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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
I. 한국 문학/2. 소설

봄, 봄 - 김유정 (문학과지성사)

by handaikhan 2023. 3. 16.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4

김유정 단편선 - 동백꽃

 

목차

심청
산골 나그네
총각과 맹꽁이
소낙비

만무방
노다지

금 따는 콩밭

산골
봄.봄
안해
봄과 따라지
따라지
가을
두꺼비
동백꽃
야앵(夜櫻)
옥토끼
정조(貞操)
땡볕



작품 해설
행복과 등진 열정 - 김유정의 생애와 문학 / 유인순
작가 연보
작품 목록
참고 문헌
기획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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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 봄 봄 (1935년)

 

"장인님! 인제 저 - "

내가 이렇게 뒤통수를 긁고 나이가 찼으니 성례를 시켜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 그 대답이 늘

"이 자식아! 성례구 뭐구 미처 자라야지 - " 하고 만다. 이 자라야 한다는 것은 내가 아니라 장차 내 아내가 될 점순이의 키 말이다.

내가 여기에 와서 돈 한 푼 안 받고 일하기를 삼 년하고 꼬박이 일곱 달 동안을 했다. 그런데도 미처 못 자랐다니까 이 키는 언제야 자라는 겐지 짜증 영문 모른다. 일을 좀더 잘해야 한다든지 혹은 밥을 (많이 먹는다고 노상 걱정이니까) 좀 덜 먹어야 한다든지 하면 나도 얼마든지 할 말이 많다. 하지만 점순이가 안죽 어리니까 더 자라야 한다는 여기에는 어째볼 수 없이 고만 벙벙하고 만다.

이래서 나는 애초에 계약이 잘못된 걸 알았다. 이태면 이태, 삼 년이면 삼 년, 기한을 딱 작정하고 일을 해야 원 할 것이다. 덮어놓고 딸이 자라는 대로 성례를 시켜주마, 했으니 누가 늘 지키고 섰는 것도 아니고 그 키가 언제 자라는지 알 수 있는가. 그리고 난 사람의 키가 무럭무럭 자라는 줄만 알았지 붙배기 키에 모로만 벌어지는 몸도 있는 것을 누가 알았으랴. 때가 되면 장인님이 어련하랴 싶어서 군소리 없이 꾸벅꾸벅 일만 해왔다. 그럼 말이다. 장인님이 제가 다 알아차려서

"어 참, 너 일 많이 했다. 고만 장가들어라." 하고 살림도 내주고 해야 나도 좋을 것이 아니냐. 시치미를 딱 떼고 도리어 그런 소리가 나올까 봐서 지레 펄펄 뛰고 이 야단이다. 명색이 좋아 데릴사위지 일하기에 싱겁기도 할뿐더러 이건 참 아무것도 아니다.

숙맥이 그걸 모르고 점순이의 키 자라기만 까맣게 기다리지 않았나.

언젠가는 하도 갑갑해서 자를 가지고 덤벼들어서 그 키를 한번 재볼까, 했다마는 우리는 장인님이 내외를 해야 한다고 해서 마주 서 이야기도 한마디 하는 법 없다. 우물길에서 어쩌다 마주칠적이면 겨우 눈어림으로 재보고 하는 것인데 그럴 적마다 나는 저만치 가서

"제 - 미 키두!" 하고 논둑에다 침을 퉤, 뱉는다. 아무리 잘 봐야 내 겨드랑 (다른 사람보다 좀 크긴 하지만) 밑에서 넘을락말락 밤낮 요 모양이다. 개돼지는 푹푹 크는데 왜 이리도 사람은 안 크는지. 한동안 머리가 아프도록 궁리도 해보았다. 아하 물동이를 자꾸 이니까 뼈다귀가 움츠라드나 보다, 하고 내가 넌짓넌지시 그 물을 대신 길어도 주었다. 뿐만 아니라 나무를 하러 가면 서낭당에 돌을 올려놓고

"점순이의 키 좀 크게 해줍소사, 그러면 담엔 떡 갖다놓고 고사드립죠니까." 하고 치성도 한두 번 드린 것이 아니다. 어떻게 돼먹은 킨지 이래도 막무가내니 -

그래 내 어저께 싸운 것이지 결코 장인님이 빔다든가 해서가 아니다.

모를 붓다가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또 싱겁다. 이 벼가 자라서 점순이가 먹고 좀 큰다면 모르지만 그렇지도 못할걸 내 심어서 뭘 하는 거냐. 해마다 앞으로 축 거불지는 장인님의 아랫배 (가 너무 먹은 걸 모르고 내병이라나 그 배)를 불리기 위하여 심곤 조금도 싶지 않다. (p.198-200)

 

점순이는 뭐 그리 썩 이쁜 계집애는 못 된다. 그렇다고 또 개떡이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꼭 내 아내가 돼야 할 만치 그저 툽툽하게 생긴 얼굴이다. 나보다 십 년이 아래니까 올에 열여섯인데 몸은 남보다 두 살이나 덜 자랐다. 남은 잘도 훤칠히들 크건만 이건 위아래가 뭉툭한 것이 내 눈에는 헐없이 감참외 같다. 참외중에는 감참외가 젤 맛좋고 이쁘니까 말이다. 둥글고 커단 눈은 서글서글하니 좋고 좀 지쳐 찢어졌지만 입은 붑술이나 혹혹히 먹음직하니 좋다. 아따 밥만 많이 먹게 되면 팔자는 고만 아니냐. 헌데 한 가지 파가 있다면 가끔가다 몸이 (장인님은 이걸 체신이 없이 들까분다고 하지만) 너무 빨리빨리 논다. 그래서 밥을 나르다가 때없이 풀밭에다 깨빡을 쳐서 흙투성이 밥을 곧잘 먹인다. 안 먹으면 무안해할까 봐서 이걸 씹고 앉았노라면 으적으적 소리만 나고 돌을 먹는 겐지 밥을 먹는 겐지 -

그러나 이날은 웬일인지 성한 밥 채로 밭머리에 곱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또 내외를 해야 하니까 저만큼 떨어져 이쪽으로 등을 향하고 웅크리고 앉아서 그릇 나기를 기다린다.

내가 다 먹고 물러섰을 때 그릇을 와서 챙기는데 그런데 난 깜작 놀라지 않았느냐. 고개를 푹 숙이고 밥 함지에 그릇을 포개면서 날더러 들으라는지 혹은 제 소린지

"밤낮 일만 하다 말 텐가!" 하고 혼자서 쫑알거린다. 고대 잘 내외하다가 이게 무슨 소린가, 하고 난 정신이 얼떨떨했다. 그러면서도 한편 무슨 좋은 수나 있는가 싶어서 나도 공중을 대고 혼잣말로

"그럼 어떻게?" 하니까

"성례 시켜달라지 뭘 어떻게." 하고 되알지게 쏘아붙이고 얼굴이 발개져서 산으로 그저 도망질을 친다.

나는 잠시 동안 어떻게 되는 심판인지 맥을 몰라서 그 뒷모양만 덤덤히 바라보았다. (p.204-205)

 

 

"구장님! 우리 장인님과 츰에 계약하기를 - "

먼저 덤비는 장인님을 뒤로 떼다밀고 내가 허둥지둥 달려들다가 가만히 생각하고

"아니 우리 빙장님과 츰에." 하고 첫번부터 다시 말을 고쳤다. 장인님은 빙장님, 해야 좋아하고 밖에 나와서 장인밈, 하면 괜스레 골을 내려고 든다. 뱀두 뱀이라야 좋냐고, 창피스러우니 남 듣는 데는 제발 빙장님, 빙모님, 하라고 일상 말조심을 받아오면서 난 그것도 자꾸 잊는다. 당장도 장인님, 하다 옆에서 내 발등을 꾹 밟고 곁눈질을 흘기는 바람에야 겨우 알았지만.

구장님도 내 이야기를 자세히 듣더니 퍽 딱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구장님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다 그럴 게다. 길게 길러둔 새끼 손톱으로 코를 후벼서 저리 탁 튀기며

"그럼 봉필씨! 얼른 셍롈 시켜주구려. 그렇게까지 제가 하구 싶다는걸 - " 하고 내 짐작대로 말했다. 그러나 이 말에 장인님이 삿대질로 눈을 부라리고

"아 성례구 뭐구 기집애년이 미처 자라야 할 게 아닌가 - ?" 하니까 고마 멀쑤룩해서 입맛만 쩍쩍 다실 분이 아닌가.

"그것두 그래!"

"그래 거진 사 년 동안에도 안 자랐다니 그 킨 은제 자라지유?" 다 그만두구 사경 내슈 - ."

"글쎄 이 자식아! 내가 크질 말라구 그랬니? 왜 나보구 떼냐?"

"빙모님은 참새만 한 것이 그럼 어떻게 앨 났지유?"

(사실 장모님은 점순이보다도 귓배기 하나가 적다)

장인님은 이 말을 듣고 껄껄 웃더니 (그러나 암만해두 돌 씹은 상이다) 코를 푸는 척하고 날 은근히 골리려고 팔꿈치로 옆 갈비께를 퍽 치는 것이다. 더럽다. 나두 종아리의 파리를 쫓는 척하고 허리를 구부리며 어깨로 그 궁둥이를 콱 떼밀었다. 장인님은 앞으로 우찔근 하고 싸리문께로 쓰러질 듯하다 몸을 바로 고치더니 눈총을 몹시 쏘았다. 이런 쌍년의 자식 하곤 싶으나 남의 앞이라서 차마 못하고 섰는 그 꼴이 보기에 퍽 쟁그러웠다. (p.205-206)

 

"이 자식아! 너 왜 또 이러니?"

"관격이 났어유, 이이구 배야!"

"기껀 밥 처먹구 나서 무슨 관격이야. 남의 농사 버려주면 이 자식아 징역 간다 봐라!"

"가두 좋아유, 아이구 배야!"

참말 난 일 안 해서 징역 가도 좋다 생각했다. 일후 아들을 낳아도 그 앞에서 바보 바보 이렇게 별명을 들을 테니까 오늘은 열 쪽에 난대도 결정을 내고 싶었다.

장인님이 일어나라고 해도 내가 안 일어나니까 눈에 독이 올라서 저편으로 힝하게 가더니 지게막대기를 들고 왔다. 그리고 그걸로 내 허리를 마치 돌 떠넘기듯이 쿡 찍어서 넘기고 넘기고 했다. 밥을 잔뜩 먹고 딱딱한 배가 그럴 적마다 퉁겨지면서 밸창이 꼿꼿한 것이 여간 켕기지 않았다. 그래도 안 일어나니까 이번에는 배를 지게막대기로 위에서 쿡쿡 찌르고 발길로 옆구리를 차고 했다. 장인님은 원체 심정이 궂어서 그러지만 나도 저만 못하지 않게 배를 채었다. 아픈 것을 눈을 꽉 감고 넌 해라 난 재미난 듯이 있었으나 볼기짝을 후려갈길 적에는 나도 모르는 결에 벌떡 일어나서 그 수염을 잡아챘다마는 내 골이 난 것이 아니라 정말은 아까부터 부엌 뒤 울타리 구멍으로 점순이가 우리들의 꼴을 몰래 엿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말 한마디 톡톡히 못한다고 바보라는데 매까지 잠자코 맞는 걸 보면 짜정 바보로 알 게 아닌가. 또 점순이도 미워하는 이까짓 놈의 장이님 나곤 아무것도 안 되니까 막 때려도 좋지만 사정 보아서 수염만 채고 (제 원래로 했으니까 이때 점순이는 퍽 기뻤겠지) 저기까지 잘 들리도록

"이걸 까셀라부다!" 하고 소리를 쳤다.

장인님은 더 약이 바싹 올라서 자분참 지게막대기로 내 어깨를 그냥 내려갈겼다. 정신이 다 아찔하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때엔 나도 온몸에 약이 올랐다. 이 녀석의 장인밈을, 하고 눈에서 불이 퍽 나서 그 아래 밭 있는 넝알로 그대로 떼밀어 굴려버렸다. 조금 있다가 장인님이 씩, 씩, 하고 한번 해보려고 기어오르는 걸 얼른 또 떼밀어 굴려버렸다.

기어오르면 굴리고 굴리면 기어오르고 이런길 한 너덧 번을 하며 그럴 적마다

"부려만 먹구 왜 성례 안하지유!"

나는 이렇게 호령했다. 하지만 장이님이 선뜻 오냐 낼이라두 성례시켜주마, 했으면 나도 성가신 걸 그만두었을지 모른다. 나야 이러면 때린 건 아니니까 나중에 장인 쳤다는 누명도 안 들을 터이고 얼마든지 해도 좋다.

한번은 장인님이 헐떡헐떡 기어서 올라오더니 내 바짓가랑이를 요렇게 노리고서 단박 움켜잡고 내달렸다. 악, 소리를 치고 나느 그만 세상이 다 팽그르 도는 것이

"빙장님! 빙장님! 빙장님!"

"이 자식! 잡어먹어라 잡어먹어!"

"아! 아! 할아버지! 살려줍쇼 할아버지!" 하고 두 팔을 허둥지둥 내저을 적에는 이마에 진땀이 쭉 내솟고 인젠 참으로 죽나 보다, 했다. 그래도 장인님은 놓질 않더니 내가 기어이 땅바닥에 쓰러져서 거의 까무러지게 되니까 놓는다. 더럽다 더럽다. 이게 장인님인가. 나는 한참을 못 일어나고 쩔쩔맸다. 그렇게 얼굴을 드니 (눈에 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지가 부르르 떨리면서 나도 엉금엉금 기어가 장인님의 바짓가랑이를 꽉 움키고 잡아 낚았다.

내가 머리가 터지도록 매를 얻어맞은 것이 이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가 또한 우리 장인님이 유달리 착한 곳이다. 여느 사람이면 사경을 주어서라도 당장 내쫓았지 터진 머리를 불솜으로 손수 지져주고, 호주머니에 희연 한 봉을 넣어주고 그리고

"올 갈엔 꼭 성례를 시켜주마, 암말 말구 가서 뒷골의 콩밭이나 얼른 갈아라." 하고 등을 뚜덕여줄 사람이 누구냐.

나는 장인님이 너무나 고마워서 어느덧 눈물까지 났다. 점순이를 남기고 인제 내쫓기려니, 하다 뜻밖의 말을 듣고

"빙장님! 인제 다시는 안 그러겠어유 - "

이렇게 맹서를 하며 불야살야 지게를 지고 일터로 갔다.

그러나 이때는 그걸 모르고 장인님을 원수로만 여겨서 잔뜩 잡아당겼다.

"아! 아! 이놈아! 놔라, 놔, 놔 - "

장인님은 헛손질을 하며 솔개미에 챈 닭의 소리를 연해 질렀다. 놓긴 왜, 이왕이면 호되게 혼을 내주리라. 생각하고 짓궂이 더 당겼다마는 장인님이 땅에 쓰러져서 눈에 눈물이 피잉 도는 것을 알고 좀 겁도 았다.

"할아버지! 놔라, 놔, 놔, 놔놔." 그래도 안 되니까

"얘 점순아! 점순아!"

이 악장에 안에 있었던 장모님과 점순이가 헐래벌떡하고 단숨에 뛰어나왔다.

나의 생각에 장모님은 제 남편이니까 역성을 할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점순이는 내 편을 들어서 속으로 고수해서 하겠지 - 대체 이게 왠 속인지 (지금까지도 난 영문을 모른다) 아버질 혼내주기는 제가 내래놓고 이제 와서는 달려들며

"에구머니! 이 망할 게 아버지 죽이네!" 하고 내 귀를 뒤로 잡아당기며 마냥 우는 것이 아니냐. 그만 여기에 기운 탁 꺾이어 나는 얼빠진 등신이 되고 말았다. 장모님도 덤벼들어 한쪽 귀마저 뒤로 잡아채면서 또 우는 것이다.

이렇게 꼼짝 못하게 해놓고 장인님은 지게막대기를 들어서 사뭇 나려조겼다. 그러나 나는 구태여 피하려 하지도 않고 암만해도 그 속 알 수 없는 점순이의 얼굴만 멀거니 들여다보았다.

"이 자식! 장인 입에서 할아버지 소리가 나오도록 해?" (p.21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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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金裕貞 1908~1937)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의 소설가이다.


본관은 청풍(淸風). 강원도 춘천 출신. 아버지 김춘식(金春植)과 어머니 청송심씨의 8남매 중 막내이다.
갑부 집안이었으나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고향을 떠나 12세 때 서울 재동공립보통학교에 입학, 1929년에 휘문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이듬해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진학했으나 중퇴하였다.
1932년에는 고향 실레마을에 금병의숙(錦屛義塾)을 세워 문맹퇴치운동을 벌이기도 하고, 또 한때는 금광에 손을 대기도 하였다.
1935년 단편소설 「소낙비」가 『조선일보』에, 「노다지」가 『중앙일보』의 신춘문예에 각각 당선되어 문단에 올랐다. 그뒤 후기 구인회(九人會)의 일원으로 김문집(金文輯) · 이상(李箱) 등과 교분을 가지면서 창작활동을 하였다.
그는 등단하던 해에 「금 따는 콩밭」 · 「떡」 · 「산골」 · 「만무방」 · 「봄봄」 등을 발표하였고, 그 이듬해인 1936년에 「산골 나그네」 · 「봄과 따라지」 · 「동백꽃」 등을 발표하였으며, 1937년에는 「땡볕」 · 「따라지」 등을 발표하였다.
그는 불과 2년 남짓한 작가생활을 통해서 30편 내외의 단편과 1편의 미완성 장편, 그리고 1편의 번역소설을 남길 만큼 왕성한 창작의욕을 보였으나, 30세에 죽었다.
김유정의 소설은 그의 체험적 소재에 따라 크게 세 갈래로 나눌 수 있다. 그 하나는 고향 실레마을 사람들의 가난하고 무지하며 순박한 생활을 그린 「봄봄」 · 「동백꽃」 등의 계열로서 그의 작가적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난 일면이다.
다음은 그의 금광 체험에서 얻어진 것으로, 민족항일기의 가난 속에서 일확천금의 꿈에 한가닥 희망을 걸고 사는 사람들의 생태를 그린 「노다지」 · 「금 따는 콩밭」 등의 계열, 그리고 도시에서의 가난한 한 작가인 자신의 생활을 투영시킨 「따라지」 · 「봄과 따라지」 등의 계열이 그것이다.
그의 문학세계는 본질적으로 희화적(戱畫的)이어서, 냉철하고 이지적인 현실감각이나 비극적인 진지성보다는 따뜻하고 희극적인 인간미가 넘쳐 흐르는 게 특징이다.
등장인물들의 우직하고 순진한 모습, 사건의 의외적인 전개와 엉뚱한 반전, 매우 육담적(肉談的)인 속어의 구사 등으로 독특한 개성을 보여주었다. 어리숭한 사람들을 해학적으로 다룬 것은 그의 애상적인 성격에 대한 반동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대표작 「동백꽃」은 사춘기 남녀가 애정과 개성에 눈떠가는 과정을 전원 서정 속에 특유의 해학적 수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작품집으로는 1938년에 나온 『동백꽃』이 있고, 1968년에 『김유정전집』이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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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봅 - 김유정 (창비)

봄봄 - 김유정 (애플북스)

김유정 단편소설 - 김유정 (에세이퍼블리싱)

원본 김유정 전집 - 김유정 (강)

봄봄 - 김유정 (현대문학)

봄봄 - 김유정 (사피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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