 휴가령을 내렸다.

어쨌든 나는 퇴역은 하지 않았지만 서울 집에 돌아와 홀가분하게 군복을 벗어던진 채 지낼 수가 있었다. 그러나 휴양과 안정이라는 군의관의 처방이 나에게는 맞지 않았다. 무료한 나날, 그것은 나를 더욱 괴롭히기만 했다. 나는 그 무슨 쇠약증이라는 병이 치유될 리 없었다. 나는 육교가 없는 횡단로는 절대로 건너지 않았으며, 고층 건물 밑을 지나갈 때는 나도 모르게 걸음을 빨리 하는 버릇이 생겼다. 머리맡에 권총을 놓지는 않았으나 문을 이중 삼중으로 봉쇄해야만 잠들 수가 있었다.

안정과 정양으로도 효험을 못 본 나는 종합 병원을 찾아갔다. 종합 진단 결과 역시 무슨 쇠약증이기는 마찬가지였으나 처방은 달랐다. 무엇이든 전념하고 골몰할 수 있는 일을 해 보라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비로소 산을 생각했다. 산에 심취하던 학생 시절을 잊을 수가 없었다. 산이야말로 나를 부르는 곳이며, 내가 집념하고 몰두할 수 있는 곳이었다. (p.69-71)

 

나는 지금 철규와의 듀엣 트래피즈를 멋지게 해내고 있다. 역시 산은 나에게 효험이 있다. 산은 결코 나를 외면하지 않는다. 나는 오직 한 가닥 자일에 생사를 맡기고 있다. 나에게는 의지가 있고 인내와 용기가 있다. 강인한 체력이 있다. 나는 따사롭고 순수한 애무와 애정을 이 암벽에 베풀고 있다. 이러한 나의 애정이 암심에 미쳐 산은 천고의 베일을 벗고 나를 포용해 준다.

산을 즐기는 나의 이 집념과 이단의 행위를 구태여 어는 누가 이해해 주기를 원하지 않는다. 망각과 몰아, 집요하고도 완강한 추구 속에 일체의 개입을 용납하지 않는다. 천야만야 까마득한 이 화강암의 단애에 나 스스로의 발자국을 남겨 놓은 이 혹독한 고난 속의 고독을 나는 어느 무엇하고도 바꿀 수가 없다. 행복, 그것을 누릴 수 있는 조건과 비결은 따지자면 간단하다. 나는 거대한 암벽의 트래피즈에서 행복을 십분 음미한다. (p.72-73)

 

전쟁이란 때로는 영웅을 낳기도 하지만 정글 속을 자유자재로 누비는 타잔과 같은 초인적인 능력이 반드시 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더구나 월남전에서는 적을 섬멸하는 일보다도 새로운 적을 만들지 않는 일이 더 중요했다. 남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온통 변덕스럽고 콧대 센 월남 국민의 비위를 잘 맞출 줄 알아야 했다. 참으로 화증머리 나는 노릇이었다. 베트콩을 사로잡으면 그것이 월남인이라 해서 마음대로 다루지도 못했다. 때로는 누가 베트콩이고 누가 양민인지 가리기도 어려운 노릇이었다. 아무튼 그놈의 곳은 지긋지긋했다. (p.74)

 

마침내 우리는 모두 정상에 이르렀다. 우리는 모두 알피니스트의 영광을 만끽한다. 산은 참으로 장쾌하다. 오벨리스크처럼 아름답다.

알피니스트, 우리는 결코 불가능이란 말을 쓰지 않으며, 정복이라는 말도 쓰지 않는다. 정상에의 도달, 그것은 결코 어느 한 편의 승리도 아니요, 패배도 아니다. 그것은 망각과 정적 속에 이루어진 인간과 자연의 엄숙한 결합일 뿐이다.

산은 말이 없다. 그러나 산의 포옹은 더없이 따사롭다. 이 산꼭대기에 몇 떨기 에델바이스라도 피어 있다면 우리는 더없이 흡족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겨울이다. 아무래도 겨울바람은 무시할 수가 없다. 더구나 여기는 해발 몇백 미터인가 되는 산정이다. 바람이 쌩쌩 몰아친다. 땀이 배었던 몸뚱이가 으스스 떨려 온다.

"자아, 하강이다. 그리고 내일은 저 산이다."

철규는 자일을 챙기면서 맞은쪽 우뚝 솟은 산봉우리를 가리킨다.

얼마라도 우뚝 치솟은 산들이 선 너머에 그득하다. 우리는 거기에 또 갈 것이다. 저 천고의 침묵 속에 때로는 미소하는 저 거대한 포옹 속으로 우리는 또 갈 것이다.

산 너머 또 산. 이 화강암의 능선이 알프스의 피츠, 파티레 북벽과 같은 그러한 장대함에야 어디 비견할 수가 있으랴만, 그런대로 우리에게는 적격의 등반 코스이다.

어쨌든 우리 알피니스트의 행도는 마냥 험난하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불가능이란 어휘가 없다. 저기 산이 있기에 또 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정의이다. 우리는 아무리 험난한 암벽이라도 당황하거나 그것을 기피하지 않는다. 아무튼 우리는 내일 또 저 산에 갈 것이다. (p.75-77)

 

마침내 나는 자일을 탔다. 물론 두 가닥의 자일을 궁둥이에 걸쳐 미끄러지는 속도를 어느 정도 조절은 할 수가 있지만 쉴 새 없이 훑이는 손바닥이 얼얼하다. 여기서 자일을 놓치면 끝장이다. 내 몸뚱이는 천야만야한 저 낭뜨러지 밑으로 떨어져 박살이 난다. 

하지만 나는 이 아슬아슬한 작업을 잘도 해내고 있다. 손바닥에 힘을 주었다 늦췄다 하면서 한 치 한 치 절묘한 하강 작업을 해내고 있다. 이 얼마나 장쾌한 율동인가. 대자연의 거대한 포옹 속에 불굴의 인간 의지와 생동력이 리드미컬하게 하모니를 연주한다. 산의 소리, 산의 체온, 그것은 참으로 따사롭고 황홀하다.

나는 평생을 두고두고 산을 잊지 못할 것이다. 꿈과 낭만과 희로애락을 나눌 수 있는 저 장엄한 산들이 나에게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ROTC출신 장교인 내가 월남전에 참전할 수 있었던 것도 산악 교관이었던 덕이었다. 하지만 나는 산을 오를 줄 아는 기능을 실전에서 한 번도 구사해 본 적이 없었다.

마침내 우리는 모두 하강 작업을 무사히 끝냈다. 몸뚱이는 나른하지만 마음은 더없이 후련하다.

"자아, 가자. 오늘 밤은 불고기 파티다."

철규가 소리쳤다. 텐트로 돌아가 또 내일의 등반을 위해서 그 장엄하고 절묘한 암벽의 트래피즈를 위해서 체력을 축적해 두어야 한다.

철규가 앞장을 서고, 그 뒤를 현우, 그리고 나, 창원의 순으로 따랐다. 무척 배가 고프다. 텐트에는 불고기를 할 수 있는 쇠고기랑 며칠분의 식량이 비축되어 있다. 어서 먹고 싶다....

어느덧 석양 노을이 저쪽 산등성이에 현란하다. 이제 곧 밤이 될 것이다. 밤이 되면 그 크고 작은 별들이 우리를 위무해 줄 것이다. 

그리고 내일이면 저쪽의 저 거대한 암벽의 침묵 속에 우리는 또 안겨 들 것이다. 그 거대한 포옹 속에서 나는 그 지긋지긋했던 월남 참전의 악몽을 다시는 되살리지 않을 것이다. (p.79-81)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서부 전선 이상 없다 - 레마르크 (홍성광 옮김,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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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수(宋炳洙, 1932년 3월 7일 ~ 2009년 1월 4일)

대한민국의 소설가.

1932년 3월 7일 경기도 개풍에서 출생하였다.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를 다니던 중인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참전하였다. 1955년 군대를 제대한 이후 한양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57년 『문학예술』의 신인 특집 공모를 통해 문단에 데뷔한 이후 1970년대 중반까지 작가로 활동하였으나, 방송계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창작 활동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1977년 문화방송 제작위원을 거쳐 1984년에는 MBC 라디오 보도제작부에 근무하였으며, 1988년에는 울산문화방송 상무이사를 지냈다. 2009년 1월 4일 타계하였다.

1957년 『문학예술』 신인 특집 공모에 양공주와 떠돌이 소년의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미군을 둘러싼 당시 풍속 변화를 충격적으로 제시한 단편 「쑈리 킴」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하였다. 같은 해에 단편 「22번지」를 발표하였으며, 이후 「잠성」(1958), 「환원기」(1959), 「인간신뢰」(1959), 「탈주병」(1963), 「잔해」(1964), 「피해자」(1965) 등을 발표하면서 1950~60년대의 주요한 단편 소설 작가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의 단편들은 휴머니즘 옹호의 관점에서 전쟁의 참상을 비판하거나, 전쟁의 후유증으로 인한 한국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성 상실을 풍속이나 개인들의 가치관 변화를 소재로 삼아 다루는 경향을 주로 드러내었다. 이후에도 단편 「구릉행」(1966), 「돼지아범」(1967), 장편 『빙하시대』(1968), 『대한독립군』(1971) 등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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쑈리 킴 - 송병수 (창비)

송병수 단편집 (지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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