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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 고전 문학 (동양)/1. 동양 - 고전 소설

인간 실격 - 다자이 오사무 (김소영 옮김, 더클래식)

by handaikhan 2024. 7. 17.

 

다자이 오사무 - 인간 실격 (1948년)

 

참 부끄러운 생애를 보내 왔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걸 도무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p.13)

 

한마디로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아직도 모르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제가 가진 행복의 관념과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관념이 전혀 다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저는 그 불안감 때문에 밤마다 뒤척이며 신음하다 심지어는 미쳐 버릴 뻔한 적도 있습니다. 저는 과연 행복한 걸까요? 어릴 때부터 저는 행운아라는 말을 신물이 나도록 들어 왔지만 정작 저로서는 지옥에 사는 심정일 뿐, 제게 행운아라고들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저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안락해 보였습니다.

저에게는 열 가지 불행 덩어리가 있는데, 그중 하나라도 옆 사람이 짊어딘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사람에게는 충분한 치명타가 될 것이라는 생각도 한 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한마디로, 알지는 못하는 겁니다. 주변 사람들의 고통의 성질이나 정도를 도무지 짐작조차 못 하는 겁니다. 현실적인 고통, 그저 밥만 먹으면서 살 수 있다면 해결되는 고통,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가장 지독한 고통이며 내가 가진 열 가지 불행 따위를 단번에 날려 버릴 정도로 처참한 아비규환의 지옥인지도 모릅니다.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면서도 용케 자살하지도 않고 미치지도 않고 정치를 논하며 절망하지 않고 굴복하지 않는 생활의 투쟁을 계속해 나가는 걸 보면 전혀 고통스럽지 않은 게 아닐까? 철저한 이기주의자가 되고, 더구나 그게 당연한 것이라 확신한 채 단 한 번도 자신을 의심해 본 적이 없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속이야 편하겠지. 하긴 어쩌면 인간이란 원래 다 그런 것이고 또 그렇게 사는 게 만점짜리 인생이 아닐까? 모르겠다....밤에는 세상모른 채 쿨쿨 자고, 아침에는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날까, 꿈은 어떤 꿈을 꿀까, 길을 걸을 땐 무슨 생각을 할까, 돈? 설마, 아무리 그래도 그 생각만 하지는 않겠지. 인간은 먹기 위해 산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지만 돈을 위해 산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아니지, 그래도 경우에 따라서는.....아니다, 모르겠다. 생각하면 할수록 더 알 수가 없어져서 저만 혼자 돌연변이인 듯한 불안감과 공토심만이 엄습할 뿐입니다. 저는 주변 사람들과 대화도 제대로 나누지 못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생각해 낸 게 광대 짓이었습니다. (p.16-17)

 

물론 누구든 남이 자신에게 비난을 하거나 화를 내면 기분이 좋을 리 없겠지만, 저는 화내고 있는 인간의 얼굴에서 사자보다도, 악어보다도, 용보다도 훨씬 무시무시한 동물의 본성을 봅니다. 평소에는 그 본성을 숨기고 있다가 어떤 빌미를 잡았다 싶으면, 그러니까 이를테면 풀밭에서 유유자적 졸고 있던 소가 별안간 꼬리를 휘둘러 배에 붙은 등에를 철썩 때려죽이듯, 느닷없이 분노를 터뜨려 인간의 무시무시한 정체를 드러내는 모습을 보면 저는 늘 머리털이 곤두설 정더로 벌벌 떨게 되고, 이 본성 또한 인간이 살아가는 자격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제 자신한테 절망을 느끼게 됩니다. (p.19)

 

저는 학교에서 존경받을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존경받는다는 관념 또한 저를 극심한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습니다. 거의 완벽에 가깝게 사람을 속이다가 어떤 전지전능한 자에게 간파당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고 죽음보다 더한 망신을 당한다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존경받는다'의 정의였습니다. 사람들을 속여 '존경받는다' 하더라도 누구 한 사람은 반드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 결국 사람들도 그 사람의 말을 듣고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때 사람들의 분노와 복수가 얼마나 무시무시할지 상상만으로도 온몸의 털이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습니다. (p.24)

 

외롭다.

여자들의 천 마디 신세 한탄보다 그 한마디 중얼거림에 저는 공감할 것이라 기대도 해 봤건만 이 세상 여자들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는 것을 끝내 단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기괴하고도 불가사의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입으로는 '외롭다'고 말하지 않았고 대신 지독한 외로움을 몸 외곽에 한 폭의 기류처럼 뿜어내고 있어서 그 사람 곁에 다가가면 제 몸도 그 기류에 휩싸여 제가 가진 뾰족뾰족 가시 돋침 음울함의 기류와 궁합 좋게 녹아들어 '물속 바위 위에 내려앉은 가랑잎'처럼 제 몸은 공포와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백치 매춘부들의 품 속에서 안심하고 쿨쿨 자던 때의 기분과는 또 다르게 그 사기꾼의 아내와 보낸 하룻밤은 제게 무척이나 행복하고 해방된 밤이었습니다.

하지만 단 하룻밤이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났을 때, 저는 본래의 경박하고 위장에 능한 광대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겁쟁이는 행복마저도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솜에도 상처를 입습니다. 행복에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있는 겁니다. 상처 받기 전에 얼른 헤어지고 싶어 마음이 급해지는 통에 광대 짓이라는 연막을 사방에 둘러치는 것입니다.

"돈 떨어지는 날이 인연 끊어지는 날이라는 말 있지, 그건 해석이 거꾸로 됐어. 돈이 떨어지면 여자한테 차인다는 뜻이 아니야. 남자한테서 돈이 떨어지면 남자는 제풀에 의기소침해져서 한심해지고 웃는 목소리에 힘도 없어지고, 그러다 괜히 비딱해지고 말이야. 결국에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남자가 먼저 여자를 차는 거지. 정신이 반은 나가서는 차고, 차고, 또 차고 끝까지 찬다는 뜻이란 말이지. 가네자와 대사전에 그렇게 나와 있어, 딱한 노릇이지. 나도 그 심정 잘 알지만."

그런 식으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서 쓰네코의 웃음보를 터뜨렸던 기억이 납니다. 더 오래 머물러 봐야 근심만 쌓인다 싶어 세수도 하지 않고 잽싸게 그 집을 나섰는데 그때 제가 '돈 떨어지는 날이 인연 끊어지는 날'이라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은 말이 훗날 뜻밖에도 제 발목을 잡게 됩니다.

그 뒤로 한 달, 저는 그날 밤의 은인과는 만나지 않았습니다. 헤어지고 날이 지날수록 기쁨은 희미해지면서 덧없는 순간의 은혜가 도리어 부담이 되어 제풀에 자신에게 굴레를 뒤집어씌우게 됐습니다. 카페에서 술값을 계산할 때 모조리 쓰네코에게 떠안겼던 세속적인 일까지 슬슬 마음에 걸리기 시작하면서 쓰네코도 하숙집 딸이나 그 여자고등사범학교 학생과 하나 다를 것 없는, 저를 위협하는 여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줄곧 쓰네코가 두려워 벌벌 떨었습니다. 더군다나 저는 함께 잔 적 있는 여자를 다시 만나면 별안간 불같이 화를 낼 것만 같아 만나기를 극도로 꺼리는 성격이다 보니 갈수록 긴자를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 꺼린다는 게 켤고 제가 교활해서가 아니라 여자라는 존재는 함께 잘 때와 아침에 일어났을 때 사이에 전혀 아무런 한 톨의 연결고리도 없이 완전히 망각한 것처럼, 놀라도록 두 세계를 칼로 절단한 것처럼, 살아가는 현상을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p.70-72)

 

꼭 연극만은 아닌 것 같은 게, 굉장히 반색하며 맛있게 먹는 겁니다. 저도 후루룩 들이켜 봤지만 물 냄새가 나는 데다 새알은 새알이 아니라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결코 그 가난을 경멸하는 게 아닙니다(저는 그때 그 단팥죽이 맛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고, 그 노모의 정성도 사무치게 와 닿았습니다. 저는 가난이 두렵기는 해도 경멸하지는 않습니다). 그 단팥죽, 그리고 그 단팥죽을 반색하는 호리키를 보며 저는 도시 사람들의 알들한 본성, 그리고 안과 밖을 확실히 구별해서 영위하고 있는 도쿄 사람의 가정의 실체를 목격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안이고 밖이고 똑같이, 그저 끊임없이 인간의 삶으로부터 그저 달아나기만 하는 멍청한 저만 혼자 철저히 남겨지고 호리키한테마저 버림받은 것 같은 생각에 당황해서 칠 벗겨진 젓가락을 놀려 단팥죽을 먹으며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을 느꼈다는 걸 기록해 두고 싶을 뿐입니다. (p.98-99)

 

"그나저나 네 여성 편력도 이쯤에서 끝내야지? 더는 세상이 용납 못 해."

세상이라니 어떤 세상을 말하는 걸까요. 인간의 복수형을 말하는 걸까요. 대체 어디에 그 세상이라는 것의 실체가 있단 말인지. 어쨌거나 강하고 모질고 무서운 곳이라고만 생각하며 지금껏 살아온 그 세상인데, 호리키의 말을 듣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가 말하는 세상이란 건, 널 말하는 거 아니야?'

혀끝에까지 나온 이 말을, 호리키가 화라도 낼까 무서워 꾹 눌러 삼켰습니다.

'더는 세상이 용납 못 해.'

'세상이 아니라 네가 곱게 안 보는 거잖아?'

'그런 짓을 하면 세상 사람들한테 호된 꼴을 당할 거야.'

'세상이 아니라 너잖아?'

그대야말로 자신의 흉포함, 괴기스러움, 악랄함, 늙은 너구리 같은 교활함, 요괴 할멈 같은 성정을 알라! 그런 온갖 말이 가슴속을 오갔지만 저는 그저 얼굴에 맺힌 땀을 손수건으로 훔치며, "진땀이 다 나네, 진땀이." 하고 웃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이후 저는 '세상이란 개인이다'라는 철학 비슷한 것을 갖데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상이란 한 개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품기 시작한 뒤부터 저는 이전까지보다는 그나마 조금 제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p.107-109)

 

그리하여 다음 날도 같은 짓을 되풀이하고

어제와 다르지 않은 관례에 따르면 된다네.

말인즉 거칠고 커다란 환락만 피한다면

자연히 커다란 슬픔도 찾아오지 않는 법.

앞길을 막아선 거추장스런 돌덩이를

두꺼비는 돌아서 가지.

 

우에다 빈이 번역한 기 샤를 크로인가 하는 사람의 이 시구를 발견했을 때 저는 혼자 얼굴이 불타오를 만큼 벌게졌습니다.

두꺼비.

'그게 나야. 세상이 용납하고 말 것도 없어. 매장하고 말 것도 없지. 나는 개나 고양이보다 못한 동물이야. 두꺼비, 어기적어기적 꿈틀대고 있을 뿐이야.' (p.1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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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샤를 크로 (Guy Charles Cros)

Charles Cros or Émile-Hortensius-Charles Cros (October 1, 1842 – August 9, 1888) 프랑스 시인

 

무제 

 

세상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루하루가

홀로 견뎌내는 인내의 놀이와 같고,

오래전부터 몸에 밴 일과를

비몽사몽 읊어대는 것과 같고,

카페에서 늘 만나는 사람들과

손때 묻은 카드를 돌리며 노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삶이 그저 가볍고,

수고로울 것 없이 예사롭기만 하여,

편지를 쓰기도 하고, 사랑을 하기도 하고,

어찌 됐든 각자의 일들을 하고 산다.

그렇게 다음날도 같은 하루를 되풀이하니,

어제와 다름없는 관례를 따를 뿐이다.

크고 격렬한 기쁨을 피하기만 한다면,

거대한 슬픔 또한 찾아오지 않으니.

자기 앞길을 가로막는 돌을

두꺼비는 그저 돌아서 지나간다.

 

 

그러나 그대여, 만약 그대가 진정으로 살기 원한다면,

하루하루 새로이 힘을 내어

미친 듯 날뛰는 삶, 거칠게 콧김을 내뿜는 삶,

굴복당하지 않으려는 삶을 견뎌내야 한다.

쉴 틈 없이 기적을 이뤄내야만

어지러이 휘날리는 갈기,

펄떡펄떡 뛰는 땀범벅 된 옆구리,

김을 내뿜는 큰 콧구멍을 얻을 수 있을지니.

그대여, 그대의 삶은 사랑의 몸짓이어야 한다.

미련의 녹 한 점 없는,

회한의 녹 한 점 없는,

아름다운 강철처럼 맑게 빛나라.

그대의 심장은 언제나 그대의 꿈만큼 웅대하게,

신이 그대에게 준 횃불을 아낌없이 태우라.

그대의 음울한 육신으로부터 당당히 아우성쳐라,

고통에 쓰러진 육신으로부터,

순순히 죽음의 약혼자가 된 육신으로부터 외쳐라.

보석은 광물을 깨부수고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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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가게의 손님 같기도 하고 남편 같기도 하고 심부름꾼 같기도 하고 친척 같기도 한, 남들이 봤을 때 도대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였을 텐데도 '세상'은 조금도 수상쩍게 여기지 않았고 가게 단골손님들도 저를 요조, 요조, 하고 정답게 대해 주며 술도 권하게 했습니다.

저는 점점 세상을 경계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세상이란 곳은 그리 무서운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 제가 품어 왔던 공포감이란, 이를테면 봄바람에는 백일해균이 득시글거리며 공중목욕탕에는 눈을 멀게 하는 세균이 우글우글, 이발소에는 탈모증을 일으키는 세균이 우르르, 전차의 가죽 손잡이에는 옴벌레가 바글바글, 또 생선회나 설익은 육류에는 촌충의 유충이니 디스토마니 하는 기생충들의 알이 반드시 숨어 있고 맨발로 걸으면 발바닥으로 유리 파편이 파고 들고 그 파편이 온몸을 돌고 돌다 눈을 찔러 실명을 할 수도 있다는 소위 '과학의 미신'에 벌벌 떠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물론 몇십만 마리의 세균이 우글우글 떠다닌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정확한 사실이겠지요. 하지만 동시에 그 존재를 완전히 무시해 버린다면 그것은 나의 눈곱만치도 상관없는 일이 되어 순신각에 지워 없앨 수 있는 '과학의 유령'일 뿐이라는 것도 저는 깨우치게 됐습니다.

먹다 남긴 도시락의 바불 세 톨, 천만 명이 하루에 세 톨씩만 남겨도 쌀 몇 가마니를 내다 보리는 셈이라든가, 천만 명이 하루에 코 푸는 휴지를 한 장씩만 절약해도 펄프를 얼마나 아낄 수 있는가 하는 '과학적 통계'에 저는 지레 겁을 먹고는 한 톨이라도 밥을 남길 때마다, 그리고 코를 풀 때마다 산더미 같은 쌀과 산더미 같은 펄프를 낭비하고 있다는 착각에 고통스러워하며 자신이 지금 중대한 범죄라도 저지른 것 같은 암울한 기분에 시달려 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과학의 거짓말', '통계의 거짓말', '수학의 거짓말'일 뿐, 세 톨의 밥알은 모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곱셈, 나눗셈의 응용문제로도 못 쓸 지극히 원시적이며 저능한 주제입니다. 불 꺼진 어두운 변소 구멍에 사람이 몇 번에 한 번 꼴로 한쪽 발을 헛디뎌 떨어지는가, 전차의 출입구와 플랫폼 사이의 벌어진 틈에 승객의 몇 명 중 몇 명이 실족할까, 하는 식의 확률 계산과 비슷한 수준으로 멍청한 짓이지요. 얼핏 듣기에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변소 구멍에 잘못 앉았다가 다쳤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가설을 '과학적 사실'이랍시고 배우고 현실에 그대로 반영해서 공포에 떨던 어제까지의 제가 귀엽다는 생각에 웃고 싶을 만큼 저는 세상이란 것의 실체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말을 그렇게 햇지만 저는 아직 인간이란 존재가 무서웠습니다. 가게 손님을 대할 때도 술부터 한잔 들이켜야 가능했습니다. 무서울수록 더 보고 싶어지는 게 사람 심리라지요. 내심 무서우면섣 작은 동물을 오히려 꽉 움켜쥐는 꼬마처럼 저는 밤마다 가게로 나가 술에 취한 채 손님들 앞에서 어쭙잖은 예술론을 떠벌리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p.114-116)

 

저는 지금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 세상에서 딱 하나 진리 같다고 느낀 것은 그것뿐이었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p.15)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다 지나간다 - 지셴린 (허유영 옮김, 추수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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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해설>

 

<인간 실격>은 '나'라는 화자의 서술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세 장의 사진, 첫 번째 사진 속 인물에 대해 "애초에 이건 웃는 얼굴이 아니다. 이 아이는 전혀 웃고 있지 않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원숭이다. 원숭이가 웃는 얼굴이다. 그저 얼굴에 흉한 주름을 잡고 있을 뿐이다"라며 뒤에 이어질 첫 번째 이야기에 대한 내용을 암시하고 있다. 사람들은 서로 겉으로 보기에 웃고 있기는 하나, 웃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허위로 가득 찬 세상과 배신으로 점철된 삶을 살고 있다.

두 번째 사진은 "인간의 웃음과는 다르다. 피의 무게라고 하나, 생명의 깊은 맛이라고 하나, 그런 충실감은 티끌만치도 없이 그야말로 새처럼, 아니 깃털처럼 가볍게, 그저 백지 한 장처럼 그렇게 웃고 있다"라고 사진 속의 인물을 그리고 있다. 사진 속의 아이는 성장하여 이제 청년이 되었지만, 그의 모습은 사람의 얼굴을 갖고 있으나 여전히 가식적이다. 남들에게 비춰지는 모습이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을지 몰라도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것에 익숙지 않은 모습이다.

마지막 사진은 이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설정해 주고 있다. "화롯불에 두 손을 쬐는 자세로 자연스럽게 죽은 것 같은" 사진 속 인물은, "안개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려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이 사라진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자격이 상실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마지막 사진 속 인물은 인간으로서 자격을 상실한 모습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세 장의 사진 속 모습을 통해 다자이 오사무는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먼저 던지고 있다.

작품속 주인공 요조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죄의식과 인간에 대한 공포, 그리고 허위로 가득 찬 세상과 배신으로 점철된 삶. 그는 조금의 의심도 없는 순수한 내연의 처 요시코가 강간당하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게 된다. 그 상처로 인해 어떤 인간을 만나든 더욱더 의심하게 되고, 공포에 떨게 하는 원인이 된다. 결국 자살을 기도하나 실퍠하게 되고 마침내 인간 실격자가 되고 만다.

오사무는 이 세계에서 인간답게 살려면, 인간의 자격을 박탕당하고 파멸되어야만 한다는, 무서운 생의 진실을 한 정신장애인의 입을 통해 말하고 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p.163-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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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클래식 세계문학 한글영문판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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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太宰 治, 1909년 6월 19일 ~ 1948년 6월 13일)

일본의 소설가.

1909년 아오모리현 쓰가루군(津經郡) 가네키무라(金木村)에서 지방 유지였던 대지주 쓰시마 겐고에몬(津島源右衛門)과 타네(タ子) 사이에서 태어났다.(그의 형제자매는 모두 11명으로 다자이가 태어날 즈음 맏형과 둘째 형은 이미 죽고 없었다) 겐고에몬은 쓰가루 고쓰쿠리무라(木造村)의 지주였던 마쓰키(松木) 집안에서 데릴사위로서 쓰시마 집안으로 들어왔다.
아버지는 공무로 늘 바빴고 어머니는 병약했으므로, 다자이 자신은 유모 등의 손에서 자랐다.


1916년(다이쇼 5년)에 가나키제일심상소학교(金木第一尋常小學校)에 입학하였다. 4년만인 1922년(다이쇼 11년) 4월에 소학교를 졸업하고 학력 보충을 위해 현지 4개 마을에서 조합으로 세운 메이지고등소학교(高等小學校)에 다시 1년간 통학하였으며, 1923년(다이쇼 12년)에는 아오모리 현립 아오모리중학교(靑森中學校)에 입학하는데, 입학 직전인 3월에 다자이의 아버지가 도쿄에서 세상을 떠났다.


형들의 영향으로 중학교까지는 교내 수석을 차지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17세 때인 1925년(다이쇼 14년) 습작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최후(원제: 最後の太閤)」을 집필하면서 동인지를 발행하기 시작하였고 이때부터 동인지에 실을 소설이나 희곡, 수필을 쓰며 작가를 지망하기 시작한다. 1927년(쇼와 2년) 4월에 관립 히로사키(弘前) 고등학교 문과(文科)・갑류(甲類)에 입학한 뒤로는 이즈미 교카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작품에 심취하는 동시에 좌익 운동에도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영향으로 1928년(쇼와 3년) 5월에 동인지 『세포문예(細胞文芸)』를 발행하여 지면에 '쓰시마 슈지(辻島衆二)'라는 이름으로 작품 「무간나락(無間奈落)」을 발표하였다.(잡지는 9월에 4월호를 낸 것을 마지막으로 폐지) 그밖에도 고스게 긴키치(小菅銀吉)라는 필명이나, 본명인 쓰시마 슈지로 글을 쓰기도 했는데, 이때 그는 자신의 '계급'은 과연 어디에 속하는가를 고민하다 1929년(쇼와 4년) 12월에 카르모틴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1930년(쇼와 5년) 3월, 히로사키 고등학교 문과・갑류를 졸업할 당시 그의 성적은 76명 가운데 46번이었다.

프랑스어를 전혀 하지 못하면서도 프랑스 문학을 동경해 4월에 동경제국대학 문학부 불문학과에 입학하지만, 높은 수준의 강의 내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데다 친가에서 부쳐주는 돈으로 마음껏 방탕하고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그에 대한 자기 혐오, 내지 다자이 자신의 처한 위치와 더불어 마르크시즘에 심취해 갔고, 당시 치안유지법에서 단속하고 있던 공산주의 활동에 몰두하느라(다만 공산주의 사상 자체에 진심으로 빠져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강의조차 대부분 출석하지 않았다. 또한 소설가가 되기 위해 5월부터 이부세 마스지(井伏鱒二)의 제자로 들어갔는데, 이때부터 본명인 쓰시마 슈지가 아닌 다자이 오사무라는 이름을 쓰게 된다. 대학은 거듭된 유급에 수업료 미납으로 제적된다. 재학 중에 만나 동거하던 술집의 여급으로 유부녀였던 18세의 다나베 시메코(田部シメ子)와 1930년 월에 가마쿠라의 고시고에(腰越) 바다에서 동반 투신자살을 기도하였으나, 시메코만 죽고 다자이는 혼자 살아남았다. 이 일로 다자이는 자살방조 혐의로 검사로부터 조사를 받았지만, 형 분지(文治) 등의 탄원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1933년(쇼와 8년), 단편소설 「열차」를 「선데이 히가시오쿠(東奧)」에 발표하고, 동인지 『해표』에 참가해 「어복기(魚服記)」를 발표한다. 1934년(쇼와 9년) 12월에는 단 카즈오(檀一雄)・야마기시 가이시(山岸外史)・키야마 슈헤이(木山捷平)・나카하라 츄야(中原中也)・쯔무라 노부오(津村信夫) 등과 합심해 문예지 『푸른 꽃(원제: 青い花)』을 창간하지만, 창간호로 폐간되었다. 1935년(쇼와 10년)에는 소설 「역행(逆行)」을 「문예」에 발표하는데, 동인지 이외의 문예지에 그가 발표한 것은 「역행」이 처음이었다. 또한 이 해에 사토 하루오(佐藤春夫)를 알게 되었고 그로부터 사사하게 된다. 한편 1935년에 처음으로 아쿠다가와 상이 제정되는데, 다자이의 「역행」과 「어릿광대의 꽃(일본어: 道化の華)」이 제1회 수상작 후보에까지 오른다. 평소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존경해왔던 데다 재정적으로 어려웠던 처지도 결부되어 다자이는 강력히 아쿠타가와 상을 소망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제1회 아쿠타가와 상은 이시카와 다쓰조(石川達三)의 「소우보」에게로 돌아갔다. 이때 다자이나 그의 스승이자 강력한 후원자로서 아쿠타가와 상 수상 당시 전형위원이기도 했던 사토 하루오는 「역행」보다는 「어릿광대의 꽃」을 좀더 높이 평가하며 여기에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당시 아쿠타가와상 전형 위원이던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다자이의 「어릿광대의 꽃」을 그의 실제 생활과 연관지어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어릿광대의 꽃」을 후보 작품으로 선정하는 것을 꺼려했던 것이다(다만 카와바타는 최종 선정과정에서는 심사회에 결석). 카와바타로부터 "작자의 현재 생활에 어두운 구름이 끼어 있다(作者、目下の生活に厭な雲あり)"고 사생활에 대한 비난이 섞인 혹평을 들은 다자이는 "작은 새를 키우고, 무도회를 보러 다니는 것이 그렇게 훌륭한 생활인가? 죽여버릴까, 라고도 생각했었다. 악당이라고도 생각했었다..."라고 『문예통신』에 실은 '카와바타 야스나리에게'라는 짧은 글에서 반격했다.
그 후 도신문사에 입사하지 못하고 다시 또 가마쿠라에서 자살을 시도하나 미수에 그친다. 앞서 1935년(쇼와 10년) 10월에 발표한 자신의 회심의 역작 「다스 게마이네(ダス・ゲマイネ)」가 반드시 제2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리라 다자이는 기대했고 사토도 확실한 보증을 했지만[9] 「다스 게마이네」는 후보에도 오르지 못한 채 그 해 아쿠타가와 상도 '해당작품 없음'으로 결론이 나버렸다.

1936년(쇼와 11년), 전년부터 이어진 파비날 중독 치료에 전념하는 한편, 첫 단편집 「만년(晩年)」을 간행하는데, 그의 「만년」이 상반기 대상의 제3회 아쿠타가와 상의 대상 후보에 고려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자, 다자이는 자존심을 접고 사토 하루오는 물론 예전의 적이었던 카와바타 야스나리에게까지 사정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가와바타도 "나는 예선 후보 작품을 빠짐없이 읽었다. 의구심이 가는 작품은 두 번씩 읽었다. 다자이씨의 작품집 「만년」도 이전에 읽었다. 이번에 적당한 후보 작품이 없다면, 다자이씨의 특이한 재능이 수상을 해도 좋을 것이다"라며 호의적인 반응을 비췄다. 그러나 제3회 아쿠타가와 상은 오다 다케오의 「성외(城外)」라는 작품에게 돌아가고, 다자이의 아쿠타가와 상 수상은 다시 무산되어 버렸다. 거듭 좌절한 다자이는 사토 하루오와 주고받은 편지까지 공개하며 '자신이 떨어진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불만을 표출했고, 이에 분개한 사토 하루오도 소설 「아쿠타가와 상」에서 다자이의 둔감함을 비난, 둘은 한동안 서먹한 사이가 된다. 그리고 3회 이후 아쿠타가와 상 후보 선정의 기준이 '한 번 후보에 오른 작가의 작품은 다시 후보로 선정하지 않는다'로 확립되면서, 다자이의 아쿠타가와 상 수상에의 도전은 끝내 물거품이 되고 만다.
이듬해 1937년(쇼와 12년), 오기쿠보(荻窪)의 벽운장(碧雲莊) 2층 취사장 복도에서 친척이었던 미술학도 코다테 젠시로(小館善四郞)로부터, 그가 다자이의 연인 오야마 하쯔요와 간통하고 있었다는 고백을 듣게 되고, 하쯔요와 카르모틴 자살을 시도하나 또다시 미수에 그쳤다. 이후 그는 하쯔요와 이별했으며 1년간 붓을 꺾었다.

1938년(쇼와 13년), 스승 이부세의 초대로 야마나시현 미사카(御坂) 고개에 있는 덴가사야(天下茶屋)를 방문해 그곳에서 석 달 동안 머물렀다. 또한 이부세의 중매로 고후시 출신의 이시하라 미치코(石原美知子)와 11월에 결혼했다. 결혼 이듬해인 1939년(쇼와 14년) 1월에 고후의 미사키초(御崎町)에 살며 정신적으로도 안정을 찾은 다자이는 「후지 산 백경(일본어: 富嶽百景)」, 「직소(直訴)」[10], 「달려라 메로스(일본어: 走れメロス)」 등의 뛰어난 단편을 발표했다. 전쟁으로 어수선한 와중에도 「쓰가루」, 「옛날 이야기(お伽草紙)」 등 창작 활동을 계속해 나갔다.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른 1945년(쇼와 20년) 다자이는 소설 「석별(惜別)」을 발표했는데, 중국의 사상가이자 문인이었던 루쉰의 일본 유학시절 이야기를 그린 「석별」은 전시체제하 일본 군부가 문학을 정치 선전에 이용하고 전쟁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만든 일본문학보국회(日本文學報國會)의 의뢰에 따라 쓴 것이었다. 패전 뒤인 1947년(쇼와 22년), 몰락 화족을 그린 장편소설 「사양(斜陽)」이 평판을 얻어 유행 작가가 된다.

「인간실격(人間失格)」, 「앵두(櫻桃)」를 마무리한 직후 1948년 6월 13일, 타마가와(玉川) 죠스이(上水)에서 애인 야마자키 토미에(山崎富栄)와 동반자살하였다.[14] 이때 그의 나이는 39세였다.
이 사건은 발표 직후부터 온갖 억측을 낳았는데, 도미에에 의한 억지 정사설, 희극 심중 실패설 등이다. 다자이가 생전에 아사히 신문에 연재 중이던 유머 소설 「굿 바이」도 미완의 유작으로 남았는데, 공교롭게도 13화에서 작가의 죽음으로 절필되었다는 데에서 기독교의 징크스를 암시하는 다자이의 마지막 멋부림이었다는 설도 있고, 그의 유서에는 '소설을 쓰는 것이 싫어졌다' 등의 취지가 적혀 있었는데, 자신의 컨디션 저조나 다운증후군을 앓는 저능아였던 외아들의 처지에 대한 비관도 자살의 한 원인이 되었을 거라는 설도 있다. 기성 문단에 대한 '선전포고'로까지 불리던 다자이의 연재 평론 「여시아문(如是我聞)」의 마지막회는 다자이 사후에 게재되었다. 유해는 스기나미 구 호리노우치에서 화장되었다. 계명(戒名)은 문채원대유치통거사(文綵院大猷治通居士)였다.
다자이의 사체가 발견된 6월 19일은 공교롭게도 그의 생일이었는데, 죽기 직전에 쓴 단편 「앵두」와도 관련해, 생전에 다자이와는 동향으로 교류가 있던 곤 간이치(今官一)에 의해 '앵두 기일'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 날은 다자이 문학의 팬들이 그의 무덤이 있는 도쿄도 미타카시의 젠린사(禪林寺)를 찾는 날이기도 하다. 또한 다자이가 태어난 아오모리 현 카나기마치에서도 '앵두 기일'에 맞춰 다자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열었는데, 다자이의 탄생지에서 다자이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이 옳다는 유족의 요망도 있어 다자이 오사무 탄생 90주년이 되는 1999년부터는 「다자이 오사무 탄생제」로 이름을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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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 다자이 오사무 (김춘미 옮김, 민음사)

인간실격 - 다자이 오사무  (양윤옥 옮김, 시공사)

인간실격 - 다자이 오사무  (오유리 옮김, 문예출판사)

인간실격 - 다자이 오사무  (유숙자 옮김, 문학과지성사)

인간실격 - 다자이 오사무  (정수윤 옮김, 도서출판 비 - 다자이 오사무 전집)

인간실격 - 다자이 오사무  (장하나 옮김, 코너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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