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책의 향기
I. 한국 문학/3. 시

님의 침묵 - 한용운 (문학과 현실사)

by handaikhan 2023. 2. 1.

 

한용운 -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

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뒤

걸음 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

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

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

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

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배기에 들어 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

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P.15)

 

 

한용운 - 알 수 없어요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

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이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

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

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

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

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p.16)

 

 

한용운 - 나룻배와 행인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히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바

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 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p.17)

 

 

한용운 - 복종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해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

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삼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

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

다.                                                                                                           (p.18)

 

 

한용운 - 사랑하는 까닭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한다지만 당신은 나의 백발

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루어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

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드른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

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p.50)

 

 

................................................................................................................

한용운(韓龍雲, 1879년 8월 29일 (음력 7월 12일) ~ 1944년 6월 29일)

일제강점기의 시인, 승려,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청주. 호는 만해(萬海)이다. 

 

불교를 통한 언론, 교육 활동을 하였다.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참여를 주장하였으며, 그것에 대한 대안점으로 불교사회개혁론을 주장했다. 3·1 만세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이며 광복 1년을 앞둔 1944년 6월 29일에 중풍과 영양실조 등의 합병증으로 병사(입적)하였다. 독립선언서의 "공약 3장"을 추가보완하였고[1] 옥중에서 '조선 독립의 서'(朝鮮獨立之書)를 지어 독립과 자유를 주장하였다.
1910년 일본이 주장하는 한일불교동맹을 반대철폐하고 이회영, 박은식, 김동삼 등의 독립지사(志士)들을 만나 독립운동을 협의하였다. 1918년 11월부터는 불교 최초의 잡지인 《유심》을 발행하였고 1919년 3.1 만세 운동 당시 독립선언을 하여 체포당한 뒤 3년간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하다 풀려났다. 1920년대에는 대처승 운동을 주도하여 중에게도 결혼할 권리를 달라고 호소하기도 하였다.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고, 불교를 통한 청년운동, 언론활동에 참여하였다. 1927년 2월부터는 신간회에 참여하여 중앙집행위원과 이듬해 신간회 경성지부장을 지냈다.
1918년 《유심》에 시를 발표하였고, 1926년〈님의 침묵〉등의 시를 발표하였다. 님의 침묵에서는 기존의 시와, 시조의 형식을 깬 산문시 형태로 시를 썼다. 소설가로도 활동하여 1930년대부터는 장편소설《흑풍》(黑風),《후회》,《박명》(薄命), 단편소설《죽음》등을 비롯한 몇편의 장편, 단편 소설들을 발표하였다. 1931년 김법린 등과 청년승려비밀결사체인 만당(卍黨)을 조직하고 당수가 되었으나 1937년 불교관계 항일단체를 적발하는 과정에서 만당사건(卍黨事件)의 배후로 체포되었다가 풀려났다. 저서로는 시집 《님의 침묵》을 비롯하여 《조선불교유신론》,《불교대전》,《십현담주해》,《불교와 고려제왕》 등이 있다.
일제와 조선총독부에 대한 저항 정신으로 자신의 집인 심우장도 조선총독부 반대 방향인 북향으로 지었고, 식량 배급도 거부했다는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다. 실제로 심우장에 가보면 심우장 뿐만 아니라 주변의 대부분 집들도 조선총독부 반대 방향으로 지어져 있으며 동네 주민들도 뜻을 함께 한 것으로 짐작된다. 친일로 변절한 최남선에 관하여서는 1937년 자신에게 최남선을 언급한 김홍규에게는 "아직도 최남선이 살아 있소?"라고 하는가 하면, 최남선이 탑골공원에서 인사를 하자, 처음에는 알은체도 하지 않다가 최남선이 자신을 못 알아보겠냐면서 계속 이름을 말하자 "내가 아는 육당은 이미 죽었소."라면서 차갑게 대했다.

 

................................................

님의 침묵 - 한용운 (범우 비평판 한국문학선 32)

님의 침묵 - 한용운 (범우 사루비아 총서 408)

...........................................................................