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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 한국 문학/2. 소설

운수 좋은 날 - 현진건 (문학과지성사)

by handaikhan 2023. 3. 17.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34

 

현진건 중단편집 - 운수좋은 날

 

목차


희생화 

빈처 

술 권하는 사회 

유린 

피아노 

할머니의 죽음 

우편국에서 

까막잡기 

그리운 흘긴 눈 

운수 좋은 날

발 

불 

B사감과 러브레터 

사립정신병원장 

고향 

동정 

정조와 약가

신문지와 철창 

서투른 도적 

연애의 청산 

타락자

 

.........................................

현진건 - 운수 좋은 날 (1924년)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이날이야말로 동소문 안에서 인력거꾼 노릇을 하는 김첨지에게는 오래간만에도 닥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 문안에 (거기도 문밖은 아니지만) 들어간답시는 앞집 마마님을 전찻길까지 모셔다 드린 것을 비롯으로 행여나 손님이 있을까 하고 정류장에서 어정어정하며 내리는 사람 하나하나에게 거의 비는 듯한 눈결을 보내고 있다가 마침내 교원인 듯한 양복쟁이를 동광학교까지 태워다 주기로 되었다.

첫번에 삼십 전, 둘째 번에 오십 전 - 아침 댓바람에 그리 흉치 않은 일이었다. 그야말로 재수가 옴 붙어서 근 열흘 동안 돈 구경도 못한 김첨지는 십 전짜리 백동화 서 푼, 또는 다섯 푼이 찰깍하고 손바닥에 떨어질 제 거의 눈물을 흘릴 만큼 기뻤었다. 더구나 이날 이때에 이 팔십 전이란 돈이 그에게 얼마나 유용한지 몰랐다. 컬컬한 목에 모주 한 잔도 적실 수 있거니와 그보다도 앓는 아내에게 설렁탕 한 그릇도 사다 줄 수 있음이다.

그의 아내가 기침으로 쿨룩거리기는 벌써 달포가 넘었다. 조밥도 굶기를 먹다시피 하는 형편이니 물론 약 한 첩 써본 일이 없다. 구태여 쓰려면 못 쓸 바도 아니로되 그는 병이란 놈에게 약을 주어 보내면 재미를 붙여서 자꾸 온다는 자기의 신조에 어디까지 충실하였다. 따라서 의사에게 보인 적이 없으니 무슨 병인지는 알 수 없으되 반듯이 누워가지고 일어나기는 새려 모로도 못 눕는 것을 보면 중증은 중증인 듯. 병이 이토록 심해지기는 열흘 전에 조밥을 먹고 체한 때문이다. 그때도 김첨지는 오래간만에 돈을 얻어서 좁쌀 한 되와 십 전짜리 나무 한 단을 사다 주었더니, 김첨지의 말에 의지하면 그 오라질 년이 천방지축으로 냄비에 대고 끓였다. 마음은 급하고 불길은 달지 않아 채 익지도 않은 것을 그 오라질 년이 숟가락은 고만두고 손으로 움켜서 두 뺨에 주먹덩이 같은 혹이 불거지도록 누가 빼앗을 듯이 처박질하더니만 그날 저녁부터 가슴이 땅긴다, 배가 켕긴다고 눈을 홉뜨고 지랄병을 하였다. 그때 김첨지는 열화와 같이 성을 내며,

"에이 오라질 년, 조랑복은 할 수가 없어, 못 먹어 병, 먹어서 병! 어쩌란 말이야. 왜 눈을 바루 뜨지 못해!"

하고 김첨지는 앓는 이의 뱜을 한 번 후려갈겼다. 홉뜬 눈은 조금 바루어졌건만 이슬이 맺히었다. 김첨지의 눈시울도 뜨끈뜨근한듯 하였다.

이 환자가 그러고도 먹는 데는 물리지 않았다. 사흘 전부터 설렁탕 국물이 마시고 싶다고 남편을 졸랐다.

"이런 오라질 년! 조밥도 못 먹는 년이 설렁탕은, 또 처먹고 지랄병을 하게."

라고 야단을 쳐보았건만 못 사주는 마음이 시원치는 않았다.

인제 설렁탕을 사줄 수도 있다. 앓는 어미 곁에서 배고파 보채는 개똥이 (세 살먹이)에게 죽을 사줄 수도 있다 - 팔십 전을 손에 쥔 김첨지의 마음은 푼푼하였다.

그러나 그의 행운은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땀과 빗물이 섞여 흐르는 목덜미를 기름 주머니가 다 된 왜목 수건으로 닦으며 그 학교 문을 돌아 나올 때였다. 뒤에서 '인력거!'하고 부르는 소리가 난다. 자기를 불러 멈춘 사람이 그 학교 학생인 줄 김첨지는 한 번 보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 학생은 다짜고짜로,

"남대문 정거장까지 얼마요?"

라고 물었다. 아마도 그 학교 기숙사에 있는 이로 동기방학을 이용하여 귀향하려 함이리라. 오늘 가기로 작정은 하였건만 비는 오고 짐은 있고 해서 어찌 할 줄 모르다가 마침 김첨지를 보고 뛰어나왔음이리라. 그렇지 않으면 왜 구두를 채 신지도 못해서 질질 끌고 비록 고구라 양복일망정 노박이로 비를 맞으며 김첨지를 뒤쫓아나왔으랴.

"남대문 정거장까지 말씀입니까?"

하고 김첨지는 잠깐 주저하였다. 그는 이 우중에 우장도 없이 그 먼 곳을 철벅거리고 가기가 싫었음일까? 처음 것 둘째 것으로 그만 만족하였음일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이상하게도 꼬리를 맞물고 덤비는 이 행운 앞에 조금 겁이 났음이다. 그러고 집을 나올 제 아내의 부탁이 마음이 켕기었다 - 앞집 마마한테 부르러 왔을 제 병인은 그 뼈만 남은 얼굴에 유일의 생물 같은, 유달리 크고 움푹한 눈에 애걸하는 빛을 띠며,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제발 덕분에 집에 붙어 있어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라고 모깃소리같이 중얼거리고 숨을 거르렁거르렁하였다. 그때에 김첨지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압다, 젠장맞을 년. 별 빌어먹을 소리를 다 하네. 맞붙들고 앉았으면 누가 먹여살릴 줄 알아."

하고 훌쩍 뛰어나오려니까 환자는 붙잡을 듯이 팔을 내저으며,

"나가지 말라도 그래. 그러면 일찍이 들어와요."

하고 목메인 소리가 뒤를 따랐다.

정거장까지 가잔 말을 들은 순간에 경련적으로 떠는 손, 유달리 큼직한 눈, 울 듯한 아내의 얼굴이 김첨지의 눈앞에 어른어른하였다. (p.143-146)

 

"인력거 타시랍시오?"

한동안 값으로 승강이를 하다가 육십 전에 인사동까지 태워다 주기로 하였다. 인력거가 무거워지며 그의 몸은 이상하게도 가벼워졌다. 그러고 또 인력거가 가벼워지니 몸은 다시금 무거워졌건만 이번에는 마음조차 초조해온다. 집의 광경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려 인제 요행을 바랄 여유도 없었다. 나뭇등걸이나 무엇 같고 제 것 같지도 않은 다리를 연해 꾸짖으며 갈팡질팡 뛰는 수밖에 없었다.

'저놈의 인력거꾼이 저렇게 술이 취해가지고 이 진 땅에 어찌가노?'

라고 길 가는 사람이 걱정을 하리만큼 그의 걸음은 황급하였다. 흐리고 비 오는 하늘은 어둠침침하게 벌써 황혼에 가까운 듯하다. 창경원 앞까지 다다라서야 그는 턱에 닿은 숨을 돌리고 걸을도 늦추잡았다. 한 걸음 두 걸음 집이 가까워갈수록 그의 마음조차 괴상하게 누그러웠다. 그런데 그 누그러움은 안심에서 오는게 아니요 자기를 덮친 무서운 불행을 빈틈없이 알게 될 때가 박두한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그는 불행에 다닥치기 전 시간을 얼마쯤이라도 늘이려고 버르적거렸다. 기적에 가까운 벌이를 하였다는 기쁨을 할 수 있으면 오래 지니고 싶었다. 그는 두리번두리번 사면을 살피었다. 그 모양은 마치 자기 집 - 곧 불행을 향하고 달려가는 제 다리를 제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가 없으니 누구든지 나를 좀 잡아다고, 구해다고 하는 듯하였다. (p.150-151)

 

선술집은 훈훈하고 뜻뜻하였다. 추어탕을 끓이는 솥뚜껑을 열적마다 뭉게뭉게 떠오르는 흰 김, 석쇠에서 삐지짓삐지짓 구워지는 너비아니, 굴이며 제육이며 간이며 콩팥이며 북어며 빈대떡.....이 너저분하게 늘어놓인 안주 탁자. 김첨지는 갑자기 속이 쓰려서 견딜 수 없었다. 마음대로 할 양이면 거기 있는 모든 먹음먹이를 모조리깡그리 집어삼켜도 시원치 않았다. 하되 배고픈 이는 위선 분량 많은 빈대떡 두 개를 쪼이기로 하고 추어탕을 한 그릇 청하였다. 주린 창자는 음식 맛을 보더니 더욱더욱 비어지며 자꾸자꾸 들이라 들이라 하였다. 셋째 그릇을 받아들었을 제 덥히던 막걸리 곱빼기 두 잔이 데워졌다. 치삼이와 같이 마시자 원원이 비었던 속이라 찌르르 하고 창자에 퍼지며 얼굴이 화끈하였다. 눌러 곱빼기 한 잔을 또 마셨다.

김첨지의 눈은 벌써 개개풀리기 시작하였다. 석쇠에 얹힌 떡 두 개를 숭덩숭덩 썰어서 볼을 불룩거리며 또 곱빼기 두 잔을 부어라 하였다.

치삼은 의아한 듯이 김첨지를 보며,

"여보게, 또 붓다니, 벌써 우리 넉 잔씩 먹었네. 돈이 사십 전일세."

라고 주의시켰다.

"아따 이놈아, 사십 전이 그리 끔찍하냐? 오늘 내가 돈을 막 벌었어. 참 오늘 운수가 좋았느니."

"그래 얼마를 벌었단 말인가?"

"삼십 원을 벌었어. 삼십 원을! 이런 젠장맞을, 술을 왜 안 부어?.......괜찮다 괜찮아. 막 먹어도 상관이 없어. 오늘 돈 산더미 같이 벌었는데."

"어, 이 사람 취했군, 고만두세."

"이놈아, 그걸 먹고 취할 내냐? 어서 더 먹어."

하고는 치삼의 귀를 잡아치며 취한 이는 부르짖었다. 그리고 술을 붓는 열오륙 세 됨 직한 중대가리에게로 달려들며,

"이놈, 오라질 놈, 왜 술을 붓지 않어?"

라고 야단을 쳤다. 중대가리는 희희 웃고 치삼을 보며 문의하는 듯이 눈짓을 하였다. 주정꾼이 이 눈치를 알아보고 화를 버럭 내며, 

"네미를 붙을 이 오라질 놈들 같으니. 이놈, 내가 돈이 없을 줄 알고."

하자마자 허리춤을 훔칫훔칫하더니 일 원짜리 한 장을 꺼내어 중대가리 앞에 펄쩍 집어던졌다. 그 사품에 몇 푼 은전이 잘그랑하며 떨어진다.

"여보게 돈 떨어졌네. 왜 돈을 막 끼얹나?"

이런 말을 하며 치삼은 일변 돈을 줍는다. 김첨지는 취한 중에도 돈의 거처를 살피려는 듯이 눈을 크게 떠서 땅을 내려보다가 불시에 제 하는 짓이 너무 더럽다는 듯이 고개를 소스라치자 더욱 성을 내며

"봐라 봐! 이 더러운 놈들아! 내가 돈이 없나, 다리 뼉다구를 꺾어놓을 놈들 같으니."

하고 치삼의 주워주는 돈을 받아,

"이 원수엣 돈! 이 육시를 할 돈!"

하면서 팔매질을 한다. 벽에 맞아 떨어진 돈은 다시 술 끓이는 양푼에 떨어지며 정당한 매를 맞는다는 듯이 쨍 하고 울었다.

곱빼기 두 잔은 또 부어질 겨를도 없이 말려가고 말았다. 김첨지는 입술과 수염에 붙은 술을 빨아들이고 나서 매우 만족한 듯이 그 솔잎 송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또 부어, 또 부어."

라고 외쳤다.

또 한 잔 먹고 나서 김첨지는 치삼의 어깨를 치며 문득 깔깔 웃는다. 그 웃음소리가 어떻게 컸던지 술집에 있는 이의 눈은 모두 김첨지에게도 몰리었다. 웃는 이는 더욱 웃으며,

"여보게 치삼이. 내 우스운 이야기 하나 할까? 오늘 손을 태우고 정거장에 가지 않았겠나

"그래서?"

"갔다가 그저 오기가 안됐데그려. 그래 전차 정류장에서 어름어름하며 손님 하나를 태울 궁리를 하지 않았나? 거기 마침 마마님이신지 여학생님이신지 (요새야 어데 논다니와 아가씨를 구별할 수 있던가) 망토를 잡수시고 비를 맞고 서 있겠지. 슬근슬근 가까이 가서 인력거 타시랍시오 하고 손가방을 받으려니까 내 손을 탁 뿌리치고, 빽 돌아서더만 '왜 남을 이렇게 귀찮게 굴어!' 그 소리야말로 꾀꼬리지, 허허."

김첨지는 교묘하게도 정말 꾀꼬리 같은 소리를 내었다. 모든 사람은 일시에 웃었다.

"빌어먹을 깍쟁이 같은 년, 누가 저를 어쩌나. '왜 남을 귀찮게 굴어!' 어이구 소리가 체신도 없지 허허."

웃음소리들은 높아졌다. 그러나 그 웃음소리들이 사라지기 전에 김첨지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였다.

치삼은 어이없이 주정뱅이를 바라보며,

"금방 수고 지랄을 하더니 우는 건 또 무슨 일인가?"

김첨지는 연해 코를 들여마시며,

"우리 마누라가 죽었다네."

"뭐, 마누라가 죽다니, 언제?"

"이놈아 언제는, 오늘이지."

"에끼 미친놈, 거짓말 말아."

"거짓말은 왜? 참말로 죽었어, 참마로....마누라 시체를 집에 뻐들쳐놓고 내가 술을 먹다니. 내가 죽일 놈이야, 죽일 놈이야."

하고 김첨지는 엉엉 소리를 내어 운다.

치삼은 흥이 조금 깨어지는 얼굴로,

"원 이 사람이, 참말을 하나 거짓말을 하나? 그러면 집으로 가세, 가."

하고 우는 이의 팔을 잡아당기었다.

치삼의 잡는 손을 뿌리치더니 김첨지는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싱그레 웃는다.

"죽기는 누가 죽어?"

하고 득의가 양양.

"죽기는 왜 죽어? 생때같이 살아만 있단다. 그 오라질 년이 밥을 죽이지. 인제 나한테 속았다. 인제 나한테 속았다."

하고 어린애 모양으로 손뼉을 치며 웃는다.

"이 사람이 정말 미쳤단 말인가? 나도 아주먼네가 앓는단 말은 들었는데."

하고 치삼이도 어느 불안을 느끼는 듯이 김첨지에게 또 돌아가라고 권하였다.

"안 죽었어. 안 죽었대도 그래."

김첨지는 화증을 내며 확신 있게 소리를 질렀으되 그 소리엔 안 죽은 것을 믿으려고 애쓰는 가락이 있었다. 기어이 일 원어치를 채워서 곱빼기 한 잔씩 더 먹고 나왔다. 궂은 비는 의연히 추적추적 내린다. (p.152-156)

 

김첨지는 취중에도 설렁탕을 사가지고 집에 다다랐다. 집이라해도 물론 셋집이요 또 집 전체를 세 든 게 아니라 안과 뚝 떨어진 행랑방 한 칸을 빌려 든 것인데 물을 길어대고 한 달에 일 원씩 내는 터이다. 만일 김첨지가 주기를 띠지 않았던들 한 발을 대문 안에 들여놓을 제 그곳을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정적 - 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바다 같은 정적에 다리가 떨리었으리라. 쿨룩거리는 기침 소리도 들을 수 없다. 그러렁거리는 숨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 다만 이 무덤 같은 침묵을 깨뜨리는 - 깨뜨린다느니보다 한층 더 침묵을 깊게 하고 불길하게 하는 빡빡 하는 그윽한 소리, 어린애의 젖 빠는 소리가 날 뿐이다. 만일 청각이 예민한 이 같으면 그 빡빡 소리는 빨 따름이요 꿀떡꿀떡 하고 젖 넘어가는 소리가 없으니 빈 젖을 빤다는 것도 짐작할는지 모르리라.

혹은 김첨지도 이 불길한 침묵은 짐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전에 없이.

"이 난장 맞을 년, 남편이 들어오는데 나와보지도 안 해. 이 오라질 년!"

이라고 고함을 친 게 수상하다. 이 고함이야말로 제 몸을 엄습해 오는 무시무시한 증을 쫓아버리려는 허장성세인 까닭이다.

하여간 김첨지는 방문을 왈칵 열었다. 구역을 나게 하는 추기 - 떨어진 삿자리 밑으로 올라온 먼지내. 빨지 않은 기저귀에서 나는 똥내와 오줌내. 가지각색 때가 켜켜이 앉은 옷내. 병인의 땀 썩은 내가 섞인 추기가 무딘 김첨지의 코를 찔렀다.

방 안에 들어서며 설렁탕을 한구석에 놓을 사이도 없이 주정꾼은 목청을 있는 대로 다 내어 호통을 쳤다.

"이런 오라질 년. 주야장천 누워만 있으면 제일이야. 남편이 와도 일어나지를 못해!"

라고 소리와 함께 발길로 누운 이의 다리를 몹시 찼다. 그러나 발길에 차이는 건 사람의 살이 아니고 나뭇등걸과 같은 느낌이 있었다. 이때에 빡빡 소리가 응아 소리로 변하였다. 개똥이가 물었던 젖을 빼어놓고 운다. 운대도 온 얼굴을 찡그려 붙여서 운다는 표정을 할 뿐이다. 응아 소리도 입에서 나는 것이 아니고 마치 뱃속에서 나는 듯하였다. 울다가 목도 잠겼고 또 울 기운조차 시진한 것 같다.

발로 차도 그 보람이 없는 걸 보자 남편은 아내의 머리맡으로 달려들어 그야말로 까치집 같은 환자의 머리를 꺼들어 흔들며,

"이년아, 말을 해, 말을! 입이 붙었어? 이 오라질 년!"

"........"

"으응, 이것 봐, 아무 말이 없네."

"........."

"이년아, 죽었단 말이냐, 왜 말이 없어?"

".........."

"으응, 또 대답이 없네. 정말 죽었나 버이."

이러다가 누운 이의 흰 창이 검은 창을 덮은, 위로 치뜬 눈을 알아보자마자,

"이 눈깔! 이 눈깔! 왜 나를 바라보지 못하고 천장만 보느냐? 응."

하는 말끝엔 목이 메이었다. 그러자 산 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닭의 똥 같은 눈물이 죽은 이의 뻣뻣한 얼굴을 어릉어릉 적신다. 문득 김첨지는 미친 듯이 제 얼굴을 죽은 이의 얼굴에 한데 비비대며 중얼거렸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p.156-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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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玄鎭健, 1900년 9월 2일 (음력 8월 9일) ~ 1943년 4월 25일)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조선(朝鮮)의 작가, 소설가 겸 언론인,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연주(延州). 호는 빙허(憑虛). 대구 출생. 가계는 한말에 득세한 개화파 집안으로서, 대구 우체국장이었던 경운(炅運)의 4남이다.
1915년 이순득(李順得)과 혼인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세이조중학(成城中學) 4학년을 중퇴하고 상해로 건너가 후장대학(滬江大學)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귀국하여 한말 주일공사관 참서관(參書官)을 지낸 당숙 보운(普運)에게 입양되었다.
1920년≪개벽 開闢≫에 <희생화 犧牲花>를 발표함으로써 문필 활동을 시작하여 <빈처 貧妻>(1921)로 문명을 얻었다. 1921년 조선일보사에 입사함으로써 언론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홍사용(洪思容)·이상화(李相和)·나도향(羅稻香)·박종화(朴鍾和) 등과 함께 ≪백조(白潮≫ 창간동인으로 참여하여 1920년대 신문학운동에 본격적으로 가담하였다.
1922년에는 동명사(東明社)에 입사, 1925년 그 후신인 ≪시대일보≫가 폐간되자 동아일보사로 옮겼다. 1932년 상해에서 활약하던 공산주의자인 셋째 형 정건(鼎健)의 체포와 죽음으로 깊은 충격을 받았는데, 그 자신도 1936년 동아일보사 사회부장 당시 일장기말살사건으로 인하여 구속되었다.
1937년 동아일보사를 사직하고 소설 창작에 전념하였으며, 빈궁 속에서도 친일문학에 가담하지 않은 채 지내다가 1943년 장결핵으로 사망하였다.

장편·단편 20여 편과 7편의 번역소설, 그리고 여러 편의 수필과 비평문 등을 남겼다. 그의 작품 경향은 민족주의적 색채가 짙은 사실주의 계열로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자전적 신변소설, 하층민과 민족적 현실에 눈을 돌린 소설, 1930년대의 장편소설과 역사소설 등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자전적 소설인 <빈처>·<술 권하는 사회>(1921)·<타락자>(1922) 등에서는 순수한 젊은이가 구체적인 생활 안에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부닥치는 여러 가지 좌절의 경험을 기록함으로써 한 양심적 지식청년의 고민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둘째, 창작집 ≪조선의 얼굴≫(1926)을 간행한 시기는 그의 의식이 자전적 세계를 벗어나 식민지의 민족적 현실 및 고통받는 식민지 민중의 문제로 옮겨간다.

도시하층민의 운명을 추적한 <운수 좋은 날>(1924), 미숙한 성의식(性意識)과 노역으로 고통받는 농촌 여성을 그린 <불>(1925), 땅을 잃고 뜨내기 노동자로 전전하는 한 이농민을 탁월하게 형상화한 <고향>(1926) 등은 1920년대 단편문학의 한 정점으로 기록된다.
셋째, 장편소설 <적도 赤道>(1933∼1934)에서는 삼각관계의 연애소설 구조 속에서, 그리고 <무영탑>(1938∼1939)·<흑치상지 黑齒常之>(1939∼1940, 미완)·<선화공주 善花公主>(1941, 미완) 등에서는 과거의 역사를 통하여, 민족해방에 대한 강렬한 동경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1930년대의 암울한 시대적 압박으로 말미암아 외면적인 통속성이 강화되고, 민족정신은 내재화·추상화의 경향에 빠졌다. 이밖에 <조선혼과 현대정신의 파악>(개벽 65호, 1926) 등의 비평문을 통하여 식민지시대의 조선 문학이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는 김동인(金東仁)·염상섭(廉想涉)과 더불어 근대문학 초기에 단편소설 양식을 개척하고 사실주의 문학의 기틀을 마련한 작가이다. 특히 식민지시대의 현실대응 문제를 단편기교와 더불어 탁월하게 양식화한 작가로서 문학사적 위치를 크게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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