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책의 향기
VII. 아동, 청소년/1. 한국 문학

홍염 - 최서해 (삼성출판사)

by handaikhan 2023. 4. 22.

삼성 주니어 문학 17

 

목차

 

최서해

홍염

탈출기

 

현진건

빈처

B사감과 러브 레터

운수 좋은 날

고향

할머니의 죽음

 

나도향

물레방아

벙어리 삼룡이

 

....................................

최서해 - 홍염 (1927년)

 

겨울은 이 가난한 - 백두산 서북편 서간도 한 귀퉁이에 있는 이 가난한 촌락 삐허(白河)에도 찾아들었다. 겨울이 찾아들면 조그만 강을 앞에 끼고 큰 산을 등진 빼허는 쓸쓸히 눈 속에 묻혀서 차디찬 좁은 하늘을 쳐다보게 된다.

눈보라는 북국의 특색이라 빼허의 겨울에도 그러한 특색이 있다. 이것이 빼허의 생령들을 괴롭게 하는 것이다.

오늘도 눈보라가 친다

북극의 얼음 세계나 거쳐 오는 듯한 차디찬 바람이 우-하고 몰려오는 때면 산봉우리와 엉성한 가지 끝에 쌓였던 눈들이 한꺼번에 휘날려서 이 좁은 산골은 뿌연 눈안개 속에 들게 된다. 어떤 때는 강골 바람에 빙판에 덮였던 눈이 산봉우리로 불리게 된다. 이렇게 교대적으로 산봉우리의 눈이 들로 내리고 빙판의 눈이 산봉우리로 올리달려서 서로 엇바뀌는 때면 그런대로 관계치 않으나, 하늬와 강바람이 한꺼번에 불어서 강으로부터 올리닫는 눈과 봉우리로부터 내리닫는 눈이 서로 부딪치고 어우러지게 되면 눈보라와 바람 소리에 빼허의 좁은 골짜기는 터질 듯한 동요를 받는다.

등진 산과 앞으로 낀 강 사이에 게딱지처럼 끼어 있는 것이 빼허의 촌락이다. 통틀어서 다섯 호밖에 되지 않는 집이나마 밭을 다라서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모두 커다란 나무를 찍어다가 우물 정자로 틀을 짜 지은 집인데 여기 사람들은 이것을 '퀴틀집'이라 한다. 지붕은 대개 조짚이요, 혹은 나뭇껍질로도 이었다. 그 꼴은 마치 우리 내지(간도서는 조선의 내지라 한다.)의 거름집과 같다. 심하게 말하는 이는 도야지굴과 같다고 한다.

이것이 남부여대로 서간도 산골을 찾아들어서 사는 조선 사람의 집들이다. 빼허의 집들은 그러한 좋은 표본이다.

험악한 강산, 세찬 바람과 뿌연 눈보라 속에 게딱지처럼 붙어서 위태하게 침묵을 지키고 있는 이 모든 집에도 언제든지 공도가 - 위대한 공도가 어그러지지 않으면, 언제든지 꼭 한때는 따뜻한 봄볕이 지나리라. 그러나 이렇게 눈발이 날리고 바람이 우짖으면 그 어설궂은 집 속에 의지 없이 들어박힌 넋들은 자기네로도 알 수 없는 공포에 몸을 부르르 떨게 된다.

이렇게 몹시 춥고 두려운 날 아침에 문 서방은 집을 나섰다. 산산이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뿌연 상투에 휘휘 거둬 감고 수건으로 이마를 질끈 동인 위에 까맣게 그을은 대팻밥 모자를 끈 달아 썼다. 부대처럼 툭툭한 토수래 바지저고리는 언제 입은 것인지 뚫어지고 흙투성이 되었는데 바람에 무겁게 흩날린다. (p.10-11)

 

언제나 이놈의 소작인 노릇을 면하여 볼까? 경기도에서도 소작인 생활 10년에 겨죽만 먹다가 그것도 자유롭지 못하여 남부여대로 딸 하나 앞세우고 이 서간도로 찾아들었더니 여기서도 그네를 맞아 주는 것은 지팡살이였다. 이름만 달랐지 역시 소작인이다. 들어오던 해는 풍년이었으나 늦게 들어와서 얼마 심지 못하였고, 그 이듬해에는 흉년으로 말미암아 1년 내 꾸어 먹은 것도 있거니와 소작료도 못 갚아서 인가에게 매까지 맞고 금년으로 미뤘더니 금년에도 흉년이 졌다. 다른 사람들도 빚을 지지 않은 바가 아니로되 유독 문 서방을 조르는 것은 음흉한 인가의 가슴속에 문 서방의 땅 용례 (금년 열일곱) 가 걸린 까닭이었다. 문 서방은 벌써 그 눈치를 알아채었으나 차마 양심이 허락지 않았다. 인가의 욕심만 채우면 밭맥이나 단단히 생겨서 한평생 기탄이 없을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무남독녀로 고이 기른 딸을 되놈에게 주기는 머리에 벼락이 내릴 것 같아서 죽으면 그저 굶어 죽었지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는 그런 것 저런 것 생각할 때마다 도리어 내지가 그리웠다. 쪼들려도 나서 자란 자기 고향에서 쪼들리던 옛날이, 3년 전의 그 옛날이 그리웠다. 그러나 그것도 한 꿈이었다. 그 꿈이 실현되기에는 그네의 경제적 기초가 너무도 어줄이 없었다. 빈 마음만 흐르는 구름에 부쳐서 내지로 보낼 뿐이었다. (p.19-20)

 

의연히 제 걸음을 재촉하는 볕은 서산 위에 뉘엿뉘엿하였다. 앞강으로 올라오는 찬 바람은 스르르 스쳐 가는데 석양에 돌아가는 까마귀 울음은 의지 없는 사람의 넋을 호소하는 듯 처량하였다.

"에구, 용례야! 부모를 못 만나서 네 몸을 망치는구나! 에구, 이놈에 돈이 우리를 죽이는구나!"

문 서방 내외는 그 밤을 인가의 집 울타리 밖에서 새었다. 누구 하나 들여다보지도 않는데 인가의 집에서 내놓은 개들은 두 내외를 잡아먹을 듯이 짖으며 덤벼들었다.

이리하여 옹례는 영영 인가의 손에 들어갔다. 며칠 후에 인가는 지금 문 서방이 있는 빼허에 땅날갈이나 있는 것을 문 서방에게 주어서 그리로 이사시켰다. 문 서방은 별별 욕과 애원을 하였으나 나중에 인가는 자기 집 일꾼들을 불러서 억지로 몰아내었다. 이리하여 문 서방은 차마 생목숨을 끊기 어려워서 원수가 주는 땅을 파먹게 되었다. 그것이 작년 가을이었다. 그 뒤로 인가는 절대로 용례를 밖으로 내보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어버이 되는 문 서방 내외에게도 보이지 않았다.

"용례는 매일 밥도 안 먹고 어머니 아버지만 부르고 운다."

하는 희미한 소식을 인가의 집에 가까이 드나드는 중국인들에게서 드을 때마다 문 서방은 가슴을 치고 그 아내는 피를 토하였다.

이리하여 문 서방의 아내는 늦은 여름부터 아주 병석에 드러누웠다. 그는 병석에서 매일 용례만 부르고 용예만 보여 달라고 졸랐다. 그래서 문 서방은 벌써 세 번이나 인가를 찾아가서 말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이번까지 가면 네 번째다. 이번은 어떻게 성사가 될는지?? (간도 있는 중국인들은 조선 여자를 빼앗아 가든지 좋게 사 가더라도 밖에 내보내지도 않고 그 부모에게까지 흔히 면회를 거절한다. 중국인은 의심이 많아서 그런다고 들었다.) (p.23-24)

 

"치옌바!(담배 잡수시오!)"

인가는 웬일인지 서투른 대로 곧잘 하던 조선말은 하지 않고 알아도 못 듣는 중국 말을 쓰면서 담뱃대를 문 서방 앞에 내밀었다.

"여보 장구재! 우리 로포(아내)가 딸(용례)을 못 봐서 죽겠으니 좀 보여 주, 응..."

문 서방은 담뱃대를 받으면서 또 전처럼 애걸하였다. 인가는 이마를 찡그리면서 볼을 불렀다.

"저게(아내) 마지막 죽어 가는 데 철천지한이나 풀어야 하지 않겠소, 응? 한 번만 보여 주! 어서 그러우! 내가 용례를 만나면 꼬일까봐...그럴 리 있소! 이렇게 된 밧자에...한 번만...낯이나...저 죽어 가는 제 에미 낯이나 한 번 보게 해 주! 네? 제발...."

"안 되우! 보내지 모하겠소. 우리 지비 문바께 로포 나갔소. 재미어부소."

배짱을 부리는 인가의 모양은 마치 전당포 주인과 같은 점이 있었다. 문 서방의 가슴은 죄었다. 아쉽고 안타깝고 슬픔이 어우러지더니 분한 생각이 났다. 부뚜막에 놓은 낫을 들어서 인가의 배를 왁 긁어 놓고 싶었으나 아직도 행여나 하는 바람과 사람에 대한 애착심이 그 분을 제어하였다.

"그러지 말고 제발 보여 주오! 그러면 내 아내를 데리구 올까? 아니, 바람을 쏘여서는....엑 죽어두 원이나 끄고 죽게 내가 데리고 올게 낯만 슬쩍 보여 주오, 네? 흑...끅...제발.."

20년 가까이 손끝에서 자기 힘으로 기른 자기 딸을 억지로 빼앗긴 것도 원통하거든 그나마 자유로 볼 수도 없이 되는 것을 생각하니...더구나 그 우악한 인가에게 가슴과 배를 사정없이 눌리는 연연한 딸의 버둥거리는 그림자가 눈앞에 언뜻하여, 가슴이 꽉 막히고 사지가 부르르 떨리면서 주먹이 쥐어졌다. 그러나 뒤따라 병석의 아내가 떠오를 때 그의 주먹은 풀리고 머리는 숙였다.

"낼리 또 왔소. 이 얘기하오! 오늘리디 울리디 일이디 푸푸디! 많이 있소!"

인가는 문 서방을 어서 가라는 듯이 자기 먼저 캉에서 내려섰다.

"제발 이러지 말구! 으흑 흑....제제....제발 단 한 번만이라 두 낯만...으흑흑 응!"

문 서방은 인가를 따라서 밖으로 나오면서 울었다. 등 뒤에서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 웃음소리는 이때의 문 서방에게는 아무러한 자극도 주지 못하였다.

"자, 이거 적지만.."

마당에 한참이나 서서 무엇을 생각하던 인가는 100조짜리 관체 석 장을 문 서방의 손에 쥐었다. 문 서방은 받지 않으려고 했다. 더러운 놈의 더러운 돈을 받지 않으려 하였다. 그러나 지금 부쳐 먹는 밭도 인가의 빝이다. 잠깐 사이 분과 설움에 어리어서 튕기던 돈은 - 돈 힘은 굵고 헐벗은 문 서방을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못 이기는 것처럼 30조를 받아 넣고 힘없이 나오다가,

'저 속에는 용례가 있으려니!'

생각하면서 바른편에 놓인 조그마한 집을 바라볼 때 자기도 모르게 발길이 도로 돌아섰다. 마치 거기서는 용례가 울면서 자기를 부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인가는 문 서방을 문밖에 내보내고 문을 닫아 잠갔다.

문밖에 나서니 천지가 아득하였다. 발길이 돌아가지 않았다. 사생을 다투는 아내를 생각하면 아니 가진 못할 일이고 이 울타리 속에는 용례가 있거니 생각하면 눈길이 다시금 울타리로 갔다.

그가 바위 모퉁이 빙판에 올 때까지 개들은 쫓아 나와 짖었다. 그는 제 분김에 한 마리 때려잡는다고 얼른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가, 작년 가을에 어떤 조선 사람이 어떤 중국 사람의 개를 때려죽이고 그 사람이 주인에게 총 맞아 죽은 일이 생각나서 들었던 돌멩이를 헛뿌렸다.

돋아 떨어지는 겨울 해는 어느새 강 건너 봉우리 엉성한 가지 끝에 걸렸다. 바람은 좀 자고 날씨는 맑으나 의연히 추워서 수염에는 우물가처럼 얼음 보쿠지가 졌다. (p.26-29)

 

눈옷 입은 산봉우리 나뭇가지 끝에 붉은 석양볕이 스르르 자취를 감추고 먼 동쪽 하늘가에 차디찬 연자줏빛이 싸르르 돌더니 그마저 스러지고, 쌀쌀한 하늘에 찬 별들이 내려다보게 되면서부터 어둑한 황혼 빛이 빼허의 좁은 골에 흘러들어서 게딱지 같은 집속까지 흐르기 시작하였다.

꺼먼 서까래가 드러난 수수깡 천장에는 그은 거미줄이 흐늘흐늘 수없이 드리우고, 빈대 죽인 자리는 수묵으로 댓잎을 그린 듯이 흙벽에 빈틈이 없는데 먼지가 수북한 구들에는 구름깔개를 깔아 놓았다. 가마 저편 바당에는 장작개비가 흩어져 있고 아궁이에서는 벌건 불이 훨훨 붙는다. (p.29-30)

 

처음에는 바람 속에서 판득판득하던 불이 삽시간에 그 산 같은 보릿짚 더미에 붙었다.

"훠쓰!(불이야!)"

하는 고함과 같이 사람의 소리는 요란하였다. 모진 바람에 하늘하늘 일어서는 불길은 어느새 보릿짚 더미를 살라 버리고, 울타리를 살라 버리고 울타리 안에 있는 집에 옮았다.

"푸우 우루루루 쏴아..."

동풍이 몹시 이는 때면 불기둥은 서편으로, 서풍이 몹시 부는 때면 불기둥은 동으로 쓸려서 모진 소리를 치고 검은 연기를 뿜다가도 동서풍이 어울치면 축융의 붉은 혓발은 하늘하늘 염염이 타올라서 차디찬 별 - 억만 년 변함이 없을 듯하던 별까지 녹아 내릴 것같이 검은 연기는 하늘을 덮고, 붉은빛은 깜깜하던 골짜기에 차 흘러서 어둠을 기회로 모여들었던 온갖 요귀를 몰아내는 것 같다. 불을 질러 놓고 뒤 숲 속에 앉아서 내려다보던 그 그림자 - 딸과 아내를 잃은 문 서방은,

"하하하."

시원스럽게 웃고 가슴을 만지면서 한 손으로 꽁무니에 찼던 도끼를 만져 보았다.

일 동리 사람들과 인가의 집 일꾼들은 불붙는 데 모여들었으나 모두 어쩔 줄을 모르고 떠들고 덤비면서 달려가고 달려올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울타리는 물론 울타리 속에 엉큼히 서 있던 큰 집 두 채도 반이나 타서 쓰러졌다.

이런 불 속으로부터 여러 사람이 오고 가는 밭 가운데로 튀어나가는 두 그림자가 있었다. 하나는 커다란 장정이요, 하나는 작은 여자이다. 뒷산 숲에서 이것을 본 문 서방은 그 두 그림자를 향하고 내리뛰었다. 그는 천방지방 내리뛰었다. 독살이 잔뜩 올라서 불빛에 번쩍이는 그의 눈에는 이 두 그림자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으윽 끅."

문 서방이 여러 사람을 헤치고 두 그림자 앞에 가 섰을 때, 앞에 섰던 장정의 그림자는 땅에 거꾸러졌다. 그때는 벌써 문 서방의 손에 쥐었던 도끼가 장정 인가의 머리에 박혔다. 도끼를 놓은 문 서방의 품에는 어린 여자의 그림자가 안겼다. 용례가...

그 바람에 모여 섰던 사람들은 허둥지둥 뛰어 버리고 혹은 뒤로 자빠져서 부르르 떨었다. 용례도 거꾸러지는 것을 안았다.

"용례야! 놀라지 마라! 나다! 아버지다! 용례야!"

문 서방은 딸을 품에 안으니 이때까지 악만 찼던 가슴이 스르르 풀리면서 독살이 올랐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떨어졌다. 이렇게 슬픈 중에도 그의 마음은 기쁘고 시원하였다. 하늘과 땅을 주어도 그 기쁨을 바꿀 것 같지 않았다.

그 기쁨! 그 기쁨은 딸을 안은 기쁨만이 아니었다. 작다고 믿었던 자기의 힘이 철통같은 성벽을 무너뜨리고 자기의 요구를 채울 때 사람은 무한한 기쁨과 충동을 받는다.

불길은 - 그 붉은 불길은 의연히 모든 것을 태워 버릴 것처럼 하늘하늘 올랐다. (p.37-39)

 

<작품 해설>

이 작품은 1927년 1월 <조선문단>에 발표된 최서해의 대표 단편 소설입니다. 일제의 경제적 수탈과 궁핍을 면치 못했던 1920년대 서간도와 가난한 촌락 빼허를 배경으로 조선인의 비참한 삶과 저항을 그리고 있는 소실입니다.

이 작품은 작가의 체험에 근거한 박진감 넘치는 묘사를 통해 당시 간도의 극한 상황을 더욱 효과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중국인 지주 인가에게 딸을 빼앗긴 채 살아가는 문 서방의 모습에는 식민지 시대 만주로 떠난 우리 민족의 극한 상황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조선에서 소작인으로 지낸 농민은 그곳에서도 소작인 신세를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나라를 잃은 민족으로서 이민족의 핍박에 시달리며 절망적인 고통과 울분의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점은 특히, 문 서방의 딸 용례가 인가에게 끌려가는 장면과 문 서방의 아내가 빼앗긴 외동딸을 그리워하다가 미쳐서 피를 토하고 죽는 장면, 그리고 이를 지켜줄 국가가 없기 때문에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견디기 힘든 고통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간도 이주민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결말 부분에서 문 서방은 인가의 집에 불을 지르니다. 타오르는 불을 보면서 '억만 년 변함이 없을 듯하던 별까지 녹아 내릴 것 같은'은 오랜 기간 동안 부와 권세를 누린 인가의 지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가의 지위와 권세가 그의 집이 불타면서 함께 사라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문 서방은 그동안 억눌렸던 감정으로부터 해방되어 통쾌한 웃음을 지으며 인가를 죽이려고 가져온 도끼를 확인합니다. 여기서 문 서방의 방화와 살인은 원수를 갚기 위해 미리 계획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에서 '불'은 다소 폭력적인 이미지로 나타나는데, 이는 억압으로 인한 문 서방의 분노가 한계에 달한 화산 폭발처럼 강렬하게 분출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붉은 불꽃이란 뜻의 작품 제목 '홍염' 역시 결말의 방화 부분과 관련되는 것입니다.

극한적인 궁핍과 이에 대한 저항이라는 작품 구성은 최서해의 여러 소설에서 나타나고 있는 특징입니다. 이러한 구성의 효과를 더욱 상승시키는 것은 붉은색의 이미지입니다. 이 작품에서도 '피'와 '불꽃'의 색깔은 문 서방의 저항과 투쟁을 더욱 자극적이고 원색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이 작품의 결말 부분에 나타난 저항은 궁핍과 억압을 극복하고 기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하층민의 투쟁 의지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소망을 담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딸 용례를 되찾은 후 감격에 겨운 문 서방의 심리를, 작가는 "작다고 믿었던 자기의 힘이 철통같은 성벽을 무너뜨리고 자기의 요구를 채울 때 사람은 무한한 기쁨과 충동을 받는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는 억눌린 자들이 단호하게 대항한다면 그 억업적 운명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는 작가의 생각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 작품의 주제 의식이라 할 수 있는 이러한 작가의 생각은 적극적인 성격의 주인공을 창조하여 독자들에게 이상적인 인물로 제시합니다. (p.41-43)

 

...........................................................................................................................................................................................................................

최서해(崔曙海, 1901년 1월 21일 ~ 1932년 7월 9일)

일제강점기의 시인 겸 소설가이다.

본명은 학송(鶴松), 아호는 서해(曙海)·설봉(雪峰) 또는 풍년(豊年). 함경북도 성진 출생. 소작농의 외아들로 출생한 그는 1910년 아버지가 간도 지방으로 떠나자 어머니의 손에서 유년시절과 소년시절을 보내었다. 유년시절 한문을 배우고 성진보통학교에 3년 정도 재학한 것 외에 이렇다 할 학교교육은 받지 못하였다.
소년시절을 빈궁 속에 지내면서 ≪청춘 靑春≫·≪학지광 學之光≫ 등을 사다가 읽으면서 문학에 눈을 떴고, 그때부터 이광수(李光洙)의 글을 읽으면서 사숙(私淑)하기 시작하였다.
1918년 고향을 떠나 간도로 건너가 방랑과 노동을 하면서 문학 공부를 계속하였다. 1923년 간도를 나와 국경지방인 회령에서 잡역부 일을 하기도 하였다.
1924년 작가로 출세할 결심을 하고 노모와 처자를 남겨둔 채 홀로 상경하여 이광수를 찾았다. 그의 주선으로 양주 봉선사(奉先寺)에서 승려 생활을 하게 되었으나, 두어 달 있다가 다시 상경하여 조선문단사(朝鮮文壇社)에 입사하였다.
1927년현대평론사(現代評論社)의 기자로 일하기도 하였고, 기생들의 잡지인 ≪장한 長恨≫을 편집하기도 하였다.
1929년중외일보(中外日報) 기자, 1931년매일신보(每日申報) 학예부장으로 일하다 사망하였다.

1924년 1월≪동아일보≫ 월요란(月曜欄)에 단편소설 <토혈 吐血>을 발표한 일이 있으나 같은 해 10월≪조선문단≫에 <고국 故國>이 추천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토혈>이 처녀작이라면, <고국>은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부터 대략 장편 1편, 단편 35편 내외를 발표하였다.
그의 소설들은 빈궁을 소재로 하여 가난 속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는데, 대체로 세 가지 경향이 있다.
첫째, 조국에서 살지 못하고 간도로 유랑한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로 <고국>(조선문단, 1924)·<탈출기 脫出記>(조선문단, 1925)·<기아(饑餓)와 살육(殺戮)>(조선문단, 1925)·<돌아가는 날>(1926)·<홍염 紅焰>(조선문단, 1927) 등이 이에 속한다.
둘째, 함경도 지방의 시골을 배경으로 무식하고 가난한 노동자나 잡역부들의 생활을 그린 소설로 <박돌(朴乭)의 죽음>(조선문단, 1925)·<큰물 진 뒤>(개벽, 1925)·<그믐밤>(신민, 1926)·<무서운 인상(印象)>(동광, 1926)·<낙백불우 落魄不遇>(문예시대, 1927)·<인정 人情>(신생, 1929) 등이 여기에 속한다.
셋째, 잡지사 주변을 맴도는 문인들의 빈궁상을 그린 소설로 <팔개월 八個月>(동광, 1926)·<전기 轉機>(신생, 1929)·<전아사 錢迓辭>(동광, 1927) 등이 이 계열에 속한다.
이러한 빈궁상의 제시는 사회의식의 소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의 개인적인 체험에서 나온 것으로 ‘체험의 작품화’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빈궁 속에 있는 사람들의 호소와 절규가 주류를 이루는 것으로 1920년대 경향문학의 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

탈출기 - 최서해 (문학과지성사)

홍염 - 최서해 (사피엔스21)

탈출기 - 최서해 (애플북스)

탈출기 - 최서해 (새움)

고국 - 최서해 (글누림)

최서해 문학 45선 (에세이퍼블리싱)

탈출기 - 최서해 (창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