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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VI. 현대 인문, 교양, 역사/1. 동양 - 인문, 교양, 역사

진시황 강의 - 왕리췬 (홍순도, 홍광훈 역, 김영사)

by handaikhan 2023. 2. 3.

왕리췬 - 진시황 강의

 

소공:

백성들이 말을 못하게 입을 막는 것은 강물을 막아 흐르지 못하게 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입니다. 만약 강물을 막아 흐르지 못하게 하면 결국 제방은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면 다치거나 죽는 사람이 무수하게 생기게 됩니다. 백성들의 입을 막고 말을 하지 못하게 한다면 어찌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겠습니까? 언젠가는 반드시 터지게 돼 있습니다. 그때는 왕께서 아무리 후회해도 아마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p35)

 

유여:

이 물건들을 만약 귀신들에게 만들라고 하면 아무리 귀신이라도 아마 피곤해 죽을 것입니다. 반면 백성들에게 시키면 아마도 천하의 백성들이 다 고통을 겪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묵공:

중원의 각 나라는 덕과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있소. 그럼에도 시도 때도 없이 전란이 터지고 있소. 내가 보기에는 서융에는 시서예악이나 법률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소. 도대체 그들은 무엇에 의해 국가를 통치하고 있소?

유여:

그게 바로 중원의 각국에 전란이 출현하는 원인입니다! 황제는 예악과 법도를 만든 이후에 직접 앞장서서 이를 집행했습니다. 그래서 최소한도의 태평한 세상이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후세에 이르러 군주들은 날이 갈수록 사치와 방탕, 향락을 일삼았습니다. 그럼에도 법률의 위엄에 의존해 백성들을 감시하고 통제하기만 했습니다. 백성들은 당연히 이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급기야는 군주를 원망하고 인의의 정치를 실현하라는 요구를 하게 됐습니다. 이로 인해 위아래가 모두 서로 미워하고 증오하고, 서로 뺏고 뺏기고 죽고 죽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온 가족이 멸족된 경우도 없지 않았습니다. 이 모두는 예악과 법도가 촉발시킨 것입니다. 그러나 서융 사람들은 이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위의 군주는 인덕으로 신민들을 대했습니다. 신민들 역시 충성과 믿음의 덕목을 가지고 군주를 받들었습니다. 이 결과 나라의 정사는 마치 한 사람이 자신의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됐습니다. 근본적으로 다스리는 방법이 필요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성인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진묵공:

이웃 국가에 성인이 있으면 우리나라의 재난이 된다는 말이 있다. 내가 볼 때 유여라는 자는 인재가 분명하다. 틀림없이 우리의 골칫덩어리가 될 것이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왕료:

제가 주군께 딱 세 글자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글자는 송입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글자는 구와 태입니다. 첫 번째 글자 송에 대해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서융의 왕은 중원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변두리에 있습니다. 중원 각 나라의 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을 게 분명합니다. 우리는 이걸 이용해야 합니다. 서융에 노래와 춤을 잘하는 미녀들을 보내자는 얘기입니다. 그러면 서융 왕은 하루 종일 노래와 춤에 빠져 전쟁에 대한 투지가 자연스럽게 꺽이게 되지 않겠습니까. 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유여를 붙들어놓고 보내지 않는 겁니다. 그러면 그는 제 시간에 서융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그가 돌아가는 시간을 늦추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서융의 왕에게 적극적으로 유여에게 상을 주라고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서융 왕은 틀림없이 유여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단 두 군신 사이에 틈이 생기면 우리는 유여를 얻을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융 왕이 일단 노래와 춤에 빠지게 되면 틀림없이 나랏일을 등한시하게 될 것입니다. (P45-47)

 

진묵공의 전략

하나의 중심과 두 개의 기본 점:

하나의 중심이란 모든 것의 중심을 동쪽으로의 세력확장

두 개의 기본 점이란 도의와 무력 즉, 도의가 없으면 그 누구라도 진심으로 감동을 시킬 수 없고 무력이 없으면 발언권이 없을것이다. (p55-56)

 

범저:

양후는 한나라와 위나라 두 나라를 넘어 제나라의 강과 수로 공격하려고 합니다. 이건 좋은 전략이 아닙니다. 병력을 많이 출동시키면 제나라에게 별로 충격을 주지 못합니다. 파괴력이 없습니다. 도 병력을 너무 많이 출동시키면 진나라의 국력이 손상을 입을수 있습니다. 대왕은 아마도 병력을 적게 출동시키기를 원하실 겁니다. 한나라와 위나라가 병력을 파견해 진나라의 정벌을 도와줬으면 하는 생각도 하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한나라와 위나라는 진짜 진나라의 맹방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대왕께서는 이들 국가를 넘어 제나라를 공격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는 것보다는 멀리 있는 나라와는 동맹을 맺고 가까이 있는 나라를 공격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낫습니다. 이렇게 하면 한 치의 땅이라도 공격해 빼앗으면 대왕의 땅이 됩니다. 한 자의 당을 공격해 뺏더라도 대왕의 땅이 됩니다. 그런데도 지금 가까운 땅을 버리고 멀리 있는 나라를 공격하려고 하니 정말로 한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p119-120)

 

경제적 능력으로 자신을 포장하지 못하면 정치적으로 발언권을 얻는다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p134)

 

역사는 가설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p258)

 

지선자는 지요를 휴계자로 삼으려고 했을 때 지과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반대했다. 지요가 지소보다 인물이 못하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지선자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지소가 너무 흉악하다고 생각했다. 지과는 이때 지선자에게 지소가 흉악한 것은 얼굴에 나타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지요는 마음이 흉악합니다. 얼굴이 흉악한 것은 나라에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흉악한 것은 나라를 백척간두의 위기로 몰아갈 수 있습니다. 지요는 분명히 뛰어납니다. 수염이 멋있고 체격이 건장합니다. 또 전차를 잘 몹니다. 말을 잘하고 판단력이 좋습니다. 성격이 굳셉니다. 이외에도 좋은 점이 많습니다. 반면에 결점은 딱 하나입니다. 인애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요가 자신의 장점을 가지고 다른 사람과 경쟁하면 그는 확실히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로지 부족한 한 가지, 즉 인애가 없다는 이 사실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모든 것을 완전히 망칠 수 있습니다. 만약 지요를 후계자로 세우게 되면 지씨는 좋은 꼴을 보기 힘들 것입니다. (p261)

 

조나라가 역사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멸망한 데에는 네 가지 요인이 있었습니다. 용인에 있어서의 실수, 정치적인 부패, 일의 본말을 분명하게 가려내지 못한 무능력, 영토의 급감 등이 바로 이것입니다. (p344)

군주가 멍청했다.

 

오기:

국가 정권의 공고함은 백성들에게 덕을 베푸는 데에 있습니다. 지세가 험난한 것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라 걸의 영토는 왼쪽에 황하와 제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북쪽으로는 양장판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정을 베풀지 않은 탓에 상나라의 탕이 그를 몰아냈습니다. 상나라 주의 영토 역시 왼편으로는 맹문산, 오른편으로는 태행산이 있었습니다. 또 북쪽으로는 상산, 남쪽으로는 황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덕을 베풀지 않았던 탓에 무왕이 그를 멸망시켰습니다. 그러므로 국가의 공고함은 지세가 험준한 것에 있지 않습니다. 백성들에게 은덕을 베푸는 것에 있습니다. 만약 주군께서 덕을 베풀지 않는다면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적이 될 수 있습니다. (p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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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리췬 (王立群)

세계에서 손꼽히는 《사기》 연구가 중 한 명인 왕리췬은 각 분야의 학술 전문가는 물론 일반 대중에게도 열렬히 사랑받는 중국의 국보급 학자이다. 중국 국영방송인 CCTV가 ‘고급지식의 대중화’를 모토로 야심차게 기획한 <백가강단> 프로그램에서 《사기》를 강의한 그는 해박한 지식과 깊이 있는 통찰력, 유려한 말솜씨로 대중들을 사로잡으며, 중국사학계의 독보적 연구가로 자리매김하였다.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는 130권의 방대한 사서인 《사기》를 40여 년간의 치밀한 학문적 고증과 풍부한 원전 해석, 현대적 시각에서 풀어낸 그의 ‘사기강의’는 기존의 어떤 해설과도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함을 가지고 있다. 왕리췬은 1945년 안후이성 루아시 훠산현에서 태어났으며, 허난대학교 문학원 교수로 재임하고 있으며, 중국 《사기》 연구회 고문이자, 중국 ‘문선’ 학회 부회장이다. 2006년 1월부터 <백가강단>에서 <왕리췬이 사기를 읽고> ‘한무제’ 강의를 시작으로 항우, 진시황, 유방 등 중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들을 인간학의 보고라 불리는 《사기》를 통해 재조명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무제강의』,『항우강의』,『진시황 강의』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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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제 강의 - 왕리췬 (홍순도, 홍광훈 옮김, 김영사)

항우 강의 - 왕리췬 (홍순도, 홍광훈 옮김, 김영사)

 

진시황 평전 - 장펀톈 (이재훈 옮김,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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