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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V. 고전 인문/1. 동양 - 고전 인문학

한비자 (신동준 옮김, 인간사랑)

by handaikhan 2023. 4. 24.

한비자 - 한비 (신동준 옮김, 인간사랑)

 

목차

제1부 한비론
제1편 생애론 17
제2편 사상론 49
제1장 한비사상의 특징 49
제2장 한비사상의 구성 73
제1절 도치주의(道治主義) 73
제2절 법치주의(法治主義) 93
제3절 군치주의(君治主義) 112
제3장 한비사상의 전개 137

제2부 『한비자』론

권 1
제1장 초견진(初見秦) 193

어지러운 나라가 잘 다스려지는 나라를 공격하면 망하고, 사악한 나라가 올바른 나라를 공격하면 망하고, 순리를 거스른 나라가 순리를 따르는 나라를 공격하면 망한다.

 

전쟁이란 만승의 대국일지라도 존망의 관건이다.

 

일의 흔적을 없애려면 그 뿌리를 남겨서는 안 되고, 재앙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재앙은 없다.

진나라는 초나라 군사와 접전에서 대승을 거둬 도성인 영까지 쳐들어간 후 동정과 오호 및 강남을 차례로 탈취했습니다. 초나라 군신이 황급히 동쪽으로 달아나 간신히 진 땅에 몸을 숨긴 채 한숨을 돌리게 됐습니다. 당시 초나라 군신을 계속 추격했으면 틀림없이 초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초나라를 멸망시켰다면 백성들 모두 풍족해질 수 있었고, 그 땅에 수많은 이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어 동쪽으로 제나라와 연나라를 약화시키고, 중원의 한나라와 위나라 및 조나라 등 이른바 3진을 능히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되었다면 단번에 패왕의 명성을 얻어 사방 제후들의 조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진나라의 모신들은 그리하지 않고 군대를 이끌고 물러나 초나라 군사와 화평을 맺었습니다. 초나라가 잃었던 도성을 수복하고, 흩어진 백성을 모아 사직의 신주를 세우고, 종묘제사를 관장하는 담당관원을 두고, 마침내 천하의 제후들을 이끌고 서쪽으로 진나라와 대적하면서 진나라의 어려운 상대가 된 배경이 여기에 있습니다.

 

삼가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매일 삼가고, 실로 치도를 삼가 행하면 가히 천하를 소유할 수 있다.

 

제2장 존한(存韓) 213

 

 


제3장 난언(難言) 228
제4장 애신(愛臣) 245
제5장 주도(主道) 250
권 2
제6장 유도(有度) 261
제7장 이병(二柄) 279
제8장 양각(揚) 293
제9장 팔간(八姦) 315
권 3
제10장 십과(十過) 325
권 4
제11장 고분(孤憤) 372
제12장 세난(說難) 385
제13장 화씨(和氏) 398
제14장 간겁시신(姦劫弑臣) 408
권 5
제15장 망징(亡徵) 437
제16장 삼수(三守) 448
제17장 비내(備內) 453
제18장 남면(南面) 462
제19장 칙사(飾邪) 472
권 6
제20장 해로(解老) 494
권 7
제21장 유로(喩老) 552
제22장 설림(說林) 상 590
권 8
제23장 설림(說林) 하 629
제24장 관행(觀行) 670
제25장 안위(安危) 674
제26장 수도(守道) 684
제27장 용인(用人) 692
제28장 공명(功名) 703
제29장 대체(大體) 708
권 9
제30장 내저설(內儲說) 상 715
권 10
제31장 내저설(內儲說) 하 778
권 11
제32장 외저설(外儲說) 좌상 841
권 12
제33장 외저설(外儲說) 좌하 918
권 13
제34장 외저설(外儲說) 우상 968
권 14
제35장 외저설(外儲說) 우하 1026
권 15
제36장 난일(難一) 1073
제37장 난이(難二) 1106
권 16
제38장 난삼(難三) 1130
제39장 난사(難四) 1161
권 17
제40장 난세(難勢) 1183
제41장 문변(問辯) 1195
제42장 문전(問田) 1199
제43장 정법(定法) 1204
제44장 설의(說疑) 1214
제45장 궤사(詭使) 1239
권 18
제46장 육반(六反) 1252
제47장 팔설(八說) 1271
제48장 팔경(八經) 1289
권 19
제49장 오두(五) 1315
제50장 현학(顯學) 1352
권 20
제51장 충효(忠孝) 1375
제52장 인주(人主) 1388
제53장 칙령(飭令) 1394
제54장 심도(心度) 1401
제55장 제분(制分)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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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韓非, 기원전 280년? ~ 기원전 233년)

《한비자》를 저술한 전국 시대 중국의 정치철학자, 사상가.

 

한비의 생애는 불분명하다. 알려진 정보의 거의 전부가 실린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그는 한(韓)의 공자 가운데 한 명으로 일찍이 형명과 법술을 익혀 중앙집권적 제국의 체제를 적극적으로 창도한 법가 이론의 집대성자 정도로 알려져 있다. 다른 이름으로는 한비자[1]로도 불리나 한비자는 보통 그의 저서로만 불리고 있다. 순자의 문인이다.

정확한 생년은 전해지지 않으나 기원전 281년 경[2]에 전국 시대의 한나라(韓)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한나라의 공자였던 한비는 순자의 문인이던 학자에게서 수학하였으며, 순자의 성악설에 심취하여 뒤에 그의 문인이 되었다. 그는 한에서 섬기던 군주인 안에게 법<술<세를 핵심으로 하는 그의 이론을 끊임없이 진언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그가 그의 저작에 썼던 것처럼 군주에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이론에 흥미를 갖고 직접 활용하려고 한 사람은 한의 이웃 강국이었던 진왕 정, 미래의 시황제였다고 한다.

공자의 문인인 자궁(子宮)의 문도였던 스승 순자로부터 사서육경을 배웠다. 그는 어려서부터 공자를 사숙하였으며 정의로운 사회의 실현을 위해서는 강력한 법질서가 필요하다 확신하였다. 또한 스승 순자의 영향을 받아 노예 제도에 대한 폐지를 주장하였는데 이 때문에 하늘의 질서(天理)를 어지럽히는 궤변론자로 몰리기도 했다. 전국 열국의 왕공들에게 받아들여지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일찍이 산으로 들어가 서실을 열고 문하생들을 가르쳤다. 동문이기도 했던 이사와 절친했던 한비는 이사를 통해 진왕 영정을 소개받게 되고, 그의 달변에 매료된 진왕 정은 그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려 노력하였다.
정은 그를 얻기 위해 한에 대한 침공을 개시하였고, 한비는 진의 침략을 막기 위한 사신으로 진에 파견되었다. 정은 한비를 만나보고 그에게 호감을 가졌으나, 순자 문하에서 함께 배웠던 이사가 질투 때문에 꾸민 음모에 휘말려들어 투옥당했고, 결국 음독자살로 생애를 마감했다고 한다. 그의 나이 49세였다.
그는 스승인 자궁과 순자의 견해를 계승하여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악한 존재이며 강력한 법과 형벌로 사회를 통제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문인과 각국의 제왕들에게 공자의 이상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사후 그의 제자들은 법가를 이루어 육가의 하나를 이루었다.
그의 문도들은 다른 유학자들과는 달리 법치주의와 실용주의를 강조하였고 후대에 송나라 때에 가서는 성리학자들로부터 심한 비판을 받고 유교 내에서도 극소수로 전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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