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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VI. 현대 인문, 교양, 역사/1. 동양 - 인문, 교양, 역사

위단의 장자심득 - 위단 (이성희 옮김, 시그마북스)

by handaikhan 2023. 2. 3.

 

위단의 장자심득

 

어제 나도 이곳을 지나가는데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네. 얼른 사방을 둘러보니 흙길에 마차 바퀴가 지나간 자국이 보이고, 그 팬 자국 속 고인 물에서 붕어 한 마리가 펄떡거리고 있지 않겠나?

그래서 내가 붕어에게 물었지. "거기서 뭘 하고 있는가?" 붕어가 대답했지. "나는 동해의 해수 관리요. 지금 나한테 물 한 되나 물 한 말만 퍼주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오."

내가 말했지. "알았다. 내가 지금 오월지방으로 가는 길이니, 거기에 도착하면 서강의 물ㄹ을 끌어다가 자네를 살려줌세." 그러자 붕어가 외쳤지. "그런 입 발린 말이나 할 거면, 나를 건어물 가게에서 찾는 게 더 빠를 것이네!" (p.19)

(비교)

고사성어 대사전 - 김성일 (시대의창)

교자채신(敎子採薪)

당(唐)나라 임신사(林愼思)의 속맹자(續孟子) '송신(宋臣)'에 나오는 말로, 물고기를 주기보다는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라. 또는 무슨 일이든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해야 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맹자(孟子)가 송신(宋臣)에게 물었다. “그대의 왕은 백성들에게 어떠하오?” “잘 어루만져 줍니다.” “무엇으로써 어루만져 줍니까?” “흉년이 들어 식량이 부족하면 창고를 열어 구휼하여 백성들이 부족하지 않도록 해 줍니다. 백성들이 추위에 떨면 비단을 풀어 백성들에게 주어 추위에 떨지 않도록 합니다.” 그러자 맹자가 말했다. “그대의 왕은 노(魯)나라 사람만도 못하군요. 그대는 노나라 사람이 땔나무를 하는 것으로 아들을 가르친 것을 아시오? 백 리 떨어진 남산에 땔나무가 있고, 백 보 떨어진 북쪽 과원(果園)에도 땔나무가 있는데, 노나라 사람이 아들에게 나무를 해 오라고 하면서 물었소. ‘나무를 하러 과원으로 가겠느냐 아니면 산으로 가겠느냐?’ 아들이 ‘과원이 가까우니 그리로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하자 노나라 사람이 말했소. ‘가깝기 때문에 (나무하기)쉽다고 생각하여 나무를 하면 안 되고, 멀기 때문에 (나무하기)어렵다고 생각하여 나무를 안 하면 안 된다. 가까운 곳은 우리 소유의 땔감이지만 먼 곳은 천하 사람들의 땔감이다. 우리 집의 땔감은 다른 사람이 감히 해 가지 못하기 때문에 천하의 땔감이 떨어져도 우리 집의 땔감은 남아 있게 된다. 어찌 천하 사람들의 땔감을 먼저 해 오지 않으려는 것이냐? 우리 집의 땔감이 다 떨어지면 천하의 땔감이 어찌 남아 있겠느냐.’”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신동준의 고사성어 독법 - 신동준 (리더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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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왕이 물었다. "장자 선생, 어쩌다가 이렇게 초라하게 전락하셨소?"

그러자 장자가 대답했다. "저는 가난하긴 하지만 초라하진 않습니다. 마음에 꿈을 가지고서도 그 꿈을 이루지 못하는 선비야말로 초라하지요. 대왕께서는 나무를 타는 원숭이를 보지 못하셨습니까?  원숭이들이 녹나무, 개오동나무,  장목 같은 큰 나무 사이를 날쌔게 뛰어다닙니다. 마치 세상이 자기 것인 양 기세등등할 때는 신궁 후예와 봉몽도 도저히 잡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놈들이 가시덤불에 빠지면 두려움에 사로잡혀 어쩔 줄 모르고 힘껏 뛰어오르지 못합니다. 그건 원숭이의 몸이 날렵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도 초라해지고 싶지 않지만, 시대를 잘못 타고 났으니 저라고 무슨 수가 있겠습니까?"

진정 어진 사람과 뜻을 품은 사람은 가난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오직 정신이 초라해짐을 두려워 할 뿐이다.

누구나 가난 때문에 곤란을 겪을 수는 있다. 하지만 가난에 대처하는 태도를 결정짓는 것은 가난 그 자체가 아니다. 그보다 는 그 사람이 가난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돈'을 얼마나 중요시하는지에 달렸다. (p.20-21)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도, 혹은 재벌 2세나 금수저도 아니라, 먹고 사는 데 큰 걱정이 없는 보통 사람일 수 있다. 왜냐하면 보통 사람들은 극빈층도 아니고, 꼭 대박을 터뜨리겠다는 물질적 집착에도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통 사람들은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며, 모두 행복할 자격이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행복과 불행은 마음속에 있으므로 보통사람이라 해서 무조건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p.23)

 

하늘과 땅은 큰 아름다움이 있지만 말하지 않고, 사게절은 분명한 법칙이 있지만 따지지 않으며, 만물은 정해진 이치가 있지만 설명을 늘어놓지 않는다. (p.26)

<莊子 外篇>

第22篇 知北遊(지북유)

第2章

天地有大美而不言(천지유대미이불언)

四時有明法而不議(사시유명법이불의)

萬物有成理而不說(만물유성리이불설)

聖人者(성인자)原天地之美而達萬物之理(원천지지미이달만물지리)

是故至人無為(시고지인위무)大聖不作(대성부작)

觀於天地之謂也(관어천지지위야)

 

천지자연은 커다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말로 표현하지 않으며, 사계절은 밝은 법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따지지 아니하며,
만물은 이루어진 이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는다.
성인은 천지의 아름다움에 근원하여 만물의 이치에 통달한 사람이다.
이 때문에 지인(至人)은 무위(無爲)하며 위대한 성인(大聖)은 작위하지 않는다 하니, 천지자연의 뜻을 잘 관찰하고 있음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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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의 분노부터 쥐의 억울한 신세까지, 분노는 도대체 몇 단계나 지속되었는가? 분노는 그들을 하나의 쇠사슬로 묶어버렸다.

사실,, 우리 각자의 마음에는 모두 알 수 없는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 여러분은 진정한 평안을 갈망하는가?

우리가 이렇게 억울해진 진짜 원인이 무엇일까? 다른 사람이 우리를 억울하게 할 때가 많아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사람이 줄 수 있는 인정과 돈을 버리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장자는 가난하게 살았지만 돈에 전혀 집착하지 않았다. 장자는 깊이 있는 사상과 뛰어난 재능이 있음에도 타인의 인정에 집착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살아 있는 동안 '타인의 인정'과 '돈' 이 두가지에 매우 집착한다. 그러다 인생의 한게 상황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타인의 인정과 돈이 진정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고 이를 내려놓기도 한다.

"살아서 진흙탕 속에서 꼬리를 끌며 기어다니기를 원한다."

진흙탕 속을 기어다녀도 살아 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훨씬 나으니까 말이다. (p.30-31)

 

아내가 막 세상을 떠났는데, 나라고 왜 마음이 괴롭지 않겠는가? 하지만 내가 근본을 찾아올라가 만물의 기원을 살펴보니, 사람이란 전부 생명이 없었던 존재가 아닌가? 생명이 없었다는 것은 형체가 없었다는 것이고, 형체가 없었다는 것은 기운이 없었다는 것이네. 그럼 생명은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 천지 가운데 있는 듯 없는 듯한 기운이 모여서 기운이 점차 형체가 되고, 형체는 다시 생명으로 잉태되는 것일세. 사람의 생명은 이렇게 탄생했다가 지금 또다시 소멸을 향해 가게 된 것이지. 인간의 생로병사가 춘하추동 사계절의 변화랑 똑같지 않은가? 내 아내는 이 길을 따라 돌아간 것이네. 지금 이 순간 아내는 천지 가운데서 조용히 편안하게 쉬고 있을 텐데, 나는 이 땅에서 아내가 죽었다고 목 놓아 울고불고 한다면 그건 생명의 진리에 너무 무지한 처사가 아닌가? (p.32)

 

내가 죽은 후에는 하늘과 땅으로 관을 삼고, 해와 달로 연벽을 삼으며, 별들로 아름다운 진주를 삼고, 만물로 예물을 삼거라. (p.33)

 

내 시체를 들에다 버리면 까마귀와 독수리가 파먹고, 땅에 묻으면 개들이 파먹을 것이다. 그렇다면 너희들은, 까마귀와 독수리의 먹잇감을 빼앗아서 땅속에 사는 개미에게 주겠다는 심산이냐? 너희들은 왜 그렇게 개미만 편애하는 것이냐? (p.34)

 

공자왈 인생도 아직 제대로 깨닫지 못했는데, 어떻게 죽음에 관한 일까지 생각하겠느냐? (未知生 焉知死)

공자의 가르침은 따뜻한 마음과 소박한 가치관이다. "현재의 삶에 집중하라." 현재의 삶에 집중하며, 타인의 인정에 흔들리지 않고, 돈에 집착하지 않고, 죽음의 두려움까지 뛰어넘는다면, 우리의 마음은 얼마나 큰 도량과 경지에 이르게 될까? (p.35-36)

(참고)

논어 강설 - 이기동 (성균관대출판부)

季路問事鬼神 子曰 未能事人 焉能事鬼 曰 敢問死 曰 未知生 焉知死

(계로문사귀신. 자왈미능사인, 언능사귀? 왈감문사. 왈미지생, 언지사)

계로가 귀신을 섬기는 것에 대해 여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도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는가?' 감히 죽음에 대해 여쭙습니다. '삶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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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가 절대적으로 중시하는 가치는 과거 성현의 도덕이며, 인생을 살며 공을 세우고 사회적 업적을 쌓아야 한다는 신념인데 반해, 도가가 중시하는 것은 더 높고 광활한 하늘까지 넘어설 수 있는 정신적인 자유, 인생의 마지막 성공 이후의 초월에 있다.

유가사상은 사회라는 척도 안에서, 인간이 해야 할 일을 담당하도록 요구한다. 하지만 도가사상은 생명이 있는 인간에게 초월하도록 요구한다. 담당이란 사회적인 책임을 져야한다는 뜻이고, 초월이란 생명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뜻이다. 

장자의 말에 따르면, 인생 최고의 경지는 천지 사이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것이며, 또한 마음의 두꺼운 장벽과 장애물을 깨뜨려 우주를 고요히 직시하며 천지의 광대함 가운데에서 인생의 정확한 좌표를 찾아내는 것이다.

내 삶의 좌표가 정확할 때에만 내가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다. 얽매임에서 벗어나 마음속 깊은 곳의 이상을 거침없이 분출하며 소망하던 자아상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려움을 단지 이 순간의 것으로 한정하자. 그리함으로써 우리는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영원한 생명의 인도를 받을 때 한가로이 노닐 수 있으니, 이는 우리 각자가 영원히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p.36-37)

 

경지의 크고 작음이 한 사람의 사고방식을 결정한다. 사람들은 항상 세속적인 눈으로 기존의 가치관에 따라 사물의 가치를 판단한다. 그러나 사물의 진정한 가치는 큰 경지에 이른 사람의 눈에만 보인다. (p.43)

 

장자는 <소요유>에서 우리에게 절대적인 난제를 던진다. "과연 유용한 것이란 무엇인가?"

부모는 자식에게 모든 사랑을 아낌없이 쏟아 붓지만, 너무나 많은 규칙을 만든 탓에 자녀의 유용한 능력들마저 막아버렸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고정관념을 심어주고 있다. 아이가 조롱박이라면 앞으로 커서 바가지만 되어야 한다. 강과 바다를 건너는, 물에 더오르는 거대한 구명용 호리병이 될 수는 없다. 아이가 흙 밭이라면 야채와 곡식은 심을 수 있지만, 그 흙 밭 아래에 보화가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일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자신의 마음과 지혜를 옭아맨다. 일상적인 삶의 태도로 가련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한계를 규정하는 것이다. 이런 한계는 본래 깨뜨릴 수 있다. 일상적인 사고방식을 깨뜨릴 때에만 진정 한가로이 노니는 삶을 동경할 수 있다. 진정한 소요유란 속박되고 얽매임이 없는 마음을 말하기 때문이다. (p.46)

 

'핵심 경쟁력'이라는 말이 있다. 사실 우리 모두 자신ㄴ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나의 핵심 경쟁력은 과연 무엇인가?'

핵심 경쟁력이란 다른 사람이 모방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것을 가리킨다. 현 시데에는 '최고'라는 개념이 점차 사라지고, 오직 '유일'한지를 묻고 있다.

작은 조롱박은 표주박을 만들 수 있어 유용하다. 작은 나무로 자랐다면 탁자나 의자를 만들 수 있어 유용하다. 큰 조롱박이 열렸대도 부수어버릴 필요는 없다. 물에 띄워 강과 바다에서 쓸 수 있으므로 역시 유용하다. 나무가 크게 자랐다면 사람들이 비바람을 피할 피난처가 되므로 그것 도한 유용하다.

절대 남을 부러워하지 말자. 대신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보자. '내 핵심 경쟁력은 무엇일까? 내게도 대체 불가능한 장점이 있는가?' (p.48-49)

 

"목공은 내가 쓸모없는 나무라고 했는가? 내가 유용한 재목이었더라면 일찌감치 잘려버리지 않았겠는가? 이렇게 클 때까지 자랄 수 있었겠는가?"

상수리나무는 또 말했다. "과수나모아 밭의 열매를 보아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유용한 것이 아닌가? 그런 나무가 매년 풍성한 과실을 주렁주렁 맺으면 사람들은 입에 침이 마르게 찬양을 하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큰 나뭇가지는 전부 잘리고, 작은 나뭇가지도 몽땅 이리저리 휘어지고, 맺은 열매도 매년 익기만 하면 사람들에게 다 빼앗긴다. 유용하기 때문에 오히려 자기를 상하게 하고 일찍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지. 반면에 나는 전혀 쓸모가 없기 때문에 자기 목숨을 보전한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나에게는 크게 유용하다." (p.50)

 

세속의 작은 경지에서 사물을 관찰하면, 현실적인 이익을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의 판단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마음에 큰 경지를 품게 된 사람은, "하늘이 나를 낳은 것은 분명히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는 말을 이해하고 확신하게 된다. (p.51-52)

 

두보(杜甫)  (중국 당나라, 712년 ~ 770년)

<贈李白(증이백)> 

秋來相顧尙飄蓬 (추래상고상표봉)

未就丹砂愧葛洪 (미취단사괴갈홍)

痛飮狂歌空度日(통음광가공도일)

飛揚跋扈爲誰雄(비양발호위수웅)

 

가을 되어 만나도 아직 흩날리는 쑥처럼 떠도는 신세

단사를 찾지 못해 갈홍 보기 부끄럽다고 하네

통쾌하게 술 마시고 목청껏 노래하며 허송세월하니

이 기고만장은 누구에게 영웅으로 보이기 위함인가?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두보 오칠언절구 (강민호 옮김, 대산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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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은 군주를 위해, 역사를 위해, 대의명분을 위해 살지 않았다. 봉호 하나를 남기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었다. 단지 자기의 양심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살았다. 그러므로 아무것에도 속박 받지 않는 천지간의 영웅이었다. (p.53)

 

진정한 영웅은 자신 양심에 주인이 되는 사람이다. 자신의 지혜에 따라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타인에게도 다른 경지를 개척해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삶의 '각오'다.

각오란 불교 선종의 깨달음에 속하며, 두 가지 단계를 포함한다. '각'이란 깨달음의 첫 번째 단계로, 예를 들어 어떤 지식을 듣거나 어떤 이가 한 말 한마디를 들은 후, 순간 시야가 밝아지고 지혜의 세례를 받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일생은 장기간의 수행으로 바라본다면, 어떤 일을 부딪혔을 때 자신의 내면을 되돌아보고 생각을 하고 이치를 깨닫는 일은 필수적이다. 그래서 하루 이틀이 아닌 길고 긴 참선이 쌓여 가져다주는 변화의 과정을 '오'라고 한다.

'각'이란 순간이며, '오'는 과정이다. 모든 '각'의 순간이 지나 긴 일생의 '오'와 결합되면서 당신이 도달하는 것은 마침내 진정한 자신의 마음을 보게 되는 경지다. 이것을 인생의 대각오라고 한다. (p.54)

 

장자의 인생철학은 큰 경지를 가지고 인생을 보라고 가르친다. 모든 부귀와 영화, 시비와 분쟁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는지다. (p.54)

 

생명이란 전광석화처럼 한순간에 사라진다. 이렇게 유한한 생명 속에서 가난하건, 부유하건, 어떤 인생을 살아가건 간에, 절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따면 그것은 바로 마음의 행복이다.

어떤 사람이 부처에게 물었다. "부처란 무엇입니까?"

부처가 대답했다. "부처란 아무런 걱정이 없는 것이다." (p.56)

 

인생에서 크고 작은 경지가 있다고 하지만, 우리가 겪어온 삶은 대체적으로 비슷하다.

그렇다면 진정 중요한 것은 객관적으로 어떤 기회를 얻었느냐가 아니라, 주관적으로 어떤 도량을 가지고 있느냐다. 바꿔말하자면 객관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기회가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우리 마음의 지혜가 어떤 주관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인생의 쓸모를 판별해 내느냐가 중요하다.

눈앞에 보이는 타인의 인정과 돈에만 과도하게 집착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봄꽃과 가을의 달을 누릴 기회를 놓치게 된다. (p.57)

 

사마천은 <사기>에서 말한 적이 있다. "천하는 이익을 위해 왁자지껄하게  다가오며, 또 이익을 위해 시끌벅적하게 떠나간다." 이익, 돈을 제외한다면, 사람들이 두번째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명예, 즉 사람들의 인정이다. (p.61)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사마천의 부자경제학 - 신동준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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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디작은 새가 숲속에서 살며 설사 광활한 숲의 새에게 안식을 가져다 줄 수 있다 해도, 둥지를 트는 데는 가지 하나면 족하다. 작디작은 두더지가 강에서 물을 마시는데, 설령 호기롭게 흐르는 거대한 강물을 다 마실 수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자기 작은 배만 채우면 될 뿐이다. (p.62)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톨스토이 단편선) - 톨스토이 (박형규 옮김, 인디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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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추수>

만물은 한결같이 평등한 것이니, 어느 것이 못하고 어는 것이 더 나은가? 도에는 시작도 끝도 없지만, 만물은 삶과 죽음이라는 변화가 있다. 그러므로 만물은 일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p.63)

 

우리는 인생길을 가고, 쉼 없이 달리고, 하루 종일 바삐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 길을 떠났는지 잊고 살고 있다.

대부분의 우리는 이런 막연함 속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의 목적을 분명하게 알아야 하며, 자신의 방향을 알고, 진정한 득실관게를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한다.

인생의 위대한 진리, 큰 경지는 때로 인생에서 가장 세미한 곳에서 발견하고, 느낄 수 있다. 

때로 큰 경지는 내 눈 앞의 작은 일을 통해서도 발견할 수 있다. 즉 우리 마음이 고요하고 우리 시선이 지혜로워질 때, 큰 경지를 볼 수 있는 눈을 갖데 된다. 우리의 마음이 고요해질 때 각종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두 눈도 영민해져,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생 최고의 도리를 볼 수 있게 된다. (p.64)

 

사람은 스스로 깨닫지 못했던 가장 세미한 부분에서 오묘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관건은 이를 깨닫기 위해 마음을 다 하느냐, 이 미세한 부분에서도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과 깨달음을 놓치지 않고 찾아내느냐는 데 달려 있다.

우리의 눈이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다. (p.65)

 

이 세상에서 우리는 '고개를 들어 우주의 광대함을 바라보고 아래를 굽어보아 만물의 무성함을 살피는 일'이 완전히 가능하다. 천지 삼라만상이 우리의 시야 속에 완벽하게 들어와 있다면,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만물에 충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장자>

마음이 만 길 위에서 놀고, 천지의 정신과 홀로 왕래한다. (p.69)

心游萬仞, 獨與天地精神往來 (심유만인, 독여천지정신왕래)

 

사람들은 각자 인생 경험이 다르고 소질과 재능도 다르다. 체험과 깨달음은 우리의 시작을 좌오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인생은 태도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완전히 역전이 가능하다. 선천적인 성격, 후천적인 기회, 자신만의 가치관이 나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p.69)

 

소요유는 우리가 피어나는 꽃을 즐기고,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하늘 끝을 날아 태양 저쪽 구름의 끝으로 뛰어오르는 작은 새를 볼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이럴 때에만 우리의 마음이 깨끗해질 수 있다. (p.76)

 

<무문 혜개선사(無門 慧開禪師. 1183~1260, 송대(宋代) 선사(禪師)>

 

春有百花秋有月 (춘유백화추유월)
夏有凉風冬有雪 (하유량풍동유설)
若無閑事掛心頭( 약무한사괘심두)
便是人間好時節 (편시인간호시절 )

 

봄에는 꽃이 있고 가을에는 달빛이 있으며

여름에는 산들바람이, 겨울에는 희 눈이 곁에 있다.

공연한 일이 마음에 걸리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인생의 좋은 시절이다.

 

눈에 먼지가 있으면 삼계가 좁지만 마음에 걸리는 일이 없으면 침상 하나도 넓다. (p.75-76)

內有, 心頭寬 (안내유진삼계착, 심두무사일상관)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무문관 - 무문 혜개선사 (김태완 옮김, 침묵의향기)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무문관) - 강신주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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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는 어느 곳에든지 존재한다. 그러므로 도도 어느 곳에든지 존재한다.

중국 속담에 "언덕에 꽃이 한가득 피었어도, 소와 양의 눈에는 먹잇감으로만 보인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꽃을 감상할 능력이 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이 돈, 명예와 인정에 가려져 있을 때는 우리가 보는 세게는 그저 식량으로 가득 찬 곳일 뿐이다. (p.79)

 

<장자>

호접몽(胡蝶夢)

"예전에 내가 꿈을 꾸었는데 내가 팔랑팔랑 춤을 추는 큰 나비가 되었다. 그렇지만 내가 나비 꿈을 꾼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내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p.85)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역주 장자 - 안병주 (전통문화연구회, 전4권)

<莊子>

第2篇 齊物論

第6章

昔者莊周夢爲胡蝶(석자장주몽위호접)
栩栩然胡蝶也(허허연호접야) 自喩適志與(자유적지여) 不知周也(부지주야)
俄然覺(아연교) 則蘧蘧然周也(즉거거연주야) 不知周之夢爲胡蝶與(부지주지몽위호접여)
胡蝶之夢爲周與(호접지몽위주여)
周與胡蝶(주여호접) 則必有分矣(즉필유분의) 此之謂物化(차지위물화)

 

옛날에 장주(莊周)가 꿈에 나비가 되었다.
펄럭펄럭 경쾌하게 잘도 날아다니는 나비였는데 스스로 유쾌하고 뜻에 만족스러웠는지라 자기가 장주인 것을 알지 못했다.
얼마 있다가 화들짝하고 꿈에서 깨어 보니 갑자기 장주가 되어 있었다.
알지 못하겠다. 장주의 꿈에 장주가 나비가 되었던가
나비의 꿈에 나비가 장주가 된 것인가?
장주와 나비는 분명한 구별이 있으니 이것을 物의 변화[物化]라고 한다.

장자 내편 - 안병주 (전통문화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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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오직 자신의 마음을 맑은 물 보듯 볼 수 있을 때에만 이 세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출발점을 찾을 수 있고, 비로소 타인에게 선대할 수 있다.

세상의 만물은 천차만별이다. 서로 다른 각도에 서서 바라보면 사물은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자연을 따라야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장자 <추수>

달의 차고 기움을 알았기에, 물건을 얻어도 기뻐하지 않고 물건을 잃어도 걱정하지 않는다. 사람의 분수란 항상 일정하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p.87)

 

우리 눈은 밖을 향해서 사물을 발견하는 능력과 안을 향해서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는 두 가지 능력이 있다.

내가 접하는 외적인 세계의 크기만큼, 마음의 깊이도 달라져야 한다. (p.94)

 

세 자녀에 대해서 속상해 하셨는데, 그건 자녀들이 결정해야 할 일을 당신이 다 결정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자녀들은 당신의 경험을 얻기는 했지만 고기잡이 경험은 아직 적지요. 당신을 떠나본 적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경험을 해본 적도 없고, 어려움이나 고난도 몰랐던 겁니다. 그래서 깨달음도 없고요. 당신이 일생 동안 집대성한 교훈과 경험이라도 자녀들에게는 아주 평범한 강제조항에 불과했을 뿐이니까요. (p.96)

 

우리는 오늘날 말한다. 인생에는 억울하게 돌아가는 길이 얼마나 많은가? 사실 정확한 의미에서 이야기한다면 인생에서 억울하게 돌아가는 길이란 없다. 그 길을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내가 지금 이 모습을 하고 있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이 모습이 아니라면 어떻게 뒤를 돌아보면서 과거 그 길은 돌아온 길이었다고 말할 여유가 있을까>

인생의 모든 길은 반드시 자기의 발걸음으로 측량해 나가야하며, 이것은 자신을 발견하고 확인받는 과정이다.

끊임없는 자아 성찰, 이것은 자신을 찾아가는 또 다른 중요한 길이다. (p.96)

 

자신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듣고, 자신을 찾아가고 길러나가는 모든 과정이 아름다운 인생역정이다. (p.100)

 

이 세상에서 길은 반드시 열린다. (p.101)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장자 교양강의 - 푸페이룽 (심의용 옮김,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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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이 한 모퉁이를 지나가다가 동일한 광경을 목격했다. 작은 거미 한 마리가 벽을 타고 올라가는 광경이었다. 거미는 꼬물꼬물 올라가던 중 비에 젖은 부분을 지나가야 했다. 작은 거미는 젖은 곳에서는 더 올라가지 못하고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나 거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벽의 가장자리 부분부터 올라갔다. 하지만 비에 젖은 그 부분에 이르자 어김없이 떨어졌다. 거미는 그렇게 한번 또 한번 도전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거미의 도전ㅇ늘 바라보던 세 사람은 각자 자신의 삶을 떠올렸다.

첫 번째 사람은 생각했다. '이 거미를 보니깐 꼭 나를 보는 것 같네. 나는 이 거미랑 정말 똑같아. 일생 동안 올라가려 하기만 하면 어김없이 떨어지잖아. 평생 아무런 성과도 없이 바쁘기만 하고, 계속 쓸데없는 일만 반복하고 있지.'

두 번째 사람도 생각했다. '거미가 벽을 타는 모습을 보니 인생과 비슷하군. 눈앞만 바라보면 한 가지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지. 사실 젖어 있던 부분도 그렇게 넓지는 않은데. 이 거미가 젖은 부분을 옆으로 돌아가 갔다면 금방 벽을 타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을 거야. 그러니까 나는 더 똑똑한 인생을 살아야겠다. 인생은 때로 길을 돌아가는 지혜도 필요하다고.'

세 번째 사람은 거미를 본 후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거미 한 마리도 이렇게 패배에 굴복할 줄 모르는데, 도대체 나는 어떻게 살아왔지? 한 사람은 일생 동안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까? 또 얼마나 많은 기적을 일구어낼 수 있을까? 이 모든 기적은 전부 나 한 사람의 생명을 통해서 빚어지는 거야.'

이 광경을 바라보던 이들은 각자 마음속으로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리고, 서로 다른 인생의 깨달음을 얻었다. (p.132-133)

 

생사에 대한 유가와 도가의 개념은 확연히 다르다. 유가는 '생명을 버려 의로움을 취하는 것'을 추구하지만 도가는 '생명을 즐거워할 줄 모르고, 죽음을 둘여워할 줄도 모른다'를 강조한다. 양자는 서로 방법은 달라 보이지만 목적은 동일하다. 모두 우리 인생이 가치 있도록 하는 것이다. (p.134-135)

 

장자는 진인의 개념을 빌려 죽음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즉, 첫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둘째는 절대 자발적으로 죽음 찾지 않는 태도다.

이런 관점은 유가사상과 다르다. 유가에서는 어진 사람, 뜻을 가진 선비는 '생명을 버려 의로움을 취할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의 생명을 버림으로써 큰 도리를 지킬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긴긴 인생길에서 유가와 도가는 두 가지 서로 다른 태도를 보여준다. 유가의 태도는 열사의 태도이며, 도가의 태도는 도사의 태도다. 유가는 시간과의 경주를 전제로, 유한한 시간을 빼앗아 인생을 세워나간다. 반면 도가는 흐르는 시간에 순응하며 시시각각을 놓치지 않고 생을 즐거워한다.

이 두 가지 인생관이 결국 도달하려는 목적지는 동일하다. 그곳은 어디일가? 그것은 더 가치 있는 인생의 완성이다.

그러나 인생의 가치판단에는 다양한 의견들이 있다.

어떤 이는 역사에 이름을 길이 남기는 명예로운 인생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공훈을 세우고 업적을 쌓으며, 자신의 생명을 대가로 지불하는 한이 있더라도 사회에 공헌을 하려고 한다. 반면 어떤 이는 자기 내면의 자아의 완ㄴ성, 평안과 도덕적인 인격돠야를 더 중시한다.

만일 전자의 가치관을 따른다면 개인적인 삶의 부분에 아쉬움이 좀 더 많을 것이고, 후자의 가치관을 따른다면 성공과 성취에 대한 담담함이 더 많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유가와 도가가 우리 마음에 작용하는 방식이다. 이 둘은 우리가 공유하는 동이란 시대에서 발생되는 각기 다른 삶의 방식이다. (p.136-137)

 

굴원은 자신의 아름다운 이상과 그 이상을 실현할 수 없는 현실 사이에서 '산신이 찢겨졌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반드시 이런 비참하고 장렬하며 극단적인 결단으로 자기의 생명을

마감해야함 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마천은 "하늘이 큰 사명을 나에게 내려주었다. 이런 큰일을 목전에 둔 사람은 차라리 수치를 당하지언정 절대 함부로 생명을 포기할 수 없다." 이것이 사마천의 태도였다. (p.137-139)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이소, 장강의 시혼 - 신정규 (천지인)

 

사기, 교양강의 - 한자오치 (이인호 옮김,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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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에 대한 장자의 태도는, 첫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둘째 자발적으로 죽음을 찾지 않는다.

그런데 주위를 살펴보면 인생에서 좌절을 겪거나, 스트레스를 느낄 때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자살이 있다. 하나는 누구의 눈에나 보이는 방식으로 자신을 폐품이나 쓰레기처럼 과감하게 던져버리는 것이다.

또 하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살이다. 즉, 자신의 삶을 함부로 대하는 것이다. 직장에서 진취적인 삶을 푀기하고, 가정에서 가족들과 대화도 꺼리고, 흐리멍덩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산송장이나 다름없다. 육체의 생명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지만, 마음은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고통이 극한에 다다른 그 마음은 이미 죽었다. (p.139)

 

장자의 깨인 생각으로 삶과 죽음의 큰 한계를 초월하는 것. 이것은 어쩌면 장자가 살던 그 시대보다 오늘날 더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장자의 시대는 물질적으로 너무 빈곤하고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길도 너무 적었다. 그렇기에 단순히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어떤 소망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가진 것이 너무 많고, 선택이라는 유혹 속에서 오히려 더 큰 짐을 지게 되었다. 선택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인생의 고단함은 상대적으로 더 늘어났다.

내가 생존하는 동안 내 마음속의 분투를 바라보자. 내가 살아갈 수 있다는 그 희망을 바라보자. 사실 우리는 삶의 매분 매초, 삶을 진정 즐거워하고 인생에 순응하며 삶의 맛을 음미할 수 있다. (p.140)

 

장자 <지북유>

공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옛사람은 겉은 변해도 속은 변하지 않았는데, 요즘 사람들은 속은 변하면서 겉은 변하지 않는다. (p144)

莊子 外篇

第22篇 知北遊

仲尼曰(중니왈)

古之人(고지인) 外化而內不化(외화이내불화)

今之人(금지인) 內化而外不化(내화이외불화)

與物化者(여물화자) 一不化者也(일불화자야)

安化安不化(안화안불화) 安與之相靡(안여지상미)

必與之莫多(필여지막다

狶韋氏之囿(희위씨지유) 黃帝之圃(황제지포)

有虞氏之宮(유우씨지궁) ()武之室(무지실)

君子之人(군자지인) 若儒(약유)墨者師(묵자사)

故以是非相𩐋(고이시비재야) 而況今之人乎(이황금지인호)

중니가 말했다.
“옛사람들은 밖으로는 변화해도 안은 변하지 않았는데
요즘 사람들은 안은 변화해도 밖은 변하지 않고 있으니 밖으로 변하는 사람은 안으로는 한결같이 변하지 않는다.
무엇을 변한다 하고 무엇을 변하지 않는다고 하겠으며 어찌 만물과 다투겠는가. 반드시 만물과 다투어 이기려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희위씨(狶韋氏)의 동산과 황제(黃帝)의 들과 유우씨(有虞氏)의 궁궐과 탕(湯)임금의 집이 그러한 곳이다.
이른바 군자라는 사람들은 유가(儒家)와 묵가(墨家)의 스승이 되어서도 시비를 가지고 서로 다투는데 하물며 요즘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겉은 변해도 속은 변하지 않았다'의 일차적인 뜻은, 겉은 사물의 변화에 따라 변하지만 마음은 고요함 가운데 불변하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규칙에 순응하고, 법도를 줏누하며 사람과 인간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런 현상은 모두 '외적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외적으로 매우 유순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타인과 하나가 될 수 있어, 입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 사람이 그 자신이 될 수 있는 근거, 자신만의 독특한 가치관과 독특한 모습으로 마음을 지켜낼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내면 안에 '불변함'이 있기 때문이다.

즉, 생명은 불변함이 있어야만 하지만 생존은 외부의 변화에 적응하고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p.144-145)

 

장자 <추수>

자로야, 나를 보거라. 내 도는 곤경에 빠진 지 오래되었다. 이제껏 곤궁한 것을 싫어했지만 말이다. 왜 그런 것일까? 이것이 바로 내 운명이기 때문이다. 나의 도가 세상에 두루 퍼지기를 소망한 지도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이 소망은 아직도 실현되지 않았다. 왜 그런 것일까? 그건 시기를 잘못 만났기 때문ㄴ이다. 요순시대에는 정치가 깨끗해 천하에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 없었다. 그건 그 사람들의 지혜가 뛰어나서가 아니다. 걸주시대에는 폭군이 정권을 장악하니 천하에 뜻을 이루는 사람이 없었다. 이것 역시 그들이 재능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모든 것은 시대의 기운이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p.146)

 

마음이 평안하고 내적인 용기가 있어야만 외적인 공경에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은 기백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이것이 바로 마음에서 변하지 않는 부분이요, '내불화'다. (p.147)

 

장자가 말한는 '내불화'란 외부 세계가 어떻게 변하든지 간에 한 사람의 마음은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는 뜻이다. 장자가 말하는 '외화'란 외부 세계를 접할 때에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행동을 사회의 규범에 맞도록 순응시키야 한다는 뜻이다. (p.149)

 

세상에서 제일 감미로운 것은 혀에서 나오지요. 혀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재료입니다.

이 세계의 진정한 재난은 모두 혀 때문에 일어납니다. 혀만큼 말썽을 많이 일으키는 것은 세상에 없죠. 그래서 천하에서 제일 맛없는 재료는 바로 혀입니다. (p.153-154)

 

장자가 말한 '겉은 변해도 속은 변하지 않았다'는 우리의 심령을 점차 비워내고, 우리 마음속의 잡념을 점차 배출해 마음 깊은 곳이 진정 내화할 이유를 지키고 있을 때에야 가능하다. 반면 외재적인 면에서 내면의 관용과 명철한 통찰력에 근거해 변화에 순응하며 평안함을 누리고 세상과 다투지 않는다면, 우리는 현실의 순간순간을 더 알차게 살아갈 수 있다. 인생 동안 담담한 자세로 평안하게 지내며 분쟁과 갈등을 피하면, 결국엔 원만하며 도와 천지자연에 부합하는 자신만의 생명의 경지를 얻을 수 있다. (p.157)

 

심양, 마음을 수양하라.

우리 마음속의 생각들, 깨달음들, 세상 최고의 진리들, 일생 중 가장 진실한 소망들이 자연스레 일어나게 하며, 이로써 자신을 직시하자.

작게는 각 사람의 생명, 크게는 자연과 사회, 만물의 이치까지, 이 모두는 마음을 어떻게 수양하느냐에 달려 있다.

홍몽은 운장에게 알려주었다. 육체를 잊어버리고, 총명함을 버러야 한다. 외재하는 일체의 것들을 전부 잊어버리고 대자연에 자신을 맡겨라. 자신이 소유한 더 풍성한 지혜로 대자연이 자신에게 준 모든 것을 느껴보라. 진정으로 자연에 순응할 때, 마음이 진정으로 날아가고 자유롭게 되기에, 마음의 집착을 풀고 정신의 속박을 벗어버릴 수 있다. (p.162)

 

나도 어떤 발을 먼저 내미는지 모르겠어. 그걸 알아내려고 생각을 하니까 발 하나 까딱할 수 없고, 어떻게 길을 걸어가야 할지도 모르겠거든. (p.165)

 

<참고>

장자를 번역하면서 기독교 신의 이름이 왜 번역되어 나오는지......(p.165)

 

행복이나 기쁨은 네 꼬리와 같은 거란다. 그걸 잡으려고 하지 않으면 너는 앞으로 나갈 수 있고 행복과 기쁨도 항상 네 뒤를 따르거든. 그런데 너는 왜 꼭 꼬리를 잡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거니? (p.169)

 

인생의 행복과 즐거움 역시 본래는 인생의 일부분일 뿐이다. 그것을 추구할 때, 오히려 행복과 즐거움을 빼앗기게 된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아갈 때, 행복과 즐거움은 영원히 당신을 따라오게 된다. 이것을 '무심득'이라고 한다. (p.170)

 

태어나서 백년도 살지 못하는데, 마음속에는 항상 천 년의 근심이 떠나지 않는다.

인생은 대대로 이어져 다함과 그침이 없는데, 강에 비친 달은 해마다 비슷해만 보인다. 강의 달이 누구를 비쳤는지는 모르겠고, 오직 강물을 흘려보내는 장강만 보인다. (p.182)

 

인생의 참 모습에 통달한 사람은 타고난 본성에 필요 없는 일은 힘쓰지 않는다. 천명의 참 모습에 통달한 사람은 인생에서 스스로 좌우할 수 없는 것과 도달할 수 없는 목표는 추구하지 않는다. (p.183)

 

생이 오는 것을 물리칠 수도 없고, 가는 것을 막을 수도 없다. 그것은 슬픈 일이다. (p.185)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하는 진정한 이유는 마음속 '집착'에 져버렸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집착'이 있으면, 큰일에 부딪혔을 때에 전전긍긍하고, 속수무책이 되며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얻을 것에 대해서 지나치게 집착을 했기 때문에 잃을 것에 대해서도 집착을 하는 것이다.

이 세상 유한한 인생 속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의 집착과 내려놓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지가 인생의 효율을 결정한다. (p.188)

 

때로 인생의 깊은 골짜기를 똑똑히 볼 수 없을 때, 아무런 생각 없이 그대로 돌진해버릴 수 있다. 그러나 어렴풋이 그 모습을 가늠하는 순간, 완전히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인생의 안전한 항구와 위험을 확실하게 바라보고 이익과 희생을 게산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용기를 내어 비록 조금은 두렵고 떨리지만 자신을 이겨내며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이때 걸어가는 행위도 일종의 기술이다. 이것이 그렇게 중요할까? 우리 마음속에서 어떤 판단을 내리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p.192)

 

태약목계(태若木鷄)

나무로 깍아놓은 닭처럼 멍하다는 뜻이다. 기성자는 말했다. "이 닭은 이제 나무 닭처럼 보일 정도로 훈련을 받았으며, 드디어 필요한 덕을 다 갖추게 되었습니다." 즉, 정신을 안으로 모아 덕성이 자기의 것으로 완전히 내재화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닭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다른 닭이 힐끔 쳐다보고는 소름이 끼쳐 황망히 줄행랑을 칠 정도가 되었다. 이런 상태야말로 싸움에 임할 수 있는 상태인 것이다. (p.194)

 

진정한 싸움을 벌이고 승리를 획득하는 비결은 용맹이나 기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덕행에 달려 있다. (p.195)

 

임무를 가장 잘 완수하기 위해서는 세 단게를 거쳐야 한다. 이익을 잊고, 명성을 잊고, 나를 잊는다. (p.198)

 

생각하지 말고 고민하지 말아야 비로소 큰 도를 알게 된다. 이 세상에서 어떻게 처신할지 생각하지 말아야만 큰 도에 편안히 거할 수 있다. 과정을 생각하지 말고, 방법을 묻지 말아야 비로소 도를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에서 참고하려는 각 단계의 이정표를 잊어버리고, 그 대신 자신의 내면을 깊이 통찰하는 사람만이 유일무이한 자신을 찾을 수 있다. (p.205)

 

각 생명의 개체는 비록 외양은 다르지만, 본질은 서로 같다.

각 사람의 인생은 모두 독특하다. 우상만 좇기보다 자신을 똑바로 아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다. 우리는 절대 다른 사람과 같아질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 인생길에 고난과 어려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길에서 만나는 것이 고난이든 영광이든 이 모든 것은 지나간다.

우리는 삶에서 많은 일들을 겪는다. 그러나 기회는 여전히 올 것이고, 풍파는 지나갈 것이다. 삶의 모든 기회를 통해 자신을 깨닫는 것, 이것이 바로 도가가 말하는 천지에 부합하는 큰 도다. 9p.208)

 

자산 안의 가치관과 힘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상실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지금 만나는 모든 일들은 결국은 모두 지나갈 것이다. 현재 좋고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누리고 있다 하더라도, 이 좋고 아름다운 것도 지나간다. 현재 짊어지고 가야 할 힘겨운 고난도 너무나 많이 있지만, 이 고난 역시 지나갈 것이다. (p.209)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다 지나간다 - 지센린 (허유영 옮김, 추수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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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은 지나가리라. (p.210)

 

자신의 행위를 비워내고 담담한 마음이 고요하며 더 이상 놀라지도 혼란스럽지도 않을 때, 이를 두고 '하늘의 덕에 합한다. (p.216)

 

우리의 생명은 자주 각종 고비에 빠지게 된다. 고비에 빠졌을 때 명확한 판단력과 마음속 냉정함에 의지하는 것만이 고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진정한 해결책이다. (p.217)

 

문득 지나온 길 돌아보니, 아득한 안개가 푸르른 숲을 뒤덮고 있구나 (p.218-219)

<이백(李白;701-762)>

下終南山過斛斯山人宿置酒 (하종남산과곡사산인숙치주)

 

暮從碧山下(모종벽산하)
山月隨人歸(산월수인귀)
卻顧所來徑(각고소내경)
蒼蒼橫翠微(창창횡취미)
相攜及田家(상휴급전가)
童稚開荊扉(동치개형비)
綠竹入幽徑(녹죽입유경)
靑蘿拂行衣(청나불항의)
歡言得所憩(환언득소게)
美酒聊共揮(미주료공휘)
長歌吟松風(장가음송풍)
曲盡河星稀(곡진하성희)
我醉君復樂(아취군복낙)
陶然共忘機(도연공망기)

 

날 저물어 푸른 산에서 내려오니
산의 달도 나를 따라 오네
문득 지나온 길 돌아보니
푸르고 푸르구나, 안개 산허리를 둘렀네
주인 만나 손잡고 집으로 들어 서니
아이는 사립문을 활짝 열어주네
푸른 대나무 깊숙한 길에 우거지고
칡덩굴 길손의 옷을 스친다
반가운 이야기에 마음은 편하고
맛있는 술 있어 서로 잔을 주고 받았소
길게 소리 높여 송풍가를 읊고
노래가 다함에 은하수 별빛이 스러지네
내가 취하니 그대 또한 즐거워 하고
거나하게 취하여 세상 근심 다 잊었소

(같이 읽으면 좋은책)

이백 오칠언절구 - 이백 (황선재 옮김, 문학과지성사 대산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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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바로 그곳ㅎ에서 생성되며, 대지가 평안하고, 태양과 달이 돌아가며 이 세상을 비추고, 사시는 전혀 태만함 없이 운행이 되는데, 온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 것은 마치 낮이 끝나면 밤이 되는 것처럼, 또는 하늘에 구름이 있어야 비가 오는 것처럼, 변화의 규칙이 있는 것입니다. (p.220)

 

두려워 마라.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을 때 어떤 고난이라도 뛰어넘을 수 있다. (p.221)

 

생명은 바로 자네 손에 달려 있네.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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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단 (于丹, 중국 1965년 6월 28일- )

저명한 문화 학자, 베이징 사범대학 교수, 박사 과정 지도교수, 수도문화 창신과 문화 전파 공정 연구원 원장, 북경 사범대학 예술·방송대학 부학장, 국무원 참사실 특약 연구원을 역임했다. 고전문화의 보급자이자 전파자이며, CC-TV <백가 강단>, <문화 시점> 등 프로그램에서, ‘논어 심득’, ‘장자 심득’, ‘논어 감오’ 등 강좌 시리즈를 통해 중국 전통문화를 보급, 전파했으며,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경전에 숨겨진 중화 민족의 정신 유전자를 회복시켜, 국내외 문화계, 교육계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 중국 내륙, 홍콩, 대만,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브라질, 뉴질랜드, 오스트리아 등에서 전통 문화 강좌를 천여 차례 개최해 호평을 받았으며, 세계인들 사이에서 중국 경전을 공부하는 열풍을 일으켰다.
저서로는 『논어 심득』, 『위단·유원경몽(遊園驚夢)-곤극 예술 심미 여행』, 『위단 논어 감오(論語 感悟)』, 『위단 취품인생(趣品人生)』, 『위단: 가장 아름다운 고대 시가 다시 사랑하기(重溫最美古詩詞)』, 『사람 사이의 맛은 맑은 즐거움(人間有味是?歡)』, 『위단 자해인생(字解人生)』, 『꿈이 있는 사람은 처량하지 않다(有夢不覺人生寒)』 등이 있다. 그중에서 『논어 심득』은 세계 저작권 협회에서 판권 금상을 획득했고, 중국 국내에서 수차례 재판을 거듭, 누적 판매량은 600만 권에 달했다. 30여 개 언어로 각국에 발행되어 외국어판 판매량도 40만 권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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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단의 논어 심득 - 위단 (임동석 옮김, 에버리치홀딩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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