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한국문학 413 (86)
방현석
새벽 출정
최시한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
움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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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한 -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 (1996년)
7월 1일
남들은 즐겁게 사는데 나만 그러지 못한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럴 만한 뾰족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으니, 어디 심하게 아프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나는 그렇다 치고, 똑같은 노릇을 날마다 되풀이하면서 다들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모르겠다. 좌우간 즐거운 사람들 때문에 시끄럽다.
거리와 차 속을 가득 채운 유행가, 아무 데서나 터지는 방정맞은 웃음소리, 기름진 음식들을 우적우적 씹는 소리, 삼삼칠 박수 소리, 와아 하는 함성, 함성, 우우우, 너는 왜 즐거운 표정을 안 짓는 거지? - 한 달쯤 앓고 나타나면, 나를 손가락질하며 그렇게 따지지는 않겠지. 좀 이상한 방법이긴 하지만, 즐겁지 않은데도 즐거운 척하는 것보다는 낫다. (p.99)
셋째 시간이 끝나고 가 보니 윤수는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오셔서 데리고 갔다고 했다. 시간을 낭비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 두 시간 동안 교실에서 수학과 화학 책을 뒤적일 게 아니라 양호실에서 윤수하고 있는 편이 나았을 거다. 윤수를 지키고 있던 양호실의 그 조용함과 편안함이 그런 책 속에는 없으니까.
책에는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더 많으니까 (하지만 그런 조용함이나 편안함 따위는 시험에 안 나온다). (p.101)
<허생전>을 배웠다.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p.111)
(같이 읽으면 좋은 책)
허생전 (연암 박지원 소설집) - 박지원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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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이란 사람이 정말 있었다면, 박지원도 <해생전>을 쓰면서 이랬을 거다.자기 뜻대로 의미를 붙이고, 뭘 넣거나 빼 버리고.
선생님의 마지막 말씀이 떠오른다.
"이번 시간에는 사건들, 그리고 그것이 연루되어 이루는 줄거리 중심으로 살폈는데, 다음 시간에는 허생이 누구냐, 허생이란 인물이 과연 어떤 기질과 생각을 지닌 사람이냐를 중심으로 살펴 보겠습니다. 다른 인물들과 비교하면서 잘 읽고 생각해 오세요."
허생이 누구냐고? 선생님의 질문엔 끝이 없다. 이번에는 왜냐가 아니라 누구냐다. 나도 참 병이다. 끝이 없는 질문들을 졸졸 쫓아가며 베끼고 있으니, 손이 아파서 더 못 쓰겠다고 그 아픈 손으로 써 놓고, 그러고도 자꾸 더 쓰고 있으니. 나란 사람은 누구냐? 총이 아니라 연필을 든, 투쟁 정신으로 빛나는 눈이 아니라 신경을 너무 써서 핏발이 선 눈을 가진, 투사가 아닌 환자. 환자? 어떤 환자? (p.118)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열하일기 - 박지원 (김혈조 옮김, 돌베개)
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 - 박지원 (김명호 옮김,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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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이 한참 벌어지고 있는데 윤수가 내게로 왔다. 윤수는 나를 교실 뒤꼍의 라일락 나무 그늘 속으로 데리고 갔다. 휴식 시간이 아닌데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지만,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윤수는 흥분해서 심하게 더듬거렸다. 걔의 말을 주워 모으면 이렇다. 왜냐 선생은 결국 쫓겨날 거다. 허생처럼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수밖에 없을 거다. 자기편이 너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윤수는 내게 물었다. 너는 물론 왜냐 선생 편이지?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물은 뜻은 그게 아니었다. 윤수는 말했다. 그렇다면 너는 왜 동철이와 싸우지 않느냐, 어서 들어가서 동철이 녀석의 주장을 꺾어라, 너처럼 글도 잘 쓰고 말도 술술 하는 애가 안 한다면 누가 하겟냐.
k, 나는 무척 곤혹스러웠다. 나 역시 왜냐 선생이 너무 외로운 처지고 어쩌면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윤수가 바라는 행동 같은 걸 하러 나서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 어떻게 될지, 아직 잘 모르는 상태가 아니냐. 동철이 따위 하고 싸워서 이겨 봐야, 무슨 소용이냐....나는 더듬고 있었다.
예쁘고 똒똑한 나의 k, 왜 나서고 싶지 않았느냐고 묻지 말아다오. 나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나서고 싶지 않았는지 나설 수 없었는지조차 잘 모르겠다. 이유를 대라면 무어라 하기는 하겠지만, 어떤 말이든 결국은 적절치 않게 될 터이다. 이상스럽다는 듯이 윤수는 잘 모른다니, 노동자니 빨갱이니 하는 말을 모른다는 거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뭐, 뭘 모른다는 거야? 왜냐, 왜냐 선생 옳다는 걸 아, 알고 있잖아?"
동철이가 집단의 질서를 들먹거리며 여전히 떠들고 있는 교실에 들어서면서, 나는 왠지 자신이 그 어느 때보다도 비참하게 여겨졌다.
K, 윤수가 말했듯이, 선생님이 학교에서 쫓겨나 정말 허생처럼 어디론가 가 버리게 된다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허생이 살던 그때와 다름없어지는 셈이다. 아니, 허생은 자진해서 가지만 선생님은 쫓겨서 가는 거니까 그때보다 더 어두운 세상이다. 아, 알겠다. 허생이 왜 그 천당 같은 섬에서 글 아는 자들을 모두 데리고 나왔는지. 지금 왜냐 선생을 '화근'으로 취급하여 몰아붙이는 이들도 알고 보면 모두 글 아는 자들이 아니냐.
네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K, 나도 내가 우습다. 지금 이 판에 <허생전>을 따지고 있으니 말이다. 어떻든지, 선생님이 허생만 한 능력을 가지고 계셨으면 좋겠다. 아니면 이완 대장들이 모두 <허생전>에서처럼 황급히 뒷문으로 도망을 치거나, 나로서는 지금 그런 일이나 바랄 수밖에 없다.
이완 대장들은 왜 '안 된다'고만 하는 걸까? 세상에 이완 대장은 왜 그렇게 많을까?
아아, 그만두자 K, 말은 이제 그만하자.
나만의 K, 너의 그 뽀오얀 귀를 닫으렴. 소리가 안 들리게 잠의 달빛 속에 아주 잠가 버리렴. (P.121-124)
"잘 찾았군요. 그럼 내친 김에 질문을 하나 더 하겠습니다. 홍길동도 가난한 이들을 돕고 허생도 그러는데, 그 돕는 행동에도 어떤 차이점이 있지 않습니까?"
나는 막막했다. 그것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나는 긴장되어 손을 떨면서 그냥 떠오르는 대로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홍길동은, 일종의, 투사입니다. 홍길동은 자기 부하들이나 자기가 돕는 이들과 하나가 되어 싸우고, 끝에 가서 승리합니다. 그러나 허생은, 돕기만 할 뿐 어디까지나 선비이고, 그래서 결국 지고...맙니다."
허생이 누구한테 졌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아니 허생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이길 수 있는 사람이라 여겨 왔는데, 홍길동하고 비교하다 보니 말이 그렇게 되었다. 선생님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커다란 소리로 말씀하셨다.
"지금 한 말을 잘 들었겠죠? 참말 멋진 지적입니다! 본인도 얼마쯤은 그 뜻을 알고 말했겠지만, 그 말에는 참으로 깊은 뜻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두고두고 곱씹을 만한 뜻이 담겨 있어요. 우리가 이렇게 소설을 읽고 궁리하는 건 바로 그런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섭니다. 허생은 홍길동 같은 영웅처럼 보이지만 사실 영웅답지 못해요.
경석이가 했던 질문으로 돌아가 보면, 허생은 장사해서 돈을 벌고 그걸로 가난한 백성들을 돕지만, 항상 선비로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는 한 번도 선비의 자리, 양반 사대부라는 자리를 떠난 적이 없다 그 말입니다. 허생은 장사를 하지만 장사꾼을 경멸하고, 백성을 돕고 북벌책 같은 국가 대사를 논하지만 조정에 뛰어들어 적극적으로 그것을 실천하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사농공상을 구별하던 당시의 규범, 때가 아니면 초야에 은둔한다는 선비의 처세관에 묶여서 거리를 두고 비판하거나 도와줄 뿐, 하나가 되어 함께 살고 책임지지는 않는 겁니다. 이 점이 바로 허생의 한계요 <허생전>을 지은 연암 박지원의 한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사회를 비판은 하고 있지만, 그 사회를 바로잡으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지는 않았습니다. 양반 계층의 생각, 사대부가 쓰는 말을 버리지 못하고 있어요."
선생님은 질문하기를 잊으신 듯, 그런 뜻의 말씀을 오래 더하셨다. <허생전>이 한글이 아니라 한문으로 쓰인 것도 그런 한계와 관련이 있다고 하셨다. 그러고는, 공책에다 홍길동이 꾸민 율도와 허생이 꾸민 동남쪽 섬이 어떤 점에서 서로 비슷하고 다른지에 관해 적어 보라고 하셨다. (p.128-130)
왜냐 선생님의 <허생전> 셋째 시간은 없다! 아마 그 시간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왜냐 선생님한테 배울 <허생전>은 영원히 다 배우지 못하는 셈이다. (p.137)
국어 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대신 들어오셨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 너무 자기주장만 앞세워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다. 모든 의사표시는 절차를 밟아 법대로 해야지, 남이 어쩌잔다고 우우 거기에 쏠려서는 못쓴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허생이 선비의 법대로 돈벌이를 하지 않았다면 도둑들을 사람답게 살도록 해 줄 수 있었을까요? 다수결이라면 그야말로 이완 대장이 좋아하는 건데, 그럼 선생님은 세력 있는 자들의 눈치나 보는 이완 대장이 옳고 그를 찌르려던 허생은 그르단 말씀입니까?
하지만 몸속 어딘가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안 돼. 그건 네 일이 아냐. 네 일은 다로 있어. 딴 곳에 있어. 네가 이완 대장의 세상을 알기는 아는 거야?
그때 선생님이 날카롭게 말했다.
"박윤수는 어디 갔지?"
나는 소스라치며 살펴보았다. 윤수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어디가 아파 양호실에 갔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누군가 말했다.
"선생님, 저기 저게...."
창밖을 보았다. 땡볕이 쏟아지는 누우런 운동장 한가운데에 누가 홀로 주저앉아 있었다. 윤수였다. 무릎 앞에 무어라 적힌 종이가 세워져 있었다. 나는 온몸이 떨렸다. 그 종이에 적힌 말은 보이지 않아도 읽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우르르 창가로 몰렸다.
"자리에 앉아라, 앉아! 저, 저 녀석이 퇴학당하고 싶어서!"
선생님이 밖으로 뛰어나갔다.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온몸의 움직임을 또렷이 느끼면서 복도를 지나, 운동장 가운데로 뛰기 시작했다. 윤수가 땅바닥에 누워 버리는 게 보였다. 내가 업으러 가는지 업히러 가는지 알 수 없었다.
왜냐 선생님의 <허생전> 수업은 계속되고 있었다. (p.137-139)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죽은 시인의 사회 - 클라인바움 (한은주 옮김, 서교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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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해설>
국어 선생님인 '왜냐 선생'의 수업 방식과 전교조 활동에 대해 학생들의 태도는 두 편으로 나뉩니다. '나'는 주변 인물을 관찰만 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 선생'을 심정적으로 지지하지만 드러내 놓고 행동할 만큼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옹호하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나'의 이런 성격은 K라는 인물을 통해 잘 드러납니다. 짝사랑하는 이경미를 K라는 가칭으로 부르고 실제 말을 걸기 보다는 멀리서 지켜보는 것이 더 좋다는 모습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결말에서 '나'는 윤수가 운동장에서 혼자 시위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자리를 박차고 윤수를 향해 달려갑니다. 그 이후의 행동에 대해서는 소설에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늘 고민하고 갈등만 하며 행동적 실천력이 떨어지는 '나'가 윤수를 향해 달려간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윤수는 몸이 허약하고 말을 더듬어 표현에 미숙하지만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국어 선생님의 뜻을 가장 잘 파악하고 그 뜻을 따르려는 인물입니다. 국어 선생님이 전교조 가입으로 교장 선생님과 갈등을 빚다가 결국 해직되었을 때 그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홀로 시위를 하는 사람은 윤수입니다. 윤수의 항거에 자극받아 그를 향해 달려가는 '나'의 행위는 기존의 관찰자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국어 선생님의 뜻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능동적인 태도로 변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뒤에 '나'의 구체적인 행동이 드러나 있지 않지만, 변화된 태도에서 희망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p.182-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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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한 ( 1952년 - )
대한민국 소설가.
1952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서강대 국어국문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경상대 사범대학 국어국문교육과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숙명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낙타의 겨울>,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고치고 더한 수필로 배우는 글읽기>, <가정소설연구>, <소설의 해석과 교육>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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