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책의 향기
I. 한국 문학/2. 소설

자전거 도둑 - 김소진 (강)

by handaikhan 2023. 3. 7.

 

김소진 - 자전거 도둑 (1995년)

 

자전거에 도둑이 생겼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나 몰래 훔쳐 타는 얌체족이었다. 내 골반뼈 높이에 맞춰놓은 자전거 안장이 엉덩이 밑선으로 밀려가 있었고 바퀴 틈새에는 방금 묻어난 것 같은 황톳물이 군데군데 배어 있곤 하는 게 바로 그 증거였다.

누군지는 몰라도 현관문 밖의 도시가스 연결 파이프에 쇠줄로 붙들어 매놓은 자전거의 자물쇠를 풀고 몰고 다닌 다음 내가 퇴근해 돌아오기 전에 얌전히 제자리에 갖다놓곤 하는 모양이었다. 신문사 일이라는 게 저녁 늦게 끝나기가 일쑤인데다 퇴근 후 술자리를 워낙 좋아하는 나로서는 낮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전거를 산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전거를 고정시킬 쇠줄의 열쇠 하나를 잃어벼렸다. 하지만 살 때부터 열쇠를 세 개씩이나 받아뒀기에 이내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지냈다. 

나는 내 자전거를 훔쳐 타는 범인으로 일찌감치 이웃집 아이인 봉근이를 찍고 있었다. 맞벌이 부부인 그 집 부모는 하루종일 집을 비우기 일쑤였다. 봉근이 아버지는 공치는 날이 더 많은 도배공이었고 엄마는 봉제공이었다. 둘이서 벌어들이는 수입이 여간 쏠쏠치 않을 텐데 어찌나 무섭게들 움켜쥐는지 외아들인 봉근이가 그토록 졸라대는 눈치건만 헌 자전거 한 대 마련해주질 않았다. 자존심까지 구겨가며 다른 또래 아이들 자전거를 빌려 타거나 자기보다 힘이 약한 아이 같으면 종주먹을 들이대는 시늉을 해 뺏아 타는 그 애의 모습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새도시에서는 자전거가 몹시 요긴했다. 곳곳에 자전거 전용도로가 잘 닦여 있어 운동기구로도 쓰임새가 좋을 뿐더러, 은행이나 할인판매점 같은 편의시설들이 걷기도 차 타기도 어정쩡해서 자전거가 없으면 허드레 다리품을 팔 일이 잦은 곳이 바로 새도시였다.

처음에는 새로 뺀 자동차 못지않게 걸레질도 가끔씩 해가며 사뭇 귀염을 받언 자전거였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자 어느덧 그 자전거는 소박맞은 이처럼 문 옆에서 다소곳이 먼지 답쌔기를 뽀얗게 뒤집어쓴 채 서 있어야만 했다. 그러다가 출퇴근 때마다 후다닥 곁을 스치고 지나가는 나의 시큰둥한 눈길에 밟히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자전거를 건드리는 손은 봉근이 아니었다. 어느 날 몸이 아파 신문사에 조퇴보고를 하고 돌아온 날 의문은 우연찮게 풀렸다. 약방까지 자전거를 타고 갈까 싶었는데 이미 누군가 쇠줄을 풀고 한 발 앞서 자전거를 끌고 나가버린 거였다. 나는 경의선과 나란히 뻗은 자전거 전용도로 쪽으로 나가보았다.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는 모델의 방금 샴푸한 것처럼 하늘하늘한 머리채와 몸에 착 달라붙는 하얀 옷자락을 휘날리며 유유자적하게 자전거를 모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누굴까? 나는 먼 거리에서도 그 자전거가 새로 장만한 내 자전거임을 알 수 있었다.

내 자전거 위에 허락도 없이 올라탄 사람은 뜻밖에도 젊은 여자였다. 까만 타이즈 바지 차림에 흰 남방셔츠를 입고 있어 늘씬한 몸매가 훤히 드러났다. 자전거거 밟는 엉덩이와 허벅지의 굴곡에 탄력이 붙어 보였다.

멀찍이서긴 했지만 난 내 앞을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그 아가씨의 얼굴이 낯설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파트 관리업체지정 변경에 관한 결의를 한다고 해서 불려 나간 반상회 자리였을 것이다. 나중에 아주머니들 수군 거리는 말을 얼핏 귀동냥하니 문촌마을을 스포츠센터에서 에어로빅 강사를 한다는 거였다. 바로 내 위인 꼭대기층에 산다고 들었다. 어쩐지 이따금씩 거실에서 에어로빅 연습을 하는지 콩콩거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리곤 했다.

흐흠, 자전거 도둑이라! (p.103-105)

 

한 평도 채 안되는 구멍가게는 중풍으로 쓰러져 정상적 건강 상태가 아니었던 아버지의 유일한 수입원이자 생존 이유였다. 때문에 그 구멍가게에 대한 아버지의 몰두와 자존심은 각별했다.

한번은 내가 아버지가 가게를 잠깐 비운 사이에 곁에 허연 인공 설탕가루를 묻힌 '미키대장군' 이라는 카라멜을 하나 아무 생각없이 널름 집어먹은 적이 있었다. 하나에 이 원, 다섯 개에 십 원이었다. 잠시 뒤에 돌아온 아버지는 단박에 그 사실을 알아채고는 불같이 화를 내며 내 목덜미에 당시를 한 대 세게 내려꽂는 것이었다. 그 카라멜곽안에 미키대장군이 몇 개 들어 있는지조차 훤히 꿰차고 있는 아버지였다.

- 이런 민한 종간나래! 얌생이처럼 기러케 쏠라닥질을 허자면 이 가게 안에 뭐이가 하나 제대로 남아나겠니, 응?

그러고 나서는 좀 머쓱했는지 입이 한 발쯤 튀어나와 뾰로퉁해서 서 있는 내게 미키대장군 네 개를 집어 내미는 거였다. 어차피 짝이 맞아야 파니까니, 하면서 억지로 내 손아귀에 쥐어주었다. 나는 그 무허가 불량식품인 카라멜 네 개가 끈끈하게 녹아내릴 때까지 먹지 않고 쥔 채 서 있었다.

- 뉠큼 털어넣지 못하겠나.. 으잉?

목덜미에 아버지의 가벼운 당시를 한 대 더 얹은 다음에야 한입에 털어놓고 돌아서 나왔다. 아버지도 가게일을 수월하게 보려면 잔심부름꾼인 나를 무시하고는 아쉬울 때가 많을 터였다. 워낙 짧은 밑천으로 가게를 꾸려가자니 아버지는 물건 구색을 맞추느라 하루에도 많을 때는 세 번까지 시장통 도매상으로 정부미 포대를 거머쥐고 종종걸음을 쳐야 했고, 막내인 나는 번번히 아버지의 뒤로 팔을 늘어뜨린 채 졸졸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땐 그게 죽도록 싫었다. 하마 시장통에서 야구 글러브를 끼거나 조립용 신형무기 장난감 상자를 든 반 친구를 만나거나, 심지어 과외나 주산학원을 가는 여자아이들을 만나는 날에는 정말 그 자리에서 혀를 빼물고 죽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더구나 아버지가 주로 물건을 떼오곤 하는 수도상회 혹부리영감의 손녀는 이학년인가, 삼학년 땐가 우리 반 부반장을 지냈던 나미라는 여자아이여서 서로 안면이 없지도 않았다. 어쩌다 그 애가 헐렁한 동냥자루 같은 포대를 손아귀에 틀어쥐고 멀뚱히 계산대 옆에 서 있는 내 앞으로 모른 체하며 스쳐지나갈 때면 나는 사팔뜨기인 양 뒤틀어진 눈을 아래로 깔아야 했다.

그러잖아도 머리통만 몸집에 비해 컸다 뿐이지 선병질적인덷다 깡마른 내가 엄마가 군데군데 왕바늘로 기워줄 만큼 낡은 벙부미 포대에 잡동사니 같은 물건을 쓸어담아 어깨에 늘어뜨린 채 동화 속의 당나귀처럼 혀를 빼물고 헉헉거리며 가파른 산동네길을 오르는 정경을 떠올릴 때면 지금도 처연한 감정을 모면할 길이 없었다. (p.107-109)

 

결국 혹부리영감은 두 병이 더 들어간 것을 밝혀냈고 아버지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나는 내가 희생양이 돼야 함을 느꼈다.

예, 맞아요. 그건 말예요. 제가 영감님 몰래 넣은 건데요.....왜냐하면 접때접때 우리 집에서 사실 두 병을 빠뜨리고 갔기 때문에 응, 쌤쌤이어서요.....

나는 이상하게도 맘이 편하고 당당했다. 나도 모르게 입가로 번져 나온 미소를 단속하느라 손바닥으로 입을 몇 번인가 틀어막기도 했다. 혹부리영감은 얼굴에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단 직접적 책임을 모면한 아버지는 헤설픈 표정으로 날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혹부리영감이 당신과는 이제 거래 끝이야 하고 선언할까봐 전전긍긍하는 얼굴이었다. 아버지처럼 이북 출신인 그 영감은 시장통에서 신용 하나는 보증수표나 다름없었지만 성질이 불 같고 매몰차기로 소문이 자자한 위인이었기에 그런 상황은 쉽게 상상해볼 수 있었다.

내레 이까짓 걸루다 당신하고 거래를 끊지는 않갔어. 다 물정 모르는 아이들이 저지른 짓인데 으잉?

아유, 고맙습네다 영감님. 그저 어떻게 헤헤....우리 아이가 평소에는 그렇게 민한 애가 아닌데 어쩌다.....

단.....

혹부리영감이 아버지의 말끝을 가로챘다.

내 앞에서 저 아이를 호되게 가르치는 꼴을 봬주라우. 내가 그깟 술 두 병이 아까워서 기러는 게 아니야. 하지만 기렇게 따끔하게 가르치는 건 바로 자식에게 말이야. 부모된 도리를 다하는 것 아니갔슴매? 내 아 자리서 이녁이 하는 깜냥을 두고보고서리 까지것 그 술 두 병은 거저라두 주갔어. 내 이제껏 남한테 콩알 반쪼가리도 거저 준 적은 없지만서두, 이건 경우가 다르다우 아암.

호되게라믄....어떠케?

쯔쯧, 이녁도 함경도 아바이 출신이믄 부랄값도 못하는 자식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어드러케 다루는지는 알 만하잖소? 그걸 왜 내게 묻소 으응? 아 안 그렇소?

야! 간나야, 니 다시는 이런 민한 짓이래, 하겠니, 안 하겠니? 어서 말 좀 해보라우.

짐짓 호령을 하는 아버지의 손이 부들부들 떨며 허공 높이 허우적거렸다. 단 한 대에 내 뺨은 무섭게 부풀어오르며 감각을 잃어갔다.

길티....기게 바로 진짜 교육이야.

혹부리영감의 격려를 받은 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그에게 굽신거린 다음 또 한 차례 내 뺨을 기세좋게 올려붙였다. 그러나 이 지독한 연ㄴ극을 지켜보면서 나는 아픔을 거의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머릿속에서 뭔가가 맑아지는 느낌뿐이었다. 그리곤 투시해버리고 말았다. 어린 나이에도 아버지의 눈 속에 흐르지도 못하고 괴어 있는 눈물을, 차라리 죽는 한이 있어도 애비라는 존재는 되지 말자. 아마도 나는 그때 그런 끔찍한 다짐을 했는지도 모른다. (p.111-112)

 

역 광장 둘레로 불을 환히 밝힌 포장마차가 서너 군데 눈에 띄었다. 여자는 느닷없이 킥 하며 웃음을 참는 시늉을 하는 바람에 난 긴장이 확 풀리고 말았다.

"그러시죠, 뭐."

"여기 우선 맥주 두 병부터 주시고요, 골뱅이 하나 무쳐주세요."

"맵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주머니."

"정식 인사도 드리기 전인데, 이런 말씀 드려도 어떨는지 모르겠네요."

"................"

"다름이 아니고, 자전거를 아주 잘 타신다고요, 헤헤."

여자가 얼른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벌어진 손가락 틈새로 가지런한 잇바디가 비쳤다.

"호호, 고맙네요. 인사가 늦었어요. 자전거 도둑 서미혭니다."

"아, 서미혜 씨요? 아무튼 이거 반갑습니다. 전 김승호라고 합니다."

"범인이 뜻밖이라서 놀라셨겠다? 제가 오후에 강습을 나가느라고 빈 시간대에 잠깐잠깐 허락도 맡지 않고 그동안 실례를 했어요. 언짢으셨다면 늦었지만 용서를 구할게요."

"아유, 용서라뇨? 천만에요. 이거 너무 기분이 좋더라고요. 이런 미인이 제 자전거를 길들이고 계실 줄이야. 제가 참, 자전거가 못 된게 그렇게 유감이더라구요."

"어머, 보기보담 유머를 잘하시네요, 기자시라며요?"

"제가 써붙이고 다녔나요?"

"말투를 들어보니 그런 것 같고.....또 아파트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던데요 뭐."

"말투가 어때서요?"

"왜 그런 것 있잖아요? 말꼬리가 왠지....암튼, ,자전거가 맘에 쏙 들었는데 당분간 제가 좀더 길들여도 되겠죠?"

나는 그녀의 호감을 느낄 수 있었다. (p.113-114)

 

그리고 어느날 나는 칠흑처럼 어두운 밤 팬티만 남기고 옷을 홀라당 벗어 봉지에 넣은 다음 문을 닫은 문방구집 대문 쓰레기통 옆에 놓았다. 그리고는 머리 위로 비닐 정부미 포대를 뒤집어쓰고 으슥한 밤을 택해 아기리를 잔뜩 벌리고 있는 학교 뒷문쪽 하수구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기어들자마자 거미줄이 얼굴을 덮치는 바람에 등짝으로 소름이 쫙 훑고 지나갔다.

고개를 두 무릎 사이로 한껏 쑤셔박고 오리걸음으로 한 발짝씩 떼었다. 악취가 코를 찔렀고 바닥은 생각보다 미끈덩거렸다. 하지만 내 입가에는 야릇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급히 꺾여지는 길목인 것으로 보아 천우약국 얖쯤으로 짐작되는 곳에는 쓰레기하고 토사물들이 두텁게 쌓여 있어 직접 손으로 헤쳐내고 엉금엉금 기어나가야 했다.

술취한 몇 사람인가가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머리 위를 저벅저벅 밟고 지나갔다. 답답했다. 속이 차츰 메스꺼워지면서 이마가 어지러워졌다. 어쩌면 이 안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머리를 스쳤다. 그러자 그동안 자신만만하던 복수심 대신에 시커멓고 덩치 큰 공포심이 밀려들었다. 몇 번이고 본능적으로 머리를 쳐들다가 둔중한 시멘트 맨홀에 머리를 찧었다. 아버지와 함께 그 숯탄 창고에 드나들때 보니 그곳을 지나는 대여섯 개의 시멘트 맨홀 중 하나가 두터운 합판과 비닐장판으로 뒤덮여 있는걸 보았다. 나는 손을 머리 위로 쳐들고 자꾸 휘저어보았다. 드디어 딱딱한 시멘트 대신 몰캉한 판대기가 감촉됐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수도상회 안에 가득 쟁여 있는 물건들이 무방비 상태로 가지런히 놓은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속에서 뭔가가 지글지글 끓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 터였다. 나는 내가 생각해봐도 믿기지 않을 만큼 차분하고 침착했다. 조금만 무슨 일이 닥쳐도 얼굴이 빨개지고 가슴이 두근두근하는 새가슴이었지만 웬일인지 가슴조차 평온한 맥박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혹부리영감이 허구한 날 깔고 앉은 얄팍한 꽃무늬 방석을 집어올렸다. 그리고는 방석을 덮어씌운 채 병따개를 이용해 진로소주는 물론 이상하게 생긴 양주병 마개들을 소리나지 않게 따거나 비튼 다음 진열장 위아래 가릴 것 없이 부어댔다. 그렇게 한 십 분간 소리나지 않게 돌아다닌 것으로 수도상회 물건의 대부분이 절딴이 났다. 이제는 다시 도망쳐야 할 시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왠지 성이 차지 않았다. 아랫배에서는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연달아 났다. 나는 진열대에 발을 올려놓고 대들보에 매달려 있는 '수도상회'라고 쓰인 한글 간판을 끄집어 내렸다. 그 간판은 혹부리영감이 월남을 하기 전에 자신의 고향에서 역시 대물림으로 벌이던 잡화점을 꾸릴 때 쓰던 전통 있는 간판이라는 말을 들은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영감탱이가 애지중지하는 물건은 다 작살을 내야만 했다. 나는 떼어낸 간판을 하수구 안으로 깊숙히 내던졌다. 생각 같아서는 그 자리에서 뽀개버리고 싶었지만 그러자면 그 소리 때문에 영감탱이네 식구가 잠을 깰지도 몰랐다.

막 돌아서려는 내 눈에 혹부리영감이 맨날 보물단지처럼 끌어안고사는 시커먼 돈궤가 눈에 들어왔다. 물론 당일 벌어들인 그 안의 돈들은 이미 영감이 다 계산을 마치고 나서 텅텅 비어 있었다. 나는 꾸르륵거리는 아랫배를 움켜쥐고 그 궤 쪽으로 다가섰다. 그리고는 한동안 참았던 굵직한 대변을 그 위에 질펀하게 싸질렀다. 하수구 냄새 때문에 잠깐 감작을 잃었던 내 코였지만 어린애답지 않게 굵게 늘어진 똥줄기에서는 몹시 구린 냄새가 진동했다.

하수구를 되집어 나와 학교 뒷문 개구멍을 통해 수위 아저씨들이 가끔씩 사용하는 비품창고 안으로 들어간 나는 세면대에서 몸을 대충 씼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수돗가에서 계속 비누칠을 헤대며 살갗을 수세미로 빡빡 문질렀다. 혹시나 남아 있을 하수구 냄새를 걱정해서였다. (p.120-122)

 

도망치듯 서둘러 빠져나온 뒤론 거진 달포쯤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사건이 많이 터져 신문사 일에도 바빴고 왠지 그녀를 찾고 싶은 마음이 생기질 않았다. 그때 들은 오빠 얘기 때문인지, 자꾸만 그녀가 나에게 함정을 파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어느 일요일 아침 내 자전거 안장에 손가락을 한번 그어보았더니 먼지 덩어리가 새까맣게 묻어나는 거였다. 나는 새까매진 손가락 끝을 입김으로 몇 번 분 다음 바지 가라잉에 쓱쓱 문질렀다. 자전거 길들이기가 끝났나?

철로변 자전거 전용도로 쪽으로 눈길을 줬다. 나는 눈ㄴ을 크게 떴다. 마침 그녀가 그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페달을 힘차게 밟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나는 발끝으로 바닥을 톡톡 쪼며 바지춤을 한껏 추스려 올렸다.

나는 자전거 전용도로의 경계석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가 그녀가 나타나는 순간 몸을 일으켰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그녀가 가까이 오면 손을 흔들며 인사말을 건넬 요량이었다.

- 이혜, 오랜만이야.

아냐! 너무 싱거워, 좀 야하게 할까.

- 섹시한 아침이군! 낄낄.

그런데 그녀가 날 발견하지 못한 걸까? 아니, 그럴 리가 없지. 갑자기 청맹과니라도 됐다면 몰라도 내가 분명히 손까지 번쩍 들었는데..........

그녀는 분명 나를 봤지만 아주 차가운 눈길로, 아니 차갑다기보다는 낯선 사람을 대하는 눈길로 스쳐갔다. 실수였을까?

그러나 난 그녀가 타고 스쳐간 자전거에 물끄러미 눈길이 닿는 순간 퍼뜩 깨달았다. 나는 호주머니에서 나와 그녀를 향해 움직이려다 중동무이로 멈춰버린 내 오른손바닥을 뒤집어 맥없이 바라봤다. 자꾸 헛웃음이 나오려 했다. 아하! 그렇구나. 그녀엑 또 다른 자전거가 생겼구나. 그렇지! 다른 자전거를 훔치는 도중이군. 내가 그걸 왜 몰랐을까.

나는 서둘러 허둥지둥 자전거 전용도로를 벗어나 달아나기 시작했다. (p.127-129)

 

<문예중앙>, 1995 여름

 

자전거 도둑 - 김소진 (문학동네)

 

<비교>

자전거 도둑 - 박완서 (다림)

 

...............................................................................................................................................................................................................................

김소진(金昭晉, 1964년 1월 17일 ~ 1997년 4월 22일)

대한민국의 소설가.

강원도 철원 출신. 아버지 김응수, 어머니 김영혜의 이남이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5살 때 미아리 산동네로 이사와 1993년 결혼할 때까지 26년을 살았다. 1982년서울대학교 인문대에 입학하여 영문학을 전공하였고, 학생운동과 야학활동을 열심히 하였다. 이 무렵 그는 사회변혁운동의 한 방법으로 글쓰기를 염두에 두고 학회지에 글을 발표하는 등 습작을 하였다. 한겨레 기자를 하면서 작품활동을 활발히 하던 그는 1993년 소설가 함정임과 결혼을 하였다. 기자생활과 작품활동을 병행하던 그는 1995년 기자생활을 그만두고 전업작가가 된다. 1996년 제4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하였고 계간 『한국문학』의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중경공업전문대학 문창과에 출강을 하기도 한다. 1997년 위암 판정을 받은 후 한 달 남짓 투병하다가 4월 22일 작고하였다.

1991년『경향신문』신춘문예에 단편소설「쥐잡기」가 당선돼 문단에 데뷔하였다. 6년 남짓인 짧은 기간 동안 그는『열린사회와 그 적들』(1993),『장석조네 사람들』(1995),『고아떤 뺑덕어멈』(1995),『자전거 도둑』(1996),『양파』(1996) 등 소설집과 콩트집『바람부는 쪽으로 가라』(1996), 창작동화집 『열한 살의 푸른 바다』(1996)를 잇따라 내놓는 등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였다. 1998년 지인과 부인 함정임은 유고작을 모아 『아버지의 미소』를, 짧은 소설을 모아 『달팽이 사랑』을 펴냈다.
김소진의 작품세계는 흔히 자신의 가족사 이야기, 미아리 산동네의 민중들의 이야기, 지식인의 자의식을 다룬 이야기 등 세 개의 계열로 분류된다. 사회변혁 운동이 실패를 하면서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가족사에 대한 기억을 쓰기 시작한다. 소설쓰기의 원동력이 되었던 가족에 대한 기억은 주로 아버지와의 갈등과 화해를 다루고 있다(「쥐잡기」,「춘하 돌아오다」,「사랑이 앓기」,「고아떤 뺑덕어멈」,「개흘레꾼」,「두 장의 사진으로 남은 아버지」,「자전거 도둑」,「원생학습생활도감」,「목마른 뿌리」). 자신을 탄생시킨 아버지와의 화해는 결국 아버지로 대표되는 산동네 민중들의 이해로 확대된다(『장석조네 사람들』,「비운의 육손이형」,「수습일기」, 「그리운 동방」). 그는 기억의 서사를 통해 아버지와 엄마로 대표되는 민중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구성해내었다. 90년 신세대 작가들이 사회나 역사 대신 개인과 욕망을 내세웠던 것과는 달리 그는 추상적인 이념으로만 존재하던 민중이 실제로 역사 앞에서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생생하게 그려내었다. 우리말 공부와 어머니의 입심의 영향으로 그는 계층에 맞는 언어와 생생한 생활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여 산동네 민중들의 삶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었다.
김소진은 또한 변혁운동의 실패 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지식인을 다룬 소설을 썼다. 「처용단장」,「임존성 가는 실」,「혁명기념일」,「경복여관에서 꿈꾸기」,「울프강의 세월」,「신풍근배커리 약사」등에서 그는 자본제적 논리에 순응해가는 지식인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

열린사회와 그 적들 - 김소진 (문학동네)

장석조네 사람들 - 김소진 (문학동네)

그리운 동방 - 김소진 (문학동네)

바람부는 쪽으로 가라 - 김소진 (문학동네)

신풍근베커리 약사 - 김소진 (문학동네)

열린사회와 그 적들 - 김소진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