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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 한국 문학/2. 소설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 김소진 (열림원)

by handaikhan 2023. 4. 14.

열림원 - 논술 한국 문학 6

 

목차


쥐잡기
자전거 도둑
열린 사회와 그 적들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갈매나무를 찾아서
두 장의 사진으로 남은 아버지
고아떤 뺑덕어멈
처용단장

생애와 문학 - 역사와 운명 앞에 휘둘린 아버지의 삶
논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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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진 -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1997년)

 

내가 겸사겸사 미아리 셋집엘 한번 다녀오겠다는 말을 꺼내자 이번에는 어머니가 펄쩍 뛰었다. 그깟 돈 3만 원 은행 온라인으로 부쳐버리면 그만 아니냐는 거였다.

"그 집 남자가 요즘 문짝 새시 달러 다니는 모양이더라. 낮에 가봤자 코빼기도 구경하기 어려워서. 그 예전에 요한네 집에 세 살던 오종종한 해자 엄마 있지? 웃음이 헤퍼서 남자한테 그저 얻어맞고 살던 그 여자 얼굴을 꼭 닮은 그 집 여편네도 뭘 하러 쏘다니는지 갈 때마다 아이들만 둘이서 집을 지키고 있더라구."

"그 집 전화번호 있어요?"

"저기 가방 찾아보면 나오긴 나올 텐데. 늙은이 혼자 있는 듯하니깐 아주 만만히 보고 능갈을 치는 데 이골이 났더라구. 두 젊은 양주가 안팎으로 말이야. 여깄다, 구일, 사에...아유 침침해."

3만 원은 입동 무렵에 연탄에서 기름형으로 바꿔 설치한 셋집 보일러가 기습 한판에 얼었다며 손을 보려 하니 보내달라고 셋집 사내가 기별한 것이었다. (p.134-135)

 

처음에 셋집에서 겨울을 날 기름보일러를 달아달라는 연락이 왔을 때 어머니는 중고품을 하나 헐값에 달 요량이었다. 재개발을 앞둔 그 동네도 길어야 1년 안에 철거가 시작될 기세여서 1년 쓰고 버릴 것을 굳이 돈 더 얹어주고 새것으로 할 게 뭐 있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셋집 여자한테 알아서 중고를 하나 골라보라고 했더니 40만 원 견적이 나왔다고 알려왔다. 그러자 아버지 살아 계실 적부터 친하게 지내온 석유집의 임씨 아저씨한테 전화를 걸이 시세를 알아본 어머니는 혀를 내둘렀다.

"새것으로 해도 사십오만 원이면 뒤집어쓰고 남는다는데 뭔 말라빠진 중고가 사십만 원씩이야 응? 이놈의 집이 아주 작정을 해도 단단히 한 모양이구나. 구 경계선인 한길 너머 미아동 쪽으로는 거진 철거가 끝나서 집집마다 헌 보일러가 남아돌아 너도나도 갖다 쓰라고 난리들이라고 그러더구먼."

"품삯이 많이 들잖을까요?"

"삯이 들어도 그렇지. 그놈의 집이 자기네한테 먼 인척이 되어 잘 아는 물역 가게에서 들여놓겠다 그러는데 그게 바로 아삼륙으로 붙어 먹으려는 깜깜한 심보지 뭐야. 그래서 내가 임씨 영감한테 부탁을 해서 아예 새걸루다 달아달라고 했어. 괜히 중고로 달면 뭐가 어쨌네 저쨌네 뒷말이 많이 나올 집구석이고 그러면 내가 이 시큰시큰한 종짓굽을 이끌고 그때마다 어떻게 달려가겠니? 생각 같아서는 다시 벼룩시장에다 한 줄 싣고 싶지만 또다시 몇 번 발걸음하고 도배해줄 생각을 하니 입맛이 써서 원."

"기왕 말 나온 김에 제가 한번 다녀와본다니까요."

"거긴 뭐 하러?"

'창이형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도 들어두면 좋잖아요. 그리고 셋집 연탄광 쪽에 달아낸 작은방에서 가져올 것도 있구요."

"뭘?"

"영정으로 썼던 아버지 사진틀도 솜이불 보따리 틈새에 아직 박혀 있을 텐데..."

"그 생각은 잊고 꿈에도 하지 마라. 그 뱀의 허물 뒤집어쓴 것처럼 아물아물한 사진은 가져다 어디다 두려고? 애어멈이 그 형상을 보면 얼씨구나 하겠구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머니도 짐짓 내가 한번 재개발을 앞둔 그 동네를 후딱 살피고 왔으면 하는 눈치였다. 서너 달 전에 본격적으로 재개발 승인이 떨어지자 그곳 분위기가 급격히 달라졌다. 심지어는 현대부동산인가 하는 데서 어머니 앞으로도 딱지를 넘길 의향이 없느냐는 제안이 들어와 '넉 장'을 받고 매매를 하기로 전화로 약속까지 했다가 내가 말리는 바람에 취소한 적도 있었다. 마침 임씨 아저씨 아들인 창이형이 재개발조합에서 간사 자리를 꿰차고 있다는 말을 들은 어머니는, 내가 평소 가까이 지내온 창이형을 만나면 그곳 분위기나 시세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어듣고 오지 않을까 내심 짐작하는 모양이었다. (p.136-138)

 

따져보니 20년도 더 바랜 기억이었다. 물론 지금 내가 가고자하는 미아리 셋집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그 전에 국민학교 시절을 보낸 한 지붕 아홉 가구의 장석조네 집에 대한 기억이었다. (p.138-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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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조네 사람들 - 김소진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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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낡은 털신 밑에서 뽀드득거리는 소리가 나도록 성큼성큼 무릎을 들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아홉 가구가 함께 쓰는 변소 문을 열고 문턱에 올라 두 번씩이나 푸드덕푸드덕 몸서리를 치며 오줌을 갈겼다. 이빨을 위아래로 서너 번 맞부딪치며 뽑아내는 오줌줄기가 원뿔형으로 딱딱하게 굳은 언 똥에 둔탁하게 달라붙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따스한 오줌 세례를 받은 언 똥이 물컹물컹하게 녹아내리는 소리를 눈을 지그시 감고 듣다가 김이 되어 무럭무럭 콧속을 파고드는 지린내에 코를 쫑긋거리며 돌아나온 것까지는 좋았다.

바지춤을 추스르며 김장독을 가지런히 묻어둔 곁을 어정어정 걸어 나오다가 밭끝으로 눈 덮인 가마니때기 밑에서 뭔가 묵직한 것을 밟았다. 가마니때기 속에 발을 담근 채 눈을 푹 뒤집어쓰고 벽에 기대 있던 그 기다란 물체는 고개를 발딱 젖히는가 싶더니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눈이 털려나간 그 물체는 공사판에서 쓰는 빠루라는 연장이었다. 어른 엄지보다 굵은 그 기다란 쇠뭉치는 지렛대로 쓰였는데 끝이 물음표처럼 생겼고 또 갈래가 져서 대못 같은 것을 빼는 데 아주 쓸모가 있었다. 그런데 그 빠루가 넘어지면서 하필이면 땅속에 묻지 않고 그냥 바깥에 놔둔 조그마한 짠지 단지를 스치자 뚜껑은 두 동강이 나 떨어졌고 몸통에는 왕금이 좌악 그어졌다. 금은 갔지만 그 짠지 단지가 당장 두 쪽으로 갈라질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그 갈라진 틈새에서는 시금털털한 김치 냄새를 풍기는 국물이 쨀끔쨀끔 새어나오고 있었다.

사태는 명백하고도 돌이킬 수가 없었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지른 것이었다. 나는 삭풍이 부는 황량한 벌판으로 변한 마당 가에 서서 힘이 쭈욱 빠져나간 두 어깨를 거느리며 고개를 젖혀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오, 하느님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입니까! 그러나 무거운 눈을 밤새 다 털어버린 새벽 하늘은 너무 높이 올라가 있어 내 혼잣소리가 도저히 닿을 수 없었다. 고개를 숙였다. 나는 시치미를 떼고 누워 있는 그 시커먼 빠루가 마치 마녀의 주문을 받아 밤새 뿌린 눈송이를 덮고 위장한 채 기다리다가 내 발길을 일부러 잡아채지나 않았는가 하는 엉뚱한 의심이 들 정도였다.

나는 어린애답지 않게 몹시 피로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듯하다. 그것은 내가 그 순간 헐떡이고 있었던 이유를 적절하게 해명해줄 수 있었다. 피로하다는 것, 이루 말할 수 없는 피로감...하긴 어찌 피로하지도 않고 감쪽같이 기절할 수 있겠는가. 바로 그때 내가 피로해야 하는 목적은 두말할 나위 없이 기절하는 것이었다. 기절이라도 하고 나면 이 세상에 뭔가가 달라져 있겠지, 혹은 최소한 모면의 여지는 남겠지 하는 맹렬한 위안이 달라붙었다. 동시에 그 피로감은 어쨌든 세상에 대한 것이라는 게 명백해졌다. 변소에서 오줌보를 비우고 돌아서기까지 나는 너무나 생생했고, 빠루를 밟고 나서 갑자기 피로감을 느끼기까지 불과 십여 초가 흐르는 동안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 피로감이란 육체적 고단함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정신적 흔들림에서 우러난 것이 분명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 피로감은 어른에게나 해당하는 피로였다. (p.142-144)

 

흔적없이 무너져내린 집터에서 벽돌을 엉덩이 밑에 깔거나 듬성듬성 속이 터진 비닐 소파에 뭉개고 앉아 벽돌 위에 프라이팬을 걸고 낮술을 마시는 광경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잘 어울릴 지경이었다. 폐허와 술! 그 광경을 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어떤 허무적인 정조를 떠올릴지 모르나 그것은 야릇하게도 정반대의 느낌을 띠었다. 묘한 활력이라고나 할까. 기름기가 자글자글 흐르는 육질 안주 때문인지 술 한잔에 목을 빼고 걸근거리던 꾀죄죄한 술꾼들의 얼굴이 이미 아니었다. 그들의 얼굴에 궁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앞으로 한 해, 아니 길게 잡으면 두 해쯤은 재개발 경기의 훈풍이 그들의 버즘꽃 핀 얼굴에 개기름이나마 번드르르하게 발라줄 수 있을지 모른다. (p.148)

 

가자...!

그 한마디에 동화 속 같던 온 세상이 한 순간에 흰빛 절망감의 구렁텅이로 변하던 장석조네 집 마당에서 어쩔 줄 모르던 소년의 모습이 환하게 떠올랐다.

나는 깨진 단지를 눈으로 찬찬히 확인하는 순간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어찌 떨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 단지의 임자가 욕쟁이 함경도 할머니임에 틀림없음에랴! 이 베락 맞아 뒈질 놈의 아새낄 봤나, 하는 욕설이 귀에 쟁쟁해지자 등 뒤에서 올라온 뜨뜻한 열기가 목덜미와 정수리께를 휩싸며 치솟아올라 추운 줄로 몰랐다. 눈을 비비고 또 비볐지만 이미 벌어진 현실이 눈앞에서 사라져줄 리는 만무했다.

집 안팎에서 귀청이 떨어져라 퍼부어질 지청구와 매타작을 감수하는게 상수인 듯싶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첫길이라고 일부러 발끝에 힘을 주어 제겨딛고 가느란 우리집 앞에서 변소 앞까지 뚜렷이 파인 눈 위의 내 발자국은 요즘 말로 도주 및 증거 인멸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봉쇄하고 있는 터였다. 이미 아홉 가구의 어느 방 안에서인지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내 행동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기라도 한 양 두런거리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나는 울기 전에 최후의 시도를 하기로 맘먹었다.

우랑바리나바롱나르비못다라까따라마까뿌라냐...

손오공이 부리는 조화를 기대하며 입 속으로 주문을 반복해서 외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홱 돌려 깨진 단지를 내려보았다. 주문이 헛되지 않았는지 내 입가에 기쁨의 미소가 어렸다. 깨진 단지는 그 모양 그대로였지만 어떤 기발한 생각이 별똥별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눈사람이다! 나는 가슴이 터질 듯 기뻐 하늘을 향해 두 팔을 쫙 벌렸다. 일단 이 아침만큼은 별일 없이 맞이할 수 있겠지. 나는 장갑도 끼지 않은 손으로 서둘러 주위의 눈을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마침 찰기가 좋은 눈이어서 손이 한 번 닿을 때마다 흙알갱이가 알알이 박인 눈덩이들이 붙어올라왔다. 나는 우선 항아리 주변에 눈사람의 아랫부분을 뭉쳐놓았다. 그리고는 조금 작은 눈덩이를 서둘러 올려놓았다. 그렇게 해서 깨진 단지를 감쪽같이 눈사람 속에 집어넣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p.156-157)

 

그리곤 어느덧 해질녘...이미 비밀이 다 까발려졌을 아홉 가구 집으로 돌아갔다. 이미 비밀이 다 까발려졌을 아홉 가구 집으로 돌아갔다. 대문간 앞에서 나는 심호흡을 몇 번이고 했다. 엄마한테 연탄집게로 맞으면 안 되는데,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대문간 앞을 흐르는 시궁창을 가로지르는 돌다리를 건너갔지만 아무도 나를 보고 아는 체하는 사람이 없었다. 내게 일제히 안 됐다는 시선을 던지며 몰려들었어야 할 사람들이 평소와 다름없이 냄비를 들고 왔다갔다 했고, 문짝에 기대 입을 가리고 웃었으며, 수돗가에 몰려나와 쌀을 일며 화기애애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심지어 수돗가에서 시래기를 다듬다 마주친 엄마도 너 점심 굶고 어디 갔다 왔니, 하는 지청구조차 내리지 않았다. 나는 무척 혼돈스러웠다. 사람들이 나를 더 곤혹스럽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짜고 그러는 것도 같았다. 나는 얼른 눈사람을 천연덕스럽게 세워두었던 변소통 쪽을 돌아다보았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눈사람은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물론 흉칙한 몰골을 드러내고 있어야 할 짠지 단지도 눈에 띄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나는 나를 둘러싼 세계가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짐작하고 또 생각하는 세계하고 실제 세계 사이에는 이렇듯 머나먼 거리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 거리감은 사실 이 세계는 나와 상관없이 돌아간다는 깨달음, 그러므로 나는 결코 주변으로 둘러싸인 중심이 아니라는 아슴푸레한 깨달음에 속한 것이었다. 더 이상 나를 상대하지도 혼내지도 않는 세계가 너무나 괴물스럽고 슬퍼서 싱거운 눈물이라도 흘려야 직성이 풀릴 듯했다. 하긴 눈물 서너 방울쯤 짜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으니까. 난 시래기 줄기가 매달린 처마 밑에 서서 몇 방울 떨구며 소리 없이 울었다. 차라리 그 깨진 단지라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 혼은 나더라도 나는 혼돈스럽지도 불안해하지도 않았을 것 아닌가.

"뭘 잘했다고 소리 없이 눈물을 꼭꼭 짜니? 정초부터 에밀 못 잡아먹어서 그러니? 넉살 좋게 단지를 깨뜨려 눈사람 속에 파묻을 생각은 어찌했담. 엄마가 물에 젖은 손으로 내 볼따구니를 야무지게 잡아 비틀며 어이가 없다는 듯 픽 웃음을 지었다. 그 얼얼함이 내 균형감각을 바로잡아주었다.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 사이에서 나는 울음을 딱 그쳤다. 그리고는 어른처럼 땅을 쿵쾅거리며 뛰쳐나와 이 골목 저 골목을 헤집으며 어딘가를 향해 가슴이 터져라고 마구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게 컸다. (p.156-160)

 

아무래도 마을버스 종점까지 가기는 그른 모양이었다. 거기까지 간다고 해서 변소가 어서 옵쇼, 하고 대령하고 있으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나는 똥이 마려웠던 것이다. 아랫배가 이렇게 딱딱한 걸 보니 모르긴 몰라도 애들 팔뚝만한 걸로 한 자쯤은 뽑아낼 수 있을 듯했다.

"형 먼저 가세요. 전 다음에 또 올게요."

"왜? 버스 안 타?"

'예, 뭐가 갑자기 생각나서요."

나는 미주알에 힘을 잔뜩 주고는 형의 등을 떼밀어 마침 출발하려고 하는 마을버스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는 폐허 사이로 난 내리막길을 내달렸다. 반쯤 부서진 집들이 몇 채 보이자 나는 그리로 뛰어들었다. 아무리 사람이 버리고 간 집이지만 똥 눌 곳이 마땅치 않았다. 얼마전만 해도 밥 먹고 잠자던 부엌이나 방이라고 생각하니 선뜻 바지춤을 까내릴 수가 없었다.

잠시 주춤거리는 새에 마침 세로로 절반쯤 깨진 큼직한 항아리가 눈에 띄었다. 그 안에는 아마 그 항아리의 반을 깨고 들어왔을 한 뼘짜리 벽돌이 들어 있었다. 크기로 봐서는 한 열 명쯤 되는 식구는 좋이 먹여 살렸을 장독 같았다. 나는 누렇게 마른 소금기 자국이 얼비치는 옹색한 항아리 안으로 엉덩이를 비집고 들어가 벽돌과 깨진 장독 쪼가리를 디디고 서서 허리띠를 풀었다. 귀밑이 달아오르도록 용을 쓰느라 기침이 터졌다. 기침이 끝나자 나는 서러운 아이처럼 입초리가 비죽비죽 치켜져 올라가는 걸 알았다. 울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는 구린내가 나는 두 가랑이 사이로 고개를 바짝 쑤셔박고 굵은 김이 무럭무럭 오르는 굵은 황금빛 똥을 쳐다보았다.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그런데 나는 왜 구린내가 진동하는 깨진 항아리 속에서 똥을 누는데 울고 싶어 졌을까? 늙은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이제 막 초콜릿 맛을 안 네 살배기 아이, 이렇게 세 사람의 식솔을 거느린 가장이 비록 속눈썹이나마 이렇게 주책없이 적셔서야 되겠는가. 아하, 하지만 여태껏 나를 지탱해왔던 기억, 그 기억을 지탱해온 육체인 이 산동네가 사라진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를 이렇게 감상적으로 만드는 게. 이 동네가 포크레인의 날카로운 삽질에 깎여가면 내 허약한 기억도 송두리째 퍼내어질 것이다. 그런데 나는 기껏 똥을 눌 뿐인데...그것밖에 할 일이 없는데....

똥을 다 누고 나온 나는 빈집을 나와 모래주머니를 발목에서 풀어낸 달리기 선수처럼 가뿐하게 폐허 사이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뒤를 돌아다보니 냄새를 맡은 누렁이 한 마리가 내가 나온 집으로 코를 쑤셔박고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리고는 뭔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주위를 계속해서 두리번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P.162-163)

 

<작품 해설>

1. 정초부터 항아리를 깬 사건은 동티가 날 일로 어머니에게 혼날 것이 너무도 명백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항아리도 숨기고 하루 종일 집 밖을 쏘다니다 혼이 날 것이라는 두려움을 안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오히려 에상과 달리 아무도 그 일과 자신에 대해 신경을 쏟지 않습니다. 이는 '내가 생각했던 세계'와 '실재 세계' 사이가 일치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거리감이 오히려 내게 당혹스러움과 정신적 혼란감을 줍니다. 그래서 결국 이러한 당혹감은 어린 '나'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고 정신적 피로감을 느기게 한 것입니다.

2. '똥'을 누고 떠나는 행위는 포크레인에 의해 깍여 사라질 지난 시절을 기억하며 마지막으로 치르른 축복의 의례와도 같은 것입니다. 미아리 산동네는 민홍에게 가난과 욕망, 상처가 있는 곳이지만, 생생하게 꿈틀거리는 생명의 움직임도 있는 곳입니다. 그러한 곳이 재개발로 인해 사라지고 없어질 현실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결국 '나'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곳에 마지막으로 나의 흔적을 남기고 떠나는 것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것은 결국 '똥'을 누는 행위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P.164-169)

 

<비교>

 

김광섭 - 성북동 비둘기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 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해설>

이 시는 60년대 이후 몰아닥친 산업화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시킨 시입니다. 이 시는 서울 성북동의 변화를 비둘기의 눈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물질문명으로 인한 사회 변화의 측면을 겉모습의 변화만이 아닌 내적인 면까지 확대시키고 있습니다. 결국 이 시는 '성북동 비둘기'를 빌린 바로 성북동 사람들, 즉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변두리로 밀려나는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비둘기처럼 쫓기는 새가 된 서민의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계문명에 의해 점점 살벌하고 비인간화되어 가는 현실 속에서, 가슴에 금이 가서 이제는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같은 신세가 되어버린 인간들, 의지할 곳 없는 그들이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으며 인간적인 진실에 향수를 느끼는 정경을 이 시는 안타깝게 그리고 있습니다.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도 이런 맥락에서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비록 가난하고 소외된 변두리 인생들이지만 모여 살며 느꼈던 인간적인 진실에 대한 향수를 주인공 '민홍'은 다시 찾은 미아리 산동네에서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회복될 수 없이 사라져버릴 미아리 산동네의 겉모습과 함께 이제는 그 추억도 함께 사라질지 모른다는 사실에 당혹감에 휩싸여버립니다.  마치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처럼 말입니다. (p.164-169)

(같이 읽으면 좋은책)

성북동 비둘기 - 김광섭 (시인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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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진(金昭晉, 1964년 1월 17일 ~ 1997년 4월 22일)

대한민국의 소설가.

강원도 철원 출신. 아버지 김응수, 어머니 김영혜의 이남이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5살 때 미아리 산동네로 이사와 1993년 결혼할 때까지 26년을 살았다. 1982년 서울대학교 인문대에 입학하여 영문학을 전공하였고, 학생운동과 야학활동을 열심히 하였다. 이 무렵 그는 사회변혁운동의 한 방법으로 글쓰기를 염두에 두고 학회지에 글을 발표하는 등 습작을 하였다. 한겨레 기자를 하면서 작품활동을 활발히 하던 그는 1993년 소설가 함정임과 결혼을 하였다. 기자생활과 작품활동을 병행하던 그는 1995년 기자생활을 그만두고 전업작가가 된다. 1996년 제4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하였고 계간 『한국문학』의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중경공업전문대학 문창과에 출강을 하기도 한다. 1997년 위암 판정을 받은 후 한 달 남짓 투병하다가 4월 22일 작고하였다.

1991년『경향신문』신춘문예에 단편소설「쥐잡기」가 당선돼 문단에 데뷔하였다. 6년 남짓인 짧은 기간 동안 그는『열린사회와 그 적들』(1993),『장석조네 사람들』(1995),『고아떤 뺑덕어멈』(1995),『자전거 도둑』(1996),『양파』(1996) 등 소설집과 콩트집『바람부는 쪽으로 가라』(1996), 창작동화집 『열한 살의 푸른 바다』(1996)를 잇따라 내놓는 등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였다. 1998년 지인과 부인 함정임은 유고작을 모아 『아버지의 미소』를, 짧은 소설을 모아 『달팽이 사랑』을 펴냈다.
김소진의 작품세계는 흔히 자신의 가족사 이야기, 미아리 산동네의 민중들의 이야기, 지식인의 자의식을 다룬 이야기 등 세 개의 계열로 분류된다. 사회변혁 운동이 실패를 하면서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가족사에 대한 기억을 쓰기 시작한다. 소설쓰기의 원동력이 되었던 가족에 대한 기억은 주로 아버지와의 갈등과 화해를 다루고 있다(「쥐잡기」,「춘하 돌아오다」,「사랑이 앓기」,「고아떤 뺑덕어멈」,「개흘레꾼」,「두 장의 사진으로 남은 아버지」,「자전거 도둑」,「원생학습생활도감」,「목마른 뿌리」). 자신을 탄생시킨 아버지와의 화해는 결국 아버지로 대표되는 산동네 민중들의 이해로 확대된다(『장석조네 사람들』,「비운의 육손이형」,「수습일기」, 「그리운 동방」). 그는 기억의 서사를 통해 아버지와 엄마로 대표되는 민중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구성해내었다. 90년 신세대 작가들이 사회나 역사 대신 개인과 욕망을 내세웠던 것과는 달리 그는 추상적인 이념으로만 존재하던 민중이 실제로 역사 앞에서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생생하게 그려내었다. 우리말 공부와 어머니의 입심의 영향으로 그는 계층에 맞는 언어와 생생한 생활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여 산동네 민중들의 삶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었다.
김소진은 또한 변혁운동의 실패 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지식인을 다룬 소설을 썼다. 「처용단장」,「임존성 가는 실」,「혁명기념일」,「경복여관에서 꿈꾸기」,「울프강의 세월」,「신풍근배커리 약사」등에서 그는 자본제적 논리에 순응해가는 지식인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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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사회와 그 적들 - 김소진 (문학동네)

장석조네 사람들 - 김소진 (문학동네)

그리운 동방 - 김소진 (문학동네)

바람부는 쪽으로 가라 - 김소진 (문학동네)

신풍근베커리 약사 - 김소진 (문학동네)

열린사회와 그 적들 - 김소진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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