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암사 -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고전
박씨전 -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조선시대 인조대왕 시절이었다. 한양성 안국방에 이득춘이라는 재상이 있었다. 이득춘은 어려서부터 학업에 힘쓰더니 열 삶이 채 되기 전에 남다른 총명함을 갖추었다. 아울러 문장과 무예, 그리고 재주와 덕성을 갖추니 전국에서 으뜸이었다. 소년 시절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가더니 마침내 재상이라는 높은 벼슬에 이르렀다. 재상이 되어서 위로는 충성을 다하여 임금을 섬시고, 아래로는 백성에게 어진 정치를 베풀어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이상공은 마음씀이 너그럽고 재주가 뛰어난 덕에 귀한 아들을 하나 두었는데, 이름이 시백이었다. 시백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영리하여 한 번 보거나 들은 것은 오래 기억하였다. 열다섯 살에 이미 비범한 재주를 보여 문장으로는 중국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인 이백과 두보를 뛰어넘었다. 또 필법은 중국 진나라 서예가인 왕희지를 본받았고, 지혜는 중국 삼국 시대의 제갈량을 본받았다. 게다가 중국 초나라 패왕 항우에 버금가는 용기를 가졌으니, 상공이 아들 시백을 금과 옥처럼 사랑하였다. 시백의 재주와 사람 됨됨이를 보고 전국의 모든 사람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리하여 시백의 이름은 차츰차츰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상공은 시간이 나면 바둑을 두기도 하고, 퉁소를 불기도 하면서 지냈다. 밝은 달이 떠오르는 날이면 달빛 아래에서 낚시질 하는 취미도 있었다. 특히 퉁소를 부는 솜씨가 뛰어났다. 어느 땐가 한 도사가 찾아가서 퉁소 솜씨를 비교하여 자신의 솜씨를 뽐내기도 하였다. 상공의 퉁소 소리는 그 조화가 무궁하여 화원에 피었던 꽃이 흥을 못 이기어 떨어질 정도였다. 이러한 재주를 지닌 사람은 전국에서 상공 한 명뿐이었다.
상공은 바둑 두기와 퉁소 불기에 적수가 없음을 한탄하면서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상공의 집을 찾아왔다. 그 사람은 행색은 아주 초췌했다. 그뿐만 아니라 차림새도 아주 초라했다. 다 떨어진 옷을 입고 헤어진 갓을 쓰고 있었다. 그는 상공에게 하룻밤 묵고 가기를 부탁했다. 상공은 그 사람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비록 의관은 남루하나 평범한 사람 같지는 않았다. 상공의 높은 식견으로 이 같은 도인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를 한 번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저 사람의 근본이 촌사람 같으면 어찌 당돌히 내 집에 오리오. 분명 예사 사람은 아니로다.'
상공이 이같이 생각하고는 그 사람에게 물었다.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이처럼 누추한 곳에 오시니 황공하옵나이다."
"나는 본래 부산 사람으로 유명한 산과 큰 절을 찾아다니며 미륵을 벗 삼아 세월을 보내옵나이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여러 곳을 돌아다니지 못하고 한갓 금강산에 머물면서 죽기만 바라며 살고 있사옵니다. 성은 박씨인데, 세상 사람은 처사라고 부릅니다."
상공도 자기를 소개했다.
"나의 성은 이씨요, 세상 사람은 득춘이라 부릅니다."
상공은 옷깃을 바로 하고 또 물었다.
"옷차람은 남루하나 귀한 분 같은데 어찌 누추한 곳에 오셨나이까?"
처사가 대답했다.
"나는 산속에 살면서 바둑 두기와 퉁소 불기로 시간을 보내옵니다. 소문에 듣자오니 상공께옵서 나처럼 바둑 두기와 퉁소 불기를 좋아하신다 하더이다. 나 또한 바둑과 퉁소를 조금 알기에 상공의 솜씨를 보고자 천 리를 멀다 하지 않고 왔나이다."
상공은 그 사람의 언행을 보고 또다시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생각했다. 즉시 자리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어찌 인간 세계의 평범한 사람이 선인과 문답을 나누겠습니까?"
상공이 겸손한 자세를 갖추며 다시 말해다.
"평생 적수가 없는 것을 한탄하였는데, 처사를 대하오니 반가움을 이기지 못하겟나이다. 처사의 수준 높은 퉁소에 어찌 화답하오리까? 그러자 가르치심을 본받을까 하여 주인인 제가 먼저 불어 보겠나이다."
드디어 상공이 한 곡조를 부니 청아한 소리가 구름 속에 사무쳤다. 그 노래 가사는 이러했다.
창 앞에 모란화 꽃송이 다 떨어진 화단 위에 가득하도다.
처사가 상공의 노래를 다 듣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객이 주인의 노래만 듣기가 미안하오니 퉁소를 빌려 주시면 객도 우둔한 곡조로 화답할까 하나이다."
상공이 불던 퉁소를 전하니 처사가 받아 한 곡조로 화답하였다.
청천에 날아가는 청학, 백학이 춤을 추고 화원에 꽃이 피어 가득가득하도다.
상공이 다 듣고 무수히 칭친했다.
"나 같은 둔한 재주도 세상 사람이 칭찬 하였나이다. 나의 퉁소 소리는 다만 꽃송이만 떨어지게 할 뿐이지만 선인의 퉁소 소리는 봉황이 춤추고 떨어지는 꽃송이를 다시 피게 하오니 옛날 장자방의 곡조로도 비교할 수 없나이다."
두 사람은 각각 주인과 손님이 되어 바둑을 두기도 하고, 퉁소를 불기도 하며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냈다.
하루는 처사가 상공께 청하였다.
"들리는 소문에, 상공께는 훌륭한 아들이 있다고 하더이다. 한번 보기를 청하나이다."
상공은 처사의 청을 듣고 아들 시백을 불렀다. 시백이 아버지 명을 받고 들어와 처사에게 절하였다. 처사는 인사를 받은 후 시백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영웅호걸의 용모와 출장입상할 기상이 미간에 은은히 나타났다. 처사는 속으로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즉시 상공께 청했다.
"비천한 제가 상공을 찾아온 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상공께 부탁할 일이 있어서 왔나이다."
상공이 대답했다.
"무슨 말씀인지 자세히 듣고자 하나이다."
처사가 다시 말했다.
"비천한 제게 딸 하나가 있사옵니다. 나이가 이미 열여섯 살인데 아직 짝을 정하지 못하였나이다. 사윗감을 구하러 두루 돌아다니다 상공의 댁에 들어와 오늘 아드님을 보니 마음에 딱 들었나이다. 제 여식이 소견머리가 없고 미련하오나 귀댁의 며느릿감이 되기에 모자라지 않을 것이옵니다. 외람되오나 청혼함이 어떠하시나이까?"
상공이 생각했다.
'처사의 행동거지가 저러할진대 그 딸이 평범할 리 없으리다.'
처사가 계속해서 말했다.
"상공은 한 나라의 재상으로 높은 자리에 있으나, 저는 산중의 미천한 촌사람에 불가하옵나이다. 제 여식을 귀한 댁에서 받아 주기가 쉽지 않을 줄 아옵니다. 그러나 버리지 않으시면 한이 없을까 하나이다."
상공은 처사의 말을 듣고 기꺼워하여 혼인을 승낙하였다. 처사도 상공의 허락을 듣고 반기며 혼인하기에 좋은 날을 택하니 혼인날은 석 달 정도 남았다. (p.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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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공 일행이 길을 나서 산 입구에 내려오자 해는 이미 서산에 지고 있었다. 일행은 주막을 찾았다. 주막에 들어가 행장을 풀자 드디어 신부의 얼굴이 드러났다. 신부의 얼굴은 모두 처음 보는 것이었다.
신부의 용모는 몹시 추했다. 얼굴은 심하게 얽었는데 얽은 구멍에 때가 줄줄이 맺혀 가득하였다. 눈은 달팽이 구멍 같고, 코는 깊은 산골짜기의 험한 바위 같고, 이마는 벗어져 흉한데, 키는 팔척장신이었다. 큰 키에 팔은 늘어지고, 한 다리는 저는 모양을 하니, 그 모습을 차마 바로 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상공과 시백이 한 번 보고 정신이 어질하여 다시는 신부의 얼굴을 마주할 마음이 없었다. 부자는 서로 말없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럭저럭 날이 새자 길을 재촉하여 여러 날 만에 한양에 도착하여 집으로 들어갔다. 일가친척들은 신부가 왔다고 반기며 신부를 구경하려고 모두 모였다. 신부는 가마에서 내려 방으로 들어갔다. 얼굴을 가렸던 나삼을 벗어 놓으니 그 모습이 가관이었다. 방 안에 모인 모든 사람이 신부의 얼굴을 보고 중얼거렸다.
"처음 하는 구경거리로다."
그날부터 신부에 대한 비아냥거림이 그치지 않으니, 경사가 난 집이 아니라 도리어 초상이 난 집 같았다. 상하노소가 다 경황없는 가운데 부인이 상공을 원망하며 말했다.
"한양 땅에는 훌륭한 가문에 아리따운 숙녀가 많거늘, 구태여 산중에 들어가 신부를 구해 남의 웃음을 사옵니까?"
상공이 오히려 꾸짖었다.
"부인은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오? 아무리 절세가인을 얻어서 며느리로 삼는다 해도 여자로서의 ㅎ애실이 없으면 가문을 보전하지 못할 것이요. 비록 인물은 볼품없다 해도 덕행이 있으면 한 가문이 흥할 것이외다. 우리 며느리의 얼굴이 비록 추하고 더러울지라도 현모양처의 덕행을 갖추고 있소. 하늘이 돕고 신령이 도와 저렇게 어진 며느리를 얻어 왔거늘 부인은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오. 다시는 그런 식견이 없는 말을 마옵소서."
부인이 대답했다.
"대감의 말씀이 당연하오나 며느리의 얼굴을 보니 부부가 화목하게 지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사옵니다."
상공이 말했다.
"시백 부부가 화목하고 즐겁게 지내는지 아닌지는 우리 가문의 흥망에 달려 있소. 그러니 무엇을 근심하오리까? 부인도 며느리를 구박하지 마옵소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데, 자식이 어찌 즐겁지 않으오리까?"
한편 시백은 박씨의 추한 모습을 미워하며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다. 더구나 비복들까지도 박씨를 미워했다. 박씨는 밤낮으로 자기 방에서 홀로 지내면서 잠만 잘 뿐이었다. 시백은 박씨를 내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아버지의 꾸짖음이 두려워 감히 마음대로 못하였다. 상공이 그 기미를 알고 시백을 불러 꾸짖었다.
"사람의 덕행을 모르고 미색만 탐해는 것은 집안이 망하는 근본이다. 내가 들으니 너희 부부가 화목하게 지내지 못한다 하니 그러하고도 어찌 수신제가를 하겠느냐? 옛날 제갈공명의 아내 황발부인은 비록 인물이 추하였으나 재주와 훌륭한 인품을 겸비하였기에 제갈공명의 도덕이 삼국에서 으뜸이었느니라. 제갈공명이 자신의 이름을 천하에 드러나게 한 것은 다 부인의 덕이라. 부인의 외모만 보고 경솔하게 버렸던들 바람과 구름을 변하게 하는 술법을 누구에게 배워 영웅호걸이 되었을 것이냐? 네 아내가 비록 예쁘지는 않아도 행실이 뛰어나며 재주가 비범할 것이니 부디 가볍게 여기지 마라. 부모가 사랑하는 개와 말이 있으면 자식 또한 따라서 사랑하는 것이 그 부모를 위함이라. 하물며 내가 총애하는 사람을 박대한다면 이는 부모를 박대하는 것이니 어찌 부모를 섬긴다 하겠느냐? 그런고로 인륜이 패망하는 것이니 부디 각별히 조심하여 예법을 어기지 마라."
시백이 아버지의 말을 듣고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며 말했다.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인륜을 저버렸으니 만 번 죽는다 해도 할 말이 없사옵니다. 후에 어찌 다시 아버님의 교훈을 버리겠나이까?"
상공이 또 말했다.
"네가 그렇게 알고 있으니 다행이로다. 오늘부터 너희 부부가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이도록 하여라."
시백은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다. 억지로 부인을 사랑하는 정이 잇는 척하고 박씨가 거처하는 내당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박씨의 얼굴을 보자 아버지의 가르침은 어느덧 달아나고 말았다. 오히려 박씨를 미워하는 마음이 전보다 더하였다. 내당에 들어가면 등잔 뒤에서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밤을 지새다가 새벽닭이 울기가 무섭게 나오기가 예사였다. 밤을 지새우고 새벽이 되면 부모 앞에 가서 천연덕스럽게 문안 인사를 하니 상공이 어찌 이런 줄을 알리오.
상공이 하루는 노복들을 꾸짖었다.
"들으니 너희가 어진 상전을 몰라보고 멸시한다 하니, 만일 또다시 그렇게 한다는 말이 들리면 너희를 죽을 지경에 이르도록 엄히 다스리리라."
노복들은 상공의 훈계를 듣고 황공하여 사죄하였다. (p.26-32)
"속담에 이르기를, '좋은 백옥이 진흙 속에 묻혀 있고, 보배 구슬이 돌 속에 들었으되 안목이 없으면 알아보지 못한다.' 하였느니라. 본래 인품은 헤아리기 어려운지라. 부인은 어찌 남의 본심을 그렇게 가볍게 알고 말씀을 하시느뇨?" (p.36)
하루는 시백이 등불 아래에 앉아 생각했다.
'아내라고 얻은 것이 흉물이어서 한탄만 하고 지냈더니 지금은 월궁항아와 같은 미인이 되었도다. 그러나 말을 붙이지 못하여 골수에 병이 되었으니, 첫째는 나의 지감이 없는 탓이요, 둘째는 내가 어리석고 둔한 탓이요, 셋째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지 않은 탓이로다.'
시백은 다시 정신을 진정하여 피화당에 들어가 박씨에게 사죄했다.
"부인의 침소에 여러 날 들어왔으나 한쪽 방향으로만 향하여 정색을 하고 앉아서 마음을 풀지 아니하시니 이는 다 나의 허물이라.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리오? 부인으로 하여금 삼사 년 동안 빈방에서 고초를 겪게 한 죄는 무엇이라 변명하올 길 없사오니 부인은 마음을 돌이켜 사람을 구하소서. 나 죽기는 서럽지 않으나 양친 슬하에 불효를 끼치어 소년청춘에 비명횡사하오면 불효막심이요, 또한 지하에 간들 무슨 면목으로 조상의 혼령을 뵈오리까? 생각하오면 아주 곤혹스러운지라. 부인은 여러 번 생각하소서."
시백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같이 말하니 박씨 마음이 약간 돌아섰다. 시백의 말을 듣고는 불쌍하고 딱한 마음이 일어났으나 꽃과 같이 예쁜 얼굴을 더욱 씩씩하게 하고 꾸짖었다.
"예부터 조선은 예의지방이라 하였사옵니다. 사람이 오륜을 모르면 어찌 예의를 알겠습니까? 그대는 아내가 박색이라 하여 삼사 년 동안 천대하였으나 부부유별은 어디 있사옵니까? 옛말에 '조강지처는 버리지 않는다' 하였는데, 그대는 다만 미색만 생각하고 부부간의 도리는 생각하지 않았으니 어찌 덕을 알겠사옵니까/처자의 마음이 깊고 얕음을 모르고 입신양명하여 어찌 보국안민할 재주가 있으리오. 지식이 저다지 없을진대 효와 충을 어찌 알며 백성을 편안하게 할 도리는 어찌 알리오. 이후로는 효도를 다하여 수신제가를 명심하소서. 첩이 비록 아녀자일지라도 낭군과 같은 남자는 부러워하지 않사옵니다."
박씨가 하는 말이 구구절절 이치에 맞았다. 그 태도는 또한 엄정하였다. 시백은 자신이 한 일을 생각하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부끄러운 마음을 어떻게 하지 못하고 누누이 사죄만 할 뿐이었다.
박씨가 시백을 한참 동안 응시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첩이 본래의 모습을 감춘 채 추하고 더럽게 하고 있었던 것은 군자로 하여금 미혹에 들지 못하게 하여 한마음으로 공부하게 함이요, 둔갑법을 행하여 허물을 벗은 후에도 첩이 말을 하지 않은 것은 군자로 하여금 과오를 스스로 깨닫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한평생 마음을 풀지 않고자 하였으나 여자의 연약한 마음으로 장부를 속이지 못하여 옛 일을 풀어헤쳐 버립니다. 부디 이후로는 명심하옵소서."
시백이 듣고 크게 기뻐하여 말했다.
"나는 인간 세계의 무식한 사람이요. 부인은 천상 세계의 선녀입니다. 부인은 넓은 아량을 가지고 있고, 보통 사람과는 달리 마음이 깨끗하고 밝으며 말이 순하고 씩씩합니다. 반면 나와 같이 누추한 인물은 지식이 얕고 짧아 착한 사람을 몰라봅니다. 나를 어찌 선인에 비하리오? 그런 고로 부부가 화목하지 못하여 인륜을 폐할 지경에 이르렀사오니 지난 일을 다시 괘념치 마옵소서. 옛 성인이 이르기를, '지식이 있는 사람은 천 가지를 걱정하나 반드시 한 가지는 잃는다.'고 하였사오니 마음에 맺힌 것을 풀어 버리옵소서."
박씨가 자리를 고쳐 앉으며 대답했다.
"지난 일은 다시 말씀 마시고 안심하소서."
렇듯 부부가 서로 얘기를 나누는 동안에 밤은 깊어갔다. 시백이 박씨의 옥 같은 손을 이끌고 비단 이불로 들어가 삼사 년 그리워하던 회포를 풀고 운우지락을 이루니, 그 정이 산과 바다와 같이 크고 깊었다.
박씨가 허물을 벗은 후로부터 모부인과 노복 등은 전에 박씨를 박대한 것을 뉘우쳐 자책하였다. 박씨의 신명함에 탄복하기도 하고, 상공의 큰 지략을 칭송하기도 하였다. (p.66-68)
흥진비래는 인간사에 흔히 있는 일이라. (p.78)
<참고>
고진감래(苦盡甘來)요, 흥진비래(興盡悲來)라.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오고, 흥이 다하면 곧 슬픔이 온다.
"짐이 평생에 경업을 알고 있기를, 팔 년 풍진에 역발산 하던 초패왕과 삼국 시절에 오관참장 하던 관운장과 당양 장판에서 단신으로 조조의 백만 군중에 횡행하던 조자룡과 같은 장수로 알았더니, 그 위에 더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어찌 조선을 엿볼 마음을 두겠는가?"
"천기를 보니 조선에 액운이 있사옵니다만, 백만 대군을 일으켜 보낸다고 하더라도 그 신인을 잡기 전에는 조선을 이기기가 극히 어렵사옵니다. 하여 신첩이 한 계교를 생각하였사옵니다. 자객을 구하여 조선에 보내 그 신인을 없앤 후에 조선을 치는 것이 마땅하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을 보낼꼬?"
"조선 사람은 재물을 탐내고 미색을 좋아하니 계집을 구하여 보내는 것이 마땅하옵니다. 인물이 뛰어나되, 문필은 왕희지 같고, 말솜씨는 소진, 장의 같고, 날래기는 조자룡 같고, 머리는 제갈공명 같은, 즉 지혜와 용기를 겸비한 계집을 보내면 성사시킬 수 있을 것이옵니다."
왕이 듣고 옳게 여겼다. 즉시 여러 신하와 의논하여 자객을 두루 구하였다. 이때 육궁의 시녀 가운데 기홍대라 하는 계집이 있었다. 인물은 양귀비 같고 언변은 손진, 장의를 비웃을 정도이며 검술은 당할자가 없고, 용맹하기는 용과 호랑이 같았다. 왕비가 왕에게 아뢰었다.
"기홍대는 검술과 용모에 있어 보통 사람을 뛰어넘고, 동시에 도량과 지용을 겸하여 만 사람이 당해 내지 못할 용맹이 있사오니 기홍대를 보내옵소서."
왕이 크게 기뻐하며 기홍대를 불러 말했다.
"너의 지혜와 용맹은 이미 알고 있거니와 너는 조선에 나가 성공할 수 있겠느냐?"
"소녀가 비록 재주가 없사오나 국은이 망극하오니 어찌 물불이라도 피하오리까?"
"조선에 나아가 신인의 머리를 베어 오면 이름은 오랜 세월 전하게 하리라."
"소녀가 비록 재주가 없사오나 충성을 다하여 조선에 나가 신인의 머리를 베어 폐하의 근심을 덜겠사옵니다." (p.8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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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업전 (주니어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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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비록 신인과 명장이 있사오나 간신이 있어서 신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오히려 명장을 쓸 줄 모르오니 폐하가 군사를 일으켜 조선을 치시옵소서. 다만 남쪽 육로로 나아가 치지 말고, 동쪽으로 백두산을 넘어 함경도를 거쳐 안향성 동문으로 쫓아 들어가면 조선에서는 미처 방비할 수 없어서 이기기 쉽사옵니다."
왕이 듣고 크게 기뻐하며 곧 한유와 용울대를 불러 명령을 내렸다.
"군사 십만 명을 뽑아서 왕비의 지휘대로 행군하라. 동으로 백두산을 넘어 바로 조선 북로로 내려가 한양성 동문으로 쫓아 들어가 여차여차하라."
왕비가 또 명령하였다.
"그대는 행군하여 조선에 들어가거든 바로 날랜 군사를 뽑아 의주와 한양 사이의 왕래하는 길에 매복시켜 임경업이 도성과 서로 소식을 통하지 못하게 하라. 그리고 한양에 들어가거든 우의정 집 후원을 범하지 마라. 그 후원에 피화당이 있고 후원 초당 전후 좌우에 신기한 나무가 무성하게 있느니라. 만일 그 집 후원을 범하면 성공은 고사하고 목숨을 보전하지 못하여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지니 각별히 명심하라."
두 장수가 명령을 듣고 십만 대병을 거느려 동으로 행군하여 바로 한양으로 향했다. 백두산을 넘어 함경도 북로로 내려오면서 봉화를 끊고 물밀 듯 들어왔다. 그러나 한양성 수천 리에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이때 충렬 부인 박씨가 피화당에 있다가 문득 천기를 보고 크게 놀라 급히 시백을 청하여 말했다.
"북방 오랑캐가 침범하여 조선 땅에 들어왔습니다. 급히 의주부윤 임경업을 불러 군사를 합하여 동으로 오는 도적을 막게 하소서."
시백이 놀라 말했다.
"내 소견에는 우리나라에 만일 도적이 들어온다고 하면 북쪽 오랑캐가 들어와 의주를 공략할 것이로다. 그런데 의주부윤을 불러내 북쪽을 비워 두었다가 오랑캐가 그곳을 탈취하면 가장 위태로울 것이라. 부인이 무슨 이유로 이를 염려하지 아니하고 동쪽을 막으라 하느뇨?"
"오랑캐는 본래 간사한 꾀가 많습니다. 북쪽에는 임장군이 지키고 있어 의주는 감히 범하지 못하옵니다. 백두산을 넘어 동으로 쫓아 동대문을 깨치고 들어와 한양을 습격할 것이 분명하옵니다. 이 어찌 분하지 않으리오? 첩의 말을 헛되어 듣지 마시고 급히 전하께 아뢰어 방비하도록 하옵소서."
시백이 박씨의 말을 듣고 크게 깨달아 급히 대궐로 들어가 세세히 아뢰었다. 임금께서 들으시고 크게 놀라시며 모든 신하를 불러 모아 의논하였다. 이때 좌의정 원두표가 아뢰었다.
"북쪽 오랑캐는 꾀가 많사오니 의주부윤 임경업에게 명하여 동으로 오는 도적을 막게 함이 옳을까 하나이다."
원두표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아뢰었다.
"좌의정이 아뢰는 말씀은 극히 옳지 않습니다. 북쪽 오랑캐가 경업에게 패배를 당하였사오니 무슨 힘으로 우리나라를 엿보겠나이까? 군사를 일으킨다 하여도 반드시 의주로 들어올 것이옵니다. 만일 의주를 버리고 경업을 불러 동쪽으로 지키게 하면 도적이 의주를 습격할 것이니 아주 위태하옵니다. 국가의 흥망이 걸려 있는 문제인데 어찌 요망한 계집의 말을 들어 망령되이 동쪽을 막으라고 하시옵니까? 이는 나라를 해하고자 하는 말이니 살피시옵소서."
임금께서 말씀하셨다.
"박씨의 신명이 보통 사람과는 다른지라. 짐이 경험한 일이 있으니 어찌 요망하다 하리오? 그 말을 좇아 동쪽을 막는 것이 옳도다."
그 사람이 다시 아뢰었다.
"지금은 시절이 태평하여 백성은 편안하게 기내며 격앙가를 부릅니다. 이 같은 태평시절에 하찮은 계집이 요망한 말을 발설하여 우리나라를 소란하게 하면 민심을 혼란하게 하는 것이옵니다. 전하께서는 게집의 요망한 말씀을 들으시고 국정을 살피지 아니하오시니 신은 오히려 그 계집을 잡아 먼저 국법으로 다스려 민심을 진정하게 하시길 원하옵니다."
임금의 말을 막으며 이같이 말하는 사람은 바로 영의정 김자점이었다. 그는 소인을 가까이하고 군자를 멀리하면서 국정을 제 마음대로 하는 인물이었다. 이런 소인배가 나라를 망치려 하였으나 조정의 신하들은 그 권세를 두려워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백도 그의 말에 항거하지 못하고 분한 마음만 들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박씨에게 조정에서 있었던 사연을 낱낱이 이야기하였다. 박씨가 듣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였다.
"슬프다. 나라의 운세가 불행하여 이 같은 소인을 인재라고 하여 조정에 두었다가 나라를 망하게 하니 어찌 슬프지 않으리오? 머지않아 도적이 한양을 침법 할 것이니 신하가 되어 나라가 망하는 것을 차마 어찌 보리오? 대감께서는 비간의 충성을 본받아서 국가 사직을 지키사옵소서."
시백이 듣고는 울분이 끓어올랐으나 어찌하지 못하고 하늘만 우러러 탄식할 뿐이었다. (p.9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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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 한명기 (푸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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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을 씨도 없이 없애 버리고자 하였다. 그러나 내가 인명을 살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기에 용서하노라. 네 말대로 왕비는 모셔가지 말 것이며, 너희들이 부득이 세자와 대군을 모셔 간다 하니 그도 하늘의 뜻이니 거역하지 못하거니와 부디 조심해서 모셔 가도록 하라. 나는 방에 앉아서도 모든 것을 다 아는 재주가 있다. 만일 내가 말한 대로 하지 않으면 신장과 신병을 모아 너희를 다 죽이고 나도 네 나라에 들어가 왕을 사로잡아 분을 씻고 죄 없는 백성을 하나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내 말을 거역하지 말고 명심할지어다!"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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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 - 이정근 (책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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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께서는 충렬 부인 박씨에게 다시 정렬부인의 칭호를 하사했다. 아울러 일품의 녹으로 만금의 상을 내리시고 또 조서를 내리셨다. 박씨는 임금이 계신 북쪽을 향해 절을 하고 조서를 받아 읽었다.
짐이 밝지 못하여 정렬의 선견지명과 나라를 위하는 말을 듣지 아니한 탓으로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으니, 정렬에게 조서를 내리는 것이 오히려 부끄럽도다. 정렬의 덕행과 충효는 이미 아는 바이다. 규중에 있으면서도 나라의 위엄을 빛내고 왕비의 위태함을 구하였으니 다시 정렬의 충성을 일컬을 바가 없도다. 오직 나라와 더불어 영화와 고락을 같이 하기를 그윽이 바라노라.
정렬 부인 박씨는 조서를 다 읽고 임금의 은혜에 깊이 감사드렸다. 이후로 정렬 부인 박씨는 나라에 무슨 일이 있으면 충성을 다하고, 비복들은 의리로 다스리고, 친척간에 화목하게 지내 그 덕행이 온 나라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고, 이름이 후세에까지 전하였다.
시백은 태평시절의 재상이 되어 부귀영화가 극진하니 온 조성 신하와 백성이 추앙하였다. 시백의 부부는 많은 자손을 낳아 집안에는 행복이 가득했다. 흥진비래는 예부터 늘 있는 일이라. 행복하게 지내던 박시와 시백이 나란히 병이 들었다. 온갖 약을 써도 효과가 없었다. 시백 부부는 자손을 불러 놓고 후사를 당부하였다.
"옛 성인이 말씀하시되, '세상에 살아 있는 것은 붙어 있는 것이요, 죽는 것은 돌아감이라.' 하셨으니, 우리 부부의 복은 무한하다 할 것이로다. 인생의 삶과 죽음은 응당 있는 일이니 우리가 돌아간 후에도 너희는 지나치게 슬퍼하지 마라."
자손에게 이같이 당부하고 부부가 잇달아 세상을 떠났다. 집안사람들은 발상을 하고 예를 극진히 하여 선산에 안장하였다. 임금께서 시백 부부의 죽은 소식을 들으시고 슬퍼하시며 부의로 비단과 금은을 하사하여 장사를 치르는 데 보태게 하셨다. 이후로 집안에 자손이 그치지 아니하고 자손의 관운도 대대로 그치지 아니하여 가문이 계속해서 크게 일어났다. (p.12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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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 김훈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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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전 -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권 1책. 국문필사본. 활자본으로 한성서관판 ‘박씨전’, 대창서원판 ‘박씨부인전(朴氏夫人傳)’ 등이 있다. 필사본인 ‘명월부인전(明月夫人傳)’은 이 작품의 이명(異名)이다.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역사소설·군담소설·전쟁소설의 범주에 넣지만,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박씨가 여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여걸소설(女傑小說)의 범주에 넣기도 한다.
<줄거리>
명나라 숭정연간 세종조(혹은 세조조)에 한양에 살고 있는 이득춘이라는 사람이 늦게 시백이라는 아들을 얻었는데, 사람됨이 총명하고 비범하였다.
어느 날, 박처사라는 사람이 찾아와 이득춘과 더불어 신기(神技)를 겨루며 놀다가 시백을 청하여 보고는 그 자리에서 자기 딸과의 혼인을 청한다. 이득춘은 박처사의 신기가 범상하지 않음을 알고 쾌히 응낙한다. 이득춘은 정해진 날짜에 시백을 데리고 금강산으로 가서 박처사의 딸 박씨와 혼인시킨다.
시백은 첫날밤에 박씨가 천하에 박색이요 추물임을 알고 실망하여 그날 이후로는 박씨를 돌보지 않는다. 가족들도 박씨의 얼굴을 보고는 모두 비웃고 욕을 한다. 이에 박씨는 시아버지에게 후원에다 피화당(避禍堂)을 지어 달라고 청하여 그곳에 홀로 거처한다.
박씨는 이득춘이 급히 입어야 할 조복을 하룻밤 사이에 짓는 재주와, 비루 먹은 말을 싸게 사서 잘 길러 중국 사신에게 비싼 값에 팔아 재산을 늘리는 영특함을 보인다. 또, 박씨는 시백이 과거를 보러 갈 때 신기한 연적을 주어 그로 하여금 장원급제하도록 한다.
시집온 지 삼년이 된 어느 날, 박씨는 시아버지에게 친정에 다녀올 것을 청하여 구름을 타고서 사흘 만에 다녀온다. 이때 박처사는 딸의 액운이 다하였기에 이공의 집에 가서 도술로써 딸의 허물을 벗겨주니, 박씨는 일순간에 절세미인으로 변한다. 이에 시백을 비롯한 모든 가족들이 박씨를 사랑하게 된다.
한편 시백은 평안감사를 거쳐 병조판서에 이른 뒤, 임경업(林慶業)과 함께 남경에 사신으로 간다. 그곳에서 시백과 임경업은 가달의 난을 당한 명나라를 구한다. 그들은 귀국하여 시백은 우승상에, 임경업은 부원수에 봉해진다.
이 때, 호왕(胡王)이 조선을 침공하기 앞서 임경업과 시백을 죽이려고 기룡대라는 여자를 첩자로 보내 시백에게 접근하게 한다. 박씨는 이것을 알고 기룡대의 정체를 밝히고 혼을 내어 쫓아버린다. 두 장군의 암살에 실패한 호왕은 용골대 형제에게 10만 대군을 주어 조선을 치게 한다.
천기를 보고 이를 안 박씨는 시백을 통하여 왕에게 호병이 침공하였으니 방비를 하도록 청하나, 간신 김자점(金自點)의 반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마침내 호병의 침공으로 사직이 위태로워지자 왕은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지만 결국 항복하겠다는 글을 보낸다. 많은 사람이 잡혀 죽었으나, 오직 박씨의 피화당에 모인 부녀자들만은 무사하였다.
이를 안 적장 용홀대(龍忽大)가 피화당에 침입하자 박씨는 그를 죽이고, 복수하러 온 그의 동생 용골대도 크게 혼을 내준다. 용골대는 인질들을 데리고 퇴군하다가 의주에서 임경업에게 또 한번 대패한다. 왕은 박씨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서 박씨를 충렬부인에 봉한다.
<작품의 의의와 평가>
「박씨전」의 이본들은 그 시대배경과 사건진행으로 보아 세 유형으로 분류된다. 이 작품을 추녀 박씨가 탈을 벗는 이야기로 된 전반부와, 병자호란을 당하여 영웅이 활약하는 이야기로 된 후반부로 나누어 이본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① 전반부와 후반부가 모두 선조·인조대의 사건으로 구성된 이본군이 그 하나이다. ② 전반부는 세종·세조대의 사건, 후반부는 인조대의 사건으로 구성된 이본군이 다른 하나이며, ③ 전반부에 해당되는 이야기만이 세종·세조대를 배경으로 전개되어 있는 유형이 나머지 하나의 이본군을 형성한다.
이러한 이본의 성격을 토대로 하여, 「박씨전」은 「이시백전」과 「박부인전」이 부자연스럽게 결합된 작품이라는 인상을 준다는 설(說)이 있다. 혹은 전후반이 같은 작가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없음은 물론, 후반부만도 한 사람의 솜씨라고 할 수 없는 전승적 적층성을 지닌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박씨전」의 대부분의 이본은 전후반이 연결되어 전해지고 있으므로, 그 전후반 전체를 통한 총체적 인식이 이루어져야 한다.
「박씨전」의 시대적 배경이 되고 있는 병자호란은 조선 역사상 유례 없는 치욕적 사건으로, 정치적·경제적으로 큰 손해를 끼쳤으며 민중들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었다. 야인(野人)이라고 경멸하던 만주족에게 패배한 만큼 민중들의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 소설은 현실적인 패배와 고통을 상상 속에서 복수하고자 하는 민중들의 심리적 욕구를 표현한 작품이다. 또한 「박씨전」에서는 남성보다도 여성인 박씨를 주인공으로 하고, 박씨가 초인간적인 능력을 가진 비범한 인물로 설정되었다는 것이 특이하다. 남성인 시백은 평범한 인물로 표현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여성이 남성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가부장제하의 삼종지의(三從之義)에 억압되어 살아야 했던 봉건적인 가족제도에서 정신적으로 해방되고자 하는 여성들의 욕구가 반영된 것이다. 또한 여성도 남성 못지 않게 우수한 능력을 갖추어 국난을 타개할 수 있다는 의식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은 ‘변신(變身)’의 모티프를 가지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변신모티프는 작품의 구성상 사건 전개의 전환점의 구실을 하고 있다. 박씨의 변신은 비범한 부덕(婦德)과 부공(婦功)은 물론, 신묘한 도술로써 여성의 우수한 능력을 보이는 계기가 된다.
또한, 변신모티프는 박씨가 전생에 지은 죄로 인하여 추한 탈을 쓰고 태어났다고 하는 징벌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징벌이 구제됨으로써 박씨는 남편을 비롯한 시집식구들과 다른 사대부 부인들의 사회에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박씨의 변신은 입사식(入社式)의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박씨가 후원의 피화당에서 삼년 동안 홀로 기거하는 기간은 시집을 위시(爲始)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 거쳐야 할 관문에 해당한다. 이 관문을 통과함으로써 박씨는 명실상부한 아내와 며느리로서 받아들여지게 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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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전 (이상구 옮김, 문학동네)
박씨전 (장재화 글, 휴머니스트)
박씨전 (아단문고 고전총서)
박씨전 (푸른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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