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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VII. 아동, 청소년/1. 한국 문학

숲속의 방 - 강석경 (한국헤르만헤세)

by handaikhan 2023. 5. 7.

큰 한국문학 413 (83)

 

강석경 - 숲 속의 방 (1985년)

 

어제도 동생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틀 연이어 무단 외박을 한 셈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럴 경우엔 친구를 시켜 전화를 걸고, 어머니는 친구 집 전화번호를 묻는 것으로 허락을 표시했는데 그 아이는 휴학을 공표한 뒤로는 제멋대로 외박할 뿐 아니라 아버지에게 발길질을 당해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등 계속 우리를 놀라게 했다.

소양의 입에서 휴학했노라는 말이 처음 나왔을 때 정말이지 우리는 충격을 받았다. 한 달 전 일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소양이가 이 학기 등록금을 내러 간 날이었다. 그날 아침부터 등허리가 후끈거릴 정도로 무더웠는데 소양은 밤 열한 시 가까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아래층에선 모두 잠들었는지 초인종이 세 번 울려도 기척이 없었다. 그 시각엔 대개 늦게까지 공부하는 정우가 문을 열어 주지만 막내도 잠을 자는 것 같았다.

나는 혀를 차며 아래층으로 내려가 문 열기도 전에 소양에게 짜증을 냈다. 내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은 상태였다. 퇴근 후 약혼자와 약간의 말다툼을 한 데다가 집에 오니 할머니와 어머니가 콩장 반찬 하나를 놓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할머니는 콩장뿐 아니라 이 집 반찬이 대체적으로 달다, 늙은 사람이 이렇게 음식을 달게 먹어서는 당뇨병에 걸리기 십상이라고 자신의 건강을 생각해 주지 않는다는 요지로 투정을 부렸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할머니가 건강에 대해 신경과민이다, 그런 잔신경만 쓰지 않으면 백 살까지도 너끈히 사실 거라고 맞받았다.

할 말이 없어진 할머니는 그 자리에 없는 소양을 들먹이며 계집아이가 연락도 없이 늘 늦게 싸다닌다, 제대로 된 집안에선 그럴 수 없다며 어머니를 측면 공격했다.

이건 할머니의 어거지였지만 아무튼 소양이 때문에 말다툼이 더 심해졌고 이런 유치한 정경을 자주 보아 왔으면서도 나는 체하며 잠을 쉬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p.9-10)

 

"휴학했대요, 소양이?"

내가 대뜸 묻자 너한테 얘기하디? 어머니는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어제 소양이가 코에 반창고를 붙이고 들어온 거며 소양에게 들은 말을 했다. 그리고 등록금을 잃어버렸대요? 하고 역시 가장 궁금한 것을 물었다. 어머니는 혀를 찼다.

"등록금 잃어버려서 휴학한 게 아니냐, 물으니까 그건 아니란다."

"그럼 왜 휴학했대요?"

등록금을 잃어버린 것이 확실해졌다.

"나도 이해 못 하겠어."

어머니는 전제한 다음, 밑도 끝도 없이 "샐비어 때문이래." 했다.

샐비어 때문이라니, 무슨 말이냐고 설명을 재촉하자 소양의 말을 그대로 옮기겠노라 했다.

소양이 휴학할 생각을 한 것은 갑작스러운, 즉 충동적인 것인듯했다. 소양은 분명 등록금을 낼 생각으로 학교에 갔다. 덧없이 한 학기를 보냈으며 지겨운 학기가 또 시작됐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것이 유별난 감정을 불러일으킨 정도는 아니었다.

등록금을 내러 많으 아이들이 몰려가고 있었다. 소양은 떠밀리듯 그들 속에 섞였다. 교문에서 학관을 걸어 들어가자 샐비어 화단이 눈에 들어왔다. 

붉은빛이 쏟아져 들어왔다고 표현할 만큼 강렬했나 보다. 샐비어는 늦여름의 태양 아래 선혈을 뚝뚝 흘리고 있었고 소양은 강물처럼 밀려오는 붉은 꽃 무리에 익사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휴학했단다. 그게 이유야."

나는 입을 벌린 채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샐비어에 얽힌 어떤 사건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늦여름 태양 아래 붉게 타오르는 샐비어 화단 한 장면이 전부라니, 또 선혈을 뚝뚝 흘리고, 따위의 표현은 내 감정에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p.14-16)

 

어머니는 도톰한 아랫입술을 깨물곤 열무 줄기를 똑똑 분질렀다. 전에 없었던 심약한 모습이어선지 눈 밑의 잔주름도 깊어 보였다. 나는 오랜만에 어머니에게 친근감을 느꼈다. 내가 떠나기 전까지라도 어머니의 힘이 되고 싶었고 이 집안의 맏딸로서 의무랄까, 사명감 같은 것을 가지고 싶었다. 소양이 문제는 내게 주어진 마지막 과제처럼 여겨졌다.

그날 밤 소양이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두 시까지 뜬눈으로 기다리며 소양에 대한 생각을 여러 가지 했다. 무엇보다 서로 단절된 원인을 추적해 보았는데 개인주의 생활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우리는 머리가 커지면서 서로 간섭 않고 자기 할 일만 해 왔다. 이런 개인주의 생활을 가능케 한 것은 각자의 방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내 방을 가지고 있었지만 중학교 때까지 함께 방을 썼던 혜양이와 소양이도 오 년 전 지금의 삼층집에 이사 오면서 각기 제 방을 차지하게 되었다.

혜양이도 그랬지만 그때 소양이가 좋아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소양은 먼저 제가 좋아하는 비틀즈 패널을 방에 걸고 어머니를 졸라서 응접실에 있던 낡은 전축을 제 방으로 옮겼다. 소양이 방에선 매일 팝송이 울려 나왔고 소양은 사흘이 멀다 하고 꽃과 양초를 사 들고 왔다. 용돈의 대부분이 그것을 사는 데 쓰인 듯 반년도 못 가서 소양의 방엔 말린 꽃들과 가지각색의 양초들로 채워졌다. 여고생 때면 한창 그럴 나이지만 소양의 유미적 취미는 기갈난 사람의 그것처럼 한정을 몰랐다. 

굴속 같은 방으로 한 발 한 발 걸어 들어가자 벽 가까이서 촛불을 등지고 누워 있는 소양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맡엔 박쥐 같은 것이 웅크리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것은 까만 우산이었다. 방 안에서 까만 우산을 쓰고 누워 있는 모습은 괴이하기까지 했으나 촛불 때문인지 신비하게도 보였다.

까만 우산 천에 불빛이 부딪쳐 흩어졌고 소양은 눈을 감은 채 꼼짝 않고 있었다. 그때까지 내가 방에 들어온 것도 모를 정도로 자기 세계에 빠져 있었다. 그래, 지금에야 이 표현이 떠오르지만 그것이 소양의 세게였다. 주문처럼 타오르는 양초들, 제 스스로 당겨 놓은 불을 못 견뎌서 소양은 또 그 빛들을 까만 우산으로 차단하고 있었다. 

다시 생각하니 전율이 올 정도로 그날 밤의 인상이 강하다. 나는 소양이 모르게 방을 빠져나왔다. 소양은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았고 나는 그것을 세대 차라고 단정 지음으로써 편하게 소양의 공간을 인정했다. (p.25-28)

 

"이해 못 할 테니까 얘기 않겠어요. 지금 하신 말들이 그걸 입증해요. 이번 등록금을 써 버린 건 사실이지만 처음엔 복교해 볼까 하는 마음으로 받았어요."

"이해 못 할 테니까? 좀 가르쳐 놓으니 부모한테 저 따위 말대답이나 하고."

그건 아버지가 우리를 비난할 때 쓰는 상투어였다. 혜양의 표현으로 무학자의 열등감이었다.

이어 아버지는 사람 생각이라는 게 다 부처님 손바닥에 손오공이지 너는 산꼭대기에 올라앉았느냐, 살았으면 얼마나 살았어, 못 된 것, 하며 그러렁거렸다. 아버지 말투가 자꾸 거칠어져서 가슴을 졸이고 있는데 소양도 계속 맞서 대꾸했다.

"내가 잘나서 아버지가 이해 못하신다는 게 아니에요. 나 자신부터 내가 왜 그래야 했는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어요. 가짜로 살았다는 생각이 들고 학교도 껍데기 같고...암튼 학교는 못 다니겠어요."

"그런 식으로 말하면 어떤 보모든 이해하겠냐. 온 식구를 다 속인 건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야. 난 심장이 떨리는 것 같아 잠도 못 잤다."

어머니는 어느새 차를 끓여 거실로 나갔다. 늘 그렇듯이 아버지의 권위를 세우느라 잠자코 있다가 중요한 대목에서 나서는 것이다. 어머니는 소양이 앞에 찬 인삼차를 놓고 아버지 옆에 나란히 앉았다.

"어쨌든 이번 학기엔 등록해. 오늘 학교에 알아보니까 이차 등록 기간이 남아 있다더라."

그건 내가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해결책이라도 발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등록 아직 끝난 거 아니래요? 되물었다. 그러면서 확인하러 거실로 나서는데 소양은 양 눈썹을 모으며 그럴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날 일은 여기까지만 말하자. 그 뒤 장면은 과히 유쾌하지 않다. 소양을 어르지 못한 아버지는 모처럼 세워 보려 했던 가부장의 위엄이 묵살당했다고 생각했음인지 순종할 기색이 없는 소양에서 정신 나간 것이라고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내뱉었다.

이어 요새 것들은 너무 배불러서 문제를 일으킨다. 자기 세대는 전쟁 때 전우의 시체를 넘으면서 살아남았다. 전쟁 뒤엔 식구들 양식을 구하느라 배낭을 짊어지고 강원도 산골을 헤매 다녔고 나일론 양말 공장에서 시작하여 스웨터 수출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날까지 하루도 발 뻗고 자 본 일이 없다는 등 생존 경력을 읊었다. 그리고 공연히 무슨 사상이나 있는 척하며 데모나 하고 제멋대로인 젊은것들의 뻔뻔한 상판대기가 보기 싫으니 빨리 꺼지라고 소리쳤다.

그날 소양을 이 층으로 올려 보낸 것은 나였다. 아버지에게 욕을 들으면서도 소양은 푹신한 소파에 파묻혀 꼼짝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따분해 보이는 표정은 일어서는 것조차 귀찮은 듯했다.

자식들의 정신세계는 들여다볼 생각도 않고 물질적인 것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아버지도 싫었지만 성의 없이 앉아 있는 소양에게도 화가 났다.

나는 소양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소양은 용수철이 튀듯 가볍게 이끌려 일어나서 여태 들은 아버지 말에 대한 의무라도 하듯, 아버지 도움을 받지 않고 살아갈 생각도 하고 있다, 한마디 했다. 홧김에 텔레비전을 크게 틀어 놓아서 아버지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고 그것은 다행이었다. 대부분의 가장들이 그런지도 모르지만 아버지는 한 가족의 생계를 이끌어 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이 강했다. (p.38-40)

 

굵은 고딕체의 글씨들이 다투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왠지 선혈 같아서 전율과 연민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그들의 광장은 신성했으나 잠시 주어진 유예된 특권의 땅이었다. 세상 밖으로 한 발짝만 나오면 젊음의 숨을 꺾을 방패가 복병처럼 숨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p.51)

 

나는 그날 둘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 듣고 싶었다.

"우리들의 진실에 관한 얘기죠, 뭐."

명주는 이렇게 운을 떼곤 요즘 자기는 사회의 불평등에 관심이 많다고 서두를 꺼냈다. 우리 같은 과도적 산업 사회의 구조상으로는 권력이나 경제에서 한 집단의 승리는 다른 집단을 희생시켜 얻어진 것이고 그래서 모든 사회 계층 체제는 그 원칙에 대한 저항을 자아내며 그 자체가 억압의 씨앗을 낳는다. 사회에서 불리한 위치를 가진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에게 보다 나은 소득을 약속해 주는 규범 체계를 세우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말 끝에 명주는 학생 운동으로 대화를 끌고 갔다. 대학생이란 어쨌든 선택받은 환경의 사람들인데 그러니만큼 사회 진보를 위해 앞장서야 한다. 기성인들은 안락한 자기 울타리를 지키기 위한 소시민으로 타락해서 현실에 순응하고 타협하므로 자신들이야말로 순수하게 싸울 수 있노라 했다. 

"그것도 엘리트 의식 아냐?"

나의 반문에 명주는 전위 의식이죠, 수정했다. 자기들이 알고 있는 구조적 모순을 억압받는 계층에게 일깨워 주는 중간 역할을 할 뿐 노동 운동의 주체자는 어디까지나 노동자들이라는 것도 알고 있노라 힘주어 말했다.

명주는 이어, 알고 있는 이론이나 관념을 경험으로 다시 터득하기 위해 자기를 포함한 대학생들이 공장에 직접 들어가 일하면서 현장을 체험한다, 명주 자신은 방학 동안 보세 공장의 시다로 들어가서 월급 팔만 원을 받고 칼라 다림질이며 시접 접기 등을 했다, 공장에 들어가서도 일을 못하면 동료들에게도 말발이 안 서기 때문에 지금은 개인 하청업자에게 미싱을 배우러 나니노라 했다.

나는 접시를 다 비웠으나 명주는 불평등에 관해 열변을 토하느라 밥을 거의 먹지 못해다. 시골 처녀처럼 긴 머리를 하나로 묶고 다니던 재수생 때의 명주를 떠올리며, 나는 점심부터 빨리 들라고 권했다. 명주는, 사실 이런 데 들어와서 부르주아처럼 칼질하는 것도 우습죠 뭐, 하곤 끊어졌던 소양이 얘기를 또 계속했다.

"나는 주로 이런 얘기를 했죠. 그랬더니 소양이가 그것이 그토록 너에게 절실하냐, 겉멋 들은 엘리트 의식이다, 자기 자신도 잘 모르면서 어떻게 남을 깨우치고 민중 운동을 한다고 나서느냐 해요. 또 운동하는 건 좋은데 다른 고통, 갈등도 포용하고 인정해야 한다, 너희들만 의식 있는 인간이고 진실하다고 생각하는 건 오만이고 너희들이 대항하려는 체제만큼 비인간적이라고 공박했어요."

그 정도로 그날의 상황을 알 듯했다. 데모하다 잘려서 휴학한 건 아니냐고 물었던 어머니에게 그런 뚜렷한 명분이 있으면 행복하겠다고 답했다는 소양이다. 나는 순간 소양의 휴학보다 명주의 변모에 더 호기심을 느꼈다. 일 년 사이에 이토록 변한 너와 마주 앉아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농담조로 말하려다 자기 가치관이 그토록 빨리 확립됐다면 너 행운안구나, 했다. 명주는 남은 고기를 씹다 말고 정색을 했다.

"복권같이 굴러떨어진 행운이 아니라 내가 절실히 찾았기 때문에 길이 나타난 거예요."

그러면서 한순간 침묵을 지키더니, 재수생 때 좌절감, 소외감이 커서 피 흘리는 방황을 많이 했고 그런 과정을 극복하여 대학에 들어오니까 자의식 같은 문제에서 떠나 큰 사회 현상에 눈뜨게 됐다고 나름대로 조리 있게 말했다.

나는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제야 소양이 휴학한 거 알지? 말을 꺼냈다.

"그럼요. 나한테 휴학하겠다고 얘기하고 바로 그다음 날 휴학게 냈다던대요?"

"그때가 언제야?"

"목련이 필 때니까 사월 중순이네. 그날 꽃샘추위로 바람이 몹시 불었는데 소양인 추운지 파리한 얼굴로 목련나무 밑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이었어요. 조그만 아이가 - 물론 꽃송이보다야 크지만 그날따라 작아 보였어요 - 크고 누렇게 시든 목련꽃 아래 앉아 있는 걸 보니까 왠지 측은한 생각이 들었어요. 바로 그날이에요. 휴학하겠다는 얘기를 한 게."

소양이가 명주에게 한 얘기도 우리에게 했던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자기가 가짜로 살고 있는 것 같다고. 학교도 껍데기고 자기도 껍데기라는 것. 또 아무것도 잡을 것이 없다고 했다. 

그 말은 내게 여전히 추상적으로 들려서 선명하게 닿아 오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무엇을 잡으려고? 물었다.

"진실 같은 거겠죠?"

그 말에 나도 모르게 흐흥, 코웃음이 나왔다. 명주는 처음에도 우리들의 진실 운운했다. 그것이 저희들끼리의 공통분모 격인 낱말인지는 모르지만 진실이라니, 얼마나 애매모호한 관념어인가 진실을 잡겠다는 것은 공기를 잡겠다는 말과 같지 않은가. (p.52-56)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청소년을 위한 세계 경제사 - 석혜원 (두리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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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 말같이 부잣집 딸의 객기는 결코 아니었지만 나는 방종하기 위해 호스티스가 되려 한 것도 아니다. 쇠사슬같이 무거운 청춘을 탕진하기 위해, 그냥 바닥으로 내려갈 대로 내려가 보려고, 무엇보다 나는 내 속의 헛된 계급 - 부르주아적 속성- 을 부수고 싶었을 뿐. (p.65)

 

왜 소양이가 휴학을 해야 했는지,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느냐는 물음엔 적응을 못해서 그런 것 아녜요? 하고 반문했다.

"내 경우는 애들이 데모하든 말든 관계치 않아요. 소양인 처음엔 함께 데모하다가 나중엔 빠졌는데 데모할 때도 갈등했고 빠질 때도 빠져서 괴로워했어요."

"데모가 그렇게 중요해? 지가 무슨 투사야?"

"매사가 그렇단 얘기예요."

"소외감 때문일까."

소외감이라는 말을 불쑥 내뱉고 나니 가슴에 그늘이 스치는 듯했다. 교정에서 통기타를 치며 웃어 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느낀 고립감, 그것에 대한 생생한 기억을 나도 갖고 있었다. 내가 남다르다고 느낄 때의 아픔을. (p.70)

 

방황은 청춘의 특권 아녜요?

방황은 청춘의 특권이 아니라 형벌인 것이다. (p.72)

 

이따금씩 눈썹이 꿈틀거렸으나 벌거벗은 육신은 이미 고통으로부터 달아났다. 혼이 없는 그의 얼굴을 보자 미움도 가질 수 없었다. 약한 인간이었다. 사랑을 잃으면서 자신을 잃었고 여자에 대한 배신감이 석고처럼 그를 고착시켰다. 그는 과거를 현재 속에 옮겨 놓고 현실을 도피하는 편집광이었다. 윤리며 의지며 그 모든 현실에 눈 가리고 더 이상 성장을 멈춘 정신의 기형아였다.

그날 새벽 나는 파산자처럼 어둠 속을 헤쳐 그 악몽의 집으로부터 벗어났다. 별장은 민가에서도 떨어져 있어서 한참 숲길을 걸어서야 들판으로 나올 수 있었다.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집들도 어둠에 묻혀 있었고 차가운 겨울바람도 뺨을 베이듯 스쳐 갔다. 급히 빠져나오느라 목도리를 두고 왔지만 맨발이라도 뒤돌아보지 않았을 거다. 구름에 묻혀 있던 초승달이 이따금씩 얼굴을 내밀어 길을 비추어 주었으나 나는 더 이상 두려움 없이 앞만 향해 나아갔다.

외상은 없었으나 이 일은 내 인생을 뒤흔들어 놓았다. 먼저 나는 음악에 대한 정열을 잃었다. 전엔 음악이, 예술이 영혼을 구원한다고 믿었으나 음악의 한계를 깨달았다. 위대한 바흐도 당시의 나를 구원하진 못했다. 물론 그것이 바흐의 잘못은 아니지만.

언젠가 아폴로 우주선이 달나라에 착륙했을 때 신문에 난 사진이 생각난다. 어렸을 때지만 몹시 신기했다. 그것은 무슨 에너지로 식지도 않고 이글이글 타는 것일까. 그 신비는 종교도 예술도 초월하는 실체였다. 종교도 우주에 못 미친다. 예술이 위대하다 해도 인간에 국한된 것이다.

모든 것에 흥미를 잃고 있던 그즈음 남자 친구가 국회의원 딸과의 약혼을 알려 왔다. 나는 그를 유혹하여 인천 바닷가에서 처녀를 던졌다. 축구 시합을 보면서도 프로이트 운운하는, 그 의대생은 한때 내 데이트 상대자였다. 학구파이면서도 사람을 감동시킬 정도로 노래를 잘 불렀지만 집이 가난한 탓으로 부잣집 데릴사위가 되리라는 굳건한 소망을 갖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를 친구로서 한계 짓고 있었다.

그 의대생은 나의 돌연한 제의에 순수하게 행복해했으나 나는 그날 새벽 호텔 화장실에서 흰 손수건에 묻은 핏자국을 무감각하게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내게 더 이상 의미가 없었고 휴지처럼 내던짐으로써 유리 구두 한 짝 같은 꿈도 내버렸다.

전에 한 친구가 내게 불행의 치외 법권 지대에 사는 사람이라고 했던 적이 있다. 만날 때마다 집까지 바래다주고 도망치듯 긴 다리로 뛰어가던 남자 친구도 있었다. 그는 내게 유리 저편에 사는 사람 같다고 말하고 군에 입대했다.

어떤 면에선 맞는 말이었다. 나는 환경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은 다 누린 셈이다. 지적인 어머니에 의해 건전한 중산층 집 딸로 교육받았고 부족함도 별다른 괴로움도 없이 성장했다. 세상에 깔린 숱한 고통을 생각하면 나는 분명 혜택 받은 사람이고 분배의 법칙에 따르자면 그만큼 세상에 빚진 사람이기도 했다.

내가 이런 것을 몰랐다 하더라도 나를 깨우치기 위해 그 끔찍한 일로 고통의 분배를 했다면 인생은 너무 자비롭지 못하다. 내가 빚을 갚을 수 있는 적절한 기회를 먼저 주어야 했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겨울에 우연히 영국 작가의 수상집을 읽고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작가는 어느 날 마을 어귀의 외진 곳에서 열 살쯤 되는 소년이 나무 둥지에 기대서서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아이는 부모의 심부름으로 육 페니의 빚을 갚으러 심부름 가다가 돈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찬란한 봄날 아이다운 기쁨에 젖어 있어야 할 소년이 육 페니 때문에 심장이 마르도록 울고 있다니, 연민을 느낀 작가가 가난한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 육 페니를 마련해 아이를 보낸다는 얘기였다.

육 페니를 잃어버리고 울고 있는 소년은 바로 나였다. 나는 갚어야 할 돈을 엉뚱한 곳에서 잃어버렸다. 신이 있다면 그 역시 가슴 아파했겠지만 힘없는 자가 인생에 맞서 할 수 있는 것은 우는 것뿐이었다.

최 대리와 약혼한 날 나는 그에게도 이 얘기를 해 주었다. 당신이 바로 소년에게 육 페니를 준 사람이라고, 최 대리는 왜 그렇게 엉뚱해, 한마디 했을 뿐 더 이상 묻지도 않았다. 나는 그 점이 좋았다. 약혼식 날에도 나를 미스 리라고 부른 사람이지만. (p.82-84)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신데렐라 - 샤를 페로 (이다희 옮김, 비룡소)

꿈의 해석 - 지그문트 프로이트 (김양순 옮김, 동서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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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들어가 보니 별것 아니지? 나도 그랬어. 더구나 너같이 재수까지 하고 대학 가면 그 노력과 기대만큼 더 공허감을 느낄거야. 그래서 학교가 껍데기처럼 생각되고 가치관이 흔들리니까 고통스럽기까지 할 거야."

고통? 소양이 중얼거리며 양미간을 세웠다.

"어제 친구와 함께 지하도를 가는데 라이터 장수가 학생, 하나 사요 하며 불러. 휴학생이긴 하지만 학생이라 불리니 이상하데. 긴 머리의 늙은 여자가 뒤에서 아가씨,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때처럼. 그런데 그 라이터 장수는 지나가는 젊은 사람을 모두 학생이라고 불러. 친구 말이 학생이라고 부르면 모두 좋아한다는 거야. 사람들이 좋아하는 학생 호칭을 왜 나는 보류했을까. 그럼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내가 무얼 원하는지 모른다는 게 고통이야."

나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무얼 원하는지 모른다고? 살아가면서 절실한 것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것은 이루어지기만 하면 또 다른 원을 갖게 되는 가변적인 것이고 절대는 아니지 않은가.

소양이 말하는 원이란 이상을 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상을, 원을 발견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깨질 때의 고통에 비하면 '아직 없음'으로 해서 가지는 불안이 더 미래적이다. 왜냐하면 없음은 인간에게 새것을 창출하려는 욕구와 충동을 주기 때문이라고 언젠가 책에서 읽은 것까지 상기하며 궁색한 조언을 했다. (p.89-90)

 

혜양은 책을 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보바리 부인>이었다. 웬일이냐, 소설책을 다 읽고. 내 말에 혜양은 가을이잖아, 하며 혀를 내밀었다. (p.98)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마담 보바리 - 귀스타브 플로베르 (김화영 옮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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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에 발을 디디면서부터 나는 낯선 곳에 온 것처럼 거리를 기웃거렸다. 그 시간에 종로에 나온 것도 오랜만이었지만 독특한 옷차림의 젊은 아이들이 밀집해 있는 풍경은 나를 이방인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시계방 앞에서, 문이 닫힌 건물 층계에, 또 생맥줏집 입구에 앉아 있기도 하고 길에서 핫도그를 먹기도 하고 무리 지어 다니기도 하면서 거리 전체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것은 군중이었고 치외 법권의 숲이었으며 거부였다. (p.98-99)

 

"언니는 내가 고통을 가진 적이 없다고 생각해? 내가 보기에 언니야말로 화초같이 살아온 것 같애. 지금 결과도 그렇잖아. 한 남자의 아내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거야, 언니는."

이어 혜양은 언니에게 자기 갈등을 얘기해 봐야 공감할 수 없을 터이니 가졌던 꿈이나 얘기하겠다며 의대에 들어간 동기를 들려주었다.

혜양이 말에 의하면 그 동기는 유르스나르라는 벨기에 태생 여성 작가의 소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을 보고서였다. 뛰어난 장군이었고 치세 동안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했던 로마 제국의 비범한 황제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편지 형식으로 쓴 소설이다. 그 속에 병고에 시달리는 황제가 이올라스라는 젊은 의사에게 독약을 조제해 줄 것을 호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올라스는 황제를 동정하면서도 히포크라테스의 선서 때문에 거절한다. 황제는 거듭 애원했고 마침내 이올라스는 설복되지만 그날 밤 그는 실험실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그는 황제에게 아무것도 거절하지 않으면서 자기 선서를 충실히 지킬 수 있는 방법으로 죽음을 택했던 것이다.

혜양은 이 얘기를 마치고 언닌 내가 공붓벌레니까 의대 갔으려니 했지? 빤히 쳐다보았다. 혜양이가 소설 속의 인물에 매료되어 의시가 될 생각을 했다는 것은 내가 전혀 모르는 부분이었다.

정말 뜻밖이었다. 혜양이가 내 고통을 모르듯 나도 혜양의 꿈을 몰랐다. 그런 것들은 보여 줄 수 없는 것이어서 혼자 품고 있을 수 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나도 소양의 고통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일기까지 훔쳐보며 소양을 도우려 하지만 그것은 혼자 앓고 스스로 치유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p.102-103)

(같이 읽으면 좋은 책)

히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곽광수 옮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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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침을 먹은 후 곧장 이 층으로 올라가 소양의 방문을 열었다. 담배를 많이 피웠는지 담배 냄새가 배어 있었다. 꽁초가 수북이 쌓인 재떨이를 이내 발견하고 창부터 열어젖혔다. 보료 위엔 이불도 개켜지지 않은 채 옷이 내던져져 있고 <보들레르 시집>과 <종의 기원>, 두 권의 책이 방바닥에 놓여 있었다. 소양의 일기는 아버지에게 뺨을 맞은 날부터 씌어 있었다. (p.111)

(같이 읽으면 좋은 책)

파리의 우울 - 샤를 보들레르 (윤영애 옮김, 민음사)

악의 꽃 - 샤를 보들레르 (윤영애 옮김, 문학과지성사 대산세계문학)

종의 기원 - 찰스 다윈 (송철용 옮김, 동서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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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은 방이 아니야. 피 흘리는 작은 양을 잠재우고 놀라 뛰는 노루 가슴을 쉬게 하고 내 푸른 단도 날까지 어루만져 주는 방이 필요해.

아니, 그러한 방은 내게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 단순한 구도로 명료하게 묘사된 듯한 고흐의 <아를의 침실>도 휴식보다 불안을 느끼게 한다. 퇴색한 듯한 거친 적갈색 마룻바닥과 하얗게 반짝이고 있을 뿐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거울, 빨간 담요....(p.112)

고흐 - 아를의 침실 (1889년)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고흐의 영혼의 편지 - 반 고흐 (김유경 옮김, 동서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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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는 내 메마른 꿈을 바라보다, 난 정의를 위해 요술을 쓰겠어요. 흔쾌히 말했다. 자기의 어릴 때 꿈은 요술쟁이가 되는 것이었는데 약자를 짓밟는 나쁜 사람들을 벌주고 싶어서였다. 이건 만화 영향도 크지만 중학생 때의 제 별명이 유관순인 점을 참작하면 기질과 무관하지 않다고 자기 분석을 했다.

"정의라는 말이 잠재의식 속에 깊이 박혀 있었는지 우연히도 십 년 뒤 다시 그것과 만나게 되대요. 대학에 들어올 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일까, 그것을 위해 젊음을 바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얼마 뒤 내 속에서 발견했어요. 가장 아름다운 것은 정의라고."

명주의 말이 틀리지 않아서 그것은 이론보다 더 선명하게 가슴에 닿아 왔다. 명주에게 그런 예쁜 면이 있구나, 하고 넌지시 바라보자 명주는 다시 소양에게로 얘기 방향을 돌렸다.

"소양이가 여성 운동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지면 좋을 텐데. 자기가 직접 당하니까 그런 의식은 있거든요. 그런데 갠 지구력이 없어요. 환경 탓인가. 벼락부자 할머니를 우습게 여기고 부모에게 반항하며 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를 거부하지만 그것뿐이에요. 주어진 것을 쉽게 누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타성에 젖은 면이 있어요."

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라니 처음 듣는 용어였으나 머리를 치는 것이 있었다. 일기에 적힌 대로 소양이가 집을 싫어하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인가. 우리 집을 지배하고 있는 생활 철학, 명주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이 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였다. 명주가 말을 계속 이었다.

"소양인 현실을 보지 못하는 측면이 있지만 늘 감동해요. 표출은 없지만 변화의 의지는 가졌어요. 그러나 과연 어떤 비전을 가졌는지, 육체가 정신에 기력을 줄 수 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소양인 자기 파괴로 나가고 있어요. 대안이 없으니까요. 난 늘 그 점을 비판하죠."

"너희들은 지나치게 똑똑하구나."

나는 명주의 말을 반박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고 싶은 말도 있었다. 물질적으로 소외된 자는 중시하면서 정신적으로 소외된 자는 외면하느냐고.

명주는 내 속을 꿰뚫어 보듯 소양인 아웃사이더예요,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어떤 관계에서도 늘 거리를 두고 바라봐요, 할 땐 나도 인정했다. (p.117-119)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정의란 무엇인가 - 마이클 샌델 (이창신 옮김,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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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다 제 길을 찾고 닦고 있는데 소양은 언제까지 방황만 할 것인가. 명주는 제 이상을 위해 젊음을 바치지만 소양은 무엇을 위해 생피를 흘린단 말인가.

그제야 소양이가 대열에서 처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전에 아버지가 경쟁 대열 운운했을 때 공박했었지만 나도 어느새 기성세대가 되어 가고 있었다. (p.135)

 

"피아노 친답시고 공부와 담을 쌓아선지 내가 만약 지금 대학생이 된다면 온갖 지식을 흡수하는 데에 시간을 바치겠어. 도서관에 가 봐. 저 많은 책들 속에 어떤 세계가 펼쳐질까. 그것들을 다 읽기에도 우리 삶은 너무 짧아. 자기가 고통 속에 있을 땐 그것이 생의 전부 같지만 눈을 크게 뜨면 무한한 세계가 있는 거야. 무한한 진실이. 그걸 알고 싶지 않니?" (p.141)

 

젊음은 젊음끼리 모여 숲을 이루는 것이다. 숲 속에서 위안을 받고 혼란도 확인한다. (p.148)

 

묘한 아이였다. 세상을 유리 저편에서 바라보며 살아가는 동화 속의 소년 같았다. 결백한 세계에 묻혀 미지의 꿈만 꾸는 듯했고 지식이나 관념에도 오염되지 않아서 그 또래의 대학생들과도 전혀 달랐다. (p.161-162)

 

우리는 새벽까지 거리를 헤맸다. 비디오를 상영하는 다방에서 중국 무술 영화도 보고 우주선 같은 DJ실이 있는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고 발길 닿는 대로 쏘다녔다. 거리엔 가로등에 기대 잠자는 사람도 있었고 디스코장에서 나온 무리들은 포장마차에 앉아 순두부를 먹기도 했다. 우리는 할 일 없이 다니며 이런 풍경들을 신기한 듯 관찰했다.

지하도엔 서너 무리가 진을 치고 있었는데 대학생 여섯 명이 한쪽 구석에서 포커를 치고 있었다. 나는 옆으로 스쳐 가다 왜 집에 가지 않느냐, 뒤돌아서서 물었다. 차비가 없어요. 그들 중 하나가 대답하면서 포커를 할 줄 알면 함께하자고 오라는 손짓을 했다.

지하도를 나오니 버스가 드문드문 디나고 있었다. 거리는 아직 어두웠고 쥐가 쓰레기통에서 고개를 내밀다 하수구로 사라졌다. 버스 정류장 앞으로 걸어가는데 내 앞에서 버스가 멎었다. 버스에서 책가방을 든 여학생과 소년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 정우가 이따금씩 새벽에 독서실에 가는 것이 생각났고 그러자 갑자기 꿈에서 깬 듯했다.

거리 맞은편 등이 켜진 골목에서 청소부가 비질을 하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정우는 다른 아이들처럼 새벽부터 공부하러 나선다. 그 아이도 몇 년 뒤엔 지하도에서 포커를 할지 모른다. 소양이 십 년 뒤 저 청소부처럼 자식을 위해 비질을 하지 않을까.

옆에서 라디오 소리가 들려 흘끗 보니 남자아이가 트랜지스터를 꺼내 귀에 대고 있었다. 막 다섯 시를 알리면서 음악이 울려 나왔다.

"시작할 땐 언제나 밝은 음악이 나와요."

그의 표정도 음악처럼 밝았다. 긴장이 풀리는지 갑자기 눈꺼풀이 무거워지면서 내 포근한 잠자리가 그리웠다. 이젠 집에 돌아가야 했다. 나는 눈을 비비곤 웃음 지었다.

"여태 같이 있어 주어서 고마워."

"누나 같은 사람이 많으면 좋겠어요. 또 만날 수 있을까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으리라. 순수는 꿈으로만 간직해야 한다. 내 침묵의 뜻을 헤아렸는지 남자아이는 라디오를 주머니에 넣었다.

마침 택시 한 대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손을 들어 보이고 차도로 뛰어갔다. 허전한 눈길을 등으로 느꼈으나 뒤돌아보지 않고 차에 올랐다. 차는 이내 떠났고 나는 시트에 몸을 기대곤 눈을 감았다. 꿈이 깨어진 얼굴로 어두운 새벽 거리에 서 있는 남자아이의 모습이 선연히 떠올랐다. 그것은 다치지 않은 나의 모습이었다. 잃어버린 나의 한 부분이었다. 나는 혼잣말을 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너의 순수는 유력한가 무력한가. (p.162-163)

 

 신혼부부가 한밤에 절을 찾은 것이 대견했는지, 마침 혼자 절을 지키고 있어서 보시하려 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숙소를 정했노라 사양했다. 나도 아쉬워했지만 머물면 숙소죠, 하곤 젊은 승은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우리가 짐을 푼 호텔로 돌아오며 나는 최 대리에게 불쑥 말했다. 당신은 내 집이라고, 나그네는 아무 곳에나 머물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온다고. 최 대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내 팔을 힘주어 잡았다. (p.167)

 

내가 새벽잠을 깬 것은 지옥 꿈 때문이다. 동굴 속 같은 낯선 곳을 헤매 다녔다. 목욕탕 같은 못에선 김이 오르고 이상한 사람들이 군데군데 앉아 제 상처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머리가 벗겨진 사람 곁을 지나다가 안쓰러워서 얼굴을 들여다보려는데 그가 내 얼굴에 선인장을 집어 던졌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피가 흐른다고 생각했으나 끈적거리는 것은 없었다. 나는 그제야 꿈꾼 것을 알았지만 끔찍한 장면이 머릿속에서 이내 지워지지 않았다. 어둠 속에 누워 있는 남편 얼굴을 한참 응시하니 윤곽이 어슴푸레 보였고 나는 손을 뻗어 그의 뺨에 갖다 대었다.

그제야 안도의 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 쪽으로 다가가 커튼을 들치니 하늘에 짙은 잉크 빛이 물들어 있었다. 별이 드문드문 빛났고 차 소리도 희미하게 들렸다.

화장실에 가려고 방을 나서는데 비릿한 내음이 끼쳐 왔다. 나는 마루의 창을 흘끗 보았다. 숲의 밤공기가 밀려왔나 했으나 창은 닫혀 있었다. 수목 내음 같았으나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로 비릿했다.

화장실에서 나서는 순간 내 머릿속으로 번개 같은 것이 스쳐 갔다. 나를 어지럽게 한 그것은 피 냄새였다. 얼굴 근육이 굳은 듯했으나 눈꺼풀이 떨렸다. 나는 소양의 방 앞으로 한 발 한 발걸음을 옮겼다.

소양아, 소양아! 문을 두들겼으나 아무 기척이 없었다. 나는 몇 번 더 부르다가 내 방으로 가서 가방을 꺼내 왔다. 소양의 방 열쇠는 내 아파트 열쇠와 함께 묶여 있었다. 불을 켠 마루에서 그것을 찾아 소양의 방문을 떨리는 손으로 열었다.

끼쳐 오는 피비린내에 현기증을 느꼈으나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올렸다. 순간 방 안이 렌즈 속처럼 확대되어 눈에 들어왔고 나는 휘청거렸다.

방바닥은 피로 온통 붉게 물들었다. 검은 옷을 입은 소양이가 방바닥에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었다. 얼마 전 내가 사다 준 검은 옷은 피로 온통 젖어 검붉었고 두 손은 펴져 있었다. 입도 약간 벌어져 있었으나 피로 얼룩진 장판 위에 누워 있는 소양의 그 모습은 붉은 지도 위에 잠들어 있는 혁명가 같았다.

입을 틀어막은 채 뒷걸음질을 치는데 발에 무언가 차였다. 돌아다보니 피가 밴 노트였다. 일기장이었다. 나는 그것을 집어 들고 내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소양이를 살려 달라고 소리치며 남편품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뜨렸다.

 

여기는 꿈이 아니야

날개는 없고 몸뚱이만 있는 더러운 땅이야

새가 아니고 나비가 아니고 땅을 전신으로 문지르고 다니는 뱀이야

날개는 환각이야

깨어지면 아프고 괴롭고 추한 몸뚱이야

 

생업을 위해 싸우는 이 세계가

진공 속의 풍경처럼 소원하다

구호는 눈부시지만 나를 거부해

나는 섬이야. 어디와도 닿지 않는 섬이야

 

내 눈물이 일기장에 떨어져 피 배인 종이 위에 묽게 번졌다. 어머니가 소리 죽여 우는 소리가 뒷자리에서 간간이 들려왔다. 눈동자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혜양은 벌써 체념을 빛을 띠었지만 고무줄로 묶은 소양의 왼팔을 쥐고 울음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여태 자식 잘 키우려고 살아왔는데 이건 무슨 일이야. 처음에 소리부터 쳤던 아버지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뒤돌아보곤 주먹으로 눈물을 훔쳤다. 어제 빗속의 여행길을 신 나게 달렸던 봉고를 운전하며 최 대리도 무겁게 침묵했고 그들 사이에 끼어 앉은 나는 가슴이 터질 듯했다.

바보같이 세상 밖에서 자신을 찾으려 하다니, 네가 적당히 타협하기만 한다면 땅에 온몸을 문지르고 다니며 피 흘리지 않아도 좋을 텐데, 청춘은 쇠사슬이 아니라 날개일 텐데, 소양은 끝내 안식의 방을 찾지 못했다. 숲에도 방이 없었다. 숲에는 혼란과 미로가 있을 뿐.

하늘엔 어느새 희푸르스름한 여명이 드리워 있었다. 비 그친 뒤의 맑고 차가운 새벽 공기가 가슴을 찔렀고 문 닫힌 거리도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언덕길에서 보니 멀리서 붉은 창 같은 것이 나무들 사이로 솟아 화톳불처럼 가물거리고 있었다. 얼핏 도깨비불처럼 보이기도 하고 새벽의 여명 속에 힘을 잃고 스러져 가는 악마의 혼 같기도 했다. 뚫어질 듯 허공을 바라보니 그것은 교회의 네온 십자가였다. (p.171-174)

 

<작품 해설>

<숲 속의 방>은 1980년대 최고의 문제작으로, 기존 질서를 거부하며 저항하는 청춘의 모습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았다. 타고난 감수성과 예리한 언어를 바탕으로 제도와 일상의 허위를 헤집고 집요하게 파고들어 청춘이 겪어야만 했던 아픔과 위기를 드러내어 보여 주었다. 작가에 따르면 "극단적으로 경직된 사회 구조 속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된 한 여대생의 내면 기록을, 청춘의 상처를 씻고 막 기성세대로 안주하려는 언니의 눈을 통해 추적한 소설"이다.

안정된 가정에서 자란 주인공 소양은 불문학을 전공하는 대학 2학년생으로 학교를 휴학하고 방황한다. 외박을 해도 가족은 소양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는다. 단지 큰언니 미양만이 동생의 뒤를 추적하고 소양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고는 소양의 진면목을 알게 된다. 소양은 가족의 속물적 행태를 혐오하고 학생 운동에 가담하지만 갈등을 겪고 있었다. 미양은 소양이 삶의 진실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소양을 찾아 거리로 나선다. 그러다 두문불출하던 소양은 미양의 결혼식을 앞두고 함이 들어온 날 다시 집을 나간다. 소양의 뒤를 쫓던 미양은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날 밤 미양은 피를 흘리고 쓰러진 소양을 발견하고 경악한다. 소양은 안식의 방을 찾지 못하고 자살한 것이다.

주인공 소양은 꿈을 이룰 수 없다는 참담한 심정으로 암울하고 불안한 현실 속에서 절망과 좌절을 반복한다. 이러한 소양의 방황은 절망으로 치달았던 1980년대 군부 독재의 시대상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당시 한국은 가혹한 산업화와 세계 경제의 3저 현상으로 고도성장을 이루었지만 정치에서는 후진성을 면치 못했다. 군부 독재가 정권을 잡고 정치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했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폐쇄적 상태에 놓여 있었다. 70년대를 넘어 민중의 의식은 변화를 겪고 있었는데 80년대의 시대 상황은 이러한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고 민중의 소박한 꿈과 희망을 무참히 짓밟는다. 이 억압의 상황 속에서 개인이 스스로 삶을 영위하고 이념적 신념을 고수할 수는 없었다.

'숲'은 평화로운 가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소양과 같은 1980년대 젊은이에게는 안주의 공간이 아니다. '방'이라는 공간 개념은 당시 젊은 세대의 이상과 가치관을 담은 상징이다. 방으로부터 추방당한 인간 소외 양상을 통해 소설 속 인물들의 대응 방식을 따라가는 것이 이 작품을 읽는 관건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진실은 회색 지대에 있음을 확인시켜 준 소설로 1980년 현실 인식의 훌륭한 증폭제'라는 평가를 받았다. (p.178-179)

 

<작품 이해>

'숲'을 사회적 공간으로 본다면 이 작품에서 소양에게 숲으로 인식되는 공간은 '가정'과 '대학'입니다. 두 공간은 1980년의 사회상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주인공 소양은 20대 초반의 불문학과 2학년생으로 유복한 중산층 집안의 셋째 딸입니다. 겉으로 보아서는 문제가 전혀 없는 인물이지만, 그 내면을 알 수 없는 이중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그 시대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억압된 인간형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정 공간은 현실 안주웨 알맞은 곳입니다. '대학'은 이념과 탈이념의 공간, 이 두 가지 양상으로 드러납니다. 운동권인 명주와 향락을 즐기는 경옥과 희중이 존재하는 이중적 공간입니다. 이처럼 대학은 독선적인 이데올로기가 강요된 공간이면서 퇴폐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소양의 '방'은 이 두 공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소양이 홀로 간직했던 고유한 세계를 가정에서 유지할 수 없었으며 대학 사회에서도 이념과 환락의 두 공간을 넘나들며 생존을 꿈꿨지만 불가능했습니다. 궁극적으로 소양의 방은 '회색 지대'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 곳을 선택하도록 강요된 사회에서 개인이 추구하는 꿈은 미로에 갇히기 십상입니다.

 

'육 페니를 잃어버린 소년' 이야기는 인간에 대해 당연히 가져야 하는 연민을 전해 줍니다. 이제 겨울 열 살인 어린 소년은 이 세상의 어떠한 죄로부터 자유롭습니다. 갚아야 할 빚은 소년과 무관하지만, 원죄와도 같은 것입니다. 작가는 이것 때문에 아이다움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소양은 그 소년처럼 심장이 마르도록 울고 있었지만 우리 사회는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 소양을 삶의 부채로부터 해방시켜 주지 못했습니다.

미양이 종로에서 만난 남자아이는 소양처럼 집에서 몰래 빠져나와 욕망의 거리 한쪽에 있습니다. 그 청년은 무심하지만 청소부의 삶을 읽기도 하고, 아무 목적도 없이 산다고 말하지만 세상에 대해 호기심을 잃지 않습니다. 작가는 이 청년이 결백한 세계를 꿈꾸고 지식이나 관념에 오염되지 않은 상태로 있다고 봅니다.

작가는 두 남자아이를 통해 연민과 순수를 중요한 메시지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소양은 어느 곳에서도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방황하는 청춘의 초상입니다. 우리 사회는 청춘을 소멸의 길로 내몰지 말고 그들의 슬픔을 어루만지고 그들의 순수함을 온전히 지킬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합니다. (p.182-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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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경(姜石景, 1951년 1월 10일 ~ )

대한민국의 소설가.

1951년 대구 출생. 1974년 이화여자대학교 미대 조소과를 졸업하였다. 1973년 대학 재학 중 이대학보사 주최 추계문예에 단편소설 「빨간 넥타이」가 당선되었으며, 당시 심사위원 이어령의 추천으로 단편 「근(根)」, 「오픈게임」으로 『문학사상』 제1회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숲 속의 방』으로 오늘의 작가상과 녹원문학상을 수상했고, 단편 「나는 너무 멀리 왔을까」로 21세기 문학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소설집 『밤과 요람』, 『숲속의 방』, 장편소설 『가까운 골짜기』, 『세상의 별은 다 라사에 뜬다』, 『미불』, 장편동화 『인도로 간 또또』, 산문집 『일하는 예술가들』, 『인도 기행』, 『능으로 가는 길』, 『저 절로 가는 사람』, 『이 고도를 사랑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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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방 - 강석경 (민음사)

나는 너무 멀리 왔을까 - 강석경 (문학동네)

능으로 가는 길 - 강석경 (창비)

내 안의 깊은 계단 - 강석경 (창비)

미불 - 강석경 (민음사)

밤과 요람 - 강석경 (창비)

밤과 요람 - 강석경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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