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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I. 고전 문학 (동양)/1. 동양 - 고전 소설

아Q정전 - 루쉰 (정석원 옮김, 문예출판사)

by handaikhan 2023. 2. 2.

문예 세계문학선 15

루신 - 아Q정전 (1921년)

 

내가 아Q에게 정전을 써주기로 마음 먹은 것은 사실 한두 해 전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막상 정전을 쓰려고 하니 옛날을 회상하게 되는데, 그러고 보니 나는 '입언'을 할 만한 인물이 못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예로부터 불후의 붓은 불후의 사람을 전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문장에 의해 전해지고 문장은 또 사람에 의해 전해졌던 게 아니었을까?

결국 나는 무엇이 무엇에 의해 전해지는지조차 점점 불명학해졌지만 마침내는 아Q를 전하는 것으로 귀착되었다. 마치 마음이 무슨 귀신에라도 홀린 것처럼 말이다. (p.18)

 

아Q는 성명과 본적만 불확실했던 것이 아니다. 자신의 행적마저도 그러했다. 웨이쫭 사람들은 그에게 농사일을 시키거나 아니면 웃음거리로만 삼았을 뿐 아무도 그의 행적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아Q도 자신의 행적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다만 남들과 다툴 때면 가끔 눈을 부릅뜬 채 말하곤 했다.

"나도 옛날에는 너희들보다 훨씬 나았다고! 네놈들이 도대체 뭐길래 이러는 거야!"

아Q는 집도 없었다. 그는 웨이쫭의 토곡사에서 살았다. 게다가 일정한 직업도 없어서 그저 남의 품일이나 도와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보리 벨 때가 되면 보리를 베어주기도 하고 벼를 찧을 때면 남의 벼를 찧어주거나 어떤 때는 배를 젓기도 했다. 일거리가 좀 오래 있을 때면 주인의 집에서 기거하다가도 일단 일이 끝나면 가버렸기 때문에 사람들은 바쁠 때나 그를 기억해내곤 했다. 그러나 기억하는 것도 '일'에 대한 것뿐이었지 그의 행적에 관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다가도 한가할 때가 되면 그의 존재조차 까많게 잊어버리곤 햇기 때문에 그들이 아Q의 '행적'을 기억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았다.

한 번은 어떤 영감이 잔뜩 칭찬을 늘어놓으면서 말했다. 

"아Q 그 녀석 참 유능하단 말이야!"

이때 아Q는 웃통을 벗어부친 채 게으름이 잔뜩 낀 깡마른 행색으로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옆에 있던 사람들은 영감의 칭찬이 정말인지 아니면 비웃는 말인지를 몰라 어리둥절해하고 있었지만. 아Q만은 신이 나 있었다.

아Q는 또한 자존심이 매우 강했다. 웨이쫭 사람이라면 누가 됐든 그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심지어는 두 문동조차도 발가락의 때문큼도 여기지 않았다.

문동이란 장차 수재가 될 아이다. 짜오타이예와 치엔타이예는 주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인물인데, 그것은 돈이 많을 뿐만 아니라 바로 이 문동을 둔 아버지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Q만은 이들에 대해 그다지 존경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내 아들은 훨씬 더 나을 거라고!"

게다가 성내에 몇 번 들락거리고 나서부터 아Q의 자존심은 더욱 세졌다. 그러나 그는 성내 사람들도 무척이나 경시했다. 이를테면 세 자 길이에 세 치 되는 넓이의 나무로 만든 긴 의자를 웨이쫭 사람들은 '창뚱'이라고 불렀다. 아Q 역시 그렇게 불렀지만 성내 사람들은 '타오뚱'이라고 하지 않는가. 아Q는 중얼거렸다.

"그건 틀렸어. 우습기 짝이 없다고!"

그리고 웨이쫭 사람들은 기름에 튀긴 생선에다 반 촌쯤 되는 파를 듬성듬성 썰어놓는 데 반해 성내 사람들은 실파처럼 잘게 썰어 놓는다.

"그것도 틀렸다고. 우스운 노릇이지!"

하지만 웨이쫭 사람들이야말로 세상 물정을 모르는 '우습기 짝이 없는' 촌놈들이다. 그들은 아무도 성내의 튀긴 생선을 보지 못 했으니까.

아Q는 '옛날에는 대단했고', 식견도 높으며 게다가 '유능'하기까지 하니 그야말로 진정한 '완인(완벽한 사람)'이 아닌가.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에게는 신체적인 결함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골치거리가 바로 그의 머리에 언제 생겼는지조차 모르는 몇 개의 탈모 흉터다. 비록 그의 몸에 나 있는 것이기는 해도 아Q로서는 그다지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것과 음이 비슷한 모든 글자를 싫어했으며 나중에는 '광'자난 '량'자, 심지어는 '등'이나 '촉'과 같이 '빛나는'이란 뜻을 가진 모든 문자까지 신경질적으로 싫어했다. (p.23-26)

 

순간 자신의 머리에 나 있는 흉터는 고상하고도 영광된 흉터로서 보통 사람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한 대로 아Q는 매우 식견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다간 '금기'를 범하고 말 것 같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 괴로히다가 끝내는 아Q를 때리고 만다. 겉으로 본다면야 아Q는 패했다. 그는 변발을 낚아채인 채 담벼락에 네댓 번 머리를 쥐어박혔다. 그제서야 건달들도 만족한 듯 득의양양하게 가버렸다.

아Q는 잠시 서 있었다.

"아이들에게 맞은 거라고. 요즘은 정말 말세라니까."

그러고는 자신도 만족스러워 득의양양하게 가버렸다.

아Q는 자신이 마음속에서 생각했던 것을 늘 뒤에 가서 떠들어대곤 했다. 그래서 아Q를 놀렸던 사람들은 누구나 그의 이 같은 정신적인 승리법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변발을 쥐고 흔들 때면 으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Q, 이건 애가 어른을 때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짐승을 때리는 거다. 어서 '사람이 짐승을 때린다'고 말해봐."

아Q는 두 손으로 변발을 움켜쥔 채 머리를 기울이면서 말했다.

"버러지를 때린다고 하면 어떨까? 나는 버러지라고. 이래도 안 놔줄 거야?"

스스로를 '버러지'라고 했지만 그들은 좀처럼 변발을 놓아주지 않았다. 늘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변발을 위어잡고는 대여섯 번 머리를 벽에다 쥐어박고 나서야 의기양양하게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번이야말로 아Q가 혼 좀 났을 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조금 뒤 아Q마저도 의기양양해서 돌아갔다.

그는 스스로를 자기 비하의 제1인자라 여겼다. '자기 비하'란 말만 빼면 어쨌든 '제1인자'가 된다. 장원급제도 '제1인자'아닌가!

"네놈들이 무엇이라고 큰소리치는 거냐!"

이처럼 그는 기상천회한 방법으로 자신을 달랜 뒤 신이 나서 주점으로 달려갔다. 몇 사발의 술을 들이키면서 사람들과 한바탕 웃기도 하고 싸움도 했다. 그는 이번에도 이겼다. 역시 즐거운 마음으로 토곡사로 돌아와 아무렇게나 곯아떨어졌다. (p.26-28)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아편전쟁에서 5.4운동까지 - 호승 (박종일 옮김, 인간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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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돈이라도 있었다면 이럴 때 도박판에라도 달려갔을 것이다. 한 떼의 사람들이 땅바닥에 둘러앉아 있고 아Q는 얼굴에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 그 사이에 끼어 있다. 그의 목소리가 제일 크다.

(...)

그의 노랫소리와 함께 아Q의 돈은 점점 그의 허리춤으로 들어간다. 결국 그는 군중들 틈을 헤집고 나와 뒤에 서서 바라보는 신세가 되고 만다.

(....)

가까스로 깨어나 보니 도박판과 사람은 온데간데없었다. 목 여기저기서 통증이 엄습해오는 듯했다. 마치 누구에게 실컷 얻어맞은 것 같았다. 몇 사람이 놀란 눈초리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마치 정신나간 사람처럼 토곡사로 돌아왔다. 정신을 차린 순간 한 무더기나 있었던 은전이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번처럼 새신 때를 돌면서 벌이는 도박판은 대부분이 웨이쫭 사람이 벌이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어디 가서 그들을 찾는단 말인가?

희고 빛까지 났던 은전 한 무더기! - 그것은 아Q의 것이었는데 - 이제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아이들에게 빼앗겼다고쳤지만, 그래도 아Q는 어딘지 모르게 서글펐다. 그렇지. 스스로 버러지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자위해보았지만 그래도 아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번만은 실패의 쓰라림을 맛보아야 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 가지는 않았다. 아Q는 즉시 전화위복의 게기로 삼았다. 그는 오른손을 불쑥 치켜올리고는 자신의 빰을 두 차례나 힘껏 후려쳤다. 화끈거리면서 아프기까지 했다. 실컷 때리고나자 그때서야 마음이 좀 후련해졌다. 어쩐지 때린 것은 자기고 맞은 사람은 남인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잠시 후엔 확실히 자신이 남을 때린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직도 화끈거리고 아팠지만 그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자리에 누웠다.

그는 곯아떨어졌다. (p.28-30)

 

이렇듯 아Q는 늘 이기기만 하는 사람이었지만 짜오타이예에게 빰을 맞고 나서부터 비로소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띠빠오에게 2백 문의 술값을 지불하고 난 뒤 식식거리면서 자리에 누워, 그는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이놈의 세상 어처구니가 없군. 아이가 어른을 때리는 판이니...."

순간 그는 짜오타이예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는 이제 자기의 아들이 아닌까! 그 생각을 하니 아Q는 득의만만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벌떡 일어나 '소고상상분'이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주점으로 갔다. 그는 이때야 비로소 짜오타이예가 역시 한 수 높은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묘하게도 이때부터 사람들이 자신을 유달리 존경해 마지않는 것 같았다. 이점에 대해 혹자는 그 사건으로 인해 아Q가 그의 부친 취급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평소 웨이쫭 지방의 통례에 따르면 아치가 아빠를 때렸다거나 아니면 리쓰가 짱쌴을 때렸다고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사건이 못 되었다. 반드시 짜오타이예 같은 유명 인물과 관계되어야만 비로소 인구에 회자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일단 사람의 입에 오르게 되면 때린 사람뿐만 아니라 맞은 사람도 덩달아 유명해지곤 했다. 이번 사건처럼 잘못이 아Q에게 있다 해도 그 법칙은 그대로 적용된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짜오타이예 같은 사람이 잘못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 잘못을 저지른 아Q에게 다들 존경심을 표하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해답을 제시하기란 꽤나 어렵다. 하지만 구태여 말한다면 아Q가 짜오타이예의 본가라고 해서 실컷 얻어맞긴 했지만 그래도 남들은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의구심은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 바에야 차라리 존경해주는 것이 온당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p.30-31)

 

아Q는 녀석이 도망치는 줄 알고 한 발 내딛으면서 냅다 주먹을 날렸다. 그러나 그의 주먹은 미처 상대의 얼굴에 닿기도 전에 왕후의 손에 잡혀버렸다. 왕후가 그의 손을 당기자 그는 비틀거리면서 끌려갔다. 순간 변발마저 틀어잡힌 채 담 쪽으로 끌려갔다.

"군자는 말로 하지 손을 쓰지 않는 법이다!"

아Q가 처량한 모습으로 소리쳤다.

그러나 왕후는 군자가 아니었던지 그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Q의 머리를 대여섯 번 담벼락에 찧고 나서 힘껏 밀었다. 아Q가 저만큼 나동그라지지자 그제서야 분이 풀린 듯 가버린는 것이었다. 

아Q의 기억으로는 난생 처음 당하는 굴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털보였던 죄로 왕후는 늘 아Q에게 놀림만 당했지 한 번도 자기를 놀려본 적은 없었고 더더구나 완력을 휘두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끝내 주먹다짐까지 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참으로 의외의 사건이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황제가 과거를 폐지해서 수재와 거인이 빛을 잃게 되었다는데 그것은 결국 짜오 가의 위력이 그만큼 상실된다는 뜻이다. 설마 그것 때문에 아Q를 얕잡아보는 것은 아닐 텐데.

아Q는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그때 멀리서 한 사람이 오고 있었다. 아Q의 적수가 또 온 것이다. 그는 바로 치엔 가의 큰아들로서 역시 아Q가 제일 싫어하는 자였다. 옛날 성내의 양학당에 다니는가 싶더니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반년이 지나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다리가 쭉 뻗어 있었고 변발도 보이지 않았다. 당시 이 꼴을 본 그의 어머니는 얼마나 대성통곡했던가. 마누라조차 세 번이나 우물에 뛰어들었다.

그 뒤 그의 어머니는 가는 곳마다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놈의 변발은 글쎄 나쁜 놈들이 술을 실컷 먹여 취하게 한 다음 잘라버렸다지 뭐예요. 원래는 높은 벼슬을 할 참이었는데 변발이 있어야지요. 하는 수 없지요. 다 자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는.."

하지만 아Q는 그말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가짜 양귀신'이나 외국놈과 내통한 자'라고 부르면서 부딪치기만 해도 마음속에서는 저주가 들끓었다.

특히 아Q가 '극도의 증오심'을 느낀 것은 그의 가짜 변발이었다. 변발까지 가짜를 했다는 것은 인간의 자격조차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그의 마누라가 네 번째로 우물에 뛰어들지 않는 다면 그 여자도 훌륭한 여자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 '가짜 양귀신'이 오고 있는 것이다.

'대머리 돌중 같으니라고....'

아Q는 늘 마음속으로만 이렇게 욕을 퍼부었지 실제로 소리를 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워낙 화가 치민데다 복수심마저 불타올랐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그런데 그 순간 대머리가 노란 칠을 한 몽둥이 - 바로 아Q가 말하는 곡상봉이었다 - 를 휘두르면서 쫓아오는 것이 아닌가. 순간 자신을 때리려 한다는 것을 직감한 아Q는 자라목이 되어가지고 기다렸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아Q의 머리를 쪼갤 듯이 내리쳤다.

"얘 보고 한 말인뎁쇼!"

아Q는 옆에 있던 어린애를 가리키면서 궁색한 변명을 했다. 순간 '탁! 탁! 탁!'하고 둔탁한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아Q의 기억으로는 이것이 태어나 두 번째 겪는 굴욕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몸둥이 소리와 함께 사건도 끝이 난 것 같아 오히려 홀가분한 느낌도 들었다. 역시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망각'이라는 보물의 효과가 있긴 있었다. 그는 천천히 주점으로 향했다. 주점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는 어느덧 신이 나 있었다. (p.33-35)

 

아Q는 바싹 다가가 방금 면도질한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히죽거렸다.

"대머리, 빨리 돌아가지 그래. 중놈이 기다리고 있다니까..."

"어디다 감히 손찌검을 하는 거요!"

비구니는 얼굴을 홍당무처럼 붉히면서 말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걸ㄹ어갔다.

이 광경을 본 주점 사람들이 껄껄대고 웃었다. 그러자 아Q는 더욱더 신이 났다.

"그래 중놈은 건드릴 수 있고 나는 못 건드린단 말이냐?"

아Q는 그녀의 뺨을 꼬집으면서 말했다. 주점 안에서는 다시 폭소가 터졌다. 아Q가 더욱 신이 난 것은 물론이다. 그러고 보니 그들을 만족시켜줘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힘껏 꼬집은 다음에야 놓아주었다.

이번 일로 해서 아Q는 왕후나 가짜 양귀신을 잊을 수 있었다. 이제 오늘 있었던 굴욕에 대해 깨끗이 복수를 한 것만 같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상한 것은 아까 가짜 양귀신에게 얻어맞을 때보다 더 상쾌해져서 훨훨 날아갈 것만 같았던 것이다.

"씨도 못 받을 놈 같으니라고..."

멀리서 울음 섞인 비구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하하하하!"

아Q는 개선장군이나 된 양 득의의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하!"

주점 안에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p.36-37)

 

승리자 가운데는 상대방이 호랑이나 독수리처럼 포악해야 승리의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반대로 적수가 양이나 닭처럼 보잘것없으면 승리하고도 오히려 모료함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모든 것이 끝난 뒤 적도 없고 친구도 없는 처량하고 적막한 상황에서 오히려 승리의 비애를 느끼는 자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아Q는 그렇지가 않다. 그는 영원히 득의만만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 점ㅁ을 두고 중국의 정신 문명이 전세계의 으뜸이 될 수 있는 하나의 증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 보아라. 너무도 홀가분하여 마치 날아갈 것만 같은 아Q의 모습을!

그러나 이번 승리로 인해 아Q도 약간 변하고 말았다. 그는 온종일 날아다니는 것만 같았다. (p.37-38)

 

'여자....'

이것만 보아도 여자란 사람을 망치게 하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중국의 남자들은 누구나 성인군자가 될 수 있었찌만 애석하게도 여자 때문에 망치고 말았다. 상은 따지 때문에 망했고 쪼는 빠오쓰 때문에, 그리고 친도 정사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여자 때문에 망쳤다고 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 뚱쭈오도 땨오찬이라는 여자 때문에 죽었음이 틀림없지 않은가? (p.39)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동주열국지 - 풍몽룡 (김구용 옮김, 솔출판사)

<달기(妲己)>

달기(妲己)는 중국 은(殷) 왕조 말기(기원전 11세기경)의 왕 제신(帝辛)의 총비(寵妃)였다.하(夏) 왕조의 말희(末喜)와 더불어 악녀(惡女)의 대명사로서 알려져 있다
달기에 관한 기본사료는 《사기(史記)》 「은본기(殷本紀)」로, 그에 따르면 제신 즉 주왕은 달기를 몹시 총애하여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었다고한다. 이로 인해 강황후의 질투를 받았고, 사이가 좋지 못했다. 어느 날 자객 강환이 주왕을 습격했고, 달기는 이를 강황후에게 덮어씌웠다고 한다. 자백을 받기위해 눈을 파내는 등 악행을 저질렀고 결국 강 황후는 사망하게 된다. 악사(樂師) 사연(師涓)을 시켜서 음탕한 음악인 북도지무(北鄙之舞) ・ 미미지악(靡靡之樂)을 만들었다. 무거운 세금을 거두어 녹대(鹿臺)에 전(錢)을 가득 채우고 거교(鉅橋)에는 곡식을 가득 채운 채, 사냥개와 말, 진기한 물품들로 궁실을 가득 채웠다. 사구(沙丘)의 원대(苑臺)를 넓혀서 들짐승과 날짐승을 모아 그 안에 풀어 길렀으며, 귀신을 깔보고 사구에 많은 사람들을 모아 즐겨 놀았다. 술을 채운 연못에 고기를 걸어둔 숲(주지육림)을 만들어서 나체의 남녀를 서로 뒤쫓게 하는 등 날마다 음탕한 밤을 보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에게는 기름을 칠한 구리 기둥 아래 불을 피운 뒤, 그 위를 걷게 하는 포락이라는 형을 구경하면서 웃고 즐기거나 돈분이라는 형을 만들어 구덩이에 독사와 전갈을 집어넣고 괴로워 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그 뒤 달기는 주(周)가 제후들을 규합해 은을 쳐서 멸망시킬 때 무왕(武王)에 의해 살해되었다(《사기》).
《열녀전(列女傳)》 권7 잉첩전(孽嬖傳)의 은주달기(殷紂妲己)조에는 포락(炮烙)이라는 형벌을 보며 달기가 웃었다고 한다. 재상 비간(比干)이 "선왕(先王)의 전법(典法)을 따르지 않고 아녀자의 말만 따르시니 재앙이 가까울 날이 머지 않았습니다."라고 간언하자, 달기가 주왕에게 "성인(聖人)의 심장에는 일곱 개의 구멍이 있다고 들었습니다"고 답하면서 주왕을 부추겨 비간의 심장을 도려내서 감상하였다. 주왕이 자살한 뒤, 달기도 무왕에 의해 참수되어 목이 작은 백기(白旗)에 걸렸고, "주왕을 망친 것은 이 여자다"라는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한서(漢書)》 외척열전(外戚列傳)의 안사고(顔師古)의 주(注)에는 "변사(弁辭)를 즐겨서 간사한 것을 구하는 데 열중하였다. 그 말을 제신이 써서 백성을 괴롭혔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포사(褒姒>

포사(褒姒, 사기에서는 襃姒, 생몰년 미상)는 기원전 8세기(기원전 770년)경 주나라 유왕의 황후로 활약한 인물로, 절세의 미녀로 언급되며 후에 주나라의 멸망의 원흉이 되었다. 생일과 사망일은 알려져 있지 않다. 포사에 관한 문헌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해진다.
하나라 말년에, 두 마리의 용이 왕궁에 나타나 스스로를 "포나라의 두 임금이다"라고 하면서, 타액(침)을 뱉어놓고는 사라졌다. 사람들이 점을 쳐 본 결과 보관해두면 길할 것이다(藏之吉)라는 점괘가 나와 사람들은 그것을 나무 상자에 고이 보관하였다. 주나라 여왕(厲王) 대에 이르러 사람들은 그 상자를 열고는 그 안을 관찰하였다. 조심하지 않아 용의 침을 조정 밖으로 흐르게 하였더니, 용의 침이 갑자기 검은 도마뱀으로 변하여 왕부 안을 돌아다녔다. 한 소녀가 이 검은 도마뱀과 우연히 마주쳤다. 그 소녀가 40년 만에 여자 아이를 하나 낳았다. 소녀는 이 아기를 갖다버렸다. 포나라(褒國) 사람이 이 아기를 거두어 집에서 길렀다. 포나라 사람은 이 여인을 주나라 유왕(幽王)에게 바쳤는데, 그녀가 바로 포사였다.
유왕은 포사에 빠졌다. 포사는 유왕의 총희가 되었으며, 아들 백복(伯服)을 낳았다. 하지만 포사는 웃음이 없었다. 유왕은 포사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했다. 유왕은 하루는 나라의 비단을 징수해 찢었다. 그때 포사가 웃어 천금매소(千金買笑)란 고사성어가 생겨나게 됐다.
주나라 유왕은 봉화를 올려 제후들을 여산(驪山)(산시 림동, 陝西臨潼) 앞에 소집하였다. 제후들은 황망히 여산 앞에 달려왔으나, 봉화가 적의 침범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낭패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돌아갔다. 포사는 이 광경을 보고 단순호치(丹脣皓齒)를 드러내며 크게 웃었다.
이후, 유왕은 태자 의구(宜臼)를 폐하고는 백복(伯服)을 태자로 세웠다. 신후(申后)는 그 아들과 함께 외가 신국(申國)(허난 남양북, 河南南陽北)으로 급히 떠났다.
기원전 771년, 신후(申后)의 아버지 신후(申侯)가 여나라(呂) 등과 연합하여 견융족(犬戎)과 함께 호경(鎬京)으로 대거 진공해왔다. 유왕은 다급히 봉화를 올렸으나, 제후들은 이 봉화가 또 거짓인 줄 알고 아무도 오지 않았다. 견융족의 병사가 유왕을 살해하였다.
포사는 그들의 포로로 잡혔는데,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자결했다는 설도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한편 일본의 《헤이케 이야기》에도 이 전설이 수록하고, 포사가 구미호의 화신으로서 죽지 않고 여우로 변해 도망쳤다는 각색된 결말을 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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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에서 외상을 안 준다면야 술 좀 참으면 될 것이고 또 토곡사를 나가라는 것도 잔소리 몇 번 들으면 끝낼 수 있다. 하지만 일거리가 없다는 것은 굶으라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이거야말로 '지랄같은 경우가 아닐 수 없었다.'

아Q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동안 붙어 살았던 몇 집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짜오 가만은 대문 출입이 금지되었지만, 그러나 이상한 노릇이었다. 어떤 집이든 남자가 나와 마치 거지를 대하듯 귀찮다는 표정으로 손을 내젓는 것이 아닌가.

"없다, 없어. 가거라, 가!"

아Q는 생각할수록 이상했다.

"이상하다. 평소 같으면 늘 내 도움을 필요로 했던 집들이 이렇게 일이 없을 수가 있을까? 무슨 곡절이 있음에 틀림없어!"

그 뒤 그는 틈만 나면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알고 보니 사람들이 일이 있을 때마다 샤오Don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샤오D로 말할 것 같으면 거지에다 깡마르고 궁색해서 아Q의 눈에는 왕후보다도 못한 놈이었다. 그런데 그런 놈이 자기의 밥그릇을 가로챘을 줄이야.

아Q는 눈이 뒤집혔다. 이번의 분노는 평소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는 화가 치밀어 식식거리면서 걸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손을 휘두르면서 외쳤다.

"쇠사슬로 네놈을 후려치리라!"

며칠이 지나 치엔 가의 담 밑에서 샤오D를 만났다.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아Q가 한달음에 쫓아가자 샤오D도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짐승 같은 놈!"

아Q가 먼저 눈을 부라리면서 말했다. 입가에는 침이 튀었다.

"그래 나는 버러지다, 왜?"

샤오D도 응수했다. 이 말에 아Q는 더 화가 나고 말았다. 아Q는 손에 쇠사슬이 없었기에 대신 샤오D의 변발을 냅다 움켜쥐었다. 그러자 샤아D도 한 손으로는 자기의 변발을 잡으면서 다른 손으로는 아Q의 변발을 움켜쥐는 것이 아닌가. 아Q도 하는 수 없이 자기의 변발을 움켜쥐었다. 옛날 같으면 샤오D는 아Q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며칠간 굶었던 터라 마르고 궁색하기는 샤오D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호각지세를 이루게 되었다. 네 개의 손이 두 개의 변발을 움겨쥔 채 엉거주춤 서 있었다. 마치 치엔 가의 흰 담벽에 남색의 무지개가 걸쳐 있는 것 같았다. 그것도 한참 동안이나.

"거 참, 꼴 보기 좋구나!"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다. 아마도 싸움을 말리는 뜻이리라.

"좋구나, 좋아!"

역시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한 말이었지만 싸움을 말리는 건지 아니면 선동하는 건지 모를 아리송한 말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아Q가 세 발짝 디디면 샤오D는 그만큼 물러나 섰다. 샤오D가 그러면 이번에는 아Q가 물러섰다. 약 반시간쯤 지났을까? 웨이쫭에는 자명종이 드물었기 때문에 속단할 수가 없다. 아마 20분쯤 되었을 것이다. 두 사람의 머리에서는 마침내 허연 김이 피어올랐고 이마에서는 땀이 흘러내렸다. 아Q의 손이 풀리자 이와 동시에 샤오D의 손도 풀렸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물러서더니 군중 틈을 비집고 나가버렸다.

"어디 두고 보자, 개새끼!"

아Q가 뒤돌아보면서 말했다.

"두고 보자, 개새끼!"

샤오D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의 용호상박은 무승부로 끝난 것 같았다. 관중들도 만족했는지 별다른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아Q에게는 품일을 부탁하러 오는 자가 없었다. (p.46-48)

 

꽤 따뜻한 어느 날이었다. 산들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것이 여름 기분이 들었지만 아Q에게는 쾌 춥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런 것쯤이야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지만 문제는 배고픔이었다. 솜이불이며 털모자, 그리고 내의는 없어진 지 오래다. 그 뒤 겉옷까지 팔아버렸던 것이다. 아직 바지는 남아 있지만 그것마저 벗을 수야 있겠는가? 또 다 해진 적삼도 있기는 하나 남의 발싸개로 거저 주지 않고서야 한 푼의 값어치도 없다.

아Q는 오래전부터 길거리에서 돈을 좀 주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보았지만 오늘까지 한 푼도 줍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 쓰러져가는 토곡사는 어떨까 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려보았지만 집안은 텅 빈 채 아무것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구걸하기로 마음먹고 문을 나섰다.

아Q는 길거리를 헤매면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어는 낯익은 술집에 역시 낯익은 만두가 보였다. 하지만 그는 지나칠 수박에 없었다. 아니, 잠시 머뭇거리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예 말조차 꺼내지도 않았다. 그가 바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웨이쫭은 큰 고을이 아니었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이었다. 마을 밖은 대부분 논이었는데 갓 심은 싱그런 모가 눈에 가득 들어왔다. 그 가운데에 둥근 흑점이 움직이고 있었다. 일하는 농주들이었다. 아Q는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쳐버렸다. 자기가 하는  '구걸'과는 거리가 너무도 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징쇼우안의 담 밖까지 가게 되었다. (p.48-49)

 

마침내 그는 담 옆의 뽕나무에 올라 안으로 뛰어내렸다.

안에는 무엇인가 잔득 심어져 있었지만 황주나 만두, 그리고 그 밖에 먹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담의 서쪽에는 대나무 숲이 있었고 그 밑에는 죽순이 무수히 돋아나 있었지만 아깝게도 삶은 것이 아니라 이것마저 먹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유채가 열매를 맺고 있었으며 배추는 이미 시들어 있었다.

문동이 과거에 떨어진 것처럼 아Q도 분통이 치밀었다. 대문 쪽을 향해 천천히 걷다가 깜짝 놀랐다. 그것은 틀림없는 무밭이 아닌가. 그는 반가워서 얼른 무릎을 꿇고 앉아 뽑기 시작했다. 그때 문 쪽에서 갑자기 둥근 머리가 보이는가 싶더니 얼른 움츠러들었다. 젊은 비구니임에 틀림없었다.

그 따위 젊은 비구니쯤이야. 옛날부터 아Q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세상사란 반드시 '한발짝 물러서서 생각'해보아야 하는 법. 얼른 네 개를 뽑아 무청을 비틀어버린 다음 품속에 집어넣었다. 하지만 때는 늦었다. 늙은 비구니가 벌써 나와 있었던 것이다.

"나무아미타불, 아Q. 어떻게 이곳까지 와서 무를 훔치는고! 아이구, 죄과로다, 어이쿠, 나무아미타불!"

"내가 언제 무를 훔쳤다고 그래!"

아Q는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말했다.

"바로 지금....그래도 아니야!"

늙은 비구니가 그의 옷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게 당신 것이라고? 어디 이 무에게 물어보시오. 다, 당신..."

그는 말도 채 끝내지 않고 줄행랑을 쳤다. 아Q를 뒤쫓아온 것은 커다란 검은 개였다. 이놈은 원래 앞문 쪽에 있었는데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 개는 으러렁거리면서 쫓아와 아Q의 다리를 물 참이었다. 그러나 천만다행히도 주머니에게 무 한 개가 떨어지는 바람에 깜짝 놀란 개가 잠시 섰다. 이 틈을 타 아Q는 뽕나무 위로 올라가 담 밖으로 뒤어내렸다. 사람과 무가 함께 떨어졌다. 개는 뽕나무를 향해 짖어댔고 늙은 비구니는 염불을 외고 있었다.

아Q는 그녀가 개를 풀어버릴까 두려워서 무를 집자마자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길을 따라 달리면서 돌도 몇 개 주워 들었지만 개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그제서야 그는 돌을 던져버리고 천천히 걸으면서 무를 먹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중얼거렸다.

'젠장 이곳은 별 볼일 없어. 역시 성내보단 못하다고....'

세 개의 무를 다 먹었을 무렵, 그는 이미 성내로 갈 것을 결심했다. (p.50-51)

 

하지만 이번에 그의 귀환은 옛날과는 판이했다. 확실히 그것은 놀랄 만한 것이었다. 해가 져 어둑어둑할 무렵, 아Q는 몽롱한 눈빛으로 주점 앞에 나타났다. 계산대 쪽으로 가더니 허리춤에서 은전과 동전을 잔뜩 꺼내 던지면서 말했다.

"자, 현금이다. 술을 갖고 와!"

이번에는 번드레한 새 옷에다 허리춤에는 커다란 따렌까지 하고 있지 않은가? 허리띠가 활시위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웨이쫭 사람들의 관례에 따르면 좀 그럴듯한 인물을 만나게 되면 으레 존경심을 표하곤 했다. 상대방이 아Q임에 틀림없지만 옛날 누더기를 걸쳤던 그와는 판이하게 달라져 있지 않은가. 옛사람의 말에 '선비는 사흘만 못 봐도 괄목상대해야 한다'라고 했다. 그러니 점원이나 주인, 술군, 나그네 할 것 없이 모두가 의아해하면서도 존경하는 눈빛이 역령했다.

주인은 먼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까지 붙여왔다.

"오, 아Q, 자네 돌아왔군!"

"돌아왔소!"

"갑부가 된 모양인데 자네 어디서..."

"성내에 갔었더랬소!" (p.52-53)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정역 삼국지 (정원기 옮김, 현암사)

<괄목상대(刮目相對)>

괄목상대(刮目相對)는 《삼국지》에서 유래한 고사성어이다. 원문은 刮目相待지만 한국에서는 刮目相對가, 중국에서는 刮目相看(괄목상간)이 주로 쓰인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며 대한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학식이나 재주가 깜짝 놀랄 만큼 늘었음을 말한다. 삼국 시대 동오에서 과거에 비해 학식이 매우 해박해진 여몽의 모습에 노숙이 크게 놀라자 여몽이 “선비란 사흘만 떨어져도 눈을 비비며 다시 대해야 합니다.”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이 일화에서 수불석권(手不釋卷), 오하아몽(吳下阿蒙)이란 고사성어도 함께 생겼다.
여몽은 무예는 뛰어났지만 소싯적에 경전을 익히지 않아 매양 글보다는 말로 대신하였다. 손권은 여몽과 장흠이 요직을 담당하는 만큼 학문도 닦기를 바랐다. 이러한 손권의 권유에 여몽이 “군중(軍中)의 많은 업무로도 힘든데 책 읽을 짬이 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하자 손권의 훈계가 이어졌다.
“이제 와 경이 박사가 되기를 바라겠는가? 그저 옛일을 두루 알길 바라오. 경이 일이 많다 하는데 나만 하겠는가? 나는 어린 시절 《역경》을 제외하고 《시경》, 《서경》, 《예기》, 《춘추좌씨전》, 《국어》(춘추외전)를 보았소. 형 손책의 뒤를 이은 후로도 삼사인 《사기》, 《한서》, 《동관한기》와 여러 병서를 살핀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소. 두 사람은 머리가 좋아 일단 공부하면 빠르게 익힐텐데 어찌 하질 않는가? 어서 《손자병법》, 《육도》, 《춘추좌씨전》, 《국어》와 삼사를 읽어야 하오. 공자께서도 ‘종일 먹지도, 자지도 않고 사색하는 것은 무익하며 배우는 것보다 못하다.’ 하였소. 광무제는 군무를 보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고, 조조 역시 늙어서도 배움이 좋다 하였소. 그런데 경은 왜 노력을 안 하는가?”
여몽이 비로소 학업에 열중해 그 경지가 옛 학자들을 뛰어넘었다. 210년(건안 15년) 주유 사후 그 뒤를 이은 노숙이 육구(陸口)로 가던 길에 혹자가 이르기를, ‘심양현령(尋陽―, 지금의 후베이성 황메이 현) 여몽의 공명이 나날이 높아져 예전같이 대해서는 안 된다’며 꼭 들렀다 가라 하므로 그렇게 하였다. 한창 술로 달리는데 문득 여몽이 “군께서는 중임을 맡아 관우와 접하는데 미연의 사태를 방비할 어떤 계책을 세우셨습니까?”라고 물었다. 노숙이 황망히 “그때그때 적절히 대응할 것이오.”라고 답하자 “지금 유비와 동오가 한 집안이라 하더라도[4] 관우는 실로 곰과 호랑이 같은 자이니 미리 대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며 몇 가지 방책을 제시하였다. 노숙이 자리에서 일어나 여몽의 등을 두드리며 “단지 무용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제 와 보니 참으로 박학다식하오. 예전의 그 동오의 아몽이 아니구려.”라 하였다. 여몽이 “선비란 사흘만 떨어져도 눈을 비비며 다시 대해야 합니다.”라고 답하였다. 노숙이 여몽의 어머니에게 절하며 여몽과 친구가 되었다.
손권이 항상 찬탄하기를, “여몽과 장흠처럼 나이를 먹고도 수양을 해 발전하는 것은 아마 그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부귀를 누리며 명성을 떨쳤으면서도 마음을 고쳐먹고 학문에도 뜻을 두어 여러 서적을 탐독하였다. 재물을 가벼이 여기고 의를 숭상하여 가히 타인의 모범으로서 나라의 뛰어난 선비가 되었으니 이 얼마나 훌륭하지 아니한가!”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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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Q의 말을 들어보자. 그가 이번에 돌와오게 된 이유 중에는 성내 사람들에 대한 불만도 있는 것 같았다. 이 점은 그들이 창뜽을 탸오뜽이라고 부르며 튀긴 생선에다 잘게 썬 파를 사용하는 것 외에 최근에 관찰한 바로는 여자의 걸음걸이도 그다지 보기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끔 부러운 면도 있었다고 했다. 즉 웨이쫭 사람들은 고작해야 서른두 장의 죽패나 치고 가짜 양구신만이 '마장'을 칠 수 있는 데 비해 고긋 사람들은 조무래기들까지도 정통해 있다는 것이다. 가짜 양귀신이 뭐 그리 대단하단 말인가? 그 정도라면 성내의 조무래기들의 눈에조차 '어린 귀신이 염라대와을 알현하는' 것으로밖에는 비쳐지지 않는다고도 했다. 이 말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너희들 목 치는 것 봤어?"

아Q가 말했다.

"흥, 그 참 볼 만하지. 혁명당을 처형하는 것 말이야. 그 참! 보기 좋더라고, 보기 좋아!"

그는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p.53-54)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신해혁명 - 장밍 (허유영 옮김, 한얼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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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당에 대해 어떤 자는 오늘 밤에 성내에 진격할 것이라고 햇으며 흰 투구와 흰 갑옷을 입고 총쩡 황제를 기린다는 뜻에서 소복을 하고 있다고 했다.

혁명당이란 말은 아Q도 진작부터 듣고 있었으며 올해에는 혁명당원이 처형되는 것도 직접 목격했던 터였다. 그러나 어디서 나온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혁명당은 반란군이며 반란은 곧 자신을 괴롭힐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혁명당에 대해서는 '이를 갈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혁명당이 백 리 밖에까지 이름을 떨치고 있던 거인 나리마저 이렇게 안절부절못하게 할 줄이야! 아Q는 오히려 일종의 '동경심'마저 생겼다. 게다가 웨이쫭 사람들이 허둥대는 꼴이라니. 신바람이 절로 났다.

"혁명도 나쁘지는 않지"

아Q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 조무래기들을 모조리 엎어버려야 한다고. 가증스런 놈들. 원한이 사무친다! 나? 그야 물론 혁명당에 투항해야지."

그렇지 않아도 아Q는 요즘 궁했던 참이라 불만이 많았다. 게다가 낮에 빈속에 술을 두어 사발이나 마셨기 때문에 벌써 취 기가 감돌았다. 비틀거리면서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몸이 또다시 홀가분해지는 것 같았다. 이제 자신이 혁명당이고 웨이쫭 사람들은 자신의 포로가 된 것만 같았다. 그는 득의만만한 나머지 큰 소리로 외쳐댔다.

"반역이다!  반역!" (p.61)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인물로 보는 중국 근대사 - 신동준 (인간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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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쫭의 인심은 날로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혁명당이 성내에 진군했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즉 지현 나리도 관직의 이름만 바뀐 채 그 자리에 있었고 거인 나리도 무슨 관직을 갖고 있었으며 이번에 혁명당을 인솔해왔던 자도 옛날의 그 파총이었다고 한다.

다만 무서웠던 것이라면 그 중의 몇몇 못된 혁명당원이 마을에서 난동을 피웠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튿날 닥치는 대로 변발을 잘라버리곤 했는데 소문에 의하면 옆 마을의 치진이라는 나룻배 사공이 변발을 잘려 사람 꼴이 아니라고 했다. (p.67)

 

불만과 소외감을 느끼고 있던 아Q는 은복숭아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 까닭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 혁명을 해야 한다. 그저 투항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변발 얹는 것으로도 불가능하다. 그러자면 첫째는 혁명당과 사귀어야 한다. (p.70)

 

아Q는 가슴 가득 슬픔이 솟구쳤다. 양선생이 혁명을 허락하지 않은 이상 이제 길이 막히고 만 셈이었다. 이제부터는 흰 투구의 혁명당을 부르지 못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포부와 꿈, 희망, 앞길마저 깡그리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제 건달들이 날뛰게 되었다거나 샤오D나 왕후 같은 놈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것은 오히려 그 다음 일이 되고 만 것이다. (p.72)

 

그믐밤이었다. 웨이쫭은 칠흑 같은 어둠에 쌓여 정적이 감돌았다. 마치 옛날 복희 황제 시절처럼 태평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Q는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들은 여전히 분주히 오가면서 상자며 가구며, 수재 마누라의 문간 침대를 훔쳐 나오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혁명당이 되어 그것들을 훔치는 것만 같았다. 옛날 토곡사에 누워 상상했던 것처럼 (p.73)

 

"나에게는 허락하지 않으면서 네놈만 모반을 하겠단 말이지? 호로새끼 같은 양귀신. 좋다. 네놈은 모반을 했어. 모반하면 목을 날리는 거야. 고발하고 말 테다. 네놈을 현에 잡아가 목을 날려버리고 말 테다. 가족 모두를.....싹둑! 싹둑!" (p.74)

 

아Q는 그들이 심상치 않은 자들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무릎 관절에서 힘이 빠지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꿇어 엎드렸다.

"일어나서 말해, 무릎 꿇지 말고!"

긴 적삼을 입은 자들이 호령했다.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었지만 도무지 일어설 수가 없었다. 몸이 말을 듣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앉았다가 끝내 다시 무릎을 꿇고 말았다.

"노예 같은 놈!"

모욕하는 투로 말했지만 이번에는 일어서라고 하지는 않았다. (p.76)

 

아Q는 뚜껑 없는 수레에 실려졌다. 반소매를 걸친 몇 사람이 함께 수레에 올랐다. 수레는 곧 움직였다. 앞에는 총을 맨 병졸과 장정들이 걸었고 양옆에는 수많은 군중들이 입을 떡 벌린 채 지켜보고 있었다. 뒤는 어떠한지 그는 보지 못했다.

갑자기 아Q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처형이 아닌가? 아Q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눈앞이 캄캄해졌고 귀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까무러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는 까무러치지는 않았다. 당황하면서도 때로는 태연해지기도 햇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처형을 당하는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낯선 길이었기 때문에 그는 다소 의아했다.

"왜 형장으로 가지 않을까?"

군중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시위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하기야 알고 있었다 한들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살다보면 이렇게 시위를 당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체념했을 것이기에.

그는 깨달았다. 그것은 형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제 틀림없이 '싹뚝!' 하는 소리와 함께 목이 잘려나가겟지. (p.79-80)

 

눈빛은 한데 어우러져 영혼마저 물어뜯는 것 같았다.

'사람 살려'

그러나 아Q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두 눈은 캄캄했고 귀에서는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렷으며 육신이 먼지처럼 산산이 흩어지는 느낌이기 때문이었다. (p.8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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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해설>

아Q정전 - 루쉰 (허세욱 옮김, 범우사)

1921 12월부터 연재한 아큐정전은 그 사상성이나 예술성은 물론, 문학사상 그 의의가 크다. 그의 창작32편 가운데 유일한 중편으로서, 루쉰을 세계에 알린 거작이다.

신해혁명을 배경으로 날품팔이 유랑인인 아큐의 일생을 그림으로써, 그의 단편집인 납함의 책머리에 밝힌 바와 같이 중국 민족의 약점을 폭로하였으며, 당시의 중국 사회에 만연한 많은 병폐를 거울 앞에 발가벗긴 채 세워 놓았다.

4천 년 간 뒷걸음질친 중국의 전통 사회가 빚어낸 인간의 심벌로 아큐를 설정하고, 청조 말기의 침체된 봉건 사회 속에서 아큐를 중심으로 한 지방의 토호와 그 가족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권세의 이면과 혁명의 그림자를 희화화하였다.

아큐는, 반식민지, 반봉건적인 사회, 더구나 신해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지 못하는 타성의 사회에서 사명감이나 목적의식이 없으면서 부질없이 혁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이윽고는 무기력하고 비겁한 노예근성으로 돌아가 그 최후를 공허하게 막을 내리는 하나의 사회적 산물이다.

그것은 관통하는 관념의 흐름은, 다름 아닌 정신승리법이다. 공허한 영웅주의와 무력한 패배주의에 빠져 자신의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면서 자기 만족에 젖어 있고, 타개하지 못하는 민족적 위기에 살면서도 대국 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물질 생활의 군데군데마다 실패를 안으면서도 정신적인 만족에 그만 현실을 외면해 버리는 것을 뜻한다.

이는 곧 아큐주의이다. 피압박 사회에서 하나의 교활한 대응 방법인 것이다. 바로 민족의 치욕을 잊어버리고, 병을 앓으면서도 의사를 기피하고, 남의 뒤를 따라 부화뇌동하고, 약자에겐 잔인하면서도 강자에겐 아첨하며, 자신의 책임을 곧잘 남에게 미루고,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면서 지난날의 영광을 자랑하면서, 행복은 오로지 환상에 맡기는 당시의 지성인을 형상화한 것, 거기엔 너무나 맹렬하고 가혹한 자기 민족에 대한 힐책이 담겨 있다.

끝내는 이 건달 아큐가 혁명 소동의 회생이 되어 처형을 당할 때, 그 장면을 그저 구경거리로만 보는 민족애의 노여움과 아큐에 대한 동류적인 동정을 불러 일으킴으로써 나라의 현실을 쓸쓸한 물거품처럼 느끼게 했다.

루쉰은 여기에서 타락한 지성인, 철저하지 못한 혁명인, 비생산적인 농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고, 동시에 마비된 인간의 병태를 그리기에 과감했다. 그만큼 민족의 독소인 봉건의 병근을 증오하였다.

루쉰이 요극과의 담론이라는 글 속에서 미인에게 부스럼이 났을 때, 그것을 감추고 단지 그녀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기보다는, 그것을 지적하면서 그녀로 하여금 수치를 느낀 나머지 의사를 찾게 하는 것이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다라는 요지를 강조한 것과 소설을 어떻게 쓸까?라는 글에서 나의 소설 소재는 가능한, 병태 사회의 불행한 사람에게서 찾는다라는 창작 자세로 미루어, 그의 창작 목적이 국민성의 개조나 계몽에 있었음을 새삼 증언할 수 있다.

결코 계급의식을 고취하거나 무산 대상을 옹호한다는 사회주의적 작위는 아니라고 본다. 아큐정전에서 일관된 정신 승리법적인 아큐주의를 부각시키기 위한 아큐의 전형은, 분명히 성공적인 예술 기교로 평가되어야만 한다. (역자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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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魯迅, 1881년 9월 25일 ~ 1936년 10월 19일)

중국의 소설가.

본명은 저우수런(중국어 간체자: 周树人, 정체자: 周樹人, 병음: Zhōu Shùrén)이며, 자는 예재(豫才), 루쉰은 새롭게 지은 필명이다. 이외 영비(令飛), 하간(何幹) 등 100개 넘는 필명을 사용하면서 반정부 논객으로 많이 활동하였다.
중국의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인 저우쭤런과 생물 연구자였던 저우젠런은 그의 남동생이다.
대표작으로 『아큐정전(阿Q正伝)』, 『광인일기(狂人日記)』 등이 있으며, 특히 단편 『광인일기』는 중화민국의 봉건의 상징이었던 전통 문화를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민중의 각오와 행동을 촉구하게 되는 단편소설로 <신청년>에 1918년에 수록되었다.

루쉰의 문학세계는 이 1927년을 기점으로 크게 두 시대로 분수령을 이룬다. 루쉰의 전기시대가 단편시대라면 후기는 잡감문(雜感文)의 시대이고, 전기가 계몽적이고 사실적인 인생문학이라면, 후기는 사회비판과 문학비평을 전제로 한 정치문학이다. 전기작품에는 전통적인 애수와 낭만 그리고 풍자가 특징이지만 후기작품은 맵고 신 정공적인 표현이 특징이다. 루쉰이 후기에 정치에 관심을 보이면서 좀더 적극적으로 인간혁명, 제도혁명에 전념하게 되고, 비판문학의 영역으로 사상적 변화를 일으켰던 것이다.

말년의 루쉰은 중국의 막심 고리키라 일컬어질 정도로 많은 청년 작가들로부터 숭앙을 받았다. 헌데, 실제로 고리키가 죽은 그해에 루쉰도 죽었다. 정확히 고리키가 죽고 4달하고 하루가 지난 다음 지병으로 병상에 드러누우면서도 집필을 쉬지 않았던 루쉰은 독일인 의사로부터 진료를 받았지만, "지금까지 살아있는 게 용하다"고 가망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결국, 1936년 10월 19일, 향년 55세로 삶을 마감했다. 당시 1만여 명의 군중들이 그의 장례식에 참석했으며, 항일 통일전선 조직문제를 두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던 문인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문단을 통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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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소설 전집 - 루쉰 (김사준 옮김, 을유 세계문학)

아큐정전 - 루쉰 (전형준 옮김, 창비)

루쉰 전집 20권 (그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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