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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 고전 문학 (동양)/1. 동양 - 고전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나쓰메 소세키 (김상수 옮김, 신세계북스)

by handaikhan 2024. 4. 22.

 

나쓰메 소세키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1906년)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상권)

 

1. 인간과의 첫 만남

 

나는 고양이다. 쥐 따위는 결단코 잡지 않는다.

인간들이란 자기 자신만 믿기 때문에 모두 오만하다.

인간보다 좀 더 잘난 내가 세상을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내가 어디서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둠침침하고 습한 곳에서 야옹야옹 울고 있었던 것은 기억한다.

나는 거기서 처음으로 인간이라는 걸 보게 되었다.

내가 처음 본 인간은 서생이라는 부류인데, 이 서생이란 것들은 인간들 사이에서도 영악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게다가 서생이라는 무리는 가끔 우리 고양이들을 삶아 먹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그들을 처음 보았을 때는 그들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특별히 그들이 무섭다거나 하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저 내가 서생의 손바닥 위에서 쓰다듬어졌을 때, 뭐랄까 하늘로 둥실둥실 떠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좋았을 뿐이다. 손바닥 위에서 정신을 좀 차리고 나서 서생의 얼굴을 본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생물과 첫 만남이었다.

참 희한하게 생긴 동물이라는 인상을 받았던 게 아직도 생생하다. 얼굴은 털도 없이 미끌미끌한게 흡사 주전자 같았다. 나중에 많은 고양이들을 만나봤지만 이런 멍청이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게다가 이 인간이라는 것들은 얼굴 한복판이 불쑥 튀어나와 있다. 그리고 가끔씩 콧구멍으로 푹푹 연기를 내뿜기도 한다. 그 연기 때문에 코가 매워서 정말 괴로웠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들이 피우는 담배라고 하는 기호품이라는 것을 요즘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p.7-8)

 

정말로 인연이란 기이한 것이다. 만약 이 대나무 울타리가 뚫려 있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쩌면 길거리에서 불쌍하게 굶어죽었을지도 모른다. '같은 나무 그늘 아래 사는 것도 전생의 인연'이라는 옛말은 역시 맞는 말이다. 이 울타리 구멍은 나중에 내가 이웃집에 사는 고양이 아가씨 미케를 만나러 갈 때 이용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p.9-10)

 

이 집 주인은 좀처럼 나와 얼굴을 마주치는 일이 없다. 그의 직업은 학교 선생이라고 한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온종일 서재에 틀어박혀 거의 나오는 일이 없다. 식구들은 그를 대단한 면학도인 줄 알고 있고 스스로도 면학도인 척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알고 보면 그는 식구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다. 내가 가끔씩 발소리를 죽여 가며 그의 서재를 엿보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십중팔구 낮잠을 자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가끔씩은 읽다 만 책 위에 침을 흘리기도 한다.

주인은 위가 약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피부색이 담황색인 게 정말로 위가 활발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런 주제에 밥은 정말 많이 먹는다. 그렇게 많이 먹고 나서 다카디아스타제라는 소화제까지 먹는다. 밥을 먹은 후에는 책을 펼친다. 그런데 두세 페이지만 읽으면 또 졸기 시작한다. 책 위에 침까지 흘리면서 말이다. 이런 일이 매일 밤 되풀이된다. 나는 고양이지만 때때로 이런 생각이 든다.

'선생이란 정말 편안한 직업이구나. 나도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선생이 되어야겠다. 이렇게 매일 졸아도 제법 일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고양이라도 거뜬하게 해낼 수 있을 거다.'

그래도 주인은 선생만큼 힘든 직업은 없다고 친구들이 올 때마다 이러쿵저러쿵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 (p.12-13)

 

인간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관찰하면 할수록 '인간이란 참 제멋대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중에서도 아이들은 최악이다. 자기 좋을 때는 나를 거꾸로 치켜들기도 하고, 내 머리에 자루를 씌우기도 하고, 아무 데로나 내팽개치기도 하고, 심지어는 부뚜막 속으로 밀어 넣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조금 손발을 내저으며 발버둥을 치려고 하면 온 집안사람들을 총출동시켜 난리법석을 피운다.

얼마 전에는 잠깐 다다미에 발톱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걸 본 안주인이 화를 버럭 내더니 두 번 다시는 다다미방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다. 부엌 마루방에서 아무리 부들부들 떨고 있어도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존경하는 건너 집에 사는 흰둥이는 만날 때마다 인간 만큼 인정머리 없는 건 없다고 하신다. 흰둥이는 며칠 전 옥 같은 새끼고양이를 네 마리나 낳으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 집 서생이 사흘째 되는 날 새끼고양이 네 마리를 연못에 모두 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흰둥이는 눈물을 흘리며 아무래도 우리 고양이들이 가족끼리 화목하게 살려면 인간들과 싸워 그들을 무찌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셨다. 모두 백 번 천 번 맞는 말이다.

그리고 이웃집 암고양이 미케는 인간들은 '소유권' 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서 크게 화를 내고 있었다.

원래 우리 고양이 동족간에는 말린 정어리 대가리나 송어 배꼽이라도 제일 먼저 발견한 고양이에게 먹을 권리가 있다. 만약 누군가가 이 규칙을 어긴다면 완력을 써도 무방하다. 그런데 인간이란 작자들은 이런 규칙이 없는지 우리가 발견한 먹이를 예외 없이 빼앗아 간다. 인간은 그들의 힘만을 믿고 마땅히 우리가 먹어야 할 것을 빼앗고도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p.14-15)

 

흰둥이는 군인 집에, 미케는 변호사 집에서 산다. 나는 선생 집에 살아서 그런지 이런 일에 대해선 오히려 낙천적이다. 그저 그날그날 그럭저럭 지내기만 하면 된다. 제아무리 인간이 잘났다고 할지라도 언제까지나 그렇게 번영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고양이 세상이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p.16)

 

그러면서도 뭘 시작했다 하면 위도 나쁜 주제에 무척 열심이다. 화장실에 들어가서도 우타이를 불러대는 통에 동네 사람들이 '화장실 선생'이라는 별명을 지어 부르는데도 별로 신경 쓰지도 않고 지금까지 "나는 다이라노 무네모리노라" 하면서 처음 배운 우타이의 첫 소절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 그래서 모두들 "저것 봐, 저기 무네모리가 온다!" 하고 웃음을 터뜨릴 정도다. (p.16-17)

<참고>

우타니는 일본 특유의 가면 음악극인 노가쿠에 맞춰 부르는 가사이다.

노가쿠(能楽)는 14세기에 무대예술로 정립되어 현대까지 약 650년간 전승되어온 일본의 고전 연극이며, 현재까지 상연되는 무대 예술 중 가장 긴 역사를 가진 무대 예술이다.

(같이 읽으면 좋은 책)

헤이케 이야기 (오찬욱 옮김, 문학과지성사 대산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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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인간들은 자기 자신만 믿기 때문에 모두 오만하다. 좀 더 인간보다 강한 자가 나와서 바로잡아 주지 않으면 앞으로 어디까지 오만해질지 알 수가 없다. (p.20)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오만과 편견 - 제인 오스틴 (고정아 옮김,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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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평소 때처럼 나는 검둥이와 따뜻한 차밭 속에서 뒹굴면서 이런저런 잡담을 하고 있었다. 그는 늘 하는 자기 자랑을 신기한 뉴스라도 되는 것처럼 되풀이한 다음,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넌 여태껏 쥐를 몇 마리나 잡아봤니?"

지식면에서는 내가 검둥이보다 월등하지만 힘과 용기면에서는 내가 검둥이보다 못한 게 사실이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받게 되니 뭐라고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이어서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사실 이제부터 잡아야지 잡아야지 하다가 기회를 놓쳐서 아직 한 마리도 못 잡았어."

검둥이는 코끝에서 팽팽하게 뻗친 긴 수염을 짜릿짜릿하게 떨쳐내면서 깔깔대고 웃었다. 자기 자랑이 많은 걸 보면 어딘가 모자란 데가 있는 게 분명해서 그의 잘난 척에 감탄했다는 듯 목구멍을 갸르릉갸르릉 울려 가며 공손하게 잘 듣고만 있으면 너무나 제어하기 쉬운 고양이다.

나는 그와 사귀게 되면서 금세 이 호흡법을 익히게 되었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도 굳이 자기변호를 해서 불리한 상황을 만드는 일 같은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차라리 그에게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게 해서 어물쩍 넘기는 게 낫다고 여기는 편이다. 그래서 은근하게 그를 부추겨보았다.

"너는 경력도 화려하니까 굉장히 많이 잡았겠지?"

과연 그는 장벽의 틈의 찾아 돌객해 오는 야수처럼 날렵하고 재빠르게 무용담을 펼쳐놓았다.

"뭐 그리 대단한건 아니지만 3,40마리 정도는 잡았을 거야."

말은 그렇게 해도 제법 우쭐한 모양이다. (p.24-25)

 

그러나 검둥이의 비위를 맞추려던 장단이 이상하게도 역효과를 내고 말았다. 그는 "아이고!" 하면서 크게 탄식했다.

"생각하면 울화통이 터져. 내가 아무리 쥐를 잡는다고 해도 인간만큼 뻔뻔스런 놈들은 세상에 또 없을 거야. 남이 잡은 쥐를 모조리 빼앗아서 파출소에 가지고 가 버리는 거야. 파출소에서는 누가 잡은 건지도 모르고 한 마리에 5전씩 쳐서 우리 집주인에게 돈을 주더군. 우리 집주인은 내 덕분에 벌써 1엔 50전 정도나 벌었으면서도 한 번도 나한테 제대로 먹여 준 적이 없지 뭐야. 인간들은 전부 도둑놈들이야."

검둥이가 아무리 무식하다고 하더라도 세상 이치는 아는 법. 털을 곤두세우고 화를 낼 만도 하다. 덩달아 기분이 찜찜해진 나는 적당히 얼버무리고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그날 이후로 나는 결심했다. 죽 쒀서 개 주기 싫어서라도 쥐는 절대로 잡지 않겠노라고.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검둥이의 똘마니가 되어 쥐가 아닌 다른 음식물을 찾아 헤매는 일도 하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보다는 누워 있는 편이 훨씬 편하고 좋기 때문이다. 선생 집에 있으면 고양이도 선생처럼 되는가 보다. 주의하지 않으면 주인처럼 위장이 약해질지도 모른다. (p.26-27)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지 못해서 그런지 그다지 살이 찌지도 않지만, 누구보다도 건강하고 절름발이도 되지 않은 채 하루하루 지내고 있다.

쥐 같은 건 절대 잡지 않는다. 하녀 오상은 여전히 싫다.

이름은 아직 없지만 욕심을 말하면 한도 끝도 없으니까 그럭저럭 만족해하며 평생 선생 집에서 살다가 이름 없는 고양이로 살다가 생을 마칠 작정이다. (p.34)

 

2. 정말 웃기는 인간들

 

비록 이름도 없는 나지만 새해가 되어 다소 유명해진 덕분에 고양이지만 코가 좀 높아진 것 같다. (p.35)

 

솔직히 말해서 인간 스스로 믿고 있는 것처럼 별로 위대하지도 않은 것이 어쩌면 더 골치 아픈 일이다. 더군다나 동정심이라고는 약에 쓰려고 해도 없는 이 집 주인 같은 사람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의미라는 것을 모르고 있으니 딱할 뿐이다.

그는 성질이 괴팍한 굴 조개처럼 서재에 달라붙은 채 외부 세계를 향하여 입을 연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인생을 달관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꼴을 보면 정말 우습다. 내 초상화가 눈앞에 있는데도 조금도 알아채지 못할뿐더러, '올해가 러일전쟁이 발발한 지 2년째니까 곰을 그린 건가' 하는 의미도 없는 소리를 하는 게 그 증거다.

내가 주인의 무릎 위에서 누워 눈을 감고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하녀가 두 번째 그림엽서를 가지고 왔다. 그 엽서는 활판인데 외국산 고양이 네댓 마리가 주르르 행렬을 지어 펜을 잡기도 하고 책을 펼치기도 하면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중 한 마리는 책상 한 귀퉁이에서 <고양이야, 고양이>라는 노래에 맞춰 춤추고 있었다. 그 위에 먹으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고 시커멓게 써놓고 오른쪽 옆에 '봄날 하루를/ 책 읽고/ 춤도 추고/ 들뜬 고양이'라는 하이쿠까지 적어놓았다.

이 엽서는 주인의 옛 제자가 보낸 것으로 누가 봐도 금방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텐도도 세상 물정 어두운 주인은 아직 깨닫지 못했는지 이상하다는 듯 갸우뚱거리면서 "올해가 고양이 해던가?" 하고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거이다. 내가 이토록 유명해 졌다는 걸 아직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니 어리석은 건지 아둔한 건지 알 수가 없다. (p.38-39)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고양이 오솔길 - 호리모토 유우키 (최진선 옮김, 고양이책방)

하이쿠와 우키요에, 그리고 에도 시절 - 마쓰오 바쇼, 요사 부손, 고바야시 잇사 (김향 옮김, 다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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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한번 까칠하다. 술상대가 그렇게 싫으면 일찌감치 외출을 하면 될 텐데 그렇게 하지도 않으니 답답하다. 끝끝내 껍데기 속에 틀어박힌 굴 근성을 간직하고 있다.

이윽고 하녀가 와서 "간게츠씨가 오셨습니다" 하고 말한다. 이 간게츠라는 청년도 역시 주인의 제자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학교를 졸업해서 주인보다 훨씬 훌륭한 인물이 되었다고 한다.

이 청년은 희한하게 주인을 자주 찾아온다. 오기만 하면 '자기를 사모하는 여자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세상사가 재미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재미없는 것 같기도 하다' 같은 별로 쓸데없는 이야기만 늘어놓다가 가곤 한다. 주인처럼 이제 시들기 시작한 인간을 찾아와 일부러 이런 얘기를 하고 가는 것도 납득할 수 없지만, 굴 근성을 가지고 있는 주인이 그런 수다를 듣고 가끔씩 맞장구를 치는 건 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p.40)

 

한참 동안 두 녀석은 서로 노려보고 있다가 큰녀석이 다시 숟가락을 들어 자기 접시 위에 가득 쏟았다. 작은녀석도 이에 질세라 숟가락을 들어 언니만큼 자기 접시에 설탕을 부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또 언니가 다시 가득 펐다. 동생 역시 지지 않고 또 가득 펐다. 언니가 다시 항아리에 손을 댄다. 동생이 또 숟가락은 든다. 보고 있는 동안 숟가락이 계속 왔다 갔다 하더니 결국 두 녀석의 접시에 설탕이 산처럼 수북이 쌓였다. 이제 항아리 속에는 설탕이 한 숟가락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때 주인이 잠에서 덜 깬 눈을 비비면서 침실에서 나오더니 모처럼 퍼낸 설탕을 도로 항아리에 담았다.

이런 걸 보면 인간이 이기주의로부터 이끌어낸 '공평' 이란 관념이 고양이보다 나을지 몰라도 지혜만은 고양이보다 못한 것 같다. 그렇게 산더미가 되기 전에 재빨리 빨아먹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평소처럼 내가 말을 해봤자 통하지 않으므로 그 어리석음이 가엾지만 밥통 위에서 잠자코 구경하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p.45-46)

 

살그머니 마당 쪽으로 돌아나와 서재 툇마루로 올라가 장지문 틈으로 살짝 엿보았더니 주인은 에픽테토스인지 뭔지 하는 사람의 책을 펼쳐놓고 있었다. (p.47)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에픽테토스의 인생을 바로보는 지혜 - 에픽테토스 (키와 블란츠 옮김, 소울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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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심리만큼 이해하기 힘든 건 없다. 지금 주인이 노여워하고 있는지, 싱숭생숭한지, 아니면 철학자의 유서에서 한 가닥 위안을 찾고 있는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세상을 냉소하고 있는지, 세상에 뛰어들고 싶은지, 쓸데없는 일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지, 세상사 모든 일에 초연해 있는지, 도통 짐작이 가지 않는다.

고양이들은 그런 인간에 비하면 단순명료하다.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화날 때면 열중해서 화를 내고, 울 땐 죽기 살기로 운다. 무엇보다도 일기 쓰는 일 같은 건 절대로 하지 않는다.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집 주인처럼 겉 다르고 속 다른 인간은 일기라도 써서 세상에 내비칠 수 없는 자신의 면목을 암실에서 발휘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고양이들은 가고 오고, 앉고 서고, 똥 누고 오줌 누는 그 모든 것이 진정한 일기여서 따로 그런 귀찮은 과정을 거쳐 자신의 참모습을 남길 필요가 없다. 일기 쓸 시간이 있으면 툇마루에 나가 낮잠이나 자겠다. (p.49)

 

"옛날 사람이라면 백낙천의 <비파행> 같은 것 말입니까?"

"아니오."

"그럼, 부손의 <춘풍마제곡> 같은 종류인가요?"

"아니오." (p.77)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비파행 - 백낙천 (오세주 옮김, 다산초당)

중국명시 감상 - 이석호, 이원규 옮김 (위즈온)

 

琵琶行 - 白居易 (비파행 - 백거이)

이 밤 심양강가에서 손님을 보내는데,
솔솔 가을바람에 단풍잎 흔들리고 붉은 꽃 흔들린다.
주인은 말에서 내렸고 손님은 배 타려 할 제.
술 한 잔 하려 해도 음악이 없구나.
취해 노래해도 기쁘지 않아 아프게 이별하는데,
망망한 강물에 명월이 잠겼더라.
홀연 강에서 비파 소리 들려와,
주인은 돌아갈 길 잊었고 손님도 떠나지 않네.
소리 좇아 작은 목소리로 물었네. 비파 타는 사람이 누구냐고
비파 소리 끊어지더니 대답 또한 느릿느릿.
배 가까이 옮겨가 그 사람을 맞이하곤,
술 더 내오고 등불 밝혀 다시 잔치를 연다.
천 번 외치고 만 번을 부르니 그제서야 나오는데,
비파 안고 얼굴을 반쯤 가렸네.
목축을 옮기고 현을 퉁기어 두세 소리 울리는데,
곡조가 안 되었어도 정이 가득하네.
한 줄 한 줄 눌러가니 나지막한 소리마다 슬픔이고,
불우한 한평생 하소연하는 듯하구나.
고개 숙이고 손 뻗으며 계속 연주하는데,
마음 속 무한한 심사 다 쏟아 붓는 듯하구나.
왼손은 가볍게 두드리고 느리게 문지르며 오른손은 위로 아래로 퉁겨
올리고 내리며,
처음엔 예상우의곡, 다음엔 육요를 연주한다.
대현 소리는 소나기 오듯 시끌시끌,
소현 소리는 소곤소곤 속삭인다.
시끌시끌, 소곤소곤 뒤섞어 연주하니,
큰 구슬 작은 구슬 옥쟁반에 떨어지듯.
꾀꼴꾀꼴 꾀꼬리 소리 꽃 아래로 미끄러지듯,
졸졸졸 샘물 소리 얼음 밑에서 흘러가기 힘들다.
얼어붙은 샘물 차갑고 껄끄러운지 비파 현 엉켜 끊어지고,
끊어져 잘리니 비파 소리 점점 그친다.

그윽한 슬픔 남모르는 한 달리 일어나니,

비파 소리 없어도 울릴 때보다 더 슬프다.

갑자기 은병이 깨진 듯 샘물이 솟아난 듯,

철기가 뛰쳐나오고 창과 칼이 부딪쳐 울어대듯.

곡조 끝나고 발로 비파를 가로질러 휙 한번 그으니,

명주가 찢어지듯 네 현이 한소리를 내네.

동쪽, 서쪽 배에 탔던 사람 아무 말이 없고,

강 가운데 가을달만 하얗게 밝았다.

가만히 발을 거두어 현 사이에 꽂고,

의상을 정돈하고 얼굴을 가다듬어,

스스로 말하길 저는 본래 장안의 가녀로,

하마릉 아래서 살았답니다.

13세에 거문고 다 배우고,

교방제일부에 이름을 올렸는데,

한 곡조 타고 나면 악사들도 탄복하고,

화장하고 나설 때면 가녀들이 질투했었소.

오릉의 젊은이들 다투어 예물 보내,

비파 한 곡조에 명주, 비단 셀 수 없었다오.

금옥 장식한 비녀 박자 치다 부서지고,

붉은 비단 치마 술 엎질러 더럽혔소.

금년에 기뻐 웃고 다음해에도 그렇게,

봄바람 가을바람처럼 한가로이 지냈는데,

동생은 군에 가고 자매들은 죽어갔고,

저녁 가고 아침 오더니 안색이 시들어가더이다.

문 앞은 냉랭하고 찾아오는 수레 드물어져,

늙어 시집가 상인의 아내가 되었답니다.

장사꾼들 돈은 귀하나 헤어짐은 가벼워,

지난달에 부량으로 차를 사러 가 버렸소.

강나루 오고가며 빈 배만 지키는데,

뱃전에 달은 밝고 강물은 차갑구나.

깊은 밤 홀연히 젊은 날을 꿈꿀 때면,

꿈에서도 울고 울어 눈물이 분에 묻어 온 얼굴에 퍼진다오.

비파 소리 듣고 나서 이미 탄식했었는데,

이 이야기 듣고 나서 다시 또 탄식하네.

실의에 타향을 떠도는 우리들.

오늘 만나 왜 하필 서로의 신세를 알게 되었나!

나도 지난해에 황제 계신 장안을 떠나,

심양성에 귀양 와서 병들어 누웠다네.

심양 땅 외진 곳 음악이 없는 터라.

일년 내내 사와 죽소리 듣지 못하네.

집 근처 분강 땅 낮고 습하여,

누른 갈대 마른 대 집을 에워싸고.

그 안에서 밤낮으로 무엇을 듣겠는가?

두견새 피울음 소리, 원숭이 슬피 우는 소리밖에.

봄날 강가 꽃 피는 아침, 가을 밤 달 뜨는 때에

가끔 술 가져와 혼자서 잔을 기울였네.

어찌 산가, 촌적도 없단 말인가?

뒤섞이고 갈라지는 소리 오래 듣고 있을 수도 없지만.

오늘 저녁 그대 비파 소리 들으니,

신선의 음악을 들은 듯 귀가 잠시 밝아졌다오.

사양 말고 다시 앉아 한 곡조 타주시며,

그대 위해 악보 맞춰 비파행을 지으리라.

내 말 듣고 감격하여 오랫동안 서 있더니,

자리에 다시 앉아 현을 당기니 음은 높아지고 곡조는 빨라진다.

처량하고 처량한 게 전과 같지 않아,

모든 사람 다시 듣고 얼굴 가려 눈물 흘린다.

좌중에서 눈물 제일 많이 흘린 사람,

강주 사마 푸른 적삼 눈물에 젖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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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송 하이쿠와 삶의 미학 - 유옥희 (제이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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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얌전히 앉아 세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차례대로 들었지만 우습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인간들이란 것들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굳이 입을 운동시켜 우습지도 않은 이야기에 웃기도 하고, 재미도 없는 것에 즐거워하기도 하는 것말고는 재주가 없는 것들이라고 느꼈다.

우리 집 주인이 고집스럽고 편협하다는 건 일찍부터 알고 있었지만, 평소엔 말수가 적어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이해하기 어려운 점 때문에 주인에 대해 얼마간은 두려운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 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갑자기 그를 경멸하고 싶어졌다. 주인은 어째서 두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잠자코 듣지 못한단 말인가. 행여 질세라 시시콜콜 아무 이야기나 지껄여서 무슨 영화를 누린단 말인가. 에픽테토스의 책에 그렇게 하라고 씌어 있단 말인가.

가만히 보면 주인도 간게츠 군도 메이테이 선생도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백성으로, 그들은 호리병박처럼 바람에 흔들려도 초연한 척하지만 사실은 속물이다. 경쟁심리, 이기려는 심리가 그들이 나누는 일상 대화에서도 언뜻언뜻 비치며, 한걸음 나아가면 그들이 평소에 매도하는 평범한 사람들과 한통속인 동물이 되고 마는 것을 보고 있으면 고양이 입장에서 보기에도 불상하기 그지없다 하겠다. 다만 그들의 언어 동작이 보통의 얼치기들처럼 판에 박은 듯 똑같지 않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p.117-118)

 

3. 누가 우리 주인 좀 말려 줘요

 

"또 바킨의 몸뚱이에다 메이저 펜데니스의 머리를 달아서 1,2년 정도 유럽의 공기로 둘러싸 두는 거지요." (p.139-140)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신사 배리 린든의 회고록 - 윌리엄 새커리 (신윤진 옮김, 문학과지성사)

너구리 노파 - 교쿠테이 바킨 (송나예 옮김, 돌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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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을 길렀다고 해서 고약하다고 하면, 세상에 고약하지 않은 고양이는 한 마리도 없겠다. (p.186)

 

4. 안주인과 바깥주인의 살아가는 법

 

그렇다면 왜 '잠입한다'는 수상쩍은 단어를 사용하냐고? 글쎄, 그건 정말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원래 내 생각대로 한다면 저 허공은 만물을 덮기 위해, 이 땅은 만물을 싣기 위해 생겨난 것이니 아무리 집요한 논리를 좋아하는 인간도 이 사실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 하늘과 대지를 만들기 위해 인간이라는 것들이 얼마만큼 노력했느냐 하면 손톱만큼도 노력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만들지 않은 물건을 자기 것으로 정할 수는 없는 법이다. 자기 소유로 인정하는 것까지는 상관없겠지만 다른 이가 드나드는 것까지 금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넓은 땅에 약삭빠르게 울타리를 치고, 말뚝을 세우고, 모모의 소유지 등으로 나눠 가르는 일은 마치 하늘에 새끼줄을 치고, 여기는 내 하늘이고 저기는 네 하늘이라고 하는 것과 똑같다.

만약 토지를 잘라내 한 평에 얼마 하고 소유권을 팔고 산다면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를 한 자 입방으로 나누어 팔아도 좋을 것이다. 공기를 팔 수 없고 하늘에 새끼줄을 칠 수 없다면 토지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어디든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하긴 가고 싶지 않은 곳에는 가지 않지만, 가고 싶은 곳은 동서남북 구별이 없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어느 곳으로든 어슬렁어슬렁 간다.

그러나 고양이들의 슬픔은 도저히 힘으로는 인간을 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힘센 것은 권리'라는 격언까지 존재하는 이상 아무리 우리 쪽 도리가 맞다고 해도 고양이의 주장은 통하지 않는다. 무리하게 통해 보려다가 인력거꾼네 검둥이처럼 느닷없이 생선장수의 멜대에 얻어맞을 염려가 있다. 사리는 우리 쪽 사리가 맞지만 권력은 그들에게 있다고 할 때, 사리를 저버리고 덮어놓고 굴복할 건지 권력의 눈을 피해 우리 쪽 사리를 관철할 건지 정하라고 한다면 나는 물론 후자를 택할 것이다. 멜대를 피해야만 하기 때문에 잠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남의 집 저택 안으로 들어가도 되기 때문에 들어가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가네다 집으로 잠입하는 것이다. (p.204-206)

 

손님은 세 사람 중에 외모가 가장 평범하게 생겼다. 평범해서 특별히 내세워 소개할 만한 특징이 하나도 없다. 평범하다고 하면 제법 괜찮을 것 같지만 지나치게 평범한 나머지 속되게 보이는 건 너무 불쌍하다. (p.208)

 

"괘씸하네요. 도대체 학문 좀 했다 하는 사람들은 자만심이 대단해서 말이죠. 게다가 가난을 겪으면 남에게 지기 싫어하게 되기도 하죠. 세상엔 그런 무례한 놈이 많답니다. 자기가 무능하다는 건 깨닫지 못하고 무턱대고 재산이 있는 사람에게 적대감을 갖는 그런 사람 말이에요. 마치 그들이 자기 재산이라도 빼앗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모양이라니 놀랍기 이를 데 없는 일이지요. 하하하."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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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해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나쓰메 소세키 (유유정 옮김, 문학사상사)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나쓰메 소세키의 처녀작인 동시에 출세작이다. 1905년 1월에 아이쿠 잡지 [호토토기스]에 11회분이 실리면서 [호토토기스] 동인 야마카이에서 낭독된 것이 연재의 발단이 되었다.

처음에는 제1장으로 끝낼 예정이었을 만큼 짧은 것이었으나 의외로 호평을 받아 1906년 8월까지 10회에 걸쳐 연재되어 현재의 장편소설이 된 것이다.

이 작품은 고양이 한 마리의 눈을 통해 인간을 연구 비평함과 동시에 20세기 메이지인의 생태와 사회를 풍자한 소설이다.

"나는 인간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관찰하면 할수록, 그들은 제멋대로 행세한다고 단언할 수 밖에 없게끔 되었다."라는 문장에도 집약되어 있듯이, 이 작품은 한 마리의 고양이가 인간 사회를 관찰하고 그들의 자기본위나 어리석음, 뻔뻔스러움 등 여러 가지 인간사를 가차 없이 비판하고 있다.

첫째, '속세인'들과 같기를 거부하는 지식인들의 이중성을 묘사하며

둘째, 미학자임을 자칭하는 허풍선이에다 거짓말쟁이 메이테이는 이 작품의 풍자와 해학을 중폭 시키는 중요 인물이며

셋째, 세상을 등지고 세상 뒤에 숨어 달관한 듯 살아가는 지식인들도 결국은 속세인과 한통속임을 예리하게 간파하고 있으며,

넷째, '속세인'들과 대립되는 '달관자'들의 유유자적한 세태를 풍자하고

다섯째, 금권이 지배하는 현실과 지식인들의 고답적인 세계 등 근대 사회의 비윤리를 예리하게 비판하고

여섯째, 동물을 통해 인간 세계를 전개해가는 색다른 구상과 번뜩이는 해학 등 소세키의 독창성이 돋보인다.

마지막으로 해학 밑바닥에 감도는 인간사의 서글픔과 쓸쓸함을 느낀 고양이의 고독감은 바로 작가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p.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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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년 1월 11일 ~ 1916년 1월 9일)

1867년 1월 11일(음력 1월 5일)에 에도의 우시고메 바바시모요코초(오늘날 신주쿠구 기쿠이 정)에서 나쓰메 고효에 나오카쓰(夏目小兵衛直克)의 막내로 태어났다. 자식 많은 집에서 늦둥이로 태어났으므로, 어머니가 부끄럽게 여겼다. 긴노스케라는 이름은 태어난 날이 경신일(庚申日, 이날 태어난 아이는 큰 도둑이 된다는 미신이 있었다)이었으므로, 액을 막는 의미에서 긴(金)이라는 글자가 이름에 들어갔다. 세 살 때쯤 걸린 천연두 흔적은 이후에도 남았다.
당시 에도 막부가 붕괴한 이후 혼란기였고, 생가는 몰락하고 있었으므로 태어난 직후에 요쓰야(四谷)의 낡은 도구점(일설에는 야채가게)에 양자로 갔지만, 늦은 밤까지 물건 옆에서 나란히 자는 것을 지켜본 누나가 불만을 품고 곧 본가로 데리고 왔다. 이후 1세 때 부친의 친구였던 시오바라 쇼노스케(塩原昌之助)의 양자로 갔지만, 양부였던 쇼노스케의 여성 문제가 들통나는 등 가정불화가 불거지면서 7세 때 양모가 잠깐 생가로 데려왔다. 이후 양부모 이혼과 함께 9세 때 생가로 되돌아오지만, 친부와 양부 대립으로 말미암아 나쓰메가로 복적한 게 21세 때 일이다. 이러한 양부모와 관계는 이후 소설 《한눈팔기》의 소재가 되었다.
어수선한 집안 분위기 속에서 이치가야 학교(市ヶ谷学校)를 거쳐 니시키하나 소학교(錦華小学校)로 전학했다. 12세 때인 1879년에 도쿄부 제1중학 정칙과(正則科, 훗날 부립 1중, 오늘날 도쿄도립 히비야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대학 예비문 수험에 필수였던 영어 수업이 없던 것과 함께 한학과 문학에 뜻을 두었으므로 2년 뒤 중퇴했다. 1883년에 대학 예비문 수험을 위해 영어를 가르치던 영학숙 세이리쓰 학사(成立学舎)에 입학해 두각을 드러냈다.
1884년에 무사히 대학 예비문 예과에 입학했다. 당시 하숙 동료로 훗날 남만주 철도 총재가 되는 나카무라 요시코토가 있다. 1886년에 대학 예비문이 제1고등중학교로 개칭하고, 이후 맹장염 등으로 인해 예과 2급의 진급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요시코토와 함께 낙제하였다. 이후 사립학교 교사를 지냈으며, 영어실력이 우수했다.
1889년에 동창생으로 소세키에게 문학적·인간적으로 많은 영향을 준 마사오카 시키와 처음으로 만났다. 시키가 손수 쓴 한시나 하이쿠 등을 묶은 문집 《나나쿠사슈》(七草集)가 돌고 있을 때 소세키가 그 비평을 권말에 한문으로 쓴 게 우정의 시작이었으며, 이때 처음으로 ‘소세키’라는 호를 사용했다. 소세키라는 이름은 《진서》(晉書)의 고사 ‘수석침류’(漱石枕流,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겠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억지가 강하거나 괴짜라는 것의 대표적인 예이다. 소세키는 원래 시키의 수많은 필명 가운데 하나였으나, 이후에 소세키는 시키로부터 이를 물려받았다.
1890년에 창설된 지 얼마 안 된 제국대학(이후 도쿄 제국대학) 영문과에 입학하며, 이즈음에 염세주의와 신경쇠약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887년에는 큰 형 다이스케(大助)를 잃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둘째 형 에이노스케(榮之助)를 잃는다. 1891년에는 셋째 형 와사부로(和三郎)의 아내 도세(登世)가 스물다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892년에는 병역을 피하기 위해 분가하였으며, 홋카이도로 적을 옮겼다. 같은 해 5월에는 도쿄 전문학교(지금의 와세다 대학)의 강사를 시작한다. 이후 시키가 대학을 중퇴하지만, 소세키는 마쓰야마의 시키의 집에서 뒤에 소세키를 직업작가의 길로 이끄는 다카하마 교시와 만나게 되었다.
1893년에 도쿄 제국대학을 졸업하고, 도쿄 고등사범학교 영어교사가 되었으나 일본인이 영문학을 가르치는 것에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잇단 가족 죽음과 함께 폐결핵, 극도의 신경쇠약 등이 나타난 게 이때다. 1895년에 도쿄에서 도망치듯 고등사범학교에서 사직하고, 스가 도라오(菅虎雄)의 주선으로 에히메현 심상 중학교로 부임한다. 마쓰야마시는 시키의 고향으로, 이 즈음에 시키와 함께 하이쿠나 작품을 남기고 있다.
1896년에는 구마모토현 제5고등학교(구마모토 대학의 전신)의 영어교사로 부임하고, 친족들의 권유로 귀족원 서기관장이던 나카네 시게카즈의 장녀 교코와 결혼하지만, 좋은 관계는 맺지 못하는 등 원만한 부부는 아니었다.
1900년 5월에 문부성에 의해 영문학 연구를 위해 영국 유학을 떠나게 된다. 메리디스나 디킨스 등을 주로 읽었다. 《긴 봄날의 소품》(永日小品)에서도 등장하는 셰익스피어 연구가 윌리엄 크레이그의 지도를 받거나, 《문학론》(文学論) 연구 등을 하지만 영문학 연구와의 위화감은 지속되어 신경쇠약은 심해졌다. 또한 동양인이라는 이유에서 인종차별을 받는 등의 초조함도 쌓여 몇 번이나 거처를 옮겼다.
1901년에 물리화학 연구를 위해 2년간 독일로 유학해 있던 화학자 이케다 기쿠나에가 베를린에서 소세키를 찾아와 잠시 동거한 것으로 인해 깊은 자극을 받고, “기쿠나에에게 받은 자극을 계기로 소세키가 과학이라는 학문을 강하게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혼자서 연구에 몰두하는 등으로 인해 주변의 일본인들에게서 “나쓰메가 미쳤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문부성에서 귀국 명령을 내린다. 1903년에 결국 일본으로 귀국하게 되었으며, 소세키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집의 맞은편에 1984년에 쓰네마쓰 이쿠오에 의해 런던 소세키 기념관이 설립되었다.
귀국 이후 도쿄 제국대학의 강사나 메이지 대학의 강사 등을 전전하던 소세키는, 신경쇠약을 완화하기 위해 데뷔작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집필하고 시키 문하의 모임에서 발표하여 호평을 얻었다. 1905년 1월에 《호토토기스》에 1회만 게재할 계획이었지만, 호평으로 속편을 집필한다. 이때부터 작가의 길을 열망하기 시작했고, 이후 〈런던탑〉이나 《도련님》 등을 연달아 발표하면서 인기를 얻어간다. 소세키의 작품은 세속을 잊고 인생을 관조하는, 이른바 저회취미(低徊趣味, 소세키의 조어)적 요소가 강해 당시 주류였던 자연주의와 대립된 여유파로 불렸다.
1907년에 도쿄 아사히 신문의 주필이던 이케베 산잔의 초청으로 아사히 신문사에 입사해 본격적인 직업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같은 해에 직업작가로서의 첫 작품 《우미인초》의 연재를 시작하고, 집필 도중에 신경쇠약이나 위병 등으로 고생했다. 1909년에 친우였던 남만주 철도 총재 나카무라 요시코토의 초청으로 만주와 조선을 여행한다. 이 여행의 기록은 《아사히 신문》에 〈만한 이곳저곳〉(満韓ところどころ)이란 이름으로 연재되었다.
1910년 6월, 《산시로》와 《그 후》에 이은 전반기 3부작의 세 번째 작품 《문》을 집필하던 중에 위궤양으로 입원하게 된다. 같은 해 8월에는 이즈의 슈젠지로 요양을 떠난다. 그러나 거기에서 병이 악화되어 각혈을 일으키고, 위독한 상태가 된다. 이것이 바로 ‘슈젠지의 큰 병’(修善寺の大患)으로 불리는 사건이다. 이때 사경을 헤매던 것은 이후의 작품에 영향을 주게 되었다.
같은 해 10월에 용태가 안정되었고, 다시 입원하였으나 이후에도 위궤양 등으로 수차례 고통을 겪는다. 1912년 12월에는 병으로 《행인》의 집필도 중단한다. 이후의 작품은 인간의 이기적인 마음을 따라가면서, 후반기 3부작이라고 불리는 《피안이 지날 때까지》, 《행인》, 《마음》으로 연결되었다.
1915년 3월에 교토에서 놀던 중 다섯 번째의 위궤양으로 쓰러진다. 6월부터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집필 당시의 환경을 돌아보는 내용인 《한눈팔기》의 연재를 시작하지만 1916년에는 당뇨병도 앓게 된다. 그해 1월 9일에 큰 내출혈을 일으키면서 《명암》 집필 중 향년 48세로 요절하였다.
소세키가 요절한 다음 날, 사체는 도쿄 제국대학 의학부 해부실에서 나가요 마타로에 의해 해부되었다. 이때 적출된 뇌하고 위는 기증되어, 뇌는 현재도 에탄올에 담긴 상태로 도쿄 대학 의학부에 보관되어 있다. 묘는 도쿄도 도시마구 미나미이케부쿠로의 조시가야 묘원(雑司ヶ谷霊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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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나쓰메 소세키 (송태욱 옮김, 현암사)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나쓰메 소세키 (김난주 옮김, 열린책들 세계문학)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나쓰메 소세키 (장현주 옮김, 새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나쓰메 소세키 (김영식 옮김, 문예 세계문학)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나쓰메 소세키 (서은혜 옮김, 창비 세계문학)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나쓰메 소세키 (임희선 옮김, 생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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