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책의 향기
I. 한국 문학/2. 소설

숨은꽃 - 양귀자 (문학사상사)

by handaikhan 2023. 4. 10.

1992년 제1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목차
1. 제16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
양귀자 - 중편소설 「숨은 꽃」

2. 제16회 이상문학상 수상 작가 자선작 양귀자 씨의 단편소설 「한계령」

3. 제16회 이상문학상 추천 후보작
김영현 - 「고도를 기다리며」
박양호 - 「포경선 작살수의 비애」
신경숙 - 「풍금이 있던 자리>
유순하 - 「홍수 경보」
윤정선 - 「해질녘」
최수철 - 「머릿속의 불」

4. 제16회 이상문학상 기 수상 작가 우수작
김채원 - 「미친 사랑의 노래」
이청준 - 「흉터」

 

...................................................

양귀자 - 숨은꽃 (1992년)

 

그는 귀신사에 있었다. 나는 그를 귀신사에서 만났다. 십오 년 만이었다. 물론 나는 그 십오 년의 세월을 첫눈에 걷어 내지는 못하였다. 그가 먼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면 이 돌연한 만남이 십오 년의 시간을 경과한 후에 비로소 일어났다는 사실조차 확인되지 않았을 터였다.

그랬다면, 만약 그와 나 두 사람 중의 어느 누구도 세월의 두께를 젖히고 상대를 알아보지 못했다면, 우리는 서로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하늘 향해 키를 겨누고 서서 연초록 잎을 피워 올리고 있는 껑충한 미루나무나 하염없이 쳐다보다가, 시들어가는 진달래 잎사귀나 한번 더 만져보고, 나는 그만 돌아섰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이 소설은 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한 거인의 목소리를 채집하는 행운을 영원히 놓쳐버릴 수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행여 하고 갔다가 역시 하고 돌아오는 허망함을 어떻게 가누었을지 생각만 해도 막막한 일이었다. 어쩌면 그는 내가 거기에 가야만 했던 까닭을 미리 알고 먼저 그곳에 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예전 같으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비웃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중요한 것은 그런 닐이 있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말해 버릴 수 있느냐 없느냐의 태도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말해 버렸다. 귀신사에서 나는, 그렇게 말해 버리는 법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날 오전, 서울역의 혼잡한 광장에 홀로 남겨졌을 때부터 나는 이 여행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러나 좀더 사실대로 말하자면 후회가 시작된 시간은 그보다 한참 먼저였다. 기차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다소 부지런을 떨었던 아침, 내가 없어도 아무 이상 없이 잘 돌아가게끔 챙겨둬야 할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앞에 두고 느꼈던 전날 밤의 한숨, 그보다 더 앞으로 시간을 돌리면 기차표를 예매하러 나갔던 날의 몽롱함과 회의까지를 다 후회의 페이지에 삽입시켜야 정확할 터였다.

하지만 후회를 잘하는 사람일수록 늘 그렇듯이 포기도 쉽게 하지를 못하고 결국 나는 예매한 기차표의 시각에 정확히 맞추어 서울역 광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 사이 이 여행을 포기해도 미련이 없을 만한 어떤 좋은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p.11-12)

 

기차가 서울역을 벗어나 달린 지 오 분도 채 되지 않아서 의자를 마주 돌려놓고 먹을 준비를 하는 건너편 여자들의 거칠 것 없는 웃음소리도 내게는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거의 내 나이쯤으로 보이는 여자들은 아마도 한 동네 단짝들인 모양이었다. 모처럼 집을 빠져 나왔을 여자들은 이른 점심인지 늦은 아침인지 모를 식사를 하면서 거침없이 웃고 떠들었다.

나는 그들의 거침없는 웃음을 훔쳐보며 더욱 창가 쪽으로 바짝 당겨 앉았다. 기차 안 어디를 둘러보아도 나처럼 모호한 표정의 승객은 없었다. 모호하기는 커녕 일상을 벗어난 사람들의 표정은 그 여행의 목적과는 관계없이 지극히 선명한 굴곡을 나타내고 있었다. 나는 거침없고 선명한 승객들한테 자꾸 주눅이 들고 있었다.

미로에 빠졌으면 처음 길을 잃었던 자리에서부터 차근차근 출구를 찾아보는 것이 옳았을 터였다. 시작과 끝을, 삶의 처음과 마지막을 그토록이나 성실하게 더듬어가는 것으로 미로를 벗어나긴 틀린 일이었을까. 운 좋게 부산물을 획득하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한 것은 너무 이른 절망이 아니었을까. 좌표가 사라졌다고는 해도 좌표가 있던 자리까지 사라진 것은 아닌데 왜 그렇게도 맥이 풀려버렸을까. 그 맥 풀림에 대처하는 것조차 나는 왜 그리 조급했던 것일까.

한 시인의 말처럼 어차피 고통은 이 세상을 사는 인간들이 지불하는 월세 같은 것일진대, 견디어 누르고 있으면 제 압력으로 솟아나오는 뿌리 하나쯤은 있을지도 모르는데. 아니, 이제는 그런 것들까지 폐기 처분되는 시대라고 믿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정말은 그 믿음이 두려웠던 것일까, 나는. (p.14-15)

 

역 구내의 모든 풍경들은 뒷걸음으로 사라지고 나는 얼굴을 창에 박으면서까지 물러나는 것들을 쳐다보았다. 달려오는데도 오히려 뒤로 물러서는 푸른 작업복의 안전 요원, 기척도 없이 멀어지는 만개한 목련들, 한껏 벌어진 목련꽃은 가벼운 한숨 한 자락에도 호르륵 이파리를 떨굴 것처럼 위태위태하게 보였다.

목련에 비하면 쇠락의 조짐이 엿보이는 샛노란 꽃다발 사이로 뽀죡한 잎사귀들을 다 내밀고 있는 역 울타리의 개나리 덤불이 한결 당당했다. 역 구내를 거의 빠져 나오면서는 개나리 덤불 사이로 희끗희끗 개구멍들이 보였다. 그 구멍으로 개만 드나들었던가. 아마 나도 먼 옛날의 어느 하루쯤 저 구멍으로 들어왔거나 나갔거나 했을 수도 있다.

나는 눈은 똑바로 뜨고 철로변의 풍경들을 내다보기 시작했다. 햇볕은 아직 짱짱했지만 얼굴로 쏟아지던 것에서는 다소 비껴갔다. 설령 얼굴로 쏟아진다 해도 여기서부터는 때 묻은 커튼과 타협을 할 수가 없었다.

이 길을 통해 나는 세상에 나왔었다. 한때의 기억들은 모두 이 길의 언저리에서 만들어졌다. 추억은 그것의 생성 장소에서 회상해야 가장 선명한 법이다. 똑같은 장소를 두고 단지 시간만 달리해서 한 인간의 몸과 정신이 투영되는 일은 언제라도 의미심장한 것이다.

그때 나는 거기에 있었고 지금 다시 나는 여기에 있다. 그 사이로 수천수만 번의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갔다. 덧없는 물거품에 옷은 또 얼마나 많이 적셨던가. 그때 내 발부리에 부어졌던 그 파도는 어디로 흘러갔을까. 지금, 이 자리에서 자기를 내다보는 나는 또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돌아갈 길이 없는 시간, 나는 창유리에 이마를 부비며 문득 돌아갈 길도 모른 채 가고 있는 스스로의 존재가 한순간 포말이 되어 공중으로 흩뿌려지는 것을 느낀다. 나는 시간 속으로 빠려 들어가고 있다. 나는 흡입당해지고 있다. 나는 우주 속으로 버려진다. (p.20-21)

 

어떤 말이든 입을 달싹이며 그대로 따라하는 초록 앵무새는 딸뿐만이 아니라 가끔 나도 가지고 놀았다. 시인도 우리 집에 놀러오면 앵무새와 놀았다. 앵무새는 두 마디 이상은 따라 할 수 없게 만들어져 있었다. 난 너를 사랑해, 라고 말하면 난 너를, 까지만 따라 하고 나머지 말은 기게 속으로 흡입되어지고 말았다.

우리의 놀음은 앵무새가 '사랑해'까지도 발음할 수 있게 하는 것에 관심이 모아져 있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았다. 여간 빠르지 않고선 번번이 '사랑해'는 금속의 기계 어딘가로 흡수되어 분해되고 말았다. 설령 아, 이, 우, 에, 오를 되풀이 연습해서 입술 운동을 실컷 한 다음에 '난 너를 사랑해'를 최대한도로 빨리 발음하는 데 성공했다 해도 허사이긴 마찬가지였다.

명확한 발음이 아니면 문장 전체가 다 녹음되었어도 재생된 소리는 제멋대로 깨어진 채였다. 날랄해, 날리레, 이런 식으로 되돌아오는 '난 너를 사랑해'는 흡사 얼레리 꼴레리 하며 조롱하는 소리로 들렸다.

그렇게 소리가 깨어져서 괴상한 모음과 자음의 조합이 이루어지면 어린 딸은 아주 즐거워했지만 시인은 몹시 낭패한 기색이었다. 언젠가는 초록 앵무새를 다른 것으로 바꾸어 와야겠다고 들고 나선 적도 있었다. 다른 앵무새도 모두 이런 식이라면 앵무새를 만든 공장을 찾아가 항의하고야 말겠다는 것이다.

'사랑해'를 말할 줄 모르는 앵무새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시인의 분노는 딸의 반대로 행동에까지 옮겨지지는 못했다. 잠을 잘 때도 초록 앵무새를 껴안고 자는 딸에는 한사코 그것과 헤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아이에게는 아직 얼레리 꼴리레로 능멸당해 본 슬픈 기억이 없었던 탓이었다. 깨진 언어에 대한 시인의 절망을 아이가 어떻게 이해하리.

'사랑해'를 말할 줄 모르는 새는 새가 아니다. '사랑'한테 얼레리 꼴레리 혀를 내미는 앵무새는 앵무새가 아니다. 나는 그가 천상 시인임을 그 작을 일에서 확인했다. 나는 시인이 아니어서 앵무새를 다른 것으로 바꾸거나 만든 이한테 항의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p.21-22)

 

그러다가 나는 시인이 경기도 어디에서 새를 기르며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따. 뜸부기, 이것이 시인이 기르고 있는 새의 이름이었다. 여름철에 냇가나 연못, 풀밭 등에 살고 날개 길이는 10센티미터, 부리와 다리가 길며, 잘 날지 못하고 아침저녁으로 뜸북뜸북 하고 우는 새, 뜸부기.

앵무새는 아니고 뜸부기였지만, 나는 맞다고 생각했다. 뜸부기 때문이라면 서울을 떠날 만도 했다. 서울에서는 뜸부기를 울게 할 수 없으니까.

시인이 할 수 있는 일로 그보다 더 맞는 일은 없다고 무릎을 치며 탄복했었다. 그 탄복은, 시인의 뜸부기가 애완용으로 팔려 나가 이집 저집의 조롱에서 아침저녁으로 뜸북뜸북 노래를 한다는 혼자만의 상상이 어긋나고 말았을 때 참혹하게 거두어졌다. 나는 얼마나 단순한가.

시인이 알에서 부화시키고 조석으로 모이를 주어 기른 뜸부기는 살이 통통하게 올랐을 때 식용으로 팔려 간다. 시인의 뜸부기는 최고급 요리로 둔갑하여 호텔 식당의 우아한 바로크식 식탁에 진열된다.

성장을 한 여자와 남자가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시인의 뜸부기를 먹어 치울 때 시인은 홀로, 아무도 없이 그저 자기 홀로, 뜸북뜸북 뜸부기의 노래를 듣는다. 시인의 뜸부기는, 아니 뜸부기 시인은 아침저녁으로 뜸북뜸북 노래를 한다. 나는 너를 사랑해...

새의 노래, 새를 먹어 치우는 사람들, 돈이 되는 뜸부기, 새를 팔아 사는 시인. 시인의 삶을 떠올릴 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이런 잡다한 소제목들이 나열된다. 그리고 나는 전율한다. 그러나 이 전율은 시인을 향한 절망에서 발생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나는 이 거대한 모순의 슬프고도 기묘한 조화가 주는 경이 때문에 전율하는 것이다. (p.23-24)

 

김제에서 금산사로 들어가는 국도의 가로수는 수령이 녹녹잖은 단풍나무들이다. 지난가을의 이 길은 하늘에 붉은 융단이 깔린 듯했었다. 가을 하늘의 푸른 빛깔과 화염 같은 붉은 이파리들, 그 사이사이 번쩍이며 내비치던 금빛 햇살의 광휘는 겨울이 다 지나도록 내 기억의 창을 물들이고 있었다.

가을에는 거칠 것 없이 붉었던 이 길이 지금은 푸르고 싱싱한 녹색의 물결을 이루고 있다. 주조를 이루는 색깔이 바뀐 탓이겠지만, 스치는 바깥 풍경은 지난겨울 동안 간직하고 있었던 기억 속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그래서 나는 택시 기사에게 두 번쯤 이 길이 맞는지 확인을 하였다. 한 번은 정식으로, 그리고 또 한 번은 앞 좌석의 기사에게는 들리지도 않을 만큼 우물거리는 형식으로 내 의혹을 표시하곤 이내 포기하였다. 기억에 대한 배신이 어디 이번뿐이던가.

추억의 영상은 한 번 저장되었다고 해서 움직임을 멈추고 각인되지 않는다. 저장된 그 순간부터 기억은 저 혼자의 힘으로 운동을 시작한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처음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영상으로 바뀌어버리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때로는 기억과 현실을 맞추려는 덧없는 노력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사람들은 가끔씩 지금 보고 있는 것보다 이전에 보았던 기억을 더 신뢰하고, 그것에 더 많은 의미를 두고자 하는 고집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p.25-26)

 

이제는 산보 삼아 귀신사에 갔다 오면 해가 질 것이다. 자동차를 이용하면 십여 분 만에, 걸으면 삼십 분 정도의 거리에 귀신사가 있었다. 귀신사는 내일 아침에 들러도 상관은 없다. 하지만 새로 단청을 입혀서 울긋불긋하기가 새색시 색동저고리 같은 금산사는 지난번 둘러본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고 나니 당장 가볼 만한 곳은 없었다.

아니. 이 말도 보다 정확한 진술로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겠다. 사실을 말하면, 이곳에 오면 제일 먼저 귀신사의 텅 빈 적요 속에서 두어 시간쯤 앉아 있고 싶었다. 무작정 떠남에 있어 가장 많은 유혹을 던졌던 곳도 귀신사였다. 귀신사. 거기에는 무언가 숨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계획 속에서 자꾸 귀신사행을 뒤로 미루기만 하였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먼저 부닥쳐서 먼저 실망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내 머릿속에 저장된 귀신사의 풍경 또한 어떤 모습으로 나를 배신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기대가 무너질 때에 대비해서 나는 스스로를 단련시킬 셈인지도 모른다.

김제역에서 곧장 귀신사로 가지 않은 것도, 그러면 방을 구한 뒤라도 바로 귀신사를 찾지 않은 것도, 그곳에 가도 점심 요기쯤은 할 수 있을 텐데 굳이 이곳에서 허기를 때운 것도 나름대로는 아끼고 감춰둘 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지난가을에 귀신사는 우선 이름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영원을 돌아 다니다 지친 신이 쉬러 돌아오는 자리. 이름에 비하면 너무 보잘것없는 절이지만 조용하고 아늑해서 친구는 아들을 데리고 종종 그 절을 찾는다고 했다.

단지 서울에서 멀리 왔다는 것만도 흔감해서 애써 명승지를 찾아다닐 마음이 없던 일행은 여행의 구색을 맞춘다는 의미로 흔쾌히 귀신사를 찾았다. 확실히 그곳은 멀리서 일부러 들른 사람들에게 구경시켜 줄 만한 아무것도 지니지 못한 절임에는 분명했다.

본당의 문을 열어 빛이 사그라들기 시작한 금동불상을 보기 전에는 여느 여염집으로 여기고 지나치기 십상인 외양이어서 그때도 그 흔한 관광객 한 사람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면 상당히 많은 말을 하고 있는 절이 귀신사였다. 드러나는 아무것도 없으면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낡고 허름한 귀신사의 풍경은 여행 중의 온갖 화사한 기억을 다 물리치고 가장 오래도록 내 마음에 머물러 있었다.

경내도 좁고 볼 만한 석탑 하나 갖고 있지 않는 이유도 오랜 시간 마음으로 보고 마음을 채워 가라는 속뜻을 담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었다.

한 바퀴 휘 둘러보고 나와버리려는 자는 '사절'이라는 팻말을 어디선가 본 듯싶다는 황당한 착각도 얼마든지 품게 만드는 그런 절이었다.

아마도 나는 착각 속의 팻말에 충실하기 위해 여기에 다시 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는 단지 스쳐 지났을 뿐이다. 마음에 담을 것을 제대로 주워 담지 못하고 왔다는 생각은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점점 기억의 세부적인 영상들이 뭉그러지기 시작하자, 나중에는 아주 중요한 무엇을 거기에 놓아두고 와버렸다는 식으로 느낌이 굳어졌다. 빨리 가서 찾지 않으면 영영 사라져버릴 무엇, 시효가 지난 뒤에 가면 버려지고 말 무엇. 거기까지 생각하자 갑자기 서둘러야겠다는 다급함이 솟았다. 나는 삼거리를 돌아 좌회전하려는 택시 하나를 붙잡았다. (p.31-33)

 

이 작은 소동 덕분에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걸음을 빨리하여 귀신사를 향했다. 이제는 귀신사가 예전의 분위기와 같은가 다른가를 따져 볼 기분도 아니었다. 회상 속으로 들이밀었던 내 발은 아까의 남녀에 의해 호되게 짓밟히고 말았다. 진실로, 메마른 황토를 걷고 있는 오른발의 발가락 어디가 한순간 끊어질 듯이 아픈 듯도 싶었다.

따지고 보면 바로 그 남자와 여자가 나타난 순간부터가 이 여행의 첫 시작이었다. 이제까지는 반년 전에 있었던 가을 여행의 연장이거나 그것의 반추에 불과했지 한 번도 새 경험에 마음을 후르르 떨어본 적이 없었다. 발가락 어디가 아팠다면, 그것은 꿈속인 줄 알고 여지없이 꼬집어봤다가 느닷없이 껴안게 된 생살의 아픔일 터였다.

기억을 부수어버리는 또 다른 경험은 마음을 다스릴 새도 없이 연이어졌다.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한 번 더 발가락을 꼬집어봐야 믿을 수 있거나 말거나 할 상황이었다. 귀신사는 거기 없었다. 아니, 귀신사는 거이 있었지만 내가 찾은 귀신사는 거기 없었다.

절대 뼈대만 남아 목하 보수 공사 중이었다. 적요 속에 잠겨 있으리라던 경내는 허리춤에 더러운 수건을 찼거나 귀 뒤에 피우다 만 담배를 찔러둔 대여섯 명의 인부들로 온통 수선스러웠다. 작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마주 보고 있던, 위패를 봉헌해 둔 사당과 불상을 모신 본당은 커다란 기둥 몇 개만 남은 채 홀랑 껍데기를 벗어 던진 모습으로 나를 맞았다. 게다가 드러난 안의 모습조차 내용물을 보호하기 위해 뒤집어씌운 거대한 너비의 누런 광목에 힘입어 불길한 느낌을 자아내기에 충분할 만큼 섬뜩했다.

아마도 볕에 바래지 않은 누런 광목이 주는 상갓집 분위기 탓이겠지만, 거기는 신이 지친 몸을 쉬기 위해 돌아오는 자리가 아니라 이제는 병들어 움쭉달싹도 못하는 신이 마지막 숨을 거두기 위해 돌아오는 음산한 자리라고나 해야 맞을 것 같았다.

그 생각은 두 채의 건물을 돌아가며 세워놓은 여러 개의 사다리들과도 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신의 영혼들, 사다리를 타고 아득아득 하늘로 오르는 귀신들의 도포 자락이 보였던가.

그제야 바라본 지붕은, 절망의 빛깔 같은 기와를 이고 기와 틈 사이로 가늘가늘한 풀포기도 숱하게 살려 내고 있던 그 지붕은, 남김없이 벗겨져 흉측한 속살을 부끄럼도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지붕을 보고 완전히 정이 떨어져 경내에 들여놓았던 서너 걸음을 뒤로 물렸다.

말했듯이 서너 걸음만 절 안으로 들이밀었어도 볼 것은 다 볼 수 있을 만큼 귀신사는 작은 절이었다. 그렇게 좁은 공간 속으로 낯선 방문객이 들어왔건만 시멘트를 이기거나 널빤지에 대패질을 하고 있거나 한 인부들은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차라리 왜 왔느냐고 물어주기나 했으면, 나는 돌아서지도 못한 채 어쩔 줄 몰라 서성거렸다.

모래를 걸러내는 체가 걸려 있고, 그 밑으로 수북하게 모래 무덤이 솟은 자리가, 큰누이의 얼굴처럼 아늑하고 포근한 꽃송이가 뿌리를 내리고 있던, 바로 그 자리였다는 생각은 분해된 귀신사에 실컷 실망을 하고 난 다음이었다.

실컷 기억에 배신을 당해 놓고도 그때까지 나는 귀신사를 벗어날 마지막 한걸음을 떼어놓지 않고 있었다. 아직 뒤안의 감나무 동산과 그 누이 같던 정다운 꽃송이를 기억과 비교하지 못한 탓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마도 나는 뒤안의 감나무를 불가에서 말하는 만년과 쯤으로 마음에 잡아두고 있는 모양이었다. 얼마든지 배불리 따먹어도 따낸 흔적도 없이 언제나 가지가 휘도록 달디단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는 그 만년과.

그렇게 비유하자면 마당에 수복이 피어, 보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던 그 누이 같던 이름 모를 가을꽃은 우담바라화였다. 3천 년에 한 번씩 꽃을 피운다는 그것. 단 한 번만 그 향기를 맡아도 온갖 시름과 눈물이 다 사라진다는 우담바라 꽃을 귀신사에서 보게 되리라고 기대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담바라는 흔적도 없었고 대신 그 자리에 모래 무덤만 솟아 있었다. 나는 차마 눈을 돌리지 못하고 곱게 걸러져 나온 봉긋한 모래더미를, 그 속을, 한 치 아래의 땅속까지도 들여다보겠다는 듯이 서 있었다.

만년과를 보려면 인부들 사이를 뚫고 본당을 거쳐 둔덕을 올라야만 했다. 거기에 주홍의 열매가 있지 않다는 것은 어린아이라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봄에 열매를 맺는 감나무는 없으니까. 그러므로 뒷동산에 올라야 할 이유는 만년과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기어이 거기에 가야 할 이유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러자 또렷하게 절을 떠받들고 있던 예전의 적요가 떠올랐다.

그랬나. 나는 아직 적요를 만나지 못했다. 나는 교교한 고요 속에 온몸을 담그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목 밑까지 흠뻑, 몸속의 모든 것을 다 증발시켜 버리고 남을 만큼 오래.

마당을 가로지르는 나를 가로막는 사람은 없었다. 절 옆 어느 집의 낮은 담장 너머로 웬 백발의 할머니만 나를 예의 주시하고 있을 뿐 인부들은 갖가지 연장을 뛰어넘고 비껴가며 통과하는 나를 여전히 본 척도 하지 않았다.

불사인 탓인가, 인부들은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했다. 그 묵묵함조차 저기 발가벗은 건물 안의 누런 광목의 힘이 그렇게 시키는 듯하여 나는 광목으로 뒤덮여진 불상이며 죽은 자의 위패 따위를 보지 않으려고 애써 시선을 피했다.

그다음에 내가 본 것은 가뜩 쌓여진 새 기왓장과 스티로폼들, 그리고 건물의 잔해로 짐작되는 뜯어낸 나뭇장들이었다. 뒷동산은 창고 역할을 하고 있음을 분명하였다.

나는 고개를 우러러 그래도 청청한 잎을 가지마다 가득 피우고 있는 해묵은 감나무들을 바라보았다. 녹색의 이 넓은 창고를 어우르고 잇는 푸른 잡목들과 잡초 사이에 끼어서도 숱하게 얼굴 내밀고 있는 하얗고 노란 이름 모를 풀꽃들도 바라보았다.

다행히 더 이상의 훼손은 없었다. 건축 자재는 누여진 대로 누워 있을 것이다. 움직이는 존재는 나밖에 없으므로 나는 기꺼이 이 푸른 창고에서 적요를 맛볼 것을 작정하였다. 어쨌거나 이제 나는 좀 쉬고 싶었다.

앉고 보니 벌거벗은 귀신사의 지붕이 환히 내다보이는 자리였다. 바람은 훈훈했고 이름 모를 작은 날것들은 분주히 숲 덤불을 오가고 있었다. 나는 이대로 풀밭에 드러누워 한숨 달게 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그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감은 눈 속에서 귀신사의 평화를 회상하기라도 했을 터였다. (p.35-39)

<참고>

김제 귀신사 대적광전 (金堤 歸信寺 大寂光殿)

 

귀신사(歸信寺)는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모악산 북쪽 자락에 있는 사찰이다 신라 문무왕 16년(678) 의상대사가 세운 절로 8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전한다. 이 절에는 예스러운 맛이 배어 있는 건물과 연꽃무늬로 된 받침대, 동물 모양의 돌 등 많은 석물들을 볼 수 있다.
지혜의 빛을 비춘다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은 17세기 경에 다시 지은 것으로 짐작된다.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보았을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의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앞면 3칸 문에는 빗살무늬 창호를 달았고, 오른쪽과 왼쪽 끝칸인 퇴칸은 벽으로 만든 점이 특이하다

....................................................................

 

우리 사이에 가로놓인 십오 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금 그의 얼굴에서 출렁이는 바다를 보았다. 십오 년 전의 바다가 거센 파도의 으르렁거림으로 다소 불안한 것이었다면, 지금 그의 얼굴에 새겨진 바다는 거칠기는 해도 폭풍의 징후는 없는 그런 것으로 내게 비쳤다.

그래도, 다시 말하자면, 그를 알아봄과 동시에 나는 그가 여전히 바다의 사람임을 알아보았다. 이 말은 그가 바닷가에서나 살아야 할 존재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도 할 수 있다. 한군데에 붙잡아 둘 수 없는, 물결에 휩싸여 세상 곳곳을 다 굽이쳐 흘러야 하는 그런 운명의 생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이 바다의 사람일 것이다. (p.40)

 

수인사 따위는 주고받을 시간도 없었다. 김종구는 다짜고짜 그렇게 말을 꺼냈다. 굵은 눈썹 아래의 부리부리한 두 분은 나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으며 내가 무어라 응수를 하기도 전에 돌밭에 침을 찍 뱉고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 집에 여자라곤 신경통으로 기어 다니는 늙은 어머니하고 숙자 저년밖에 없어요. 보셨으니 그거야 알고 계실 테고, 또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거요?"

그다음에 내가 할 말은 없었다. 얼굴에 칼자국이 두 군데나 그어져 있는 사내한테 나의 교사 체면이 어떻게 구겨지고 말 것인지 그것이 약간 불안할 뿐이었다. 이 학부형한테 학생에 대한 교사의 애정, 혹은 학생의 장래 따위를 말할 생각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판이었다. 그리고 김종구 본인이 그런 생각일랑 꿈도 꾸지 말라는 듯 단단히 못을 박고 있었다.

"왜들 이 뻔한 사실을 잊고 있는지 모르겠소만, 사는 일이 가장 먼저란 말이오. 사는 일에 비하면 나머지는 다 하찮고 하찮은 것이라 이 말입니다. 먹고사는 데 질서가 잡히면 선생이 말려도 숙자는 다시 학교에 나가요. 아마도 내년에는 숙자 년이 교실에 앉아 있는 것을 볼 거요. 그럴 리는 없겠지만, 선생이 내년에도 여기에 있기만 한다면."

그리고 김종구는 괜한 장작불만 타고 있다면서 역시 인사도 없이 멸치막으로 돌아갔다. 오빠의 무례에 거의 사색이 되다시피 한 숙자는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전혀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처음의 초조함에 비하면 김종구가 보여준 행동은 오히려 예상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기도 했다. 그는 말로 자기를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말 또한 새겨들을 만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기도 했다. (p.43-44)

 

그가 타고 있는 배는 마을 사람들의 입방아에도 불구하고 잘도 흘러 금어호 곁을 지척에 두고 스쳐 갔다. 출렁이는 나뭇잎 배에 네 활개를 펴고 잠들어 있는 김종구의 모습도 똑똑히 내려다보였다. 시퍼런 바닷물이 밑그림이 되어 그는 영락없이 맨몸으로 바다에 누워 있는 듯이 보였다. 등짝 밑으로 험상궂은 파도가 으르렁거리고 있을 텐데도 잠들어 있는 그의 얼굴은 낙조에 물들어 그럴 수 없이 평화스럽게 보였다. 그 평화가 부러웠던가. 부럽고 아득해서 뱃전에 달라붙어 그리도 오래 흘러가는 배를 눈으로 쫓았던가.

지금도 나는 그날 바다에 누워 있던 그의 얼굴과 팔뚝을 물들이던 황금빛 노을을 아주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다. 물결에 출렁일 때마다 사방으로 부서지던 그 눈부신 빛살, 요람 속의 평화를 가득 싣고 있던 그 통통배.

그러고 보면 지금도 서편 하늘에 투명한 노을이 걸려 있다. 그러나 여기는 바다가 아니다. 산이다. 나는 새삼 김종구의 외양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 남자는 지금 마흔이 훨씬 넘었을 것이다.

그러나 순간적이긴 하지만 쏘는 듯한 시선, 팔뚝에 드러난 굵은 힘줄, 근육으로 뭉쳐진 상체의 단단함은 도저히 마흔을 훨씬 넘긴 그것이 아니다. 하지만 가끔씩은 쉰 살은 예전에 지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가기도 한다. 이마의 잔주름과 눈초리에 엉겨 붙은 피곤함이 의심의 근거랄 수 있다.

"그렇게 한심한 눈으로 사람을 듣어보지 맙시다. 선생님이 무슨 생각하는지 내 다 알지요. 늙어 죽을 때까지 공사판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아야 하는 가련한 인생이구나 여기겠지만, 천만에요. 이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지붕 씌운 곳에서 갇혀 일하라면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숨이 콱 막히거든요. 마흔 지난 지 몇 해가 되었지만 아직 이 몸뚱어린 쓸 만하죠. 몸뚱어리 하나 믿고 하늘에 구름 가듯 떠도는 게 좋아요. 훌쩍 떠날 수 있으면 훌쩍 오는 거예요." (p.45-46)

 

학교에서 자취방으로 가는 길의 야산이 검정염소들의 방목장이었다. 육고기에 주려 있게 마련인 섬사람들한테는 염소나 잡아야 푸짐하게 고기맛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잔치에는 열 명도 못 되는 중학교 선생들이 총동원되어 잔치의 상석을 차지하고 앉는 것도 관례였다.

염소를 식용으로 생각해 보기는커녕 되려 그 짐승에게서 강한 친밀감을 느끼고 있는 염소띠 인간인 나로서는 마지못해 가는 자리였지만, 다른 남자 교사들은 섬 생활 서너 달이면 염소고기에 맛을 들이고 절대 사양을 하지 않았다. 마을 사람 거의가 고기맛을 봤던 육성회장 집 잔칫날, 그날 김종구도 거기에 있었다.

염소를 잡게 되면 죽인 직후의 생피를 마시는 것과 삶은 골통을 쪼개 골을 꺼내 먹는 것이 제일 알짜라는 이야기는 누누이 들은 바가 있었다. 그러나 자리에 앉자마자 쟁반 세 개가 동원되어 각각에 염소 머리 하나씩이 담겨져 나오는 광경은 너무 끔찍하고도 갑작스러웠다.

대개는 손님을 청한 쪽이 부엌에서 적당히 처리해 내오기 마련인데 머리가 세 개나 되다 보니 곧바로 짜개 먹는 쪽이 편하다는 의견이 우세했던 모양이었다.

마루 한가운데 염소 머리 세 개가 놓이자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김종구를 쳐다보았다. 마치 너 말고 누가 이 짓을 하겠냐는 듯이. 그리고 누군가 그에게 날이 새파랗게 선 손도끼를 건네주었다.

김종구는 사람들을 휘 둘러본 다음 말없이 손도끼를 받았다. 그의 입가에 맴도는 냉소를 본 것은 나뿐이었을까. 그는 잔인함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충분하게 읽어낸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새삼스럽게 숫돌에 도끼의 날을 벼리는 일부터 시작할 이유가 없었다.

쓱싹쓱싹, 음산한 숫돌의 마찰음을 들으며 사람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긴장과 공포의 순간에도 사람들은 침을 삼킨다. 마치 기름진 음식을 상상하듯.

이윽고 숫돌 작업이 끝나자 그는 마술사들이 흔히 시도하는 시선 끄는 도입부도 실천해 보였다. 손바닥으로 슬슬 손도끼의 날을 쓸어보는 그 유혹의 순간들이 흐르는 동안 김종구 주위의 몇몇이 슬쩍 뒤로 물러섰다. 사람들은 김종구의 눈에서 살기를 읽었고, 나는 경멸을 읽었다.

마침내 털 뽑힌 염소의 둥근 두상 하나가 통나무를 큼직하게 반 잘라 만든 도마 위에 얹혀졌다. 반쯤 눈이 감겨진 염소의 머리는 시장 바닥의 좌판에서 흔히 보는 돼지 머리와는 사뭇 달랐다.

삶은 돼지 머리가 감은 눈과 위로 치솟은 콧구멍, 그리고 투정하듯 내밀어진 입으로 인해 희화화된 모습이라면, 염소의 그것에는 비애가 서려 있다. 죽음 앞에서 깜짝 놀란 모습이 어김없이 담겨 있기로는 염소를 다를 짐승이 없다. 염소는 유독 겁이 많은 짐승이니까.

김종구는 염소 머리를 이리 만지고 저리 만지며 도끼의 날이 박힌 자리를 신중하게 모색하였다. 그는 계속해서, 부러 그러는 게 분명한, 과장된 몸짓을 보여주며 잔뜩 시간을 끌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걸 원할때까지는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다는 자세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손도끼가 번쩍 허공을 가르며 솟아올랐다. 그와 동시에 김종구의 입에서 야릇한 기합 소리가 터져 나왔다.

기합과 함께 땅, 하는 암팡진 소리가 울렸고 벌어진 골통 속으로 김이 무럭무럭 솟아나는 하얀 골이 드러났다. 젓가락을 들고 그 순간을 기다리던 남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골통 속으로 젓가락을 들이밀었다. 첫 번째 염소 머리가 상으로 올라간 지 몇 분, 눈 깜짝할 사이에 머리는 두개골로 변해 쓰레기통으로 던져졌다.

사람들 뒤에서 담배 한 대를 피고 난 김종구는 묵묵히 도마 위에 두 번째의 염소 머리를 얹었다. 이번에는 시선 끌기 같은 광대 짓은 없었다. 두 번째, 세 번째의 골통 또한 단 한 번의 도끼질에 어김없이 두 쪽으로 갈라졌지만 첫 번째 이후로는 사람들의 탄성도 들리지 않았다. 모두들 뜨끈뜨끈한 골이 식을까 봐 정신없이 젓가락질에만 매달렸다.

그러나 내가 지켜본 바로는 그 손길 속에 김종구의 젓가락은 없었다. 내가 본 것은 세 개의 염소 머리를 해치운 뒤 황급히 소주 한잔으로 목을 적신 다음 말없이 육성회장 집을 빠져나가는 그의 뒷모습이 전부였다. 둘러앉아 허겁지겁 염소의 골통을 파먹고 있던 사람들은 김종구가 사라지는 줄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세 번째의 삽화는 진저리쳐지는 느낌 말고도 묘하게 비애를 깔고 있다. 그러고 보면 김종구는 그때 이미 위선과 타협할 수 없는 국외자로서의 비애를 깨닫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 뒤 십오 년의 세월이 그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만약 그렇다면 공사판을 떠도는 김종구의 지금 삶은 필연적인 것이리라. 삶의 비밀을 엿본 자에게 붙박이 삶이 가능하기나 할 것인가. (p.48-50)

 

"웃기는 일입니다. 대체 뭐 하러 이 짓을 합니까? 목수하고 이 절에 처음 온 날이 마침 비 오는 날이었어요. 첫눈에 야, 이건 굉장한 절이다, 라는 느낌이 확 들었지요. 전국의 이름난 절들을 나도 숱하게 봤지만 이런 절은 처음이었거든요. 작가 앞에서 문자 쓰기 거북하지만, 뭐 생사를 초월한, 그런 인새우상 같은 게 가슴을 찍어 누르대요. 그런 절을 싹 뜯어서 울긋불긋하게 만들겠다니 얼마나 웃기는 짓이에요. 말도 안 되는 짓을 한다길래 첨엔 이 일에 손 델라고 그랬지요. 그런데 왜 마음을 바꾸었는지 아십니까. 조금이라도 덜 웃기게 만들기 위해선 내가 있어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지요. 이건 정말이지 순수한 내 충정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짓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구요."

나는 놀라서 걸음을 멈추었다. 김종구도 그렇게 느꼈던가. 귀신사에 대해 그도 남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던가. 그래서 기꺼이 제동장치의 역할을 맡아 보수 공사에 참여하고 있다는 그의 말은 단숨에 나를 그에게로 끌어당겼다.

그 말은 김종구라는 인간을 재고 있던 나의 잣대를 사리지게 하였다. 그에게 잣대를 들어밀다니, 나는 얼마나 교활한 인간인가. 십오 년 전의 그와 지금의 그를 수시로 비교하며 인간을 저울질하는 나는 얼마나 편협한가. 다소 무참해진 나는 귀를 열어, 소위 청취의 자세로 돌입하였다. 그리고 이 자세는 그와 헤어질 때까지 여일하였다.

"참 한 가지 당부가 있는데 이건 꼭 유념을 하셔야 합니다. 우리 황녀의 단소 가락을 듣게 되면 무조건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하세요. 나야 황녀가 부는 단소 외엔 들어본 적이 없어 갈등 없이 마구 추켜세울 수 있지만서도 선생님은 혹시 아니올시다일지도 모를 일이잖습니까. 그러니 눈 딱 감고,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황녀 입이 찢어지게 띄워버리세요. 황녀 고게 또 청중은 어지간히 가리는 못된 버릇이 있어서 아무한테나 단소 가락을 맛뵈 주지도 않아요. 황녀가 제일 기뻐하는 일이 뭔 줄 아십니까? 내가 지 단소 소리를 헤아려 들을 만한 고급 청중 데불고 집에 가면 그저 팔팔 뛰도록 기뻐하지요. 선생님을 데려가면 아마 까무러칠 것입니다."

자신의 집에 들어가기 전에 김종구가 내게 한 당부 또한 은근히 내 마음을 찌르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자기의 마누라한테까지 세상의 잣대를 들이미는 허튼짓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만나자마자 부득불 자기 집에 가자고 우기던 것이나, 그보다 더 그슬러 올라가서 나를 만나고 그토록 반가워했던 것도 모두 그의 황녀를 위한 헌신이었음이 분명했다. (p.52-54)

 

나와 아주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는 그 욕망 말고 다른 것으로 해명할 수 있는 진실이 세상이 어디 있던가. (p.55)

 

선술집에서 만나 그 밤으로 만리장성을 쌓고 단소 가락에 혼까지 앗기운 채 다음 날로 데리고 나와 같은 이불속에서 자기 시작했다는 황녀와의 인연에 대해서 김종구가 하는 말은 이런 것이었다.

"난 저것의 야비함에 반했어요. 우리 황녀의 매력은 야만스럽고 교활하다는 것이지요. 그게 편해요. 난 베일로 얼굴을 가린 성처녀한테는 아무런 흥미도 없어요. 그 짓 할 때 베일을 벗기는 수고나 한 가지 더해질 뿐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김종구는 황녀가 자기의 여자인 것을 단숨에 알아보았다고 했다.

"정말 굉장한 여자였어요. 나는 저 여자를 보자마자 저 불룩한 가슴밑에 내 갈빗대 한 짝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금방 눈치 챘지요. 이건 행운이에요. 마침내 잃어버린 갈빗대를 찾은 거라구요. 말도 마세요. 그거 찾겠다고 밤마다 계집들 눕혀놓고 맞춰보느라 힘깨나 뺐지요. 당분간은 힘 좀 아껴도 되겠으니 행운이 아니고 뭐겠어요. 아, 왜 당분간이냐구요? 글쎄, 그놈의 갈빗대가 계속해서 맞으라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뼈다귀도 자꾸 자랄 텐데. 그럼 다른 것을 찾아야지요. 얼마든지 또 다른 행운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이거 선생님 앞에서 별말을 다 하는군요."

김종구는 그러나, 조금도 별말을 다 했다는 표정이 아니다. 그의 말은 고해 투의 어조나 자기 변론의 투와는 정반대의 느낌을 준다. 그는 어떤 일이든 다 자신이 개입했고 통합했으며 조종하고 있다는 어투로 말하고 있다. (p.57-58)

 

산간지방을 떠돌며 그는 많은 일을 했다. 지리산 노고단까지의 관광도로도 그가 참여한 공사 중의 하나였고, 댐 공사에도 여러 번 끼어들었다. 세상에 삽질이나 지게질이 필요치 않은 공사는 없었고, 다라서 그에게 일자리를 주지 않는 공사장도 없었다.

원하는 대로 구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직업의 재미라고 그는 말했다. 세끼 밥과 누워 잠잘 자리만 해결되면 어디라도 관계가 없는 것이다. 꼬박꼬박 부어야 할 월부금이나 은행통장 같은 것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연락이 닿을 수 있는 주소나 전화번호 같은 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주민등록등본이나 신원 증명을 요구하는 직장은 애시당초 흥미도 관심도 없었다. 그는 자신을 얽어매려는 어떤 수작도 모두 거부했다. 그는 말했다.

"그렇게 살아서 벌써 내일모레 오십인데 새삼스레 무얼 바꾸겠어요. 나는 이대로가 편해요. 난 계속 김종구로 지지고 볶고 할 테니까."

그 말 끝에 그는 갑자기 눈을 빛내며 내게 말했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 어디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아요. 왜냐구요? 거기서 내가 이 년 가까이 살았거든요. 말씀드렸지요? 어디라도 일 년 이상은 머무르지 않는다고. 근데 그곳은 도저히 일 년 갖고는 모자랐어요. 그래서 이 년이나 썩었어요. 뭐, 짐작하시는 것 같은데, 그래요. 거기에 또 내 갈빗대가 하나 있었다구요. 그런데 문제가 있었지요. 그 여자는 자기가 내 갈빗대로 만들어진 여자라는 것을 도저히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자기의 갈빗대는 도시에서 넥타이 매고 커피나 훌쩍거리며 종이를 만지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여자가 그렇게 나오면 할 수 없는 거예요. 그걸 패겠어요, 업고 야반도주를 하겠어요? 난 절대, 그런 짓은 안 해요. 그런데 하루는 한밤중에 그 여자가 내 숙소에 찾아와 훌쩍훌쩍 구슬피 우는 게 아니겠어요?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이건 참, 기가 막혀서. 지금 저 윗마을에 자기가 좋아하는 총각이 와 있는데 제발 좀 어떻게 해달라는 거예요. 서울로 유학 가서 거기에 유망한 직장까지 잡아놓은 남잔데 한때는 그치도 자길 좋아하는 눈치를 보였다는 거죠. 그런데 이 친구가 서울 처녀 하나를 데리고 와서 부모님께 결혼할 사이라고 그런다는 겁니다. 시골에 형제가 득시글거리고 장남인데 부모님도 모셔야 할 형편에 그 여우 같은 서울 처녀하고 결혼하면 집안이 편할 리가 있겠냐고 여자가 울면서 쫑알거리데요. 그래서 내가 그랬죠. 알았다. 그 친구가 너하고 결혼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마. 여기서 기다려라, 이랬답니다"

그런 뒤 김종구는 밤중에 풀숲의 이슬을 헤치고 윗마을로 올라갔다. 그리고 친구라고 속인 뒤 남자를 마을 뒷산으로 불러내 늘씬하게 두들겨 패줬다. 나는 그 처녀의 사촌오빠 되는 사람인데 알고 보니 너, 내 동생 책임져야겠더라, 안 그러면 오늘 밤 내 손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줄 알아라. 그렇게 겁을 줬다. 그런데 남자는 몇 대 맞지도 않고 쓰러져서 정신을 잃어버렸다. 아무리 흔들어도 정신을 못 차리길래 김종구는 그 길로 자기 숙소에도 들르지 않고 그 마을 떠났다.

얼마 후에 그 친구가 죽었으면 죄값이나 받아야겠다고 어슬렁어슬렁 그 마을로 돌아가 보니 한 집에 잔치가 벌어져 있는데, 알고 본즉 자기가 좋아했던 그 처녀와 죽은 줄 알았던 남자가 그날 결혼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또 뒤도 안 돌아보고 그 마을을 빠져나왔죠. 그런데 한번 물어나 봅시다. 그거, 내가 잘한 일이오, 못한 일이오? 암만 해도 그것을 잘 모르겠단 말이오."

그게 잘한 일인지 못한 일인지 내가 어떻게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꿈에서조차 삶의 다른 방식을 생각해 보지 못하는 나 같은 위인한테 그 물음에 대한 답이 나올 수 있을 것인가. (p.59-61)

 

그 사이 황녀는 잽싸게 술상을 들여왔다. 따로 차리고 말 것도 없이 먹던 반찬 몇 가지에 됫병으로 파는 막소주가 병째로 따라 들어왔다.

"평생 내가 변함없이 간직하고 있는 신조가 하나 있다면 그게 뭔 줄 아세요? 머릿속에 먹물 담아놓고 주위에 검정물 뿌려대는 인간하고는 길게 상종하지 말 것. 바로 이겁니다. 잠깐은 되지요. 하지만 길게는 안돼요. 그런 부류들은 저밖에 모르거나 필경 주위에 불행만 옮기거든요. 이거 선생님 듣기에 섭섭해도 할 수 없어요.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다는 것은 욕이에요. 그건 모두 쓰레기거든요. 머리는 즉시 청소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자 알맹이를 발견했을 때 얼른 쓸어 담지요. 곰팡이가 가득 차기 시작하면 정말 끝장이에요."

그의 격렬한 말에 나는 웃었지만, 그러나 속으로는 그의 말이 옳다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김종구 앞에서 그 말이 옳다는 것을 인정할 용기가 내게는 없었다. 나는 곰팡이 핀 머리를 가리고 싶었다.

"난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때려쳤어요. 도대체 뭘 배우라는 건지 답답하기만 하더라구요. 보세요. 그 따위 자잘한 셈본이나 배우고 현미경으로 눈에 뵈지도 않는 벌레나 쳐다본다고 세상 사는 이치를 터득할 수 있겠어요? 아주 꽉꽉 막혔어요. 어떻게 해볼 수도 없을 만큼. 이러다 영 바보 되겠다 싶어서 그 당장 집어쳤지요. 그 뒤로 충고하기 좋아하는 사람마다 그러는 거예요. 검정고시라니, 뭐 그런 것도 있다구요. 젠장, 새삼스럽게 허접 쓰레기를 채워 죽도 밥도 안 되면 그 사람들이 내 인생 책임집니까. 지금 생각해도 아주 잘한 짓이에요. 넓은 세상 어디든 뛰어들어 북대기 치다 보면 막힌 머리도 확 뚫리게 돼 있다구요. 그게 진짜예요. 살아 있는 거지요. 팔십을 산다 해도 못해 보고 죽을 일이 수두룩한데 끝도 안 보이는 그 짓을 왜 하겠어요. 그거, 중독되는 거 아닙니까?"

그의 말은 당당하다. 조금도 야비하지 않다. 음해의 의도도 없고 방약무인한 자의 무례나 열등감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그의 얼굴을 보면 그걸 알 수 있다. 그의 말은, 그가 마시는 소주가 그렇듯 맑다. (p.62-63)

 

나는 이제까지 나와 연루된 모든 것들, 한마디로 뭉뚱그려 놓은 도덕과 긴 역사의 문화라고 하는 것들이 이들 앞에서 얼마나 하찮게 무너지는가를 절감했다. 내가 영향받고 그에 의해 단련되던 것들이 사실은 아주 작은 세계에 불과하다는 것, 나는 평생 이 작은 세계 밖으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은 절망이었다. (p.64)

 

김종구는 비단 주머니에서 조심스럽게 단소를 꺼내며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고는 여전히 정중하고도 엄숙한 자세로 황녀에게 그것을 바쳤다. 반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황녀는 오만하게 단소를 받았다. 단소를 진상한 남자는 뒷걸음으로 물러나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죽여주지. 암, 죽여줄 거야." 하고 말했다.

나는 김종구의 신호를 알아들었다. 지금부터 허튼 잣대를 대지 말 것, 무조건 죽어줄 것. 나는 입속에 몇 개의 칭송 어구들을 굴리며 소리가 울리기를 기다렸다.

황녀는 구멍에 입술을 대고 숨을 불어넣으며 한참 동안 소리를 골랐다. 저 여자가 아까 맨발로 동네 고샅을 헤매며 비명 같은 웃음을 흩뿌리던 여자였던가. 심심하면 남자가 일하는 곳에 찾아와 돌멩이를 던지며 같이 놀자고 유혹하던 여자였던가. 나는 황녀의 단아한 자세와 지그시 감은 눈의 위엄에 미리 마음을 빼앗겼다.

피리가 남자의 성대를 닮았다면, 단소는 여자의 가늘고 맑은 음성에 더 가깝다. 그래서 때로는 요요하고 때론 청청하다. 단소 연주에 대해 내가 알고 있거나 느낀 바가 있다면 이것이 전부였다. (p.65-66)

 

닐닐리 삘릴리, 나니르 나니르. 음공을 누르는 황녀의 손가락이 점차 춤을 추듯 빨라지고 그런가 하면 어느 순간 벼랑에 밀리듯 소리가 천길 나락으로 툭 떨어지고 만다. 마치 격랑에 휩쓸리는 듯하다가 때로 깊은 바닥으로 잠수하는 그 거침없는 소리들. 나는 듯하다가 때로 깊은 바닥으로 잠수하는 그 거침없는 소리들, 나는 김종구가 이 곡에 빠져버리는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도 그렇다. 감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도록 그는 소리에 온몸을 싣고 소리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는 지금 바다에 있다. 바다는 김종구에 있다. 밀리고 밀려서 부서지는 바다, 퍼내도 퍼내도 줄어들지 않는 바다, 멍들고 멍들어서 퍼렇기만 한 바다.

닐리리 삘릴리, 나니르르 리르르르....

마침내 긴 가락이 끝났을 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단소에서 고요하게 입술을 떼던 황녀의 손짓이 나를 그렇게 하도록 했다. 여자는 대나무 악기로 막았던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아무 소리도 하지 말라는 주의를 주었다.

그제야 나는 남자의 볼에 흐르는 한 줄기 눈물을 보았다. 눈물은 볼을 타고 흘러 이미 희끗희끗 흰머리가 터전을 이루고 있는 귀밑머리를 촉촉이 적시고 있었다.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나는 아득했다. 지금 김종구가 소리에 실려 떠내려와 배를 댄 기슭은 어디일까. 아무도, 지금, 바로 이 순간,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단소를 내려놓고 황녀는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남자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나는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밤, 나는 몇 번인가 내 손으로 내 잔을 채웠다. 그리고 우리는 가끔씩 서로의 비어 있는 술잔을 채워주기도 했다. (p.67-68)

 

모든 소리와 횃불은 새벽이 되어서야 중단되었다. 마침내 배들이 돌아온 것이었다. 나는 징을 내던지고 지친 걸음으로 돌아가는 김종구의 모습을, 되찾은 새벽의 정적 속에서 떠올렸다. 그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다음 날 아침, 간밤의 지독한 안개를 화제 삼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 누구는 횃불에 손을 데었고, 누구는 완전히 목이 잠겨 숨도 못 쉴 지경이라는 말들은 갖자기로 들려 왔지만 마지막까지 울려대던 김종구의 징 소리에 관한 언급은 스치는 말로도 나오지 않았다. 마치 그를 본 사람이 나 혼자이기나 한 것처럼. 그 영혼을 울리는 징 소리는 아예 있지도 않았다는 듯이.

그토록이나 집요하고 그토록이나 땅과 바다를 울리던 그 징 소리를 정말 아무도 듣지 못했던 것이었을까. 한 켠에 우뚝 서서 새벽까지 쉬임 없이 징을 울려대던 그의 모습을 정말 누구도 보지 못했던 것이었을까.

길 잃은 배는 돌아왔지만, 길 잃은 배를 이끌던 김종구와 그의 징 소리는 두터운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만 이 일에 대해 나는 오랫동안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대체 그는 어디로 숨어버렸을까. 아니, 사람들은 대관절 그를 어디에 숨겼을까....(p.73)

 

차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들어간 다방에서 나는 좌석을 구하지 못해 입석표를 끊은 몇 사람을 보았었다. 그들은 말하자면 나보다 일 초 늦게 매표구에 도착한 사람들이었다. 주말도 아니고 평일에, 그것도 일부러 한 시간 전에 나왔는데도 좌석이 없다면 말이 되냐고 다방 아가씨를 상대로 불평을 털어놓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슬그머니 내 좌석표를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히 내 것에는 좌석 번호가 또렷이 찍혀 있었다. 그들과 나는 거의 엇비슷하게 다방에 들어왔는데도 그랬다. 매표구에서의 찰나가 그렇게 매정한 선을 그어버렸음을 깨달은 뒤에도 나는 행운보다 기묘한 두려움을 느꼈었다.

언제 어느  순간 내 앞에 선이 그어져 버릴지 아무도 모른다. 우연히 행운이 왔다면 불행도 똑같은 모습으로 올 것이다. 우리는 선택할 수 없고, 마찬가지로 우리는 거부할 수도 없다. 어떤 것도 불확실하며, 어떤 것도 전혀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이다. 기대하지 않은 행운으로 마지막 좌석을 차지하고 나서, 나는 어느새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 나를 발견했다. 나는 아직, 스스로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칼릴 지브란이 떠올랐다. 내가 생각하는 지브란은 1931년 4월에 영원히 잠든, 시인이고 화가였으며 철학자이기도 했던 칼릴 지브란이 아니다. 그는 아직 살아 있고, 앞으로도 살날이 많은 사람이다. (p.77-78)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예언자 - 칼릴 지브란 (유정란 옮김, 더클래식)

.....................................................................................

 

지브란으로 불리던 그는 당연히 수재들이 모인다는 서울의 명문 국립대학에 들어갔다. 내가 그를 다시 만난 것은 이십 년의 세월이 지난 뒤의 일이었지만 그동안에도 이 천재의 행적에 대해 전혀 몰랐던 바는 아니었다. 나는 주로 신문에서 그의 이름을 보았다.

신문은 그가 어떻게 온몸을 던져 역사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또 신문은 그가 왜 수배되었으며, 어떤 불온 조직의 괴수인가도 소상하게 일러주었다.

칠십 년대와 팔십 년대에 걸쳐 얼마나 많은 순결한 정신들이 국가 권력에 유린당했는지, 그것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그의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굳이 지브란이라고 부른다.

그와 함께 학생 운동을 시작해서 지금은 두루뭉술하게 물러앉은 한 친구는 대학에서도 그는 천재였다고 전한다. 사태를 파악하는 분별력이 명확하고 빨랐으며, 지도력이 뛰어난 그는 늘 운동의 핵심에 있었다.

대학 제적 후 그와 함께 세상의 변혁을 꿈꾸며 일했던 한 의사가 그를 가슴이 따뜻했던 운동가라고 회고하는 글을 읽은 적도 있다. 그는 팔십 년대의 종반까지 재야 조직에 몸담고 있었지만 한 번도 과격한 운동권이란 평을 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긴장과 억압의 시대에 누구보다 과격하게 자신을 던져 일해 온 운동가였다.

지금에 와서 나는 그에 대해 누누이 설명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의 진실한 헌신은 개혁의 의지가 급격히 쇠퇴한 90년에 들어서도 전혀 폄하되지 않은 채 순결한 운동의 전범으로 남아 있으니까.

만약 그를 다시 만나지 않았다면, 한 천재가 보여준 이 격렬한 생이야말로 불행한 시대를 만난 위대한 숙명이 아니었겠는가 정도로 그를 이해하고 말았을 것이다. 운동에 있어서도 그는 분명 범인과는 달랐으니까.

그가 다시 지브란의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난 것은 지난겨울이었다. 나는 그때 무슨 일로 한 화가를 만나고 있었다. 강남 어디에 있는 화가의 작업실에서였다. 화가와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도중에 그가 들어왔다.

나는 그때 끝내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도 갈래머리 여고생 시절의 나를 기억할 리 만무했다. 격식도 없이 불쑥 들어온 이 방문객은 화가가 권하지도 않는데 의자 한쪽에 주저앉아 조용히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집주인인 화가 또는 이 방문객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서로가 서로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투로 행동했다. 아마도 불청객이었을 그 남자는 거기에 있는 동안 두 번 입을 열었다. 두 번 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을 똑같은 말이었다.

"청와대에서 왜 날 안 부르지?"

청와대? 아무 데서나 들을 수 있는 말은 아니었지만, 방문객은 옷차림도 그런대로 깔끔했고 나직이 내뱉는 청와대 운운하는 말도 극히 고요한 어투여서 나는 그가 내가 모르는 다른 청와대를 말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 두 번의 나직한 중얼거림을 남기고 방문객은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화가의 작업실을 나가버렸다. 방문객이 사라진 사실을 화가가 모르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 그에게 손님이 가버렸음을 일깨워 주었다.

"손님? 아, 그 친구, 괜찮습니다. 사나흘에 한 번씩 와서 저러다 가니까요. 밥이나 한번 사주려 해도 꼭 자기 있고 싶은 만큼만 있다 가는 친구라서 이젠 나도 신경 안 씁니다. 느닷없는 청와대 소리만 빼면 다른 정신은 멀쩡해서 실은 아까운 폐인입니다. 가만있자, 혹시 모르십니까? 저쪽에선 상당히 유명한 인사인데."

그다음에 나온 것이 그의 이름이었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시름시름 앓는다는 말은 나도 들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었다. 그 뒤에도 민통련이나 전민련 간부 명단에서 나는 그의 이름을 보았었다. 나는 그가 불사신처럼 다시 일어났다는 것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불사신이 아니었다. 화가의 작업실에서 그를 만난 이후 나는 그를 알 만한 사람들한테 그의 소식을 물었다. 사실이었다. 아는 사람들은 다 그의 병을 알고 있었고, 그가 하필이면 청와대를 들먹이고 있다는 것으로 그는 재기 불능이었다.

사람들은 육체의 병에는 너그럽지만 정신의 병은 이유 없이 혐오한다는 것도 나는 알았다. 그들의 이해가 미치는 범위는 한 순결한 천재의 과대망상이 전부였다. 모두 거기서 멈춘다. 더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정신은 비바람에 뒤집히는 종이우산처럼, 그렇게 정반대의 방향으로 뒤집히며 잠재된 무의식을 드러내고 만다는 것이다.

속을 발랑 까 보였으므로, 그건 수치다, 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런데, 나는, 지브란의 그 한 말씀이, 청와대에서 왜 날 안 부르지? 하는 그것이, 어떤 은유 혹은 어떤 기호처럼만 여겨졌다. 그날 화가의 작업실에서 아무 선입견 없이 그냥 들었을 때도 나는 그것을 하나의 암호로 이해했다. 그 뒤로도 오랫동안, 나는 그 암호를 입 안에 굴려보고 뒤집어 보고 했지만 그것이 수치스런 뜻을 담은 기호거나 암호는 아니라는 것만 확인했을 뿐 풀어내지는 못했다.

지브란의 암호는 일종의 꽃말 같은 것이었다. 세상에 불경스럽고 추악한 꽃말을 담은 꽃은 없다. 꽃말을 모르는 꽃이 있다 해도 우리는 그것에서 당연히 사랑이니, 그리움, 기다림 따위를 유추하지 않던가.

"청와대에서 왜 날 안 부르지..."

지브란은 무슨 말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나는 왜 그 말에 무언가 숨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지브란에게서 예언자의 잠언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그의 잠언이 난해하다는 것은 시대가 난해하다는 뜻이다. 그럴수록 나는 점점, 간절히, 그 꽃말이 알고 싶다.

그 꽃말을 알고 싶다. 한 천재가 온 힘을 다해 퍼뜨리고 다니는 꽃말의 비밀을 알고 싶다. 그걸 알 수 있다면 내가 빠져 있는 이 미로에서 헤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미로는 사실 처음부터 미로였다. 그러나 전에는 출구를 찾을 수 있으리라고 믿었었다. 그 믿음은, 지금 생각하면, 작가에게 던져진 구명줄이었다. 차라리 안락의자였다. 거기에 편안히 (역시 지금 생각하면 편안히, 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앉아 밤이 새도록 쓰고 또 쓰면 언젠가는 출구에 닿는다는 가냘픈 희망이 있었다.

상처가 없이 어떻게 사람들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인지, 소설은 또한 상처 자국의 조명 없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의자에 앉기만 하면 고인 물이 넘쳐나듯, 먼동이 트는 줄도 모르고 열정을 다해 써나갈 수 있었던 그때가 이토록이나 아득하게 느껴지다니, 믿을 수가 없다.

지금 내 앞에 주어진 미로는 너무 교활하다. 지식과 열정을 지탱해주던 하나의 대안이 무너지는 것을 신호로 나의 출구도 봉쇄되었다. 나는 길 찾기를 멈추었다. 길 찾기를 멈추었으므로, 나는 내 소설의 새로운 주인공을 찾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작은 꿈, 작은 눈물, 그런 것들로 무찌르기에 이 세계는 너무나 거대하고 음흉하다. 문학은 곧 폐기 처분될 위기에 몰린 듯하다는 글쟁이들의 엄살은 결코 엄살이 아닌 현실이 되어버리고 진실이나 희망이란 말은 흙더미에 깔려 안장되었다.

그 순간 나의 출구도 파묻혔다. 나는 두 팔을 묶였다. 지브란 같은 이의 위대한 헌신조차 낭비되고 말았는지 거기에 생각이 이르면 두 다리까지 꽁꽁 묶인 절박감을 느낀다. 기립 박수는 아니더라도 그를 숨게 만드는 세상은 믿을 수 없다. 그토록이나 상처가 많던 시절에도 그들은 우리의 숨통이었고, 짐승으로의 추락을 막는 유일한 대안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브란이 무슨 꽃말을 간직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 (p.78-82)

 

나는 이제 나를 포기했다. 나는 과거의 사람이라는 것을 수긍한다. 그래도 미래가 이토록 중요한 것은 자식이 있기 때문이다. 자식은 희망의 다모물이다. 희망이 경매 처분되는 것을 한사코 막아야 하는 것은 자식을 맡겨놓은 인간의 업보다.

내가 <희망>이란 제목의 장편을 펴냈을 때 사람들은 제목의 미미함을 지적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희망이, 자식이, 그런 것이 미미하다면 대체 무엇이 강렬한 것인가. 끓기도 전에 퍼져 버려 설익은 밥처럼, 이해되기도 전에 진실은 쓰레기통으로 처박힌다. (p.83)

(같이 읽으면 좋은 책)

희망 - 양귀자 (쓰다, 개정판)

<비교>

희망 - 앙드레 말로 (김웅권 옮김, 문학동네)

.......................................................................

 

이야기는 수술에 관한 여러 불가사의를 주제로 한다. 흰 가운을 입고 수술실에 들어가 환부를 열면 의사로서 오는 직감이 있다. 이 수술은 성공이다, 혹은 무의미하다. 직감에 관계없이 어떤 수술이든 최선을 다하고 나서 운명에 맡기는 것이 의사의 진심이지만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으면 수술 마지막의 환부 봉합에 이르기까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성이 들어간다. 회복 후의 삶을 생각해서 촘촘히, 가능한 자국이 작게 남도록, 치밀하게 바늘을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환자를 영안일에서 만날 때 그는 절망한다고 했다. 예쁘게 꿰맨 수술 자리를 보면 더욱 할 말이 없어진다고 했다.

반대로, 도저히 살아날 것 같지 않은, 사망 진단 직전의 형식상의 수술을 받은 환자가 며칠 후 눈부시게 회복해서 침상에 앉아 웃고 있을 때도 그는 말을 잃는다고 했다. 거의 시체나 다름없는 환자의 환부에 무슨 흥으로 봉합 바느질이 세심했겠는가.

삐뚤삐뚤 듬성듬성 지나가버린, 자신이 남긴 환부의 실 자국을 보면 등에 식은땀이 난다고 했다. 드러나지 않는 이 힘, 그러나 분명히 작용하고 있는 이 힘이 보여주고자 하는 뜻은 무엇인가. 그런 날에는 산에 가지 않고도 도저히 배길 수 없다는 것이 그의 고백이었다.

촘촘한, 혹은 삐뚤삐뚤 봉합 바느질의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 서울을 향하는 기차 안에서 떠올려도 큰 떨림을 안겨준다. 이 떨림을 나는 설명할 수 없다. 설명되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뚫고 나가라고만 말한다. 단지 그렇게만 말한다.

어떻게?

미로에서 출구를 잃은 나, 아침저녁으로 먹히고 아침저녁으로 우는 시인의 뜸부기, 안개 속으로 사라진 김종구, 자신의 꽃말을 암호로 만든 지브란, 그리고 의사의 바느질, 설명되어지지 않는 이 모든 것들을 어떻게 뚫으라는 것인가.

어디서부터 어디를. 나는 짓밟힌 귀신사에서 본, 모래 더미에 파묻힌 이름 모를 꽃을 생각한다. 그 숨어버린 꽃 속으로 삼투해 들어간다...

기차는 자꾸 달린다. 아직 부옇기만 하지만, 서울에 닿으면 그래도 나는 기계 앞에 앉기는 할 것이다. 나는 아마도 한 거인을 그리려고 덤빌지도 모르겠다. 와해된 세계의 폐허 어딘가에 숨어 사는 거인, 결코 세상에 출몰하지는 않는 거인의 초상, 그리고 숨어 있는 꽃들의 꽃말 찾기.

그러다 보면 언전가는 이 세상살이가 돌아가는 이치의 끝자락이나마 만져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영원히 설명되어지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을 나는 안다. 하지만 그것은 거인의 초상을 그린 후, 그때 생각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p.85-86)

 

<심사평 - 이어령>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 역시 상당한 실험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이인칭 시점의 서술이라는 말로 설명된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서사문학의 정통적 시점은 삼인칭 아니면 일인칭이다. 그런데 신경숙은 이를 변용하여 이인칭적 시점과 일인칭적 시점을 적절히 혼용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이 소설이 편지형식으로 기술되어 있다는 것은 이를 잘 말해준다. 그러한 결과는 또한 이 작품이 시적 특성을 드러내는 것과 무관치 않다.

<풍금이 있던 자리>의 첫 페이지를 읽은 독자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적인 분위기로 젖어드는 것은 아마도 세 가지 이유에 있을 것이다. 첫째는 이 작가의 서정적이고도 아름다운 문체, 둘째는 여성적인 내용 그리고 셋째는 자기 고백 형식의 편지체 기술 등이다. 서정시는 일반적으로 일인칭 자기 고백체로 씌어지기 때문이다.

<풍금이 있던 자리>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소설이다. 어찌 보면 아름답다는 이유로 스케일이 작은 작품이 아니냐 하는 의문을 갖게도 한다. 그러나 모든 훌륭한 소설은 사소한 삶의 이야기에서 깊은 생각의 물을 길어내는 셈이 아닌가?

양귀자의 <숨은 꽃>은 잘 짜여진 구성에다 묘사에 있어서도 사실성 혹은 핍진감이 뛰어난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내적인 자유 연상과 리얼리즘의 기법을 적절히 조화시켜 독자로 하여금 환상과 현실, 이념과 실제 사이에 상상의 공간을 폭넓게 확장시켜 준다. 서울에서 귀신사에 이르기까지의 여로는 사실상 간단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이 전체 내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그만큼 그의 디테일이 치밀하며 동시에 그이 자유 연상의 분방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떻든 <숨은 꽃>은 <풍금이 있던 자리>가 지닌 미학성과 <고드를 기다리며>가 지닌 철학성을 함께 갖춘 작품이라 생각된다.

주인공의 말대로 <숨은 꽃>은 '미로'로 상징되는 우리 시대 삶에서 잃어버린 길을 어떻게 찾느냐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의 여로는 바로 그러한 길 찾기의 한 고행인 것이다.

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바로 자신에게 있다. 길가의 '숨은 꽃'이 멀리 있지 않고 바로 우리들 곁에 있는 것처럼. (p.421-423)

(같이 읽으면 좋은 책)

풍금이 있던 자리 - 신경숙 (문학과지성사)

.........................................................................

 

<작품해설 - 유황불(열림원, p.329-335)>

1. 시인이 사다준 앵무새 인형과 시골에 내려가서 새롭게 시작한 뜸부기 사업의 의미

귀신사로 가는 도중 주인공은 자신이 알던 시인에 대해 회상하게 됩니다. 시인은 본래 이 세상의 아름다운 진실에 대해 노래하는 사람입니다. 이 시긴이 딸에게 사다준 앵무새 인형은 테이프를 내장하고 있어 사람들이 녹음시킨 말을 그대로 재생할 수 있게 되어 있지만, 번번이 '사랑해'라는 말을 '날랄해, 날리레'로 재생시킵니다. '난 너를 사랑해'라는 말을 '얼레리 꼴레리'로 조롱하는 소리로 바꿔서 들려주는 고장 난 앵무새 인형은 급속도로 발달된 기계문명 속에서 가장 아름다워야 할 진실까지 조롱당하는 현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알던 시인은 그러한 현실 앞에 절망하고 도시를 탈출하여 시골에 정착해서 뜸부기를 기르게 됩니다. 뜸부기는 '뜸북뜸북' 노래하는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러나 시인이 뜸부기를 기르는 진짜 이유는 오염되지 않는 자연의 노래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식용으로 팔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시인과 관련된 회상은 상업성이 판치는 세상에서 본연의 가치를 지켜야 하는 시인마저 세상과 타협해 버렸고, 아름다운 글마저 힘없이 타락해 버렸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2. 주인공이 도착한 귀신사는 온통 파헤쳐져서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고 있다.

1990년대는 조용한 시골의 절마저 변화시켜 놓습니다. 과거의 기억 속에 귀신사는 화려한 외양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던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조용하게 대화할 수 있는 단아한 절이었습니다. 현란한 색채로 위장하고 사람의 눈을 혼란시키고 있는 세상과 대비된 조용한 절, 드러나는 것은 볼품없어도 한 사람의 지친 영혼을 위로하고 마음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귀신사마저 1990년대에 맞춰 요란하고 화려한 외양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한창 보수공사 중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황폐하게 파헤쳐진 절에서 주인공은 어떤 위로와 휴식을 느끼지 못한 채 오히려 상업적으로 타락해 가는 초라한 현실을 재확인하며 다시금 절망에 빠져들게 됩니다.

3. 귀신사에서 만난 김종구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김종구는 주인공이 거금도라는 섬에서 교사생활을 할 때 학급 제자였던 숙자의 오빠입니다. 다시 만난 김종구는 막노동을 하고 살아가는 인물로서 현대의 문명과 정반대에 속해 있습니다. 주민등록증과 의료보험도 없이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막일로 살아가지만 누구보다 삶에 대해 진실하고 세속과 위선을 일찌감치 벗어버린 인물입니다.

주인공은 김종구에 관련된 과거의 회상들을 차례로 풀어내며 그가 갖는 원초적인 생명력과 진실함에 대해 말해줍니다. 첫 번째 만남에서 김종구가 주인공을 향해 던진 '사는 일이 가장 먼저란 말이오. 사는 일에 비하면 나머지는 하찮고 하찮은 것이란 말이오.'라는 말에서는 어떤 관념보다도 산다는 것이 가장 우선임을 깨우쳐주며, 아늑하게 노을 지는 바다 위에서 흘러가는 배에 잠들어 있던 김종구의 모습을 통해 자연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금빛 평화를 전해줍니다. 염소 머리를 자르는 모습에서는 실제로는 염소골을 탐내면서 고고한 척 위선적인 모습으로 앉아 있던 사람들에게 경멸을 보낼 줄 아는, 세상의 허위를 간파하고 있는 김종구를 그려냅니다.

이러한 김종구의 삶이 가진 의미는 원초적 삶에 대한 강한 생명력과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건강함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김종구의 삶을 거인적 삶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잣대로는 천한 막노동꾼일 뿐이지만 혼란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대결하며 순수성을 지키고 있는 한 거인의 삶을 보게 된 것입니다.

4. 황녀가 부는 단소 소리

황녀는 김종구의 아내입니다. 황녀는 김종구의 분신과 같은 존재로 가식과 위선이 없이 타고난 본성대로 건강하게 살고 있는 여인입니다. 이러한 황녀가 우연히 그 집을 방문하게 된 주인공에게 들려준 단소 소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황녀의 거침없고 아름다운 단소 소리에 단단한 김종구마저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데 이 부분은 진정한 예술의 감동과 힘을 말해주고 있는 장면입니다. 지친 영혼의 고통을 보듬고 세상 사람들의 고달픔과 억울함을 녹여내면서 진정한 쉼터 역할을 하는 것이 예술임을 깨닫고, 주인공은 자신의 글쓰기 또한 그런 정신에서 출발해야 함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5. 주인공의 친구였던 지브란과 산악인 의사의 삶

지브란은 학창 시절 천재로 불렸던 뛰어난 사람입니다. 진지하고 겸손하며 재능이 뛰어났던 지브란은 대학에 들어가 학생운동을 했고 그 와중에 치른 고문의 후유증으로 정신이상자가 되었습니다. 그 증상으로 '청와대에서 왜 날 안 부르지'라는 말을 되풀이하는데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정신이 이상해진 상황에서도 권력에의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이라고 지브란을 조롱합니다. 주인공은 진실한 과거의 헌신조차 비웃음거리로 전락시키는 이 시대를 거부하며 지브란의 언어를 일종의 암호를 갖고 있는 '꽃말'로 받아들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글쓰기가 이러한 꽃말의 의미를 밝히는 작업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산악인 의사의 '촘촘하고 삐뚤삐둘한 수술 봉합 바느질'의 일화는 세상은 당장 한 치 앞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싦은 설명하기 어려운 불가사의로 가득 차 있는데, 이 설명되지 않는 모든 것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글을 쓰는 작가의 일임을 스스로 자각합니다.

바로 두 사람의 일화를 통해 주인공은 글쓰기의 의미를 비로소 되찾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6. 이야기의 제목인 '숨은 꽃'의 의미

이것은 김종구에 대한 회상과 연관이 됩니다. 안개 속에 길을 잃은 배들을 위해 한밤 내 신들린 듯이 징을 쳐서 헤매고 있던 배들이 무사히 돌아오게 하지만 김종구는 말없이 숨어버림으로써 사람들은 그를 전혀 의식하지 못합니다. 바로 이 회상처럼 거인적 삶을 살고 있는 김종구가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숨어서 보이지 않음과 같이 이 시대의 '희망'도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숨은 꽃은 거인적 삶을 살고 있는 김종구를 가리킴과 동시에 어딘가에 숨어 있는 삶의 희망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양귀자(梁貴子, 1955년 7월 17일 ~ )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1955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고 원광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에 『다시 시작하는 아침』으로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에 등장한 후, 창작집 『귀머거리새』와 『원미동 사람들』을 출간, “단편 문학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는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1990년대 들어서 양귀자는 장편소설에 주력했다. 한때 출판계에 퍼져있던 ‘양귀자 3년 주기설’이 말해주듯 『희망』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천년의 사랑』 『모순』 등을 3년 간격으로 펴내며 동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부상했다. 탁월한 문장력과 놀라울 만큼 정교한 소설적 구성으로 문학성을 담보해 내는 양귀자의 소설적 재능은 단편과 장편을 포함, 가장 잘 읽히는 작가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소설집으로, 『귀머거리새』 『원미동 사람들』 『지구를 색칠하는 페인트공』 『길모퉁이에서 만난 사람』 『슬픔도 힘이 된다』를, 장편소설 『희망』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천년의 사랑』 『모순』을, 산문집 『내 집 창밖에서 누군가 울고 있다』 『삶의 묘약』 『양귀자의 엄마노릇 마흔일곱 가지』 『부엌신』 등이 있으며 장편동화 『누리야 누리야』가 있다. 1987년 『원미동 사람들』로 [유주현문학상]을, 1992년 『숨은 꽃』으로 [이상문학상]을, 1996년 『곰 이야기』로 [현대문학상]을, 1999년 『늪』으로 [21세기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주요 작품>
《귀머거리새》 (1985)
《원미동 사람들》 (1987)
《지구를 색칠하는 페인트공》 (1989)
《희망》 (1990)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1992)
《슬픔도 힘이 된다》 (1993)
《길 모퉁이에서 만난 사람》 (1993)
《천년의 사랑》 (1995)
《엄마노릇 마흔일곱 가지》(1995)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1995)
《모순》 (1998)

 

...............................................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 양귀자 (쓰다)

원미동 사람들 - 양귀자 (쓰다)

희망 - 양귀자 (쓰다)

유황불 - 양귀자 (열림원)

귀머거리새 - 양귀자 (책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