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책의 향기
II. 고전 문학 (동양)/1. 동양 - 고전 소설

게 공선 - 고바야시 다키지 (양희진 옮김, 문파랑)

by handaikhan 2024. 3. 31.

 

고바야시 다키지 - 게 공선 (1929년)

 

"어이, 지옥으로 가는 거야!"

두 사람은 갑판 난간에 기대어, 달팽이가 한껏 기지개를 켜듯이 몸을 늘여가며, 바다를 껴안고 있는 하코다테 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업노동자는 손가락에까지 닿도록 피운 담배를 침과 함께 내뺃었다. 담배는 재주 부리듯 빙글빙글 몇 번 돌며, 위쪽 뱃전을 스칠 듯 말 듯 떨어졌다. 그의 몸에선 술냄새가 물씬 풍겼다.

벌겋게 불룩 튀어나온 아랫배를 마냥 드러낸 기선은 한창 짐이 실리고, 바닷속에서 옷소매를 확 잡아채듯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 있었다. 노랗고 커다란 굴뚝, 커다란 방울 같은 부표, 빈대처럼 배와 배 사이를 바쁘게 누비고 다니는 소형 증기선이 보였다. 어수선히 흩날리는 검은 연기는 살풍경스럽고, 빵부스러기와 썩은 과일이 떠있는 파도는 어떤 기괴한 직물 같았다. 바람 부는 대로 연기는 파도 위로 쏠리며, 숨이 턱 막힐 듯한 석탄 냄새를 보냈다. 윈치가 와르르 움직이는 소리는 때때로 파도를 타고 건너와 바로 옆에서 울렸다. (p.6-7)

 

해도 드기 전에 밭에 나가 열심히 일을 했지만, 먹고 살 수가 없어서 떠나온 사람들이었다. 맏아들 하나만을 남기고 9그래도 먹고 살 수 없었다) 아내는 공장 여공으로, 둘째 아들, 셋째 아들도 어디론가 일하러 나가야만 했다. 남은 사람들도 줄곧 토지에서 쫓겨나 여기까지 흘러들어왔다. 그들은 모두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그러나 바다에서 일을 하다가 일단 육지에 발을 디디면, 찹쌀떡을 밟은 작은 새가 푸드득거리듯, 하코다테나 오타루에서 정신없이 돈을 써버렸다. 그러다 보면 아주 쉽게 '태어났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알몸이 되어 쫓겨났다. 끝내 고향에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는, 눈 많은 홋카이도에서 해를 넘기기 위해, 자신의 몸을 코딱지만큼 적은 돈에 '팔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은 그렇게 내내 반복해도 됨됨이가 좋지 않은 아이처럼, 다음해에도 또다시 태연하게 같은 짓을 되풀이했다. (p.16-17)

 

게 공선은 모두 다 낡은 배였다. 노동자가 북오호츠크 해에서 죽는 일 따위는, 본사 빌딩에 있는 중역에게는 어찌 되든 상관 없는 일이었다. 자본주의는 마땅히 이윤에 관한 일이라면, 금리가 내려 돈이 넘쳐나기만 한다면, '말 그대로' 무슨 짓이라도 한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곳에서도 반드시 혈로를 찾아낸다. 거기에다 배 한 척에 몇 십만 엔이 손쉽게 수중에 들어오는 것이 게 공선이다. 그들이 혈안이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게 공선은 '공장선'으로 '선박'이 아니었다. 그래서 항해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십 년이나 연명해서 침몰시키는 것밖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비틀비틀거리는 '매독 환자' 같은 배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겉에다 진한 화장을 하고 하코다테까지 흘러들어왔다. 러일전쟁 때 '명예스럽게' 파손당하여 생선 내장처럼 버려졌던 병원선이나 운송선이, 유령보다도 쓸모가 없는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증기를 세게 하면 파이프가 터져서 김을 뿜어냈다. 러시아 감시선에 쫓겨 속력을 낼라치면, 배는 어디선가 우지직 소리를 내며 금방이라도 선체가 제각각 해체될 것만 같았다. 그것은 마치 중풍환자처럼 몸을 흔들어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전혀 상관없었다. 왜냐하면, 지금은 일본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해야만 하는 시절이었다. 게다가 게 공선은 배가 아닌 순수한 '공장'이었다. 하지만 공장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그처럼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은 달리 없었다.

영악한 중역은 이 일을 '우리나라를 위해서'라는 말과 결부시켰다. 거짓말처럼 돈은 남몰래 중역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그 일을 좀 더 확실히 해두려고,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일을 자동차로 드라이브하면서 생각했다. 물론 회사 중역이 틀림없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지치부호의 노동자들은 몇 천 해리나 떨어진 북쪽 어두운 바다에서, 깨진 유리조각처럼 날카로운 파도와 바람에 맞서 죽음의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p.39-41)

 

 

 

 

......................................................................................................................................................................................................................................

고바야시 다키지(小林 多喜二こばやし たきじ, 1903년 12월 1일 ~ 1933년 2월 20일)

일본의 좌파 소설가이다.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표 작가이다. 대표작으로 《게잡이 공선》이 있다.


고바야시 다키지는 일본 프롤레타리아문학의 대표적 작가다. 1903년 10월 아키타현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1907년 고바야시 일가는 가난을 피해 홋카이도로 이주한다. 그는 노동자 거리의 극히 가난한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백부의 도움으로 오타루상업학교에 진학한다. 그의 문학적 재능은 이때부터 교우회지를 편집하거나 중앙 잡지에 작품을 투고하거나 하면서 일찍부터 발휘된다. 1921년, 역시 백부의 도움으로 오타루고등상업학교에 입학한다. 이때는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이라는 세계사적인 변동으로 일본 프롤레타리아문학 운동이 새롭게 대두하기 시작한 때로, ≪씨 뿌리는 사람≫이 창간되고, 일본 프롤레타리아문학 운동의 조직적인 전개가 시작되는 시기였다.
1924년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홋카이도 다쿠쇼쿠은행 오타루 지점에 취직한다. 그는 초기에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정의감에 차 있었지만, 점차로 사회적 근원을 추구하면서 비판적 현실주의로 나아가, 하야마 요시키와 고리키 등의 작품을 통해 프롤레타리아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1927년경부터 그는 사회과학을 배우면서 사회의 모순을 알게 되고, 그 후 오타루의 노동운동에 직접 참가하며 프롤레타리아문학 운동에도 적극적인 관계를 가지게 된다.
1928년 3월 15일 일본에서 비합법 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 단체가 큰 탄압을 받게 된다. 소위 3·15사건이다. 오타루에서도 2개월에 걸쳐 500명 이상이 검거되어, 다키지 주변의 친구와 동지들이 다수 체포되었다. 그가 일본 프롤레타리아문학의 대표적인 이론가인 구라하라 고레히토의 영향을 받아 완성한 처녀작 ≪1928년 3월 15일≫은 이 사건을 취재한 것으로, 혁명에 참가한 사람들의 모습과 경찰의 참혹한 고문을 폭로한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노동자의 불굴의 정신력과 이것에 대비되는 천황 지배 권력의 잔학성을 폭로해 일본 프롤레타리아문학에 새로운 전기를 제공했다. 그는 이 작품을 잡지 ≪전기≫(1928)에 게재하며 본격적인 프롤레타리아문학 활동에 들어간다.
다키지는 1929년 북양어업의 실상을 취재해 ≪게잡이 공선≫을 완성한다. ≪게잡이 공선≫은 그의 대표작으로, 일본 프롤레타리아문학뿐만이 아니고 일본 근대문학사에서 획기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 다키지는 일본 프롤레타리아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인정받는다.

 

.....................................................

게 가공선 - 고바야시 다키지 (서은혜 옮김, 창비세계문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